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 맑음속초15.3℃
  • 맑음9.3℃
  • 맑음철원9.0℃
  • 맑음동두천9.3℃
  • 맑음파주8.3℃
  • 맑음대관령7.4℃
  • 맑음춘천10.1℃
  • 맑음백령도10.5℃
  • 맑음북강릉17.8℃
  • 맑음강릉20.3℃
  • 맑음동해16.2℃
  • 박무서울12.4℃
  • 박무인천11.9℃
  • 맑음원주12.0℃
  • 맑음울릉도17.9℃
  • 박무수원9.7℃
  • 맑음영월9.4℃
  • 구름조금충주9.5℃
  • 구름조금서산8.6℃
  • 구름조금울진15.1℃
  • 박무청주12.8℃
  • 구름많음대전11.5℃
  • 구름많음추풍령11.5℃
  • 구름많음안동10.1℃
  • 구름많음상주10.8℃
  • 구름많음포항16.3℃
  • 구름많음군산9.9℃
  • 구름많음대구13.2℃
  • 구름많음전주12.8℃
  • 구름많음울산13.5℃
  • 구름많음창원12.5℃
  • 구름많음광주13.2℃
  • 구름많음부산14.9℃
  • 구름많음통영12.3℃
  • 구름많음목포12.1℃
  • 구름많음여수14.3℃
  • 박무흑산도11.5℃
  • 흐림완도13.6℃
  • 구름많음고창9.0℃
  • 구름많음순천10.2℃
  • 박무홍성(예)9.3℃
  • 구름조금9.0℃
  • 흐림제주15.1℃
  • 흐림고산14.2℃
  • 흐림성산13.5℃
  • 흐림서귀포15.5℃
  • 구름많음진주11.1℃
  • 맑음강화9.4℃
  • 맑음양평10.5℃
  • 맑음이천10.7℃
  • 맑음인제9.2℃
  • 맑음홍천9.8℃
  • 구름조금태백7.9℃
  • 맑음정선군8.2℃
  • 맑음제천7.9℃
  • 구름많음보은9.3℃
  • 구름조금천안9.4℃
  • 구름조금보령9.7℃
  • 구름많음부여9.7℃
  • 구름많음금산9.8℃
  • 구름조금10.9℃
  • 구름많음부안10.3℃
  • 구름많음임실10.0℃
  • 구름많음정읍10.2℃
  • 구름많음남원11.7℃
  • 구름많음장수9.3℃
  • 구름많음고창군10.0℃
  • 구름많음영광군9.9℃
  • 구름많음김해시14.3℃
  • 구름많음순창군11.0℃
  • 구름많음북창원14.3℃
  • 구름많음양산시14.0℃
  • 흐림보성군13.1℃
  • 흐림강진군12.1℃
  • 흐림장흥11.6℃
  • 흐림해남10.5℃
  • 흐림고흥11.9℃
  • 구름많음의령군11.0℃
  • 구름많음함양군11.1℃
  • 흐림광양시13.6℃
  • 흐림진도군10.4℃
  • 구름조금봉화7.9℃
  • 구름조금영주8.8℃
  • 구름조금문경11.0℃
  • 구름많음청송군7.6℃
  • 구름많음영덕16.5℃
  • 구름조금의성8.8℃
  • 구름많음구미12.1℃
  • 흐림영천10.3℃
  • 구름많음경주시11.3℃
  • 구름많음거창10.4℃
  • 구름많음합천12.1℃
  • 구름많음밀양12.8℃
  • 흐림산청11.8℃
  • 구름많음거제11.8℃
  • 흐림남해13.2℃
  • 구름많음12.1℃
기상청 제공
나의 출애굽기(2)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크리스천 Q&A

나의 출애굽기(2)

나의 출애굽기(2)

 

 

드보라

 

 

  

 

5. 외할아버지에 대한 회개 기도

 

