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1 (목)

  • 구름조금속초6.5℃
  • 구름많음1.7℃
  • 맑음철원0.5℃
  • 맑음동두천0.6℃
  • 맑음파주0.1℃
  • 구름조금대관령-0.5℃
  • 구름많음백령도9.8℃
  • 맑음북강릉6.2℃
  • 구름조금강릉7.1℃
  • 구름조금동해6.8℃
  • 맑음서울5.0℃
  • 맑음인천5.6℃
  • 맑음원주2.5℃
  • 구름많음울릉도10.1℃
  • 박무수원4.4℃
  • 흐림영월3.5℃
  • 구름많음충주3.4℃
  • 맑음서산2.3℃
  • 구름조금울진6.2℃
  • 박무청주5.0℃
  • 박무대전4.2℃
  • 맑음추풍령0.3℃
  • 안개안동4.4℃
  • 구름많음상주1.8℃
  • 구름많음포항8.7℃
  • 구름조금군산4.9℃
  • 구름많음대구6.5℃
  • 구름조금전주5.3℃
  • 구름조금울산9.6℃
  • 구름많음창원9.5℃
  • 구름많음광주6.8℃
  • 비부산12.2℃
  • 흐림통영12.4℃
  • 구름많음목포9.2℃
  • 흐림여수11.9℃
  • 구름많음흑산도13.6℃
  • 구름많음완도10.5℃
  • 구름많음고창4.1℃
  • 구름많음순천4.3℃
  • 안개홍성(예)1.3℃
  • 흐림제주14.2℃
  • 흐림고산14.2℃
  • 구름많음성산12.9℃
  • 흐림서귀포14.0℃
  • 흐림진주6.5℃
  • 구름조금강화1.3℃
  • 흐림양평4.3℃
  • 흐림이천1.8℃
  • 구름많음인제3.0℃
  • 흐림홍천2.4℃
  • 맑음태백-0.4℃
  • 흐림정선군4.7℃
  • 구름조금제천-0.1℃
  • 흐림보은0.4℃
  • 구름조금천안1.1℃
  • 맑음보령5.2℃
  • 구름조금부여3.0℃
  • 구름많음금산3.7℃
  • 흐림4.9℃
  • 구름많음부안5.4℃
  • 구름많음임실2.2℃
  • 구름많음정읍5.1℃
  • 구름많음남원3.1℃
  • 구름많음장수0.5℃
  • 구름많음고창군5.4℃
  • 구름많음영광군5.6℃
  • 흐림김해시9.8℃
  • 흐림순창군3.1℃
  • 흐림북창원9.5℃
  • 흐림양산시11.6℃
  • 구름많음보성군8.1℃
  • 구름많음강진군6.8℃
  • 구름많음장흥5.3℃
  • 흐림해남5.2℃
  • 구름많음고흥5.2℃
  • 흐림의령군5.3℃
  • 흐림함양군2.0℃
  • 흐림광양시8.2℃
  • 구름많음진도군8.0℃
  • 구름조금봉화-0.9℃
  • 맑음영주1.9℃
  • 맑음문경1.8℃
  • 흐림청송군3.4℃
  • 구름조금영덕6.7℃
  • 흐림의성3.2℃
  • 구름조금구미3.9℃
  • 구름조금영천3.9℃
  • 구름많음경주시6.2℃
  • 구름많음거창1.6℃
  • 흐림합천4.7℃
  • 구름많음밀양7.0℃
  • 흐림산청3.0℃
  • 흐림거제11.3℃
  • 흐림남해10.1℃
기상청 제공
나의 출애굽기(13)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의 출애굽기(13)

나의 출애굽기(13)

 

드보라

 

35. 공안이 두려워서 한국행을 결심하다.

 

그러던 중에 전에 아는 아주머니께서 나에게 남한행을 권유하셨다. 하도 분위기가 뒤숭숭하고 언제 잡힐지 모르니 한국행이 어떠냐는 것이었다. 나도 불안에 떠는 차에 드라마를 통해 본 남한의 모습도 생각나면서 남한행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전에는 남한에 가기는커녕 남한 사람도 안 만나려고 했던 내 모습을 생각한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변화였다. 그렇게 한국행을 결심하고 수소문을 해서 어떤 브로커와 연결이 되었다. 아직 어린 딸아이가 걱정되었지만 일단 내가 한국에 가기만 하면 거기서 돈을 쓰면 아이는 데려올 수 있다고 해서 결정을 했다.

 

그런데 평소에는 맡겨도 칭얼대지 않던 아이가 이번에는 그렇게 많이 울었다. 아이에게 시장 다녀오겠다고 달랬지만 그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왠지 이전에 북에서 놓고 온, 나를 배웅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문득 생각이 났다. 그렇지만 나는 애써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며 불안감을 눌러 담았다.

 

36. 올가미에 걸려 공안에 붙잡히다.

 

어쨌든 남한에 가면 아이도 다시 데려오고 돈을 벌어 북에 송금도 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불안감을 억누르며 약속 장소로 왔다. 아직 브로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저쪽에서 한 남자가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왔다. “남한 가시는 거죠?” 나는 이 사람이구나 싶어서 , 맞습니다.” 하고는 이제 어떻게 하면 되냐는 질문을 이어서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찰나의 순간에 내 주변 공기가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면서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남자는 자신의 공안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주위를 이미 몇몇 사복 입은 공안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올가미였다. 나는 결국 공안에 붙잡히고 말았다. 꿈꾸던 남한에서의 생활은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말았다.

 

37. 공안국에서 갇혀 조사를 받다.

 

공안에게 붙잡히는 순간에 나는 두고 온 딸이 생각나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떻게 해서든 이 상황을 벗어나야겠다는 절박함을 가지고 나는 막무가내로 잡아가는 공안에게 사정하기 시작했다. “나 잠깐 할 말 있소. 우리 딸이 지금 막 돌이 지난 갓난아이라 아직 젖도 떼지 못했소. 나 좀 보내주시오.” 그렇지만 공안은 매정하게 무조건 조사부터 받으라고 말했다. 형편이 어려워 돈 벌러 나온 거라고 계속 울면서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런 울부짖음은 통하지 않았다. 조사관은 나를 구류장에 집어넣었다.

 

구류장에 들어가니 그곳에는 중국 여성들이 나와는 다른 죄목으로 갇혀있었다. 구류장에 있던 사람들은 젊은 조선 처자가 여기 왜 왔는지 나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면서 하염없이 울었다. 내가 하도 울기만 하니까 구류장에 계신 분들이 너무 걱정하지 말라 하면서 5, 10원씩 돈을 모아서 줬다. 그때 당시 나는 한국에 넘어갈 생각으로 집에서 추수하고 번 돈 1,500원을 숨겨온 상태였기에 구류장 언니들이 주는 돈이 그렇게 큰 도움은 아니었지만 많은 격려가 되었다.

 

(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관련기사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