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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로봇교육 지도사 양성으로 경력단절여성 지원평생학습원과 한동대학교 협업! 경력단절여성 전문 자격증 취득 포항시는 지난 10일 한동대학교 현동홀에서 수강생 50명이 참석한 가운데 ‘로봇교육 지도사 양성과정’ 개강식을 가졌다. 이번 사업은 포항시가 2019년 경상북도 평생교육 중심도시 구축 사업에 한동대학교와 함께 협업을 통해 선정돼 추진하는 사업으로, 개강식에는 황철원 한동대학교 글로벌 미래평생교육원장, 최태선 포항시 평생교육과장 등 참석해 수강생들을 격려했다. 지난 7월 29일부터 수강생 50명 접수를 시작해 빠르게 접수가 마감됐으며, 이는 수강생 대다수가 경력단절여성임을 감안할 때 로봇교육 분야 여성들의 재취업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 수 있다. 수강생 박 모 씨(장량동, 47세)는 “아이를 키운다고 가정주부로 생활하다보니 나 자신의 꿈과 삶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전문자격증도 취득해 로봇교육 지도사로 새롭게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교육과정은 11월초까지 매주 화요일 총 18시간에 걸쳐 전문 강사들의 강의로 진행되며, 상반기에는 영·유아 코딩 지도사 양성과정까지 운영했다. 포항시 평생학습원 관계자는 “한동대학교와 함께하는 이번 사업을 통해 미래 인재육성을 위한 지도자를 양성하고, 나아가 경력단절여성의 학습형 일자리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예진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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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속의 은혜를 누가 받았느냐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53:1~2)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사53:4)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본문 이사야 53장은 고난의 종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이유와 의미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선지자를 통한 예언의 말씀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700년쯤 전에 기록된 예언입니다. 700년 전에 이 땅 위에서 이루어질 일들을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이사야 선지자를 통한 성령의 계시로 예언하게 하신 것입니다. 즉, 700년 뒤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하게 하시고, 택하신 자기 백성들의 죄악을 그 예수님에게 대신 담당시켜 벌 받도록 십자가 형틀에 못 박혀 죽임당하게 하실 계획이 오래전서부터 세워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언이 1~3절까지는 상당히 비관적인 말씀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1절에 보면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하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는 육신의 사람들은 이 말씀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인 소망을 위해서 주시는 말씀인데 육신을 기준으로 육신의 입장에서 그 말씀을 받아들이려고 하기 때문에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14절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영적인 진리의 말씀을 들려주시고 회개하라 하시는데 타락한 인간이 육적인 자기 기준에서 받아 드리려고 해보지만 이해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선지자들이 애타게 하나님의 구원계획 진리의 말씀을 외치지만 아무도 믿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하고 반문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능력의 손길로 누구를 구원해 내셨느냐, 다시 말하자면 대속의 은혜를 누가 받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서도 구원 못 받은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보다 더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상당히 부정적인 예언처럼 보이지만 대속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에게는 복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외모의 모습 2절에서 예수님의 외모가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았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다고 표현하였습니다. 이는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는 수분이 없기 때문에 거의 말라 비틀어져 죽어가는 모습으로 간신히 살고 있는데, 예수님의 모습이 마치 습기가 없어 생기를 잃어버리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다는 표현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어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육신의 시각으로 보면 듬직하지 못하고 믿음직스럽지도 못한 기대 이하였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 예수님은 미가서 예언의 말씀처럼 베들레헴에서 나셨는데 여인숙에서도 묶을 방을 얻지 못해 부득이 마구간에서 만삭이 된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 이유는 로마의 가이사 아구스도가 모든 나라 백성들에게 자기가 태어난 본향으로 돌아가서 호적을 정리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베들레헴 땅에 사람들로 붐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구간에서 낮고 비천한 몸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언의 말씀을 성취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구간에 나셔서 짐승만도 못하게 온갖 죄악을 일삼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가장 낮은 자리에 오신 것입니다. 