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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통합) 총회재판국, 서울동남노회 선거 ‘무효’ 판결명성교회 세습 관련 재판 결과, 지난 10월 24일 진행된 서울동남노회의 선거가 무효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이로써 앞으로의 관심은 서울동남노회에서 지난번 회무에서 처리한 명성교회 김하나 목사 청빙안을 과연 없었던 일로 할 수 있을지에 쏠리고 있다. 예장(통합) 총회재판국은 지난 13일 오후 1시 30분부터 공개 3시간 비공개 1시간의 합의 재판 끝에 부노회장의 노회장 승계 규정을 어긴 서울동남노회의 선거가 무효라고 판결했다. 14명의 재판국원 중 8명이 무효, 6명이 유효 의견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이로써 서울동남노회는 노회장 선거를 다시 치러야 한다. 그렇게 되지 않을 경우 이번 소송의 원고인 직전 부노회장 김수원 목사는 이번 판결을 증거로 사회재판을 통해 노회장 직무정지 가처분과 함께 간접강제 신청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무효 선거로 선출된 노회장(최관섭 목사)에 의해 진행된 모든 회무 역시 다시 진행돼야 한다. 한편, 선거무효소송의 원고인 김수원 목사는 재판 종료 후 가진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공의의 하나님께 감사하다. 상식과 규칙에 따라 바른 판결을 내준 총회에 감사하다”면서 “살아 있는 판결”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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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제의 인물 인터뷰 - 최록 화가만나고 싶었습니다! 화가 최록(崔綠) CHOI ROK 2017을 이제 며칠 남겨두지 않은 시점, 여류화가 최록 선생의 개인전이 열린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에 그녀의 작품 세계와 인생관 등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독자들을 위해 인터뷰를 했다. 그녀는 전시회를 앞둔 바쁜 시점임에도 어렵게 시간을 내주어서 약속한 시간에 그녀의 작업실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화사한 미소로 맞아주며 미리 준비해둔 다과를 내어주는 그녀의 따뜻함은 햇빛이 풍성하게 들어오는 그녀의 작업실만큼이나 따뜻하고 평화로웠다. 30여 분에 걸쳐 대화는 부드럽게 이어졌고, 그녀의 진솔한 답변을 통해 그녀의 작품 세계와 인생관에 대해 잘 알 수 있었다. 다음은 그녀와 나눈 대화를 문답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지면 관계상 최록 화가는 ‘최’로 표기) 기자 :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궁금한 것 중심으로 몇 가지 여쭙겠습니다. 먼저 전시회는 언제 어디서 열리며 전시회를 열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요? 최 : 2017년 12월 19(화)~24(일), 구미예술회관 2전시실에서 열립니다. 2017년은 저에게 특별한 해입니다. 그동안 단체전은 1년에 2번 정도씩 했는데, 개인전은 한 번도 못했어요. 그래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시점이기에 개인전을 준비했습니다. 기자 : 작품 활동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최 : 저는 미술 전공이 아니고 경영학 전공입니다(대구대 대학원 석사, 마케팅 전공). 하지만, 그림은 어려서부터 좋아했고 그 꿈이 마음에 남아있었던 듯해요. 그러던 중 1990년부터 시간 여유가 있을 때마다 조금씩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미술에 대한 기초는 맹일형 교수(당시 효가대 교수)께 사사를 받았어요. 처음엔 취미로 시작했기에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기자 : 작업실을 둘러보니 오랫동안 작업 활동을 하신 것 같은 연륜이 묻어나는데 너무 겸손하신 듯 합니다.(웃음) 그림들을 보니 주로 화초나 과일 등 자연물을 소재로 많이 쓰시는 것 같습니다. 추구하시는 작품 세계가 있으신지요? 최 : 맞습니다. 저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표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첫째는 자연을 바라보면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 솜씨를 더 감탄하게 되구요, 이러한 자연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들어서 평화로운 시간들을 맛보게 됩니다. 또한, 전원주택에 살고 있다 보니 자연을 접하기가 쉬워서 그리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아름다운 자연을 제 손으로 표현할 수 있어서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한 마음입니다. 기자 : 그러시군요. 그 감동이 작품을 보는 저희들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회에는 몇 작품이 전시되는지, 그리고 혹시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최: 40~42점 정도 전시될 예정입니다. 특별히 마음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지난 2015년과 2016년에 대한민국 미술대상전과 대한민국 여성미술대전 등에 출품해서 상을 받은 작품들이 더 애착이 갑니다. 열심히 활동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작품들이기에 그런 듯싶습니다. 기자 : 불과 1~2년 전에 상을 받으셨다면, 지금이 왕성한 활동시기인 것 맞지요?(웃음) 현재 주로 활동하는 무대나 소속 협회가 있으신지요? 최 : 현대미술협회 회원이고 금미회와 금화회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기자 : 꿈을 포기하지 않고 결국은 그것을 이루셨다는 점이 무엇보다 존경스럽습니다. 생활에 얽매여 살다보니 자신의 꿈을 잊어버린 채 살고 있는 사람들, 특히 여성들에게 많은 도전과 용기를 줄 것 같습니다. 최 : 저야말로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살고 있습니다. 