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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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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etter Country(본향)

목회칼럼-이정우 목사

A Better Country(본향)

목회칼럼 A Better Country(본향) 이정우목사 안동서부교회 명절이 되면 사람들은 누구나 고향을 그리워하며 고향을 찾아갑니다. 올해도 많은 사람들이 추석을 맞이하여 고향을 찾아 대이동을 하였습니다. 고향 가는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하고 많은 시간이 걸려도 고향을 찾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고향을 그리워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모든 인간이 잃어버린 낙원 즉 에덴동산을 그리워하듯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그리워합니다. 1. 사람에게는 고향이 있습니다. 고향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가 태어나 자라난 곳”입니다. 고향을 다른 말로는 본향(本鄕)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영어로 Native place 또는 Home town이라고 합니다. 사람에게는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로 “네 고향이 어디냐?”고 물을 때 “Where do you come from?”이라고 말합니다. 즉 “당신은 어디서 온 사람입니까?”라는 뜻입니다. 즉 사람은 어디서 태어나서 온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육신의 고향과 영혼의 고향이 있음을 말합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육신은 흙으로 만드셨고 영혼은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인간을 창조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최초의 인간은 아담입니다. 아담이라는 뜻은 ‘사람’ 또는 ‘흙’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육신은 본래의 고향인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영어로 “Return to his old home” 또는 “Return to his native home” 즉 “옛날 집 또는 본래의 집으로 돌아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는 것은 영원한 고향을 찾는 연습과 같고 고향을 찾아가면서 인생의 근본적인 교훈을 깨닫도록 한 것입니다. 2. 사람은 나그네 인생으로 삽니다. 성경의 인물들이 죽었을 때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다가 갔다고 했습니다.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다”고 하였습니다.(히11:13) 그러므로 우리는 한평생 나그네로 내 인생을 살다 가는 것입니다. 나그네를 영어로는 “stranger” 또는 “exile”이라고 합니다. ‘exile’이라는 단어의 뜻은 ‘타향살이’, ‘유배생활’, ‘유랑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신앙적인 용어로는 ‘순례자’라는 뜻을 가진 ‘Pilgrim’입니다. 즉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본향인 천국을 향해 가는 순례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이 세상에서 외국인으로 나그네 인생을 살다가 본향인 저 천국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이 세상이 영원한 본국인 줄 알고 세상에만 연연하다가 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거류민이요 나그네인 길손일 뿐입니다. 3. 사람은 본향을 사모하며 삽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영원한 본향을 향하여 달려가는 존재입니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했습니다.(히11:16) 마치 자동차나 비행기가 가는 목적지가 있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길도 마지막 종착지인 본향을 향하여 달려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본향은 ‘더 나은 본향’입니다. 그래서 ‘더 나은 본향’을 영어성경에는 ‘Better country’ 라고 하였습니다. 즉 ‘더 나은 나라’라는 뜻입니다. 나그네 삶을 사는 이 세상과 비교가 안 되는 더 나은 본향입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천국이 있습니다.

산티아고에 잘 다녀왔습니다.

영성칼럼-천석길 목사

산티아고에 잘 다녀왔습니다.

영성 칼럼 산티아고에 잘 다녀왔습니다. 천석길목사 구미남교회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말은 스페인의 산티아고에 있는 성당을 향하는 9개의 길을 말합니다. 그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코스는 프랑스에서 출발하여 피레네 산맥을 넘어서 가는 800km의 길입니다. 이번에 천 목사가 보름간 그 절반을 걸어서 다녀온 길입니다. 첫날, 해발 1650미터의 피레네 산맥을 넘을 것인가? 아니면 우회해서 걷기 쉬운 평탄한 길을 갈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데 당연히 산을 넘어서 걷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동이 트기 전 이른 새벽에 침낭, 옷, 세면도구가 들어있는 배낭을 메고 그 산에 올랐습니다. 산이 높았기에 일교차가 있었고, 산이 높아질수록 점점 힘에 부치기도 했습니다. 정상쯤에 이르러서는 강풍으로 인해서 앞을 향해서 걷기가 힘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 산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힘든 코스에 왜 쉬는 집이 없을까?’ ‘아니 이러다 중간에서 퍼지면 어떻게 하려고 이런 무지막지한 길을 걷게 할까?’(실제로 걷다가 죽는 사람들도 있답니다)라는 생각과 함께 걸었습니다. 그렇게 걷기 시작한 며칠 후에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그 산을 넘어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입니다. 처음부터 힘든 산을 넘어온 사람들은 앞으로 만나는 작은 산들의 힘듦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산을 넘지 않고 우회해서 온 사람들은 중간 중간에 자꾸만 우회할 길을 찾거나 아예 힘들어서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800키로나 되는 그 먼 길에 왜 첫날부터 가장 힘든 산을 넘게 했을까?’ ‘왜 거기에 산이 있었을까?’ 그 길을 걸으면서 거기에 산이 있었던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아쉬운 것은 그때 강풍이 몰아치던 그 지점이 지나고 보니 사진 찍을 곳이 많았는데 걷기에 바빠서 못 찍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 지점에서 좀 더 천천히 무언가를 생각하면서 걸었어야 했는데 걷기에만 바빠서 아무런 생각을 못 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도 우리가 해야 하는 일도 어쩌면 그 산과 같지 싶습니다. 돌아서 가면 편하겠지만 내공이 쌓이지 않을 것이고, 당당하게 맞서서 그 산을 넘으면 그다음부터는 웬만한 산을 만나도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겨날 것입니다. 그 산이 거기에 있는 이유를 지나온 뒤에 알았습니다.

