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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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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3)

한국기독역사의 발자취(9)
김승학 목사의 논문 연재(9) - 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3)

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3)

 

 

김승학목사(서재).jpg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김정숙 전도사.jpg

김정숙 전도사

(金貞淑,  1880~1969)

  

 

목차

서론

1. 출생과 결혼

2. 최초의 순교를 목도한 시댁(媤宅)

3. 여성 복음전도의 선구자

4. 평양여자성경학원의 유학생

5. 담임목사의 부재(不在)를 메꾼 여성교역자

...................................................

10. 평신도 사역자

결론

 

 

 

4. 김정숙, 평양여자성경학원의 유학생(2)

 

참고로 내한(來韓)한 선교사들은 1900년대부터 여성 교역자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남녀 구별과 차별이 심했기 때문에 선교사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순회 전도하는 일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다. 처음에 여교역자는 전도부인(傳道婦人, Bible Woman)으로 불렸다. 전도부인들은 선교사들과 함께 지방을 순회하면서 복음을 전했을 뿐 아니라 사경회 시 보조역할을 했다.

 

1907년 평양여자성경학원은 본격적으로 여교역자를 양성하는 훈련원으로, 1910년에는 정식으로 평양여자성경학원이 되어 보다 체계적인 교육을 시킬 수 있었다. 1923년에는 미국북장로회 선교부의 설립 허가를 받아 여교역자 양성을 위해 평양여자고등성경학교로 개교하였다. 1938년에는 평양여자신학원으로 개명되었다가 1943년 일제에 의해 폐교되었다. 당시 미국장로교에서 세운 여자성경학원의 수업기간은 3년이었고, 교과과정도 성경뿐 아니라 일반 고등학교와 같이 교양과목도 가르쳐 교역자와 평신도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을 갖추게 하였다.

 

김정숙의 입학 당시 평양여자성경학원은 3년 과정으로 1년에 봄, 가을, 겨울 3학기로 이루어졌으며, 교과과정은 성경 외에 교회사, 설교학, 윤리, 심리학, 영어, 음악 등 성경교사로서의 자질을 갖추기 위한 것들로 꾸며졌다. 위에 언급된 과목들은 오늘날 4년제 신학대학교에서도 개설하고 있는 과목들이며 평양여자성경학원은 당시 우수한 신학교육을 받은 여성 교역자를 배출하는 기관이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김정숙은 입학한 지 5년 만인 1920년, 당시 여성 신학교 중에서는 가장 공신력 있는 여자성경학원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사역의 현장인 교회에서 섬길 수 있게 충분한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

 

5. 김정숙, 담임목사의 부재(不在)를 메꾼 여성교역자(1)

 

1920년 평양여자성경학원을 졸업한 김정숙은 안동으로 내려와 교회와 노회를 위해 헌신적인 복음 사역을 시작하였다. 1922년부터 김정숙은 안동의 공식적인 첫 여성 교역자로 안동교회를 섬기면서 교회의 여러 사역에 참여하였다.

 

초대 김영옥 목사가 사임한 후 안동교회 2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이대영 목사는 1921년 1월 부임해서 헌신하던 중 1921년 9월 10일부터 15일까지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열린 제10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전도국의 부름을 받았다. 이대영 목사가 중국선교사로 파송 받은 후 정재순 목사가 안동교회 3대 담임목사로 부임하게 됐다. 1922년 7월 20일에 개회된 제83회 당회록은 정재순 목사가 당회에 참석한 것으로 기록한다. 따라서 짧게는 5월과 6월, 2개월을, 길게는 3~4개월 안동교회는 담임목사가 공석으로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때 전도사로 교회를 섬기고 있던 김정숙은 비록 2개월에서 4개월 정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제한된 범위 내에서 담임목사의 공백을 잘 메웠을 것이다. 또한, 새로운 담임목사가 교회에 부임해서는 그와 의견을 맞추어가며 사역에 충성을 다했을 것이다. 아마 교회의 분위기와 성도들을 소개하고 교회가 진행하고 있던 이전 사역을 소개함으로써 새로운 담임목사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을 것이다.

 

안동교회 3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정재순 목사의 최우선 목회방침은 지역전도였다. 그는 안동교회를 전도중심의 교회로 만들어 나갔다. 그가 추진한 강력한 전도사역을 통해 안동 땅은 영적으로 기경되기 시작되었다. 전도의 결과로 호암교회(현 송현교회)와 수하리교회(현 수상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또한, 그의 주도로 뿌려진 복음의 씨앗은 훗날 안동 땅에서 수확할 풍성한 구원의 열매를 기대할 수 있게 만들었다. 정재순 목사가 시무하던 시기는 처음으로 현지 교회인 안동교회를 중심으로 복음이 널리 전파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김정숙 전도사는 누구보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뜨거운 구령의 열정을 갖고 있던 김정숙 전도사는 정재순 목사와 뜻을 같이하여 지역을 복음화하는 일에 앞장섰을 것이다. 정재순 목사 역시 복음의 열정을 갖고 있는 김정숙 전도사와 동역하면서 고을마다 전도인을 파송하여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통해 안동 땅은 예수 마을로 바뀌고 있었다.

 

정재순 목사가 사임한 후 의성 출신으로 1925년 일본 고베신학교를 졸업한 후 귀국한 박상동이 안동교회 강도사로 부임했다. 박상동 목사는 1926년 9월 제11회 경안노회 임시노회에서 안수 후 안동교회 제4대 담임목사가 되었다. 박상동 목사는 전임 정재순 목사처럼 교회의 부흥뿐 아니라 안동읍의 성시화를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추진하였다. 1925년 7월 6일 제직 회의록에 따르면 오늘의 안동서부교회인 안기기도실을 세웠을 뿐 아니라 안동 읍을 4개 권역으로 나누어 복음전파의 책임을 가진 권찰을 두었다. 1926년 접어들면서 전도대를 조직하고 안동읍 동·서 양편에 파견하여 안동복음화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특히 1928년 9월 18일부터 26일까지 제1회 경안주일학교대회가 안동교회에서 개최되어 유년부, 소년소녀부, 청년부, 남·여장년부, 여전도회 교사 및 교역자 등 정회원 1,300여 명과 방청객 1,000여 명 등이 참석했다. 안동지역에서 개최된 최초의 대중 집회였는데, 참석한 인원은 당시 교회가 신앙교육에 얼마나 큰 관심을 갖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이때 안동교회 소년소녀부의 고문이며, 다음세대를 지도했던 김정숙 전도사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을 것이다

 

김정숙은 정재순 목사가 사임한 후 박상동 강도사가 부임하기 전까지의 공백 기간에 교회의 안정을 위해 힘썼을 뿐 아니라 그 후 박상동 목사를 도와 안동지역 복음화에 최선을 다했다. 또한, 박상동 목사가 사임한 이후 1929년 1월 안동교회 5대 담임목사로 임학수 목사가 부임하기까지 김정숙은 다시 전도사로 자리를 지키며 교회와 교인의 안정을 도모했다.

 

image01.jpg

▲1928년 9월 18일부터 26일까지 제1회 경안주일학교대회에 참석한 교사들과 교역자들이 함께 촬영한 사진으로, 사진 왼쪽 위에 있는 기와집은 안동 최초의 여성전문초등학교인 계명학원으로 안동 3‧1만세운동 당시 태극기와 독립선언문을 등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사진4)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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