건강도 주시고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셔서 감사하고요... 기자 : 오늘 화가님을 통해서 감동과 도전을 받고 갑니다. 12월 19일 전시장에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 : 네 부족한 점이 많아 부끄러운 저를 이렇게 찾아주셔서 저도 영광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록 화가의 인터뷰가 끝날 때 쯤 그녀의 남편인 성기태 장로(구미제일교회)가 작업실로 들어오셔서 인사를 나누었다. 최록 화가의 말에 따르면 남편은 작품 활동을 편히 할 수 있도록 많이 외조를 해주신다고 했다. 돌아오는 내내 두 분의 평화로운 모습이 오래 인상에 남았다.) /대담·정리=박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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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인터뷰 - 유능종 변호사만나고 싶었습니다! 유능종 변호사 구미시장 예비후보 “바꿀 수 있게 바꾸어 주십시오!” 6.13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다. 보수의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경북지역에서 중도보수를 지향하며 새로운 정치를 꿈꾸는 구미시장 예비후보 유능종 변호사(바른미래당)를 최근 한 카페에서 만났다. 유능종 변호사는 대구고(24회)와 고려대학교 법학과(학사)를 졸업하고 사법시험 40회에 합격한 뒤 대구지검 검사, 김천지청 검사를 거쳐 ‘법무법인 유능’의 대표변호사를 맡고 있다. 다음은 유 변호사의 성장 시절과 신앙관에 대해, 그리고 평소 신념과 구미시장에 대한 포부 등에 대해 유 변호사와 나눈 대화를 정리해 본 것이다. Q: 구미시장 출마선언 후 4개월여가 지났습니다. 시민들을 만나며 느낀 점이 있다면요? 평소에도 변호사 업무나 여러 봉사 단체의 활동을 통해 시민들과 대화를 많이 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시장 예비후보로 시민들에게 다가가 보니 시민들의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과 기대를 더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시민은 정치에 무관심하고 “누가 돼도 상관없다. 우리는 구미 경제를 안정시켜줄 시장을 원할 뿐이다”는 등의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시민들의 고통을 떠안을 수 있는 책임감 있는 정치인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봅니다. Q: 어린 시절 이야기와 평소 좌우명 등이 궁금합니다. 저는 성주가 고향이고 2남 3녀 중 장남입니다. 학창시절엔 조용히 학업에 집중했고 부친이 경찰공무원이셨던 관계로 자연스럽게 법조계에 관심을 두고 법학과에 진학하게 됐습니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경제적으로 유복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부친의 영향으로 어려운 이웃을 살피려는 공의감과 책임감은 일찍 길러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의 좌우명 중의 하나는 “등태소천(登泰小天)”입니다. “태산에 오르면 천하가 작게 보인다”는 뜻으로, 항상 큰 뜻을 품고 세상을 넓게 보며 멀리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신앙을 갖게 된 계기와 힘이 되는 성경 말씀이 있다면요? 아내를 만나면서부터입니다. 처가가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고 처남은 목회자입니다. 결혼 후 상모동에서 3년 정도 살 때 구미상모교회에 출석했었는데, 그때 김승동 목사님으로부터 아내와 같이 집사 직분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구미시민교회(조민상 목사 시무)를 섬기고 있습니다. 주일날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시간은 항상 말씀을 통해 평안을 얻습니다. 그리고 저는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기 8:7)는 말씀을 평소에 즐겨 묵상합니다. 제가 고시 공부할 때부터 이 말씀이 제게 위로가 됐고 삶의 과정마다 큰 힘이 됐습니다. Q: 구미 시장에 대한 포부와 민생 해결 정책 등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변호사라는 직업이 ‘사회 공익’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그래서 기본적인 소송 업무 외에도 여러 사회단체에 참여하고 적극적으로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특히, 무료 강연, 각종 위원회 활동, 구미 로터리클럽 활동, 새마을 지회 활동 등을 통해 시민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렇게 15년 넘게 구미의 지역 민심을 접하다 보니 구미시의 도약을 위해서는 새로운 관점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저는 구미시가 새롭게 바뀌어야한다고 보고, “바꿀 수 있게 바꾸어 주십시오!”라는 기치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구미 시민들의 열망을 반영해 “5공단 기업 유치를 통한 구미 경제 활성화”, “구미 산업단지 주변에 KTX 역사 신설을 통한 교통과 물류 문제 해결”, “사곡역에 복합환승센터 건설” “금오산·낙동강 개발 프로젝트” 등의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저는 정치 신인이고, 제가 속한 정당도 신생 정당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마음껏 정치를 펼 수 있는 장점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Q: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저는 2012년도에 “네이트 해킹 사건” 승소를 국내 최초로 얻어내 언론의 조명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승소 사건은 개인정보 유출 관련 법규가 일제히 정비된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저의 명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무슨 일에든지 하나님의 깨끗한 도구로 쓰임 받을 준비만 되어있으면 된다고 배웠습니다. 