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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세 목사】 - 지혜로운 인생이 현 세 목사 예장통합 경서노회 직전노회장 황금동교회 담임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고, 죄의 삯은 사망이고, 따라서 모든 사람이 멸망으로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에게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일은 ‘구원’입니다. 그런데 이 구원을 얻는 방법은 ‘예수’ 뿐입니다. 그 어떤 사람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구원을 얻는 일입니다.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은 그 차이가 백지장 한 장 차이입니다. 인생에서 살아가다 보면, 근본적인 일과 지엽적인 일이 있으며, 먼저 할 일이 있고 나중에 할 일이 있으며, 가치 있는 일이 있고 가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근본적인 일, 먼저 할 일, 가치 있는 일을 추구할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지엽적인 일, 좀 더 잘 먹고 잘살고 싶은 데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마음에 욕심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약 1:15)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어떤 사람이 자신의 유산의 몫을 찾게 해달라고 예수님께 청을 하자, 예수님은 이를 단호하게 거절하시면서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않다”(15절)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어떤 부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그 부자는 소출이 많아서 몇 해 동안 쓸 물건을 쌓아 둘 생각에 즐거워했지만,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내가 네 영혼을 찾으면 그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라고 물으신다는 것입니다. 그 부자가 어리석은 사람인 이유는 첫째, 하나님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소출이 많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농부가 열심히 애쓰고 노력해도 하나님이 적당히 비를 내려주지 않고, 따뜻한 햇볕을 비춰주지 않으시면 농사가 안됩니다. 그런데 그 부자는 농사가 잘되었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으면 자기가 잘나서 많은 돈을 번 것이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번 재물이니 내 마음대로 쓴다면서 하나님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쓸 줄을 모릅니다. 어떤 자식이 부모의 품 안에서 부모가 가진 모든 것을 누리고 살면서, 자기가 잘나서 풍성한 것을 누리고 있다고 착각한다면 그는 어리석은 자식일 것입니다. 둘째로, 그 부자는 육체적 쾌락만을 생각했습니다. 부자는 풍성한 소출을 보고 “이제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19절)라고 했습니다. 이기적인 사람은 물질이 풍요해지면 육체적 쾌락 만을 찾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사람은 물질이 많아질 때 하나님을 생각하고 이웃을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고, 하라는 것을 하는 사람, 즉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가치 있는 인생입니다. 말씀대로 살 때 내 존재의 가치가 높아지고, 내 안에 기쁨이 가득 차며, 진정한 즐거움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셋째로, 그 부자는 안전을 보장받지 못했기에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부자는 평생 먹을 가득한 재물을 보면서 생활이 보장되었다, 여생을 평안히 보낼 수 있게 됐다고 착각했습니다. 거짓 성공, 거짓 만족, 거짓 평안에 속은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소유한 것을 내가 지킬 수 있나요? 내 권력, 내 명예, 내 재물을 지킬 수 있을까요? 내 인생이 안정되어야 재물이든 명예든 권력이든 필요하지, 내 인생이 무너지면 그런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이라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우리는 갈 수밖에 없습니다. 내 인생, 내 생명을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분은 오직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내 인생을 맡기면 하나님은 우리가 의미 있고, 보람 있게 살다가 천국에서 영원토록 복락을 누릴 수 있는 영생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우리의 인생을 맡기고 살아가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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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부활절 메시지 - 김영달 목사김 영 달 목사 경북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화양읍교회 담임 할렐루야!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부활절을 맞아 경북 산하 22개 시군 연합회와 2,300여 지 교회와 함께 축하를 드립니다. 인간에게는 절대적인 세 가지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는 것(롬 3:23)과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것(롬 6:23), 모든 사람에게는 심판이 있다는 것(계 20:12)입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이 세 가지 절대적 사실을 해결해 주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죄인들을 위해 대신 죽어 주셨으며, 사흘 만에 죽음을 이기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어 주셨습니다(고전 15:20). 기독교만이 부활의 종교요 생명과 영생을 주는 종교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민족은 과거 5,000여 년 동안 온갖 우상숭배와 무속신앙으로 흑암의 그늘 아래서 소망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1884년 4월 부활절에 언더우드 선교사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입국하여 부활의 주 예수를 우리 민족에게 전해 주었고, 교회와 학교, 병원을 세워 민족정신을 깨워 민족 복음화로 근대화의 초일류 국가를 만들어 왔음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은 부활의 소망과 믿음을 가지고 다시 부흥을 위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아갑시다. 