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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김천시청소년어울림마당 ‘일취월짱’ e-스포츠 대회▲2021 김천시청소년어울림마당 “일취월짱”e- 스포츠 대회 후 기념사진.(사진=김천시) 김천시(시장 김충섭)에서는 지난 25일 김천시청 3층 대강당에서 2021년 청소년 어울림마당 ‘일취월짱’ e-스포츠 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코로나19로 학업 및 대외활동에 어려움이 많았던 청소년들에게 비대면 e스포츠대회 참여 기회를 제공하여 일상생활의 활력을 높였으며 준결승전 및 결승전은 유튜브 채널(김천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을 통해 생중계했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4강에 진출한 팀만 대회 현장에 참여하였으며, 좌석 간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 등 방역수칙을 철저히 준수하며 진행되었으며, 1, 2, 3등 팀에는 ‘함께 심는 사과나무’의 후원으로 김천지역상품권 시상금 각 50만원, 30만원, 20만원씩 수여되었다. 이번 대회 우승팀 팀원들은 “코로나19로 자유롭게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고 청소년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의 장도 없어서 아쉬웠는데 이번 행사를 통해 비대면이지만 마음껏 e-스포츠도 즐기고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어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충섭 김천시장은 “코로나19로 인해 행사의 규모가 축소되어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 오늘 행사가 그간 학업과 코로나19로 지치고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떨쳐버리고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청소년들의 큰 축제의 장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예진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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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7‧끝)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7‧끝)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김정숙 전도사(金貞淑, 1880~1969) 목차 서론 1. 김정숙, 출생과 결혼 2. 최초의 순교를 목도한 시댁 3. 여성복음전도의 선구자 .............................................. 7. 안동교회 최초의 전도사 8. 경안노회 여전도회 연합회 리더 9. 일제에 저항한 애국운동가 10. 평신도 사역자 결론 10. 김정숙, 평신도 사역자 1934년 12월 17일 오후 4시 경안노회 주관으로 한국선교 50주년 희년기념식 및 기념축하예배가 안동교회에서 거행되었다. 크고 작은 축하기를 들은 안동교회, 안기교회, 신세교회 교인과 주일학교 학생들 약 1,000여 명은 찬송을 부르며 시가지를 행진하며 전도지를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4시 30분 다시 안동교회로 모여 경안노회 만세를 삼창하고 기념식을 마쳤다. 이날 오후 7시에 시작된 희년 축하예배 시 안동교회 악대의 주악과 찬양이 있었고, 권찬영 선교사의 설교 후 표창식이 있었다. 이날 20년 이상 경안노회 경내의 교회에서 시무한 교역자 12인 중 여성으로서는 김정숙 전도사가 유일했다. 참고로 12인으로는 김영옥, 권찬영, 김인옥, 강석진, 장사성, 김우일, 권수백, 김종수, 강우근, 권중한, 김익현, 김정숙 등이었다. 김정숙 전도사는 1934년에 이미 20년 이상 교역자로 봉사한 것으로 인정받은 것으로 보아 적어도 1914년 이전부터 노회가 인정하는 여성 교역자였음에 틀림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김정숙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가 세례받은 후 1년이 지난 1912년부터 생활의 근거지를 풍기에서 안동으로 옮겨 본격적으로 선교사들의 복음 사역을 도왔다고 증언한다. 그는 회심 이후 전도부인으로 투신하여 헌신한 여성 사역자였다. 또한 평양여자성경학원을 졸업한 이후에는 교회와 노회를 위해 충성을 다했다. 이처럼 그는 경안노회 여성 지도자 중에서도 가장 앞선 선각자(先覺者) 중의 한 사람이었다. 교역자로 봉사하던 김정숙 전도사는 1937년, 15년 동안 섬겼던 안동교회에서 사임함으로써 전도사직에서 은퇴했다. 이때 그의 나이는 58세로 아직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도사직에서 은퇴한 것이다.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민족말살정책의 하나로 내선일체(內鮮一體)와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 등을 강요한 일제는 황국 신민서사의 암송도 강요했다. 특히 1937년 10월, 총독부 학무국에서 교학쇄신(敎學刷新)·국민정신 함양을 목적으로 보급했다. 학교·관공서·은행·회사·공장·상점 등 모든 직장의 조회와 각종 집회 의식에서 황국 신민서사는 낭송이 강요되었다. 