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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가 있어 산이 아름답습니다.이 정 우 목사 안동서부교회 산이 높으면 골이 깊습니다. 골이 깊으면 그 산은 웅장하고 아름답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만 보고 골은 보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외적 화려함과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만 보고, 그 사람의 아픔과 고통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믿음의 거장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다윗, 솔로몬, 다니엘 등 이들은 모두 하나님이 믿음의 거장으로 만드신 인물들입니다. 이들이 유명한 일인자가 되어서가 아닙니다. 모두가 신분이 훌륭하고 능력이 탁월했던 사람들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깊은 터널과 고통을 통과하게 하시고, 연단하시고 훈련시키셔서 높은 산처럼 세우신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가 이어져가게 만드셨습니다. 믿음의 가정에서 자기 자녀가 요셉처럼 국무총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름까지 요셉이라 짓고 기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요셉의 화려한 자리만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요셉이 통과해야만 했던 어두운 골짜기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 올라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미움, 시기, 배신, 모함, 무시를 받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인물처럼 되기를 원한다면, 아픔과 고통도 견디겠다는 생각을 꼭 해야 합니다. 어떤 부모들은 자녀의 이름으로 다윗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왕이 되기까지 죽음의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때마다 오뚝이처럼 하나님만 바라보고 인간적인 술수와 방법을 택하지 않고 믿음의 길을 바보처럼 걸어간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기도는 멋지게 하면서도 조금만 어려움이 오면 멋진 기도는 쉽게 잃어버리고 원망과 불평으로 주저앉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멋진 산이 되기를 원한다면, 깊은 골짜기가 있어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도 믿음의 거장들이 많이 있습니다. 분명히 실망 속에서 살 아가야 할 사람인데도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지만,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나누려고 애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남에게 자랑할 만한 것을 가진 것도 없지만,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새 생명을 누리게 된 것이 기쁘고 감사해서 늘 전도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또, 경제적으로 넉넉해서 편하게 살아갈 수도 있지만, 가난하고 약한 사람을 돕는 일에 늘 숨은 노력을 기울이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인생의 골짜기를 통과해 본 분들이고, 그 골짜기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은혜로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가는 분들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좋아하는 시편 23편에도 골짜기 이야기가 있습니다. 목자이신 하나님,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 영혼의 소생, 의의 길 등의 아름다운 표현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지만, 이어지는 내용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관한 신앙고백입니다.