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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박물관, 평산 신씨 문희공파 관련 유물 35점 기탁받아신완(申完) 홍패(紅牌), 어사화(御賜花) 등 35점 유물을 기탁받아 예천군(군수 김학동) 예천박물관은 평산 신씨 문희공파 후손인 신원식·신형식 형제로부터 1773년 신완(申完) 홍패(紅牌), 어사화(御賜花), 구계선생유집(鷗溪先生遺集) 등 35점 유물을 기탁받았다. 이번 유물은 예천소방서 현장대응단 신형식 단장 집안에서 소장하던 것으로 예천박물관에서 지역 유물을 수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탁하게 됐다. 특히 신완 홍패는 영조 49년인 계사년(癸巳年)에 치러진 정시(庭試)에서 신완이 병과(丙科) 6위로 합격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으며 “저 기수(淇水) 굽이친 곳을 바라보니 푸른 대숲이 우거졌도다(瞻彼淇澳 綠竹猗猗).”라는 시경(詩經) 구절이 시험문제로 나왔다. 김학동 군수는 “집안에서 소중하게 보관 중이던 유물을 기탁해주셔서 감사드리고 예천박물관은 군민들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고 있다.”라며 “문화를 계승하는 지역 대표 문화시설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한편, 예천박물관은 올해 2월 22일 개관한 이래 지금까지 33곳 문중과 개인으로부터 20,296점 유물을 기증·기탁받아 관리해 오고 있으며 향후 예천의 관광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유물을 연구하고 공개할 예정이다. 예천 남종덕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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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슬람은 예루살렘을 그들의 성지로 삼은 것인가?왜 이슬람은 예루살렘을 그들의 성지로 삼은 것인가? Q 질문 : 예루살렘은 기독교의 성지로 알고 있는데요. 대체 왜 이슬람교도들은 예루살렘을 그들의 성지로 삼은 것인가요? 예루살렘에 있는 이슬람 사원(황금 돔)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나요? A 답변 : 예루살렘에 있는 이슬람 사원 ‘황금 돔’은 ‘알아끄사’ 사원입니다. 이슬람에서 ‘알아끄사’ 사원을 중시하고 있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두 번 여행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알아스라 이야기’(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예루살렘 알아끄사 사원까지 여행, 꾸란 17:1)와 ‘알미으라즈 이야기’(예루살렘에서 하늘의 칠층천까지 여행, 꾸란 53:8~15)입니다. 이슬람력 7월 27일은 무함마드의 승천 기념일로 공휴일입니다. 알아스라 이야기는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되자, 하늘로부터 아브라함과 모세와 예수 등을 비롯한 여러 선지자와 사도들이 내려와 그를 영접하고 그와 함께 알라(Allah)께 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알미으라즈 이야기는 무함마드가 하늘까지 올라가서 그 선지자들을 다시 만났고, 특별히 칠층천에서 아브라함과 더불어 알라까지 만났다는 것입니다. 무함마드는 최후의 그리고 최고의 메신저이기 때문에 아브라함, 모세, 예수보다도 훨씬 더 탁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슬람의 신앙고백은 “나는 알라 이외는 다른 신이 없으며, 무함마드는 알라의 메신저임을 증언한다”입니다. 무슬림(이슬람교도)들은 알아끄사 사원 안에 있는 돌이 무함마드가 승천하여 칠층천으로 올라갈 때 밟고 올라간 돌이라고 주장하면서 예루살렘을 이슬람의 성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답변자 : 소윤정 교수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아랍선교대학원) - ‘크리스천 큐앤에이’(도서출판 등과 빛) 中 요약 발췌 -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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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성공 기원, ‘새 하늘길이 열린다!’통합신공항 성공 기원 다짐대회 및 조형물 제막, 모형 비행기 퍼포먼스 펼쳐 ▲경북도는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입지 확정 1주년을 맞아 경북도청에서 기념식을 열었다.(사진=경북도) 경북도(이철우 도지사)와 대구시(권영진 시장)는 7월 30일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이전지 확정 1주년을 맞아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성공 기원, 새 하늘길이 열린다!”라는 주제로 경북도청 안민관 전정에서 기념식을 열었다. 