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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요한복음 3장 31~36절) 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34~36절) 이 세상에서 난 사람은 세상에 속해 있기 때문에 그가 아는 것이 세상에 제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늘나라에서 오셨기 때문에 하늘나라의 일을 다 아시고, 보고 들은 것을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요3:11)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세상일에 빠져 살며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니 믿을 수도 없고, 깨닫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이 시간 영생의 말씀을 듣고 하늘로부터 오신 예수님에 대해 깊이 깨닫고 그 증언의 말씀을 믿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 요한복음 3장에 보면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지도자요 최고회의 산헤드린공의회 의원이기도 했습니다. 모든 유대인들이 존경하고 학식이 많은 니고데모가 예수님에게 이르되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2절)고 고백하며 존경을 표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3절)라며 거듭남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는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니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니까”(4절) 하고 되묻습니다. 예수님은 영적으로 거듭나라고 하셨는데 그 사람은 육적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도 말씀을 들으실 때 육신의 기준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니고데모처럼 오해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진리의 말씀은 영적 기준에서 받아들이는 지혜가 있어야 이해가 되고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5절)고 거듭남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십니다. 어떻게 거듭나는 것일까요? 모든 사람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단절되었습니다. 이것이 영적으로 죽은 상태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시어 하나님과의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시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내가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영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 회개하고 성령을 받으면, 그 성령이 오셔서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에 있는 내 영을 접붙여서 다시 살아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남의 의미입니다. 사도요한은 요한일서에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5:13)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은 사람에게 새 생명이 있음을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 받은 사람이라야 새 생명을 얻습니다. 그 새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으로 온 것이기 때문에 믿는 자에게는 이미 영생이 있음을 우리에게 알게 하신 것입니다. 2. 거듭난 니고데모의 행적 예수님을 만난 니고데모는 그날 이후 달라졌습니다. 요7:31절 이하에 보면 무리 중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아랫사람들을 보냅니다. 하지만 잡으러 간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다가 크게 감동 받고 다시 돌아갑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왜 잡아오지 않았느냐 묻자, 그들은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라고 답합니다. 이에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라며 책망합니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니고데모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51절)하고 예수님 입장에 서서 담대히 말합니다. 니고데모는 이제 성령에 붙들린 사람이 된 것입니다. 또, 요한복음 19장에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운명하셨을 때, 니고데모는 장례에 쓰이는 몰약과 침향 섞은 향품을 백리트라쯤 가지고 와서 마지막까지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니고데모처럼 복음서에서 예수님을 섬기기 위해 정성을 다해 드린 사람들이 여럿 나옵니다. 이 사람들은 믿음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하늘로부터 오신 예수님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도다”(요3:11)라고 말씀한 것은 예수님이 하늘나라에 계셨을 때 아버지 하나님이 하신 일을 다 알고 보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증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이 증언하신 말씀을 받지 않고 거부한 사람들이 당시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세례 요한도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31~32절)라고 전하면서 믿지 않는 자들을 향해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셨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 위에 계시고, 하늘나라의 일을 다 아시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땅에 속하여 세상 것을 기대하고 사는 사람은 교회 다녀도 헛되이 다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4. 예수님을 믿는 자는 성령을 받음 본문에 보면 세례 요한이 “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33절)고 말합니다. 인친다는 것은 도장을 찍는 것으로, 확실히 인정한다, 자신이 책임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회개하며 그 증언을 받는 소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참되신 분이라고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확실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인치시면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보증하십니다. 고린도후서에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후1:22)고 하셨습니다. 에베소서에도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1:13)라고 하셨습니다. “약속의 성령”이라고 하셨으니 하나님의 자녀 된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5.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음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사람들에게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36절)라며 거듭 영생에 대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고 전했습니다. 그 생명은 영원한 생명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가 주신 것입니다. (권면의 말씀) 이제 우리 모두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철저히 회개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성령을 받읍시다. 성령 받지 못한 사람은 구원과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성령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늘나라를 상속받게 됩니다. 성령이 구원의 보증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믿어지는 믿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깨닫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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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확신이 영생의 뿌리부활의 확신이 영생의 뿌리(누가복음 24장 36~49절) 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36~37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38~39절) 본문 말씀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그들에게 나타나시어 성경의 말씀이 이루어진 사실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경대로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언약의 피를 흘리시고 고통 가운데 다 이루었다 하시며 운명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경대로 삼일 만에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의 죄를 대신 벌 받아 십자가에서 대속의 희생양으로 죽임당하시기 위함입니다. 그사실을 성령이 계시와 감동으로 깨닫게 해주십니다. 오늘 우리가 성령을 통하여 깨달아지고 믿어질 때에 부활의 확신이 영생의 뿌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1.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예수님의 제자 중에 엠마오에 살던 글로바와 그의 친구는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아로 알고 기대가 한껏 부풀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 형틀에 못 박혀 죽임 당하시는 속절없는 모습에 그들의 마음속에는 예수님에 대한 실망으로 가득 차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루살렘을 등지고 자기가 살던 동네 엠마오로 힘없이 걸어갔던 것입니다. 이때 슬픈 마음으로 탄식하며 가고 있던 그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이 왜 하필 부활하신 몸으로 낙심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는 두 제자를 일부러 찾아가신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죽음 앞에 크게 낙심한 것을 아시고 그들을 찾아가 부활 신앙을 갖게 하시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육신의 눈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즉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이에 글로바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이 지났는데, 어떤 여자들이 무덤에 갔으나 시체를 보지 못하고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천사의 말을 들었으며, 우리 중에 함께 한 자들도 무덤에 가 보았으나 예수님을 보지 못하였다”라고 힘없이 대답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그들은 여전히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25절)하고 한탄하시면서, 모든성경에 쓴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27절)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예수님이 성경을 풀어 주시자 마음이 뜨거워지고 비로소 예수님이 부활하신 분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부활신앙, 그것도 생명 부활에 참여할 믿음의 확신이 없다면 예수님을 헛 되이 믿는 것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 부활의 확신이 영생의 뿌리이다 글로바와 그의 친구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확실한 증인으로 다른 제자들에게 말할 때에 예수님이 방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36절)라고 하십니다. 