다시 말해 이때는 일제의 민족말살정치가 극성기에 달했던 시절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를 섬기는 교역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특히 김정숙 전도사는 안동 3·1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민족 운동자였다. 이러한 김정숙 전도사의 이력은 일제의 눈에 가시와 같았을 것이며, 일제는 총력을 다해 황국신민화 정책에 걸림돌이 되는 교화와 애국자들을 탄압하고 제거했을 것이다. 임학수 목사도 일제 말엽의 기독교 박해(迫害)로 사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는 교회에 김정숙 전도사의 거취에 무언 혹은 유언의 압박을 가했을 가능성이 있다. 아마 김정숙 전도사는 자신이 교회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따라서 김정숙 전도사는 스스로 사임의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숙은 은퇴 후 교역자 신분으로서가 아니라 평신도로 안동교회를 섬겼다. 이와 같은 사실은 앞서 언급한 김정숙의 사임 이유를 지지하게 한다. 더 이상 교회에 부담을 주지 않는 평신도 신분으로 김정숙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거룩한 일이라면 하나님과 교회의 부름 앞에 철저히 순종하며 마음과 정성을 다해 동참했던 것이다. 김정숙은 안동교회의 집사와 권찰로 봉사하다가 69세인 1948년에는 권사로 피선되었고, 1949년부터 1955년까지 여장년부 부장으로 충성을 다했다. 그는 안동교회 전도사직을 내려놓고도 평신도로 돌아가 교회를 섬기는 것을 중단하지 않았던 것이다. 김정숙은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은 어떤 직책이든지 최선을 다해 감당한 신실한 하나님의 일꾼이었다. 그래서 1963년 1월 20일에 열린 당회는 20년 이상 안동교회를 위해 봉직한 것을 기념하는 예식을 갖기로 결의했는데, 대상자는 김광현 담임목사, 김재성·조흥노·이홍구 장로, 그리고 김정숙 전도사 등이다. 안동교회는 김정숙의 전도사 사역과 평신도 사역을 남녀 차별 없이 존중했던 것이다. 11. 결론 김정숙은 보신(保身)의 길을 갈 수 있었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일평생 험지(險地)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한 믿음의 선배다. 32세가 되던 1911년, 그는 안동선교부 선임 오월번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은 이후 안동지역의 노회와 교회를 섬기다가 1969년 90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안동지역 여성 사역의 개척자였다. 또한 그는 경안노회 여전도회연합회가 설립될 때 산파(産婆)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초기 경북 북부지역의 여성 복음화에 초석을 놓은 여성 지도자였다. 특히 김정숙은 1919년 3월 18일에 거행된 안동의 3·1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행동하는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이었으며, 일제 말엽에는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신사 참배를 거절하고 신앙의 절개를 지킨 애국자였다. 그의 강직한 성품과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신앙, 그리고 성령 충만한 전도사역은 교회와 노회의 후배들에게 사표(師表)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김정숙은 그의 후손이 6대 신앙을 지켜 올 수 있도록 초석을 놓은 신앙의 지주(支柱)요 믿음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조사와 전도사, 전도사직을 은퇴한 후에도 평신도로서 무려 15년 동안 안동교회의 권찰로, 서리집사로, 여장년부 부장교사로, 또한 주일학교에서 어린이 사역에도 헌신함으로써 자신에게 맡겨진 크고 작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종이요 일꾼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난 이후부터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순간까지 오직 하나님과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살다 간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김정숙의 일생을 회고하면 할수록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한 사도 바울의 육성이 들리는 듯하다. ▲경안노회 여전도회연합회 10주년 사진. 김정숙 전도사는 경안노회 여전도회연합회가 설립될 때 산파(産婆)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초기 경북 북부지역의 여성 복음화에 초석을 놓은 여성 지도자였다. 연합회의 초대 회장으로 수고한 김정숙 전도사는 두 번째 줄 정중앙에 앉아 있다. 맨 아래 줄 왼쪽에서 네 번째는 역시 경안노회 여전도회연합회의 산 증인인 김점향 권사를 볼 수 있다.(사진8)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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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경상북도 및 김천시 사회조사 실시관내 984가구 표본조사 실시, 47개 문항에 걸쳐 방문 조사 ▲김천시청 전경.