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영남신학대학교 제69회 학위수여식 개최영남신학대학교(이사장 서원수, 총장 권용근)는 2월 7일(화) 오전 11시에 본교 대강당에서 제69회 학위수여식 및 명예박사 학위수여식을 개최했다. 1부 예배는 교무처장 이원일 교수의 인도로 드렸으며, 총회장 이순창 목사가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라는 제목으로 설교했고, 이사장 서원수 목사가 축도를 했다. 이순창 목사는 설교에서 “여러분은 이제 주님께서 몸으로 피흘려 세우신 교회를 맡게 될 것인데, 영성이 충만하고 신학이 넉넉한 영신 졸업생으로서의 정체성을 잊지 말고, 여러분이 가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가기를 축복한다”라고 전했다. 이어진 학위수여식에서는 신학과 46명. 기독교학과 20명, 사회복지학과 22명, 상담심리학과 12명, 신학대학원 54명, 목회연구과정 11명, 일반대학원 4명, 사회복지대학원 4명, 성서신학대학원 4명, 상담대학원 10명, 통일선교대학원 2명에게 학위가 수여됐다. 특별히 증경총회장 류영모 목사(한소망교회)에게 학교와 총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윤상배 장로(대현교회, 신풍섬유대표)에게 학교와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명예사회복지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류영모 목사는 감사 인사를 통해 “복합위기의 시기에 교회도 예외가 아닌데 아직도 한국교회는 희망이다”면서 “여러분이 맡겨주신 명예박사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밖에 학업 우수자들에게는 총장상, 총회장상, 이사장상, 경북도지사상 등 다양한 시상이 이루어졌으며, 총장 권용근 목사가 훈사를, 증경총회장 정영택 목사(경주제일교회 원로)가 축사를 전했다.
-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천석길 목사 구미남교회 남자가 철이 들려면 군대 생활을 해야 하고, 여자가 철이 들려면 아이를 키워 보아야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두 가지의 공통점은 무엇을 아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경험해 보았느냐로 판가름 난다는 뜻입니다. 군대는 몸으로 때워야 하는 부분이 많기에 지식적으로는 나보다 못하지만 고참이 가진 노하우가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알아가게 되며, 아이를 키우는 일 역시 육아에 대한 지식만으로는 되는 것은 아니지요? 아이를 키우면서 비로소 발견하는 것은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내 어머니의 수고가 너무나 많았구나 하는 것을 온몸으로 체득하게 됩니다. 믿음의 세계도 이와 비슷합니다. 주일이면 교회에 나오지만 늘 제자리에 머무는 분들은 신앙의 실천적인 요소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체험적이고 신앙을 통하여 말할 것이 있으려면 실천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것을 실습하는 곳이 바로 ‘목장’입니다. 목장은 우리가 귀로 들어왔던 신앙의 모든 지식을 검증해 볼 수 있는, 어쩌면 실험실과 같습니다. 한 사람을 전도해서 그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기까지는 일회성의 어떤 이벤트로는 어림도 없으며, 그를 앉혀 놓고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설득한다고 해서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은 고사하고 나 자신의 변화마저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그런데 목자 목녀로서 사역을 해 보면 너무나 놀라운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목원을 섬기고 목원을 사랑할 때에 정말이지 속이 터지고(?)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경험을 반복하던 어느 날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내가 생각해도 꽤 괜찮은 사람으로 나 자신이 성숙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지금껏 지식으로는 바뀌지 않았지만, 누군가를 섬김으로써 나 자신이 변화되는 놀라운 세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목장은 나를 내려놓아야 하며,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그를 위한 삶을 살아감으로써 주어지는 인생 최고의 선물을 덤으로 받게 되는 그런 곳입니다. 새해입니다. 지식으로만 아는 신앙이 아니라 삶이 변화되며, 내가 나를 평가할 때에도 깜놀하는 복된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식은 우리를 바꾸지 못하지만 섬김은 나 자신부터 복된 사람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그 은혜를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
