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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인성이 죄(원죄)가 없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Q 질문 : 예수님은 인성과 신성을 함께 가지고 계시는 것으로 압니다. 신성에 대해서는 하나님이시므로 자범죄가 없는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렇다면 인성에서 예수님의 죄(원죄) 없으심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또한, 창3:15절에서 ‘여자의 후손’이라는 말을 일반적인 방법의 출생을 말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A 답변 : 예수님의 인성이 죄가 없으신 것은 그가 실제로 죄를 짓지 않았음을 말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원죄없이 태어나셨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하여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동정녀 탄생이라는 놀라운 방법으로 성자께서 인성을 취하시도록 하신 것이라고 결과론적으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 창3:15절이 궁극적으로 이런 방식으로 태어나신 성자의 출생을 말하는 것이나, 이것은 이미 그렇게 성취된 후에야 우리가 알고 말하는 것이지, 그 이전에 그런 의미를 사람들이 다 알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알고 계신 것이고, 그런 함의를 이미 넣어 두신 것이지만, 창3:15절의 계시 내에 그 모든 것이 다 있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출생을 통하여 더 밝은 빛을 비침 받고 더 많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마리아의 난자까지도 사용하신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방식으로 수태케 하여 난자를 전혀 사용하지 않으신 것인지를 단정하여 말하는 것은 좋지않습니다. 그러나 여자의 모든 것을 사용하시되 원죄의 부패성이 전가되지 않도록 하셨다는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명확히 말하는 것을 분명히 말하는 것과 그로부터 우리가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것을 구별하여 성경의 계시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것이 매우 필수적입니다. 답변자: 이승구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조직신학) <‘크리스천 큐앤에이’(도서출판 등과 빛) 中 요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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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사함 받았는데 왜 죄를 짓나요?Q 질문 :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았다고 고백하는데, 만약 동일한 죄의 모습이 있다면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궁금합니다. 특별히 천국에서는 왜 아무도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A 답변 : 사람들이 죄짓는 것으로부터 우리는 죄의 형성과 그 범위와 그 보편성이 큼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통해서 이렇게 모든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은 그렇게 창조 받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를 인간이 고의로 뒤집은 타락에 기인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타락한 사람은 인류의 첫째 범죄에 대한 죄책과 오염을 가지게 되는데, 이 첫째 죄에 대한 죄책()과 첫째 죄로 말미암은 오염() 두 가지를 합하여 원죄()라고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들이 잘못했으므로 원죄를 가지게 되었고, 그렇게 오염되었으므로 둘째 죄를 비롯한 계속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후예로 태어난 사람들은 모두 다 이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는데, 그것은 아담이 우리의 언약적 머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담만 죽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죽는 것이고 그 형벌을 같이 받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 같은 부패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속죄는 우리의 원죄와 자범죄에 대한 형벌을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부패성도 성화의 과정을 통해서 극복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성화가 점진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은 그 부패성과 싸우는 일이 필요함을 말해 주는 것이지요. 그리스도인 안에는 이제 성령을 따라가려는 마음과 그에 따라가지 않고 부패한 인간성(성경에서는 이것을 ‘육체’라고 표현)을 따라가려는 성향이 같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생 육체(몸이 아닌 부패한 인간성)와 싸우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죽어서 ‘하늘’에 있는 온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은 전혀 죄를 범하지 않습니다. 