단순한 거짓말?

신훈식 교장의 교육단상

단순한 거짓말?

단순한 거짓말? 신훈식 교장 상주동부초등학교 얼마 전의 일이다. 한 선생님께서 수업을 마치고 1층의 교무실로 가기 위해서 계단을 내려가던 중, 아이들 역시 쉬는 시간에 운동장에 가서 조금이라도 더 놀기 위하여 계단을 뛰어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선생님은 “얘들아~! 넘어지면 다친다. 천천히 내려와!”를 연신 반복했다.하지만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채 만 채하고는 계속 뛰어 내려왔다.그중 한 학생은 친구들의 몸통을 손으로 다다다 치면서 내려오다가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다행히도 1층 가까이 내려와서 넘어졌기에 크게 다치지는 않았고 멍이 들 정도의 타박상만 입었다. 문제는 이튿날 발생하였다. 아이의 멍든 모습을 본 부모가 학교에 찾아와서 강력하게 항의를 하며 난리를 치는 것이었다. “어떻게 선생님이 아이의 발을 그것도 계단에서 걸 수 있냐?”고 하면서…. 집에서 아이의 멍든 모습을 본 부모님이 아이에게 다그치자 그만 조심성 없이 다녔다고 혼날까 봐서 선생님이 계단에서 발을 걸어 넘어졌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물론 증인인 다른 아이들과의 삼자대면으로 거짓말이었음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들리는 말로는 학교가 아이들과 짜고서는 자기 아이에게 덮어씌웠다는 것이다. 사과하는 것도 부족할 판인데 뻔뻔한 정도가 도를 넘는다. 더더욱 슬픈 사실은 학부모에게 멱살 안 잡히고 머리채 안 잡힌 것만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자조(自嘲)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학부모교육을 할 때면 강조하는 내용이 있다. 자녀의 이야기를 100%로는 믿지 말라는 것이다. 100% 믿게 되면 큰 실수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녀의 거짓말하는 습관을 바로 잡지 못한다는 것이다. 위의 부모 역시 자기 자녀의 말만 믿고서 여러 사람을 힘들게 했음은 물론이고 이 사실을 아는 모든 이에게 일방적인 것이겠지만 부끄러움을 당했을 것이다. 집에 가서 학교 선생님에게 혼이 났다고 이야기를 하면 부모님에게 다시 혼났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격세지감(隔世之感) 밖에는 없다. 이 아이가 자라서 얼마나 무서운 인물로 성장할지가 걱정되고 두려울 뿐이다.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크든 작든 한 번쯤은 거짓말을 해보았을 것이다. 거짓말을 할 때는 나 이외는 절대 진실을 알지 못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실을 알고 있는 이는 나만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당사자인 상대방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거짓을 말하므로 죽었으나 다윗은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悔改)를 하였기에 비록 벌은 받았지만 죽음은 면할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다방과 카페의 차이를 아시나요?”라고 물으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답을 하는 이는 거의 없다. 다방은 안에서도 밖에서도 서로를 볼 수 없게끔 차단되어 있음에 반하여 카페는 서로를 볼 수 있다. 내 안의 내면도 타인이 볼 수 있게끔 개방한다면 거짓이 없는 나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숨기면 숨길수록 거짓을 만들게 될 것이며 이는 죄이다. 익명으로 말을 할 때 많은 사람은 무례하게 얘기를 한다. 하지만 실명으로 말을 하게 하면 점잖아진다. 나 이외에는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한다고 확신할 때에 숨기고 거짓을 말하게 된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고 언제든지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죄를 짓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자기의 욕심을 위해서라면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 이들이 너무나많다. 거짓말의 대가로 받는 징계가 너무 가볍기 때문이다. 학교는 물론이고 가정에서부터 교육이 무너진 것도 현실이다. 아이들을 금쪽같게만 생각하지 초달을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가벼운 징계만으로도 반듯하게 키울 수 있는 자녀와 학생을 그냥 내버려 둠으로써 구불구불하게 자라도록 둔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아니 포크레인으로도 못 막는다. 그 결과는 우리 사회가 막대한 비용과 에너지를 낭비하게 되는 다시 안아야 할 재앙이다. 세계에서 사기범죄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고 지금도 뉴스를 틀면 거짓말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 거짓말의 근원은 욕심이고 거짓말을 가볍게 생각하는 이 나라는 결국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가 될 것이 틀림없다.

