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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별아름다운 이별 우종휴 목사 황상교회 제법 오래전 아이들이 어릴 적에 어쩌다가 차를 운전해 다녀오려고 집을 나설 때 주고받은 인사말이 생각납니다. “아빠, 잘 다녀오세요.” “그래 잘 갔다 올게.” 그리고 계단을 내려가면서 생각합니다. 내가 과연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다는 보장이 있는가?…. 30년이 지난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합니다. 내가 죽고 난 뒤에 가족들에게 어떤 남편과 아버지로 기억될까?…. 다윗처럼 우리를 추격해 오는 사람은 없지만,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 수 있는 우리들은 이별할 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을 떠날 때는 아프고 슬프겠지만 아름답게 헤어지고 싶은 것이 최고의 바램이어야 하리라 생각되어 두 가정을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가정이면 좋겠습니다. 첫 번째는 마틴 루터와 그의 딸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별입니다. 마틴 루터의 14살 난 딸이 죽게 되었을 때 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오, 하나님, 제가 무척 아끼는 아이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대로 하십시오.’ 그리고 그 딸에게 말합니다. “내 귀여운 딸아, 넌 아버지와 살고 싶겠지만 하늘의 아버지와 지내는 것도 기쁘지?” 딸이 대답합니다. “네, 아빠. 하나님의 뜻이라면요.” 그 딸은 아버지의 품 안에서 눈을 감습니다. 땅에 묻힌 딸에게 루터가 말합니다. “얘, 귀여운 딸아, 넌 다시 일어나 별과 태양처럼 빛날 거야. 저 아이가 평화의 세계에 들어가 있고 모든 것이 잘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슬픈 건 이상하군!” 두 번째는 조나단 에드워드와 그의 가족 이야기입니다. 조나단 에드워드는 죽을 때 그의 딸에게 아내와 자녀들에게 할 말을 받아 적게 합니다. “사랑하는 루시야, 이제 곧 떠나야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 같구나. 그러니 사랑하는 내 아내에게 마음을 다해 사랑한다고 전해 주렴. 그리고 우리 사이에 그토록 오래 지속되어온 남다른 연합이 내가 믿기로는 영적인 것이었기에 영원토록 계속될 것이라고 말해 주렴. 그리고 내 사랑하는 자녀들에게는, 너희가 이제 아버지가 없는 아이들로 남게 되었지만, 이것이 너희가 모두 한 분 아버지를 찾는 기회가 되기 바란다. 그분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이후 멀리서 남편의 사별을 듣고 사라 에드워드는 딸 에스더에게 글을 보냅니다. “오, 진심으로 사랑하는 내 딸아, 무슨 말을 해야 하니? 거룩하고 선하신 하나님이 검은 구름으로 우리를 덮으셨구나. 하지만 나의 하나님은 살아계신단다. 그리고 그분이 내 마음의 주인이시란다. 오, 내 남편과 너희 아버지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여!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 드린 바 되었단다. 그리고 그곳에 내가 있고 내 사랑도 있단다.” 세상과 이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무성한 요즈음입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자신의 일로는 크게 생각하지 않는 듯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셔서 전과같이 생활하지 못해서 불편하기보다 아름답게 이별할 준비가 되지 못한 것 때문에 마음이 편치 못해 근심함으로 심령이 잘되게 해 주시기 빕니다. 샬롬!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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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출애굽기(13)나의 출애굽기(13) 드보라 35. 공안이 두려워서 한국행을 결심하다. 그러던 중에 전에 아는 아주머니께서 나에게 남한행을 권유하셨다. 하도 분위기가 뒤숭숭하고 언제 잡힐지 모르니 한국행이 어떠냐는 것이었다. 나도 불안에 떠는 차에 드라마를 통해 본 남한의 모습도 생각나면서 남한행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전에는 남한에 가기는커녕 남한 사람도 안 만나려고 했던 내 모습을 생각한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변화였다. 그렇게 한국행을 결심하고 수소문을 해서 어떤 브로커와 연결이 되었다. 아직 어린 딸아이가 걱정되었지만 일단 내가 한국에 가기만 하면 거기서 돈을 쓰면 아이는 데려올 수 있다고 해서 결정을 했다. 그런데 평소에는 맡겨도 칭얼대지 않던 아이가 이번에는 그렇게 많이 울었다. 아이에게 시장 다녀오겠다고 달랬지만 그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왠지 이전에 북에서 놓고 온, 나를 배웅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문득 생각이 났다. 그렇지만 나는 애써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며 불안감을 눌러 담았다. 36. 올가미에 걸려 공안에 붙잡히다. 어쨌든 남한에 가면 아이도 다시 데려오고 돈을 벌어 북에 송금도 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불안감을 억누르며 약속 장소로 왔다. 아직 브로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저쪽에서 한 남자가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왔다. “남한 가시는 거죠?” 나는 이 사람이구나 싶어서 “네, 맞습니다.” 하고는 이제 어떻게 하면 되냐는 질문을 이어서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찰나의 순간에 내 주변 공기가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면서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남자는 자신의 공안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주위를 이미 몇몇 사복 입은 공안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올가미였다. 나는 결국 공안에 붙잡히고 말았다. 꿈꾸던 남한에서의 생활은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말았다. 37. 공안국에서 갇혀 조사를 받다. 공안에게 붙잡히는 순간에 나는 두고 온 딸이 생각나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떻게 해서든 이 상황을 벗어나야겠다는 절박함을 가지고 나는 막무가내로 잡아가는 공안에게 사정하기 시작했다. “나 잠깐 할 말 있소. 우리 딸이 지금 막 돌이 지난 갓난아이라 아직 젖도 떼지 못했소. 나 좀 보내주시오.” 그렇지만 공안은 매정하게 무조건 조사부터 받으라고 말했다. 형편이 어려워 돈 벌러 나온 거라고 계속 울면서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런 울부짖음은 통하지 않았다. 조사관은 나를 구류장에 집어넣었다. 구류장에 들어가니 그곳에는 중국 여성들이 나와는 다른 죄목으로 갇혀있었다. 구류장에 있던 사람들은 젊은 조선 처자가 여기 왜 왔는지 나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면서 하염없이 울었다. 내가 하도 울기만 하니까 구류장에 계신 분들이 너무 걱정하지 말라 하면서 5원, 10원씩 돈을 모아서 줬다. 