영혼에 관한 한 그들은 성화가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몸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속 역사가 극치에 이르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모든 성도의 몸과 영혼이 다 온전하게 되어 전혀 죄를 범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승리가 공적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답변자 : 이승구 교수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 ‘크리스천 큐앤에이’(도서출판 등과 빛) 中 요약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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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지역 최초의 순교자, 소텔 선교사(2)김승학 목사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안동교회 담임목사 소텔 선교사 (Chase C. Sawtell, 1881-1909) 목차 1. 서론 2. 소텔 선교사의 가정(家庭) 3. 소텔 가정의 신앙(信仰) 4. 소텔 선교사의 소명(召命) 5. 소텔 선교사의 성품(性品) 6. 소텔 선교사의 파송(派送) 7. 소텔 선교사의 사역(使役) 8. 소텔 선교사의 순교(殉敎) 9. 소텔 선교사의 부인, 캐더린 10. 캐더린 선교사의 특별한 공헌(貢獻) 11. 결론 4. 소텔 선교사의 소명(召命) 1880년대 말에 한국에 온 초기 선교사들의 대부분은 구(舊)학파의 신학 경향을 그대로 가지고 있던 프린스턴 신학교와 시카고 맥코믹 신학교 출신들이었다. 구학파는 원죄를 인정하고 회심이나 중생이 하나님의 전적인 사역이라고 하는 은혜의 교리를 견고히 지키려 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칭의 교리를 굳게 붙잡고 있었다. 당시 뜨거운 전도 열정을 갖고 미국과 영국을 누비면서 사역하던 복음전도자 무디(D.L. Moody)는 칼빈주의 개혁신앙을 고수하던 미국 장로교회 구학파의 신앙유산을 공유하고 있었고, 당시 미국 청년들에게 선교사의 소명을 불어넣은 주의 종이었다. 따라서 선교 초기 한국에 입국한 선교사들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 파송된 선교사들, 선교를 위해 동역한 많은 사람들은 무디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99년 9월, 소텔은 네브라스카 주 소재 밸리뷰 대학에 입학했다. 그가 입학한 기독교 대학인 밸리뷰 대학교도 많은 선교사를 파송한 대학이었다. 밸리뷰 대학에서 소텔은 자치활동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로티-퍼스에 가입하여 활동했고, 대학 토론 클럽에서도 활동했다. 또한 1902년에는 운동에 관심을 갖고 미식 축구부에서 활동했다. 이처럼 소텔은 대학 시절 활발하게 친구들을 사귀며 리더십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소텔의 대학 시절 중 가장 중요한 활동은 YMCA에서였다. YMCA는 소텔에게 선교사적 소명과 비전을 심어준 공간이었다. 1890년대 말 미국 YMCA는 해외선교에 큰 관심을 갖고 깊이 동참하고 있었다. 소텔이 직접 작성한 선교사 지원서에 따르면 19세인 1900년부터 선교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기록됐다. 여러 문헌을 검토한 결과 소텔은 두 가지 이유로 해외 선교사로 지원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밸리뷰 YMCA에서 받은 소명이다. 또한, 1904년 모친인 제시(Jessi)의 죽음도 소텔에게 선교를 결심하게 한 큰 요인이었음이 지원서에 기록되어 있다. ▲1902년 당시 밸리뷰 대학의 풋볼 팀 사진. 1898년부터 1916년까지 7번이나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강팀이었다. 5. 소텔 선교사의 성품(性品) 소텔은 매사에 즐거운 마음으로 일했던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는 기쁜 마음으로 선교사역을 준비했을 것이며, 선교사로 파송 받은 한국에서도 열악한 환경을 인내하면서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사역을 잘 감당했을 것이다. 특히 소텔은 온화하고 친절한 성품을 갖고 있었다. 신학교를 다닐 때 학비를 벌기 위해 양로원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그는 노인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무엇이든지 도와드려서 칭찬을 들었다. 이와 같은 그의 따뜻한 성품은 선교지에서 동료 선교사들을 대할 때도 잘 드러났다. 그는 대구선교부에 있던 선배 선교사들에게 호감을 주었으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소텔의 대학생활 모토는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 없다”는 것으로 이 생각은 선교사로 내한할 때도 동일했다. 그는 이 모토를 정할 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사도 바울의 고백을 기억했을 것이다. 소텔은 이 모토를 늘 기억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비전을 품고, 믿음으로 준비하고, 믿음으로 행동했을 것이다. 또한, 신장이 6피트(약 183cm)이며 갈색 눈에 코가 곧게 솟았고, 중간 크기의 입에 턱이 뾰족했던 그는 돋보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내적인 품성과 외적인 모습을 가진 소텔 선교사는 늘 기쁘고 즐거운 성격을 가진 매력적인 청년이었다. 특히 1908년 안동선교부의 신설이 결정되었을 때 안의와 선교사는 자원하여 사역할 선교사를 찾았다. 이때 소텔 선교사는 스스로 안동선교부로 갈 것을 결심했다. 