윤형구 발행인 칼럼

성령의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윤형구 발행인 칼럼

발행인 칼럼 성령의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윤 형 구 장로 본지 발행인 사도바울은 마귀를 대적하는 영적 싸움에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했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 평안의 복음,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와 공격용으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육신으로 세상에 오셨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욕구와 욕망, 자신의 존재가 인정받기를 바라는 열망, 하나님의 길 보다 자신의 길을 가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육체의 욕망에 지배 당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을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결정하신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4장에서 사십일을 금식하신후에 마귀로부터 시험을 당하신다. 첫째,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 햐였느니라” 둘째, 성전 꼭대기에 올라가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지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셌째, 마귀가 또 예수님을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며 이르되‘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시니 마구;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와서 수종드니라. 육체적이요 세상적인 욕심들로 유혹하고 죄를 짓게 만드는 것은 마귀의 짓이다. 상황에 따라서 사람의 눈치나 보고 사람들의 생각들을 적용하면 마귀의 올무에 걸리기 쉽다. 성경을 많이 읽고 암기하고 생활 속에서 적용하는 삶이 영적승리의 삶이 될 것이다.

진상권 목사 칼럼

뽕나무 잎을 걸으시는 주님의 소리

진상권 목사 칼럼

말씀의 강단 뽕나무 잎을 걸으시는 주님의 소리 진상권 목사 경북하나신문 사목 / 양무리교회 담임 역대상 14장에서 우리는 다윗의 영성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사울이 죽고 다윗이 드디어 왕이 되었습니다. 두로왕 히람은 다윗을 위해 왕궁을 지어주었습니다. 다윗에게는 기라성 같은 장수들도 있었습니다. 다윗은 아내와 자녀의 복도 받았고 백성에게 높이 들림 받았습니다. 이제 그는 형통한 자의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때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쳐들어 왔습니다. 다윗은 한때 블레셋 땅에서 도움을 받았지만, 이제는 예전의 다윗이 아닙니다. 전쟁에서 충분히 이길만한 힘도 있고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 묻습니다.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치러 올라가리이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올라가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라고 말씀하신 후에 블레셋을 치러 전쟁에 나갑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겸손과 순종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물로 쪼갬같이 내 손으로 내 대적을 흩으셨다”고 한 다윗의 고백처럼 다윗을 승리로 이끄셨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형통할 때, 영향력이 있을 때도 주님을 의지합니까?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관계는 다윗왕처럼 당연한 것, 작은 것 하나까지라도 “묻는” 관계입니까? 예수님은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요5:30)라고 했습니다. 우리 안에도 주님이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생각대로 너무 많이 행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요? 본문 13절을 보면 블레셋 사람들이 또 쳐들어옵니다. 같은 골짜기입니다. 지난번에도 이겼으니 이번에는 더욱 당연히 바로 전쟁을 치르면 됩니다. 그러나 다윗은 또 하나님께 묻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님이 정반대의 말씀을 하십니다. 마주 올라가지 말고 뒤로 돌아가 기습하되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나가서 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수천 명이 있는 전쟁터인데, 다윗은 이제 가만히 엎드려 뽕나무 잎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오시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온 천지에 충만하시지만, 특별히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자에게 개인적으로 찾아오기도 하십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에게 능력을 베푸신다”(대하16:9)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전심으로 주를 찾고 의지하면 하나님께 발견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그것이 정반대의 말씀일지라도 주님의 임재 안에 있으면 우리는 승리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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