저는 그 섭리를 믿고 남은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 제 할 일을 다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 후기> 유능종 변호사는 인터뷰 도중에 ‘지식을 가진 사람은 남을 위해 봉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는 말을 남겼다. 자신이 가진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이웃과 나누려는 생각, 그것이야말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기독교인의 자세가 아닌가 여겨졌다. 매사에 겸손이 몸에 배어 있고 항상 미소가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 그의 모습은 최고의 지성인이라기보다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친근한 이미지였다. 그의 용기있는 신선한 발걸음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길 기도한다. /대담·정리=박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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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인터뷰 - 김광림 국회의원김 광 림 국회의원 ‘경제, 일자리, 편안한 삶이 있는 경북을 만들고 싶습니다!’ 경북도지사 출마 선언 이후 90여 일 동안 하루하루 바쁘게 일정을 이어가고 있는 김광림 의원(안동, 자유한국당)을 지난 3월 초, 안동교회의 로뎀나무 카페에서 만났다. 김 의원은 영남대학교 행정학과 4학년 때 행정고시 14회에 합격했고, 32년을 경제부처 현직에서 공직 생활을 한 후, 세명대학교 총장을 거쳐 지금은 3선 국회의원으로 10년 째 지역민을 위해 일하고 있다. 다음은 김 의원의 신앙관(안동교회 장립집사)에 대해, 그리고 도백을 향한 포부 등에 대해 김 의원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Q: 최근들어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이 있다면요? 지난 평창동계올림픽에서 경북의 아들, 딸들이 위대한 승리를 거두고 돌아왔습니다. 특히 의성 출신 컬링 여자대표팀의 은메달 획득은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선수들의 투지와 열정으로 더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제 경북은 ‘할 수 있다’는 정신으로 열정과 자부심을 끌어 모아 ‘제 2의 경북 부활’을 꿈꾸며 같이 나갔으면 합니다. Q: ‘민심 청취 노트’를 소중히 여긴다고 들었습니다만… 저는 윗옷 주머니에 작은 노트를 넣고 다니며 중요한 사항들을 메모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벌써 수십 년이 넘었고 그 노트가 40~50권이 됩니다. 23개 시·군의 도민들을 만날 때도 그들과 나눈 대화 내용과 제안 사항 등을 적었습니다. 도민의 목소리가 담긴 이 노트가 정책과 공약의 기반이 되니 제게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최근에는 이 노트에 유독 “경제가 어렵다, 취업이 어렵다…” 등 가슴 아픈 내용들이 많습니다. 도민들의 손을 잡을 때마다 그들의 안타까움이 절실히 다가옵니다. Q: 어린 시절 이야기와 어머님(故 박금자 여사)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우리 집안은 ‘어머님의 기도’로 이루어진 집안입니다. 제가 10살 무렵 저희 집은 대가족제도를 벗어나 독립하게 됐는데, 얼마 후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다섯 남매를 키우기 위해 삯바느질을 시작하셨습니다. 장남인 저는 어머님을 돕고자 중학교 시절 열차에서 신문을 돌리기도 했고 농림고에 진학한 것도 경제적 이유였습니다. 어머님은 힘든 삶 속에서 붙잡은 하나님을 놓지 않으셨고 매일 새벽 교회에 나가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가정 형편이 조금 나아진 노년에는 매일 10시간 씩 10년 동안 총 10번에 걸쳐 성경 말씀을 손수 노트에 옮겨 적으셨습니다. 어머님의 낡은 성경책과 성경 필사본 노트들(100여 권 분량)은 지금 안동교회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아픈 몸으로도 바닥에 엎드려 매일 성경책을 필사하시던 어머님의 모습은 그대로 제게 신앙의 유산이 되었습니다. Q: 의원님의 삶 속에 함께하신 하나님에 대해 들려주세요. 지난 2003년 재정경제부 차관 재직 시절,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남측 수석대표를 맡아 평양에 가게 됐습니다. 그런데 회의 첫날, 북한 대표단이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남쪽이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재난을 당할 것”이라며 협박을 가했습니다. 저는 그 위협에 물러설 수 없어 즉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이후 북측과 44시간에 걸친 피 말리는 기 싸움이 이어졌고, 저는 북측의 마음을 열어달라고 그 시간 동안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결국, 북측은 사과하며 후속 만남을 제의하는 등 고개를 숙였고 회담은 무사히 마무리됐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기적’이라 말했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것임을 믿습니다. Q: 경북의 주요 현안, 도백을 향한 포부 등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경북이 처한 주요 현안을 ‘경제, 일자리, 편안한 삶’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저는 경제기획원(現 기획재정부)의 요직을 거친 후 특허청장과 재정경제부 차관으로 공직을 마감할 때까지 경제부처에서 32년을 근무했습니다. 국회에서는 기획재정위원회에서 활동했으며, 자유한국당의 정책위원장과 최고위원을 맡아 정책을 총괄했습니다. 제가 ‘경제통·정책통’으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또한, 대학교 총장을 지내면서 취업률 1위 대학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습니다. 