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금)

  • 맑음속초22.5℃
  • 맑음17.8℃
  • 맑음철원18.8℃
  • 맑음동두천17.8℃
  • 맑음파주17.9℃
  • 맑음대관령18.1℃
  • 맑음춘천18.3℃
  • 구름조금백령도14.5℃
  • 맑음북강릉23.8℃
  • 맑음강릉25.0℃
  • 맑음동해25.8℃
  • 맑음서울18.3℃
  • 맑음인천16.5℃
  • 맑음원주17.5℃
  • 황사울릉도17.5℃
  • 맑음수원18.3℃
  • 맑음영월18.2℃
  • 구름조금충주17.9℃
  • 구름조금서산17.4℃
  • 맑음울진24.9℃
  • 구름많음청주19.5℃
  • 맑음대전19.4℃
  • 구름조금추풍령20.1℃
  • 황사안동18.7℃
  • 맑음상주21.4℃
  • 황사포항21.8℃
  • 구름조금군산17.9℃
  • 황사대구20.7℃
  • 맑음전주20.4℃
  • 황사울산21.9℃
  • 황사창원21.3℃
  • 맑음광주18.9℃
  • 황사부산22.2℃
  • 구름조금통영18.2℃
  • 구름많음목포18.0℃
  • 황사여수18.1℃
  • 구름많음흑산도17.9℃
  • 구름많음완도18.2℃
  • 맑음고창18.5℃
  • 구름조금순천20.7℃
  • 맑음홍성(예)19.6℃
  • 구름조금17.5℃
  • 황사제주19.6℃
  • 구름많음고산18.5℃
  • 구름조금성산22.6℃
  • 황사서귀포21.1℃
  • 구름조금진주19.3℃
  • 구름조금강화16.1℃
  • 맑음양평17.0℃
  • 맑음이천18.0℃
  • 맑음인제19.4℃
  • 맑음홍천17.2℃
  • 맑음태백21.9℃
  • 맑음정선군20.7℃
  • 맑음제천17.4℃
  • 구름조금보은18.4℃
  • 구름많음천안18.2℃
  • 구름조금보령17.1℃
  • 맑음부여17.2℃
  • 맑음금산19.0℃
  • 맑음18.3℃
  • 맑음부안18.5℃
  • 구름조금임실19.9℃
  • 맑음정읍20.4℃
  • 구름조금남원18.6℃
  • 구름조금장수20.6℃
  • 구름조금고창군19.4℃
  • 맑음영광군19.6℃
  • 맑음김해시21.3℃
  • 구름조금순창군18.8℃
  • 맑음북창원22.2℃
  • 맑음양산시20.7℃
  • 구름많음보성군18.7℃
  • 구름많음강진군19.2℃
  • 구름많음장흥20.3℃
  • 구름많음해남19.7℃
  • 구름많음고흥21.9℃
  • 맑음의령군20.0℃
  • 구름조금함양군20.2℃
  • 구름조금광양시19.7℃
  • 구름많음진도군20.6℃
  • 맑음봉화18.6℃
  • 맑음영주18.2℃
  • 맑음문경21.2℃
  • 맑음청송군20.3℃
  • 맑음영덕23.2℃
  • 맑음의성19.9℃
  • 맑음구미21.5℃
  • 맑음영천19.9℃
  • 맑음경주시22.6℃
  • 구름조금거창
  • 맑음합천20.2℃
  • 맑음밀양20.1℃
  • 맑음산청20.1℃
  • 맑음거제19.6℃
  • 구름조금남해18.7℃
  • 맑음21.0℃
기상청 제공
하나님의 부르심(10)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10)

브라더 앤드류 칼럼

브라더 앤드류1.jpg

브라더 앤드류 

오픈도어 설립자

 

겨울밤이었다. 나도 나아만처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는 모두 잠들기를 기다렸다. 나는 조용히 침대를 빠져나와 차가운 마룻바닥을 기어서 목욕탕으로 갔다(허리 통증 때문에 걸을 수가 없었다). 목욕탕 문을 걸어 잠그고는 철로 만든 고풍스런 대형 욕조를 쳐다보았다. 여러 명이 들어가도 남을 커다란 욕조였다. 그때 그 욕조는 요단 강이었다.

 

나는 욕조 옆으로 기어가서는 찬물을 틀었다(나아만이 요단 강에 거부감을 느꼈기 때문에 나도 들어가기 싫은 찬물을 틀었다). 나는 욕조에 물을 가득 채우고 안간힘을 써서 차가운 물 속에 몸을 던져 넣었다. 찬물에 몸이 어찌나 놀랐던지 숨이 막힐 뻔했다. 그리고 다시 안간힘을 써서 물 밖으로 나와서는 바닥에 누워 몇 분간 기다렸다. 허리는 끊어질 듯이 팠다.

 

두 번째로 몸을 담그고 나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세 번, 네 번, 나는 허리 통증과 추위로 의식을 거의 잃을 뻔했다. 피부는 벌써 감각을 잃어버린 듯 차가운 바닥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일곱 번 들어갔다 나와야 했다. 나아만도 일곱 번 몸을 씻기 전에는 병이 낫지 않았다. 어떻게 일곱 번을 왔다 갔다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쨌든 나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일곱 번을 들락거렸다. 내 몸에 변화가 느껴졌다. 그러나 불행히도 상태가 악화되는 변화였다. 마지막에는 죽는 줄만 알았다. 나는 욕조에 물을 빼고 물기를 깨끗이 닦은 다음 지친 몸을 이끌고 침대로 돌아왔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 생각한 일을 완수했기에 육신은 죽을 듯했지만, 마음만은 날듯이 기뻤다.

 

이튿날 아침 허리 통증은 여전했다. 다음날에도, 그 다음 주에도, 2년 뒤에도 기다리던 변화는 없었다. 모든 과정을 수료하고 학교를 떠나던 날 교장 선생님은 악수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앤드류, 자네는 선교사 지원을 할 필요가 없겠네. 여행을 떠나기에는 몸이 너무 약해서 안 되네.”

 

간단히 말해 내가 선교사후보에서 탈락하는 순간이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싶었다. 내 몸은 파선한 배와 같았다. 내 몸만 놓고 본다면 앤드류는 활동적인 선교사감이 아니라는 해석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그것은 하나님의 뜻처럼 보였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선교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버리는 게 어떨까? 신체 건강하고 효율적으로 사역을 감당할 사람에게 말이다. 나 같은 처지라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안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가라!” 바로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았다. 어떤 말을 들을까? 건강이 사역의 걸림돌이 된다 해도, 그리고 다른 어떤 장애물이 있다 해도 모두 하나님께 맡기고 신뢰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학교 지하실에서 공산주의 잡지를 집어 들고 바르샤바에서 열리는 대회에 관한 기사를 읽는 순간 가겠습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가야 했다. 그때 그 길이 공산 세계를 종횡무진 누비게 되는 여행길이 되었다.

 

(한국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관련기사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