이날 행사는 510만 대구경북 시도민의 오랜 염원이었던 통합신공항이 많은 어려움과 난관을 극복하고 경북 군위군 소보면과 의성군 비안면 공동후보지로 최종 확정된 것을 기념하고 공항을 제대로, 빨리, 잘 만들자는 시도민의 의지를 다시 한번 결집시키는 의미에서 마련됐다. 행사는 ▷경과보고 ▷시도지사 및 시도의회 의장 인사말 ▷시도민 영상메시지 상영 ▷타임캡슐 저장 ▷조형물 제막 ▷퍼포먼스 순으로 진행됐다. 타임캡슐 저장은 통합신공항 이전지 선정 관련 자료와 대구경북 화합을 상징하는 물건, 시도민 희망메시지 등이 캡슐 2개에 담겨져 저장됐다. 또한, 도청 안민관 전정에 활주로를 형상화한 조형물을 설치했는데 작품명은 “향(向) : 쪽빛 하늘”이다. 조형물 작명은 한국을 대표하는 서정시인인 문태준 시인이 했다. 조형물은 유명 설치미술가인 한원석 작가가 제작했으며, 길이는 20.21m이며 101개의 스테인리스 조각판을 이어서 완성했다. 광섬유를 소재로 1,155개의 활주로 유도등을 표현했으며 끝부분에는 LED 종이비행기가 달려있다. 이어 대구경북 시장과 군수 구청장과 함께하는 통합신공항 성공 건설 결의 모형비행기 퍼포먼스도 펼쳐졌다. 이철우 도지사는 “위대한 선택을 해주신 510만 시도민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새로운 하늘길을 열고 세계로 뻗어가는 대구경북의 꿈을 담은 상징조형물을 통해 여러분께 희망이 전달되기를 바란다.”면서 “우리의 공항을 제대로, 빨리, 잘 만들어 세계적인 명품공항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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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사명과 순교에 대한 예고베드로의 사명과 순교에 대한 예고(요한복음 21장 15~22절) 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15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18절) 예수님은 베드로를 처음 만나던 날,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요1:42)고 말씀하시면서 베드로가 어떤 사명으로 살아가게 될지를 미리 알려 주셨습니다. 게바는 번역한즉 베드로(peter)로 반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향해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베드로의 신앙고백 바탕 위에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첫 사람으로 쓰임 받는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사명을 받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저주하며 부인한 것 때문에 괴로운 마음과 생활의 염려로 믿음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베드로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를 찾아오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몸으로 세 번째 만나신 장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1. 예전의 생활로 돌아간 베드로 요21:1~14절까지 내용을 먼저 살펴보고자 합니다. 베드로를 비롯하여 여러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는데도 예전의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베드로는 동료들과 함께 갈릴리로 가서 고기를 잡으러 그물을 내렸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허탕을 쳤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하고 물으니 “없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라고 말씀하셨고, 이에 그물을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였는데 잡힌 큰 물고기만 153마리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그 깊은 사랑을 깨닫고 주님을 떠났던 것을 철저히 회개하며 주님께로 다가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떡과 생선을 주셨을 때 제자들은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배신하고 떠난 제자들이었지만, 앞으로 쓰실 계획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실패의 현장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애써 찾아가신 것입니다. 참 눈물겹도록 주님의 사랑이 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떠나서 실패하고 절망 가운데 있는 제자들의 아픔을 예수님께서는 종합적으로 해결해 주시는 분이셨습니다.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습니까? 