또 3절에 보면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들에게 버림받았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에게 얻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외면하고 멸시했습니다. 얼마나 철저히 무시했으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멸시했다고 말하겠습니까? 그래서 간고를 많이 겪으셨는데 이것은 그의 육체가 가시에 찔리는 고통, 또 못 박히는 고통, 창에 찔리는 고통을 다 당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3.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에 대한 이유와 목적 죄도 없으신 분이신 예수님이 왜 그렇게 모진 고통과 채찍에 얻어맞을 때마다 신음하시면서도 참아내고, 목숨 끊어질 때까지 희생양이 되어 주시려고 그렇게 눈물로 기도하시며 그리스도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는 제물로 죽어 주셨을까요? 그의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이유와 목적이 4~6절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질병의 고통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신 벌 받아 낫게 해 주시고, 우리가 슬퍼하는 일을 예수님이 대신 희생양이 되심으로 우리를 영원한 기쁨에 두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병을 십자가에서 짊어지시고 우리의 슬픔을 대신 담당해 주셨건만 우리 생각에는 그가 자기의 허물과 죄로 하나님께 매를 맞고 고난을 당한다고 오해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죗값으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으신 것이요 우리의 나음을 위하여 그가 채찍에 맞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아 피를 흘리시면서 살이 터지고 피가 쏟아지는 그 모진 고통으로 내 죗값을 대신 담당해 주셨기 때문에 내가 오늘 회개하므로 죄를 용서 받을 수 있고, 지옥 길을 벗어 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속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죗값으로 시달리는 고통의 형벌을 내게서 걷어 내주신 예수님을 깊이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4.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신 현장 7~9절까지는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시는 현장에서 되어 질 상황을 700년 전에 미리 예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입고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실 때 어떻게 행하셨습니까?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7절). 예수님은 그 십자가를 지실 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참으시고 침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잠잠한 양같이 그의 입을 한 마디도 열지 않으시고, 그냥 우리를 위하여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가셨습니다. 우리가 죽을 죽음을 대신 당해 주시면서 끝까지 감당하시고 그 구원을 마침내 다 이루셨습니다. 5.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로 드려진 것 10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시고, 질고를 당하게 하셨던 것은 그의 영혼을 죄로 인한 속건 제물로 삼으신 까닭이었습니다. 속건 제물은 자기로 인한 피해의 대상에게 충분히 그 배상을 한 후 그 죄를 하나님 앞에 용서받기 위해 속죄제를 겸하여 드리는 것이 속건 제물입니다.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짐승을 하나님 앞에 속제 제물로 드리는데 이는 희생 제물을 제사장에게 드리고 난 다음 자기 죄를 고백하고 속죄제를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는 어린 양으로 죄인들을 위하여 대신 벌을 받아 희생 제물 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 (권면의 말씀) 대속의 은혜를 누가 받았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의 참뜻을 깨닫는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사건은 육신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성령으로 믿어지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하며 귀히 쓰임 받기를 축복합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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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도, 온전히 사랑할 순 있다천석길 목사 구미남교회 우리나라에 두 번(1994년, 2014년) 개봉한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를 통하여 보여주는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서 줄거리는 잊어도 그 영화의 포스터에 나오는 낚시하는 그림은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아있는 영화입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장교 출신의 아주 보수적인 목사님에게 노만과 폴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사랑의 표현과 칭찬을 잘 못 하는 완고한 성격이었지만 두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함께 낚시하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어려서부터 아들과 함께 경치 좋은 곳에서 낚시를 가르쳐 주는데 큰아들인 노만은 아버지가 가르쳐주는 대로 순종적이었지만 둘째인 폴은 낚시는 좋아하지만 아버지의 방법이 아닌 자신의 방법으로 낚시를 즐기곤 했습니다. 성격 그대로 큰아들 노만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적이어서 아버지 곁에 있으려 했지만 좋은 대학을 졸업한 우수한 인재였기에 대도시의 유수한 대학의 교수로 떠납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 폴은 어려서부터 아버지께 반항적이었고 할 수만 있으면 빨리 독립하고 싶었지만, 그는 멀리 가지 못하고 고향에 남아서 작은 신문사의 기자로 살아갑니다. 