저는 경북의 경제 부활을 위해서는 23개 시·군별로 맞춤형산업을 지원·육성해 일자리를 창출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제가 발표한 ‘광속 경북 부활(김광림이 약속하는 경북 부활) 프로젝트’는 여기에 근간을 둡니다. 그리고 우리 삶의 궁극적 목적은 ‘저녁 시간이 있는 편안한 삶’일 것입니다. 제게 기회가 주어지면 ‘믿고 맡길 수 있는 경제도지사, 일자리 도지사’가 되어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Q: 의원님의 삶의 좌우명과 평소 신념이 궁금합니다. 제 평생의 좌우명은 ‘신기독(愼其獨)’과 ‘화이부동(和而不同)’입니다. 신기독은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고자 노력하고, 혼자 있을 때 더욱 조심한다’는 뜻입니다. 화이부동은 ‘서로 조화를 이루되 같아지지 않는다’ 즉,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도 존중하고 공존하되, 의로운 뜻을 굽혀 좇지는 않는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일터에서는 늘 ‘인십기천(人十己千)’의 자세로 임했습니다. ‘남이 열 번을 하면 자신은 천 번을 한다’는 뜻으로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한 자는 큰 것에도 충성한다’는 성경말씀과도 의미가 통합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작은 것에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기독교인이자 공직자의 가장 중요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얼마 전 3.1절 기념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해 조국과 민족을 위해, 우리의 영적·사회적 각성과 통일을 위해 많은 분들과 함께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당면한 과제와 미래 세대를 위해 기도의 힘을 모아야겠습니다. 세상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섭리대로 사는 자를 어여삐 여기고 사랑하십니다. 저 또한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 후기> 김광림 의원은 “어머님의 신앙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나의 하루하루는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입니다”라는 말로 대화를 매듭지었다. 그리고 어머님이 남기신 성경 필사본을 보고 가라며 도서관으로 안내하는 김 의원의 뒷모습엔 한 평범한 아들의 그리움이 묻어 있었다. “어떤 결과가 주어지든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믿기에 평안하다”고 말하는 김 의원의 미소는 밝았다. /대담·정리=박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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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인터뷰 - 이철우 국회의원이 철 우 국회의원 ‘경상북도를 다시 대한민국의 중심으로!’ 오는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경북도지사 경선에 일찌감치 출사표를 던진 자유한국당 이철우 의원(김천)을 만났다. 이 의원은 경북 정무부지사를 역임한 김천 출신의 3선 국회의원이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것으로도 알려진 이 의원은 경북 정통 기독언론인 본지와의 인터뷰에 흔쾌히 시간을 내주었다. 다음은 이 의원의 최근의 입장을 비롯한 어린 시절의 이야기, 신앙관, 도백을 향한 포부 등 이 의원과 나눈 진솔한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Q: 출마 선언 이후 두 달여가 지났습니다. 그동안의 중점 활동을 정리하신다면? 저는 ‘경북을 다시 대한민국의 중심으로’를 기치로 가장 먼저 출마 선언을 했으며 지금까지 이동 거리만 2만1천km, 약 5만3천여 리(里)를 달리며 도민들을 만났습니다. 또한, 지난해 12월 31일 김천시당협위원장직과 함께 최고위원직을 내려놓았습니다. 공정한 경선을 치르기 위해서입니다. SNS를 통해 ‘이철우의 화목(火木)한 3시’를 진행하고 있으며, 지난 3일에는 2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변해야 산다.’ 북 콘서트를 여는 등 다양한 세대와의 소통에 힘쓰고 있습니다. Q: 최근 ‘경선 전 의원직 사퇴 철회’가 이슈가 됐습니다. 입장을 밝히신다면?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의 의석수 문제 등 당의 어려운 입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지난달 31일 홍준표 대표를 직접 만나 의견을 나눴습니다. 홍 대표는 “의원직 사퇴라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준 점은 높이 평가하지만 지방 선거를 앞두고 의원 1석이 매우 중요하다”고 밝히고, 선거 전 의원직 사퇴가 경쟁적으로 발생할 것에 대한 우려도 함께 표했습니다. 저는 당의 어려운 입장에 대해서 충분히 공감하고 선당후사(先黨後私)의 정신으로 ‘의원직 사퇴 철회’ 결정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저의 의지는 변함이 없으며 홍 대표에게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경선 전 의원직 사퇴’라는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점은 국민과 경북도민에게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Q: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 배경과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어머님께 들은 얘기입니다. 형을 낳고 몇 년 뒤 어머님은 6.25를 겪으면서 병환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시골에 들어가 살면서 병을 낫기 위해 교회에 다니셨다고 합니다. 당시 그 마을엔 어머님 외에는 신자가 아무도 없어서 어머님은 이웃 마을의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머님 태중에서부터 교회를 다닌 셈이고, 제 어릴 적 어머님에 대한 기억은 매일 찬송하고 기도하시던 모습뿐입니다. 어머님은 돌아가실 때까지 입에서 기도가 떨어지지 않은 분입니다. 