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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 복입니다.

이정우 목사의 목회칼럼

안동서부교회 이정우 담임목사.jpg

이정우 목사

안동서부교회

    

예수를 믿고 복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그 복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복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을 이야기하지만 우리가 받아야 할 복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복입니다.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효자와 불효자가 있습니다. 효자나 불효자나 외형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효자도 불효자도 부모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그리고 효자나 불효자나 그 이름이 족보에 오릅니다. 둘 다 부모로부터 상속을 받습니다. 그러나 불효자가 받지 못하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음의 감동입니다. 효자는 부모를 보면서 마음에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리며 그 마음속에 부모의 은혜를 잊지 못하면서 늘 흠모하는 자식입니다. 그러나 불효자는 그 중심에 부모를 향한 마음의 감동이 없습니다. 부모의 은혜를 모릅니다. 그래서 불효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무엇으로 받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마음의 감동으로 받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주님을 사랑하면 은혜를 받은 자요, 사랑하지 않으면 은혜를 받지 못한 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받는 특별한 은혜는 하나님께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하늘을 보나, 땅을 보나, 세상 어디를 보든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동을 느끼는 사람들은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현대인들이 가장 받고 싶어 하는 것이 감동입니다. 감동의 사전적 의미는 깊이 느껴 마음이 움직임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느끼는 행·불행과 쾌·불쾌도 감동 때문입니다. 감동이 있으면 행복과 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향하여 감동이 없는 세대라고 하셨습니다.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11:17)라고 한탄하셨습니다. 감동이 없기는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우찌무라 간조는 하나님이 인간을 저주하신다면 질병이나 실패나 죽음 따위로 저주하시지 않고 성경을 읽어도 믿지 못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것을 믿지 못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우러나오지 않는 마음으로 저주하실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에 감동이 없는 것이 저주입니다. 그러나 감동은 은총이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감동이 있어 말씀을 깨닫게 되고, 말씀을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나고, 가슴이 벅차오르면 바로 이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찾는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무엇인가를 가진 사람,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마음에 감동되는 자를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만날 때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감동 시킨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기독교는 바로 감동의 종교입니다. 감동이 사람의 영혼을 삽니다. 감동이 십자가의 은혜 앞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중국의 석학 임어당(린위탕)이 기독교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이유를 사람들이 물었을 때 그가 한 대답은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쉽게 설명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말한 기독교의 본질은 구원의 감동이었습니다. 감동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기독교가 어떤 종교인지 성경을 많이 연구했고, 또 유교와 불교도 연구해 봤습니다. 종교를 비교해 본 결과 기독교에 구원의 감동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깊은 우물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날 살려 달라고 소리를 질렀더니 석가모니가 우물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때 그는 손가락질을 하면서 "전생에 얼마나 못되게 굴었으면 이렇게 죽게 되었느냐? 업보요, 업보"라고 하면서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하고 갔습니다. 그래서 불교를 바라보니 살 길이 없었습니다. 또 지나가는 사람에게 살려 달라고 소리를 질렀더니 이번에는 공자가 들여다보았습니다. 유교에는 내세가 없습니다. 죽으면 끝나는 것입니다. 기어이 종교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도덕적인 종교입니다. 공자가 손가락질을 하면서 "이 놈, 너 죽으려고 거기에 빠졌느냐? 빨리 나오지 못해?" 얼마나 책망을 하는지, 죽게 된 사람을 건질 생각은 않고 야단만 치고 갔습니다. 유교는 책망만 잘하는 종교입니다.

 

또 다시 지나가는 사람에게 살려달라고 했더니 예수께서 들여다보았습니다. 예수는 친히 줄을 매고 내려와서 나를 업고 다시 줄을 타고 올라가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구출해 주었습니다. 살 길은 여기에 있고, 문제 해결은 여기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의 구원관은 감동입니다. 기독교에 생명과 진리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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