그리고 생명의 종교인 기독교를 대적해오는 반기독교 세력들과 차별금지법이라는 명분으로 비성경적인 악법들, 동성애와 동성혼을 합법화하려는 세력들과 싸워나갑시다. 죄악에 빠져 멸망으로 가는 우리 이웃에게 부활의 복음을 전합시다. 다시 한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축하하며, 부활의 축복과 회복의 축복이 경북 산하 모든 교회와 도민들에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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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하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윤 형 구 장로 본지 발행인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살아가고 있고, 모두 저마다의 생각과 가치관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길에는 많은 길이 있는 것 같지만, 인생을 마감할 때는 천국 아니면 지옥, 이 두 갈래 길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삶의 모습은 아주 중요합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인가? 지옥으로 가는 길인가?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가? 마귀에게 속아가며 살아가고 있는가? 성령의 삶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갈5:22)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마귀의 열매는 무엇일까요? ‘거짓말하고 속이고 분열시키는 것’,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요10:10)뿐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나는 어느 쪽에 속한 사람일까요? 그런데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개인적인 삶뿐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큰 영향을 줄 수 있기에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속한 가정, 조직, 사회, 무엇보다 교회 속에서 그곳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느냐, 아니면 마귀의 놀이터로 만드느냐? 하는 엄청난 큰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동체를 세우고 주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일에는 언제든지 사탄 마귀의 방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마귀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단절하게 하고, 부흥하지 못하게 하고, 다투고 분열하게 합니다. 그렇기에 화평의 왕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오신 분’(요일3:8)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마귀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그러나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엡6:10~18), 하나님께 기도하고 구해야만 이길 수 있습니다. 근신하고 깨어있지 못하면 마귀의 올무에 걸리게 됩니다(벧전5:8). 마귀는 개인도 망하게 하고, 공동체도 망하게 합니다. 그래도 마귀는 망해가는 것을 모르도록 감추고 변명하게 만듭니다. 속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 속에서 일어난 분쟁과 분열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파괴하는 일입니다. 배후에는 마귀가 있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은 주님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주님을 위한 일’과 ‘교회를 위한 일’은 분별을 잘해야 합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자기 십자가를 지지도 않으면서 교회를 위해 일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짓말하는 사람입니다. 마귀의 올무에 걸린 사람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일은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의 십자가를 지는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분열의 어려움을 당할 때 화평을 위해 힘쓰는 사람은 하나님의 진정한 아들이라 할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교회라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주 많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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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세 목사】 - 복음으로 사는 그리스도인(1)이 현 세 목사 예장통합 경서노회 노회장 황금동교회 최근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가 점점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기사들이 왜곡적으로, 과장되게 보도된 영향도 크겠습니다. 그런데 불신자들에게 ‘왜 기독교를 신뢰하지 않은가’ 물었더니 65.6%가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것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결국, 한국교회의 위기는 ‘도덕성 상실’인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기울어진 이때야말로 우리가 한국교회를 바로 세울 기회입니다. 그러려면 우리 각자의 교회가 먼저 바로 서야 하고, 우리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까요? 첫째, 나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합니다. 죄에 대해, 자아에 대해, 옛사람에 대해서 죽어야 합니다. 둘째, 내가 죽었으면 내 안에 예수님이 살아계셔야 합니다. 즉, 예수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교회는 다닐지라도, 그리스도인은 될 수가 없습니다. 