폴은 도박에 빠져서 많은 빚을 지고 결국은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길거리에서 폭행을 당하여 사망하게 됩니다. 아들의 장례식을 치른 주일날 아버지 목사님은 설교를 통해서 아들의 죽음을 떠올리면서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온전히 사랑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라는 유명한 대사를 남깁니다. 그와 함께 “내가 여러분에게 이런저런 좋은 말을 하지만 막상 너무나 큰일을 당하면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거의 돕지 못합니다. 무엇을 도와야 할지도 모르고 때로는 그들이 원치 않는 도움을 주곤 합니다”라는 가슴 찡한 고백적인 설교를 합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 곁을 지나갑니까. 그들을 다 이해할 순 없지만 그들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설득하려고 고집하거나, 이해하려고 고민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품어주는 사랑의 마음이 있는 곳이 우리의 가정과 목장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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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 복입니다.이정우 목사 안동서부교회 예수를 믿고 복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그 복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복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을 이야기하지만 우리가 받아야 할 복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복입니다.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효자와 불효자가 있습니다. 효자나 불효자나 외형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효자도 불효자도 부모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그리고 효자나 불효자나 그 이름이 족보에 오릅니다. 둘 다 부모로부터 상속을 받습니다. 그러나 불효자가 받지 못하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음의 감동입니다. 효자는 부모를 보면서 마음에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리며 그 마음속에 부모의 은혜를 잊지 못하면서 늘 흠모하는 자식입니다. 그러나 불효자는 그 중심에 부모를 향한 마음의 감동이 없습니다. 부모의 은혜를 모릅니다. 그래서 불효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무엇으로 받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마음의 감동으로 받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주님을 사랑하면 은혜를 받은 자요, 사랑하지 않으면 은혜를 받지 못한 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받는 특별한 은혜는 하나님께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하늘을 보나, 땅을 보나, 세상 어디를 보든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동을 느끼는 사람들은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현대인들이 가장 받고 싶어 하는 것이 감동입니다. 감동의 사전적 의미는 ‘깊이 느껴 마음이 움직임’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느끼는 행·불행과 쾌·불쾌도 감동 때문입니다. 감동이 있으면 행복과 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향하여 ‘감동이 없는 세대’라고 하셨습니다.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마11:17)라고 한탄하셨습니다. 감동이 없기는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우찌무라 간조는 “하나님이 인간을 저주하신다면 질병이나 실패나 죽음 따위로 저주하시지 않고 성경을 읽어도 믿지 못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것을 믿지 못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우러나오지 않는 마음으로 저주하실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에 감동이 없는 것이 저주입니다. 그러나 감동은 은총이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감동이 있어 말씀을 깨닫게 되고, 말씀을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나고, 가슴이 벅차오르면 바로 이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찾는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무엇인가를 가진 사람,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마음에 감동되는 자를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만날 때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감동 시킨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기독교는 바로 감동의 종교입니다. 감동이 사람의 영혼을 삽니다. 감동이 십자가의 은혜 앞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중국의 석학 임어당(린위탕)이 기독교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이유를 사람들이 물었을 때 그가 한 대답은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쉽게 설명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말한 기독교의 본질은 구원의 감동이었습니다. 감동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기독교가 어떤 종교인지 성경을 많이 연구했고, 또 유교와 불교도 연구해 봤습니다. 종교를 비교해 본 결과 기독교에 구원의 감동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깊은 우물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날 살려 달라고 소리를 질렀더니 석가모니가 우물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때 그는 손가락질을 하면서 "전생에 얼마나 못되게 굴었으면 이렇게 죽게 되었느냐? 업보요, 업보"라고 하면서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하고 갔습니다. 