소텔 선교사는 대구선교부에 도착하여 어느 정도 환경에 익숙해질 즈음인 1년 후, 정말 떠나기 힘든 시간에 스스로 안동으로 떠날 것을 결심했던 것이다. 당시 대구 선교부에는 여러 명의 선교사가 사역하고 있었지만, 대구보다 열악하고 불확실한 땅인 안동에서 사역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단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소텔 선교사는 하나님의 일이라면 환경과 조건의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 편에 서는 결단의 사람이었다. 6. 소텔 선교사의 파송(派送) 1904년 5월, 밸리뷰 대학을 졸업한 소텔은 동년 9월 오마하 장로교 신학교에 입학하여 1907년에 졸업하였다. 신학교 재학 시절 소텔은 3개 교회를 섬김으로써 목회자로서 필요한 자격을 갖추는 데 열심을 다했다. 목회 현장인 지역교회에서 목사로 임직을 받기 위한 과정을 잘 소화하고 훈련받은 소텔은 오마하 신학교를 졸업한 1907년, 네브라스카 대회 소속 베네치아 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대학교 1학년 때인 1900년 이미 선교사 소명을 받은 소텔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있던 수많은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이 유일한 그리스도가 되심을 전하고 싶어 했다. 처음에 소텔은 남아메리카의 푸에르토리코에서 사역할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부는 자신의 뜻과는 전혀 다른 한국으로 파송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텔은 기쁜 마음으로 한국으로의 파송을 받아들였다. 오마하 신학교 친구인 레이놀즈에 따르면 1907년 6월 어느 날 오후, 레이놀즈가 소텔을 만났을 때 “어떻게 조선인을 전도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소텔은 주저하지 않고 웃으면서 “나는 조선인을 사랑하겠노라(I am going to love them)”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1907년 5월 29일 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부 뉴욕 본부 사무실에서 열린 제10차 연례 신임 선교사 대회에서 소텔은 한국으로 파송 받은 신임 선교사 6가정(8명) 중의 한 선교사였다. 이후 소텔 선교사 부부는 내한하기 위해 오마하를 떠나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여권을 발급받은 지 일주일이 지난 9월 24일, 소텔 선교사 부부는 다른 세 선교사와 함께 샌프란시스코 항구에서 출발하여 임지인 한국을 향했다. 약 22일간의 항해 끝에 10월 16일 마침내 한국에 도착했다. 소텔 선교사는 한국에 도착 이후 얼마 동안은 임지를 배정받지 못하고 있다가 미국 북장로교 대구선교부에 배속되어 사역을 시작할 수 있었다. ▲1907년 9월 소텔이 한국에 오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서 작성한 여권신청서.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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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받으신 후 예수님의 전도 시작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눅4:18)" 1.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 구약시대나 신약시대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고 그 뜻을 대언해서 선포하도록 사용하신 선지자들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신명기 18장에 하나님은 진리의 대언자이며 메시아인 선지자 한 사람을 일으키실 것을 약속하셨고, 그 예언은 예수님을 통하여 성취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다른 선지자들과 다른 것은 그분이 바로 ‘말씀’이신 것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그래서 예수님은 영적으로는 하나님이시고 육신으로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셔서 우리들의 죄를 자기 몸으로 대신 벌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죽임당하시고, 또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 하늘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2. 물세례를 받으신 예수님 예수님은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가운데 아담의 원죄를 피하여 세상에 출생하도록 처녀 마리아를 통해 동정탄생 하시게 됩니다. 그리고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어느 날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고 하십니다. 그러자 요한이 당황해합니다.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그때 예수님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고 말하고, 이에 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예수님 위에 임하십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 되어 살아가던 인간들에게 화목제물로 십자가에 죽임당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에게 성령이 평화의 상장인 비둘기 모양으로 머리 위에 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하늘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그러니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한 번에 같은 장소에 같은 시간에 나타나 주신 것입니다. 3. 