그리고 처가는 왜관에 있는 모 교회를 세운 독실한 기독교 집안입니다. 오늘의 제가 있게 된 것은 양가 어른들의 신앙 인도와 중보기도 덕분입니다. Q: 평소에 마음에 새기고 있는 성경 말씀이 있으신지요? “범사에 감사하라(데전 5:16)”, 이것은 평소에 어머님의 늘 하시던 말씀이기도 합니다. 또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빌 2:3)”는 말씀을 좋아합니다.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든지 그 사람이 잘되도록 도와주고 협력하면 모든 관계가 원만해지고 결국 그 공이 나한테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Q: 지금까지 특별히 힘든 시기가 있었는지요? 최근 밝힌 네거티브에 대한 단호한 입장에 관련해서도 말씀해주신다면? 사람은 누구나 힘든 시기를 지나오는 것 같습니다. 정치하는 사람은 터무니없이 고발과 고소를 당하기도 하고 음해를 겪기도 합니다. 최근 제가 당한 네거티브 공격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저는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개헌 후 질서 있는 퇴진’ 입장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탄핵 찬성자 명단에 제 이름이 올라있는 찌라시가 SNS를 타고 최근 다시 급속히 퍼졌습니다. 이에 대해 수차례 경고를 했음에도 수그러들지 않자 지난 5일 경찰에 찌라시 유포와 명예훼손에 대해 신고하게 되었습니다. 깨끗한 선거문화가 필요합니다. Q: 현재 타 후보들에 비해 본인만의 강점이 있다면요? 아울러 도백을 향한 포부를 듣고 싶습니다. 저는 일하는 데 있어서 매우 창조적입니다. 현재까지 중앙과 지방을 두루 거치며 공직에 40여 년 근무한 것도 큰 유익이 된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2005년부터 2년 2개월 동안 두 분의 지사님을 모시고 경북 정무부지사를 지내면서 실무를 익혔습니다. 경상북도는 ‘4대 정신(화랑정신, 선비정신, 호국정신, 새마을정신)’으로 오늘의 대한민국 형성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변방에 치우쳐져 있습니다. 이제는 동해안을 키우고 경북의 문화관광산업을 활성화하고 새로운 4차 산업혁명을 끌어내고 싶습니다. 아울러 ‘이웃사촌 복지’ 정책으로 ‘행복한 경북’을 만들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기독교인들에게 평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우리나라는 제헌 국회의원의 3분의 1 이상이 목사와 장로였고, 제헌 국회를 선포할 때 故 이윤영 목사님이 국회에서 기도로 시작한 나라입니다. 그 후 전 세계가 주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축복받은 나라입니다. 바라건대, 기독교인들이 더 사회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신앙을 생활화해서 많은 본을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저부터도 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인터뷰 후기>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사람이 만드는 자리가 있고 하늘이 내어준 자리가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다가오는 6.13 선거는 사람들이 명예를 다투고 취하는 선거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정치를 펴나갈 일꾼을 뽑는 선거가 되길 우리 기독교인들은 기대한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즐겁고 기쁘게 하면 된다는 말을 남기고 다음 일정을 위해 일어서는 이철우 의원에게는 ‘편안함’과 ‘여유로움’이 있었다. /대담·정리=박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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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 박명재 국회의원‘정의’와 ‘공의’가 살아 숨쉬는 ‘위대한 경북’ 만들고 싶다 지난해 연말, 경북도지사 경선 후보에 출마 선언 이후 바쁘게 일정을 이어가고 있는 자유한국당 박명재(포항남·울릉) 의원과 최근 인터뷰할 기회를 얻었다. ‘신동해안시대’를 열어가겠다고 포부를 밝힌 그는 연세대학교 정법대학 학생회장 출신이며, 대학 4학년 때 7개월 만에 행정고시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또한 청와대 행정비서관, 경북 행정부지사를 거쳐 제9대 행정자치부 장관을 역임한 35년의 행정공무원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가 많은 역경을 이겨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며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음은 박명재 의원과 나눈 진솔한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Q: 의원님의 삶 속에 함께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제가 고시를 합격한 후 광화문 종합청사에서 근무할 때입니다. 제 사무실은 10층이지만 저는 매일 아침 19층까지 걸어 올라가서 19층 문고리를 잡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게 기회를 주시고 능력을 주셔서 제가 공무원이 되었는데, 앞으로 더욱 더 열심히 성실하게 일해서 하나님의 뜻이 계시면 저 닫혀진 국무회의 장의 일원이 되어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일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를 30년간 했는데 결국 하나님이 허락해 주셔서 제가 행자부 장관까지 하게 됐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제 삶 속에서 기도 가운데 살아 숨쉬는 분이십니다. Q: 어렸을 때 어머님을 따라 교회를 나갔다고 들었습니다. 어머님은 어떤 분이셨는지요? 어머님이 저를 낳고 얼마 뒤 병을 얻으셔서 그로 인해 온 집안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힘으로 그 병을 이겨내고 82세까지 장수하고 하늘나라 가셨습니다. 