나는 한국에 왔을 때 가족 중에서 내가 처음으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남한에 와서 사는구나, 집에서 따돌림 왕따 차별받았는데 내가 드리어 쓰임 받는구나!’라고 생각했었다. 성경을 읽으면서 나는 특히 요셉 이야기에 감정이입을 많이 했다. 그리고 형제들에게 버림받았지만 결국에는 크게 되고 쓰임 받았던 요셉과 같이 하나님께서 가족들에게 사랑받지 못했던 나를 요셉과 같이 이끄신다고 믿었다. 그렇지만 모임에서 목사님이 보여주신 책 사진을 볼 때 하나님은 나를 깨우쳐 주셨다. 바로 외할아버지의 기도와 헌신이 나를 하나님께로 인도했고, 이 땅에 오게 했고, 통일의 비전을 꿈꾸게 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자는 중에 꿈인지 환상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중에 생생한 장면 하나를 보았다. 김일성 초상화를 바닥에 엎어놓고 무릎 꿇고 엎드려 예배하는 외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생생하여 나는 벌떡 잠에서 깨었다. 내 눈에서는 눈물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나는 내가 사랑받지 못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형제들에게 버림받았던 요셉인 줄 알았는데, 그리고 나중에 가족을 구원할 믿음의 첫 사람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 핍박 속에서도 기도하셨던 할아버지의 기도가 나를 살게 했다. 나야말로 외할아버지의 눈물의 기도 열매였고, 정말 큰 사랑을 받은 사람이었다. 사실 전혀 사랑받을 자격 없었던 내가, 어릴 적부터 질투와 욕심, 짜증만 부리던 자였던 내가 그 사랑을 받았다는 감동에 나는 회개와 감사의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고난 중에 가족에게도 나누지 못한 채로 그렇지만 믿음을 지키신 외할아버지를 생각하며 눈물로 고향을 위해 기도했다. 내 안에 남아있던 쓴 뿌리들이 그 눈물 속에 씻겨져 나갔다. 안타깝게도 그 당시에는 그러한 사실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6. 북한에서의 학창시절

 

그 당시 북한은 그래도 경제 사정이 괜찮았다. 어릴 적만 해도 먹고 사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김일성 수령을 신으로 받드는 북한의 교육과 사상통제 안에서 하나님을 모르고, 아니 하나님을 모욕하며 살았다. 나도 역시 김일성 수령을 민족의 어버이요 신과 같은 존재로 믿고 그렇게 살아왔다. 외할아버지의 눈물 어린 기도가 있었는지 전혀 모른 채, 사람이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임은 꿈에도 알지 못한 채 살았다. 나는 여전히 가족들은 날 미워한다 생각하며 심술을 부리면서 그렇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갔다. 집과 학교의 이중생활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항상 집에서는 말썽꾸러기, 천덕꾸러기였지만 학교에서는 공부 잘하는 상당히 성실한 학생이었다.

 

 

그 당시 학교에서는 외국어로 2개 반을 운영했다. 러시아어 반과 영어 반이었는데 나는 영어 반을 선택했었다. 그 당시에는 영어가 우리가 그토록 증오하는 미제가 사용하는 언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고 그저 영국에서 쓰는 언어라고만 알고 있었다. 배웠던 영어 발음도 영국식이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6학년 졸업이 2년 남은 4학년 때부터 시험을 보고 경연을 해서 뛰어난 학생들을 추렸다. 그리고는 그 학생들을 따로 모아서 공부를 시켰다. 북한의 학교가 여기서 말하는 비평준화 같은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학교 체면이 중요하다 보니 좋은 대학을 많이 보내려고 했다. 내가 있던 학교는 한 학년에 약 200~300명 정도 됐는데 그중에 1반 정도를 수재반으로 따로 구분을 시켰다.

 

 

7. 딸의 교육을 반대하신 아버지

 

나는 평소 좋은 학업 성적 덕분에 그 반에 들어가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집에서는 내가 공부하고 또 대학 가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아버지의 머릿속에 여자 대학생들은 집안 살림은 안 하고 입만 여물어서 남자를 깔보는그런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러시아에서 돌아오신 뒤에 배치받은 직장은 외부 출장이 잦았는데, 출장 다니시면서 여자 대학생들을 이리저리 지나칠 기회들이 많으셨다고 한다. 그렇게 요즘도 그렇지만 그 당시 아버지 세대에는 남존여비사상이 심했다. 아버지는 그래서 공부에 대해 부정적이셨고 집에서 생활 살림이나 잘하라고 하셨다. 집에서 공부를 못하게 해서 나는 숙제도 학교에서 다 해서야 귀가할 수 있었다.

 

(오픈도어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관련기사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