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목)

  • 맑음속초15.9℃
  • 구름많음11.9℃
  • 흐림철원11.4℃
  • 흐림동두천11.0℃
  • 흐림파주10.5℃
  • 맑음대관령8.6℃
  • 구름많음춘천10.9℃
  • 흐림백령도9.6℃
  • 맑음북강릉10.9℃
  • 맑음강릉15.4℃
  • 맑음동해11.3℃
  • 흐림서울10.9℃
  • 흐림인천9.4℃
  • 흐림원주11.3℃
  • 맑음울릉도12.0℃
  • 흐림수원10.2℃
  • 흐림영월11.7℃
  • 흐림충주10.6℃
  • 흐림서산10.2℃
  • 맑음울진13.0℃
  • 맑음청주10.6℃
  • 맑음대전10.0℃
  • 맑음추풍령10.1℃
  • 맑음안동10.5℃
  • 맑음상주12.1℃
  • 맑음포항13.0℃
  • 흐림군산11.2℃
  • 맑음대구12.4℃
  • 흐림전주11.2℃
  • 맑음울산11.4℃
  • 맑음창원12.9℃
  • 맑음광주10.0℃
  • 맑음부산13.5℃
  • 맑음통영11.7℃
  • 맑음목포10.7℃
  • 맑음여수12.4℃
  • 맑음흑산도10.1℃
  • 맑음완도10.7℃
  • 흐림고창8.9℃
  • 맑음순천9.7℃
  • 흐림홍성(예)10.7℃
  • 맑음9.0℃
  • 맑음제주12.0℃
  • 구름조금고산12.7℃
  • 맑음성산10.9℃
  • 맑음서귀포12.8℃
  • 맑음진주8.5℃
  • 흐림강화10.4℃
  • 흐림양평11.8℃
  • 흐림이천10.7℃
  • 흐림인제13.0℃
  • 구름많음홍천11.1℃
  • 맑음태백9.7℃
  • 흐림정선군11.8℃
  • 흐림제천10.1℃
  • 흐림보은11.5℃
  • 흐림천안10.8℃
  • 흐림보령10.1℃
  • 맑음부여7.9℃
  • 맑음금산8.5℃
  • 맑음9.8℃
  • 맑음부안8.8℃
  • 맑음임실6.8℃
  • 흐림정읍8.0℃
  • 맑음남원7.8℃
  • 맑음장수6.2℃
  • 흐림고창군8.6℃
  • 흐림영광군9.2℃
  • 맑음김해시12.0℃
  • 맑음순창군7.5℃
  • 맑음북창원11.9℃
  • 맑음양산시10.3℃
  • 맑음보성군10.3℃
  • 맑음강진군9.5℃
  • 맑음장흥8.4℃
  • 흐림해남10.0℃
  • 맑음고흥11.3℃
  • 맑음의령군8.3℃
  • 맑음함양군9.0℃
  • 맑음광양시10.0℃
  • 맑음진도군10.6℃
  • 맑음봉화11.4℃
  • 맑음영주11.3℃
  • 맑음문경10.5℃
  • 맑음청송군8.4℃
  • 맑음영덕13.0℃
  • 맑음의성7.5℃
  • 맑음구미11.3℃
  • 맑음영천12.1℃
  • 맑음경주시8.7℃
  • 맑음거창6.5℃
  • 맑음합천8.9℃
  • 맑음밀양9.6℃
  • 맑음산청7.5℃
  • 맑음거제10.4℃
  • 맑음남해11.0℃
  • 맑음10.3℃
기상청 제공
하나님의 시간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나님의 시간

이정우 목사의 목회칼럼

안동서부교회 이정우 담임목사.jpg

이정우 목사

안동서부교회

 

 

‘하나님은 부서진 것들을 사용하신다’는 히브리 격언이 있습니다. 단단한 곡식은 부서져야 빵을 만들 수 있고, 포도주도 향수도 잘게 부서짐을 통하여 만들어집니다. 사람도 원숙한 인격과 신앙을 갖추려면 반드시 부서지는 과정을 밟아야 합니다. 부서짐의 강도가 성숙의 크기이기 때문입니다.

 

가을 추수 때가 되면 옛날 시골에서는 도리깨질 하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거두어들인 곡식을 앞마당에 펼쳐놓고 사정없이 도리깨로 후려칩니다. 농부는 곡식이 미워서 때리는 것이 아닙니다. 곡식의 껍데기를 벗겨내기 위함입니다. 알곡과 쭉정이를 가려내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농부이신 하나님도 우리에게 도리깨질을 하실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아프다고 불평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도리깨질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나 도리깨질은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입니다. 왜냐하면, 부서져야 사용하시고 부서진 만큼 쓰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장간의 대장장이도 일상적인 연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달구어진 쇠를 적당히 두들겨 댑니다. 그러나 특별하고 귀한 도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구슬땀을 흘러가며 한나절을 두들기고 또 두들깁니다. 대장장이의 두들기는 소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우리를 더 귀하게 쓰시려고 우리의 신음소리도 외면하신 채 두드리고, 깨뜨리고, 상하게 하십니다. 수치를 당하고, 초라하고 억울하게 하여 결국은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가게 하십니다.

 

기독교는 죽음을 통하여 살고, 버림을 통하여 얻고, 부서짐을 통하여 알곡 되고, 깨어짐을 통하여 쓰임 받고, 포기함으로 소유하게 됩니다. 바울 사도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 하루만 죽어서는 안 됩니다. 날마다 주님과 함께 죽고, 부서지고, 깨어져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이 힘들고 고단한 이유는 우리의 고백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가 아니라 “나는 날마다 사노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도 너무 하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제는 좀 그만하셔도 되지 않느냐?”고 저항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하심’의 때는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정한 것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애굽의 학문에 능했던 모세는 40년의 세월이 필요했으며, 꾀 많고 권모술수가 능했던 야곱에게는 21년의 세월이, 꿈을 자랑했던 요셉에게는 13년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기에 편한 시간까지, 즉 자기가 죽는 시간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기다림의 시간입니다. 그리고 기다림은 또 다른 영적 능력입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12:6,11)

관련기사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