예수님의 물세례와 성령 임재 여기서 예수님의 물세례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 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 6:3∼4) 죄를 용서받은 증거가 물세례입니다. 그런데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세례를 받은 것은, 모든 택하신 백성들이 진심으로 죄를 회개하며 그 증거로 세례를 받으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신다는 견본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녔고 자기 재산을 다 팔아 예배당을 대궐같이 지었다 할지라도 성령 못 받은 사람은 천국에 못 갑니다. 그러나 비록 가난하고 배운 게 없어도 성령께서 가르쳐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체험 주실 때 믿어져서 회개하면 죄를 용서받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그리고 또 물세례 이후 하나님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예수님의 존재와 신분, 사명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하나님께 이처럼 인정받고 싶은 것은 구원받은 모든 성도의 소망일 것입니다. 저 역시도 항상 그런 생각이 간절합니다. ‘하나님 마음에 드는 생각을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을 힘쓰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것’, 그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4. 성령 받으신 후 마귀에게 시험 당하심 그런데 예수님께 성령이 임하시고 나니까 마귀가 그냥 두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성령 충만함을 받고 요단 강에서 돌아오신 후 광야에서 40일 동안 성령에 이끌리시며 금식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마귀와 일대일로 대결이 붙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세 가지로 시험했으나 그때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기 삼고 방패 삼아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마귀에게 시험당할 것을 미리 아시고 그 시험을 먼저 이겨 놓으셨습니다. 또한, 성령 충만으로 말씀 충만으로 마귀를 이길 수 있음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성령 받으신 후 예수님은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5.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치신 예수님 본문 14절에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을 힘입고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고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고향인 나사렛 유대인 회당에서도 가르치셨습니다.(본문 16절) 예수님은 선지자 이사야서를 펴서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바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된 부분을 읽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죗값으로 불행하게 살고 있던 우리가 철저히 회개만 하면 죄를 용서해주시고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게 해주신다는 구원의 복음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눈이 뜨여져서 하나님을 알아보고, 예수님을 알아보고, 천국을 바라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젠 마귀에게 종노릇할 것도, 사람에게 종노릇할 것도 없고 자유롭게 ‘은혜의 해’, 즉 ‘해방의 날’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읽으신 후 그 사람들을 향하여 “내가 방금 읽은 그 말씀이 오늘 너희들에게 현실로 이루어졌다”고 말씀했습니다. 710년 전 이사야를 통하여 예언으로 기록한 말씀이 바로 지금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복음은 이방 땅에도 흘러가야··· ‘선교’는 오늘날 우리의 사명입니다. 6. 이방인에게도 구원이 선포되다 그런데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이 가르치는 은혜로운 말씀은 놀랍게 여기면서도 “이 사람이 우리 동네 목수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고 수군댑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영혼을 살리는 영적인 말씀을 전해주시는데 그것을 육적인 수준으로 낮추어서 폄하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전도의 복음은 무시해 버리고 다른 지역에서 행했다는 이적과 기사를 구경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시고, 이어 “엘리야 시대에 삼년 육개월의 흉년이 들었을 때 이스라엘의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 한 과부에게만 엘리야가 보내졌으며, 엘리사 시대에도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한 사람만 깨끗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사렙다 과부도 나아만 장군도 다 이방인들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뿌리치고 