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토)

  • 구름많음속초11.9℃
  • 흐림12.8℃
  • 흐림철원11.8℃
  • 흐림동두천12.8℃
  • 흐림파주11.6℃
  • 흐림대관령8.5℃
  • 흐림춘천13.3℃
  • 흐림백령도11.4℃
  • 흐림북강릉12.6℃
  • 흐림강릉13.6℃
  • 구름많음동해12.9℃
  • 흐림서울15.6℃
  • 흐림인천15.0℃
  • 흐림원주16.3℃
  • 안개울릉도11.7℃
  • 흐림수원13.7℃
  • 흐림영월13.1℃
  • 구름많음충주13.8℃
  • 흐림서산12.7℃
  • 흐림울진12.8℃
  • 흐림청주17.1℃
  • 흐림대전14.8℃
  • 흐림추풍령13.4℃
  • 흐림안동15.0℃
  • 흐림상주15.8℃
  • 흐림포항16.3℃
  • 흐림군산13.5℃
  • 흐림대구17.4℃
  • 흐림전주16.8℃
  • 황사울산16.2℃
  • 흐림창원14.7℃
  • 흐림광주17.6℃
  • 황사부산17.9℃
  • 흐림통영14.8℃
  • 흐림목포16.6℃
  • 흐림여수15.7℃
  • 흐림흑산도14.9℃
  • 흐림완도15.4℃
  • 흐림고창13.4℃
  • 흐림순천11.9℃
  • 흐림홍성(예)12.5℃
  • 흐림13.1℃
  • 황사제주17.6℃
  • 흐림고산17.4℃
  • 흐림성산16.5℃
  • 황사서귀포18.9℃
  • 흐림진주13.5℃
  • 흐림강화12.6℃
  • 흐림양평13.8℃
  • 흐림이천14.1℃
  • 흐림인제13.1℃
  • 흐림홍천13.6℃
  • 흐림태백10.2℃
  • 흐림정선군12.0℃
  • 흐림제천12.2℃
  • 흐림보은13.0℃
  • 흐림천안12.8℃
  • 흐림보령14.1℃
  • 흐림부여13.2℃
  • 흐림금산13.1℃
  • 흐림14.5℃
  • 흐림부안15.5℃
  • 흐림임실12.8℃
  • 흐림정읍14.4℃
  • 흐림남원14.5℃
  • 흐림장수11.4℃
  • 흐림고창군15.3℃
  • 흐림영광군13.8℃
  • 흐림김해시15.9℃
  • 흐림순창군14.1℃
  • 흐림북창원16.5℃
  • 흐림양산시14.7℃
  • 흐림보성군13.3℃
  • 흐림강진군14.4℃
  • 흐림장흥14.3℃
  • 흐림해남14.8℃
  • 흐림고흥12.7℃
  • 흐림의령군14.5℃
  • 흐림함양군13.6℃
  • 흐림광양시15.7℃
  • 흐림진도군15.3℃
  • 흐림봉화12.3℃
  • 흐림영주13.5℃
  • 흐림문경14.8℃
  • 흐림청송군11.2℃
  • 구름많음영덕13.8℃
  • 흐림의성12.8℃
  • 흐림구미15.5℃
  • 흐림영천14.5℃
  • 흐림경주시14.1℃
  • 흐림거창13.3℃
  • 흐림합천14.5℃
  • 흐림밀양14.9℃
  • 흐림산청13.7℃
  • 흐림거제18.3℃
  • 흐림남해15.5℃
  • 흐림14.3℃
기상청 제공
나의 출애굽기(15)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문사소개

나의 출애굽기(15)

나의 출애굽기(15)

 

드보라

 

 

40. 조국(북한)에 대한 배신감이 들다.

 

식사를 하고 2~3시간 정도 흘렀을까. 뱃속이 엉망이 되었다. 계속 화장실에서 설사했다. 눈앞이 흐려지고 의식을 붙잡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도 먹어야 하니 식사시간에 나오는 국물을 계속 먹었다. 그렇게 먹고 설사를 하기를 3일 정도 지나니 항문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 날도 설사가 나서 화장실에 갔는데 너무 어지러운 나머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겨우 눈을 떴더니 사람들이 이년이 아직 안 죽었다하고 수군거렸다. 알고 보니 화장실에서 쓰러진 나를 사람들이 발견하고 끌고 왔지만 온종일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간수는 내가 깨어난 것을 보더니 이 간나 뒤지지 않고 살았네. 명도 길다.” 하고는 별일 없었다는 듯이 지나쳤다.

 

간신히 깨어난 나는 내 처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너무나 억울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체포와 북송, 조사와 고문을 겪으며 정신이 없었는데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니 너무 섭섭했다. 사람이 죽을 지경인데 아무런 약도 쓰지 않고 방치했을 뿐 아니라 깨어난 사람에게 명이 길다며 조롱하며 지나가는 간부의 모습에서 조국이 나를 심하게 천대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깨달아졌다.

 

비록 탈북은 했지만 내가 조국이 싫어서 강을 건넜던 것은 아니었다. 비록 중국 시골 깡촌에 있었지만, 사람들이 북한의 실정을 지적하고 김정일을 욕할 때 앞장서서 김정일 장군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위해 애쓰시는지 아느냐며 변호했고, 어머니 조국을 그리워했다. 그런데 그렇게 내가 악을 쓰며 변호했던 조국은 내가 죽어갈 때 돌보는 시늉도 하지 않았고 약 한 주먹 주지 않았다. 원래 배신감이 더 억울하게 다가오는 것일까? 서러움과 억울함이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올랐다가 이내 분노로 바뀌었다. ‘내가 어떻게든 살아야겠다. 살아서 이 나라를 고발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뼛속까지 사무쳤다.

 

41. 감옥 탈출을 결심하다.

 

두려움에 떨다가 갑자기 분노와 고발의 의지가 생기자 이상하게 담대해졌다.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탈출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당시 중국에서 공안들의 추적에 걸려 집에서 잡혀 온 탈북 여자는 보통 노동단련대 형을 받았지만, 한국행을 하다가 걸리면 예외 없이 교화소행이었다. 기간도 최소 4년 이상이었다. 열악한 감옥의 위생과 식사, 심한 강제 노동, 악화된 건강상태 등을 생각할 때 4년 징역은 거의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였다.

 

한국행을 하다가 붙잡힌 나는 당연히 교화소행일 것이고, 이 몸 상태로 교화소에 가면 죽음이 가깝다는 것은 너무나 확실했다. 살려면 도망쳐야 했다. 어떻게 도망칠 수 있을까? 그 죽음의 장소에 하나님의 예비하심이 있었음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한국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관련기사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