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25 (일)

  • 구름많음속초20.9℃
  • 구름많음17.6℃
  • 구름많음철원17.8℃
  • 구름많음동두천19.7℃
  • 구름많음파주18.3℃
  • 흐림대관령15.8℃
  • 흐림춘천17.8℃
  • 구름조금백령도20.8℃
  • 흐림북강릉19.7℃
  • 흐림강릉21.2℃
  • 흐림동해21.0℃
  • 구름많음서울20.7℃
  • 구름많음인천21.1℃
  • 흐림원주17.4℃
  • 흐림울릉도20.3℃
  • 구름많음수원20.5℃
  • 흐림영월17.2℃
  • 흐림충주19.3℃
  • 구름많음서산21.2℃
  • 흐림울진21.5℃
  • 구름많음청주20.7℃
  • 구름많음대전21.8℃
  • 흐림추풍령20.0℃
  • 흐림안동18.4℃
  • 흐림상주19.6℃
  • 흐림포항21.4℃
  • 구름많음군산21.9℃
  • 흐림대구20.8℃
  • 구름많음전주21.5℃
  • 흐림울산20.4℃
  • 흐림창원19.2℃
  • 흐림광주21.2℃
  • 흐림부산21.3℃
  • 흐림통영21.0℃
  • 구름많음목포21.0℃
  • 흐림여수20.5℃
  • 흐림흑산도21.8℃
  • 흐림완도21.1℃
  • 흐림고창21.4℃
  • 흐림순천19.2℃
  • 흐림홍성(예)21.3℃
  • 흐림19.6℃
  • 구름많음제주24.2℃
  • 구름많음고산24.1℃
  • 흐림성산24.7℃
  • 구름많음서귀포24.5℃
  • 흐림진주19.7℃
  • 구름많음강화20.1℃
  • 흐림양평17.6℃
  • 흐림이천18.4℃
  • 구름많음인제16.7℃
  • 흐림홍천16.0℃
  • 흐림태백17.0℃
  • 흐림정선군16.9℃
  • 흐림제천18.2℃
  • 흐림보은19.1℃
  • 흐림천안20.4℃
  • 흐림보령21.8℃
  • 흐림부여21.8℃
  • 구름많음금산19.7℃
  • 흐림20.9℃
  • 흐림부안21.7℃
  • 흐림임실20.2℃
  • 흐림정읍20.4℃
  • 흐림남원19.9℃
  • 흐림장수20.3℃
  • 흐림고창군20.8℃
  • 흐림영광군21.1℃
  • 흐림김해시19.6℃
  • 흐림순창군20.2℃
  • 흐림북창원19.7℃
  • 흐림양산시21.0℃
  • 흐림보성군21.0℃
  • 흐림강진군21.4℃
  • 흐림장흥20.6℃
  • 흐림해남21.4℃
  • 흐림고흥20.2℃
  • 흐림의령군20.2℃
  • 흐림함양군19.2℃
  • 흐림광양시20.9℃
  • 흐림진도군21.0℃
  • 흐림봉화18.4℃
  • 흐림영주19.1℃
  • 흐림문경19.0℃
  • 흐림청송군18.6℃
  • 흐림영덕20.5℃
  • 흐림의성19.0℃
  • 흐림구미19.3℃
  • 흐림영천20.3℃
  • 흐림경주시19.5℃
  • 흐림거창19.0℃
  • 흐림합천19.8℃
  • 흐림밀양20.0℃
  • 흐림산청17.9℃
  • 흐림거제20.9℃
  • 흐림남해19.6℃
기상청 제공
안동선교 초기의 기독교 모습들(3)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축사/기념사

안동선교 초기의 기독교 모습들(3)

한국기독역사의 발자취(11)
김승학 목사의 논문연재(11) - 안동선교 초기의 기독교 모습들(3)

안동선교 초기의 기독교 모습들(3)

 

김승학목사(서재)1.jpg

김 승 학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목차

서문

1. 안동 땅을 밟은 첫 선교사, 베어드

2. 첫 교회들, 비봉·국곡·풍산교회

3. 안동지역 최초의 학습자, 홍재삼

4. 안동선교부 초대 주재선교사, 소텔

5. 안동지역 첫 선교사 사택, 휴게가옥

...............................................