2023년, 새롭게 출발합시다!이정우 목사 안동서부교회 2023년 희망찬 새해가 밝았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모든 성도들 가정 위에 넘치시기를 축복합니다. 2022년을 믿음으로 달려왔지만 아쉽고 부족한 부분들이 있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일도 많이 있었던 한해였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여기까지 도우신 에벤에셀의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우리 교회의 경우 본당에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었으며, 비전센터 증축이 시작되어 공사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내년은 교회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우리의 소망과 비전을 모아 100주년 기념교회도 신 도청에 세우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모든 성도님들의 기도와 헌신의 열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3년간 코로나로 인해 주춤했던 우리들의 신앙을 재점검하고 올해는 새롭게 출발해야 합니다. Ad Fontes(아드 폰테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본질로 돌아가자”는 뜻으로 종교개혁의 정신입니다. 먼저, 공적 예배가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젠 온라인 예배가 아니라 온 성도가 한자리에 모여 함께 기도하며, 찬양을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소원해졌던 성도들의 교제의 식탁이 살아나야 합니다. 예배, 친교, 섬김은 교회가 지녀야 할 거룩하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예배로 말씀이 회복되고, 친교로 교제가 회복되고, 섬김으로 봉사와 선교가 회복되는 한 해가 되도록 기도하고 동참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3년은 우리 모두 승리의 해가 되도록 예배, 친교, 섬김을 회복합시다. 이 일에 하나님께서 힘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주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 우리는 새것이 되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새로운 사람으로 새로운 인생을 주님과 함께 출발하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새해에도 우리 교회는 ‘행복한 사람, 행복한 교회’입니다.
-
경청장로회, 신년감사예배 및 인사회 열려예장합동 제59회기 경청장로회(회장 이관희 장로)가 1월 7일 오전 10시 30분 경산중앙교회에서 2023년 신년감사예배 및 인사회를 가졌다. 회장 이관희 장로의 인도로 드려진 1부 예배는 명예회장 윤두열 장로의 기도, 서기 김덕수 장로의 성경봉독, 경청한울림앙상블의 색소폰 연주 찬양 후 경산중앙교회 김종원 목사가 ‘축복의 근원’이란 제목의 설교에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는 한 해가 되자”라고 전했다. 설교 후에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증경회장 정승복 장로), ‘총회와 총신대, 대신대를 위해’(증경회장 김재석 장로), ‘장로회 발전과 지역복음화를 위해’(증경회장 정도천 장로)가 특별기도를 했으며, 경청노회장 박성호 목사의 축도로 1부 예배를 마쳤다. 이어서 2부 축하 및 격려 시간에는 경산시의원 김인수 의원이 축사를, 증경회장단 회장이며 107회 총회 은급부장인 김상규 장로가 격려사를 전했다. 3부 인사 및 내빈소개 시간에는 회장 이관희 장로 인사, 장로회 임원진의 인사 후 전 회원들이 일어나 “날마다 믿음으로 승리합시다”라고 말하며 상견례를 했다. 이후 총무 김오환 장로의 광고, 증경회장 석종욱 장로의 폐회기도로 모든 순서를 마쳤다.
-
회복의 날들을 기도하며조 병 우 목사 김천제일교회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세상으로 바꾸어 버린 지도 벌써 3년 가까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것이 전 세계적인 현상인 것이어서 이 영향으로 온세상이 여러 형태로 변화되었습니다. 아직도 완전히 끝난 상황이 아닌 것이 우리 주변에서 코로나 감염이란 현상에 시달리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 교회마저도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예배 중단의 현실에 막막했던 시간이 지나고 예배회복의 시간을 다시 가지게 되었습니다. ‘모임이 바로 예배’라는 가장 중요한 정서가 무너지고 모이지 않고도 예배할 수 있다는 이 시간들을 통해서 ‘함께’라는 공동체 의식이 식어진 현실 가운데 교회들이 놓여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경험하게 되는 가장 보편적인 경험은, 가지고 있을 때 혹은 누리고 있을 때는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모르다가, 잃어버린 후 혹은 빼앗긴 후에야 그것이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특별히 경험되는 곳이 바로 가정이고 교회인 듯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하나 그 소중한 것들을 찾아야 할 시기에 있음을 느낍니다. 소중한 것을 배웠다면 그것을 찾을 때에는 더이상 잃음이 되지 않을 것이고, 그 잃음은 오히려 더 소중한 것을 얻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의 삶이 잃었더라도 다시 회복할 때에 그 과정을 통해서 마치 허물을 벗은 나비처럼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힘든 과정을 지나면서 습득된 경험이 지혜가 되어서 더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면, 값진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는 언제나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은 유일한 공동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진정 믿음의 사람에게 고난은 연단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고난을 축복으로 바꾼 사람들입니다. 우리 교회가 12월 첫째 주일부터 코로나19 이전의 체제로 회복하는 시간으로 삼았습니다. 예배 시간도, 식당에서 식탁의 교제도, 코로나 이전의 시간과 똑같이 운영됩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그럼에도 이런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마스크를 벗고 함께 얼굴과 얼굴을 대할 수 있는 시간을 기대해 봅니다. 이제 우리의 모임과 교회 안에서 시끌벅적했던 아이들의 소리로 채워지길 기대합니다.