예수님은 여러분들의 영혼만 천국에 가게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육신이 땅에 사는 동안 먹고 사는 문제도 예수님이 책임져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질문하심 그러고 나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셨고, 베드로가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 어린 양을 먹이라”(15절)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어린양을 먹이라’는 말씀은 ‘양육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또다시 베드로를 향해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같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베드로가 같은 대답을 하자, 예수님은 “내 양을 치라”(16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을 치라’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에 드는 양 떼가 되도록 그들을 잘 가르치고 훈련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세 번째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또 물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또한 주님께서 아실 것이라고 고백하였는데 왜 자꾸 되풀이해서 물으셨을까요? 베드로는 당황했습니다. 위축되고 불안한 마음으로 근심하면서 베드로는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내 양을 먹이라”(17절)라고 다시 말씀하신 것입니다. 3. 베드로의 믿음이 회복되기를 원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왜 세 번이나 같은 질문을 하셨을까요? 이는 베드로가 그동안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제 예루살렘에 가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나를 잡아서 이방인의 손에 넘겨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나서서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며 큰소리를 쳤습니다. 이것은 제자로서 당연한 도리였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며 책망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시고 언약의 피를 흘리셔야 택하신 백성들의 죄가 용서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베드로는 영적으로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26:31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날이 다가올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라며 확신 있게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날 밤 예수님이 잡히신 후 베드로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닭 울음소리를 듣고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심히 통곡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눅22:31~32절에서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이후에 믿음이 떨어질 것을 미리 아시고 그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같은 질문을 하신 이유는 베드로를 사랑하사 예수님과의 관계가 다시 회복되어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하신 것이었습니다. 3. 베드로의 사명과 순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신 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18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베드로가 나중에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지를 알려주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복음을 전하자 하루에 삼천 명, 오천 명이 예수님을 믿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베드로는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갔을 때 “다시는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도 가르치지도 말라”는 제사장들의 경고에 굴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라고 담대히 말합니다. 베드로는 사명을 완수하는 그 날까지 예수님의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로 말미암아 순교하게 됩니다. 