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목)

  • 맑음속초22.8℃
  • 맑음20.0℃
  • 맑음철원17.6℃
  • 맑음동두천17.0℃
  • 맑음파주15.1℃
  • 맑음대관령15.6℃
  • 맑음춘천20.0℃
  • 맑음백령도10.4℃
  • 맑음북강릉22.2℃
  • 맑음강릉24.0℃
  • 맑음동해19.9℃
  • 맑음서울18.0℃
  • 맑음인천15.1℃
  • 맑음원주19.4℃
  • 맑음울릉도15.0℃
  • 맑음수원16.2℃
  • 맑음영월19.2℃
  • 맑음충주18.7℃
  • 구름조금서산15.2℃
  • 맑음울진21.5℃
  • 맑음청주21.2℃
  • 맑음대전20.0℃
  • 맑음추풍령18.3℃
  • 맑음안동21.3℃
  • 맑음상주21.1℃
  • 맑음포항20.1℃
  • 맑음군산13.7℃
  • 황사대구23.9℃
  • 구름조금전주18.9℃
  • 맑음울산17.5℃
  • 맑음창원18.1℃
  • 구름조금광주20.1℃
  • 맑음부산16.6℃
  • 맑음통영16.2℃
  • 구름조금목포15.0℃
  • 맑음여수16.7℃
  • 구름조금흑산도12.7℃
  • 구름조금완도18.6℃
  • 구름조금고창14.2℃
  • 맑음순천18.8℃
  • 구름조금홍성(예)16.6℃
  • 맑음18.3℃
  • 구름많음제주16.9℃
  • 구름많음고산15.8℃
  • 구름많음성산16.9℃
  • 구름많음서귀포16.9℃
  • 맑음진주19.2℃
  • 맑음강화13.3℃
  • 맑음양평18.5℃
  • 맑음이천18.7℃
  • 맑음인제19.9℃
  • 맑음홍천18.2℃
  • 맑음태백17.3℃
  • 맑음정선군19.8℃
  • 맑음제천16.6℃
  • 맑음보은18.6℃
  • 맑음천안18.6℃
  • 맑음보령12.5℃
  • 맑음부여18.7℃
  • 맑음금산19.6℃
  • 맑음19.6℃
  • 구름조금부안14.1℃
  • 맑음임실19.9℃
  • 구름조금정읍15.8℃
  • 맑음남원22.0℃
  • 맑음장수17.9℃
  • 구름많음고창군15.0℃
  • 구름조금영광군14.0℃
  • 맑음김해시17.8℃
  • 맑음순창군21.7℃
  • 맑음북창원19.4℃
  • 맑음양산시19.1℃
  • 구름조금보성군17.6℃
  • 구름조금강진군19.6℃
  • 구름조금장흥19.9℃
  • 구름조금해남16.9℃
  • 구름조금고흥17.9℃
  • 맑음의령군22.2℃
  • 맑음함양군22.1℃
  • 맑음광양시18.8℃
  • 구름조금진도군15.1℃
  • 맑음봉화18.0℃
  • 맑음영주19.0℃
  • 맑음문경18.0℃
  • 맑음청송군18.2℃
  • 맑음영덕18.6℃
  • 맑음의성19.0℃
  • 맑음구미20.4℃
  • 맑음영천20.4℃
  • 맑음경주시21.4℃
  • 맑음거창21.5℃
  • 맑음합천22.7℃
  • 맑음밀양22.9℃
  • 맑음산청20.9℃
  • 맑음거제17.8℃
  • 맑음남해17.5℃
  • 맑음18.6℃
기상청 제공
주의 기도(5)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의 기도(5)

브라더 앤드류 칼럼

브라더 앤드류1.jpg

브라더 앤드류 

오픈도어 설립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6:12)

 

나는 중동에서 사는 친구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때때로 나는 대단히 특별한 그리스도인을 발견한다! 나의 방문 중에 팔레스타인 국적의 어떤 자매를 만나게 되었다.

 

그 자매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앤드류, 기독교는 나에게 매일의 헌신을 뜻합니다.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일은 원수를 용서하는 일입니다. 나와 내 형제자매들을 죽이며 고향에서 우리를 쫓아내려는 사람들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용서해야만 하지요. 나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이 문제를 높고 땀을 흘립니다. ‘하나님, 저는 저 원수들을 용서합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매일 저지르는 일을 봅니다. 시체와 고통과 피를 봅니다. 용서하려고 노력하지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하지요. ‘하나님, 용서할 수 있도록 저를 도우셔야만 합니다라고.”

 

우리는 종종 주의 기도에서 용서의 부분을 떨쳐 버릴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우리는 용서하는 것처럼 고백도 하고 생각도 한다. 하지만 사소한 원한을 품고 다니며 수년 전에 당한 모욕과 공격을 집요하게 기억하며 살아간다. 그런데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며 원한을 품고 다닌다고 해서 별로 해가 되는 것도 없다고 생각하기에 용서하는 마음이 없는 것을 가지고 씨름하며 기도하지도 않는다.

 

때론 그들이 내게 와서 용서를 빌면 기꺼이 용서해 줄 마음은 있어라고 말한다. 1800년대 초에 살았던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와 같은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그는 원수를 용서해야 한다. 하지만 원수가 교수형을 당한 후에 비로소 용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으면 우리는 물론 웃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도 같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용서해야 할 것이 있으나 용서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일을 잘못했다고 인정하기 싫어서 용서를 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우리는 죄를 인정하고 변화되는 쪽보다는 죄를 합리화하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들을 벌주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이 처벌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는 앞서 언급한 팔레스타인의 한 자매처럼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과 분노를 씻어버리려고 아주 진지하게 애쓰지 않는다면, 우리의 기도 생활은 용서하지 못하는진흙탕 속에 빠져 하나님이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를 통해서 하시려는 일을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오픈도어 제공)

관련기사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