(사진=김천시 제공) 김천시(시장 김충섭)는 도민 및 시민생활의 양적·질적 수준을 파악하여 지역개발과 복지시책 추진 등 도정 및 시정의 기초자료로 활용하고자 9.2~9. 17까지 「2021년 경상북도 및 김천시 사회조사」를 실시한다. 올해로 25회째 매년 실시되는 조사로 관내 984 표본가구를 대상으로 하여 조사원들이 직접 방문해 면접조사를 실시한다. 코로나19 예방 및 시민과 조사원의 안전을 위해 이번 조사에서는 인터넷조사(https://www.narastat.kr/gyeongbuk21_i)도 병행 시행한다. 조사항목은 교육, 노동, 환경, 안전 등 개인의 주관적인 생각을 묻는 문항들로 경상북도 공통문항 40개와 김천시 특성문항 7개로 총 47개 문항이다. 경상북도와 김천시의 특성을 반영한 항목을 선정하여 조사하는 만큼 올바른 정책수립을 위한 자료가 제공될 수 있도록 조사자의 정확한 조사와 시민들의 성실한 답변이 요구된다. 정보기획과 김성환 과장은 “조사된 내용은 통계법에 따라 비밀이 엄격히 보장되며 통계 목적 이외의 용도로는 사용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조사원이 코로나19 검사 음성판정 후 조사에 투입되었고 마스크 착용 및 손소독도 철저히 하는 등 예방수칙을 준수하고 귀댁을 방문하니 조사원의 조사원증을 확인하고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예진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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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사명과 순교에 대한 예고베드로의 사명과 순교에 대한 예고(요한복음 21장 15~22절) 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15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18절) 예수님은 베드로를 처음 만나던 날,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요1:42)고 말씀하시면서 베드로가 어떤 사명으로 살아가게 될지를 미리 알려 주셨습니다. 게바는 번역한즉 베드로(peter)로 반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향해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베드로의 신앙고백 바탕 위에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첫 사람으로 쓰임 받는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사명을 받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저주하며 부인한 것 때문에 괴로운 마음과 생활의 염려로 믿음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베드로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를 찾아오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몸으로 세 번째 만나신 장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1. 예전의 생활로 돌아간 베드로 요21:1~14절까지 내용을 먼저 살펴보고자 합니다. 베드로를 비롯하여 여러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는데도 예전의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베드로는 동료들과 함께 갈릴리로 가서 고기를 잡으러 그물을 내렸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허탕을 쳤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하고 물으니 “없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라고 말씀하셨고, 이에 그물을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였는데 잡힌 큰 물고기만 153마리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그 깊은 사랑을 깨닫고 주님을 떠났던 것을 철저히 회개하며 주님께로 다가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떡과 생선을 주셨을 때 제자들은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배신하고 떠난 제자들이었지만, 앞으로 쓰실 계획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실패의 현장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애써 찾아가신 것입니다. 참 눈물겹도록 주님의 사랑이 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떠나서 실패하고 절망 가운데 있는 제자들의 아픔을 예수님께서는 종합적으로 해결해 주시는 분이셨습니다.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습니까? 