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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지를 찾아서(8) -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

박은숙 기자  /  기사입력 2019.01.23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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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손양원 목사 순교기념관.PNG

     

    손양원 목사의 생애

     

    손양원 목사는 1902년 경남 함안군에서 손종일 장로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손 목사는 아버지의 독실한 신앙의 영향을 받아 진주에 있는 경남성경학원에 입학하면서 복음전도자가 되었다. 이후 1935년에 평양신학교 입학, 1938년에 졸업했으며, 여수 나병원 애양교회에 부임하여 나병환자를 돌보았다.

     

    일제 치하에서 손 목사는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체포되어 여수 경찰서에서 10개월간 구금, 광주 구치소와 광주 형무소에서 16개월간 옥고를 치러야 했다. 1943517일 출옥 후에도 그는 계속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반대운동을 하다가 종신형을 받고 복역하던 중 해방을 맞아 1945817일 석방된다.

     

    해방 후 194810월 여순반란사건 때 두 아들 동인과 동신이 반란군에게 총살당해 순교하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나 손양원 목사는 아들을 죽인 공산당원 안재선을 용서하고, 그의 구명 운동을 벌여 그를 살려내고 자신의 아들 손재선으로 입적해 양아들로 삼았다.

     

    그 후 손양원 목사는 애양원 교회에서 나환자들을 돌보며 목회 하던 중 6.25 전쟁이 일어났고, 피난을 가지 않고 교회와 성도들을 지키다가 공산군에게 체포당했다.(1950913) 이후 15일 간 혹독한 고문을 당한 뒤 퇴각하는 공산군에게 총살당함으로써 장렬히 순교 하였다.(1950928, 향년 49)

     

    손양원 목사 순교기념관

     

    솔로몬의 부귀와 지혜보다 욥의 고난과 인내를 더 고귀하게여겼던 손양원 목사의 깊은 신앙심과 끝없는 사랑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진 순교기념관이다. 주변에는 손양원목사 기념비 및 3부자 묘지, 성산교회가 있으며 매년 기독교 신자들의 순례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기념관 운영 문제로 잠시 폐쇄되었으나, 최근 들어 다시 운영되고 있다.

     

    2. ▲두 아들이 순교한 후 손양원 목사는  '9가지 감사 기도 제목'을 쓰고 감사헌금을 했다고 한다..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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