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지켜주시고, 원수의 목전에서도 상을 차려주신다는 뜨거운 믿음의 고백을 시인은 노래하고 있습니다. 골짜기가 없으면 산이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인생에도 골짜기가 없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과 기쁨을 줄 수 있는 인격의 성숙함을 이루어 갈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종종 깊은 골짜기로 인도하십니다. 지금 인생의 깊은 골짜기 속에서 파아란 하늘을 갈망하고 계십니까? 하루속히 그 골짜기에서 벗어나기만을 바라며 조급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인생의 골짜기를 통과하는 시간들이 그 어느 시기보다 더 소중한 삶의 밑거름을 만들어낼 수 있는 때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그 골짜기 속에서 여러분들의 손을 붙들어주시는 하나님, 어려움을 감당해낼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는 하나님을 꼭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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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선교를 통한 안동지역의 복음화(4)김 승 학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목차 1. 한국에 세워진 초기 선교병원 2. 안동성소병원의 9개 변곡점 3. 안동성소병원의 시작 4. 안동성소병원의 이름 5. 초기 안동성소병원의 위치 6. 코넬리우스 베이커 기념병원 ............................................. 13. 안동성소병원의 재건축 14. 1960년대~1980년대 안동성소병원 5. 초기 안동성소병원의 위치(2) 1) 안동성소병원 최초의 진료 장소: 선교사 임시주택과의 관계 1910년 2월, 별리추 선교사는 강계 사역을 마치고 안동으로 와서 사역준비를 했다. 이때 별리추 선교사는 무려 600여 명의 환자를 진료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다가 1910년 9월 장인거 의료 선교사가 안동으로 왔고, 선교회의 명령에 따라 별리추 선교사는 대구로 갔다. 장인거 선교사는 건강의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동에 3달 반을 머물면서 1,300명의 많은 환자를 돌보았다. 그런데 장인거 선교사가 개인 사정에 따라 다시 대구로 돌아갔고, 1911년 2월부터 여름까지 별리추 선교사는 안동으로 돌아와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돌보았다. 이때 별리추 선교사는 선교사 임시사택 부근에 커다란 한옥을 매입하여 임시진료소로 사용하면서 한 방은 객실로, 두세 방은 환자의 병실, 대기실, 욕실, 진료실로 사용하였다. 별리추 선교사에 의해 개원한 간이진료소는 아직 병원이라고 하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았고, 의사 한 사람이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만 했다. 선교 보고에 따르면 별리추 선교사는 대구로 돌아가기 전 4달 동안 무려 1,875명을 진료했다는 것이다. 이때 안동읍(邑) 최초의 교회인 안동교회에 출석하던 교인들은 성경, 찬송가와 쪽 복음을 가지고 진료소를 찾아 환자들에게 전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10년 2월부터 오월번, 권찬영, 별리추 선교사 등 3명의 선교사들이 모두 안동에 체류함으로써 안동선교부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시작되었고, 당연히 선교사 사택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런데 <안동교회 80년사>는 안동교회의 두 번째 예배처소가 1910년 선교사들의 거처였던 임시주택으로, 안동교회 교육관 자리의 골기와 한옥이라고 명기하고 있다. 에비 여사도 당시 선교부가 세 채의 가옥을 구입했음을 기록했는데, 18칸짜리 기와지붕 한옥은 오월번 선교사 가정이 사용했고, 나머지 두 채 중 하나는 미혼인 권찬영 선교사와 별리추 선교사가 사용했으며, 다른 한 채는 임시 간이진료소로 사용한 듯하다. 간이진료소로 사용한 이 한옥이 안동성소병원이 시작된 최초의 병원 건물이라고 사료된다. 2) 초기 안동성소병원의 진료장소: 안 동교회 예배처소와의 관계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두 장의 사진은 안동성소병원의 진료 장소가 안동교회의 예배처소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추측하게 한다. 