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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피플’ 의료봉사활동 구미강동교회에서 펼쳐구미강동교회(담임목사 최광락)와 함께하는 ‘굿피플 사랑의 의료봉사’가 지난 15일 오전 10시~오후 5시까지 강동교회 로비와 지하 1층 소예배실, 검진 차량 등에서 독거노인과 다문화 가정, 진료를 원하는 지역주민 등 25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실시됐다. 유엔경제사회이사회 국제구호개발 NGO 단체인 굿피플은 ‘지구촌의 모든 이웃과 더불어 무한 나눔을 실천하고, 행복한 삶의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굿피플 사랑의 의료봉사단은 의사와 약사, 간호사 등의 의료진과 봉사자로 구성, 진료차량을 이용해 의료 혜택이 미치지 못하는 독거노인과 소외된 이웃들이 있는 곳을 직접 방문하여 무료진료를 실시하고 있다. 이번 강동교회에서 실시된 굿피플 사랑의 의료봉사는 굿피플 대구경북지부가 작년 11월에 구미에 출범함에 따라 구미지역에 의료혜택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실시됐다. 이날 진료를 위해 굿피플 의사회와 씨젠의료재단, 대한방사선협회의 의료진, 굿피플 본부 임원 등 30여 명은 버스에 의료장비와 물품을 가득 싣고 아침 일찍 서울을 출발해 구미로 내려왔다. 또한, 구미 지역에서는 정형외과 의료진으로 성기태 장로(구미제일)와 간호사, 지역대학 간호학과 학생들이 봉사자로 참여했으며, 구송봉사단은 이·미용과 피부 미용, 안마, 네일아트 등을 통해 주민들을 섬겼다. 오전 10시가 되자 의료봉사단은 경북과 구미지역에서 참여한 자원봉사자 30여 명과 함께 기다리고 있던 지역 주민들을 진료하기 시작했다. 의료진은 내과와 가정의학과, 정형외과, 안과, 치과 등의 진료와 심전도·골밀도·혈액건강 측정, X-RAY·초음파(10만 원 상당)·혈액검사 등 각종 검사를 실시, 처방에 따라 의료봉사단이 운영하는 약국에서 약을 나눠주고 영양수액을 투여했다. 실제, 굿피플 사랑의 의료봉사가 펼쳐지는 곳의 대부분은 산간벽지와 도서지역, 섬마을, 노숙인 및 외국인근로자 쉼터 등이다. 이곳은 바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병원에 갈 수 없었던 어르신들과 장애인 등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게 의술과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선교의 현장이다. 한편, 1999년 2월 설립된 국제구호개발 NGO 굿피플은 사회적 소외로 인해 가난과 질병, 재난 등의 극심한 생존위험에 노출되어있는 지구촌 이웃들의 현실을 알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나눔 실천이 실질적인 희망의 실현이 될 수 있도록 국경을 초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도움을 제공하기위해 설립됐다. 이를 위해 문명과 정부기관의 보호로부터 소외된 소수 민족들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소외지역을 중심으로 소외지역 개발, 가난퇴치, 아동보호, 교육, 질병 예방과 치료, 긴급구호 등의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 굿피플 사랑의 의료봉사(국내선교사역) 초청 문의: 정사파이야 팀장 02) 783-22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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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67주년)기념 구미시 구국기도회 개최6.25(67주년) 구국기도회가 지난 25일 구미시성시화운동본부(대표본부장 진상권) 주최로 구미시민교회(담임목사 조민상) 본당에서 지역 목회자와 성도 등 1,0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개최됐다. 연합집회로 드려진 이번 구미시 6.25 구국기도회에는 서임중 목사(포항중앙교회 원로)가 초청강사로 메시지를 전했으며, 2부 순서로 월드비전 홍보대사인 다윗과 요나단의 황국명 목사가 찬양을 인도해 참석자들에게 큰 감동을 끼쳤다. 서임중 목사는 설교를 통해 “믿는 자라면 하나님의 마음을 봐야한다”며 “절박한 환경에 처한 대한민국을 보시는 하나님의 절규하는 마음을 볼 수 있는 성도가 되자”고 전했다. 계속해서 서 목사는 “대한민국을 압제자의 손에서 건지신 이는 독립투사가 아닌 하나님이시다”며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미래를 살아가야 할 우리에게는 역사를 거울로 볼 수 있는 혜안(慧眼)이 있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역사를 아이들에게 가르쳐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지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2부 다윗과 요나단의 찬양 중 1950년 한국전쟁 시 한국의 전쟁고아를 돕기 위해 설립, 현재 전 세계 100여 개 국가에서 일하는 세계최대규모의 국제구호개발 NGO인 월드비전에 대한 소개와 후원 신청을 받았다. 