-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5~17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22~23절) 본문 말씀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어보십니다. 이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고 고백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매우 흡족해 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고 죽임당하실 것’을 말씀하실 때 베드로는 강하게 ‘주여 그리 마옵소서’ 하고 막아섰습니다. 여기서 베드로는 왜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을까요? 이는 하나님의 일을 우선 생각하지 않고 육신의 생각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일로 베드로는 예수님께 책망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칭찬하신 것과 책망하신 것을 잘 분별하여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깨닫고 바른 신앙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1. 베드로의 신앙고백 예수님께서 12명의 제자를 데리시고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가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13절)고 물으시니, 그들이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14절)고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기대에 많이 어긋난 반응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원자로 오셔서 우리들의 죄를 해결해 주시는 희생양이 되심을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다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15절)고 물으십니다. 그중에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절)고 대답했습니다. 베드로의 대답은 아주 정확한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17절)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복이 있다고 하신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성령의 계시와 조명으로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누구신지 정확하게 알게하여 주시고, 고백하게 하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았다고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의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고백은 나중에 제자들이 성령을 받으면서 열방에 복음을 전하는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2. 반석 위에 세워지는 교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8절)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에게 하신 이 말씀은 소망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바탕으로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반석 위에 세우시는 교회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바탕으로 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세우시는 교회는 음부의 권세, 즉 사탄이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19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이후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대로 초대교회에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 수많은 사람이 천국백성이 되었는데 이는 사도행전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3.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교회 사도행전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 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1:4절)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오순절 날 마가다락방에서 120여 명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받은 그들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습니까?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행2:4절). 또 행2:14절 이하에 베드로가 성령이 말하게 하시는 대로 설교를 할 때 회개하고 성령 받은 사람이 3,000명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성령 받은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회개하기 전에는 마귀에게 속아서 죗값으로 지옥으로 끌려가는 상황이었는데, 회개해서 죄를 용서받고 성령으로 천국 가게 된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령 받은 사람은 천국 가지만 성령을 근심시키거나 모독하는 사람은 사탄에게 사로잡혀 지옥 갈 수밖에 없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천국열쇠를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대로 성령을 받아서 담대히 말씀을 전하자 수많은 사람이 믿게 되었고 예루살렘 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4. 예수님의 사명을 가로막은 베드로 예수님께서는 본인이 예루살렘에서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비로소 말씀하십니다.(21절) 당시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구약 성경을 가지고 종교 지도자 행세는 했지만, 성령의 계시도 조명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의 먹고사는 일에 걸림돌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려고 안달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일로 마귀와 한통속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말씀을 듣자 베드로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해 큰 기대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로마 제국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독립국가를 이루게 될 때 자기도 예수님 가까이 높은 자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생각으로 예수님을 붙들고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22절)하고 가로막았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참으로 어리석은 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5.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 그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23절)라고 말씀하시며 책망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백성들의 죄를 위해 대신 피 흘리며 희생양으로 죽임당하셔야 그리스도의 책임을 완성하게 되는데, 베드로가 그걸 못하게 가로막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탄에게 사로잡힌 베드로를 사탄과 하나로 동등시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성령의 계시와 감동혹은 성령에 붙들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일을 말합니다. 그것을 알았던 사탄이 예수님께서 사명을 이루지 못 하게 베드로를 통해 막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베드로가 예수님의 죽음을 가로막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오히려 육신적인 생각으로 하는 사람의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권면의 말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길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24절)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라 천국 가길 원한다면, 날마다 자기를 부인해야 하는데 이는 자기 입장 즉 사람의 일을 다 부인하라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움 받았다면 자기 문제는 하나님이 알아서 책임져 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 맡기며 오직 하나님의 일에만 쓰임 받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힘쓰는 성도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깨닫는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육신의 생각으로 사람의 일을 하는 것이라면 속히 회개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나 자신을 위해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 나라에 귀히 쓰임 받기를 축복합니다.