두 장의 사진은 거의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데 안동지역 교회에 전해져 내려오는 선교 초기 사진으로 천막(Tent)과 초가집을 볼 수 있다. 안동에서 활동했던 선교사 중의 누군가가 직접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두 장의 사진 앞면과 후면에는 이 천막을 천막교회(Tent church)임을 명기하고 있다. 한국선교 초기 사진에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는 텐트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것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고, 특히 안동지역의 경우는 안동교회 예배당을 신축하기 전에 임시 예배처 소로 사용되었다. 익명의 선교사가 사진 후면에 직접 쓴 두 글을 볼 때 <사진3>은 안동교회 최초의 예배당인 16칸 ‘ㄱ’자 예배당을 건축하는 동안 성도들이 천막(Tent)에서 예배를 드렸음을 추측할 수 있다. 천막 옆 마당에는 예배당 신축을 위해 만든 진흙 벽돌과 건축자재가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사진3>과 <사진4>는 오랫동안 안동 최초의 병원인 안동성소병원으로 추정되고 있는 사진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천막교회는 안동성소병원과 함께 사용되었을 것이다. 즉 천막교회는 주일에는 교회로, 평일에는 병원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마당에는 진흙 벽돌과 건축 기자재가 쌓여 있는데, 선교사가 사진 뒤에 기록한 글을 보면 실제 예배당 건물 (real church)을 건축하기 위한 자재라고 기록한다. 따라서 이 천막교회는 안동교회 최초의 16칸 ‘ㄱ’자 예배당을 건축하기 직전의 예배처소로 추측할 수 있다. 16칸 ‘ㄱ’자 예배당이 건축된 안동 진영 터(오늘날 건영화물 터)였든지 혹은 이 터와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는 곳이었을 것이다.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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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안동지역 기독교 역사포럼 개최제13회 안동지역 기독교 역사포럼이 지난 5월 21일(화) 안동교회 백주년기념관 영곡 아트홀에서 개최됐다. 특별히 이번 포럼은 계명학교 설립 113주년 및 경안중학원 설립 100주년, 경안고등학교 개교 70주년을 기념하여 ‘경안노회의 교육선교’를 주제로 진행됐다. 교육을 통해 기독교 정신으로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가르친 경안노회 경내의 공(公)교육기관들을 다루려 한 것이다. 주제 발제는 이교남 박사(한국기독교 교회역사 주영연구소 대표)와 김승학 목사(경안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안동교회 담임)가 맡았다. 먼저, 이교남 박사가 첫 번째 주제인 ‘경안노회의 초등교육기관’에 대해 다루었다. 이 박사는 “1900년대 말부터 경안노회 경내의 교회는 초등학교기관을 세워 어린이들을 기독교정신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면서 “이들 초등학교는 교회 주일학교와는 다른 기관으로 당시 공립학교와 동일한 수준의 학교였다”고 했다. 이어 1900년 말부터 1945년대까지 교회가 운영한 초등학교를 통해 역사적 교훈을 살폈다. 김승학 목사는 두 번째 주제인 ‘경안노회의 중등교육기관’에 대해 발제했다. 김 목사는 “기독교 정신에 기초해 설립된 초등학교를 수료하거나 졸업한 학생들은 상급학교인 공립학교로 진학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중등고등교육기관인 경안중학원이 1924년 4월에 개교됨으로 모두가 기뻐했다”고 밝혔다. 이어 “경안중학원은 그 이후 재정적 압박으로 폐교되기도 했지만, 1954년에 경안노회의 결의로 경안고등학교가 다시 학원선교의 문을 열었다”면서 경안학원의 구체적인 역사와 발전과정을 다루었다. 한편, 올해로 13회째를 맞는 ‘안동지역 기독교 역사포럼’은 안동교회가 지난 2012년부 터 안동지역의 선교역사와 교회 역사를 발굴하고 조명하고자 진행해온 역점사업이다. 