이번 구국기도회를 통해 모금된 기금은 6.25전쟁 당시 6,000명의 전투 병력을 지원, 우리나라를 지원한 에티오피아를 돕는 일에 사용된다. 현재 에티오피아는 가난과 극심한 기근으로 많은 국민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날 행사 참가자들은 연합예배 전·후 시간을 통해 월드비전 구미지회에서 준비한 보리떡과 주먹밥, 미숫가루 등을 체험하며 전쟁의 참상을 되새기는 기회도 가졌다. 6.25구국연합예배는 진상권 목사(성시화운동본부 대표본부장)의 인도로 드려졌으며, 이진호 목사(기독교총연합회장)의 대표기도, 서귀석 목사(교역자연합회장)의 성경봉독, 구미남교회의 찬양, 서임중 목사의 ‘우리민족의 나아갈 길’(수23:1~8)이란 제목의 메시지 선포를 통해 나라사랑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이 됐다. 이어 특별기도 시간, 최광락 목사(강동)가 ‘북한 동포와 탈북자를 위하여’, 김동혁 장로(평신도연합회장)가 ‘남북 평화통일과 세계평화를 위하여’, 강재식 목사(등대)가 ‘나라와 민족, 위정자를 위하여’, 심재홍 장로(장로연합회장)가 ‘구미시정 및 경제 활성화를 위하여’, 우종휴 목사(경북기독교총연합회장)가 ‘구미성시화를 위하여’ 기도했다. 이어서 서동구 장로(회계)의 헌금기도와 진격교회 장병들의 특송, 정기용 목사(사무총장)의 광고, 김승동 목사(지도자협의회 회장)의 축도로 연합예배를 모두 마쳤다. 2부 행사는 안재호 목사(성시화운동본부 상임본부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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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월드휴먼브리지, ‘사랑의 김장나눔’으로 이웃사랑 실천▲왼쪽부터 차례대로 백성옥 영남대학교 부총장, 최영조 경산시장, 김영윤 경산교육장, 경산월드휴먼브리지 김종원 대표 김종원 목사(경산중앙교회 담임)가 대표로 있는 국제구호개발 NGO 경산월드휴먼브리지는 21일 영남대학교 천마광장에서 100여 명의 자원봉사자와 함께 ‘사랑의 김장나눔’ 행사를 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진행된 ‘사랑의 김장나눔’ 행사는 지역의 저소득 가정을 비롯해 복지시설, 단체에 김치를 전달하는 사업으로, 이 행사를 통해 총 2,500포기의 김장김치가 전달되었다. 또한, 이 행사에서는 ‘사랑의 겨울나기’ 난방비 지원금 600만 원이 전달되었다. 이 지원금은 지역의 에너지 취약계층으로 난방비 지원이 꼭 필요한 25가구에 지원될 예정이다. 이번 행사에는 최영조 경산시장과 김영윤 경산교육장, 백성옥 영남대학교 부총장이 참석해 축사 및 김장시연을 했다. 최영조 경산시장은 “매년 이러한 뜻깊은 나눔 행사를 마련해 동절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에 도움이 되어주셔서 감사하다. 앞으로도 경산시민 모두가 희망이 되고 행복이 되는 나눔에 동참할 수 있는 분위기가 널리 퍼져 나가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활동을 부탁드린다” 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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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자천교회(永川 慈川敎會)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52호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 773 이 교회는 1903년에 미국인 선교사 어드만(Erdman)이 신자(信者)들과 합심(合心)하여 지은 것으로 전국에서 보기 드문 한옥교회이다. 건물은 동서쪽으로 약간 긴 네모형태의 우진각(모임)지붕이며, 주 출입구는 양 측면에 두었다. 내부는 후면의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중앙부는 칸막이를 설치하여 남·녀석을 구분한 예배공간을 마련하여 구한말의 남녀칠세부동석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였다. 구조는 나지막한 기단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그 위에 네모기둥을 세워 절충식 지붕틀을 설치하였다. 이러한 양식의 건물은 선교 초기에 구미인(毆美人) 선교사들이 지은 한·양 절충식(韓·洋 折衷式)으로, 개신교사(改新敎史)와 건축사(建築史) 연구의 자료적 가치를 담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안이와 선교사와 권헌중 장로의 노고재에서 만남 자천교회 설립 이야기 자천교회 이야기는 1898년 안의와 선교사의 경북 동부와 동북 지방의 2개월 전도여행에서 시작한다. 