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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에 이끌리는 공동체

편집부  /  기사입력 2019.06.21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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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 본문: 열왕기하 6장 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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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주하는 이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그 곳에 우리가 거주할 처소를 세우사이다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가라 하는지라.(왕하 6:1,2)

     

    무리가 요단에 이르러 나무를 베더니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쇠도끼가 물에 떨어진지라 이에 외쳐 이르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이니이다 하니(왕하 6:4,5)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 쇠도끼를 떠오르게 하고 이르되 너는 그것을 집으라 하니 그 사람이 손을 내밀어 그것을 집으니라.(왕하 6:6,7)

     

     

    우리는 흔히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하나님의 쓰시는 사람들에게 성령님이 임재하시고 초자연적 능력의 역사로 쓰임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에서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꾼들에게는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헌신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BC847년경 북이스라엘 땅에 있었던 일입니다.

     

    1. 하나님께서 선지학교를 세우심

     

    그 당시 선지자는 하나님 뜻을 전하는 대언자의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구약시대에 기름부음을 받는 직분으로 선지자, 제사장, 왕이 있었습니다. 그 세 직분을 세울 때는 반드시 기름 뿔에 기름을 채워서 그 사람에게 성결예식을 행하고 머리에 기름을 붓고 안수합니다. 기름은 곧 성령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자기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의 길로 가지 않도록 선지학교를 세워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선지학교는 왕하 23절 이하에 벧엘, 여리고, 요단이라는 곳에 있었는데 선지학교는 현재의 신학교와 같은 곳입니다. 그런데 선지학교에 선지자의 생도들이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이 넘쳤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생도들을 많이 보낸 것입니다.

     

    2. 엘리사의 겸손함과 생도들의 존경심

     

    엘리사는 선지학교의 지도자(선생)의 위치에 있었으며 생도들을 보살폈습니다. 그런데 아주 작은 규모였던 선지학교의 생도가 너무 많아 장소가 매우 협소해지자 생도들이 엘리사에게 요단으로 가서 그곳에 우리가 거주할 처소를 세우자고 건의하였습니다.

     

    사실 이 사회 조직으로 보면 윗사람이 지시하고 아래 사람이 따르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아래 사람의 요청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엘리사가 보인 겸손한 마음은 생도들에게 살아 있는 교육이 되었을 것입니다. 또다시 어떤 생도 하나가 엘리사에게 종들과 함께 가소서하고 요청하자 기꺼이 승낙한 것 또한 같은 마음으로 한 것입니다. 이때 생도들이 자신을 낮춰서 종이라고 말한 것은 성령이 충만한 엘리사를 하나님 다음으로 높이 받들고 따르고자 함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딤전 517절 말씀에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고 하신 말씀을 깊이 되새겨 봐야 합니다. 선지학교처럼 성령이 충만하여 가르치는 자는 항상 겸손할 것과 따르는 사람들은 존중한 마음을 가지고 서로 섬겨 나가야 할 것입니다.

     

    3. 요단에서 벌어진 기적

     

    생도 모두가 요단에 가서 처소를 세우려고 나무를 베는데 한 학생이 나무를 벨 때 쇠도끼를 물에 빠뜨렸습니다. 비싼 쇠도끼를 빌려 왔는데 그만 물에 빠졌으니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입니다하고 외치자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졌더니 쇠도끼가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생도들이 이 기적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엘리사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시는구나하고 느꼈을 것입니다. 교회 안에도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많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위기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성령께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28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는 위급한 상황에 빠진 생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기적을 베푸신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단에서 벌어진 기적은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신 하나님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 사건이었습니다.

     

    4. 기적이 믿어지는 이유

     

    쇠도끼가 물에서 올라왔다는 것을 인간의 생각과 세상 지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전 29~10절에 보면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영적인 눈이 가리워져 있기 때문에 본문의 기적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아니 쇠도끼가 어떻게 물에 떠오를 수 있단 말인가? 말도 안 돼!”하며 신화라고 여기고 부정합니다. 하지만 성령 받으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되고 그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을 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성령께서 영적인 눈을 열어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지게 하고, 또한 성경의 기적도 믿게 하는 것이지요.

     

    5. 쇠도끼가 물에 빠진 것이 오히려 은혜였다

     

    쇠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물에 들어간 것은 큰 위기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사람들 모두 어려운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생도가 즉시 엘리사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처럼 우리 모두는 그 위기 순간에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위기에서 구해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우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 어려운 일을 주시곤 합니다. 생도가 쇠도끼를 빠뜨려서 위기를 당한 것도 하나님의 뜻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일어나는 일은 우연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일을 그 섭리 가운데 주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쇠도끼가 물에 빠진 것이 오히려 은혜였던 것입니다. 만약 쇠도끼가 물에 빠지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기적을 볼 수 있었겠습니까?

     

    6. 성령 충만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일하신다

     

    하나님은 성령 충만한 엘리사 선지자를 통해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는 성령 충만한 사람으로 쓰임 받는 엘리사를 보며 생도들에게는 큰 도전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이 교회에 목자를 통해 양을 보살피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령 충만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맡기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처럼 성령 충만한 목자의 본을 따라 우리 성도들도 성령 충만을 사모하고 귀히 쓰임 받기를 하나님께 구하시길 바랍니다.

     

    (권면의 말씀)

     

    하나님은 구약 시대로부터 오늘 이 시대에까지 성령으로 역사하시고 많은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교회는 성령에 이끌리는 영적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요단에서 보여주신 기적을 믿고, 목자와 양 모두 성령 충만하여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를 통해 이 땅에 이루어지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어려움을 당할 때도 낙심하지 않고 기적을 이루시는 하나님만 온전히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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