김승학 목사는 “안동교회는 지난 12년 동안 그동안 잊혀진 하나님의 구원역사(His History)를 발굴하고 정리함으로써 오랜 세월 단절되었던 거룩한 역사를 연결하고, 새로운 해석을 통해 안동 땅에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면서 “앞으로도 잊혀진 복음의 역사들을 계속 발굴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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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안노회 안동선교부 묘역·회의록, 총회 사적·유물로 지정예장통합 경안노회 안동선교부 선교사 묘역과 회의록(1~49권)이 한국기독교사적과 유물로 각각 지정돼 지난 4월 25일 안동광성교회(임보순 목사 시무)에서 지정식을 개최했다. 이날 지정식에 앞서 경안노회 주관으로 드린 감사예배는 노회 역사위원회 서기 임상욱 목사 인도, 김형우 장로 기도, 임보순 목사의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제목의 설교, 노회 역사위원장 박춘식 목사 축도로 진행했다. 축하 순서에서는 경안노회 노회장 손영남 목사와 증경노회장 임만조 장로가 축사했다. 이어서 총회역사·선교유산회복위원회 주관으로 지정식이 진행됐다. 서기 김선인 목사의 사회, 회계 이대원 장로의 경과보고, 전문위원 손산문 목사의 사적(유물) 소개 후 위원장 김성수 목사가 지정서 및 동판을 전달하고 권면했다. 한국기독교사적 제47호로 지정된 안동선교부 선교사 묘역에는 윈(R.E.Winn) 선교사, 앤더슨 (W.J.Anderson) 선교사의 딸, 뵐켈(H.V.Voelkel) 선교사의 아들의 묘가 있다. 1909년 미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한 윈 선교 사는 1914년 안동선교부로 이동해 안동 예천 의 성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고 지역 순례, 성경학교 사역을 이어갔다. 특히 윈 선교사에서 시작된 성경학교는 수많은 교역자를 양성, 배출함으로써 지역 교회와 한국교회에 상당한 공헌을 끼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앤더슨 선교사는 1924년 기독청년면려회 조선연합회를 창립했다. 조선예수교장로회 제10회 총회에서는 교회마다 기독청년면려회를 조직하기로 가결함으로써 한국장로교의 대표적인 청년운동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뵐켈 선교사는 안동선교부에서 17개 교회를 맡아 농촌 순회 전도목사로 활동했다. 6.25 전쟁 후에는 한국 군목단 고문으로 한국 군목 제도 창설에도 이바지했다. 한편, 경안노회 회의록 총 49권은 한국기독교 유물 제8호로 지정됐다. 경안노회는 1921년부 터 기록된 노회록 원본을 보존하고 있다. 경안노회는 그동안 100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오면서 경북 북부지역 교회뿐만 아니라 한때 북부 동해안과 강원도 지역까지 관장해 온 역사가 있다. 총회 역사·선교유산회복위원회는 경안노회 회의록이 지역 교회사와 선교사 연구 및 노회사, 총회사 연구에 중요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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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 ‘2024 찾아가는 농촌돌봄서비스’ 개최경상북도는 17일 사회적 농업*을 실천하는 농촌돌봄농장과 농촌주민생활돌봄공동체**와 함께 안동영명학교 재학생 200여 명을 대상으로 ‘2024 찾아가는 농촌돌봄서비스’를 개최했다. * 사회적 농업: 농업의 공익적 역할을 통해 농업인과 사회적 약자(노인, 장애인, 아동, 다문화 가족 등)를 포용(교육, 돌봄, 치유 등 제공)하여 농촌 공동체 활성화 도모 ** 농촌돌봄농장: 사회적 농업을 실천하는 농촌지역 소재 조직 농촌주민생활돌봄공동체: 농촌 지역 서비스(보건의료‧복지 등) 제공 활동을 위한 법인 또는 단체 경상북도 농촌돌봄 거점농장인 경산시 힐링공유팜(대표 박형근)이 주관한 이날 행사에는 도내 농촌돌봄농장과 농촌주민생활돌봄공동체가 참여했다. 참여 농장과 공동체는 영명학교 학생들에게 각 농장의 체험행사를 소개하고, 테라리움‧딸기청‧액자 만들기 등을 운영해 농촌 돌봄서비스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이날 참가한 농촌돌봄농장은 포항시 꿈바라기, 구미시 행복한정원, 안동시 온더뜰, 영주시 발효체험학교 띄움, 베리벨벳, 새오름, 영천시 별빛농부, 경산시 바람햇살농장, 의성군 평평마을 협동조합 등 10개소가 참여했고, 농촌주민생활돌봄공동체는 구미시 한우리글로법협동조합이 참여했다. 이관희 안동영명학교장은 “이번 행사는 학생들이 농업의 매력을 느끼고 정서적 발달과 안정감을 높일 수 있는 매우 뜻깊은 시간이었다”며, “앞으로도 농촌돌봄서비스 단체와 연계를 강화해 학생들이 농업 관련 진로 탐색과 직업 체험을 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경북도는 ‘농촌돌봄서비스 활성화 국비 지원사업’을 통해 2020년도부터 매년 2~3개소의‘농촌돌봄농장’과‘농촌주민생활돌봄공동체’를 발굴하고 있다. 