-
감사는 믿음의 표현입니다이정우 목사 안동서부교회 사과나무가 잘 자라면 자연히 열매가 맺혀집니다. 가을의 풍성함 속에 열리는 사과는 사과나무에 주렁주렁 열매를 맺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의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는 ‘감사’입니다. 그 열매는 믿음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감사는 받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습니다. 현재의 은혜를 깨닫는 것이 감사의 출발점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감사’라는 말을 참 많이 사용합니다. 이 단어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언어입니다. 이 감사의 마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입니다. 일본의 내촌감삼(內村鑑三)은 “하나님께서 만일 인간을 저주하신다면,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으로, 그리고 성경을 읽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막힌 귀로, 또한 감사하는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도록 메마른 마음으로 저주하실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셔야 가질 수 있는 마음입니다. 신앙인들은 감사하는 마음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몇 가지 교훈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믿음의 열매’입니다. 믿음이 약화되면 감사보다 불만과 원망과 불평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옵니다. 신앙인들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감사의 마음보다 원망과 불만과 불평을 안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기뻐하고 감사하고 만족할 줄 아는 신앙인들보다는 매사에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불평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만약 믿음만 있으면 거친 들도 초막도 감사하며 천국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요 축복입니다. 믿음으로 충만한 사람들만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믿음의 열매로 그의 신앙을 증거 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순교하는 순간에도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처럼 빛났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림으로 돌로 치는 자들을 위해 축복하며 기도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감사는 내가 편안해서 감사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3:15)고 했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주장할 때 나타납니다. 감사가 옷이라고 한다면, 이 옷의 원료는 그리스도의 평강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을 가지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평강은 세속적인 기분이나 만족의 개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주장한 그 상태에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스데반은 복음을 전할 때 그리스도의 평강이 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은 세 가지 영적인 본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죄 사함을 받은 자가 누리는 은혜입니다. 두 번째는 구원의 확신에 따른 기쁨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영적인 일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일에 헌신할 때 그리스도의 평강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평강이 있는 감사를 해야 합니다. 감사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행복은 감사의 표현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감사가 없는 부요는 인간을 부패시키고, 감사가 없는 평안은 인간을 천박하게 만듭니다. 감사가 없는 고난은 인생을 삭막하게 하고, 감사가 없는 행복은 위선입니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들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사람이 됩시다. 사람들이 나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믿음의 사람들이 됩시다.