어머님은 “아들아 나 때문에 어린 너를 고생시켜서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하지만 내가 오래 살고 네가 장관까지 되는 것을 보고 죽게되니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총이다. 마지막 부탁은 꼭 주일 성수 하여라”라고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Q: 평소에 좌우명으로 삼는 성경 말씀이 있으신지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사 41:10)”, “저가 나를 사랑한 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시 91:14)”입니다. 이 말씀들에 항상 힘을 얻고 있습니다. Q: 하나님께 특별히 감사한 것이 있다면요? 저는 지나온 모든 세월들에 감사할 뿐입니다. 역경도 감사하고, 고난도 감사합니다. 저의 묘비명에는 이렇게 새기고 싶습니다. “주여, 제 잔이 넘쳤나이다”라고. 그리고 그 밑에 “공문서의 밑줄 한 줄, 글자 한 자라도 국민과 국가를 생각하며 일했던, 이 땅의 참된 영혼을 지닌 공직자, 여기 잠들다”라고 기록될 수 있다면 크나큰 영광일 것입니다. Q: 도지사 출마의 계기는 무엇인지요? 지금까지 경북 행정부지사, 청와대 행정비서관, 행정자치부장관, 당의 사무총장, 그리고 국회의원 등 여러 경험들을 쌓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도정, 의정, 국정을 아우르는 경험을 가지고 마지막으로 저의 고향인 경북의 행정을 위해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때마침 동남권 지역의 도지사 배출에 대한 열망이 커져서 지역민들의 뜻을 받들어 출마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Q: 유력한 타 후보들이 많습니다. 현재의 심정은요? 출마 선언 이후 제가 항상 드리는 기도는 이것입니다. “하나님, 저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저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어떤 성취와 결과도 저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하옵소서”입니다. Q: 도지사가 된다면 어떤 경북을 이루어가고 싶으신지요? 정의와 공의가 살아 숨쉬는 경북 도정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이니까요. 젊은이들과 여성들의 도전이 성취되는 기회의 땅, 노인들에게는 편안하고 행복한 삶의 터전, 300만 도민이 저마다의 꿈과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희망 공동체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것이 바로 ‘위대한 경북’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후기> 박명재 의원과의 대화를 통해, ‘고난의 깊이가 인물의 깊이를 결정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이웃과 고향, 사회와 국가로부터 받은 모든 것을 되돌려주고 싶은 심정으로 출마를 결심했다는 박 의원은 모든 공직 생활을 은퇴하면 하나님에 대해 간증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대담·정리=박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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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목회현장 탐방 인터뷰 - 안동서부교회 이정우 목사"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그동안 목회 칼럼을 통해 경북하나신문 독자들에게 친근한 안동서부교회 이정우 목사님을 직접 찾아뵐 수 있는 것은 행운이고 영광이었다. 열정적인 목회의 비결이 궁금했고, 마르지 않는 깊은 영성은 닮고 싶은 부분이었다. 예고도 없이 갑작스러운 인터뷰 요청에도 기꺼이 응해주신 목사님께 다시 한번 지면을 빌어 감사를 드린다. 다음은 이정우 목사님과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기자: 목사님 감사합니다. 그동안 목회 칼럼을 연재해 주신 점을 모든 독자를 대신해서 또한 감사드립니다. 본교회 홈페이지에도 많은 칼럼이 올려져 있던데 매월 칼럼쓰기가 어렵지는 않으신지요.? 이정우 목사: 매월 1편 이상을 10년 동안 써오고 있는데, 사실 쉬운 것은 아닙니다. 설교 한 편 쓰는 것과 같아요. 그래도 지금은 많은 분들이 그것을 기다려주니까 감사할 뿐입니다. 기자: 안동서부교회의 지역사회 섬김 사업에 대해 궁금합니다. 이정우 목사: 다른 교회들도 요즘은 토요문화교실, 경로대학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지역 사회를 잘 섬기고 있어서 특별히 자랑할 것은 없습니다. 다만, 다른 곳과 차별화된 것이 있다면 장난감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는데, 교회 건물 안에 장난감 도서관이 들어와 운영되고 있는 것은 전국에서 유일합니다. ‘아이누리 장난감 도서관’은 지역민들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있으며 안동 시민이면 누구나 와서 사용해도 되고 무료대여도 가능합니다. 기자: 그렇군요. 최근에 졸업식을 가졌다는 늘푸른대학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이정우 목사: 늘푸른대학은 매년 40명의 신입생을 받아서 2년 과정을 잘 마치면 졸업장을 줍니다. 매월 첫째주는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 교회와의 접촉점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졸업하신 분들이 다시 들어오고 싶어할 정도로 인기가 많답니다. 기자: 다시 들어오고 싶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면 입학할 때 경쟁도 치열할 것 같습니다.(웃음) 교회 들어오면서 보니까 ‘신년 성경통독 사경회’ 포스터가 붙어있던데 설명 좀 해주세요. 이정우 목사: 2018년 1월 1일부터 5일까지 성경통독 사경회를 갖습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더 가까이 하고자 마련했습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니, 가까이 계신 분은 많이 오셔서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기자: 안동서부교회가 신문을 발간한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신문인지요.? 