마지막에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욕하고 부인한 그 죄책감 때문에 예수님과 똑같이 십자가에 매달릴 수 없다고 생각하여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기를 자청하였습니다. 이 일은 이미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어떠한 죽임을 당할지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권면의 말씀)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한 뒤 절망하여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려 하였으나, 예수님은 그를 사랑하사 관계를 회복하도록 친히 찾아가셔서 복음을 증거 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말씀처럼 베드로는 담대히 복음을 전하며 사명을 감당하였고, 순교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자신의 믿음을 지키며 사명을 받은 직분대로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은 많은 영혼들이 다 구원 얻어 천국 가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하여 우리가 합심 전력해야 합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다는 마음으로 영혼 구원에 내 생애를 바치겠다는 다짐이 필요합니다. 이제 정신 바짝 차리고 이왕 믿으려면 진짜로 믿는 성도가 됩시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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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6)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6)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김정숙 전도사 (金貞淑, 1880~1969) 목차 서론 1. 김정숙, 출생과 결혼 2. 최초의 순교를 목도한 시댁 3. 여성복음전도의 선구자 .............................................. 7. 안동교회 최초의 전도사 8. 경안노회 여전도회 연합회 리더 9. 일제에 저항한 애국운동가 10. 평신도 사역자 결론 9. 김정숙, 일제에 저항한 애국운동가 안동 3·1 만세의 1차 시위는 임시정부 국무령 이상용(李相龍) 선생의 실제(實弟)인 이상동(李相東, 영양 포산교회, 영덕 원전교회) 조사에 의해 발생했는데, 그는 안동 장날인 3월 13일 하오 5시 반경 단독으로 만세를 부르다가 일경에 체포 구속되었다. 사실 이상동 조사가 단독시위를 감행하기 전, 안동교회 김영옥 목사, 이중희 장로, 도청 서기인 김원진, 일본 유학생인 강대극 등 4인은 3월 13일 안동 장날에 거사할 것을 모의하다가 일경에 검거되어 3·1 만세운동이 주춤한 상태에 있었다. 이상동 조사가 안동교회 지도자들과 의논하여 결정한 거사 일자는 아니었지만, 안동에서 가장 먼저 만세 시위를 주도한 지도자들이 결정한 바로 그날인 3월 13일 오후 5시 반경에 안동에서 최초로 만세운동이 일어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상동 조사는 ‘대한독립만세’가 쓰여진 태극기 모양의 종이 연을 들고 현재 신한은행 앞에서 동쪽 방향인 삼산우체국 쪽으로 달리면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었다. 그는 체포되어 압송되어 가는 자동차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의해 대한민국은 10일을 넘기지 않고 독립될 것이라고 하면서 계속해서 만세를 불렀다. 이상동 조사의 1인 시위는 안동 3·1운동을 은밀히 추진하고 있던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한편으로는 위기가 되었다. 이유는 만세운동을 감행할 인물들과 안동교회가 일경에 의해 더욱 주시를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동 조사의 1인 시위는 만세운동을 준비하고 있던 안동지역 지도자들의 검거와 조사로 위축되어 있던 모의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기폭제 역할도 하였다. 한편 안동교회 여성 지도자였던 김정숙, 김병규. 이권애 등 3인은 1911년 안동교회가 설립한 여성 초등학교인 계명학교 여학생 30여 명을 동원하여 선교사 임시주택이었던 가옥에서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국기를 제작하여 비밀스럽게 만세운동에 참여할 준비를 하였다. 3·18일 만세시위가 있던 날 김정숙, 김병규, 이권애 등 3명의 여성 지도자들은 옥고(獄苦)를 각오하고 옷고름을 뗀 뒤 단추를 달고 계명학교 여학생 30여 명을 인솔하고 만세운동에 참가했으나 당시 여론을 의식한 일제는 김정숙 등 3명은 물론 학생 1명도 구속하지 못했다. 또한 안동의 3차 만세운동은 3월 23일(주일) 오후 7시 30분 무렵부터 시작됐는데 앞선 2차 시위와는 다르게 안동군의 다른 면민들이 대거 참가하는 대중적인 시위 양상을 보였다. 