이에 저희가 놀라서 무서워하며 영을 보는 것처럼 생각할 때,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38절)라고 책망하십니다. 이는 제자들이 의심의 불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의심은 불신앙의 뿌리로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반면 부활의 확신은 영생의 뿌리가 됩니다. 즉 예수님이 생명부활의 첫 열매로 다시 사셨다는 부활의 확신은 우리 모두 예수님과 같은 생명부활로 영생에 들어갈 수 있는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믿음을 끝까지 지켜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생명부활로, 그리스도의 왕국에 영광스러운 주인공들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해 주실 것을 소망해야 할 것입니다. 이어 예수님은 그들에게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같이 나는 있느니라”(39절)하며 몸을 보이셨습니다. 이것은 물리적으로 확인해보라는 것입니다. ‘영은 살도 뼈도 없지만 나는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이 신령한 몸으로 되살아나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신령한 몸은 시간과 공간과 장벽의 제약을 초월합니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요구하신 후 구운 생선 한 토막을 잡수신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44절)고 전하십니다. 그때 제자들의 영의 눈이 밝아져 말씀하시는 분이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이신 것을 비로소 알게 됩니다. 그들은 이후에 마가다락방에서 오순절날 성령충만을 받아 예수님의 부활을 믿어야 한다고 확실하게 증거하는 증인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15:26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은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재하시고, 성령이 그들을 하나님 뜻 가운데로 인도하시어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3. 부활소망을 가져야 하는 이유 우리가 알고 있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죽었고, 이삭도 죽었고, 야곱도 죽었습니다. 육신은 다 죽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영은 그들의 죄를 영원히 피흘려서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살아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집이나 아파트를 아무리 자기 것이라고 보존등기를 해 놔도 그 사람의 생명을 하나님이 거두시면 그 사람의 소유권은 끝이 나고 맙니다. 이 세상 법은 살아 있을 동안에만 소유권이 보장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 믿음의 사람들은 그들 모두가 영원하신 하나님의 소유된 자녀들이기 때문에 예수님안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마17:1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산에 올라가셨는데 이때 제자들 눈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함께 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제자들이 어떻게 1,600년 전에 살다 간 모세를 알아볼 수 있었겠습니까? 또 800년 전에 살다 간 엘리야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그 세 제자에게 영의 눈을 뜨게 해 주셔서 그들이 영적 눈으로 영의 세계를 볼 수 있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영의 세계가 분명히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믿으며, “나도 거기 들어가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처럼, 또 모세나 엘리야처럼, 영원한 생명 부활로 예수님과 같이 영생하는 그리스도의 왕국에 들어가야겠다”는 부활의 소망을 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소망이 확신으로 굳게 박히도록 성령의 역사가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권면의 말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잘못 알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나타나시어 성경의 말씀을 깨닫게 해 주셔서 부활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비록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못하였던 그들이었지만,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에게 성령으로 깨닫게 하시어부활 신앙을 갖게 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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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요한복음 3장 14~18절) 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14~16절)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17~18절)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셨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랑은 어떻게 나타난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으로부터 파생된 것이기 때문에 지옥 가는 것을 너무나 마음 아파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희생양으로 내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 얻게 되기를 소원하시고 가장 귀한 아들을 죗값으로 대신 죽을 자리에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들은 깊이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이 진리입니다. 지금 코로나19로 정상적인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하루라도 빨리 하나님이 종식시키시고 우리가 다 모여서 마음껏 감사와 찬양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1.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사건 본문 14~15절에 보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이 구약 민수기 21장의 말씀을 예로 든 것입니다. 민수기 21장에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를 예수님이 앞으로 있을 자신의 일로 결부시켜 인용하신 것입니다. 민수기 21:4절 이하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라고 원망합니다. 이에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물게 하시므로 죽은 자가 심히 많았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실망하시고 진노가 극에 달하셨으면 그 불뱀을 통해 심판하셨겠습니까? 뱀은 사탄의 상징입니다. 그들을 심판하실 때 하나님을 대적했던 마귀를 시켜서 멸망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왜 불뱀을 불러들여서 불평과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물어 죽이게 하셨을까요? 이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불신하고 원망한 죄로 인해 징계하신 것이었지만, 또한 그들을 사랑하사 그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이키기를 바라신 까닭이었습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 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라고 애원합니다. 그러자 모세가 자신을 원망한 그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저는 모세가 기도하는 그 모습을 생각하면서 뜨거운 눈물이 고였습니다. 왜냐하면 모세를 통하여 ‘이것이 참 목자의 본심이로구나’ 하고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목자는 양 떼들의 원망과 불평이 있더라도 그리스도의 심정을 가지고 그 영혼을 살리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모세를 통해 알게 된 것입니다. 모세의 기도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그들에겐 복음이었습니다.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말씀을 믿고 쳐다보는 것이 사는 길임을 실제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어디서든지 불뱀에게 물린 사람들이 그 말씀을 믿고 쳐다보는 행동을 하게 될 때 그 사람의 몸속에 불뱀의 독이 싹 없어지고 다시 살게 되는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놋뱀이 장대 위에 매달린 것이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장대에 달린 놋뱀을 믿음으로 쳐다봤을 때 죽지 아니하고 살게 된 것처럼 누구든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쳐다보고 믿는 자마다 죽음을 맛보지 않고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사건은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의 복음이 실현될 것을 예표 해 주셨음을 깨닫게 해줍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바로 구약의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한 것임을 우리에게 알려 주신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심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16절)는 말속에 ‘이처럼’이라고 하신 뜻이 무엇일까요? 이는 하나님께서 가장 귀한 독생자 아들 예수님을 지옥 가고 있는 죄인들을 살리시기 위하여 대신 죽을 자리에 내어 주시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 사랑은 가장 귀한 사랑이고 하나님만이 베푸실 수 있는 무한하신 사랑, 아가페라고밖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우리가 그를 믿음으로 영원토록 꺼지지 않는 유황불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었음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대신 죽게 하신 것은 우리를 아들보다 더 귀히 여기시고 소중하게 생각하신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런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우리를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게 하신 일은 역사 이래로 만고불변의 구원의 복음이고 진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생각하며 예수님을 믿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그 죄를 용서하시고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어서 하늘나라까지 물려주시기 위한 후계자로, 상속자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3.