배척할 때에는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역사를 베풀어 가실 것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권면의 말씀> 예수님의 구원의 복음은 인간적인 지식으로가 아니라, 영적으로 들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이방인들도 천국에 올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 온전히 주님께 헌신한 사람을 택하고 세워서 지금도 구원의 사역을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선교의 귀한 사명을 발견하고 성령님께 쓰임 받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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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경북하나신문 신년기획 - 장재효 목사 대담서울성은장로교회 장재효 목사 “지금은 성령시대!”‘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 “하나님의 말씀만을 대언하는 목회자 되어야!”한국교회뿐 아니라 전 세계를 살리는 “영적 운동(Spirit Movement)” 필요 최근 한국 교회는 교회 안팎으로 큰 위기를 겪고 있으며 그에 따라 개혁(改革)과 자성(自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교회의 본질(本質) 회복’과 ‘목회자의 사명’에 대한 해답은 오직 ‘성령 충만’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목회자가 있다. ‘팔순이 넘어서도 쉼없는 열정 목회’, ‘아버지 목사님’의 대명사로 불리는 서울 송파동 성은교회 장재효 목사이다. 본지에서는 신년을 맞아 장재효 목사님과의 대담을 통해 ‘성령 사역’과 ‘목회자의 사명’을 키워드로 한국 교회 회복의 방향을 제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Q: 예수님의 구속 사역과 성령의 역사하심에 대하여 말씀해 주신다면. A: 신‧구약 성경을 통하여 구약시대에는 성부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으로 창조하신 인간 세계를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주관하셨고, 아브라함을 택하심으로 그 계보 가운데서 인류를 죄에서 구속하실 메시아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기로 약속하신 바, 예수님을 아담의 원죄를 피하여 동정 탄생하게 하셨다. 죄없이 사시던 예수님은 택하신 자기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한 희생양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언약의 피를 흘리시고 <이사야 53:1~6>처럼 희생양으로 죽임당하셔서 인류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 그러나 이 사실을 타락한 인간의 이성(理性)으로는 알아볼 수 없기에, 예수님은 아버지께 기도하여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도록 하셨다(요 14:16). 그리하여 인간은 하나님을 알아보고 그 즉시 자신이 죄인임을 직시(直視)하게 되었다. 죄책감으로 심판·형벌의 불안과 두려움에 어찌할꼬 하는 죄인들에게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 조명, 체험, 감동, 감화’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믿어지게 하심으로 택하신 백성들의 구원 사역을 감당하고 계신다. 이처럼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성부시대, 성자시대, 성령시대로 인류 구원을 위한 역할 분담을 하셨고, 지금은 오순절 이후 성령님께서 천국 들어갈 알곡들이 믿어지는 믿음으로 결실하게 역사하시는 성령시대, 즉 성령사역시대이다. Q: 성령의 역사하심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신다면. A: 이 시대에 구원의 주(主) 되신 예수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한 사역자로 세워 쓰시기 위해서는 성령에 의해서 회개하고 죄 사함 받아 지옥길에서 천국길로 돌아서게 하시는데, 이것을 ‘리펜트 무브먼트(repent movement)’(회개 운동)라 한다. 오순절 이후 마가 다락방에서 120명이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와 함께 불의 혀 같은 것이 각 사람 머리 위에 임하여 성령이 충만하게 되었을 때,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4)의 역사가 일어났다. 그 14절부터 베드로가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갈릴리 사투리로 설교했는데, 칠칠절(오순절)을 지키러 세계 16개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각각 자기 나라말로 들려서, 설교 한 번에 3천 명이 회개하고 그들이 성령의 임재와 인도하심을 따라 예루살렘 교회의 초석이 된 것도 성령님의 불같은 역사로 이루어지는 섭리였다. Q: 목회자의 자세와 사명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A: 목회자는 베드로처럼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해야 한다. 성령이 말하게 하신 대로 대언하는 것이 100%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말씀은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이 수반해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아무리 무디고 완악한 심령도 깨어지고 부서지고 녹아져서 회개할 수밖에 없다. 