셋째,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의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인간적 믿음인 신념이 아니라,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의 믿음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이런 그리스도인에게는 큰 복이 있는데, 소유적 존재가 아니라 실존적 존재로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여덟 가지의 복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도 ‘천국이 너희 것이다’고 말씀하셨고, 여덟 번째도 ‘천국이 너희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국으로 시작해서 천국으로 끝나는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와 일곱 번째까지는 천국에서 누릴 수 있는 복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천국은 오직 그리스도인만이 누릴수 있는 복입니다. 내 안에 천국이 있는 사람은 기쁨과 평안이 있고, 영생과 사랑이 있습니다. 삶의 의욕이 있고, 살아가는 데 힘이 있습니다. 환란과 역경이 닥쳐와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에게는 천국을 누릴 권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할 책임도 있습니다. 즉, ‘복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윤리·도덕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복음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개인적 삶의 차원에 대해 말씀하는데, 첫째 심령이 가난해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 매우 굶주려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찾고 찾아서 만나게 될때 우리는 천국을 맛보게 됩니다. 둘째, 애통해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애통해야 할까요? 내 안에 있어야 할 중요한 것이 없기에, 동시에 내안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기에 애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마11:2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내 안에 예수님의 성품이 없는 것 때문에 애통해야 합니다. 동시에, 내 안에 있어서는 안 되는 죄의 성품 때문에 애통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위로의 복, 즉 성령님께서 힘이 되어주실 것입니다. 셋째, 온유해야 합니다. 여기서 온유란, 통제하는 힘을 말합니다. 바른 시기에는 의분을 낼 줄 알고, 적절하지 않은 시기에는 화를 참을 줄 아는 것이 온유입니다. 이런 자에게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 복이 주어지는데, 어떤 형편에 있든지, 무엇을 소유하고 있든지 거기에서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복을 말합니다. 이런 차원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윤리적, 도덕적이 됩니다. 복음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은 저절로 선을 행하고 착하게 살게 되어있습니다. 이렇게 살 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이 드러나고, 한국교회의 신뢰도는 올라가서 기울어져 가는 한국교회가 바로 세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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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구약 시대의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Q 질문 : 구약 시대의 율법 중 할례, 여러 제사, 율법들, 먹으면 안 되는 음식들의 구분 등 여러 가지 금기들과 법 등을 우리가 이제는 지키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요? A 답변 : 구약의 율법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의식법과 시민법과 도덕법입니다. 이 중 의식법은 제사와 절기, 음식법 등과 같은 것인데 이런 것은 몸이 되신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완성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더는 지키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구약의 모든 제사 제도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기 몸으로 다 이루셨습니다. 시민법은 이스라엘의 국가와 관련된 법인데, 살인자를 처형하는 형법과 같은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주후 70년에 이스라엘 국가가 멸망함으로 자연히 소멸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교회를 세우셨으며, 교회는 정치적 권력이나 외적 강제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다스립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최고의 법은 출교이며, 그 이상의 벌에 대해서는 국가의 기능에 또는 하나님의 손에 맡깁니다. 그러나 십계명과 같은 도덕법은 결코 폐지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이 폐하여졌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를 정죄하는 기능으로서의 율법의 기능이 폐하여졌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과 바울은 도덕법을 오히려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십계명 중 “살인하지 말라”는 단지 외적 살인만이 아니라 “형제를 미워하지 말라”는 것으로 심화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율법의 도덕법을 지킬 때에도 그냥 구약의 문자 그대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롬13:10). 답변자 : 변종길 교수(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 <‘크리스천 큐앤에이’(도서출판 등과 빛) 中 요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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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인가, 가나안인가?조 병 우 목사 김천제일교회 혹시 예수도 잘 믿고 싶고, 이 땅에서도 편하게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없으십니까? 이런 어정쩡한 태도 때문에 우리의 신앙생활은 만족을 누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그런 방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괴롭고 힘듭니다. 항상 둘 사이에서 고민하고 방황합니다. 그러다보니 신앙생활에 참된 기쁨이 없습니다. 신앙생활 자체가 힘든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못 내려놓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힘든 것입니다. 