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17절)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우리를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한 일이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심판을 받지 않는 방법에 대해서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18절)고 말합니다. 이는 예수님을 믿으면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하신 구속의 은혜를 깨닫고 믿는 사람은 죄를 용서받게 되기 때문에 어떤 심판도 받을 필요가 없게 된다는 뜻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요5:24절에도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심판도 받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죄를 예수님이 대신 미리 심판을 받아 주셨기 때문에 죄를 용서받아 예수님 안에 들어가서 성령에 이끌리며 생명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알게 하십니다. 불가항력적 은혜를 하나님이 집중적으로 쏟아 부어 주시게 될 때 성령님이 그에게 깨닫게 하시고 믿어지도록 역사하시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허세와 교만을 회개하면서 하나님 앞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으로 살아 천국을 소망하는 그 사람은 하나님이 구원 얻은 표시로 성령을 그에게 파송시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말씀에 순종하고 거룩하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한 지체로서 하나님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권면의 말씀) 고후6:1~2절에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시키기 위하여 준비하시고 허락하신 그 기회가 바로 지금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예수님을 믿고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오늘 주신 말씀처럼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꽃 같은 눈으로 여러분들이 스쳐 가는 생각과 말과 행동까지 모두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헛되이 받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 안에 들어가면 이 땅에서 새 생명을 얻고 살게 됩니다. 또한 성령의 인치시고 인도하심에 따라 하나님 자녀의 자격으로 영생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즉 성령이 그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보증 세워주시면서 영원히 그 사람과 함께 하시며 천국 길로 이끌어가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어야 할 오늘의 복음인 것입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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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 때의 내 신앙환난 때의 내 신앙(다니엘 12장 1~13절) 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자가 자기의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원히 살아 계시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7절)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천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기다려서 천삼백삼십오 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10~12절) 이 시대를 살면서 지금 코로나 유행병으로 인해 국민들이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경제가 바닥에 허물어지면서 인간관계도 단절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가 하나님 앞에 대면예배마저 제지당하는 입장이 되어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신앙인으로서의 말이나 행동이 하나님을 실망시키고 여러 가지로 기대를 어긋나게 해드렸기 때문에 당하는 시련으로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모든 교회가 각성분발하며 회개운동을 일으킬 때입니다. 민족이 회개함으로 하나님께 용서받으면 하나님께서 이 모든 오늘의 불행을 회복의 역사를 통하여 영적인 기쁨이 넘치게 하시고 경제도 다시 활성화되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에게 원인을 돌리고 원망이나 불평을 할 것이 아니라 나부터 먼저 하나님 앞에 솔직히 자신의 신앙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애통하며 철저히 회개해서 모두가 각자의 죄를 온전히 용서받을 때 회복의 날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앞당겨지게 될 줄 믿습니다. 이 시간 바벨론 포로 시절에 많은 환난 속에서도 순교적 신앙의 정절을 지켰던 다니엘과 그 친구들의 믿음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1) 다니엘의 신앙의 정절 오늘 본문에 다니엘이라고 하는 사람은 그 이름 자체가 ‘하나님은 나의 재판장이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그 이름의 뜻대로 하나님이 자기의 재판장이신 줄로 생각하며 아무리 어려운 환난과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육신의 생명까지 하나님의 뜻에 의탁하고 믿음의 정절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당시 유대나라가 신앙이 변질되고 하나님께 불순종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을 일으켜 유대나라를 B.C 605년에 1차 침공하게 하셨습니다. 그 때에 많은 포로를 잡아갔는데 소년이었던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과 아벳느고도 함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과 친구들은 느부갓네살 왕의 수종드는 소년들로 선발되었습니다. 그래서 왕이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고 또한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넉넉히 먹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벨론제국 세력 확장을 위하여 여러 나라를 정복하고 강탈해서 빼앗아 온 불의한 것들임을 알았기에 그들은 신앙 정절을 지키기 위해 왕이 제공한 음식과 포도주를 거절합니다. 오히려 채식만 먹어도 왕의 음식을 먹은 다른 소년들과 비교해서 전혀 손색이 없도록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을 믿으며 환관장에게 열흘 동안 시험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결국 다니엘이 말한 대로 왕의 음식을 먹은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게 나타나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주셨습니다. 이것은 이들이 온전히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2) 다니엘을 높이신 하나님 5장에서 보면 벨사살 왕이 그의 귀족 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 술을 마시며 신들을 찬양하고 있을 때에 연회장 벽에 손가락이 나타나서 글자를 쓰는 것을 보고 박사들을 불러서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글자를 읽지 못하며 해석도 하지 못하자 벨사살 왕이 크게 번민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다니엘이 부름을 받아 왕 앞에 나와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영감적 계시로 그 글자가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글자를 보여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하나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곧 죽게 될 것이라고 하는 뜻이었습니다. 결국은 그 꿈을 해몽함으로 해서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이 셋째 치리자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다리오 왕이 즉위했을 때 다니엘은 용모가 준수하고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다니엘을 시기하여 죽일 계획으로 한 금령을 세우고 다니엘을 모함하게 됩니다. 결국 다니엘은 규례를 어긴 죄로 사자 굴에 들어가 사자 밥이 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사자 굴에 던져진 다니엘을 사자들의 입을 봉해 머리카락 하나 상하지 않도록 안전하게 지켜주셨습니다. 다니엘이 사자굴 안에서도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믿음의 정절이 육신이나 주변상황이나 어떤 권력 앞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하나님 절대주의 신앙으로 믿음의 정절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절대 신앙으로 사는 사람은 아무리 세상 시대와 형편이 바뀌어 간다 할지라도 그런 것에 굴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영적인 믿음을 알차게 가꾸어서 하나님께 인정받고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3) 다니엘이 본 환상 다니엘은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에 대해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4절)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이것은 이 시대처럼 인류역사 이래로 사람들의 이동이 가장 짧은 기간에 먼 곳을 왕래하고, 또 TV나 인터넷 그 외에 여러 가지 전자기기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지식이 넘쳐나게 전달되고 있는 때일 것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이 환상을 봅니다. “나 다니엘이 본즉 다른 두 사람이 있어 하나는 강 이쪽 언덕에 섰고 하나는 강 저쪽 언덕에 섰더니 그중에 하나가 세마포 옷을 입은 자 곧 강물 위쪽에 있는 자에게 이르되 이 놀라운 일의 끝이 어느 때까지냐 하더라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자가 자기의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원히 살아계시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5~7절). 이것은 바벨론에게 망한 유대나라가 포로 신세의 불행이 언제쯤 끝날 것이냐 하는 것에 대한 예언으로 일차적으로는 안디오쿠스 에피파네스의 박해의 때를 가리키나 종말론적으로는 말세에 있을 대 환난의 때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3년 반을 말합니다. 42달이고 1260일 이것은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교회를 허물어뜨리기 위하여 핍박과 온갖 악랄한 박해를 가하는 기간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교회가 완전히 깨어지기까지 박살난다는 것입니다. 