예수님은 여러분들의 영혼만 천국에 가게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육신이 땅에 사는 동안 먹고 사는 문제도 예수님이 책임져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질문하심 그러고 나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셨고, 베드로가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 어린 양을 먹이라”(15절)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어린양을 먹이라’는 말씀은 ‘양육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또다시 베드로를 향해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같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베드로가 같은 대답을 하자, 예수님은 “내 양을 치라”(16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을 치라’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에 드는 양 떼가 되도록 그들을 잘 가르치고 훈련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세 번째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또 물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또한 주님께서 아실 것이라고 고백하였는데 왜 자꾸 되풀이해서 물으셨을까요? 베드로는 당황했습니다. 위축되고 불안한 마음으로 근심하면서 베드로는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내 양을 먹이라”(17절)라고 다시 말씀하신 것입니다. 3. 베드로의 믿음이 회복되기를 원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왜 세 번이나 같은 질문을 하셨을까요? 이는 베드로가 그동안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제 예루살렘에 가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나를 잡아서 이방인의 손에 넘겨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나서서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며 큰소리를 쳤습니다. 이것은 제자로서 당연한 도리였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며 책망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시고 언약의 피를 흘리셔야 택하신 백성들의 죄가 용서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베드로는 영적으로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26:31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날이 다가올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라며 확신 있게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날 밤 예수님이 잡히신 후 베드로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닭 울음소리를 듣고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심히 통곡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눅22:31~32절에서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이후에 믿음이 떨어질 것을 미리 아시고 그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같은 질문을 하신 이유는 베드로를 사랑하사 예수님과의 관계가 다시 회복되어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하신 것이었습니다. 3. 베드로의 사명과 순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신 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18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베드로가 나중에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지를 알려주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복음을 전하자 하루에 삼천 명, 오천 명이 예수님을 믿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베드로는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갔을 때 “다시는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도 가르치지도 말라”는 제사장들의 경고에 굴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라고 담대히 말합니다. 베드로는 사명을 완수하는 그 날까지 예수님의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로 말미암아 순교하게 됩니다. 마지막에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욕하고 부인한 그 죄책감 때문에 예수님과 똑같이 십자가에 매달릴 수 없다고 생각하여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기를 자청하였습니다. 