이정우 목사: ‘아름다운 신문’이란 제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매월 1회 발행하는데요, 저희 교회 소식은 물론이고 전국 각지의 소식과 삶에 유익한 정보들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요즘은 ‘마르지 않는 샘’이라는 소책자도 같이 발행에서 전도용으로 쓰고 있습니다. 병원 등에 전도를 나가보면 저희 책자를 기다리는 분이 많습니다. 기자: 부럽습니다. 기다리는 분이 많은 신문과 책자를 발행하시다니… 저희 신문도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요즈음 사회적으로는 물론이고 한국 교회도 편치 않은 소식들이 많이 들려옵니다. 분열이니 세습이니 등… 이럴 때 성도들은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하는지 듣고 싶습니다. 이정우 목사: 칼 바르트 목사가 ‘한 손에는 신문, 한 손에는 성경’이라고 외쳤습니다. 믿는 사람들일수록 사회를 균형있게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지역사회와 같이 가야합니다. 그래서 지역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두되 사회 현상과 여론을 무시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명쾌한 말씀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올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교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특별히 감사한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요? 이정우 목사: 교회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 감사합니다. 매 주 새 가족이 등록하고 있습니다. 지역 교회에서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종교개혁 발상지에 다녀온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교회가 그 부분에 지원과 배려를 해주어서 감사하구요. 저희 교회는 ‘행복한 교회, 행복한 사람들’이 모토입니다. 격년제로 매년 가을에 갖는 축제 이름도 ‘해피데이’ ‘조이데이’입니다, 기자: 목사님과 대화를 하고나니 힘이 납니다. 주변 지역에 믿지 않는 분들이 모두 이 교회에 나와서 삶의 기쁨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시간 내주시고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정우 목사: 경북하나신문이 앞으로 기독언론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저도 기도하겠습니다. /대담·정리=박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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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 하나님이 찾는 사람하나님이 찾는 사람 박은숙 기자 연말이 지나고 새해가 밝았다. 예상외로 너무나 많은 크고 작은 행사들이 신년에 있었다. 모두 찾아가서 인사도 드리고 취재도 하고 싶었지만, 행사가 겹치는 경우도 있고 거리가 너무 멀어서 가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다녔던 것 같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 생각하니 피곤하지도 않고 즐겁게 다닐 수 있었다. 지난 18일, 경주시기독교연합회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경주에 갔다가 올라오는 길이었다. 1시간 30분 동안을 쉬지 않고 달리는 차 안에서 창밖의 스치는 풍경을 보며 경상북도 땅이 참 넓구나 생각했다. 그러다 갑자기 그 시간에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심히 경북 땅을 누비고 있을 도지사 후보들의 일상이 떠올랐다. 매일 올라오는 보도 자료를 보면 그분들은 하루에도 몇 개 시·군을 순회하는 강행군을 한 달 넘게 해내고 있는 것이다. 경북 전체를 아우르는 것은 현실적으로 공간적·지리적인 면에서는 쉬운 일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며칠 후 경북도지사 후보 중 두 분을 단독으로 인터뷰할 기회가 이틀 간격으로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마음은 있었지만 내 능력으로는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하고 기대도 못 했는데 하나님께서 갑자기 그런 상황들을 만들어 주셨다. 아직 경험도 부족한 기자인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떨리고 긴장됐다. 그런데 알고 보니 두 분 모두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다. 인터뷰라기보다는 신앙 간증을 듣는 것에 가까웠다. 독자를 대신해서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고 그것을 신문에 실어서 알리는 것도 언론사가 할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많은 분들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하나님이 찾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본다. 하나님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신다고 하셨다(대하 16:8). 누구나 맡겨진 사명도 그 달란트도 다를 것이다. 그러나 자기의 사명을 정확히 알고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면 그를 통해 하나님은 일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 걸음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것이다. 앞으로 있을 6.13 지방선거에 대해 모두가 한마음으로 기도했으면 한다. 공의와 사랑으로 지역민들을 살필 수 있는 신실한 사람이 새로운 지도자로 세워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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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 '세 겹 줄'의 의미'세 겹 줄'의 의미 박은숙 기자 지난 11월 15일, 강도 5.4의 포항 지진은 생각보다 피해가 심각했다. 