우리의 고민은 둘 중 하나만 택해야 하는데, 실제로 그러지 못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처음 시작라인에 다시 서십시오. 그리고 인생의 목표를 다시 설정하십시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진정 내 영혼을 위한 곳이 어디인지 분명하게 정해야 합니다. 애굽인지, 가나안인지···. 애굽이라면 물질의 노예, 쾌락의 노예 등, 이 땅의 유한한 것의 노예로 살 각오를 해야 합니다. 결국, 사탄의 노예가 되어 영원한 멸망을 당할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이 가나안이라면,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과정까지의 힘든 여정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고,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의 땅과 전능자의 통치 가운데 보장되는 영원한 생명. 그것을 위해선 험한 과정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것을 확실히 정했으면 그에 따른 손해를 감수하도록 하십시오. 그러고 나서 그 길을 향해 출발하십시오. 그리고 순간순간 그 목적지와 방향을 재정립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그분의 음성을 들어야만 합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며 또 가나안 땅을 너희에게 주려고 애굽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여 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 25:38) 그럴 때 우리의 신앙이 현실의 문제 앞에서 흔들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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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와 불신자의 부활체의 공통점과 차이점은?Q 질문 : 신자의 부활체와 불신자의 부활체는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나요? 신자의 부활체는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이해하면 되는 것 같은데, 불신자의 부활체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나요? A 답변 : 성경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의 부활에 대해서 언급한 구절은 두 군데 있습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9절)와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행24:15절)입니다. 이런 구절들이 지지하는 것은 불신자들도 부활 후에 신자들처럼 변화된 육체를 경험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심판대에 서게 될 것이고, 대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고 나서 불신자들은 영원한 형벌에 처해 지게 될 것이라는 종말론적 관점이 배면에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사후멸절설(annihilationism)을 주장하는 자들은 불신자들은 죽은 후에나, 혹은 어떤 이들은 대심판 이후에는 아예 존재 자체가 소멸해서 없어질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심판론을 견고하게 지지하는 성경 구절이 많기 때문에, 불신자들도 부활에 참여했다가 다시 영원한 멸망(perdition)에 떨어질 것이라는 견해가 보편적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감옥이나 형벌로 묘사되는 곳에 변화된 육체성을 가진 자들이 들어가야만 하는데,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에 담긴 내용을 적용해 보면, 부자도 죽은 후에 현세에서의 모습과 연계된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물론, 불신자들의 부활체는 믿는 자들이 장차 가지게 될 영광스럽고 완벽한 부활체는 아닙니다. 고전15장에서 제시하고 있는 부활체는 믿는 자들에게 주신 것이기 떄문입니다. 답변자 : 김재성 교수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 ‘크리스천 큐앤에이’(도서출판 등과 빛) 中 요약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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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을 부추기는 세상에서교만을 부추기는 세상에서 조병우 목사 김천제일교회 나라마다 교만을 부추기는 사람들이 있음을 보게 된다.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적 교만에 빠지도록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나라들이 멸망을 당한 모든 역사는 국가적 교만에 국민이 빠질 때였다. 이 시대에 사람의 마음을 도적질하는 애국이란 이름으로 교만을 부추기는 것에서 이 나라를 지켜야 한다. 한 나라가 말씀으로 돌아가서 겸손할 때에 그 나라가 소망을 지키는 나라가 된다. 누구라도 교만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 자신이 교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교만은 가장 근원적인 죄이며, 가장 깨닫기 어려운 죄이며, 가장 무서운 죄이다. 때문에 누구라도 교만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자기 자신은 교만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교만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교만의 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사람들은 도덕적인 죄에 대해서는 아주 민감하면서도 교만의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모르고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 교만이 죄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교만의 죄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죄이다. 때문에 마귀가 교만의 죄에 빠져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천국에서 쫓김을 받은 죄이고, 인류의 시조가 범한 죄 역시도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말에 속아서 선악과를 먹고 죄를 지은 것이다. 교만의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은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다. 결국, 말씀을 따라 살지 않으면 누구나 교만이란 올무에 걸려서 자신의 영혼을 팔게 되는 구조 속에 빠져 들어가게 된다. 하나님이 인류의 조상에게 말씀을 주신 것은 교만의 죄에 빠지지 않도록 주신 선물이었다. 