이 일은 이미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어떠한 죽임을 당할지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권면의 말씀)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한 뒤 절망하여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려 하였으나, 예수님은 그를 사랑하사 관계를 회복하도록 친히 찾아가셔서 복음을 증거 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말씀처럼 베드로는 담대히 복음을 전하며 사명을 감당하였고, 순교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자신의 믿음을 지키며 사명을 받은 직분대로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은 많은 영혼들이 다 구원 얻어 천국 가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하여 우리가 합심 전력해야 합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다는 마음으로 영혼 구원에 내 생애를 바치겠다는 다짐이 필요합니다. 이제 정신 바짝 차리고 이왕 믿으려면 진짜로 믿는 성도가 됩시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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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예배’ 회복하는 교회들, 지난해에 비해 늘어나목회자‧성도 2,000명 대상 설문··· 코로나 이후 ‘현장예배 강화해야’ 45.2% 코로나 이후 ‘신앙‧공동체 소중함 인식’ 60.2% 온라인 예배 경험··· 현장예배 중요성 깨닫게 해 ▲한국성결신문이 여론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코로나 이후 신앙의 인식’ 등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코로나 시기에 주일예배 방법은 ‘현장예배와 온라인 예배 병행’이 48%로 가장 많았다. 코로나19 시국에서 정부의 집합금지와 예배 인원 제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현장(대면) 예배가 점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성도들이 가장 선호하는 예배 형태도 ‘현장예배’인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성결신문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와 함께 성결교회 성도들을 대상으로 ‘코로나 이후 신앙의 인식’ 등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다. 조사 기간은 6월 23일~26일, 성결교단 소속 목회자와 성도 2,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이번 조사에는 목회자 810명(담임목사 609명, 부교역자 201명)과 성도 1,190명(장로 701명, 그 외 489명)이 참여했다. 코로나 시기에 주일예배 방법 먼저, 코로나 시기에 주일예배 방법을 묻는 말에는 ‘현장예배와 온라인 예배를 병행했다’는 응답이 48%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현장예배’(28.5%), ‘온라인 영상예배’(18.5%) 순이었다. 이는 지난해 같은 시기에 비해 현장예배는 10% 증가하고 온라인 영상예배는 15% 줄어든 것으로, 성도들이 현장예배에 점점 더 많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코로나 이후 선호하는 예배 형태도 ‘현장예배 강화’가 45.2%로 가장 높았다. ‘현장예배와 온라인 영상예배 병행’은 43.2%였다. 직분별로는 담임목사, 장로, 권사의 경우 ‘현장예배 강화’를 택한 응답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반면, 부교역자, 집사, 청년의 경우 ‘현장예배와 온라인 영상예배 병행’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이후 가장 큰 신앙적 변화 코로나 이후 가장 큰 신앙적 변화를 묻는 말에는 응답자 중 60.2%가 ‘신앙이나 공동체의 소중함을 인식하게 되었다’고 응답했다. 그다음으로 ‘현장(대면) 예배의 중요성 인식’(55.3%), ‘개인 경건 생활의 중요성 인식’(41.3%), ‘일상 신앙생활 실천의 중요성 인식’(38.6%) 등을 선택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많은 교회들이 주일 온라인 예배를 병행하고 있다고 응답했는데, 여전히 온라인 예배에 대한 ‘불만족’(44.4%)이 ‘만족’(30.7%)보다 높았다. 하지만 젊은 층일수록 온라인 예배에 대한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온라인 예배에 ‘만족’하거나 ‘불만족’ 하는 이유 그런데 온라인 예배에 ‘만족’ 한다는 응답자 중 55.3%는 그 이유로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의 소중함을 일깨워서’를 가장 많이 선택했다. 이는 온라인 예배 경험을 통해 오히려 현장예배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더 깨닫게 되었다는 의미가 된다. 이에 따라 포스트 코로나 시대 목회에는 현장예배에 대한 갈망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예배에 만족한 순기능적 측면은 ‘장소에 제약이 없어서’(40.1%), ‘가족이 함께 예배를 드려서’(26.3%), ‘주일날 시간이 많이 남아서’(16.6%), ‘간편하게 예배할 수 있어서’(12.6%) 순이었다. 온라인 예배에 ‘불만족’ 한다는 응답자는 ‘현장예배만큼 집중할 수 없어서’(62.4%), ‘예배의 현장성과 생동감이 떨어져서’(57.2%), ‘성도들을 직접 만날 수가 없어서’(40.2%), ‘예배는 교회에서 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21.8%)라는 이유를 선택했다. 