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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출애굽기(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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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출애굽기(9)

북한선교현장

드보라

 

 

26. 원통한 마음에 술을 마시기 시작하다.

 

새롭게 남편 된 사람은 내가 왔다고 동네 사람들을 다 불러 모았다. 동네잔치를 하고 난리가 났다. 나는 이 상황이 너무 황망하고 창피해서 구석에 쭈그려 앉아있었다. 잔치가 어느 정도 끝날 때쯤 그렇게 쭈그리고 있는 나를 남편의 형님과 시어머니께서 오셔서 일으켰다. 남편의 어머니는 다리를 못 쓰시고 운신을 잘하지 못한 분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감정이 복받쳐서 그분을 붙잡고 울기 시작했다. 내 운명은 왜 이리도 꼬이는지나는 왜 이곳에 와 있는지다짜고짜 나 좀 보내 달라고 울었다. 남편이라는 사람은 나를 끌어안아 주면서 앞으로 잘 해주겠다고 하는데, 죽은 남편 얼굴과 비교되면서 이 아바이 같은 사람과 어찌 살지 갑갑하기만 했다. 나를 돈을 주고 사 오기는 했지만, 그 사람이 성품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북에서 내 남편이 단오날 죽었다고 하니까 단오 때 적당한 산에 가서 제사도 지내주었다. 생각해보면 보통 심성으로는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나는 왜 마음이 없는 사람하고 살아야 하는지 원통하기만 했다.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다.

 

그 시골 마을에 또래끼리 모이는 협동조합 그루빠가 나이별로 있었는데 그중에 술 잘 먹는 조직에서 같이 술을 먹었다. 나는 원래 소주는 못 먹고 맥주만 어쩌다가 먹는 정도로 술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맑은 정신으로는 도저히 못 자서 술을 따라 마셨다. 중국 소주가 너무 독해서 한 잔 따라서 먹고는 뒤이어 냉수 한 잔 마시고 그러면서 술을 먹었다. 그렇게 항상 취해있었다.

 

27. 시어머니 병시중을 들며 시어머니에게 위로받다.

 

나는 그 집의 막내며느리였다. 시어머니도 우리와 함께 지내셨다. 시어머니는 몸이 불편해서 대소변도 누군가 받아드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바로 며느리 된 나의 몫이었다. 이렇게만 말하면 누군가는 시어머니를 섬기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괴로웠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평소 같으면 당연히 그런 상황이 너무 싫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맘에 없는 그곳 생활 중에 시어머니를 많이 의지해서 그랬는지 대소변을 받아내는 것이 할 만했다. 나는 북에 있을 때부터 노인을 좋아하고 잘 섬겼다. 남편과 내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다 보니 시어머니지만 나에게는 할머니 같았다. 나는 시어머니를 할매 할매하고 부르면서 내 이야기도 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다. 시어머니는 나를 볼 때마다 불쌍한 것너는 뭔 죄를 지었다고 이리 기구한 인생을 사느냐하시며 안타까워하셨다. 시어머니를 통해 허한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로를 얻었다.

 

당시 그 집 맏시형은 촌의 촌장이었는데 촌을 살리기 위해 돈을 벌자 해서 통나무를 배어 팔다가 법에 걸려서 감옥 생활을 했다. 몇 년 후 감옥에서 나온 시형은 어머니는 맏아들이랑 같이 있어야 한다고 시어머니를 모셔가려고 했다. 맏시형은 성격이 좀 이상해서 남을 잘 깔보고 가족 욕을 했기 때문에 가족끼리도 서로 사이가 안 좋았고 시어머니도 안 가겠다고 하셨지만 맏시형은 마을 주민들이 욕한다고 억지로 어머니를 데리고 갔다.

 

28. 남편과 불화 계속 술을 마시며 살다.

 

시어머니께서 큰 집으로 가시자 남편의 태도가 변했다. 그전에는 내가 술을 많이 먹어도 화를 내려다가 참더니 이제는 술을 먹고 오면 크게 화를 내고 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전에는 어머니 눈치를 보며 자제하던 것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나도 지지 않고 같이 화를 내고 싸웠다. 술도 계속 마셨다. 혼자서도 마시고 그루빠 사람들이 모이면 거기 가서 또 실컷 밤새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면서 현실을 잊고, 또 사람들에게 하소연하고 동정도 받고 또 술을 마셨다.

 

이렇게 함께 술을 마시면서 나의 신세 한탄을 들어주던 마을 사람들은 내 처지를 동정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북한의 실정을 욕하기도 했다. 그런데 내 딴에는 무슨 애국심인지 아니면 너무 북에서 세뇌 교육을 잘 받았던 건지 그 말에 괜히 발끈해서 일장 연설을 하곤 했다. 이 모든 사단이 바로 미제 도당과 남조선 승냥이 때문이며 김정일 장군님이 우리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밤잠 못 주무신다고 더 길길이 외쳤다. 미제 앞잡이 놈들과는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고 악다구니를 쓰며 사상 무장을 막 외치는 나의 돌변한 모습에 주민들은 내가 하도 말을 잘해서 중국에서 태어났으면 시장감이라고 놀리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부끄럽다. 출애굽기를 읽으며 하나님의 기적과 섭리로 애굽에서 탈출했지만 광야에서 애굽의 생활을 그리워하며 하나님을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며 내가 중국에 처음 왔을 때 그 철없던 모습을 떠올린다.

 

 (오픈도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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