그래서 불교를 바라보니 살 길이 없었습니다. 또 지나가는 사람에게 살려 달라고 소리를 질렀더니 이번에는 공자가 들여다보았습니다. 유교에는 내세가 없습니다. 죽으면 끝나는 것입니다. 기어이 종교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도덕적인 종교입니다. 공자가 손가락질을 하면서 "이 놈, 너 죽으려고 거기에 빠졌느냐? 빨리 나오지 못해?" 얼마나 책망을 하는지, 죽게 된 사람을 건질 생각은 않고 야단만 치고 갔습니다. 유교는 책망만 잘하는 종교입니다. 또 다시 지나가는 사람에게 살려달라고 했더니 예수께서 들여다보았습니다. 예수는 친히 줄을 매고 내려와서 나를 업고 다시 줄을 타고 올라가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구출해 주었습니다. 살 길은 여기에 있고, 문제 해결은 여기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의 구원관은 감동입니다. 기독교에 생명과 진리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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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서점 작가초청 북콘서트 ‘나태주 시인과의 만남’‘시를 통해 헤아리는 삶의 지혜’ 구미시에서는 8월 10일(토) 인동에 위치한 광신서점에서 지역의 동네서점 활성화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동네서점 작가초청 북콘서트 세 번째 시간으로 ‘나태주’ 시인을 초청하여 ‘시를 통해 헤아리는 삶의 지혜’를 주제로 북콘서트를 진행했다. 이날 북콘서트는 광신서점 2층에 준비한 130석 좌석이 부족할 정도로 많은 시민이 참여했고 무대 또한 시민과 최대한 가까운 거리에서 강연할 수 있도록 하여 시인과 시민이 함께 소통하는 멋진 무대로 꾸며 참여 시민의 만족도를 높였다. 강연에 앞서 나태주 시인의 유명 시를 낭송하는 시간에는 초등학생 아이와 부모가 함께 ‘풀꽃’을 낭송하고, 지역의 작가가 ‘너를 두고’라는 나태주 시인의 시를 낭송하며 강연의 시작을 열었다. 나태주 작가는 이번 북콘서트에서 “지역의 서점이 처한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책보단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시대가 됐지만, 동네의 서점이 지역주민에게 어떤 가치로써 존재하는지 되새겨야 할 것”이라며 동네 서점이 사라지지 않도록 지역 주민들의 관심을 당부했다. 나태주 작가는 충남 서천에서 출생하여 64년부터 약 43년간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흙의 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정지용문학상 등 다양한 수상경력이 있으며, 개인시집인 ‘대숲 아래서’, ‘산촌엽서’ 등 35여 권, 산문집 ‘시골사람 시골선생님’ 등 10여 권, 그 외에도 동화집, 시화집, 사진 시집 등 많은 작품을 출간했다. 유익수 평생교육원 원장은 “더운 날씨에도 서점 공간을 꽉 채워주신 시민 여러분을 보니 독서 사업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느낀다”며 “다양한 독서문화 활성화와 함께 동네서점 북 콘서트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예정이며 시민 여러분들께서도 동네서점이 지역민의 문화 사랑방이 될 수 있도록 꾸준한 이용을 부탁한다”고 말하였다.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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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에 이끌리는 공동체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주하는 이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그 곳에 우리가 거주할 처소를 세우사이다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가라 하는지라.(왕하 6:1,2) 무리가 요단에 이르러 나무를 베더니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쇠도끼가 물에 떨어진지라 이에 외쳐 이르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이니이다 하니(왕하 6:4,5)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 쇠도끼를 떠오르게 하고 이르되 너는 그것을 집으라 하니 그 사람이 손을 내밀어 그것을 집으니라.(왕하 6:6,7) 우리는 흔히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하나님의 쓰시는 사람들에게 성령님이 임재하시고 초자연적 능력의 역사로 쓰임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에서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꾼들에게는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헌신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BC847년경 북이스라엘 땅에 있었던 일입니다. 1. 하나님께서 선지학교를 세우심 그 당시 선지자는 하나님 뜻을 전하는 대언자의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구약시대에 기름부음을 받는 직분으로 선지자, 제사장, 왕이 있었습니다. 그 세 직분을 세울 때는 반드시 기름 뿔에 기름을 채워서 그 사람에게 성결예식을 행하고 머리에 기름을 붓고 안수합니다. 기름은 곧 성령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자기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의 길로 가지 않도록 선지학교를 세워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선지학교는 왕하 2장 3절 이하에 벧엘, 여리고, 요단이라는 곳에 있었는데 선지학교는 현재의 신학교와 같은 곳입니다. 그런데 선지학교에 선지자의 생도들이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이 넘쳤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생도들을 많이 보낸 것입니다. 2. 엘리사의 겸손함과 생도들의 존경심 엘리사는 선지학교의 지도자(선생)의 위치에 있었으며 생도들을 보살폈습니다. 그런데 아주 작은 규모였던 선지학교의 생도가 너무 많아 장소가 매우 협소해지자 생도들이 엘리사에게 요단으로 가서 그곳에 우리가 거주할 처소를 세우자고 건의하였습니다. 사실 이 사회 조직으로 보면 윗사람이 지시하고 아래 사람이 따르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아래 사람의 요청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엘리사가 보인 겸손한 마음은 생도들에게 살아 있는 교육이 되었을 것입니다. 또다시 어떤 생도 하나가 엘리사에게 “종들과 함께 가소서” 하고 요청하자 기꺼이 승낙한 것 또한 같은 마음으로 한 것입니다. 