올해는 12개소(농장 11, 공동체 1)를 발굴해 농촌돌봄농장은 개소당 2억 4000만원, 농촌주민생활돌봄공동체는 개소당 3억 1400만원의 총액을 5년 동안 나누어 지원한다. 농촌돌봄농장은 농업과 지역 농촌 환경을 활용해 치유, 돌봄, 교육, 고용 관련 사업을 목적으로 하며 생태학습, 방과 후 수업, 원예 공예 활동, 농업 관련 직업 체험 등으로 지역 사회에 이바지한다. 농촌주민생활공동체는 농촌 주민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경제․사회 서비스를 주민의 자발적인 연대와 협력의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 다양한 분야에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해 농업인 삶의 질 향상과 살기 좋은 농촌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다. 김주령 농축산유통국장은 “사회적 농업은 농촌 고령화와 지역 소멸 문제 해결과 지역 공동체 연대 강화, 지속 가능한 농업‧농촌을 만드는 새로운 대안이다”며 “사회적 농업을 영위하는 조직이나 단체가 더욱 확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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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안동 길거리 과학마당 개최안동시(시장 권기창)는 가족 모두가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과학문화 축제 ‘2024년 안동 길거리 과학마당’을 5월 18일(토)부터 19일(일)까지 이틀간 웅부공원에서 개최한다. 이번 행사는 ‘상상해! 즐겨봐! 느껴봐!’라는 주제로 어린이들이 쉽고 재미있게 과학을 체험하고, 과학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을 키울 수 있도록 기획했으며 과학탐구 체험마당, 이동과학교실 2개의 테마로 진행된다. 과학 체험마당은 ▲큐브의 변신은 무죄 ▲피타고라스 플롯 ▲점핑 코일 만들기 등 과학 원리를 체험할 수 있는 24개의 프로그램으로 운영한다. 어렵게만 느끼던 과학 실험 주제들을 일상생활 속 경험과 연결해 어린이들이 과학에 대한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했으며 과학 교사의 알기 쉬운 설명으로 과학의 기본 원리를 재미있게 배울 수 있다. 또한, 이동과학교실은 첨단과학실험 장비를 갖춘 이동과학차와 전문인력으로, 생활 속의 과학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엮어낸 과학 실험쇼, VR 체험, 과학체험관이 운영된다. 안동시 투자유치과 관계자는 “과학마당을 통해 미래의 과학 꿈나무들이 어려서부터 과학을 접하며 꿈을 키울 기회를 얻길 바라며, 온 가족과 함께하는 과학 체험을 통해 즐거운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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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지역 협의회장, 노회장, 장로회장 취임감사예배 및 체육대회 개최예장합동 제6회기 영남협의회(대표회장:김□□ 목사)는 5월 9일 경산 진량제일교회(김종언 목사)에서 지역협의회장, 노회장, 장로회장들의 취임감사예배 및 제5회 체육대회를 열었다. 이날 예배에 참석한 400여 명의 목사와 장로들은 한 해 동안 영남 교계를 섬길 협의회장, 노회장, 장로회장들을 축하하며 영남인의 화합과 섬김을 다짐했고, 체육 행사를 통해 동역자들과 친교를 나누었다. 1부 감사예배는 차기회장 박영만 목사의 인도로 드렸다. 상임회장 박수갑 장로 기도, 새에덴교회 김문기 장로 특송에 이어 증경총회장 이승희 목사가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승희 목사는 “진리 안에서 행하고,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함으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아름답게 평가되는 주의 종들이 되자”고 전했다. 부총회장·명예회장 김종혁 목사의 축도 후 상임총무 박기준 목사의 사회로 2부 축하 순서가 진행됐다. 증경총회장 이승희 목사와 증경부총회장 김성태 장로, 총회 회록서기 전승덕 목사를 비롯한 총회 임원, 지역협의회장, 지역장로회장 등이 격려사와 축사를 했다. 