안디오쿠스 에피파네스는 유대인들을 악랄하게 박해를 하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도록 예루살렘을 쳐들어가 성전과 성벽도 불태웠습니다. 그리고 그 성전 안에 하나님을 경배할 때 쓰인 모든 기물들을 바벨론으로 다 빼앗아 간 적그리스도의 모형을 한 자였습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세상 권력을 가진 정치인들과 또 그 권력의 시녀가 되어서 상대국 신앙과 종교를 말살시키려고 하는 사탄의 세력들이 동시에 역사했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니엘이 듣고도 깨닫지 못하여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나이까?(8절) 하고 질문을 했을 때 예수님이 ”다니엘아 갈지어다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라“(9절)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그 당시도 일차 실행되겠지만 이중적 예언이고 또 종말론이기 때문에 이 세상 역사가 끝날 때도 똑같이 되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한다는 것입니다(10절). 악한 자는 자기 죄악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심판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멸망을 재촉하며 하나님 앞에 무서운 형벌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회개하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하늘나라 갈수 있는 믿음을 가꾸기 위하여 자신을 더 정결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권면의 말씀) 본문에서 다니엘이 본 환상 가운데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이 권력을 잡고 세상을 지배하여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게 한다’(11절)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도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환난과 핍박의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신앙이 환난 때에 어떤 믿음을 보여주겠는가를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는 믿음들이 되시고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아무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믿음의 정절을 지켜 나갑시다. 이 모든 환난의 때를 타개하고 극복하면서 끝내 승리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이 실현될 때에 영생의 상급을 보장받게 될 것입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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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취재> 성은교회 장재효 목사, ‘호소문’ 통해 사임 의사 밝혀장재효 목사, “이제는 노종(老從)을 놓아주시고, 진리정통(眞理正統)하고 성령충만한 후임 목회자 구해주세요.” 51년 동안 장재효 목사를 중심으로 선교사명을 힘있게 감당해왔던 서울 성은교회(서울시 송파구 소재)에서 후임 목회자를 맞을 채비를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5월경 장재효 목사는 “이제는 건강이 미약하여 더는 책임목회를 감당할 수 없으니 노종(老從)을 놓아달라”는 취지의 호소문을 교회 앞에 발표했으며, 이에 따라 성도들은 장 목사의 간곡한 뜻을 존중하여 후임목사 청빙의 단계를 밟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서 지난 8월 23일(월) 장재효 목사와 서윤석 장로를 비롯한 세 분의 장로가 본 신문사 사옥을 방문해 그간의 경위를 설명하면서 후임목사를 구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본지에서는 다음과 같이 △장재효 목사의 호소문 △성은교회 성도들이 장재효 목사에게 보낸 편지 △장재효 목사의 ‘목회자의 사명’에 대한 생각 등을 게시함으로써, ‘이 시대에 참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한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서울 성은교회 장재효 목사와 서윤석 장로를 비롯한 세 분의 장로가 지난 8월 23일(월) 본 신문사 사옥을 방문했다. 사진은 장재효 목사가 본지 임직원들과의 면담 자리에서 장 목사의 호소문 등을 낭독하고 있는 장면. 장재효 목사의 호소문(呼訴文) 사랑하는 성은교회 신도(信徒) 여러분 지난 세월 한결같은 사랑으로 모든 것이 부족한 종(從)을 주님의 사자(使者)라고 주님 대하듯 선대(善待)해 주셨고, 기도(祈禱)와 헌신봉사(獻身奉仕)와 어려운 형편에서도 적극적으로 협력(協力)해 주셔서 지금의 성은교회 성은동산을 세우게 하셨고 많은 나라에 선교(宣敎)하게 해주신 것을 뜨거운 중심(中心)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그 모든 정성(精誠)은 주님께 향기로운 제물(祭物)이 된 줄 믿습니다. 오늘은 부득이 죄송(罪悚)하고 죄송(罪悚)한 호소를 드릴 수밖에 없어 불초(不肖) 종(從)의 마음은 더욱 슬프고 괴롭답니다. 지나온 세월이 어언 반세기(半世紀)가 넘었지만, 늘 변함없으신 우리 주님의 사랑과 은혜(恩惠)로 우리는 주(主) 안에서 목양지간(牧羊之間) 성령(聖靈)으로 하나 되어 가(可)히 교회천국(敎會天國)으로 지내 온 것을 주님과 성도 여러분께 무한감사(無限感謝)를 드립니다. 부디 앞으로도 믿어지는 믿음으로 영적신앙(靈的信仰)을 끝까지 고수(固守) 하셔서 우리 모두 천국(天國)에서 다시 만나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永生福樂)을 누립시다. 불초(不肖) 종(從)이 노쇠(老衰)하고 기력마저 허약(虛弱)해져 책임목회(責任牧會) 사역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오로지 사명감(使命感) 하나로 지금까지 각고의 노력을 해봤으나, 성과(成果) 부실(不實)하여 주님께 송구스럽기 한이 없고 교회에도 죄송스러워, 심적(心的) 고통이 막심(莫甚)하여 주야(晝夜)로 번민(煩悶)하며 주님께 기도와 간구로 호소해 왔습니다. 목자(牧者)의 사명(使命)을 제대로 감당치 못하면서 당회장(堂會長) 자리만 보존(保存)한다는 것이 이 종(從)의 무딘 양심(良心)에도 너무나 괴롭고 두려웠습니다. 누구나 감당(堪當)치 못할 형편(形便)이면 자진(自進)해서 사직(辭職)하는 것이 모두를 위하여 현명(賢明)한 지혜(知慧)라 사료(思料)됩니다. 성은교회의 중흥(中興)을 위하여 심사숙고(深思熟考) 후 물러나기로 결심(決心) 했습니다. 이제 쓸모없는 노종(老從)은 놓아주시고, 진리정통(眞理正統)하시고 성령님의 다양한 은사(恩賜)와 능력(能力)으로 성은교회를 주님께로 잘 이끌어 줄 수 있는, 주님께 진실(眞實)되고 충성(忠誠)스러운 목자(牧者)를 모두가 합심해서 간절히 기도하시면 주님께서 필연적으로 응답(應答)해 주실 것입니다. 불초노종(不肖老從)의 서러운 고충(苦衷), 사명(使命)을 감당치 못해 애간장 태우며 통곡(痛哭)해야 하는 몸부림을 중단할 수 있도록, 너무나 죄(罪)스럽고 부끄럽지만 그토록 그립던 주님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성은교회와 여러분의 가정에 임마누엘(IMMANUEL)로 새로운 은혜(恩惠)와 평강(平康)이 넘치시길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祝願)드립니다. 2021년 5월 성은교회 당회장(堂會長) 불초노종(不肖老從) 피눈물로 드리는 호소문(呼訴文) 성은교회 당회장 목사님 전(前) 상서(上書) 반백년이 넘도록 한결같이 참 목자, 선한 목자로 책임 목회를 감당하시며 양떼들로 하여금 천국 들어갈 믿음을 알차게 가꾸어 주시고 영광스런 결실을 이루도록 불철주야 노심초사 하시는 당회장 목사님!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성은교회는 하나님의 목적 있는 섭리가운데 세우시고 붙들어 쓰시는 당회장 목사님을 통해 진리 정통하고 성령 충만한 교회로 계속 부흥 성장하며, 지역 복음화와 농어촌교회 지원과 세계 선교에 힘써 왔습니다. 또한 성은동산 봉헌으로 한국교회의 영적 부흥과 선교 확장에 쓰임 받는 보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주일 ‘당회장 목사님의 피눈물로 드리는 호소문’을 접하면서 우리의 믿음이 부족하고 연약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지 못하고 있음을, 영적 가치와 성과를 위한 일보다 세상일에 더 열심을 내고 있음을, 초대교회와 같았던 옥수동 성은교회에서의 처음 사랑과 열정이 식어있음을, 당회장 목사님의 아픔과 괴로움을 외면하고 그 심정을 헤아려 드리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 통회자복 합니다. 당회장 목사님께 송구하고 죄송합니다. 그럼에도 간곡히 요청 드립니다. 우리들은 부족하고 무지몽매하나 당회장 목사님께서는 우리들의 목자이시니 어떠한 경우라도 살리는 생명의 말씀으로 우리들을 계속해서 양육하여 주시기를 간청드립니다. 서서 말씀을 전하기 힘드시면 앉으셔서 하시고 앉으셔서도 힘드시면 누워서라도 전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예수그리스도가 머리되신 성은교회에서 당회장 목사님은 우리의 심장 같으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우리 영혼을 사랑하시며 성은교회 신도 한 사람도 낙오하지 않고 천국 백성으로서의 자격을 갖추는데 일평생을 헌신해 오셨습니다. 사랑하는 우리의 목자 당회장 목사님! 우리들을 목자 없는 양같이 버리고 떠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참으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눈먼 양들을 끝까지 인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당회장 목사님처럼 하나님 말씀에 정통하며 성령님의 다양한 은사와 능력이 충만하여 당회장 목사님께 선한 목회를 잘 배울 수 있는 진실 되고 충성스러운 목회자를 구해 주십시오. 그래서 때가 되어 후임목사로 세워지면, 선대에 이어 다음세대도 성은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을 잘 받들어 하나님 나라 확장에 맘껏 쓰임 받는 교회되게 하여 주십시오. 이를 위해 성은교회 신도 모두가 합심해서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뜻하신다면 공고, 추천, 지명 등 다양한 방법으로 후임목사 청빙위원회도 본격적 역할을 할 것입니다. 성은교회가 하나님 뜻하심과 역사하심 가운데 후임목자 문제로 분란과 혼란을 겪지 않고 질서 있게 진행되어 세습이 판치고 금전이 오고가는 부덕의 세태에 아름다운 모본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는 후임목사님이 세워진다고 해서 당회장 목사님을 다시는 못 보게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원로 목사님으로 진리와 생명의 말씀을 계속 듣게 되는 복을 누리게 하여 주십시오. 세계 선교와 참된 목회자 양성에도 달려갈 길 마치는 그 날까지 맘껏 감당할 수 있도록 교회적 지원도 계속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우리의 목자 장재효 목사님! 목사님의 외롭고 서러운 고충, 사명의 무게로 애간장 태우시며 때로 통곡하시고 주야로 번민하며 몸부림치시는 그 심정을 우리는 제대로 헤아리지 못할지라도 주님은 다 아실 것입니다. 우리는 합심으로 기도하며 당회장 목사님께 배운 대로 ‘믿어지는 믿음’ 가운데 영적 신앙 고수와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으로 교회적 사명 완수에 최선을 다해나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붙들어 쓰시는 당회장 목사님께서 오대양 육대주를 맘껏 누비시며 많은 구령성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눈동자같이 지켜주시길 바라며 저희는 항상 기도하겠습니다. 2021년 5월 8일 성은교회 교인대표 총무장로 서윤석 이하 성령님의 하나되게 하심따라 교회 제직원 일동 일심 동의함 ‘목회자의 사명’에 대한 단상(斷想) 목회자는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불러내사 책임 지워 맡기신 양떼를 위해 세움 받은 직분입니다. 그래서 선한 목자는 양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책임목회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목회의 궁극적 목적은 양들로 내세 소망의 확신과 신령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인정받고 쓰임 받음으로 은총의 대상이 되게 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목회 방침도 하나님 절대주의 신앙에 입각하여 말씀에 붙잡히고 성령에 이끌리는 영적 체질 신앙으로 바르게 가꾸어, 목자 자신에게보다 주님께 더욱 요긴한 존재들로 길러 드려야 할 것입니다. 