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8 (토)

  • 구름많음속초3.8℃
  • 맑음-2.9℃
  • 맑음철원-2.1℃
  • 맑음동두천-1.6℃
  • 맑음파주-0.9℃
  • 맑음대관령-4.1℃
  • 구름많음백령도1.8℃
  • 구름조금북강릉3.1℃
  • 구름조금강릉4.0℃
  • 맑음동해4.4℃
  • 맑음서울0.3℃
  • 맑음인천1.2℃
  • 맑음원주1.0℃
  • 흐림울릉도4.1℃
  • 맑음수원0.1℃
  • 맑음영월0.9℃
  • 맑음충주-0.2℃
  • 구름많음서산3.8℃
  • 구름많음울진4.7℃
  • 맑음청주2.2℃
  • 맑음대전2.3℃
  • 맑음추풍령1.3℃
  • 맑음안동0.8℃
  • 맑음상주2.1℃
  • 구름많음포항4.5℃
  • 흐림군산3.8℃
  • 맑음대구3.3℃
  • 맑음전주2.9℃
  • 맑음울산4.0℃
  • 맑음창원3.4℃
  • 흐림광주6.1℃
  • 맑음부산4.4℃
  • 맑음통영4.9℃
  • 흐림목포7.2℃
  • 맑음여수5.2℃
  • 흐림흑산도8.0℃
  • 흐림완도7.5℃
  • 흐림고창6.1℃
  • 맑음순천3.8℃
  • 맑음홍성(예)3.2℃
  • 흐림제주9.2℃
  • 흐림고산9.1℃
  • 흐림성산8.2℃
  • 흐림서귀포8.4℃
  • 맑음진주0.8℃
  • 맑음강화0.6℃
  • 맑음양평0.8℃
  • 맑음이천-0.9℃
  • 맑음인제-0.3℃
  • 맑음홍천-1.8℃
  • 맑음태백-1.6℃
  • 맑음정선군-1.3℃
  • 맑음제천-0.6℃
  • 맑음보은2.0℃
  • 구름조금천안1.9℃
  • 흐림보령3.8℃
  • 맑음부여2.0℃
  • 맑음금산2.0℃
  • 맑음2.6℃
  • 흐림부안4.6℃
  • 맑음임실1.7℃
  • 흐림정읍4.0℃
  • 맑음남원1.9℃
  • 맑음장수-0.6℃
  • 흐림고창군4.5℃
  • 흐림영광군6.4℃
  • 맑음김해시3.7℃
  • 흐림순창군3.9℃
  • 맑음북창원5.0℃
  • 맑음양산시4.8℃
  • 맑음보성군6.8℃
  • 흐림강진군6.9℃
  • 흐림장흥6.5℃
  • 흐림해남6.3℃
  • 흐림고흥5.6℃
  • 맑음의령군0.5℃
  • 맑음함양군3.2℃
  • 맑음광양시4.4℃
  • 흐림진도군7.7℃
  • 맑음봉화1.3℃
  • 맑음영주1.2℃
  • 맑음문경0.9℃
  • 맑음청송군0.6℃
  • 구름많음영덕4.0℃
  • 맑음의성-1.8℃
  • 맑음구미2.1℃
  • 맑음영천2.9℃
  • 맑음경주시3.6℃
  • 맑음거창-0.8℃
  • 맑음합천0.5℃
  • 맑음밀양3.3℃
  • 맑음산청3.3℃
  • 맑음거제5.2℃
  • 맑음남해5.3℃
기상청 제공
하나님의 부르심(6)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6)

브라더 앤드류 칼럼

브라더 앤드류1.jpg

브라더 앤드류 

오픈도어 설립자

 

우리는 쿠바 교회에 대량의 성경을 전달하는 일 외에 쿠바의 열악한 경제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목회자 가족을 어떻게 도울까 고민했다. 나는 이미 앞에서 쿠바 목회자는 나라에서 나눠주는 식량과 의복을 지급 받지 못한다는 말을 했다. 당시 많은 목회자가 감옥에 갇혔는데 가장이 옥살이를 하기 때문에 뒤에 남아 있는 가족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쿠바 화폐는 무용지물이었기 때문에 돈은 아무런 도움이 못 되었다. 우리는 네덜란드 대사의 도움으로 시내에 있는 외교관 면세점에서 달러를 지불하고 침대 덮개, , 휘발유, 음식 등을 구입했다. 그러나 모든 가족에게 나눠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자 목사님들이 좋은 아이디어를 내었다. 돈보다 금이 훨씬 가치 있는 통화 수단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만약 패물이나 금 장신구를 가져올 수만 있다면 높은 가격에 팔아 상당한 기간 동안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300달러에 구입한 금시계 하나가 쿠바에서는 반년 치 월급과 맞먹었다. 그래서 한번은 우리 팀원들이 모두 바람둥이 계모임 회원처럼 온몸에 주렁주렁 금시계, 금반지, 금목걸이, 금팔찌 등으로 치장한 적도 있었다.

 

나는 묵고 있던 호텔로 여러 목사님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했다. 목사님들은 모두 고맙게 식사를 했지만, 집에 있는 가족에게 가져다주고 싶다면서 비닐봉지를 찾았다. 식사하는 도중에 그들은 닭고기며 밥이며 빵 같은 것을 조용히 봉지에 담았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어느 목사님 집에 가게 되었는데, 아이들이 목사님이 가져간 음식을 허겁지겁 집어삼키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나는 동행했던 동료와 함께 패물을 꺼내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목사님, 이것은 네덜란드 성도들의 선물입니다. 친구가 선물한다고 생각하시고 받아주십시오. 이것을 가족을 부양하는 데 쓰시고 다른 가족을 위해서도 사용해주십시오. 우리의 사랑과 기도를 늘 잊지 마시고 용기를 내십시오.” 그들은 고마운 마음으로 선물을 받아 각자 필요에 따라 나누어 가졌다.

 

선교 여행 마지막 날 한 목사님이 우리를 배웅하러 호세마티 국제공항으로 나왔다. 목사님은 따라올 수 있는 곳까지 나를 배웅해주었다. 나는 들어가면서 혹시나 하고 목사님에게 물었다. “목사님, 더 필요하신 건 없습니까?” “저기, 사실 신발이 필요합니다.” 목사님이 빨리 대답했다. 나는 시선을 아래로 향하고 목사님의 발과 내 발을 번갈아 가늠해보았다. 발 크기가 거의 같아 보였다. 나는 일단 비행기에 오르면 암스테르담에 도착할 때까지 그저 앉아만 있을 것이고, 집에 돌아가면 신발 하나 정도는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나는 신발을 벗어 목사님 손에 쥐여주었다. “목사님, 가지세요. 목사님 겁니다.”

 

목사님이 신발을 받아 쥐고 고마워하던 얼굴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간단히 작별 인사를 하고 양말만 신은 채 천천히 세관을 지나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관련기사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