이어서 영남협의회 산하 4개 지역협의회 대표회장(대구교직자, 경북교직자, 부울경교직자, 영남서북교직자), 8개 지역 장로회연합회 회장(영남지역, 부울경, 대구경북지역, 울경지역, 대구지역, 부산지역, 경북지역, 서북지역), 33개 노회장들에게 축하패를 전달하고 격려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찬 후에는 회의록서기 신유항 목사의 진행으로 제5회 친선체육대회를 열었다. 전체 참석자들이 청팀(부울경/경북)과 백팀(대구/영남서북)으로 팀을 이루어 족구, 징검다리 달리기, 단체공 제기차기 등의 경기를 즐기며 친목을 나누었다. ◉영남협의회 제6회기 실무 임원 ▲명예회장: 김종혁 목사 ▲대표회장: 김□□ 목사 ▲차기회장: 박영만 목사 ▲사무총장: 성경선 목사, 임성원 장로 ▲상임총무: 박기준 목사, 조평제 장로 ▲서기: 강전우 목사 ▲회의록서기: 신유항 목사 ▲회계: 고정식 장로 ◉각 교직자협의회 대표회장 ▲경북교직자: 이□□ 목사 ▲대구교직자: 이윤찬 목사 ▲부울경교직자: 권규훈 목사 ▲영남서북교직자: 이왕욱 목사 ◉각 지역 장로회연합회 회장 ▲영남지역장로회: 조현우 장로 ▲부울경장로회: 배□□ 장로 ▲대구경북지역장로회: 홍석환 장로 ▲울경지역장로회: 최진철 장로 ▲대구지역장로회: 김동권 장로 ▲부산지역장로회: 이성규 장로 ▲경북지역장로회: 고정식 장로 ▲서북지역장로회: 현광욱 장로 ◉각 노회 노회장 ▲경남: 김성철 목사 ▲경남동:성경선 목사 ▲경동:김중석 목사 ▲경북:한유도 목사 ▲경안:남해길 목사 ▲경상:이보길 목사 ▲경서:한종식 목사 ▲경신:홍경수 목사 ▲경중:박인배 목사 ▲경청:김재만 목사 ▲구미:배성국 목사 ▲김천:정연걸 목사 ▲남대구:이종재 목사 ▲남부산남:진왕연 목사 ▲남부산동:김종민 목사 ▲남울산:서양원 목사 ▲동부산:이태영 목사 ▲대경:조흥래 목사 ▲대구:이관형 목사 ▲대구동:이동환 목사 ▲대구중:신영철 목사 ▲동대구:이호명 목사 ▲부산:김기종 목사 ▲서대구:정명철 목사 ▲서부산:정재환 목사 ▲대구수성:이진행 목사 ▲신안주:전운출 목사 ▲안동:곽현복 목사 ▲영남:이형득 목사 ▲울산:이광훈 목사 ▲중부산:박순익 목사 ▲진주:홍명유 목사 ▲함남:양성완 목사 (가나다순). /박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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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하는 삶이 정 우 목사 안동서부교회 어느 96세 된 할아버지와 92세 된 할머니가 결혼 7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결혼 70주년 기념’이란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인터뷰에서 아나운서가 할아버지에게 짓궂은 질문을 했습니다. “할아버지, 만일에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도 할머니와 결혼하겠습니까?”라고 물었더니, 할아버지는 가만히 있다가 “좀 생각해 봐야겠는데요.”라며 대답이 시원치 않았습니다. 다음은 할머니에게 아나운서가 물었습니다. “할머니,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길이 있다면 다시 할아버지와 결혼하겠습니까?” 했더니 대답이 전혀 달랐습니다. 할머니의 대답은 “내가 돌보아 주어야죠.”였습니다. 할머니는 내가 사랑한다 안 한다, 다시 결혼한다 안 한다가 아니라 저 사람에겐 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할머니의 대답, “내가 돌보아 주어야죠” 바로 이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이라는 말처럼 어려운 말이 없습니다. 사랑이 에로스냐 아가페냐 이건굉장히 중요한 철학적 이론입니다. 그러나 또한 쉽게 분류하자면, 에로스라는 사랑은 항상 나를 중심으로 합니다. 나를 위해서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고, 나에게 당신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너를 돕고 있으며, 사랑의 이름으로 상대방을 괴롭히기도 합니다. 사랑의 이름으로 남편을 못살게 하기도 하고, 사랑의 이름으로 아내를 힘들게 하기도 합니다. 모든 사랑이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가페란 사랑은 내가 사랑하는 그 상대방에게로 중심이 옮겨가고, 그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그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1장을 보면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에게 주님이 동일하게 세 번 질문하는 광경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 앞에 베드로는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십니다”라고 답을 합니다. 