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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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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를 모르는 시대

영성칼럼 구미남교회 천석길 목사

감사를 모르는 시대

천석길목사 구미남교회 국정 감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최저시급을 계속해서 인상하는 것이 옳으냐? 아니냐? 로 여야 국회의원들의 고성이 오가는 중에 대학교 교수님 한 분이 참고인으로 채택되었습니다. 그분은 “나라가 기업을 잘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지론으로 설명하던 중에 국회의원들에게 훈계를 들었습니다. 그때 국회의원들에게 오히려 고함을 지르면서 “내가 당신들의 자식인 줄 아느냐? 이런 식으로 사람을 대할 거면 나를 왜 불렀느냐?”면서 주섬주섬 짐을 챙겨 들 때 겨우 말려서 그분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날 교수님이 SNS에 올린 글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울컥했습니다. ‘젊은이들에게 가슴으로 호소합니다’는 제목의 글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이 땅을 헬 조선이라고, 이 땅에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욕을 할 때 조부모와 부모님을 바라보아라. 너희들의 부모는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 갔다 오자마자 책가방 팽개치고 밭으로 가서 김을 매고 저녁이면 강둑에 있는 소에게 풀을 먹이고 겨울이면 어린 초등학생들이 지게를 지고 산에 가서 땔나무를 해 와야 했단다. 너희들의 할머니는 어린 딸을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말자 남의 집에 식모로 보낼 때 어떤 마음이었는 줄 아느냐? 한국에는 일자리가 없어서 독일 광산의 광부로 간호사로 일하러 갔다가 국제미아가 되기도 했고, 지금도 대학을 졸업한 후에 우리나라에 와서 온갖 고된 일을 하는 필리핀과 몽골의 젊은이들처럼 너희 부모 세대들은 그렇게 일을 했단다. 월남전에 생명을 담보로 걸고 외화를 벌었고, 지하에 세 들어 살던 단칸방에서 전세방으로 옮겨 보려고 신혼이지만 뜨거운 중동지방에 가서 고된 일을 했단다… 그 교수님은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금수저여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라고 오해를 하지만, 자신은 대학 4년 내내 아르바이트해서 오히려 부모님께 용돈을 보내어 드리면서 공부를 했고, 공장을 다닐 때는 크리스마스날 외에는 쉬어본 휴일이 없었으며, 야근을 매일처럼 하면서 오늘 여기에 이르렀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스타벅스 커피, 스타크래프트 게임, 해외 배낭여행 등등을 너무 쉽게 말한다고 탄식했습니다.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닿는 글을 읽으면서 요즘 젊은이들은 정말 부모에 대한 감사를 알고 있을까? 어른들 또한 자신도 모르게 익숙해진 풍요함으로 감사를 잊은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50년 전에 비하면 우리는 상상 그 이상의 세계에 살고 있으며, 신앙의 자유 또한 얼마나 놀라운지요!