마귀는 교만함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려다가 하나님 나라를 잃어버린 존재이다. 이것은 누구라도 교만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선다는 것이며, 누구라도 교만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자리에 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은 자신을 겸손하다고 말씀하셨고 주님의 겸손을 배우라 하셨다. 겸손하다는 것은 예수님을 배우는 영적 학교에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한다면, 겸손하지 않으면 주님을 배울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겸손한 사람은 예수님을 배우는 과정이기 때문에, 성도는 겸손을 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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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사랑하고 지켜나가는 교회가 됩시다!”▲‘8.15 나라사랑 구국기도회’가 경북기독교총연합회 주최로 8월 15일 오전 10시 30분 구미영락교회 예배당에서 개최된 가운데, 대표부회장 김승학 목사 인도로 예배가 진행되고 있다. 경북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방영팔 목사)가 주최한 광복 77주년 기념 ‘8.15 나라사랑 구국기도회’가 8월 15일(월) 오전 10시 30분 구미영락교회(담임목사 조윤호) 예배당에서 개최됐다. 이날 행사에는 김장호 구미시장을 비롯한 구미시의원, 김상철 경북도 문화관광체육국장을 비롯한 관계자, 경북 23개 시·군기독교연합회 대표임원, 교계 지도자 등 내빈이 다수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1부 찬양에 이어 2부 예배는 대표부회장 김승학 목사의 인도로 드렸다. 경북장로총연합회 회장 이동철 장로 기도, 부서기 곽병구 목사 성경봉독, 새에덴교회 김문기 장로 특송, 대표회장 방영팔 목사 설교, 직전회장 신재영 목사 축도 순으로 드렸다. ▲방영팔 목사가 ‘나라를 사랑하고 지키는 일’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 있다. 방영팔 목사는 설교에서 “성경에 소돔과 고모라성은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멸망했다고 기록돼 있다”면서 “의롭게 살아가는 것, 기도하는 것이 나라를 사랑하고 지키는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3부 구국기도회는 상임회장 김영달 목사의 인도로 진행했다. 각 시·군기독교연합회 대표임원 중 조은수 목사(구미), 유원식 목사(포항), 김형탁 목사(안동), 이정화 목사(의성), 박종환 목사(칠곡) 등이 등단해서 ▷대통령과 위정자를 위해 ▷경북도지사와 23개 시군 단체장을 위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경북 복음화를 위해 ▷한국교회와 민족복음화를 위해 ▷차별금지법과 동성애법 방지를 위해 등의 제목으로 기도를 이끌었다. 이어 본부장 김길동 목사 선창으로 ‘양성평등을 성평등으로 헌법개정을 반대’ ‘인권위원회법의 성적지향을 삭제하고 지방의회 통과를 반대’ ‘차별금지법 통과를 반대’ 등의 구호를 제창하고 ‘자유대한민국 만세’ 삼창을 함께했다. ▲참석한 내빈과 목회자, 성도들이 ‘자유대한민국 만세’ 삼창을 하고 있는 장면. 4부 내빈소개 및 축사, 격려사, 인사 시간은 상임총무 곽금배 목사가 진행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축사를 김상철 경북도 문화관광체육국장이 대독했고, 김장호 구미시장이 축하와 환영의 메시지를 전했다. 대표회장 방영팔 목사는 인사에서 “우리는 남북분단, 전쟁의 위협, 부정부패, 동성애 및 차별금지법 등 어지러운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면서 “이 나라와 민족 위에 하나님의 크신 축복과 은혜가 임하기를 함께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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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울리는 자들의 불행예수님을 울리는 자들의 불행(누가복음 19장 41~44절) 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41~42절)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을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43~44절) 성경은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하나님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이루는 하나님의 능력’(롬1:16)이 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믿음으로 행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이 될 수 없고, 또 그 말씀을 불순종하게 될 때 심판과 형벌이 훗날에 임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는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고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계1:3)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주신 말씀을 깨달아 복을 받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1. 애통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신 예수님 본문에 예수님께서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41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감람원이라 불리는 산 쪽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서 떠나 예루살렘 성에 가까이 이르자 그 성을 보시며 애통하는 마음으로 우신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을 거부하고 불순종하는 자들로 인해 예루살렘 성이 무너질 것을 아시고 안타깝게 여기시며 눈물을 흘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신 기록은 본문 외에 요한복음 11장에도 나옵니다.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가 병들자 그 누이들이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 이 사실을 알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되어서야 그들에게 찾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을 보고 마리아가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를 어디 두었느냐” 하시니, 그들이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고 대답했고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신 이유는 나사로의 죽음을 슬퍼해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기를 기다리셨다가 다시 살리러 가신 것으로, 나사로의 죽음을 슬퍼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거기 모여서 통곡하는 그 사람들을 보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생명을 살리시는 분이심을 믿지 못하고 절망하는 모습에 애통하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신 것은 요한복음과 본문의 내용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죄인들로 인해 애통해하시는 눈물임을 알아야 합니다. 2. 