이때 생도들이 자신을 낮춰서 종이라고 말한 것은 성령이 충만한 엘리사를 하나님 다음으로 높이 받들고 따르고자 함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딤전 5장 17절 말씀에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고 하신 말씀을 깊이 되새겨 봐야 합니다. 선지학교처럼 성령이 충만하여 가르치는 자는 항상 겸손할 것과 따르는 사람들은 존중한 마음을 가지고 서로 섬겨 나가야 할 것입니다. 3. 요단에서 벌어진 기적 생도 모두가 요단에 가서 처소를 세우려고 나무를 베는데 한 학생이 나무를 벨 때 쇠도끼를 물에 빠뜨렸습니다. 비싼 쇠도끼를 빌려 왔는데 그만 물에 빠졌으니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아,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입니다”하고 외치자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졌더니 쇠도끼가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생도들이 이 기적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엘리사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시는구나”하고 느꼈을 것입니다. 교회 안에도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많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위기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성령께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는 위급한 상황에 빠진 생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기적을 베푸신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단에서 벌어진 기적은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신 하나님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 사건이었습니다. 4. 기적이 믿어지는 이유 쇠도끼가 물에서 올라왔다는 것을 인간의 생각과 세상 지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전 2장 9~10절에 보면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영적인 눈이 가리워져 있기 때문에 본문의 기적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아니 쇠도끼가 어떻게 물에 떠오를 수 있단 말인가? 말도 안 돼!”하며 신화라고 여기고 부정합니다. 하지만 성령 받으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되고 그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을 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성령께서 영적인 눈을 열어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지게 하고, 또한 성경의 기적도 믿게 하는 것이지요. 5. 쇠도끼가 물에 빠진 것이 오히려 은혜였다 쇠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물에 들어간 것은 큰 위기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사람들 모두 어려운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생도가 즉시 엘리사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처럼 우리 모두는 그 위기 순간에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위기에서 구해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우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 어려운 일을 주시곤 합니다. 생도가 쇠도끼를 빠뜨려서 위기를 당한 것도 하나님의 뜻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일어나는 일은 우연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일을 그 섭리 가운데 주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쇠도끼가 물에 빠진 것이 오히려 은혜였던 것입니다. 만약 쇠도끼가 물에 빠지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기적을 볼 수 있었겠습니까? 6. 성령 충만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일하신다 하나님은 성령 충만한 엘리사 선지자를 통해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는 성령 충만한 사람으로 쓰임 받는 엘리사를 보며 생도들에게는 큰 도전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이 교회에 목자를 통해 양을 보살피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령 충만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맡기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처럼 성령 충만한 목자의 본을 따라 우리 성도들도 성령 충만을 사모하고 귀히 쓰임 받기를 하나님께 구하시길 바랍니다. (권면의 말씀) 하나님은 구약 시대로부터 오늘 이 시대에까지 성령으로 역사하시고 많은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교회는 성령에 이끌리는 영적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요단에서 보여주신 기적을 믿고, 목자와 양 모두 성령 충만하여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를 통해 이 땅에 이루어지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어려움을 당할 때도 낙심하지 않고 기적을 이루시는 하나님만 온전히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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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행복! 나누면 배가 됩니다.박 보 현 집사 구미샘물호스피스 자원봉사단 총무 내 삶의 무의미함 속에서 나를 변화시키는 기회가 된 것은 호스피스와의 만남이었습니다. 호스피스 봉사는 제가 생각하는 봉사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아주 특별한 영적인 봉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단 한 송이 꽃이 마음을 부자이게 할 수 있듯이 따스한 말 한마디는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모든 시작은 어렵다”는 독일 속담이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어렵게 얻은 것일수록 더욱 값지다”라고 덧붙이고 싶습니다. 