요즘 일부 목사님들이 기도도 않고 성령의 충만한 임재가 없는 상태에서 자기가 만든 설교문을 마치 하나님의 말씀인 양 포장해서 양떼들에게 선포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가 없다. 건축 계획을 세우고 헌금 설교를 계속하거나, 교세를 늘리기 위해 전도에 관한 여러 이론들을 하나님의 것으로 포장해서 양떼를 속이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설교를 계속 들으면 성도들은 예수님을 만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성령 받은 사람에 의해서 또 다른 사람이 회개하고 성령 받고…’ 하나님은 그렇게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Q: ‘성령 충만’은 강단에서부터 먼저 흘러나와야 한다는 말씀이시네요. A: 그렇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롬 8:16) 했고,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고 성경에 말씀하셨다. 그래서 내가 운다. 하나님 앞에서 통곡할 때도 있다. 나도 이 시대에 58년이나 목회했는데, 한국 교회 원로로서 한국 교회가 성령을 배척하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신비주의라고 하면서. 그래서 나는 한국교회뿐 아니라 전 세계를 살리는 ‘영적 운동(Spirit Movement)’을 일으키고 싶다. 방송이든 신문이든 기회 되는대로 여러 언론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것도 다 이러한 마음이 있어서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고후 13:5)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또한, 유다는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유 1:19)고 했다. 교회 지도자들 중에서 성령을 못 받고 육에 속한 사람들을 가리켜 한 말씀이다. 그들은 패당을 짓고 자기 명분과 잇속을 챙긴다. 현대 목사 중에도 목사가 되기까지 철저한 회개가 없어 죄인 그대로이고 심령에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모시지 못한 경우를 보게 된다. 그들에게는 영혼 구원에 대한 목사 본래의 고유 사명인 ‘구령 성과’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 없다. 그러면 교인들의 눈치를 살피고 비위를 맞추는 직업인이 될 것이며 그 목적의 수단이 다양해지면 삯꾼 내지 사기꾼으로 멸망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Q: 목사님 말씀 경종으로 잘 듣겠습니다. 그런데 바른 목회 현장에도 종종 교회 내에 분열과 대립이 나타남을 보게 됩니다. A: 교회를 다니긴 하지만 회개도 중생도 신앙고백도 없는 교인들이 많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 23:15)고 하셨다. 이 말씀을 잘 분석해보면, 교회 신도들의 문제점은 원칙적으로 교회 지도자에게 찾을 수 있다. 교회 지도자가 외식하고 성령 충만하지 못하면 그들에게는 구원의 길로 이끌어 줄 가능성이 없기에 양떼들은 교회 다니면서도 불신자와 똑같은 죄악 생활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만, 바른 목회를 하는데도 목회자들에게 대적하고 훼방하며 모함하는 마귀의 앞잡이 같은 양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럴 때 목사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몇 번 권면해보다가 듣지 않으면 원수 시하고 교회 밖으로 내쫓기도 한다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주님께서 택해서 내 목장에 들여보내시고 내 양떼로 맡기셨다면 속썩이는 그 사람은 본심이 아니고 사탄이 그를 사로잡고 회개도 못 하게 하며 말씀을 무시하고 거역하게 하는 것이다. 참 목자라면 그 인생 영혼을 구원시키기 위하여 갑절의 깊이 있는 기도로 성령을 더욱 충만히 받아야 한다. 목사가 애타는 심정으로 그 영혼을 사랑으로 감싸 안고 눈물로 기도하면 목사와 함께하시는 성령께서 강권적으로 역사하시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완악하고 강퍅했던 그 사람에게서 사탄을 몰아내시고 마침내 그도 인간 본심으로 회개하며 목사에게 용서를 빌고 목회에 적극 협력 봉사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Q: 마지막으로 성은교회 양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A: 부족한 종을 목자로 신뢰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며 힘에 겹도록 분에 넘치는 봉사와 중심어린 협조에 뜨거운 눈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모두가 회개하고 성령 충만하여 그리스도의 심성으로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는 건강한 영적 공동체인 성은교회가 될 수 있게 애쓰신 여러분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인터뷰 후기> 한 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장재효 목사님의 음성은 힘이 있었고 메시지는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정확했다. 그리고 성령께서 충만히 주의 종에게 임하게 될 때 그것이 얼마나 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인지를 보고 느꼈다. “성령 받은 사람들이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자”는 장 목사님의 메시지가 한국 교회는 물론 전 세계 선교 현장에 깊은 울림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담·정리=박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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