-
핍박하던 바울, 예수님의 증인이 되다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3~5절)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15~16절)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19~20절) 바울은 철저한 율법주의자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던 사람이었지만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예수님을 만난 이후 오직 예수님을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은 사도로서 신약 성경에 기록된 13편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울이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한 후 그리스도인들을 결박하러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난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바울이 회심한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였습니다. 이 시간 바울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우리도 예수님을 믿는 성도로서 바울처럼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쓰기를 바랍니다. 1.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바울 바울은 터키 동남쪽에 있는 길리기아 다소라는 곳에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친은 유대인으로서 로마제국에 군수품을 공급하는 상인으로 큰 돈을 벌었습니다. 그 덕분에 로마 황제로부터 로마 시민권을 얻게 되었고, 그래서 바울은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로마 시민권자는 특권층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유대인으로 예루살렘에 유학을 하게 되고, 당시 유대교 중에서 가장 정통 율법학자였던 가말리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바울은 철저한 율법주의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자신에 대해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3:5~6절)고 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유대인으로 철저한 유대교 신봉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율법에 정통한 교육을 받았던 까닭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말하는 자들에 대해 하나님에 대한 신성모독으로 여겼고, 대제사장들에 의해 충동을 받아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것입니다. 행7:55절 이하에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에 바울은 스데반이 죽임당하는 것을 마땅히 여겼습니다. 스데반도 죽게 하고 예수님을 따르던 그리스도인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는 일에 앞장섰던 자가 바로 바울이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이 죽은 이후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사도들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피신을 했습니다. 2. 예수님을 만난 바울 박해로 인해 예루살렘 교회에는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 일로 옥에 갇히거나 순교를 당하기도 하여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이방 지역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대제사장에게 가서 시리아의 고대 도시였던 다메섹에 가져갈 공문을 청했고,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을 결박하기 위해 다메섹을 향해 길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갑자기 하늘로부터 빛이 자신을 비추는 것을 보게 됩니다.(1~3절) 눈이 부실 정도로 너무 밝아서 바울이 그만 땅에 엎드러지자 한 소리가 들립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라고 그 빛 가운데서 예수님이 말씀을 하십니다. 바울(당시엔 사울이라 불려짐)은 예수님을 직접 만나본 일이 없었는데 이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누구이신지 물었고, 예수님께서는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이 직접 예수님을 만난 적은 없었지만 예수님을 따르던 성도들은 예수님과 한 몸된 지체였기 때문에, 성도들을 박해한 것에 대해 예수님이 “나를 박해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3. 바울에게 안수하는 아나니아 바울은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주님께서 환상 중에 그를 불러서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아나니아는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15절)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으로 가서 바울에게 안수하고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고 말하니, 즉시 바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다시 보게 된 바울은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졌습니다. 4. 예수님의 증인이 된 바울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이 충만해진 바울은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간 교제를 나눈 후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고 전파합니다. 그러나 이런 바울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21절)고 하였습니다. 그동안 예루살렘에서 교회를 박해하고 믿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죽이던 바울이 갑자기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외치니 의심을 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런 말을 들어도 힘을 더 얻어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라고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자기들을 배신한 바울을 죽이기로 공모하였고, 이를 눈치챈 바울은 그곳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게 됩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있던 제자들을 만나 교제하고자 하였으나 제자들은 바울을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못했습니다. 이때 바나바가 바울을 사도들에게 데리고 가서 다메섹에서 있었던 사실들을 그대로 전하면서 변호해 주었고, 이후에 바울은 제자들과 교제하며 함께 예수님을 담대히 전하게 됐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고난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고린도교회에 쓴 편지글에 보면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고후11:23절)라고 자신의 고난에 대해 고백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마지막까지 예수님의 증인으로 복음을 전하고 네로 황제의 박해 때에 로마에서 순교하게 됩니다. (권면의 말씀) 바울은 율법이 최고의 법인 줄로 알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하며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얻게 하시는 은혜의 법을 배척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바울을 굴복시켜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세계 복음화를 위하여 오른팔 같이 붙들어 쓰셨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잘못을 깊이 회개하고 오직 예수님을 위해 전 생애를 바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절)고 말씀하신 대로, 제자들은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많은 고난도 따랐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8:17절)고 말합니다. 우리도 바울의 생애를 본받아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깨닫고 어떤 고난이 오더라도 담대히 예수님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귀히 쓰임 받기를 축복합니다.