그는 대구에서 출발하여 영천을 거쳐 청송으로 전도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반면 권헌중은 안의와 선교사와 반대되는 길을 가고 있었다. 원래 자천교회 설립자 권헌중 장로는 경주의 작은 마을의 선비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서당 훈장이었다. 그가 서당 훈장으로 살아가고 있던 우리나라는 일제로부터 지배를 당하고 있는 시절이었다. 이로 인하여 일본 헌병들이 각 군 소재지를 장악하고 있었다. 민족의 암울한 현실을 바라보며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지사들은 일본 헌병들과 맞서 싸웠다. 이러한 탓에 낮에는 일본 헌병의 천국이요. 밤은 의병 천지였다. 일제로부터 당하는 고통은 면소재지에 있는 양반과 천민들이나 할 것 없이 수 없는 고통을 당했다. 때문에 견디기 힘든 일제의 고통을 피해 고향을 등지고 자신들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다. 권헌중에게 있어서도 고통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는 경주에 있는 한적한 곳의 선비로서 서당 훈장의 생활을 접고 청송군 현서면 수락이라는 곳에 이주하여 살게 된다. 하지만 수락에서의 생활도 길지 않았다. 그곳의 생활도 접고 또 다른 보금자리를 찾아 현서면 수락에서 대구를 향하고 있었다. 안의와 선교사는 영천을 거처 청송으로 선교 여행을, 권헌중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서 대구로 각자의 목적을 향하여 길을 가고 있었다.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던 이들의 만남은 영천시와 청송군의 경계를 잇는 ‘노고재’라는 곳에서 이루어진다. 권헌중은 노고재에서 휴식을 하던 중 안의와 선교사를 만나게 된다. 권헌중은 당시 처음 만나는 외국 사람이었고, 모양새도 우리나라 사람과 달리 키와 눈과 코가 클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말을 서툴게 한 탓에 잘 알아듣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또 권헌중과 함께 동행하던 가족들과 노비, 머슴들은 자신들의 모습과 많이 다른 안의와 선교사의 모습을 보고 괴물이 나타났다고 소리를 치는 바람에 한바탕 웃는 일도 벌어졌다는 우스운 일화도 있다. 권헌중은 노고재에서 안의와 선교사와 첫 만남에서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복음에 관해서 듣게 되었다. 안의와 선교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 복음에 관하여 들은 권헌중은 대구로 이주 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보현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신촌면 자천리에 작은 초가삼간을 구입하여 그곳에 머물며 안의와 선교사와 왕래하면서 성경 말씀을 배웠다. 한국 초기 교회들의 역사가 대부분 그러하듯 자천교회 역시 작은 초가집의 사랑방에서 시작이 되었다. 권헌중은 자기가 살고 있는 초가집을 예배당 겸 서당으로 사용했다. 낮에는 서당으로 사용하며 한문을 가르쳤다. 저녁에는 함께 성경을 공부하였다. 초가집으로 시작된 자천 교회의 당시 교인은 서당에 다니는 문동과 권헌중을 따라온 노비와 머슴들이 전부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기독교 복음을 받아들인 권헌중은 당시 나라에서 처음으로 단발령이 내려졌을 때 자신이 먼저 상투를 자르므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에도 개방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데리고 있던 노비들의 문서를 태워버리고 자유의 몸으로 풀어주었다. 복음을 받아들이므로 계급과 신분을 타파하고, 그들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나누었다. 복음에 대한 권헌중의 열심에 안의와 선교사도 덩달아 신이 나서 대구에서 자천까지 열악한 도로 상황을 뒷전으로 하고 자주 방문하여 성경에 관하여 토론하며 확실한 교인들로 만들어 나갔다. 초가집 사랑방의 자천교회의 모임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신자가 점점 늘어나면서 공간이 협소하였다. 따라서 초가집 사랑방이 아니라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하게 되었다. 대구 지방의 기독교 사립학교인 희도학교가 안의와 선교사에 의해서 대구제일교회 구내 초가집에서 1900년 11월 11일 시작되었다. 뿐만 아니라 1907년 10월 23일에는 신명학교가 부해리 선교사에 의해서 개교하게 된다. 대구를 중심으로 학교를 개교한 후 안의와 선교사는 1902-1910년 사이에 경북 각처 교회들에게 400원씩 보조하여 학교를 설립하게 하였고, 각 교회는 학부대신(현 문교부장관)의 인가를 얻어 소학교를 설립하였다. 