주의 기도

주의 기도

브라더 앤드류 오픈도어 설립자 우리는 예수께서 주의 기도로써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을 따라 기도할 수 있다. 나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주의 기도를 외우거나 암송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주의 기도를 모형 삼아 기도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믿는다. 예수께서 원래 그 기도를 암송하라고 하신 것은 아니다. 그는 “이같이 기도하라”고 하셨다. 에베소서 3장에서 우리는 주의 기도와 똑같은 요소가 많이 들어 있는 바울의 기도를 읽을 수 있다(엡 3:14-21). 주의 기도는 이와 같은 식으로 사용해야 한다. 주의 기도를 우리 중보기도의 모형으로 사용하면(마 6:9-13), 우리는 막연한 기도 태도에서 벗어나 매우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기도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도의 구성과 구체화를 위하여 주의 기도를 살펴보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에서 시작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다. 때때로 나는 “우리 아버지”로 기도를 시작하여 두 시간 동안 다른 기도를 하지 못하고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위해서만 기도한다. 나는 각 개인을 생각한다. 나는 그 또는 그녀와 나를 동일시한다. 나는 각 교회 또는 교파에 속한 개개인을 기억하며 그 교회와 교파를 위해 기도한다.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 나와 그들은 서로의 일부가 되는 진정한 가정을 이루게 된다. 내가, 고난을 겪고 있는 교회에 속한 이들을 위해 기도할 때, 세상은 작아진다. 나는 그들의 고통을 느끼며, 그들의 문제를 안고 씨름하며, 나의 기도는 강력하고 열정적으로 일어나 그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고난당하고 있는 교회의 신자는 내가 특별한 부담을 갖고 기도하는 제목이다. 나의 중보기도는 대부분 그들을 위한 것이다. 나는 수용소와 감옥이 어떤 곳인지 알게 되었으며, 비밀 교회를 방문했으며, 폭력으로 파괴된 집에서 잠도 잤다. 나는 시체와 몸이 잘려나간 아기들과 굶주림과 고통을 보았다. 나는 다음과 같이 기도할 수 있다. “아버지, 당신은 나의 아버지이실 뿐 아니라 그들의 아버지이시기도 합니다. 이렇게 비참하게 고통 받는 당신의 자녀들을 위하여 제가 좀 더 일할 길을 보여 주십시오. 저에게 자는 교회를 깨울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그리하여 우리 모두, 고립되어 상해를 당하며 고통을 겪고 있는 형제자매들을 돌보라는, 당신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일단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하면 점점 더 구체적으로 집중하여 기도하게 되고, 더 효과적으로 기도하게 된다. 이러한 일 모두 우리가 “우리 아버지시여”하고 기도하기 시작할 때 생기는 일이다. 그런 다음 이제 주의 기도를 한 구절씩 살펴볼 수 있다. 각 구절을 말하면서 우리는 하나님께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라고 물어볼 수 있다. 우리가 “하늘에 계신”이라고 기도하며,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말할 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나라가 임하옵시며"라고 말하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심오한 말이며 기도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기도에는 불완전하고, 병들고, 불구가 되고, 죄 있는 모든 것 속에 변화가 일어나기를 구하는 뜻이 포함된다. 이 구절에 기초하여 우리는 이 사람, 이 상황, 이 나라, 이 부족, 이 교회, 이 정부가 변화되어, 정의와 의와 온전한 마음과 몸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이 근본 방침인 하나님 나라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도록 기도할 수 있다. (오픈도어 제공)

참회록을 써야 합니다.

이정우 목사의 목회칼럼

참회록을 써야 합니다.