목자는 양떼를 위하여 세움 받은 자입니다. 수제자였던 베드로에게까지 예수님에 대한 사랑의 깊이를 세 번씩이나 확인하신 다음에야 비로소 양떼를 맡기셨던 주님의 심정을 헤아려야 합니다. 주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분의 심정을 가진 목자라야 양떼를 소중히 여기며 책임 목회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51년 전에 성은교회를 개척, 오늘에 이르도록 이상과 같은 사명 의지적 일념으로 애써온 것은 사실이나 교회 부흥과 선교 확장은 순전히 우리 주님의 경륜하시고 섭리하심을 따라 성령님의 불같은 역사로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또한, 가장 부족한 종을 예수님처럼, 또는 사도 바울같이 생각하며 기대하고 순종함은 물론, 재산과 생명을 바쳐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온 성은 양떼의 충정 어린 공덕으로 알고 눈물겹도록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참으로 성은교회야말로 목양지간에 하나로 결속, 혼연일체가 되어 오로지 우리 주님 더 잘 섬기는 기쁨을 위하여 이해하고 협력하며 순교적 사명 의지로 교세 확장과 인류 복음화를 위한 선교에 합심 전력하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성은교회를 ‘진리정통하고 성령충만하여 그리스도의 심장이 불타는 사명감’으로 오로지 구령성과를 위해 다양한 은사와 영역으로 교회부흥과 선교확장을 힘써 전심전력할 수 있는 후임목회자를 온 교회가 기도로 간구하고 있습니다. 2021년 9월 성은교회 당회장 장 재 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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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신앙고백과 은혜보장다윗의 신앙고백과 은혜보장 (역대상 29장 6~19절) 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17절) 또 내 아들 솔로몬에게 정성된 마음을 주사 주의 계명과 권면과 율례를 지켜 이 모든 일을 행하게 하시고 내가 위하여 준비한 것으로 성전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라(19절) 다윗은 성령 충만함으로 영생의 소망이 가득하고 하나님께 은혜의 감사를 드린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더 잘 섬기며 살고 싶다는 고백을 하며 살았습니다. 다윗은 목동 신세였는데 이스라엘의 2대 왕으로 택함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습니다. 다윗이 왕이 된 것은 자기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이 생각, 말, 행동 즉 신앙인격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알아보는 지혜와 자기가 얻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고백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 하나님께 인정받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을 버리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사울을 세우셨습니다. 사울은 초기에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순종하였습니다. 그러자 그의 길은 평탄했으며, 유대를 괴롭히던 주변 나라를 쳐부수고 그 나라의 특산물을 조공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높이고 내세우는 교만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삼상15:7절 이하에 보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는데도 사울은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였고, 전쟁의 전리품들을 자기 몫으로 챙기는 죄를 범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회개할 기회를 3차례나 주었지만,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능멸했습니다. 사무엘은 이러한 사울에게 “하나님이 버리셨다”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사울에게 주신 성령을 거두어가시니까 악령이 들어갔고, 결국 전쟁에서 화살에 맞고 부하에게 죽여 달라 애원했으나 듣지 않자 칼끝을 가슴에 대고 스스로 찔러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사울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이유는 자신을 높이는 교만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죄를 범하였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2대 왕으로 다윗을 세우심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를 보내 이새의 아들 중 택한 자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2대 왕으로 세우게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왕을 세우는 것은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시고 정하셔서 세워 가십니다.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새의 집에 가서 큰아들부터 일곱째까지 그 앞을 지나가게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삼상16:11 이하 말씀을 보면 사무엘이 이새에게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하고 묻습니다. 이새가 대답하되 “들에서 양 떼를 돌보고 있는 아들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급히 다윗을 데려오니 사무엘이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임재를 상징하는 예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베들레헴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양치기로 이새의 8번째 아들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의 2대 왕으로 선택된 것입니다.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울이나 삼손에게는 간헐적으로 필요할 때 성령으로 붙들어 쓰셨으나 다윗은 날마다 성령이 함께하시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 대해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흡족해하셨습니다. 이는 사도행전에 기록하기를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행13:21~22절)고 다윗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양 떼를 지키기 위해 맹수와 싸우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민족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으로 쓰임 받을 것을 아셨기에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신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다윗을 높여주심 다윗이 블레셋과의 전쟁에 참여 중인 형들을 찾아갔을 때 온 이스라엘 군인들이 상대편 골리앗 장군 때문에 떨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이스라엘이 떨고 있는 것을 보고 기가 막혔습니다. 이때 다윗은 골리앗을 물리칠 사람을 사울이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들었습니다. 사울은 골리앗을 물리치는 자에게 많은 재물로 부하게 하고 자신의 딸을 주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다윗은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블레셋이 멸시하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사울 왕을 찾아가 자신이 골리앗을 물리치겠다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노끈과 차돌 5개를 주워서 골리앗을 향해 나갔습니다. 그에 맞선 골리앗은 완전무장을 하고 나옵니다. 이에 대해 다윗은 골리앗을 향해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17:45절)고 담대하게 외칩니다. 골리앗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 다윗은 그를 향해 빨리 달리며 물맷돌을 던졌고, 물맷돌이 골리앗의 미간에 정확히 박혀서 골리앗은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다윗이 달려가 골리앗의 투구를 벗기고 그를 죽이며 목을 베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들의 진영을 노략하며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전쟁은 온 이스라엘에게 다윗이 왕이 될 사람으로 알려지는 기회였습니다. 이날 이후 백성들은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고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다윗에 대한 백성들의 신뢰와 기대감이 많아지도록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 왕의 딸 미갈과 결혼해서 사울의 사위가 되었으며, 또 천부장의 직책과 군대 장관까지 지위가 올라갔습니다. 백성들이 다윗을 좋아하게 되자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여러 차례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생명을 보호하시고 지켜 주셨습니다. 지금 코로나19가 아무리 유행해도 하나님께 이끌림을 받고 있는 사람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들어가서 하나님이 쓰시기 위해 준비시키는 사람은 생명의 위협에서 안전하게 지켜 주실 것입니다. 4. 다윗왕의 신앙고백 다윗이 왕이 되어 40여 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하나님은 다윗과 늘 함께하셨습니다. 다윗은 노년에 자신에게 주셨던 모든 은혜들을 하나님께 찬송하며 감사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에 부담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성전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손에 피가 많이 묻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것을 허락하지 않으셨고 아들 솔로몬을 통해 성전을 짓게 하셨습니다. 이에 본문 6절 이하에 다윗이 전쟁의 모든 전리품을 하나님 앞에 드려서 성전 지을 재료로 준비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온 백성이 즐거운 마음으로 자원하여 드린 것을 기뻐하였으며, 다윗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이는 백성들도 다윗과 같은 믿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0절 이하에 다윗은 온 회중 앞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며, “천지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성전을 건축하려고 모은 모든 것이 주의 손에서 얻은 것이며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아들 솔로몬에게 정성된 마음을 주시고 주의 율례를 지켜 하나님 앞에 성전을 잘 지어 봉헌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 기도를 드리며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권면의 말씀) 다윗은 목동 출신으로 주목받지 못한 자였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베푸신 그 은혜를 잊지 않고 한평생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다윗의 신앙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세상 성공을 위해 헛수고하지 말고 다윗의 신앙고백처럼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께서 마음껏 붙들어 쓰실 수 있도록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다윗은 성전 건축에 쓸 예물을 자원하여 드리면서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라”(14절)고 기뻐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릴 때는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야 할 것입니다. 