이 당시 영천지방에 있는 교회도 학교를 설립하였는데, 이름이 밝혀진 학교는 평천교회의 기독양덕학교, 신령교회의 흥화학교, 우천교회의 기독진도학교와 더불어 권헌중은 운영하던 서당을 폐하고 자천교회를 중심으로 2년제 학교인 신성소학교의 설립을 하였다. 하지만 자천교회가 설립한 신성소학교의 설립 연대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 하권에서 ‘1913년 남학교를 설립하여 생도(生徒) 50명을 교육하다’ 라는 기록이 있다. 또 ‘경북교회사’에서는 ‘1914년 자천교회는 학교를 설립하여 생도 50여 명을 교육하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연대를 학교의 설립 연대로 볼 수 없다. 이는 학교가 설립한 후에 노회나 총회에 보고된 연대이기 때문이다. 노회 보고 연대를 기준과 2년 재 학교라는 것을 고려하고, 초가집 교회에서 목조건물 교회 건립을 고려해 볼 때 신성소학교 설립 연대는 대략 자천교회 목조 건물을 헌당 하던 때와 비슷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권헌중 장로가 자천교회를 중심으로 세운 신성소학교는 처음 남자 반을 모집했다. 그러던 중 안의와 선교사가 여자반도 모집할 것을 권헌중에게 권유했다. 그는 권유를 받아들여 여학생을 모집했지만 지원자가 없었다. 아무리 설득해도 지원자가 없어서 자신의 딸인 권수기씨를 입학시켜 여학생 1호가되었다. 후에 권수기씨는 신명여교에 입학하여 제2회 졸업생이 되었으며, 그 곳에서 교편을 잡았다. 권헌중은 자천교회를 중심으로 신성소학교를 설립하므로 복음의 요람으로 자천교회뿐만 아니라 교육의 요람으로도 자리를 잡게 되었다. 조용한 시골에서 글을 가르치던 선비 권헌중은 안의와로부터 받은 복음에서 출발하여 자천이라는 시골 동네에 초가집 예배당과 서당, 그리고 목조 기와의 ‘一子’형 예배당을 건립하여 복음 전도와 교육 사업에 힘을 기울어 왔다. 권헌중은 새롭게 건립된 예배당에서 여러 동역자들과 함께 영수의 직분을 가지고 교회를 섬겼다. 1915년 당시 권헌중과 더불어 서석희와 정해민이 자천교회 영수로 섬기고 있었다. 세 명의 영수를 중심으로 교회가 든든히 서가던 중 첫 번째 장로를 장립 할 수 있는 시기가 자천 교회에 찾아왔다. 교회는 권헌중을 장로로 세워줄 것을 결정하고 1920년 6월 11일 제8회 경북 노회에 청원을 하여 허락을 받은 후 공부하였다. 노회의 절차를 밟아 권헌중은 장로 청원이 있은 후 1년 반이 조금 넘은 1922년 2월 26일 오전 11시 새롭게 건립된 본교회 목조 예배당에서 위철지 목사의 주례로 장로 장립을 가지게 됨으로 교회 설립이후 첫 장로로 취임하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자천교회는 처음으로 당회가 조직되는 감격의 순간을 맞이하였다. 권헌중이 장로로 임직하던 해인 1922년 5월 13~18일까지 자천교회는 새롭게 건립된 목조 예배당에서 김성로 목사를 초빙하여 부흥회를 개최하였다. 이때 부흥회에 참석한 사람은 본 교회 성도들 50여 명과 각처 교회에서 온 신자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중에 풍성한 은혜를 받았다. 또 저녁에는 200명이 넘는 신자들이 말씀을 청강하는 동시에 새로 믿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60여 명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병 고침을 받은 사람이가 40여 명이 되었다. 부흥회를 통하여 교회를 보수하기 위해서 헌금 5백10여 원이 드려지므로 더 풍성한 은혜와 결실이 있었다. 권헌중은 장로 장립을 기점으로 하여 교회의 활동도 왕성하게 할 뿐만 아니라 경북노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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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피플, 구미제일교회에서 '만원의 기적, 러브콘서트'지난 9월 30일(주) 저녁 7시 구미제일교회당(김경택 목사 시무)에서는 국제구호개발 NGO 굿피플 대구경북지부가 주최한 ‘만원의 기적, 러브콘서트’가 열렸다. 이날 콘서트는 CCM 가수 송정미 교수 단독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됐으며, 송 교수의 ‘회복과 성령 임재’를 주제로 한 찬양들을 통해 참석한 500여 명의 성도들은 큰 위로와 은혜를 경험했다. 굿피플은 이날 희귀난치성질환 에이퍼트증후군을 앓고 있는 성지영 양의 사례를 소개하며 우리나라 희귀난치성 환자 59만여 명에 관한 관심과 후원을 요청했다. 콘서트를 이끈 송정미 교수도 “이번 콘서트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소외된 이웃에 대해 다시금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권면했다. 이에 많은 성도들이 이 일에 동참하기 위해 정기후원을 약속했다. 또한, 구미제일교회는 협약식을 통해 매월 100만 원 씩 굿피플에 정기후원하겠다며 선한 사역에 동참할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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