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08 (토)

  • 구름조금속초9.6℃
  • 구름많음5.8℃
  • 맑음철원6.7℃
  • 맑음동두천7.0℃
  • 맑음파주7.1℃
  • 구름많음대관령5.8℃
  • 구름많음춘천7.8℃
  • 맑음백령도11.3℃
  • 구름많음북강릉10.4℃
  • 구름많음강릉11.4℃
  • 맑음동해11.7℃
  • 구름조금서울11.2℃
  • 구름조금인천12.0℃
  • 맑음원주8.5℃
  • 맑음울릉도12.2℃
  • 맑음수원11.6℃
  • 구름많음영월8.7℃
  • 맑음충주8.3℃
  • 맑음서산8.1℃
  • 구름많음울진11.3℃
  • 맑음청주11.6℃
  • 맑음대전9.8℃
  • 맑음추풍령7.3℃
  • 박무안동8.4℃
  • 구름많음상주10.0℃
  • 맑음포항13.5℃
  • 맑음군산11.1℃
  • 맑음대구9.5℃
  • 맑음전주10.7℃
  • 구름조금울산13.7℃
  • 구름많음창원13.5℃
  • 구름조금광주12.4℃
  • 구름조금부산14.4℃
  • 구름많음통영14.4℃
  • 구름많음목포13.0℃
  • 구름많음여수15.1℃
  • 구름많음흑산도15.4℃
  • 흐림완도15.4℃
  • 맑음고창9.4℃
  • 구름많음순천8.1℃
  • 맑음홍성(예)7.2℃
  • 맑음8.9℃
  • 비제주15.6℃
  • 흐림고산16.6℃
  • 흐림성산16.1℃
  • 흐림서귀포17.0℃
  • 구름많음진주10.3℃
  • 맑음강화7.4℃
  • 구름많음양평8.9℃
  • 맑음이천8.2℃
  • 흐림인제8.7℃
  • 구름많음홍천8.6℃
  • 흐림태백7.4℃
  • 흐림정선군8.3℃
  • 맑음제천5.4℃
  • 맑음보은8.0℃
  • 맑음천안9.0℃
  • 맑음보령8.8℃
  • 맑음부여9.1℃
  • 맑음금산7.1℃
  • 맑음10.1℃
  • 맑음부안9.2℃
  • 맑음임실6.8℃
  • 맑음정읍8.0℃
  • 맑음남원9.4℃
  • 구름많음장수6.1℃
  • 맑음고창군8.8℃
  • 맑음영광군9.3℃
  • 구름많음김해시13.2℃
  • 구름조금순창군8.8℃
  • 구름조금북창원13.3℃
  • 구름조금양산시14.8℃
  • 구름많음보성군11.0℃
  • 구름많음강진군12.3℃
  • 구름많음장흥11.7℃
  • 흐림해남11.9℃
  • 구름많음고흥13.7℃
  • 구름조금의령군11.1℃
  • 맑음함양군7.1℃
  • 구름많음광양시14.3℃
  • 흐림진도군14.0℃
  • 흐림봉화5.7℃
  • 맑음영주7.0℃
  • 맑음문경8.5℃
  • 맑음청송군6.7℃
  • 구름조금영덕9.5℃
  • 맑음의성7.1℃
  • 맑음구미8.8℃
  • 맑음영천7.3℃
  • 맑음경주시8.5℃
  • 맑음거창7.4℃
  • 맑음합천9.3℃
  • 구름조금밀양12.9℃
  • 맑음산청8.9℃
  • 구름많음거제14.4℃
  • 구름많음남해14.3℃
기상청 제공
나의 출애굽기(8)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의 출애굽기(8)

나의 출애굽기(8)

 

드보라

 

20. 자동차 사고에서 극적으로 살아나다

 

언니네를 기차로 가려니 한 달 넘게 걸릴 것 같아서 자동차를 얻어서 탔다. 담배 한 통을 뇌물로 찔러주고 짐을 가득 실은 써비차 위에 앉아서 갔다. 그렇게 길을 얼마나 갔을까. 외진 길에 차가 가는데 갑자기 짐들이 한쪽으로 서서히 넘어가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어 넘어간다.”하면서 막 뛰어내렸다. 그렇지만 나는 몸이 둔해서 미처 피하지 못하고 짐과 함께 넘어가 버렸고, 뒤집힌 차 아래 깔렸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었던 아찔한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다리만 차에 깔려서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다. 그 사고로 2명이나 죽었다. 경찰은 그 운전수를 잡아가고 나머지는 버리고 갔다. 우리는 비를 맞다가 다른 차를 얻어 타고 길을 이어갔다.

 

나는 먼저 친정엄마네를 갔다. 남편이 죽었다는 말에 부모님은 안타까워하면서 나를 집에서 쉬게 하셨다. 내가 친정에 있는 동안 아버지는 나에게 재혼을 권하셨다. 초소에서 일하는 홀아비 군인을 소개해 주시겠다고 했다. 나는 그래도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다. 신랑이 사망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재혼을 생각하겠느냐며 펄쩍 뛰었다. 그렇게 재혼 건으로 부모님과 다투다가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집을 뛰쳐나왔다.

 

21. 언니네 집에서 일을 시작하다

 

나는 이어서 언니네를 찾아갔다. 언니는 나를 마땅치 않게 생각했지만 내가 혼자되었다는 소리를 듣자 그래도 가족의 정으로 동생 살 궁리를 함께 해주었다. 그 당시 형부는 외화벌이 사업소에서 일했기 때문에 그 어려운 시대에도 먹고 살 수 있었다. 나는 나중에 안정되면 아이들을 데리고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일단 형부의 일을 도우면서 지냈다.

 

형부네 업체는 일이 참 많았다. 비록 남들에 비해 형편은 좋아 보였지만 형부도 수익을 내고 배정된 돈을 상납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큰 부담에 시달렸다. 우리가 하는 일은 중고 물품 여러 개를 가져다 재조립해서 완제품으로 만들어 중국에 파는 일이었다. 수지가 잘 안 맞아서 물건 사이에 골동품도 끼워서 팔기도 했다. 그렇게 1년을 지냈다. 나름 일에 적응했다 생각하는 와중에 일이 터졌다. 우리와 거래하던 중국 대방이 갑자기 연락 두절이 되어서 물건의 대금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당장 당자금 입금일이 다가오는데 만약에 입금을 못 하게 된다면 큰 봉변을 겪을 것이다. 그렇지만 북한 안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22. 형부 일을 해결하기 위해 중국으로 탈북하다

 

다들 고민하고 발만 동동 굴리는 데 나라도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형부에게 중국에 잠깐 가서 거래했던 대방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형부는 미쳤냐. 여자 혼자 어딜 가냐!”며 펄쩍 뛰었다. 그렇지만 며칠이 더 지나고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형부도 마지못해 허락했다. 그렇게 나는 탈북 아닌 탈북을 했다. 당면한 일만 제때 처리하고 오겠다고 넘어간 것이 그렇게 긴 여정이 될 줄을 당시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관련기사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