무려 3,000여 군중이 모여 구금된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경찰서와 법원 안동지청으로 밀고 들어갔다. 일본 경찰과 수비대와 충돌로 인해 30여 명이 죽고 50여 명이 부상을 입을 정도로 시위는 격렬한 양상을 보였다. 김정숙은 1919년 3월 18일의 2차 시위와 23일에 있었던 3차 시위 등 안동의 3·1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행동하는 신앙인인 동시에 애국운동가였다. 참고로 3·1 만세운동에 참여한 여성지도자인 김병규는 안동의 기독청년면려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의 아들 권중윤은 대구 계성학교 학생으로 대구 만세운동에 가담하였다가 구속되어 6개월 동안 수형 생활 후, 학교를 졸업하고 안동으로 돌아와 계몽운동을 하던 중 1921년 2월 5일 안대선 선교사가 전국에서 최초로 안동교회 청년면려회를 조직할 때 초대 회장으로 피선되었다. 그 후 안대선 선교사를 도와 경북지역 각 교회에 다니면서 청년면려회를 조직하여 1921년 6월 7일∼9일까지 26개 지회 600여 명이 모여 경북연합대회를 개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22년 청년면려회를 전국적으로 조직하기 위하여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는 안대선 선교사와 권중윤을 서울로 이주케 하여, 이들의 헌신적인 활동을 통해 1923년, 200여 교회에 청년면려회가 조직되었고, 1924년 12월 2일에는 서울 정동 피어선 성경학교에서 기독청년면려회가 조직될 수 있었다. 3·1 만세운동 당시 안동교회 교인이었던 김병규는 공식적으로 1924년 5월 22일, 안동교회에서 서울 안국동교회로 이명했다. 김병규는 이명 후 불과 몇 년 되지도 않은 1925년 초 경기부인전도회의 서기를 맡을 정도로 왕성히 활동했다. 또한 김병규는 서울 승동교회에서 회집한 경기지역 12 교회 부인회의 회장으로 피선되었다. 1925년 전국 부인전도회가 처음 조직할 때는 선교사 중심으로 조직되었는데, 한국인으로 임원을 구성한 2회 총회부터 김병규는 한국인으로는 제일 먼저 회장으로 피선되었다. 1927년 9월 9일 원산 광석동교회에서 제16회 장로회 총회 시 ‘여전도회 전국연합회’ 발기회에서 김병규는 경기 여전도회 대표로 참석하였다. 1928년에 조직된 여전도회전국연합회에 경기지역 대표로 활동했다. 이처럼 김병규는 전국적으로 왕성히 활동한 여성 교역자였다. 김정숙 전도사의 애국 활동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그는 일제 말엽에는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신앙의 절개를 지킨 여성 지도자였다. 1930년대 후반 중일전쟁이 시작되면서 일본제국주의는 황민화정책과 천황숭배를 강화하기 위해 신사참배를 강요하였다.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에 굴복하여 1935년에는 천주교회가, 1936년에는 감리교회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1938년에는 장로교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하였다. 일제의 극한 박해와 신사참배 문제 앞에서 수많은 교회 지도자들은 신앙을 포기하고 변절과 타협의 길로 갔지만, 김정숙 전도사는 죽음도 불사하면서 마지막까지 일제에 저항했다. 참고로 경안노회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한 인물로는 이원영·강병철·박충락 목사와 권수백 장로 등이다. 특히 안동교회의 인물로는 김익현·김성규·김재성·조흥로 장로와 조춘백, 이수원·이수형 성도 등 다수가 있었지만, 기록으로 남아 있는 여성 교역자로는 김정숙 전도사가 유일하다. 그는 죽음도 불사한 각오로 신앙의 정조(貞操)를 지켰던 용기 있는 믿음의 여성이었다. 김정숙은 일제 압제하에서도 용기 있게 신앙에 기초하여 민족의 편에 선 여성 민족 운동가였던 것이다. ▲안동의 3·1 만세운동은 세 차례에 걸쳐 발생했다. 1차 시위는 3월 13일 이상동의 단독시위였고, 2차 시위는 3월 18일 안동교회 주도와 유림들의 동참으로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3월 23일 3차 시위는 많은 군민들의 격렬한 시위 결과 100명 가까운 사상자를 내었다. 3·18일 만세시위가 있던 날 김정숙, 김병규, 이권애 등 3명의 여성 지도자들은 계명학교 여학생 30여명을 인솔하고 만세운동에 참가했다. 위 사진은 1925년 삼산동 곡물전(현 신한은행 근처) 안동 장날의 번잡한 모습.(사진7)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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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서 크리스천들은 왜 박해를 받는가?이집트에서 크리스천들은 왜 박해를 받는가? 대다수가 이슬람인 이슬람 문화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 크리스천들이 박해받는 가장 큰 원인이다. 크리스천들은 2류 국민으로 여겨지며 차별을 받는다. 크리스천들에 대한 증오를 선동하는 근본주의 이슬람인들로 인해 사회적 불관용과 적대감이 고조된다. 이슬람 무장 단체들은 지난 몇 년간 크리스천들을 폭력으로 공격했다. 