저도 처음 봉사의 시작은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아버지가 요양병원에 계시다가 소천 받으실 때도 두려움과 당황함으로 인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하고 도망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많이 바보짓을 했구나’하고 반성을 해 봅니다. ‘아버지에게도 발마사지, 머리 감기기 등을 해드려 편안하게 보내드릴 수 있을 텐데….’ 가끔 이런 생각을 하며 지금은 얼마나 후회가 되는지 모릅니다. 말기 환우님들의 발을 만져보면 부종으로 인해서 손만 대기라도 하면 금방 터질 것 같아 안타까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는 부종을 빠지게 할 수도 있는 자신감을 가지고 섬기고 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함께 섬겼던 호스피스 동행 봉사단 덕분입니다. 특히, “환우님들 발을 마사지할 때는 마음과 정성을 다해야 그 마음이 환우님께 전달된다”고 항상 말씀하시는 이기우 국장님, 영혼의 위로와 안식을 주시는 손석춘 목사님, 그리고 ‘호스피스의 천사’ 같은 우리 장수영 팀장님…. 이렇게 헌신하고 사랑으로 봉사하는 많은 분이 있어서 구미 샘물호스피스가 발전하고 널리 알려지는 것 같습니다. 호스피스에서는 죽음 앞에서 무섭고 두려워 떨고 있는 어린양들을 목자들로 하여금 영혼의 안식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놀라움도 경험하게 됩니다. 얼마 전 김천의료원에 호스피스 병동이 개원을 하여 호스피스 동행 봉사자들이 말기 환우님들의 돌봄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호스피스병동에 입원하지 못하는 환우님들을 찾아가 발마사지 등을 하고 있습니다. 호스피스 동행 봉사단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자신을 돌보기보다 환우님들을 돌보기 위해 애를 쓰고 있고, 이들로 인해서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나 자신으로 인해 환우님들의 삶이 풍요로워 질 수 있다면 참으로 멋지고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남에게 내어주어도 내 안에서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커지며 나도 다른 사람도 함께 행복해지는 것이라 합니다. 행복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하지요. 누구에게나 행복을 찾는 마음은 똑같겠지요. 결국, 인생이란 행복을 찾아 끝없이 외롭고 긴 여정을 살아가는 게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성실히 땀 흘리는 수고가 곧 행복으로 변하는 게 아닐는지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입니다. 죽음 앞에서 당당히 하나님을 찾고 마지막 남은 시간을 가족들과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작은 힘이지만 보탬이 되는 봉사자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 월간 샘물호스피스 5월호 기고 글 -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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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성화'와 '구원'에 대하여'성화'와 '구원'에 대하여 하 승 무 목사 한국장로회신학교 역사신학 교수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오늘은 저 자신을 포함해서 여러분에게 질문 하나를 던져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우리가 만약 성화되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난다면 얼마나 비참한 상태에 이르게 되는지를 아느냐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화되지 못한 인생은 결코 구원을 보장받을 수 없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매우 경건하게 인정받는 신자나 심지어 탁월한 설교자 또는 뛰어난 신학자일지라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모든 외적인 인정과 탁월한 설교 그리고 진리를 바르게 진술하는 정통한 신학이론과 교리, 그 자체가 성화를 통한 구원을 확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작, 우리 자신이 변화하지 않고 주님의 뜻과는 무관한 삶을 그대로 고집한다면 참으로 불행한 인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현대교회의 세속적인 경향 가운데 하나는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처럼 생명 없는 수단과 방편이 마치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여기며, 정작 자신들의 영적 상태가 어떠한 지경에 놓여 있는지를 모른 채 외적인 것에 헌신적이며 심지어 매우 고양된 형태의 신앙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외식화된 신앙적인 방편과 수단 그리고 모든 주장과 선언적 행위는 우리의 실제적인 영적인 변화와 삶의 변화를 근본적으로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자신이 삶으로 드러나는 성화의 과정에 있지 않다면 이러한 것들은 단지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택정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주님의 뜻’ 대로 성화의 과정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뜻에 반한 불순종의 길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아니 고집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자아와 아집 그리고 자기중심의 신앙을 거부하고 주님께 순복하며 항상 성화를 이루어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칭의’(구원)의 사실만 있고 ‘칭의’에 의한 성화된 실제적인 영적인 변화에 따른 삶이 없다면 그 어떠한 외적인 인정과 위대한 평가를 받고 있을지라도 이는 예수 그리스도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사실입니다. 구원은 매우 단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순복하는 것입니다. ‘순복’의 의미는 예전의 삶의 방향과 지향점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완전히 전환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주님을 영접했다’는 것은 주님께 자기 자신을 완전히 부인한다는 결단이자 선언인 것입니다. 