13. 최초 성경학교, 안동여자성경학교

결론

 

 

4. 안동선교부 초대 주재선교사, 소텔 / 1908년

대구에서 안동까지의 거리는 무려 120Km나 되는 원거리이기 때문에 대구선교부는 1908년 안동에 선교부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안동선교부는 미국 북장로교가 평양, 부산, 대구, 청주, 선천에 이어 조선 선교부 산하의 6번째 개설된 지역선교부였다. 당시 대구선교부에 주재하던 소텔 선교사는 안동주재 선교사로 임명을 받아 1908년 12월 1일 대구를 출발하여 안동에 도착했다.


180Cm의 장신인 소텔 선교사는 대구선교부에서 만물박사로 통할 정도로 다재다능하여 사택이나 건물에 기계적 문제가 있으면 거뜬히 해결했고, 동산병원에 물을 공급할 수 있는 작은 풍차를 만들기도 했다. 거룩한 꿈을 갖고 안동에 도착한 소텔 선교사는 선교기지가 될 임시주택 한 채를 구입했는데, 그 위치는 지난 2009년 7월 철거된 안동교회 교육관 자리로 추정된다. 이처럼 안동교회가 현재 서 있는 터는 안동선교부가 시작한 곳이며, 동시에 안동선교의 시발점, 자궁과 같은 근원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1909년 9월 강원도 원주가 감리교 구역으로 확정이 되자 원주에서 사역하던 미국 장로교의 웰번 선교사, 김영옥 조사, 그리고 플레처(A.G. Fletcher) 의료선교사도 안동으로 이주함으로써 소텔 선교사는 힘을 얻게 된다. 그 결과 안동선교부는 3명의 선교사를 갖춘 공식적인 선교부로 출범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안동에 그리스도인 스스로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좀처럼 세워지지 않자 선교부의 활동이 주춤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1909년 8월 두 번째 주일에 8명이 모여 감격스러운 첫 예배를 드림으로써 안동교회가 출범하게 되었다. 안동교회의 첫 예배는 선교부에도 힘을 실어주었다. 더욱이 원주에서 이주한 웰번 선교사와 조사인 김영옥은 예배를 인도하기도 했다.


안동교회의 설립은 선교사들에게 용기를 주었으며 선교부가 침체를 벗어나 전도에 활기를 띠게 했다. 그 결과 소텔 선교사와 웰번 선교사는 전도구역을 분할하여 1909년 9월부터 북쪽은 소텔 선교사가, 서쪽은 웰번 선교사가 책임지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길을 떠난 지 10일 만에 소텔 선교사는 장티푸스에 걸려 돌아왔고, 약 1달 동안 치료를 받았지만 1909년 11월 16일 27세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아내인 맥클렁(K.M.McClung) 선교사는 남편 묘비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는 그들을(조선인을) 사랑하겠노라(I am going to love them)”

 

안동 선교부의 초대 선교사로 부임한 소텔 선교사가 1909년 11월 16일 장티푸스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자 안동 선교부의 정상적인 선교활동은 다소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순교의 피가 뿌려진 지 2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1910년 1월 크로더스(권찬영, J.Y. Crothers) 선교사가 안동에 부임함으로써 안동선교는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특히 소텔 선교사와 크로더스 선교사는 동서 사이로 크로더스 선교사는 소텔 선교사 부인의 언니인 엘렌 맥클렁의 남편이다. 그 결과 안동을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어떠한 단절도 없이 계속될 수 있었던 것이다.


크로더스 선교사는 1952년 은퇴하기 전까지 40여 년 동안 안동에 머물면서 복음을 전해 Mr. 안동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안동을 사랑했고, 지역사회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았다. 소텔 선교사가 안동에 부임한 후 1년도 넘기지 못해 중단할 위험에 빠져있던 복음사역을 이어받은 크로더스 선교사는 무려 40년 이상 사역을 잘 감당함으로써 두 선교사는 합력하여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이루어가는 거룩한 도구가 되었던 것이다.

 

기독역사.png

▲ 1909년 9월부터 안동의 북부지역은 소텔 선교사가, 서쪽은 웰번 선교사가 책임지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전도여행을 떠나기 전의 모습으로 추측된다. 왼쪽 말에 탄 사람은 소텔 선교사이며 말 옆에 있는 사람은 당시 조사인 김영옥(1911년 안동교회 초대담임목사가 됨)과 이름을 알 수 없는 마부, 그리고 오른쪽 말에 탄 사람은 웰번 선교사이다.(사진 3)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관련기사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