특히 크리스천들이 교회 건물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으려고 할 때 폭도들의 공격이 많이 일어난다. 경찰과 당국자들은 질서유지를 위해 고발자와 공격자들 편에 서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무슬림들의 광적인 반응이 두려워, 크리스천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고 정의롭게 처리하지 않는다. 이집트에서 크리스천들의 삶은 어떤가? 신성모독 혐의로 고발이 쉽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대부분 크리스천들은 모르는 사람과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삼간다. 개종자들을 향한 사회적 적대감이 매우 높고, 개종의 소문이 나면 폭도들의 폭력을 불러올 수 있다. 특히 시골 지역에서 그렇다. 개종은 가족의 수치로 여겨져 가족으로부터 추방되거나 신앙을 부인하도록 강요받거나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많은 경우 비밀 신자로 살아간다. “이집트 크리스천들을 위해 기도를!” 이집트에 있는 크리스천들을 위해 함께 기도해주세요. 크리스천들에게 공의가 실현되도록, 그들이 공개적으로 예수님과 함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도록, 크리스천들이 가해자들을 용서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또한 예수님께서 극단주의 무슬림들을 만나 주시도록 기도해주세요! ▲WWL2021 박해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이집트에서는 30명 이상의 크리스천들이 죽임을 당했고, 수십 개의 교회 건물, 주택, 사업장들이 공격과 폐쇄를 당했다. 사진은 이집트 카이로의 순교자 기념관. <한국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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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출애굽기(25)나의 출애굽기(25) 드보라 61. 유치원 일을 그만 두고 식당에서 일하게 됨 이렇게 한동안 일을 잘하고 있었는데 우연한 계기로 일을 중단하게 되었다. 하루는 원장이 조용히 나를 불렀다. 원장실 자리에 앉으니 원장선생님은 대뜸 나에게 “북한에서 오셨어요?”라고 물었다. 내 정체가 들키고 말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살던 마을 인근의 사람이 자기 손녀를 데리고 유치원 입학시키러 왔다가 나를 발견하고 원장에게 이야기했던 것이다. 원장선생님은 “탈북자를 불법 고용하면 정부의 제재를 받는다”면서 나에게 출근 못 할 것 같다고 하셨다. 일을 못 해서 해고당하는 거라면 납득을 하겠지만 단지 신분 문제라고 생각하니 억울했다. 유치원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다른 일거리를 찾아야 했다. 나는 식당에서 잡부 일을 시작했다. 조개구이집이었다. 월급을 유치원보다 오히려 많이 줘서 나는 차라리 잘되었다고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편이 말썽이었다. 남편이 밖에서 일하는 나를 믿지 못해서 자꾸 이상한 트집을 잡았다. 조개구이집은 원래 술 먹는 식당이고 남자도 많으니까 남편이 매일같이 의심했다. 일을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오면 “오늘은 누구랑 술 먹었냐?”라며 시비를 걸었다. 심지어는 내가 일하는 식당 근처에 와서 멀리서 나를 감시하기도 했다. 나중에서야 남편의 감시를 알게 된 나는 숨이 턱턱 막혔다. 62. 남편과의 불화··· 집사님 댁으로 다시 옴 살얼음판을 걷는 듯했던 남편과의 관계는 결국 화를 불러오고 말았다. 하루는 남편의 큰조카 부부가 집에 놀러 왔다. 함께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식사를 같이하고 술을 마셨다. 그런데 술이 들어가자 남편은 조카 부부 앞에서 나를 욕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내가 해명을 해도 나를 못된 여자로 몰아세우고, 또 하필 조카들이 찾아온 그 자리에서 억울하게 욕을 들으니 너무 수치스러웠다. 점점 언성이 높아지고 악다구니를 쓰면서 더 흥분하게 되고 상황이 험악해졌다. 그간 쌓인 억울함이 폭발하면서 술기운에 악이 받혀 나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바퀴벌레약을 입에 털어 넣고 말았다. 조그만 통에 쌀알같이 담긴, 벌레가 나올만한 길목에 뿌리는 약인데 아주 독한 독약에 가까웠다. 그러고는 5분 정도 지났을까? 나는 입에서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희미해진 의식 가운데 조카들은 안절부절못하는데, “내비 둬라, 저거 쇼하는 거다”라고 말하는 남편의 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렸다. 남편의 매정한 말이 귀에 들려오자 너무 화가 나서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는 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는 무작정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 아저씨는 입에 거품을 문 사람이 헝클어진 머리로 택시를 타니 너무 놀라셨다. 