예수님을 울리는 자들의 불행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이 무너질 것을 예언하신 내용은 이전 바리새인들에게 심판하실 것을 미리 알려 주신 내용이기도 합니다. 눅1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해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9개월쯤 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잘난 척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오히려 백성들을 미혹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한데도 예수님께서는 암탉이 그 새끼를 낳아 날개 아래 품으려 한 것같이 이들을 향해 불쌍히 여기시어 수없이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돌아오지 않는 그들에게 심판이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바로 그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셨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시며 결국 심판이 임할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도 자기 욕구를 쫓아 자기 방식대로 살겠다고 고집하면서 예수님 안에 들어가지를 않았습니다. 그 결과로 ‘그들의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가 될 것이다’고 예수님이 예언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들어오도록 우리를 부르실 때 속히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으면 멸망당하지 않고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삽니다. 이것이 복음의 진수이며 핵심입니다. 3. 예루살렘 성의 멸망 예수님께서 그 성을 보고 우시며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42~44절) 하신 것은 앞으로 되어질 일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 어떤 사람들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을 것인지 묻자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눅21:20)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때가 A.D 30년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40년 뒤 A.D 70년에 로마의 티투스장군에 의해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게 됩니다. 티투스장군이 대군을 거느리고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며 아무도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못하게 토성을 쌓습니다. 그러자 안에 갇힌 사람들이 굶어 죽게 되어 자녀들을 서로 잡아먹게 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예언하신 그대로 예루살렘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무너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에 들어오라 하실 때 회개하고 들어가는 사람은 심판도 지옥도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서 이미 영생에 들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아니할 때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옵니다. 예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이처럼 심판의 날이 임한다는 것을 깊이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4.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 예수님이 골고다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길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고 있었습니다.(눅23:27) 예수님은 울고 있는 그들을 향해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28절)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예수님을 따라왔던 여인들은 예수님을 위해 헌신해 온 여인들로, 십자가를 지고 죽임당하실 예수님의 고통에 슬피 울었던 것입니다. ‘나를 위하여 울지 말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그 길을 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친히 죄인들을 위해 대신 벌 받아 주기 위한 목적이므로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 능히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회개의 눈물로 애통하고 자복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나와 나의 자녀들을 위해 철저히 회개하는 애통의 눈물을 흘려야 마땅할 것입니다. (권면의 말씀) 신약성경에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약속은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잊혀진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려고 오래 참으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겔18:23)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악인이라 할지라도 심판하시길 원하지 아니하며, 오히려 회개하여 그 죄악의 길에서 떠나 살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할 기회를 주었는데도 끝내 돌이키지 아니하면, 본문 말씀처럼 예루살렘 성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또한 명심해야 합니다. 이 시간 우리에게 주신 기회를 놓치지 말고 속히 회개하시어 죄를 용서받고 예수님 안에 거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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