한편, 코로나 이후 교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에는 ‘성도들의 교제와 공동체 의식 강화’(52.2%) 응답이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예배의 중요성 등 신앙 기본의식 재정립’(41.1%), ‘교회당 중심 신앙생활에서 일상 중심의 신앙실천 강화’(40.9%) 순이었다.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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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 코로나 시국의 교회, 위축돼서는 안된다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1년을 훌쩍 넘기면서, 예배가 제한되고 교회 내 모임이 사라지고 각종 사역을 진행할 수 없는 현실을 맞고 있다. 물론 이제는 어느 정도 온라인 예배, 영상 회의 등에 적응은 되었지만, 온라인이 주는 편리함 때문에 점점 안주하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봐야 할 때다. 또 현장예배와 현장 사역, 모임과 친교를 통해 나누었던 신앙의 열정을 기억해내고 그 회복을 위해 간구하며 방법들을 찾아야 할 때다. 무엇보다 예배든 사역이든 그 목적과 명분이 분명하다면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것을 이어나가고 지켜내고자 하는 담대함도 필요하다. 얼마 전 구미시의 한 연합회에서 선교대회를 개최해서 많은 성도가 참석해 은혜롭게 집회를 마친 적이 있다. 코로나로 인해 집회와 모임이 제한을 받아 부활절연합예배, 6.25 구국기도회 등 주요 행사들이 대부분 취소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대단히 의외적인 행사였다. 왜냐하면, 그 연합회는 20년 넘게 전통적으로 체육대회, 찬양합창제를 주최하며 교회의 연합과 교류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해왔는데, 이 사역들을 진행할 수 없게 되자 이번에 ‘선교 사역’을 새롭게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번 선교대회를 통해 필리핀 지역에 예배당을 건축한다고 한다. 체육대회든, 선교대회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멈추지 않고 사역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여기서 특정 연합회를 드러내려는 것도, 그 사역의 성과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코로나 시국에서 행사를 진행하고자 했기에 반대와 어려움이 많았을 터, 임원진들의 고민과 수고는 짐작할 만하다. 물론 작년과 올해 다른 몇몇 지역에서도 부활절연합예배나 연합기도회, 연합집회 등 크고 작은 행사들이 규모를 줄여가면서 개최된 것으로 안다.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잠시 우리를 위협할 뿐이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일제 치하에서도, 공산주의의 위협 속에서도 생명을 걸고 교회를 지켰으며 예배를 드려왔다. 또한, 하나의 교회가 할 수 없는 사역들을 교회들이 연합해서 복음 전파 사역을 감당해왔다. 그래서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 교회가 사회 안에 존재하는 것은 맞다. 사회에 대한 책임감, 그것 역시 결코 가볍지 않다. 전도의 문이 막힐 수 있기에 사회에서 모범을 보여야 하고, 국가의 정책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 점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교회는 영적 리더자의 사명이 있다. 교회의 역할에 대해 사회에 가르쳐야 하고, 국가의 위기에서도 교회의 예배와 기도를 통해 그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예배하는 공동체이기에 어떤 이유로도 예배를 금할 수는 없다. 또 기회를 얻든 못 얻든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했으니, 우리가 본질에만 충실하다면 각종 사역도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아직 남아 있어 매사에 조심스러운 시기이다. 그러나 하반기부터는 교회의 현장예배가 더 뜨겁게 드려지고 연합회 사역, 선교 사역들도 더 활성화되어서 교회가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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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한의마을, 키오스크 도입을 통해 이용객 편의 증진대기 시간과 처리 시간 단축으로 이용객의 편리 증진 영천시시설관리공단(이사장 김재훈, 이하 공단) 소속 사업장인 한의마을은 이용객들의 편의 증진을 위해 키오스크를 도입했다고 밝혔다. 기존 한의마을 매표소 위치로 인해 불편을 겪던 이용객들의 고충을 해결하고자 족욕체험관, 한방비누 체험관에 각 1대씩 키오스크를 설치했다. 따라서 족욕과 한방비누 만들기 체험을 이용하고자 하는 이용객들은 2층 매표소까지 갈 필요 없이 해당 체험관에서 바로 매표를 할 수 있게 됐다. 또한, 대기 시간과 처리 시간이 줄어들고 정확한 발권으로 이용객들의 편리함이 증진됐다. 김재훈 이사장은 “키오스크가 낯선 이용객들을 위해 안내원 또한 상주하여 있다. 