택시는 탔지만 내가 갈 만한 곳은 집사님 댁뿐이었다. 택시 타고 집사님 댁에 갔다. 문을 열어주셔서 들어가자마자 나는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눈을 떠보니 내가 아직 안 죽고 살아있었다. 집사님은 나를 안고 울면서 기도하고 계셨다. 집사님은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나를 보고 손가락 넣어서 먹은 것을 토하게 한 뒤 사탕가루 물을 먹여가며 나를 살린 것이다. 정신이 든 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하며 울먹이며 물어보셨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당분간 집사님 댁에 신세를 지기로 했다. (한국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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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완성을 위해 다가가는 ‘행복영양’ 이야기경북하나신문 창간 기획 : 지방자치단체장 인터뷰 오도창 영양군수 인터뷰 ▲오도창 영양군수.(사진=영양군) 영양군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영양군수에 당선된 오도창 군수는 “도약과 성장의 희망찬 미래 영양을 준비하고, 행복영양을 완성하겠다”는 포부로 지난 3년을 달려왔다. ‘행정의 달인’이란 명성답게 소통과 화합으로 군민의 역량을 결집하고 군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 오도창 군수의 지난 3년의 성과와 앞으로의 과제를 들어보고자 한다. Q : 민선7기 3년이 지났는데, 소감 한 말씀 해주신다면. - 지난 3년간 “변화의 시작, 행복영양”을 기치로 행복한 영양을 만들고자 골목골목 군민들을 만나서 소통하며, 군민을 제일의 가치로 여기고 앞만 보며 달려왔다. 그런데 아직도 해야 할 숙제가 많이 있다. 저를 선택해 주신 군민 여러분의 엄중한 선택을 항상 되새기며 변화의 완성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Q : 지난 3년 동안 군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주요 성과가 있다면. - 영양군 최초로 예산 3천억 원을 돌파했고, 코로나19 이전 영양산나물축제에서 역대 최고 인원인 16만 명을 기록했다. 또 생활밀착형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생활민원 바로처리반 실시, 어르신 무료 목욕상품권 지급, 장보기 배송서비스 등을 실시했다. 농산물품질관리원 경북지원 영양분소과 로컬푸드 직매장 개소, 영양고추 최고 가격 대우, 군정알리미 시스템 구축, LPG 배관망 지원사업 완료 등의 성과도 달성했다. 그리고 군민들의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지원하고 있으며, 새뜰마을사업과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통해 주민들의 정주 여건을 개선해 왔다. Q : 군수님께서 군민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철학은 무엇인지. - 민선7기 출범부터 생활밀착 행정서비스로 군민들이 쉽게 체감할 수 있는 정책에 역량을 집중해왔고, 그 부분에 성과도 이루어냈다. 또 군민들의 안정적인 삶을 위해서는 지역경제 활성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영양산나물 축제장을 영양읍내 중심지로 옮겨 개최했고, 영양사랑상품권을 지류형에서 카드형으로 발행하여 원활한 소비가 이루어지게 했다. 그 외에도 경제 활성화 지원을 위한 각종 조례 제·개정, 동·하계 전지훈련지 유치, 관내 상점 영업설비 교체 지원, 간판개선사업 등을 추진해서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했다. Q : 인구문제에 대한 고민은 많은 자치단체의 공통된 문제이다. 영양군의 전략은? - 인구감소는 자치단체 존폐가 걸린 문제이기에 영양군에서는 혁신적인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또한, 우리 영양군민들도 인구 2만 회복을 위해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군에서는 ‘영양군 인구 증가정책 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1인당 10만 원의 전입축하금 지원, 매월 10만 원 씩 최대 3년간 지급되는 청년 직장인 주택임차료 지원사업, 귀농인 지원사업 등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 여기에 영양소방서, 영양도서관 등의 공공기관 유치로 인구유입을 기대하며, 행복주택, 공공임대 주택 건립, 교육여건 개선 지원 등으로 이 어려움을 정면 돌파하고자 한다. Q : 복지정책에 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신다면. - 출산과 양육의 정책을 총괄하는 민간공동 인구지킴이 대응센터, 아동들의 건전한 성장과 발달을 도울 공립형 지역아동센터, 청소년들의 꿈과 희망을 키우는 청소년 수련관, 어르신들의 참여와 소통의 공간인 노인복지관을 운영 중이다. 