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구름많음속초13.4℃
  • 비6.0℃
  • 흐림철원8.1℃
  • 흐림동두천8.6℃
  • 구름많음파주11.1℃
  • 구름많음대관령6.2℃
  • 흐림춘천6.9℃
  • 맑음백령도8.2℃
  • 황사북강릉14.1℃
  • 구름많음강릉15.9℃
  • 구름조금동해16.3℃
  • 흐림서울9.8℃
  • 흐림인천9.0℃
  • 흐림원주8.2℃
  • 황사울릉도12.2℃
  • 흐림수원10.0℃
  • 흐림영월10.7℃
  • 흐림충주12.8℃
  • 흐림서산10.7℃
  • 구름조금울진18.1℃
  • 박무청주13.0℃
  • 흐림대전13.5℃
  • 흐림추풍령12.3℃
  • 황사안동15.0℃
  • 흐림상주14.6℃
  • 황사포항20.8℃
  • 흐림군산12.2℃
  • 황사대구19.9℃
  • 황사전주14.3℃
  • 황사울산18.4℃
  • 황사창원17.0℃
  • 황사광주14.3℃
  • 황사부산16.0℃
  • 구름많음통영15.0℃
  • 황사목포13.8℃
  • 황사여수14.6℃
  • 맑음흑산도15.8℃
  • 흐림완도14.5℃
  • 흐림고창13.5℃
  • 흐림순천14.9℃
  • 박무홍성(예)11.1℃
  • 흐림11.9℃
  • 맑음제주21.7℃
  • 구름많음고산13.0℃
  • 맑음성산17.4℃
  • 흐림서귀포15.1℃
  • 구름많음진주16.9℃
  • 흐림강화10.6℃
  • 흐림양평7.8℃
  • 흐림이천9.7℃
  • 흐림인제7.6℃
  • 흐림홍천8.0℃
  • 흐림태백10.1℃
  • 흐림정선군8.3℃
  • 흐림제천10.0℃
  • 흐림보은12.2℃
  • 흐림천안12.5℃
  • 흐림보령10.3℃
  • 흐림부여12.6℃
  • 흐림금산12.9℃
  • 흐림12.4℃
  • 흐림부안14.9℃
  • 흐림임실12.9℃
  • 흐림정읍13.7℃
  • 흐림남원14.3℃
  • 흐림장수11.0℃
  • 흐림고창군13.5℃
  • 흐림영광군14.0℃
  • 맑음김해시16.6℃
  • 흐림순창군13.8℃
  • 구름조금북창원17.4℃
  • 맑음양산시18.0℃
  • 흐림보성군16.1℃
  • 흐림강진군15.3℃
  • 흐림장흥15.0℃
  • 흐림해남14.0℃
  • 구름많음고흥15.8℃
  • 맑음의령군18.0℃
  • 흐림함양군15.3℃
  • 구름많음광양시18.1℃
  • 흐림진도군14.8℃
  • 흐림봉화12.4℃
  • 흐림영주14.0℃
  • 흐림문경13.7℃
  • 구름많음청송군16.6℃
  • 맑음영덕20.0℃
  • 흐림의성17.5℃
  • 구름많음구미17.9℃
  • 구름많음영천18.5℃
  • 맑음경주시19.9℃
  • 흐림거창14.4℃
  • 흐림합천17.6℃
  • 맑음밀양18.3℃
  • 구름많음산청18.0℃
  • 구름조금거제15.8℃
  • 구름많음남해16.3℃
  • 구름조금17.2℃
기상청 제공
나의 출애굽기(13)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진상권 목사 칼럼

나의 출애굽기(13)

나의 출애굽기(13)

 

드보라

 

35. 공안이 두려워서 한국행을 결심하다.

 

그러던 중에 전에 아는 아주머니께서 나에게 남한행을 권유하셨다. 하도 분위기가 뒤숭숭하고 언제 잡힐지 모르니 한국행이 어떠냐는 것이었다. 나도 불안에 떠는 차에 드라마를 통해 본 남한의 모습도 생각나면서 남한행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전에는 남한에 가기는커녕 남한 사람도 안 만나려고 했던 내 모습을 생각한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변화였다. 그렇게 한국행을 결심하고 수소문을 해서 어떤 브로커와 연결이 되었다. 아직 어린 딸아이가 걱정되었지만 일단 내가 한국에 가기만 하면 거기서 돈을 쓰면 아이는 데려올 수 있다고 해서 결정을 했다.

 

그런데 평소에는 맡겨도 칭얼대지 않던 아이가 이번에는 그렇게 많이 울었다. 아이에게 시장 다녀오겠다고 달랬지만 그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왠지 이전에 북에서 놓고 온, 나를 배웅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문득 생각이 났다. 그렇지만 나는 애써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며 불안감을 눌러 담았다.

 

36. 올가미에 걸려 공안에 붙잡히다.

 

어쨌든 남한에 가면 아이도 다시 데려오고 돈을 벌어 북에 송금도 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불안감을 억누르며 약속 장소로 왔다. 아직 브로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저쪽에서 한 남자가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왔다. “남한 가시는 거죠?” 나는 이 사람이구나 싶어서 , 맞습니다.” 하고는 이제 어떻게 하면 되냐는 질문을 이어서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찰나의 순간에 내 주변 공기가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면서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남자는 자신의 공안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주위를 이미 몇몇 사복 입은 공안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올가미였다. 나는 결국 공안에 붙잡히고 말았다. 꿈꾸던 남한에서의 생활은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말았다.

 

37. 공안국에서 갇혀 조사를 받다.

 

공안에게 붙잡히는 순간에 나는 두고 온 딸이 생각나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떻게 해서든 이 상황을 벗어나야겠다는 절박함을 가지고 나는 막무가내로 잡아가는 공안에게 사정하기 시작했다. “나 잠깐 할 말 있소. 우리 딸이 지금 막 돌이 지난 갓난아이라 아직 젖도 떼지 못했소. 나 좀 보내주시오.” 그렇지만 공안은 매정하게 무조건 조사부터 받으라고 말했다. 형편이 어려워 돈 벌러 나온 거라고 계속 울면서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런 울부짖음은 통하지 않았다. 조사관은 나를 구류장에 집어넣었다.

 

구류장에 들어가니 그곳에는 중국 여성들이 나와는 다른 죄목으로 갇혀있었다. 구류장에 있던 사람들은 젊은 조선 처자가 여기 왜 왔는지 나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면서 하염없이 울었다. 내가 하도 울기만 하니까 구류장에 계신 분들이 너무 걱정하지 말라 하면서 5, 10원씩 돈을 모아서 줬다. 그때 당시 나는 한국에 넘어갈 생각으로 집에서 추수하고 번 돈 1,500원을 숨겨온 상태였기에 구류장 언니들이 주는 돈이 그렇게 큰 도움은 아니었지만 많은 격려가 되었다.

 

(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관련기사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