생사화복, 성공실패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달린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합시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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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심기도의 응답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6절)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18~19절) 기도는 참 중요합니다. 각자가 기도하다 보면 자기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세워지고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믿음의 담력이 충만히 쌓여지기 때문입니다. 목자와 교회, 그리고 한 영혼을 위해서 모두가 합심해서 기도하면 그 믿음의 기도를 드리기 때문에 하나님이 분명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금번 우리 교회에서는 지정된 직분자들이 교회에 나와 합심해서 기도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는 기도의 불을 다시 붙여서 모두 다 영적인 힘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저 또한 이제 해외로 선교하러 가야 하는데 코로나19에 걸리는 성도들이 없도록 하루에도 여러 번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우리 기도를 들어 주신 것처럼 앞으로도 들어 주실 줄 믿고 열심히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1. 한 영혼에 대한 예수님의 마음 본문 말씀은 한 영혼에 대한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는 일 즉, 천국 가길 원하는 사람을 지옥으로 떨어지게 하는 사람에 대해 예수님께서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다 달고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낫다”(6절)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낫다”(8~9절)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실족하게 한 범죄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강하게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10절에 보니,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뵙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볼품없는 사람, 그저 이 세상 기준으로 볼 때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그런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라는 것이지요. 그 사람이 성령 받았다면 그 사람에게도 성령을 호위하며 수종 들기 위한 천사가 같이 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온 천사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뵙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또한, 한 영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12~13절)는 말씀 속에 예수님의 마음이 엿보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한 영혼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얼마나 크신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14절)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 마음처럼 연약하고 힘없는 한 영혼에 대해 세상 조건으로 판단해서 무시하거나 업신여기고 아주 홀대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2. 형제가 죄를 범할 때 취해야 할 행동 예수님께서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15~17절)고 말씀하시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려 주십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우리는 교회 다니는 믿음의 형제가 죄를 지은 것을 알거든 먼저 예수님의 사랑과 심장을 가지고 그 사람이 자기의 지은 죄를 깨닫고 회개하도록 권면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그 사람이 나를 무시하고 듣지 않는다고 해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한 영혼의 가치가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가치는 이 천하 가치보다 한 사람의 영혼이 더 귀하고 값지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가장 귀한 아들을 희생시켜 지옥 가는 영혼을 대속의 은혜로 천국 길을 열게 하신 것이지요. 이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는다면 ‘증인의 입으로 확증하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 사람의 죄를 알고 있는 사람을 데리고 가서 그 사람의 죄에 대해 드러내고 진지하게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권면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면 교회에 고합니다. 교회의 지도자인 목자가 권면하는 것이 마지막 코스입니다. 목자의 말을 듣고 회개하면 그 영혼을 건지는 것이지만 만일 듣지 않는다면 그 영혼은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잠29:1절)”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듣지 않는 사람에 대한 엄중한 경고 메시지입니다. 듣고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깊이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3. 합심기도의 응답 우리에게 기도를 하게 하시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요한복음에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절)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지 아니하였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어 아버지께로 가시면 예수님 이름으로 구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구하는 것을 받을 것이며, 그 응답을 받은 기쁨이 충만할 것이기에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또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14:14절)”고 거듭 언급하신 것은 그만큼 기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게 되면 반드시 예수님께서 이루어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합심기도는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19절)며 합심기도의 중요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 성취된 사건이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헤롯 왕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였습니다. 또한, 유대인들이 그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죽이려고 잡아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때 교회는 다 같이 베드로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헤롯이 끌어내 죽이려 하던 그 전날 밤에 하나님의 천사가 감옥에 나타나서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고 옥문을 빠져나오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마가 다락방을 찾아가서 다시 사역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교회가 베드로의 안전을 위해 합심해서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베드로가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성도들의 합심 기도에 응답하신 것입니다. (권면의 말씀)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20절)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성도들에게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는 자와 함께하시며 그 기도를 들으시고 행하십니다. 두 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 기도하면 예수님이 함께 그 자리에 있어 주십니다. 그게 임마누엘입니다. 헤롯 왕이 베드로를 죽이려고 감옥에 넣었지만 성도들의 간절한 합심기도가 그를 살린 것처럼, 우리도 한 영혼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담아 기도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못하실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18절)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믿고 모여서 합심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기도드린다면 반드시 응답하실 것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시는 기쁨과 기도의 응답으로 해결 받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기도가 또 어디에 있을까요?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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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양은 내 음성을 듣고 따른다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25~26절)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27~29절) 본문 말씀에서 이스라엘 절기인 수전절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향해 그동안의 행적에 대한 여러 의혹을 품고 당신이 그리스도인지 분명히 밝히라고 질문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수많은 기적을 보여준 증거들과 가르침을 믿지 아니한 것을 책망하십니다. 이는 그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더 이상 백성들을 미혹하지 말라는 도전적인 질문이었음을 미리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을 향하여 “너희는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않는다”고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우리와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 설명합니다. 