택정함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도 때로는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삶의 모든 국면에서 실수를 핑계 삼아 반복된 범죄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어떠한 형편과 상황에 놓여 있더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끝내 성화의 과정에 놓여 있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통하여 구원(영생)의 완성(성취)을 이루어 갑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받은 자의 상태인 것입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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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샘물호피스 ‘제33기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교육’ 실시▲강의를 진행하는 원주희 목사. 구미샘물호스피스는 지난 5월 13일~17일 김천제일교회 교육관에서 제33기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교육생 20여 명을 대상으로 이론 교육을 실시했다. 교육생들은 1주일 동안 ‘호스피스의 이해’ ‘호스피스의 전인적 돌봄’ ‘웰다잉’ ‘발마사지’ ‘유서쓰기’ 등의 프로그램으로 이론 교육을 받았으며, 오는 6월 1일 샘물호스피스병원(용인)에서 임상 실습을 거치면 수료증을 받게 된다. 둘째날(14일) 강사로 나선 원주희 목사(샘물호스피스병원 이사장)는 “호스피스는 가정의 기능, 병원의 기능, 교회의 기능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며 “고통받는 죽음이 아니라 아름답고 감동 있는 인생의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환우들을 도와주는 것이 봉사자의 사명이다”고 말했다. 호스피스 교육을 받은 한 교육생은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알게 되었다”면서 “내 삶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제33기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교육에 참여한 강사진과 교육생들의 기념 촬영.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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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연약한 인생원 주 희 목사 샘물호스피스병원 이사장 위암 수술을 하고 가장 큰 변화는 음식을 섭취하는 습관입니다. 맵지 않고 짜지 않으며 질기지 않은 음식을 천천히 조금씩 자주 먹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상황의 변화를 곧잘 잊어버리고 과거와 같이 음식을 먹으려다가 소화 장애 등의 고통을 자주 경험했습니다. 1년이 지나니까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 보조를 맞추려고 급하게 먹게 되고, 제 형편에 맞는 종류의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정신적 부담이 있어 혼자 식사를 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가족들과 샘물 동역자들이 이런 저의 변화를 잘 이해하고 직간접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신체적인 변화가 정신적, 사회적 환경에도 영향을 미치고 무엇보다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느끼게 되면서 영적으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도록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인간은 고난이 없으면 자신이 주인인 것처럼 착각하고 교만해지기 때문에 고난을 통해 연약한 인생임을 발견하게 하시고 하나님만이 진정한 생명의 주인 되심을 겸손히 고백하도록 이끌어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게 됩니다. 샘물호스피스에서는 인생 여정에서 가장 약하고 위기의 시간을 맞이하신 말기 암 환우님들이 오셔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며 절망적인 죽음의 터널을 은혜롭게 건너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남겨진 가족들이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 가운데 아름답게 환송하시는 모습도 흔히 보게 됩니다. “어머니께서 임종예배를 마치고 찬송 부르는 가운데 가족들 곁에서 평온한 모습으로 그토록 소망하시던 본향 천국으로 부름 받아 가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샘물에 계시는 동안 저와 동생에게는 의미 있고 소중한 시간이었으며 하나님 품을 떠났던 동생이 어머니와 천국에서 만날 수 있는 길을 깨닫게 해준 계기가 되었답니다. 동생이 주일날 교회에 다녀왔다고 했을 때 눈물이 나도록 기뻤습니다.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곁을 지킬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고 또한 저와 동생도 행복했습니다. 어머니를 내 몸처럼 돌봐주신 샘물 가족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2019.4.11. 소천 받으신 곽차* 환우님 가족) “하나님의 은혜 속에 모든 장례를 잘 치렀습니다. 마지막까지 예수님 이름 찾으신 아버지의 영혼이 천국에 임하심을 확신했습니다. 샘물에 있던 21일 동안이 제일 좋으셨다던 아버지의 말씀에 감사를 전합니다. 모든 영광 예수님께 올립니다.”(2019.4.10. 소천 받으신 김중* 환우님 가족)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자녀 저의 엄마! 주님의 부르심을 받을 날이 점점 가까워짐을 느낍니다. 주님 곁에 가시는 그날까지 두려움과 고통이 없기를 바라오며 지도에 표시되지도, 표시할 수도 없는 이 신비의 섬 같은 샘물에서 나의 주님께 간절히 엄마의 천국 소망을 기도드립니다. 아멘.”(이묘* 환우님의 딸) 샘물호스피스는 연약한 인생들이 모여 하나님 품 안에서 죽음의 절망을 영원한 천국의 소망으로 이겨내는 은혜의 현장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그 날까지 이런 은혜가 샘물 동산을 통해 아름답게 이어지길 기도드립니다. - 월간 샘물호스피스 5월호 기고 글 -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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