항상 시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한의마을을 찾아주신 시민분들의 편안한 관람과 체험을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전했다. 한편 한의마을 전시체험 및 한옥체험관은 현장 예매 및 인터파크 티켓에서 예매가 가능하며, 6월 24일 목요일에는 한의마을 주차장에서 목요장터가 개최될 예정이다. 이혜경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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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시 장기거주불명자 주민등록 사실조사 실시행정안전부, 5년 이상 장기 거주불명자 대상 최초 ▲영천시청 전경. (사진=영천시 제공) 영천시(시장 최기문)는 5월 말까지 거주불명자에 대한 관리 강화와 주민등록의 정확성 제고를 위해 `2021년 주민등록 장기 거주불명등록자 사실조사`를 실시한다. 이번 조사는 조사대상의 특성과 코로나19 상황 등을 고려해 관련 공부를 통한 비대면 서면조사로 실시되며, 행정안전부에서 1차적으로 조사한 국민건강보험·장기요양보험, 국민연금, 기초연금, 장애수당 등 행정서비스 이용 내역이 없는 5년 이상 거주불명 등록 중인 경북 7538명의 대상자 중 영천 414명의 장기 거주불명자가 대상이다. 영천시는 해당 명단을 대상으로 가족관계등록사항, 출국 여부 등을 추가 조사한 후 생존 근거를 찾기 어려운 거주불명자에 대해서는 공고 등의 절차를 거쳐 직권말소 조치할 계획이며, 생존 여부가 확인되는 거주불명자는 재등록 신고를 유도할 예정이다. 주민등록말소자는 현 거주지 주민센터에서 재등록신고를 할 수 있으며, 주민등록법 제40조에 의해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경감 또는 면제 사유가 없는 경우 과태료 10만 원) 시 관계자는 “적극적인 조사를 통해 국가정책 수립의 밑바탕이 되는 주민등록 자료의 정확성을 제고하겠다”고 밝히며, “이번 사실조사는 인구 통계의 정확성 제고 및 주민생활의 편익 증진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주민등록 재등록 신고 등 시민분들의 관심과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이혜경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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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에서 천국으로(3)청송에서 천국으로(3) 박효진 장로 서울명문교회 그렇게 시작된 그의 책과의 씨름은 상상을 초월한 치열함과 몸부림의 연속이었습니다. 청송감호소, 그 힘들고 어려운 징역살이 속에서 잔꾀로 일신의 평안을 도모코자 하는 그의 얄팍한 수법이 언제쯤이나 그 본색을 드러낼 것인가에 초미의 관심을 가지고 그를 치켜보던 많은 교도관들과 동료 수용자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책과 시간과의 씨름을 계속하였습니다. 실로 믿기지 아니할 생활의 변화가 자연스레 그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운동시간에도 단어장은 그의 손을 떠나지 않았고, 감호소 내에서 가끔씩 열리는 영화관람 시간이나 외부에서 찾아와 위문행사를 열어주는 시간에도 그는 감방에 혼자 남아 공부에만 전념했습니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그의 놀라운 변화에 수긍하기 시작했고 “사람이 저렇게 바뀔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갔습니다. “주임님, 왜 제가 진작 이것을 깨닫지 못했을까예? 제가 얼마나 무식하고 머저리였는가를 이제야 알고 나니 내 가슴을 쥐어뜯고 싶습니더. 인제라도 눈 떴으니까 죽을 각오로 새 인생 살아 볼랍니더.” 결연한 의지로 입술까지 악물며 다짐하는 그의 얼굴에서 지금까지 난폭과 명분 없는 정의감으로 폭력을 휘두르며 주변의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공포와 불안을 던져주던 표정이 사라졌고 그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생각’과 ‘자제’와 더불어 미미하나마 ‘인격’의 태동이 시작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해, 중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가뿐하게 통과하고 합격통지서를 받아든 그 날, 그는 그답지 않게 두 눈에서부터 마구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아니 하고 줄곧 어깨만 들썩이고 있었습니다. “인간답게 살아 볼랍니더. 내 가족들에게 차마 못 할 고통만 안겨준 내 인생이 참말로 원망스럽십니더.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더.”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그의 가정사를 들어 알고 있던 나는 단절된 그의 가족관계를 회복시켜 주고픈 마음이 간절했으나 너무 깊게 패어진 그들의 골은 접근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어려웠습니다. 그의 자녀들은 결코 아버지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고 이것을 그는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내가 한 짓이 있는데 당연한 일이지예. 저는 아부지라고 할 자격조차 전혀 없는 놈이니까예.” 