이정우목사 안동서부교회 성 어거스틴이 참회록을 쓰게 된 일화가 있습니다. 하루는 그가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서 천국 문 앞에 도착한 그를 천사가 가로막으며 물었습니다. “너는 누구냐?” “저는 그리스도인 어거스틴입니다.” 그러자 천사는 그를 유심히 살펴보고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아니다. 너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너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교훈이 아니라 철학자 키케로의 사상으로 가득 찼구나.” 그렇게 그는 천국 문 앞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는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 통곡하며 회개했습니다. 자신을 깊이 성찰하는 기회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지나온 삶의 여정들을 돌아보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고 자신은 어떤 존재인지, 또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고 어떻게 돌이켰는지를 아주 소상하고 솔직하게 글로 남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 어거스틴의 ‘참회록’입니다. 성자는 참회록을 쓰고, 악인은 자서전을 쓴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서전 즉 회고록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거짓과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당하는 전직 대통령 사건의 모습을 보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대통령의 회고록을 접한 대변인은 자화자찬의 회고록이 아니라 참회록을 썼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선교 2세기를 달려가고 있는 젊은 한국 기독교는 참회록을 써야 할 모습들이 돌출되어 사회 속에 어두운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불거지는 여러 가지 문제들로 교회들의 불행한 모습으로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에 큰 부담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이미지코칭 전문가 정연아 씨는 그의 저서 ‘행복한 크리스천에겐 표정이 있다’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선한 크리스천의 이미지는 선한 얼굴에서 나온다. 한 사람의 얼굴이 그 사람의 상징이듯 크리스천의 얼굴은 곧 ‘믿음의 깊이’를 대변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얼굴이 한국교회의 믿음의 깊이를 대변한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아픕니다. 하나님의 미소로 가득한 얼굴이 바로 우리 교회의 참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의 깊이가 성도의 얼굴과 교회의 얼굴로 나타납니다. 그 얼굴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얼굴은 강력한 전도지였습니다. 주후 110년쯤 핍박과 박해를 넘어 로마제국 전역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이 일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들이 있었습니다. 첫째, 세계가 로마제국으로 통일돼 여행이 편리했습니다. 둘째, 도로가 좋았습니다. 그 길을 따라 복음이 전하여졌습니다. 셋째, 언어가 통일돼 복음전파에 도움이 됐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네 번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삶의 모범을 보여줬다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은 노예와 여성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평등을 실천했습니다.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위해 자비와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이런 삶의 방식이 생명력을 부여했고, 복음을 세계로 확장시키는 원천이 됐습니다. 로마사회에서 노예 인구의 비율은 20∼30%였습니다. 그러나 성도 중 노예의 비율은 50%였습니다. 왜 이렇게 교회 안에 노예가 많았을까요? 크리스천 주인들이 노예를 인격적으로 대했기 때문입니다. 노예들은 크리스천 주인의 사랑과 배려에 감동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 중 오네시모 같은 사람은 훗날 에베소의 감독이 될 만큼 교회는 차별 없는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았습니다. 그 결과 110년 만에 로마제국 전 지역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지난해 보냈습니다. 올해는 501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구호만 외치지 말고 성도 각자의 삶과 교회의 얼굴만 바꾸어도 교회는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 그렇다면, 오직 그리스도만을 자랑하고 자신의 삶을 깊이 성찰해 우리의 참회록을 써내려 가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 자기 자신을 내려놓으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윤형구 발행인 칼럼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윤형구 장로 (본지 발행인)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그리스도 안에 살아가는 우리는 항상 소망을 주님께 두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상황은 만만치 않을 때가 많습니다. 포기하고 싶고 주저앉고 싶을 때가 여러 번 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상황이 바울보다 더 힘들까요? 예수님보다 더 힘들까요? 바울이 남긴 위 말씀은 믿음의 훈련으로 단단해진 신앙의 선배가 남긴 권면으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용기를 얻게 됩니다. 누구나 주님 앞에 흠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힘들게 하는 상황이나 혹은 인물을 만날 때도 우리는 쉽게 남 탓을 하지는 못합니다. 먼저 나를 살핍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는 말씀이 우리를 가로막습니다. 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어떤 상황을 통해 끊임없이 나를 공격한다면, 악한 행실을 멈추지 않고 계속 우리를 벼랑으로 내몬다면 우리는 잠시 그 상황 뒤에 감추어진 영적 의미를 다뤄볼 필요가 있습니다. 악한 영은 나약하거나 영적으로 타락한 자를 도구로 사용하여 믿는 자를 공격하는 것이 주특기입니다. 그렇다면 예수의 이름으로 악한 권세를 끊어내고 불쌍한 그 사람에게도 경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그 길을 돌이키지 않으면 결국 그는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적 전쟁은 방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때로는 공격을 통해 성을 쟁취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최선의 선’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일 것입니다. 우리 앞에는 각자 믿음의 분량에 따라 감당해야 할 시련과 연단의 무거운 덩어리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무고히 비난을 당하고 내어 쫓김을 당하고 세상 앞에서 수치를 당하기도 합니다. 억울한 마음으로 창자가 끊어질 듯한 고통을 당하겠지요.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때가 이르면 선과 악이 구별되고 하나님이 모든 수치를 갚아주시고 명예를 회복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 안에 소망을 두고 선한 길을 끝까지 걸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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