그때 당시 나는 한국에 넘어갈 생각으로 집에서 추수하고 번 돈 1,500원을 숨겨온 상태였기에 구류장 언니들이 주는 돈이 그렇게 큰 도움은 아니었지만 많은 격려가 되었다. (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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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길을 열어 주시는 주님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1절)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5절)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8절)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하였느니라(10~11절) 오늘 우리의 일상이 너무나 불안하고 또 코로나 전염병으로 인해서 여러 가지로 위축된 심령들에게 때를 따라 주시는 말씀을 통해 이를 능히 극복하고 승리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는 내용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한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우리에게 이를 본보기로 삼고 동일한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시험을 당할 때는 피할 길을 주신다는 사실도 함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일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이 말씀을 선포하게 하셨는데, 1절부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일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홍해를 건너게 하셨는데 이를 세례받은 것이라고 바울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반석에서 구멍이 나게 하시고 물이 솟아 모두가 갈증을 면하는 흡족한 물을 마시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바울은 신령한 반석이라고 표현하였는데 그 반석을 예수님이시라고 말합니다. 요즘처럼 코로나 전염병이 많은 사람을 위협하고 있지만,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은 목이 마르고 힘들 때가 있어도 반석이신 예수님이 동행하시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으며 새 힘을 얻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반석에서 물이 나와 먹고 살게 된 사건을 통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반석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말씀을 통해서 살아야 함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광야교회의 모습을 고린도교회의 현재 모습과 동일시하여 광야교회가 어려움을 당한 일과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신 이유를 깨닫고 그 사건을 거울삼아 우리도 천국 백성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이스라엘 백성 다수를 멸망하심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5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끌어 가시는 과정인데, 왜 그들을 원치 않으셨을까? 그 이유에 대해 히브리서 3장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또 하나님이 40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17~19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조금만 어려우면 애굽이 좋았다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외치며 원망하고 불평하기만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지 않은 불신앙의 행동을 한 것이었지요. 그들의 불신앙이 결국은 그들로 하여금 약속받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갈 자격을 얻지 못해서 광야에서 다 엎어져 죽게 한 것입니다. 불신앙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3. 이스라엘 백성들이 멸망당하게 된 4가지 사건 사도 바울은 구약시대 광야교회에서 있었던 불행한 일들, 4가지 사건을 열거하면서 그들이 왜 멸망당하게 되었는지 그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사건(7절)은 출애굽기 32장에 기록된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호렙 산에 올라간 모세를 기다리다가 지쳐 아론을 통해 금송아지로 우상을 만들고 숭배한 사건입니다. 두 번째 사건(8절)은 민수기 25장에 기록된 것으로 광야교회가 싯딤에 이르렀을 때 모압 여인들의 꼬임에 빠져 간음하고 우상숭배에 이르게 되므로 하루에 2만 3천 명이 죽게 된 사건을 말합니다. 세 번째 사건(9절)은 민수기 21장에 기록된 것으로 광야교회가 가나안땅으로 진행할 때 에돔 땅을 지나가는 것이 쉬운 길이였으나 에돔이 거절하여 사해 오른쪽으로 돌아 산과 계곡을 지날 수밖에 없음에 백성들이 길이 험하여 불평함으로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사 그들을 심판하신 사건입니다. 네 번째 사건(10절)은 민수기 13장에 기록된 것으로 광야교회가 가데스바네아에 이르러 가나안땅에 12명의 정탐꾼을 보내어 40일을 탐지하였는데, 백성들이 희망과 승리를 말한 2명의 보고를 듣지 않고 절망과 불평을 보고한 10명의 말에 마음을 빼앗겨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한 사건입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광야교회는 40년간 광야를 헤매다가 출애굽 할 때의 1세대는 승리의 보고를 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다 광야에서 죽고 20세 미만의 2세대만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4.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주신 본보기 광야교회의 이러한 행적들이 오늘 코로나 전염병으로 어려움을 겪는 우리에게 경계의 말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6절),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11절).” 이런 일들은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경계의 교훈거리로 성경에 기록하게 하셨다고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기록하게 하신 말씀을 소홀히 여기지 말고 “나도 그러면 안 되겠구나” 하는 경계거리로 삼아 분발하도록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광야교회가 불행한 사건들로 멸망당한 일은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귀한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악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가면 살 길이 열릴 것입니다. 5. 