천지간에 의지할 데 없고, 가진 것 하나 없는 그의 분노와 혈기는 으레 폭력으로 연결되어 끊임없이 철창을 들락거려 왔음에 그것이 당연한 그의 삶으로 고착되어 왔지만, 이제 그는 캄캄한 흑암 속에서 비로소 바늘구멍만 한 빛을 찾았고 음습한 동굴의 밑바닥에서부터 위로 향한 탈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어느 깊은 겨울밤. 산천이 왼통 눈에 덮여 모든 것을 묻어버리는 듯한 그 날, 나는 당직근무 중 일상적인 소내 순찰을 나섰습니다. 이곳저곳 둘러보고 사무실로 돌아오던 중 문득 그의 자는 모습이라도 한 번 보고 와야겠다는 마음으로 그가 수용된 감방으로 발을 옮겼습니다. 모두가 잠든 그 시간임에도 그는 희미한 불빛 아래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늘상 그랬으니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시간에 …. 창살을 사이에 두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내가 불쑥 뜻밖의 제안을 하였습니다. “성태야, 지금 밖에 눈 엄청 내리고 있는 거 아나?” “예, 폭설이네예.” “니 내하고 지금 눈 밟으러 한 번 나가볼까?” “놀리지 마소, 이 밤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꺼?” 그랬습니다. 그의 말대로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시설 내에서 야간에 재소자가 밖으로 나온다는 것은 원칙상 불가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날 나는 원칙보다는 한 인간을 위한 재량(물론 규정상 위법입니다만)을 사용하기로 하였습니다. 감방문을 열고 그를 불러내어 둘이서 정강이까지 쌓인 연병장 눈밭 위를 걷고 또 걸었습니다. 눈 녹은 물이 젖어들어 발은 시려왔지만 그런 건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하늘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눈은 우리의 머리와 어깨를 덮어왔고 연병장에 쌓인 눈은 우리의 발을 깊이 빨아들였습니다. 그날 우리는 특이하게도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고 그냥 걷기만 했습니다. 눈 위를 걷던 그 밤 이후로 그의 삶은 더욱 놀라운 변모를 거듭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가 눈길을 걸으며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각오를 가졌는지 나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는 쉼 없는 변화를 위해 몸부림하는 수도사를 연상시킬 만큼의 모습으로 살며, 공부하며, 한 사람의 인간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듬해,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까지 합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조용하면서도 우레같은 한 인생의 대변화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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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시, ‘농촌에서 살아보기’ 본격 운영“별빛이 쏟아지는 보현2리 마을에서 한 달 살아보세요” ▲영천시, 농촌에서 살아보기 '농촌 체험 프로그램' 제공.(사진=영천시 제공) 장기간의 코로나19 영향으로 퇴직자가 증가하는 가운데, 그에 따라 농촌지역으로 오는 예비 귀농·귀촌인들이 증가해 실질적인 농촌체험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에 영천시(시장 최기문)는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도시민을 위해 새롭게 추진하는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 운영자를 ‘보현2리 마을’로 선정하여 다양한 농촌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보현2리 마을은 보현산 천문대와 영천댐 사이에 자리 잡고 있으며 별빛이 쏟아지는 무공해 청정마을로 웰빙 주거 공간의 최적지다. 프로그램은 총 2기로 운영되며, 1기는 지난 3일 5세대 6명이 참가하여 진행했다. 2기는 다음달 7일에 시작될 예정이다. 참가자들은 한 달간 체류형농업창업지원센터에서 거주하며 보현2리 마을에서 영농 체험, 영천 지역 탐방, 일자리 체험 등 다양한 농촌 살아보기 경험을 하게 된다. 한 참가자는“막연하게 농촌 생활을 꿈꿨는데 이번 기회로 영천시에서 농촌 생활을 경험할 수 있어 기대된다”며 “무엇보다 보현마을 주민에게서 농촌 생활의 생생한 경험담과 현실적인 조언을 들을 수 있어서 좋다고 덧붙였다. 최기문 영천시장은 “올해 첫 시작되는 이번 사업을 통해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도시민들이 다양한 농촌 생활을 경험하면서 영천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앞으로 예비 귀농·귀촌인들이 시행착오를 줄이고 조기 적응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 운영에 전력을 기울이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혜경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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