또 영양군보건소에서는 치매안심센터를 개소하여 원스톱 치매 통합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오지마을 건강사랑방’ 운영으로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있다. 아울러 초등학생들의 돌봄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다함께돌봄센터를 개소하여 운영 중이다. Q : 마지막으로, 앞으로 남은 기간의 계획과 군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 영양의 미래 먹거리를 위해 부가가치를 높인 신성장 분야를 발굴하고, 영양의 정신을 살릴 수 있는 콘텐츠를 마련함으로 새로운 행복영양의 기틀을 조성하겠다. 그리고 국도 31호선 2개 구간 개량사업, 지방도 920호선의 미개설 구간 조기 준공 등 도로 인프라를 구축할 것이다. 또한, 인재육성장학회 지원을 통해 영양군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인재를 계속 육성하겠다. 민선7기 3년 동안 여러 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낸 것은 모든 군민과 공직자들이 혼연일체가 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군민들의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군수가 되어 행복으로 가득 찬 영양군 100년을 만들어 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군민과의 소통과 화합으로 영양군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오도창 영양군수. 사진은 오 군수가 직접 민생 현장을 방문해 지역민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다.(사진=영양군) /대담=박민성 대표, 정리=박은숙 편집국장/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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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노회남선교회연합회 순회헌신예배 및 제3회 실행위원회 열려제38회기 영주노회남선교회연합회(회장 최국낙 장로) 순회헌신예배 및 제3회 실행위원회가 지난 7월 11일(주일) 오후 5시 봉화 봉양교회(류조희 목사 시무)에서 개최됐다. “주여 이제 회복하게 하소서(스10:1,12)”를 주제로 열린 이날 순회헌신예배는 24개 교회 79명의 남선교회 회원들과 성도들이 참석했다. 먼저 순회헌신예배는 부회장 김시용 장로(영주제일) 인도로 부회장 권세문 장로(예천) 기도, 유원건 장로(봉양) 성경봉독, 남선교회 임원일동 찬양, 봉양교회 류조희 목사가 “그 이름 예수”라는 제목으로 은혜롭고 감동적인 말씀을 전했다. 이어 서기 진병창 장로(대촌)가 남선교회 행동강령 제창 후 남선교회 회가 제창이 있었고 류조희 목사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2부 실행위원회는 회장 최국낙 장로 인사, 서기 진병창 장로의 성원 보고, 회장의 개회선언, 최영열 장로 전회의록 낭독, 송규선 장로 사업보고, 최용환 장로 회계보고, 배영제 장로 북한교회건립추진위원회 회계 보고, 안건토의, 회의록 채택, 회장 기도 후 폐회선언으로 모든 순서를 마쳤다. 봉화 우병백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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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두문교회, 이종수 목사 위임 감사예배“지역을 섬기는 교회 될 것” 다짐 ▲위임식에서 이종수 목사 부부(왼쪽)가 위임국장 조영광 목사 앞에서 서약하고 있다. 예장통합 영주노회 봉화시찰 두문교회(봉화군 물야면 두문로 802-17)는 지난 7월 18일(주일) 오후 3시 노회 산하 목회자와 장로, 집사, 교우 등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종수 목사 위임 감사예배를 드렸다. 1부 예배는 위임국장 영주노회장 조영광 목사의 인도로 봉화시찰장 정영욱 목사((창평교회) 기도, 이철희 목사(석포교회) 성경봉독에 이어 위임국장 조영광 목사가 “유일하신 하나님(고전8:1~6)”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2부 위임식은 위임국장 조영광 목사 집례로 진행됐다. 노회 서기 황현석 목사가 이종수 목사를 소개했으며, 이종수 목사의 서약, 교우들의 서약, 기도, 선포, 위임패 증정, 이종수 목사 인사 등의 순서가 있었다. 이종수 목사는 “부족한 종이 주님의 복음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며 “진리의 말씀 위에 바로 선 교회, 지역을 섬김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가 되도록 교우들과 힘쓰겠다”고 인사했다. 3부 축하순서에는 부노회장 김영수 목사(예천교회) 축사, 이춘도 장로 광고 후 전노회장 김창진 목사(동산교회)의 축도로 모든 순서를 마쳤다. 봉화 우병백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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