즉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양이 아니며 예수님을 믿어야 양이라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겪어보니까, 성령을 받지 못한 상태인데도 잘 믿는 척했던 사람이 마귀에게 속아서 지옥으로 끌려가고 있는데 그걸 알지 못하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어떤 성도는 예수님을 똑바로 알아보고 예수님께 완전히 맡기며 사는 것을 봅니다. 누가 예수님의 양일까요? 본문 말씀을 오늘 여러분들에게 왜 하나님이 일러주며 선포하게 하시는지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유대인들의 도발적 질문과 예수님의 답변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진짜 그리스도로 오신 분이면 우리에게 밝히 말씀해 달라. 언제까지 우리를 의혹 가운데 혼란에 빠져 있게 하겠느냐”고 도발적인 질문을 했습니다(24절).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단호하고 간단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25~26절)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셨습니다. 한 사례로 예수님은 맹인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요한복음 9장). 예수님은 나면서부터 맹인인 한 사람을 보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눈을 씻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 맹인은 일어나서 온 마음을 다하여 실로암 못을 찾아가 눈을 씻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가서 물로 눈을 씻고 밝은 눈으로 처음 세상을 보았을 때 이 맹인은 얼마나 황홀했겠습니까? 그는 눈을 뜬 것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통하여 자기 영혼이 천국 갈 소망의 믿음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맹인에게 행하신 것과 같은 기적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셨기에 자신이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데도 질문하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그 많은 기적을 보고도 믿지를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향해 더 이상 미혹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병 고침을 많이 받고 귀신이 쫓겨나가는 등 많은 기적을 보면서도 유대인들처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못한다면 구원 얻은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2. “내 양이 아닌 자는 믿지 않는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26절). 이 말씀은 참 무서운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가룟 유다가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 대해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요6:70~71)고 설명하십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를 제자로 택하시고 회계 업무를 맡기시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호칭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기껏 선생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돈을 예수님보다 훨씬 더 좋아했고 급기야 예수님을 은화 30개 받고 팔아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에 대해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세상에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마26:24)고 한탄하셨습니다.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 영혼이 지옥에 갈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양이 아니었음을 성경은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척해도 예수님의 양이 아닌 자는 영생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내 양은 내 음성을 듣고 따른다” 예수님께서는 목자와 양의 비유로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27절)고 설명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되며 예수님은 그들을 다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 예수님과 제자들의 만남의 장면이 나옵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에 대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고 고백하자 세례요한의 제자 두 사람이 그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와서 보라” 말씀하시니 그날 하룻밤을 예수님과 같이 지나면서 이 분이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제자 중 하나였던 안드레는 형제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오고, 예수님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며 그를 제자로 부르십니다. 또 예수님은 빌립을 만나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고 빌립은 예수님을 따릅니다. 빌립은 자기 친구 나다나엘을 찾아가 예수님을 소개하고 예수님께 데려갔습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보시고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고 칭찬하십니다. 나다나엘이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하고 묻자 예수님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고 대답하십니다. 그 말씀 앞에 나다나엘은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굴복합니다. 이 사람이 바돌로매로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그의 양을 알아보시며 그 양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믿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 ··· ‘영생’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믿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실까요?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28~29절)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자기 죄를 회개함으로써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힌 죄악의 담을 허물고 예수님과 하나가 됐을 때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얻은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영생(eternal life)’을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또한, 진리를 깨닫고 회개해서 성령을 모시고 생명책에 이름이 등록된 사람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고, 아무도 하나님 아버지 손에서 그를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권면의 말씀) 누가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고, 베드로는 밤이 새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했으나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해 한 번 더 그물을 내렸고, 결국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많이 잡게 됩니다. 베드로는 자기 생각, 자기 경험을 버리고 말씀에 순종한 결과 기적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하여 안드레, 야고보, 요한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보고 그분에게 자신의 생애를 온전히 의탁하며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충성스런 양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충성스런 양으로 쓰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가룟 유다처럼 믿는 척해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결국 지옥을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오직 주님만 따라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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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가 지켜야 할 경계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6~7절)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13절) 세상이 여러 가지로 힘든 일들이 많고 또 코로나로 인해서 생명을 잃게 되는 사람이 날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도하심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눈동자 같이 보살피시고 영원한 하늘나라 후사로 삼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무한하신 사랑을 충만하게 받아서 신령한 소망 가운데 기뻐 뛰며 할렐루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쓴 편지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이 저지른 지난 과오들을 몇 가지 실례를 들어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이 본보기가 되고 말세를 사는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한 내용입니다. 그런즉 우리는 본문 12절 말씀처럼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경고를 깊이 새겨들어야 할 것입니다. 1.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 본문 1~2절은 출14:21절 이하 기록된 말씀을 인용한 내용입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 하며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모세와 아론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애굽 땅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시니 결국 바로가 항복하게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이 비로소 애굽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고 있을 즈음 저 뒤에서 바로 왕의 군대가 쫓아오고 앞에는 홍해 바다가 가로막고 있는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바다가 갈라지게 하여 무사히 건너게 하신 반면, 애굽 군대는 모두 몰살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은 눈동자같이 보호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유린했던 애굽 사람들에게는 무서운 징벌을 내리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편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바다 가운데로 안전하게 지나게 하신 것이며 애굽 군대가 무장하고 달려와도 지켜 주신 것이었습니다. 