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목)

  • 맑음속초17.8℃
  • 맑음12.5℃
  • 맑음철원12.0℃
  • 맑음동두천11.8℃
  • 맑음파주10.1℃
  • 맑음대관령11.8℃
  • 맑음춘천12.6℃
  • 맑음백령도10.1℃
  • 맑음북강릉18.1℃
  • 맑음강릉21.4℃
  • 맑음동해17.6℃
  • 맑음서울14.0℃
  • 맑음인천12.5℃
  • 맑음원주14.4℃
  • 맑음울릉도16.7℃
  • 맑음수원11.4℃
  • 맑음영월12.1℃
  • 구름조금충주11.8℃
  • 구름조금서산10.3℃
  • 맑음울진15.8℃
  • 구름많음청주16.3℃
  • 구름조금대전14.9℃
  • 구름조금추풍령12.4℃
  • 구름조금안동14.1℃
  • 구름조금상주14.1℃
  • 맑음포항18.5℃
  • 구름조금군산10.8℃
  • 구름조금대구16.4℃
  • 구름조금전주14.0℃
  • 구름조금울산16.1℃
  • 구름많음창원14.0℃
  • 구름조금광주15.7℃
  • 구름많음부산16.8℃
  • 구름많음통영12.9℃
  • 구름많음목포12.3℃
  • 구름많음여수15.1℃
  • 구름많음흑산도11.9℃
  • 구름많음완도13.7℃
  • 구름많음고창10.1℃
  • 구름많음순천11.7℃
  • 구름조금홍성(예)11.6℃
  • 구름많음13.0℃
  • 흐림제주15.3℃
  • 흐림고산14.0℃
  • 흐림성산12.8℃
  • 흐림서귀포15.0℃
  • 구름많음진주12.4℃
  • 맑음강화9.1℃
  • 맑음양평13.2℃
  • 맑음이천13.1℃
  • 맑음인제12.2℃
  • 맑음홍천12.6℃
  • 맑음태백11.0℃
  • 맑음정선군10.8℃
  • 맑음제천10.1℃
  • 구름많음보은11.9℃
  • 구름조금천안11.4℃
  • 구름조금보령11.3℃
  • 구름조금부여12.7℃
  • 구름조금금산12.5℃
  • 구름조금14.1℃
  • 구름조금부안11.0℃
  • 구름조금임실12.5℃
  • 구름조금정읍11.3℃
  • 구름조금남원14.3℃
  • 구름조금장수10.9℃
  • 구름조금고창군10.5℃
  • 구름많음영광군10.9℃
  • 구름많음김해시15.6℃
  • 구름조금순창군13.6℃
  • 구름많음북창원15.2℃
  • 구름많음양산시15.5℃
  • 구름많음보성군12.8℃
  • 구름많음강진군13.6℃
  • 구름많음장흥11.6℃
  • 구름많음해남11.5℃
  • 구름많음고흥12.4℃
  • 구름조금의령군13.4℃
  • 구름조금함양군13.2℃
  • 구름많음광양시14.9℃
  • 구름많음진도군11.6℃
  • 맑음봉화10.8℃
  • 구름조금영주12.0℃
  • 구름많음문경13.8℃
  • 구름조금청송군10.4℃
  • 구름조금영덕17.5℃
  • 구름조금의성11.5℃
  • 구름많음구미14.6℃
  • 맑음영천14.0℃
  • 구름조금경주시14.4℃
  • 구름조금거창13.3℃
  • 구름조금합천14.4℃
  • 구름조금밀양15.2℃
  • 구름조금산청13.9℃
  • 구름많음거제12.6℃
  • 구름많음남해14.0℃
  • 구름많음13.8℃
기상청 제공
나의 출애굽기(26)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의 출애굽기(26)

북한선교현장

나의 출애굽기(26)

 

드보라

  

63. 도시로 나와서 다시 새 삶을 시작함

 

집에서 나와 집사님 집에 일주일 정도 살았다. 그런데 집사님은 항상 바빴다. 모임도 많고 일도 많았다. 나는 주인 없는 집에 그냥 있기도 미안하고 해서 며칠 머물다가 근처에 아는 동생네 집으로 옮겼다. 다시 인근 도시에 나와서 식당 일자리 구해서 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 열심히 성경도 읽고 필사도 하고 했지만 진정한 신앙과 믿음을 가지지는 못했던 부끄러운 모습이다. 나 같은 사람을 보살피고 복음으로 양육하려고 애쓰셨던 집사님과 선생님은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그분들의 귀한 희생과 보살핌을 생각하니 나의 나 된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동생네 집에서도 한정 없이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다시 집에 돌아가면 계속 분란과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오래된 저렴한 집을 세로 빌리고 시작했다. 일해서 번 돈은 그래도 딸아이를 남편이 돌보고 있었기에 집에 생활비도 보내고, 북송 되었을 때 단련대에서 나를 꺼내준 남동생에게도 보냈다.

 

한참을 그렇게 지내던 중에 중국으로 나온 막내동생을 만나게 되었고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첫째 동생이 감옥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막내동생은 중국으로 나올 때는 한쪽 손이 굽은 장애를 가진 상태였고 형의 죽음에 대한 상처로 분노와 악에 받쳐 있었다. 그렇지만 조선족 선생님의 도움으로 처소에서 생활하면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치유의 기적을 경험하고 다시 북으로 돌아갔다. 이 내용은 지난번에서 이미 언급한 내용이다.

 

64. 남편이 한국으로 갔다는 소식을 듣게 됨

 

집을 떠나 열심히 돈을 벌며 생활하던 중에 남편이 한국에 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 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남편이 한국에서 건 전화였던 것이다. 남편은 취업 비자로 남한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벌겠다고 했다. 애는 아는 사람한테 돈을 주고 맡겨놓고 갔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 맡긴 집을 찾아서 딸아이를 데리고 새롭게 집을 잡아서 살았다. 이제는 남편이 생활비를 보내주었다. 꼴 보기 싫은 남편이었지만 그래도 뭔가 가정을 위해서 애쓴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보다는 잘 연락하고 지내보려고 애를 썼다.

 

그렇게 분주하게 이곳저곳 이동해가며 지낸 것이 시간이 꽤 흘렀다. 생계를 꾸리기 바쁘다 보니 고마운 집사님과도 제대로 연락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집사님의 남편분을 길에서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했는데 인사를 받아주시는 얼굴이 매우 어두웠다. 무슨 일이 있는가 싶으면서도 집사님 잘 계시냐고 안부를 물었는데 남편분이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다그치니 나지막하게 아내가 북송 당했다고 했다. 천지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 같은 망나니 같은 년에게도 사랑을 베풀고 귀하게 보살펴주시던 집사님이었는데 북송을 당하다니. 그날 집에 돌아오는 나의 발길은 천근같이 무거웠다. 그 이후로 집사님의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한국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관련기사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