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금)

  • 맑음속초16.0℃
  • 구름조금25.2℃
  • 구름조금철원23.9℃
  • 구름조금동두천24.3℃
  • 구름조금파주22.0℃
  • 구름조금대관령17.1℃
  • 구름조금춘천25.0℃
  • 구름많음백령도15.7℃
  • 황사북강릉18.5℃
  • 구름조금강릉20.3℃
  • 구름조금동해20.6℃
  • 구름조금서울23.4℃
  • 구름조금인천19.0℃
  • 구름조금원주24.5℃
  • 황사울릉도20.0℃
  • 맑음수원21.7℃
  • 구름조금영월24.9℃
  • 구름조금충주25.5℃
  • 구름조금서산21.9℃
  • 구름조금울진19.6℃
  • 구름많음청주26.1℃
  • 구름조금대전25.1℃
  • 구름조금추풍령25.3℃
  • 맑음안동26.6℃
  • 구름조금상주27.0℃
  • 맑음포항28.3℃
  • 구름많음군산20.2℃
  • 구름조금대구28.6℃
  • 구름많음전주24.5℃
  • 황사울산23.8℃
  • 황사창원23.8℃
  • 구름많음광주25.5℃
  • 황사부산20.1℃
  • 흐림통영18.2℃
  • 구름많음목포23.3℃
  • 구름많음여수21.3℃
  • 구름많음흑산도20.5℃
  • 구름조금완도23.5℃
  • 흐림고창22.8℃
  • 구름많음순천23.4℃
  • 구름조금홍성(예)22.9℃
  • 맑음25.0℃
  • 황사제주20.3℃
  • 흐림고산19.5℃
  • 구름많음성산21.5℃
  • 황사서귀포20.5℃
  • 구름많음진주24.5℃
  • 구름많음강화15.9℃
  • 맑음양평24.9℃
  • 구름조금이천25.9℃
  • 구름조금인제25.4℃
  • 맑음홍천25.9℃
  • 맑음태백24.0℃
  • 구름조금정선군26.8℃
  • 구름조금제천24.3℃
  • 구름조금보은25.4℃
  • 구름조금천안24.9℃
  • 구름많음보령19.0℃
  • 구름많음부여24.2℃
  • 구름조금금산25.3℃
  • 구름조금25.6℃
  • 구름많음부안20.9℃
  • 구름많음임실25.2℃
  • 구름많음정읍23.4℃
  • 구름많음남원26.5℃
  • 구름많음장수24.0℃
  • 흐림고창군24.0℃
  • 흐림영광군22.7℃
  • 구름많음김해시22.3℃
  • 구름많음순창군26.1℃
  • 구름많음북창원25.1℃
  • 구름많음양산시24.1℃
  • 구름많음보성군24.3℃
  • 구름조금강진군24.9℃
  • 구름조금장흥24.3℃
  • 구름조금해남24.4℃
  • 구름조금고흥24.8℃
  • 구름많음의령군26.3℃
  • 구름많음함양군27.5℃
  • 구름많음광양시25.0℃
  • 구름많음진도군25.1℃
  • 맑음봉화24.2℃
  • 구름조금영주25.5℃
  • 구름조금문경26.3℃
  • 구름조금청송군27.0℃
  • 맑음영덕24.5℃
  • 맑음의성27.6℃
  • 구름많음구미27.6℃
  • 맑음영천27.3℃
  • 맑음경주시29.3℃
  • 구름많음거창26.3℃
  • 구름많음합천27.6℃
  • 구름많음밀양27.6℃
  • 구름많음산청25.6℃
  • 구름많음거제21.4℃
  • 구름많음남해24.1℃
  • 구름많음22.3℃
기상청 제공
하나님의 부르심(10)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10)

브라더 앤드류 칼럼

브라더 앤드류1.jpg

브라더 앤드류 

오픈도어 설립자

 

겨울밤이었다. 나도 나아만처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는 모두 잠들기를 기다렸다. 나는 조용히 침대를 빠져나와 차가운 마룻바닥을 기어서 목욕탕으로 갔다(허리 통증 때문에 걸을 수가 없었다). 목욕탕 문을 걸어 잠그고는 철로 만든 고풍스런 대형 욕조를 쳐다보았다. 여러 명이 들어가도 남을 커다란 욕조였다. 그때 그 욕조는 요단 강이었다.

 

나는 욕조 옆으로 기어가서는 찬물을 틀었다(나아만이 요단 강에 거부감을 느꼈기 때문에 나도 들어가기 싫은 찬물을 틀었다). 나는 욕조에 물을 가득 채우고 안간힘을 써서 차가운 물 속에 몸을 던져 넣었다. 찬물에 몸이 어찌나 놀랐던지 숨이 막힐 뻔했다. 그리고 다시 안간힘을 써서 물 밖으로 나와서는 바닥에 누워 몇 분간 기다렸다. 허리는 끊어질 듯이 팠다.

 

두 번째로 몸을 담그고 나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세 번, 네 번, 나는 허리 통증과 추위로 의식을 거의 잃을 뻔했다. 피부는 벌써 감각을 잃어버린 듯 차가운 바닥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일곱 번 들어갔다 나와야 했다. 나아만도 일곱 번 몸을 씻기 전에는 병이 낫지 않았다. 어떻게 일곱 번을 왔다 갔다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쨌든 나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일곱 번을 들락거렸다. 내 몸에 변화가 느껴졌다. 그러나 불행히도 상태가 악화되는 변화였다. 마지막에는 죽는 줄만 알았다. 나는 욕조에 물을 빼고 물기를 깨끗이 닦은 다음 지친 몸을 이끌고 침대로 돌아왔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 생각한 일을 완수했기에 육신은 죽을 듯했지만, 마음만은 날듯이 기뻤다.

 

이튿날 아침 허리 통증은 여전했다. 다음날에도, 그 다음 주에도, 2년 뒤에도 기다리던 변화는 없었다. 모든 과정을 수료하고 학교를 떠나던 날 교장 선생님은 악수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앤드류, 자네는 선교사 지원을 할 필요가 없겠네. 여행을 떠나기에는 몸이 너무 약해서 안 되네.”

 

간단히 말해 내가 선교사후보에서 탈락하는 순간이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싶었다. 내 몸은 파선한 배와 같았다. 내 몸만 놓고 본다면 앤드류는 활동적인 선교사감이 아니라는 해석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그것은 하나님의 뜻처럼 보였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선교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버리는 게 어떨까? 신체 건강하고 효율적으로 사역을 감당할 사람에게 말이다. 나 같은 처지라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안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가라!” 바로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았다. 어떤 말을 들을까? 건강이 사역의 걸림돌이 된다 해도, 그리고 다른 어떤 장애물이 있다 해도 모두 하나님께 맡기고 신뢰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학교 지하실에서 공산주의 잡지를 집어 들고 바르샤바에서 열리는 대회에 관한 기사를 읽는 순간 가겠습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가야 했다. 그때 그 길이 공산 세계를 종횡무진 누비게 되는 여행길이 되었다.

 

(한국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관련기사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