이 일에 대해 사도 바울은 그 바다 가운데로 지나는 것을 ‘세례 받은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2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와 합하여 애굽에서 나와 바다를 건넘으로 세례를 받게 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받은 자녀로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신 것처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바로 그 하나님이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2. 신령한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 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다 같이 신령한 음식을 먹었습니다. 이것은 자기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까지 광야 40년 동안 안식일을 제외하고 매일 아침 하나님이 내려주신 음식이 바로 ‘만나’였습니다. 그리고 신 광야를 거쳐서 르비딤이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그들이 마실 물이 없어 백성이 원망하자 모세가 하나님께 엎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출17:6)고 명령하십니다. 그 말씀을 듣고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 물이 쏟아져 넘쳤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그들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이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말합니다(4절).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자신에 대해 친히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7:37~3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반석에서 나온 물을 마신 것처럼 오늘 우리 믿는 사람들도 예수님께 나아와 생명수를 마셔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성령이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을 천국으로 이끌어 가 주실 것입니다. 3.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저지른 지난 과오들을 몇 가지 실례를 들어 말세를 사는 우리에게 본보기로 삼자고 말하면서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기를 권면하였습니다. 첫 번째로(7절), 출32:1~6절 말씀을 인용하여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 간 지 40일이 되었으나 기별이 없자 애굽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인도할 우상 신을 만들어 달라고 아론에게 요구합니다. 아론은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백성들과 먹고 마시며 우상을 숭배하는 과오를 저질렀습니다. 이 일에 대해 하나님은 크게 진노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과오를 본보기 삼아 우상 숭배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유 명절이 되면 조상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예수님 보좌 앞에서 심판받게 됩니다. 따라서 제사 드리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어리석은 일로 우상 숭배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8절), 민25:1~9절 말씀을 인용하여 음행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땅에 머물러 있을 때의 일입니다. 그 모압에 남자들이 숨어들어 가서 우상에게 절하고 모압 창녀들과 음행하는 간음죄를 지었습니다. 이 일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염병으로 이만삼천 명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우리도 그들과 같이 음행해서는 안 되며 자신을 살펴 거룩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세 번째로(9절), 민21:4~89절 말씀을 인용하여 시험하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불편한 광야로 들어가려 하자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였습니다. 원망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불뱀을 보내 물게 하여 죽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죄를 회개하자 놋뱀을 만들어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보면 살게 해 주셨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4~15)고 설명하십니다. 이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모두 살아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로(10절), 민14:26~38절 말씀을 인용하여 원망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12명의 정탐꾼을 보냈는데 40일 동안 정탐을 마치고 돌아온 10명의 정탐꾼들이 말하길 “우리가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고 보고하였습니다. 이에 백성이 이 말을 듣고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다며 원망하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오늘 우리도 절대로 주변에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어리석고 잘못했기 때문임을 깨닫고 회개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권면의 말씀) 오늘 본문 말씀에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한 것이라”(11절)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실패한 사람이 저지른 과오를 교훈으로 삼아서 동일한 실패를 하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특별히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원망과 불평을 하기 쉽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13절)고 격려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그러므로 어떤 시험이 와도 여러분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죄를 저지른 일을 거울삼아, 우리는 시험에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시길 축원합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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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이정우 목사 안동서부교회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는 ‘진정한 참된 나’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또한 ‘나’를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진정한 나의 참모습이 아닌 거짓된 ‘나’, 왜곡된 ‘나’, 굴절된 ‘나’, 잘못 파악한 ‘나’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또, 내가 판단하는 ‘나’와 다른 사람들이 평가하고 있는 ‘나’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행복한 ‘나’와 불행한 ‘나’, 풍요로운 ‘나’와 빈곤한 ‘나’, 치유된 ‘나’와 상처 입은 ‘나’, 안식과 쉼이 있는 ‘나’와 피곤에 지쳐있는 쫓기는 ‘나’가 같으면서도 다릅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확신이 넘치는 희망적인 내가 있는 반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좌절감과 패배감에 젖어있는 나도 있습니다. 한없이 누군가로부터 위로와 사랑과 인정과 존경을 받고 싶은 내가 있는가 하면 누군가를 위로해 주고 싶고 사랑해 주고 싶고 인정과 존경을 주고 싶은 나의 모습도 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잃어버린 나의 얼굴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얼굴을 찾아 일생을 바치기도 합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아직 만나지 못한 ‘나’를 찾아 헤매기도 합니다. 베스트 셀러였던 잭 캔필드의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라는 책에 소개된 일화입니다. 미국의 한 사회학과 교수가 학생들에게 과제를 냈습니다. 볼티모어의 유명한 빈민가에 사는 청소년 200명의 생활환경을 조사한 뒤 그들의 미래에 대한 평가서를 내는 일이었습니다. 학생들의 평가는 동일했습니다. “이들에게는 절대로 미래가 없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25년이 지났습니다. 다른 교수가 이 연구 결과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다시 과제를 냈습니다. “25년 전의 청소년들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조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사망하거나 이사를 한 20명을 뺀 180명 중 176명이 대단히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었고, 변호사, 의사, 사업가 등 상류층 인사들도 많았던 것이었습니다. 교수는 추가로 “이유를 알아보라”고 학생들에게 지시했습니다. 학생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한 여(女) 선생님 덕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수소문 끝에 그 여교사를 찾아낸 교수가 “도대체 어떤 교육 방법을 썼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이미 늙어버린 여교사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정말 간단한 일이었다. 나는 그 아이들을 사랑했다”라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녀는 자기의 진심 어린 사랑을 통해 잃어버렸던 그들의 존재감을 찾아 준 것입니다. 부정적인 ‘나’가 아닌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나’를 찾아 그들 모두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사랑한다!”라고 자주 말해야겠습니다. 먼저 나 자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하나님의 사랑은 이유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그런 까닭에, 그런 이유 때문에(Because)” 이루어지는 ‘Because’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의 이유나 까닭이 흔들리면 우리 마음에 비극만 남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Because’의 사랑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 주어지는 사랑입니다. 그렇기에 이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그분은 나 하나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셨고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으며, 나의 소망을 위해 부활하신 분입니다. 무르익어 가는 이 가을이 나의 위대함을 예수님 안에서 찾으며 기도하는 가을이 되길 소망합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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