사랑하는 그것마저도 당신이 아신다는 것입니다. 욥기 23장 10절에 보면“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란 욥의 고백이 나옵니다. 욥의 고백은 “나의 운명, 나의 현실,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이 아신다”는 겸손한 고백입니다. 이와 같이 베드로도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고백은 이젠 주님께서 나의 충성을 아시고 나의 최선의 사랑을 아신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제부터 생명 바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란 고백입니다. 최선이란 집중하는 것입니다. 딴생각 없이 자신이 하는 일에 온 마음과 정성을 쏟는 것입니다. 혹이라도 불평, 원망, 불만스럽게 생각하면 그것은 최선이 아닙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얼마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즐겁게 생각하고 했느냐, 또 주어지는 기회마다 감사한 마음으로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시간에 대하여, 건강에 대하여, 지식에 대하여, 기회에 대하여, 주어진 능력에 대하여 얼마나 최선을 다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인생을 다 살고 나서 주님 앞에서는 그날, “너는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라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그 두려운 질문을 가슴 깊이 담아야 합니다. 여러분! 업적이나 실적, 성적이 좋으냐 나쁘냐, 몇 등이냐 하는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문제는 얼마나 최선을 다했느냐 하는 이것이 인생을 질적으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양적인 것을 묻는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묻고 있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했느냐?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느냐?” 여러분! 주님 앞에 갔을 때 우리가 내놓을 수 있는 대답이 무엇이겠습니까? 주님 앞에는 실적이나 업적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어진 현실 여건 속에서 얼마나 최선을, 충성을, 사랑을 다했느냐 그것을 물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함으로 하루하루 승리의 삶을 살아내시기를 축원하며 권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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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제기드온협회 ‘제15차 대경지역대회’ 열려한국국제기드온협회 제15차 대경지역대회가 지난 4월 20일(토) 안동 도원교회 본당에서 개최됐다. 호스트 캠프는 안동·영주·구미·김천 캠프였으며, 회원 156명(기드온, 부인회), 목사(사모) 29명, 찬양단 3팀 45명 등 230여 명이 참석했다. 개회 및 주제강론은 김덕종 지역연합회 부회장의 사회로, 김영석 대구캠프 회장 기도, 이태곤 실행위원장 환영사, 노성태 기드온 전국대표와 현금자 부인회 전국대표의 인사, 이석수 지역연합회 회장 주제강론, 느헤미야프로젝트, 신입회원 환영 및 선물전달, 김덕종 대구캠프 회원 간증 등의 순서가 은혜롭게 진행됐다. 뒤이어 목사초청 사은오찬회를 열고 목사님들을 소개 후 오찬을 나누었다. 오후 일정으로는 부인회 사역보고, 음악특순, 여명천 목사(개곡교회)의 간증, 신앙기금 헌금, 연차보고 및 임원선거를 실시했으며, 은혜의 시간 및임원 취임식을 진행한 후 폐회했다. 신임 임원은 ▲회장:김덕종(대구)▲부회장:조달수(경주) ▲총무이사:김동원(영주) ▲재정이사:김유석(안동) ▲신앙이사:이석수(포항)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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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선교를 통한 안동지역의 복음화(3)김 승 학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목차 1. 한국에 세워진 초기 선교병원 2. 안동성소병원의 9개 변곡점 3. 안동성소병원의 시작 4. 