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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출애굽기(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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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나의 출애굽기(12)

나의 출애굽기(12)

 

드보라

 

32. , 마작, 부부 싸움

 

나는 다시 시골로 돌아왔다. 남편은 방황하는 내 모습을 보고, 특히 돈 벌겠다고 가출했다가 돌아온 나를 보고 걱정되었는지 술만 마시지 말고 밖에서 사람들하고 어울리라고 돈을 조금 쥐여주었다. 그렇지만 시골 마을에 사람들이 어울려 놀만한 거리가 별달리 있었겠는가? 그저 모이면 마작을 치는 것이었다. 나도 자연스럽게 마작에 재미를 붙였다. 마작하면서 돈을 잃으면 분해서 돈을 빌려서 또 하고 또 잃고 그랬다. 그렇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작을 하고 있으면 남편은 나를 잡으러 왔다. 나는 괜히 집에 가서 또 남편과 싸웠다.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33. 위성 TV로 한국 드라마를 보다.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던 때에 우리가 자주 마작을 하던 집에 한국 위성 TV가 들어왔다. 그 집에서 마작을 놀다가 한국 드라마가 나오는 것을 봤다. 그전에도 한국 드라마가 방송이 안 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중국어 더빙이 된 방송이었다. 그렇지만 그 집의 드라마는 한국말로 방송이 나오기 때문에 너무 집중되고 몰입이 되었다. 드라마에 빠지기 시작하자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남한이 너무 부럽고 멋있었다. 북에서 알던 그런 곳이 아니었다.

 

특별히 한국 남자는 남조선 괴뢰도당을 따라 포악하고 악랄한 줄로만 알았는데 드라마에서 한국 남자는 정말 보들보들했다. 여자들을 많이 배려해주고 말도 예쁘게 하고. 드라마를 보다가 내 처지를 생각하면 기가 막혔다. ‘같은 여자로 태어났는데 누구는 이렇게 고생하고 누구는 저렇게 대우받는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드라마를 열심히 보다 보니 문득 나도 저런 이층집에서 잘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34. 북한 가족과 연락이 닿다.

 

그즈음 우리는 딸을 낳았다. 이 시골에는 학교도 제대로 없기 때문에 자식 핑계로라도 나중에 시골을 탈출할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에 우연찮게 이전에 거래하던 대방하고 연락되었다. 애가 막 2개월 되었을 때였다.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을 통해 북한의 가족까지 찾을 수 있었다. 대방에게 돈을 받지 못했던 형부는 결국 망하고 집은 이사를 해야만 했지만, 다행히 감옥까지는 가지 않고 다른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했다.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제 가족들에게 송금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가족과의 연결점을 찾았으니 정말 기쁜 일이지만 그 일로 남편과 나는 돈이 생길 때마다 싸우기가 일쑤였다. 나는 조금이라도 북의 가족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 송금하려고 했고 남편은 돈이 없다고 막았다. 나는 속상해서 남편이 미웠고 가난한 집구석이 싫었다. 그 사이 우리 시골에도 단속의 손길이 뻗쳐왔다. 하루는 밤에 공안이 와서 아기가 없는 탈북자 2명을 잡아갔다. 너무 놀라고 무서웠다. ‘시내로 가면 안전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에서는 종종 대대적으로 탈북자를 잡으러 다니는 시기가 있다. 그럴 때는 시내의 남편 친척 집에 숨어있기도 했다.

 

 

(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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