-
예장합동 경북노회 제191회 정기회 개최예장합동 경북노회(노회장 박종국 목사) 제191회 정기회가 9월 5일(월) 오후 2시부터 7일(수)까지 구미옥계교회(박신득 목사 시무) 예배당에서 개최됐다. 첫날 개회예배는 노회장 박종국 목사의 인도로, 부노회장 신덕일 장로 기도, 서기 송종필 목사 성경봉독(시편16:6), 임마누엘 색소폰찬양단의 찬양, 노회장 박종국 목사의 설교, 증경노회장 홍성헌 목사의 축도 순으로 드렸다. 박종국 목사는 설교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줄로 재어준 구역은 아름다운 구역이다”며 “비록 광야같고 사막같이 느껴질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나아가는 노회원들이 되길 축복한다”고 전했다. 예배 후에는 증경노회장 김종화 목사의 집례로 성찬식이 진행됐고, 김종화 목사는 ‘성찬받은 자의 삶’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이어 정기회가 개회되고 정해진 회의 순서에 따라 개회선언, 휘장분배, 목사은퇴패 전달, 각 부 보고와 청원, 각 위원회 보고, 각 시찰회 보고, 안건 청원건 처리, 안건 토의 등의 사무가 진행됐다. 한편, 둘째 날 오전 11시에 열린 목사안수식에서는 증경노회장 박신득 목사가 ‘선배 목회자 바울’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으며, 옥재호(오직은혜교회)·정연식(성주읍교회)·조동진(왜관교회) 목사가 안수를 받았다.
-
모두가 부러워했지만 ···모두가 부러워했지만 ··· 천석길 목사 구미남교회 모든 사람이 부러워했지만 정작 자신의 삶을 뼈저리게 후회했던 한 사람의 글을 읽었습니다. 그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모델이자, 패션 디자이너이며, 작가인 인도의 크리시다 로드리게스라는 여성입니다. 그녀는 암에 걸려서 치료를 받던 중에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고 합니다. “나는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차를 갖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병원 휠체어에 앉아 있다. 나의 집에는 디자인이 다양한 옷과 신발, 장신구 등 비싼 물건이 많이 있다. 그러나 나는 병원의 하얀 환자복을 입고 있다. 나는 은행에 아주 많은 돈이 내 이름으로 있다. 그러나 지금 내 병은 많은 돈으로도 고칠 수 없다. 나의 집은 왕궁처럼 크고 대단하다. 그러나 나는 병원 침대의 의자에 누워 있다. 나는 별 5개짜리 호텔을 바꿔가며 머물렀다. 그러나 지금 병원의 검사소를 옮겨 다니며 머물고 있다.” “나는 유명한 옷 디자이너였으며 계약 체결 때마다 나의 이름으로 사인을 했다. 그러나 지금 병원의 진단 검사지에 사인하고 있다. 나는 보석으로 장식된 머리 장식품이 많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비싼 보석으로 장식할 머리카락이 없다. 나는 자가용 비행기가 있어서 어디든 갈 때마다 타고 갔다. 그러나 지금은 간호사의 두 팔로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 있다. 나는 먹고 마시는 비싼 식품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병원에서 주는 약과 물만 마신다. 나는 비행기, 보석, 장식품, 비싼 옷, 많은 돈, 고급 차 등등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지금의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드리고 싶은 말은 사람이 살아갈 때 다른 사람에게 이익이 되도록 축복하고, 도와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의 생은 너무나 짧다. 이 생애에 비싼 물건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타인의 행복을 위해 도움을 준 것만이 기억에 남을 뿐이다” 모든 것을 가졌으며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그녀는 위의 글을 남기고 2018년 9월에, 함께 나누지 못했던 것이 가장 후회된다는 메시지를 남긴 이틀 후에 운명했다고 합니다. 누군가를 섬기는 삶, 그가 나로 인해서 성공했다는 고백을 듣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요, 목장을 섬기는 힘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가진 것을 나누며, 남을 섬기면서 사는 삶이 진정 부러운 삶입니다.
Warning: Illegal string offset 'use' in /home/jane82850/public_html/theme/wide01/mobile/skin/search/basic/search.skin.php on line 138
Warning: Illegal string offset 'skin' in /home/jane82850/public_html/theme/wide01/mobile/skin/search/basic/search.skin.php on line 139
Warning: Illegal string offset 'use' in /home/jane82850/public_html/theme/wide01/mobile/skin/search/basic/search.skin.php on line 138
Warning: Illegal string offset 'skin' in /home/jane82850/public_html/theme/wide01/mobile/skin/search/basic/search.skin.php on line 139
Warning: Illegal string offset 'use' in /home/jane82850/public_html/theme/wide01/mobile/skin/search/basic/search.skin.php on line 138
Warning: Illegal string offset 'skin' in /home/jane82850/public_html/theme/wide01/mobile/skin/search/basic/search.skin.php on line 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