지진 이후, 인명과 재산 피해, 그리고 이재민의 집계 숫자는 커져만 갔고, 그에 못지않게 각계각층의 따뜻한 손길 또한 쉴 새 없이 매스컴에 보도됐다. 그런데 유독 마음을 끄는 뉴스는 ‘포항 기쁨의교회’가 이재민 대피소로 교회 건물을 개방하고 섬기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불과 며칠 전 한국의 대표적인 어느 대형교회의 父子세습 문제로 불편했던 마음들이 씻겨지는 기분이었다. 취재를 위해 현장을 방문하기로 했다. 기쁨의교회 사무국을 통해 박진석 담임목사님과의 인터뷰 요청을 했다. 지방의 작은 신문사 기자가 토요일 오전 인터뷰를 요청했는데도 흔쾌히 허락하신 박진석 목사님께 감사한 마음을 품고 포항으로 달려갔다. 목양실에서 인터뷰 도중 박 목사님으로부터 ‘세 겹 줄’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다. 더불어 지진 당시 얼마나 큰 충격들이 있었는지, 어떻게 기쁨의교회에 포항 시민들이 몰려오게 됐는지, 어떤 정신으로 이재민들을 섬기고 있는지, 그 일을 통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등 30여 분에 걸친 목사님의 말씀은 감동적인 한 편의 설교였다. 박 목사님은 이재민을 섬기는 과정에서 큰 재난을 이겨낼 수 있는 정신력과 단결력이 필요함을 깨달았고, 그 해답을 성경 말씀에서 찾았다고 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 4:12) 민, 관, 이재민이 세 겹줄이 되어 재난을 지혜롭게 극복하자는 것이었다. “이재민들을 보호·관리하는 행정당국(관)과 이를 지원하고 이재민들을 섬기려는 교회공동체(민), 그리고 피해당사자인 이재민들이 마음을 열고 신뢰 속에 함께 어우러져야 지역 사회의 치유와 회복의 길이 열린다고 보았다”고 박 목사님은 강조했다. 이어서 기쁨의복지재단 이선종 이사장 및 임원들과의 인터뷰, 현장 취재 등 2시간여의 취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세 겹 줄’이란 단어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하나님이 이 시대에 요구하시는 회복의 원리가 이 ‘세 겹 줄’ 정신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조직(교회)에는 지도자(목회자)와 협력자(중직자)와 참여자(성도들)가 있다. 그리고 지도자의 ‘영성’과 협력자의 ‘지성’과 참여자의 ‘순종’이 세 겹 줄로 묶여 있을 때 그 조직(교회)은 어떤 위기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다. 포항 기쁨의교회에서 만난 시민들은 모두가 침착하고 질서있게 행정 당국의 지시에 협력하고 있었다. 또한 박진석 목사님 이하 모든 성도들과 자원봉사자들은 피곤한 기색없이 가족처럼 그들을 잘 섬기고 있었다. 한국 교회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 것 같았다. ‘세 겹 줄’ 정신은 희망의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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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 하나님의 개입하나님의 개입 박은숙 기자 신문 발행 날짜가 잡히면 ‘마감 시간’이라는 틀이 주는 중압감에 기자들은 일 분 일 초가 아까울 때가 있다. 그런데 이번 139호는 12월 마지막 주로 일정이 잡혔고, 연말이 가까울수록 행사와 취재가 많아 심적인 부담감이 그 어느 때보다 컸다. 그러나 내 마음 한 켠에는 이번에도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상황 속에 개입하셔서 그분의 뜻을 나타낼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경북도청(예천 소재) 청사에 취재가 잡힌 날 아침이었다. 갑자기 여러 상황이 맞물리면서 출발이 힘들게 돼버렸다. 취재를 가는 것은 무리한 일정이요 비효율적인 시간관리가 돼버렸다. 더구나 몸의 컨디션도 최악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도청 청사에 꼭 가야할 것 같은 아쉬움을 떨치지 못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그 근처에 안동이 있으니 안동 쪽 교회에 들러 취재를 하고 오면 하루를 소비한 그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었다. 그러자 어디선가 없던 힘이 생기면서 자신있게 핸들을 잡게 되었다. 어려운 여건들 속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미세한 음성을 붙잡은 느낌이었다. 가는 길에 안동서부교회와 안동교회 사무국에 전화를 걸었다. 성사 가능성이 0%인 갑작스러운 인터뷰 요청이었다. 그런데 기적처럼 두 분 목사님과의 인터뷰가 순차적으로 다 예약되었다. 바쁘신 목사님들께서 베푼 배려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도청 취재 후 점심을 먹고, 먼저는 그동안 수차례 목회칼럼을 기고해주신 안동서부교회 이정우 목사님을 찾아갔다. 지역사회를 품어나가면서 행복하게 목회하시는 목사님과의 대화는 오래도록 따뜻하게 남았다. 교회의 시대적 사명에 대해 언급할 때는 ‘한 손에는 신문, 한 손에는 성경’이라는 칼 바르트 목사의 멋진 명언을 인용하며 그 의미를 짚어주셨다. 뒤이어 안동교회 김승학 목사님과의 인터뷰 역시 큰 울림이 있었다. 목사님과의 대화를 통해 안동지역의 기독교 전래 과정을 비롯한 초기 한국기독교 역사에 주춧돌을 놓았던 인물들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기독언론이 그 문제에 관해 메시지 전달자의 사명이 있음을 점검하는 시간이 되었다. 기독역사에 대해 다루고 싶은 나의 오랜 숙제 중 하나가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두 분 목사님과의 만남을 통해 평범할 수도 있는 어느 하루의 오후 몇 시간이 내게는 소중한 선물로 바뀌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개입 외에는 설명이 불가능한 대목이다. 날마다 우리의 부족함을 고백하고 주의 도우심을 간구할 때, 주께서는 그분만의 방식으로 우리를 이끄신다.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 그분의 강함이 드러나시도록 우리를 내어드리는 일, 그것만이 우리가 할 일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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