피할 길을 주시는 하나님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피할 길을 내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13절) 하나님은 믿음직스러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시험당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실 뿐만 아니라 시험당할 때 피할 길을 열어 주셔서 그 죽을 지경에서 벗어나 살아날 수 있게 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여기 전염병이 돈다 할지라도 그 죄를 철저히 회개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어지면 그 사람은 그 죽음의 환란에서 피할 길을 열어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것을 성령으로 깨닫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회개할 때, 성령이 알게 해 주시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피할 길이 무엇일까요?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약5:13)라는 말씀처럼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철저히 회개하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회복되고 모든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권면의 말씀) 코로나 전염병으로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환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벌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광야교회의 불행한 사건을 교훈으로 삼고 악에서 돌이키는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살 길을 주시고, 피할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전염병의 두려움으로 불안해할 것이 아니라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시50:15)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피할 길임을 믿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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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부르심(2)브라더 앤드류 오픈도어 설립자 “넌 안돼!” 사람의 영혼을 급속도로 시들게 하는 말이 있다면 아마 이 한 마디일 것이다. 나는 평생 이 말을 수도 없이 듣고 살았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 곳에 가서 그 뜻을 따르고자 할 때 이런 말을 듣는다면, 반드시 정색하고 상대방의 태도를 꾸짖어야 한다. 1953년 글라스고 WEC에서 훈련을 받을 때, 성탄절 전후 짧은 방학 동안 지낼 만한 곳이 없었다. 요통으로 인해 가을 학기 대부분을 침대에서 보내면서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주님의 나의 최고봉”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고, 목사님의 아내인 비디 사모님께 감사하다는 편지까지 쓴 적이 있다. 사모님은 한 번 찾아오라고 했다. 나는 성탄절 휴가를 목사님 댁에서 보내고 1월에 학교로 돌아왔다. 전체 학생들이 식사하는 시간에 교장 선생님은 휴가 기간에 어디 갔는지 물었다. 나는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대답했다. 교장 선생님은 “뭐? 자네가? 안 되지!” 나는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영적 거장의 가족을 쉽게 만날 수 있을 거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일어나서 복음을 배척하는 나라로 떠나는 것이 내게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 안 되겠는가! 나는 평생 그렇게 살았다. 생각해보면 성경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넌 안돼!”라고 말하더라도 듣지 않고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놀라운 결실을 맺은 사람들, 그들은 우리만큼이나 평범했다. 그러나 그들은 닫힌 문을 여시고 각자에게 필요한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결정 내렸을 때 사람들이 “넌 안돼!”라고 말해도 어려운 환경 이기고 놀라운 결실 맺은 사람들, 그들은 능력의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했다. 이집트에 종으로 팔려간 요셉이 왕국의 2인자가 되었다고? “그래도 넌 안돼!” 모세가 홍해를 갈랐다고? “그래도 넌 안돼!” 양치기 소년 다윗이 조약돌만으로 거인 골리앗을 때려눕혔다고? “그래도 넌 안돼!” 요나가 죄악의 도시 니느웨에 가서 설교 한 번으로 모든 시민을 회개하게 만들었다고? “그래도 넌 안돼!” 그렇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그들은 불가능을 현실로 만들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사방의 문이 닫혀 있는 듯 보이지만, 그 문들은 백화점 자동문처럼 닫혀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멀리서 보면 닫혀 있지만, 우리가 그 앞으로 걸어가면 문 위에 달린 센서가 우리가 오는 것을 알고 문을 열어준다. 하나님은 우리가 순종하는 마음으로 다가오기를 기다리신다. 우리가 다가가면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주시고, 우리는 주님을 섬길 수 있다. (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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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로의 죽음과 부활의 섭리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23~26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나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39절~40절)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41~42절) 본문의 내용은 요한복음 11장에 기록된 말씀으로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가 병들어 죽은 것을 살리신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올해 부활절을 맞아 죽었던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의 계획을 통해 부활의 섭리를 깨닫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1. 병든 나사로가 죽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목에 있으며 오늘 본문 부활의 주인공인 나사로와 두 여동생인 마르다와 마리아, 세 식구가 사는 동네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제자들과 동행하실 때 가끔 베다니의 나사로 집에 머무시곤 했습니다. 어느 날 나사로가 병이 들어 예수님께 두 자매가 사람을 보내며 소식을 전하게 합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나사로가 병들었나이다”(3절)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속히 오실 것을 간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사랑하심에도 불구하고 지체하시며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십니다.