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목)

  • 구름많음속초10.0℃
  • 흐림9.2℃
  • 맑음철원9.9℃
  • 맑음동두천9.7℃
  • 맑음파주9.6℃
  • 맑음대관령5.0℃
  • 흐림춘천9.6℃
  • 황사백령도6.4℃
  • 구름많음북강릉10.4℃
  • 구름조금강릉11.9℃
  • 흐림동해9.6℃
  • 구름많음서울10.0℃
  • 박무인천8.9℃
  • 흐림원주10.1℃
  • 비울릉도10.2℃
  • 구름많음수원9.8℃
  • 흐림영월8.8℃
  • 흐림충주9.0℃
  • 맑음서산9.2℃
  • 흐림울진9.5℃
  • 박무청주10.3℃
  • 박무대전9.0℃
  • 구름많음추풍령7.5℃
  • 흐림안동7.9℃
  • 흐림상주7.9℃
  • 비포항11.5℃
  • 흐림군산10.3℃
  • 흐림대구9.5℃
  • 박무전주10.5℃
  • 비울산11.7℃
  • 구름많음창원10.5℃
  • 흐림광주11.2℃
  • 비부산13.1℃
  • 구름많음통영11.4℃
  • 흐림목포10.5℃
  • 구름조금여수12.2℃
  • 흐림흑산도9.0℃
  • 흐림완도11.9℃
  • 흐림고창9.9℃
  • 구름많음순천10.9℃
  • 맑음홍성(예)10.0℃
  • 흐림9.0℃
  • 흐림제주12.2℃
  • 흐림고산11.4℃
  • 구름많음성산13.2℃
  • 구름조금서귀포13.6℃
  • 구름많음진주9.3℃
  • 맑음강화8.4℃
  • 흐림양평9.7℃
  • 흐림이천9.6℃
  • 흐림인제9.7℃
  • 흐림홍천9.2℃
  • 구름많음태백5.6℃
  • 흐림정선군7.3℃
  • 흐림제천7.5℃
  • 흐림보은8.8℃
  • 흐림천안9.8℃
  • 맑음보령9.7℃
  • 흐림부여10.1℃
  • 흐림금산8.9℃
  • 흐림9.4℃
  • 흐림부안10.2℃
  • 흐림임실9.9℃
  • 흐림정읍10.5℃
  • 흐림남원10.1℃
  • 흐림장수8.0℃
  • 흐림고창군10.8℃
  • 흐림영광군10.1℃
  • 흐림김해시10.3℃
  • 흐림순창군10.8℃
  • 흐림북창원10.8℃
  • 흐림양산시12.3℃
  • 흐림보성군12.7℃
  • 흐림강진군12.2℃
  • 흐림장흥12.2℃
  • 흐림해남11.2℃
  • 구름많음고흥12.1℃
  • 구름많음의령군9.9℃
  • 구름많음함양군8.7℃
  • 구름조금광양시10.8℃
  • 흐림진도군10.6℃
  • 구름많음봉화8.3℃
  • 구름많음영주9.2℃
  • 구름많음문경8.0℃
  • 흐림청송군8.0℃
  • 흐림영덕10.1℃
  • 구름많음의성9.1℃
  • 구름많음구미8.8℃
  • 흐림영천9.4℃
  • 흐림경주시10.5℃
  • 구름많음거창8.1℃
  • 구름많음합천9.7℃
  • 흐림밀양11.3℃
  • 흐림산청9.9℃
  • 흐림거제11.0℃
  • 구름많음남해11.1℃
  • 흐림12.5℃
기상청 제공
참회록을 써야 합니다.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참회록을 써야 합니다.

이정우 목사의 목회칼럼

안동서부교회 이정우 담임목사.jpg

이정우 목사

안동서부교회

 

성 어거스틴이 참회록을 쓰게 된 일화가 있습니다. 하루는 그가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서 천국 문 앞에 도착한 그를 천사가 가로막으며 물었습니다. “너는 누구냐?” “저는 그리스도인 어거스틴입니다.” 그러자 천사는 그를 유심히 살펴보고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아니다. 너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너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교훈이 아니라 철학자 키케로의 사상으로 가득 찼구나.” 그렇게 그는 천국 문 앞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는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 통곡하며 회개했습니다. 자신을 깊이 성찰하는 기회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지나온 삶의 여정들을 돌아보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고 자신은 어떤 존재인지, 또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고 어떻게 돌이켰는지를 아주 소상하고 솔직하게 글로 남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 어거스틴의 ‘참회록’입니다. 성자는 참회록을 쓰고, 악인은 자서전을 쓴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서전 즉 회고록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거짓과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당하는 전직 대통령 사건의 모습을 보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대통령의 회고록을 접한 대변인은 자화자찬의 회고록이 아니라 참회록을 썼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선교 2세기를 달려가고 있는 젊은 한국 기독교는 참회록을 써야 할 모습들이 돌출되어 사회 속에 어두운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불거지는 여러 가지 문제들로 교회들의 불행한 모습으로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에 큰 부담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이미지코칭 전문가 정연아 씨는 그의 저서 ‘행복한 크리스천에겐 표정이 있다’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선한 크리스천의 이미지는 선한 얼굴에서 나온다. 한 사람의 얼굴이 그 사람의 상징이듯 크리스천의 얼굴은 곧 ‘믿음의 깊이’를 대변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얼굴이 한국교회의 믿음의 깊이를 대변한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아픕니다. 하나님의 미소로 가득한 얼굴이 바로 우리 교회의 참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의 깊이가 성도의 얼굴과 교회의 얼굴로 나타납니다. 그 얼굴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얼굴은 강력한 전도지였습니다. 주후 110년쯤 핍박과 박해를 넘어 로마제국 전역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이 일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들이 있었습니다. 첫째, 세계가 로마제국으로 통일돼 여행이 편리했습니다. 둘째, 도로가 좋았습니다. 그 길을 따라 복음이 전하여졌습니다. 셋째, 언어가 통일돼 복음전파에 도움이 됐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네 번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삶의 모범을 보여줬다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은 노예와 여성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평등을 실천했습니다.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위해 자비와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이런 삶의 방식이 생명력을 부여했고, 복음을 세계로 확장시키는 원천이 됐습니다. 로마사회에서 노예 인구의 비율은 20∼30%였습니다. 그러나 성도 중 노예의 비율은 50%였습니다. 왜 이렇게 교회 안에 노예가 많았을까요? 크리스천 주인들이 노예를 인격적으로 대했기 때문입니다. 노예들은 크리스천 주인의 사랑과 배려에 감동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 중 오네시모 같은 사람은 훗날 에베소의 감독이 될 만큼 교회는 차별 없는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았습니다. 그 결과 110년 만에 로마제국 전 지역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지난해 보냈습니다. 올해는 501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구호만 외치지 말고 성도 각자의 삶과 교회의 얼굴만 바꾸어도 교회는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 그렇다면, 오직 그리스도만을 자랑하고 자신의 삶을 깊이 성찰해 우리의 참회록을 써내려 가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 자기 자신을 내려놓으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관련기사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