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교회 예배처소의 변화와 안동지역의 복음화(5)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목차 서론 1. 첫 번째: 기독서원(基督書院) 2. 두 번째: 선교사 임시주택 3. 세 번째: 선교사 주택 4. 비공식 예배처소: 텐트 교회 5. 네 번째: 16칸 ‘ㄱ’자 예배당 6. 다섯 번째: 목조 2층 예배당 7. 여섯 번째: 2층 돌집예배당 결론 |
6. 다섯 번째 예배처소 : 목조 2층 예배당(1)
16칸 ‘ㄱ’자 예배당이 준공된 1910년 10월 30일 이후 안동교회는 계속해서 부흥했다. 그 결과 새로운 예배처소를 물색하다가 오늘의 안동교회가 서 있는 부지로 이사하게 된다. 사실 이 위치는 안동선교부가 세워진 1908년, 처음으로 선교사가 임시 주택으로 사용하던 터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폭발적인 성장 속에서 안동교회의 두 번째 신축예배당은 1913년 11월에 공사를 착수하여 1914년 2월에 준공되었다. 공사가 겨울에 시작되었음에도 비교적 공사는 빠르게 진행되어 이듬해인 1914년 봄이 되기 전에 공사가 완료되었다. 참고로 이곳은 지금의 100주년 기념관이 서 있는 위치다. 그 결과 1914년 봄에 안동교회는 ‘ㄱ’자 예배당에서 새로 준공한 예배당으로 이사했다.
목조 함석지붕 2층 예배당은 길이 40-50척 크기의 비교적 큰 규모의 건축물이었다고 김형태 목사는 증언한다. 안동교회 80년사에 따르면 이 예배당이 존속되어 있을 때인 1924년 6월 1일~1925년 5월 31일까지의 교인 수는 장로 3인, 세례교인 152명, 교인 총수는 380명이었고, 1934년에는 159명의 아동을 포함해 총 549명으로 경안노회록에 밝히고 있으며, 따라서 평소 주일예배 시 300~4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이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린 경험이 있는 분들에 따르면 최대 5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고 한다. 하지만 보통 교회에서 부흥사경회나 다른 형태의 집회 시에 강대상까지 올라가 앉는 것을 볼 때 더 많은 인원이 앉을 수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1914년 2월에 준공한 안동교회의 두 번째 신축 예배당은 목조 함석지붕을 가진 건물로 반(半) 2층 구조형식으로 약 50~60평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사진 8)
두 번째 예배당 건축에도 모든 교인들이 힘을 모았을 것이다. 예배당을 신축할 때 담임인 김영옥 목사는 선교사가 사준 주택을 팔아 헌금했을 정도로 김영옥 목사의 교회 사랑과 목회 철학은 헌신적이며 희생적이었다. 두 번째 예배당을 신축하기 불과 4개월 전 안동교회는 당회가 조직된다. 당회조직은 예배당 신축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때 장로로 장립한 김병우는 이 지역 최초의 장로였고, 안동교회에는 경안지역에서 최초로 당회가 조직되었다. 당회 조직을 마친 후 1주일이 경과한 1913년 8월 14일, 안동교회는 최초의 당회가 소집되어 6명에게 세례를, 3명에게는 학습을 주기로, 또한 다음 주일인 8월 17일 성례를 베풀기로 결의했다. 교회가 설립된 후 당회가 조직되기 전까지 세례와 성찬은 오직 선교사에 의해 베풀어졌지만, 8월 17일 성례전에서 떡을 나눈 사람은 김영옥 목사, 포도즙은 오월번 선교사가 베풀었고, 성찬예식이 마쳤을 때 김영옥 목사가 축복기도를 한 후 폐회되었다. 이처럼 안동교회는 담임인 한국인 목사와 선교사들이 서로 동역하는 아름다운 교회였다. 이러한 역할분담을 통해 초대 담임인 김영옥 목사는 안동교회 담임으로서의 권위와 위상을 확보하게 되었다.
▲목조 2층 예배당 벽을 배경으로 서 있는 당시 교회 지도자들. 앞줄 왼쪽부터 권찬영 선교사, 인노절 선교사, 김영옥 목사, 오월번 선교사로 추측된다. 뒷줄 왼쪽 첫 번째는 김병우 장로이고, 나머지 분들은 이중희, 엄응삼 장로를 비롯해 평신도 지도자였을 가능성이 높다.(사진 9)
안동교회의 두 번째 예배당이 신축됨으로써 교회와 경북북부 지역은 영적 지형의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우선 교회 내적으로 2층 목조 함석지붕 예배당은 넓은 공간의 확보로 인해 예배와 주일학교의 활성화를 가져왔다. 예배당 신축은 주일학교가 양적으로, 또한 질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1920년대 안동교회의 주일학교는 유년부, 남장년부, 여장년부 3부서가 존재했다.
1920년 7월 제1회 여름성경학교가 2층 목조 함석지붕 예배당에서 실시되었다. 매년 여름성경학교는 양적, 질적으로 크게 성장하여 당시 교회 행사 중 가장 큰 규모의 행사였다. 1921년 당회록에 의하면 초기 주일학교가 조직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교장, 부교장, 남장년부 반장을 임명하였지만 담임목사가 교장을 역임하지는 않았다. 담임교역자가 교장이 되어 전체 주일학교를 관장하기 시작한 것은 1926년 1월부터이다. 이때부터 자연스럽게 평신도는 부교장과 남장년부, 여장년부에 임명되었다. 주일학교는 예배당에서 아침 9시 예배를 시작하여 1시간 동안 예배를 드린 후 계속해서 분반하여 지정된 교사에 의해 성경공부를 계속했다.
1920년대 두 번째 예배당인 2층 목조 함석지붕 예배당은 가운데 남녀 분리 휘장이 존재했다. 일반적으로 강대상을 바라보며 오른쪽은 여성이, 남성은 왼쪽을 사용하였다. 남장년부에는 청·장·노년의 광범위한 연령층이 함께 모여 성경공부를 했으며, 공부시간은 주일 아침 유년부(오늘의 초등학생부)의 예배와 성경공부가 끝난 뒤 곧바로 10-11시부터 예배당을 이용하여 모였다. 성경공부교재는 아동부와 마찬가지로 선교본부로부터 가져온 교재 원본을 등사하여 담임목사와 선교사들이 교사들에게 가르친 후에 학생들과 분반공부를 하게 하였다. 여장년부는 3부서 중에서 가장 활성화된 부서였으며 유년부 예배가 끝난 후 남장년부와 동일한 시간에 휘장으로 분리된 예배당에서 운영되었다.
▲목조 2층 예배당의 위치는 오늘날 안동교회가 서 있는 바로 그곳이다. 예배당 앞쪽에 많은 성도들을 볼 수 있으며, 뒤쪽 좌측은 계명학교, 뒤쪽 우측은 경안성서학원이다. 우측 언덕 위에는 종탑이 보인다. 두 번째 예배당이 준공된 1914년 2월 이후 안동교회는 경북 북부지역의 중심교회로 자리 잡게 된다.(사진 10)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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