안동성소병원의 이름 5. 초기 안동성소병원의 위치 6. 코넬리우스 베이커 기념병원 ............................................. 13. 안동성소병원의 재건축 14. 1960년대~1980년대 안동성소병원 3. 안동성소병원의 시작(2) 3) 안동성소병원의 출범 시기 별리추 선교사가 첫 진료를 시작한 1909년 10월 1일에 안동성소병원이 시작했음은 지금까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별리추 선교사의 아들인 플레처(D. R. Fletcher)의 저서 『십자가와 수술칼』에 따르면 별리추 선교사가 안동에 처음으로 도착한 해(年)는 1910년 2월로 이 연구에 따르면 성소병원의 개원일이 1909년 10월 1일이 될 수 없다. 원래 한국에 도착한 별리추 선교사는 원주선교부로 발령이 났지만, 원주에서 사역할 수 없었던 별리추 선교사는 당시 원주선교부를 책임지고 있던 미북장로교 오월번 선교사가 1908년 설립된 안동선교부로 파송을 받음에 따라 자연스럽게 별리추 선교사도 안동으로 이동함으로써 성소병원이 시작될 수 있었다. 그러나 1909년 10월에 별리추 선교사는 대구에 있었다는 자료도 분명히 존재한다. 따라서 안동성소병원의 설립일인 1909년 10월 1일에 별리추 선교사가 안동에 거처하고 있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에 관한 연구는 보다 정확한 선교보고나 편지 등에 의해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4. 안동성소병원의 이름 성소병원의 이름이 어떻게 성소(聖蘇)로 정해졌을까? 우선 성소(聖蘇)라는 단어는 거룩할 성(聖)과 되살아날 소(蘇)로 구성되어 있다. 즉 성소(聖蘇)는‘거룩한 소생(蘇生)’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성소(聖蘇)’는 병원을 찾은 사람들이 육신적 구원뿐 아니라 영혼의 구원을 이루기를 소망하는 선교사가 성소병원(聖蘇病院)이라고 지었을지 모른다. 사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별리추 박사는 처음부터 안동을 선교지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처음 원주로 파송을 받았지만, 선교지 분할정책으로 원주를 떠나 안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안동에서 성소병원을 시작했다. 2년이 지난 후 별리추 선교사는 안동을 떠나 대구·경북 지역 최초의 서구식 진료소였던 제중원(濟衆院)으로 사역지를 옮겼다. 제중원은 제2대 원장 별리추 박사에 의해 동산의료원으로 개명하게 되었다. 별리추 선교사는 동산의료원에서 1911년부터 1941년까지 무려 31년 동안 병원장으로 사역을 감당했다. 따라서 뛰어난 실력을 갖춘 별리추 선교사가 안동에 체류했던 2년의 기간은 안동에 있어서는 은혜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섭리 속에 탄생한 안동성소병원의 지나온 모든 세월은 하나님의 은혜였기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성소(聖召), 성소(聖所), 그리고 성소(聖蘇).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인 성소(聖召)에 순종한 별리추 선교사는 한국으로, 원주로, 안동, 그리고 대구로 사역지를 옮기며 의료선교를 감당하였다. 특히 그가 머물러 치료했던 땅들은 질병으로 고통받고 치료에서 소외당하고 있던 사람들을 위한 거룩한 장소인 성소(聖所)가 되었다. 안동도 예외는 아니었다. 선교사들의 임시사택이었던 화성동 151번지, 그리고 현재 성소병원 주소인 금곡동 177번지는 안동뿐 아니라 경북 북부지역의 거룩한 땅, 성소(聖所)가 되었다. 또한, 안동성소병원은 지난 114년 동안 뭇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하여 육신을 구원할 뿐 아니라 복음을 전함으로 영혼도 소생(蘇生)시키는 성소(聖蘇)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5. 초기 안동성소병원의 위치(1) 안동성소병원이 1914년 병원건물을 준공하여 영구히 자리를 잡기 전까지 안동선교부 초기 선교사 주택은 성소병원의 위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박희곤은 그의 저서에서 “초기 안동성소병원은 한곳에 머물러 진료하지 않고 선교사의 이동에 맞춰 옮겨 다녔을 것으로 짐작된다.”라고 밝혔다. 1) 안동성소병원 최초의 진료 장소:선교사 임시주택과의 관계는 별리추 선교사가 현 안동교회 구내에 있던 화성동 선교사 임시주택에서 진료를 시작함으로 안동성소병원이 시작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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