(6절) 그 후 예수님께서 도착해 보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나 지난 상태였습니다.(17절) 마르다는 예수님을 보며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21절)하고 안타까워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이 나사로가 죽기 전에 병을 고쳐 주실 것으로 여겼지만 이미 죽은 지가 나흘이나 지났으니 예수님이시라도 어찌하지 못하실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수심에 가득 찬 마르다를 향하여 예수님께서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23절)하고 위로해 주셨지만 마르다는 믿지를 않았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분이심을 미처 알지 못한 것입니다. 2. 나사로가 죽기를 기다리신 예수님 나사로가 죽기를 기다리신 것은 예수님이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4절)고 하셨음을 그 근거로 들 수 있습니다. 이는 나사로의 죽음이 아주 죽는 죽음이 아니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게 하시어 그 부활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입체적으로 확실히 보여 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의 권세로 시체가 썩어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아나게 하심으로써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을 믿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41절)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질병만 고치시는 분이 아니라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활의 소망 즉 복음을 믿도록 하기 위하여 병든 나사로를 죽을 때까지 기다리시고 죽은 후에 가셔서 그를 다시 살리신 것입니다. 이것은 나사로의 죽음과 그의 부활을 통하여 모든 사람에게 부활에 대해 실제로 눈앞에서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사로가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고 기별을 받았음에도 이틀을 더 머무신 것입니다. 그 이틀 동안 죽기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3. 다시 살아난 나사로 예수님께서는 죽은 나사로를 보고 “잠들었다”(11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잠들었다고 표현하신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께 쓰임 받다가 육신이 죽을 때 그것은 영원히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생명부활에 참여할 소망이 있음을 믿으시면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나사로가 그때 죽었지만 다시 살아날 것을 미리 아신 까닭에 “잠들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하여 나사로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면 병이 나을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아직도 나사로에 대한 예수님의 계획을 알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서야 예수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무덤에 가셔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마르다가 믿지 않자 예수님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40절)고 명하자 그제야 사람들을 시켜 돌을 옮겨 놓았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향하여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너라”(43절) 하고 부르시니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사로가 나오며 다시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4. 나사로의 부활이 주는 의미 나사로가 부활한 일로 인하여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내세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병든 자가 고침 받는 일도 기적이지만 죽은 자가 살아난 것은 더 큰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사로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고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행하신 일을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데 쓰임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예수님이 택하신 그 시간부터 남은 평생을 예수님께서 쓰실 계획을 세우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앞으로 어떻게 쓰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것이 기대되지 않습니까? 부활은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이 있고 또 일시적 부활이 있습니다. 나사로처럼 죽었다가 살아나더라도 육체의 생명이 다하면 다시 죽는 것을 일시적 부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확실히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9절)고 말씀하신 것처럼 일시적 부활보다 더 중요한 생명의 부활에 참여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믿지 않는 자들도 부활합니다. 그것이 바로 심판의 부활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부활한 몸은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영원히 죽지 않으니까 생명의 부활은 천국 가서 예수님과 영원히 사는 것이지만 심판의 부활은 예수님 앞에 그들의 행위록에 의한 재판을 받고 불못에 던져지게 되는 것입니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계20:13~15절)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예수님을 반드시 믿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만약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불못에서 영원한 고통 속에 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25~26절)하고 예수님이 물으실 때 우리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요?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27절)라고 말한 마르다의 고백처럼 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마지막 날 주님이 오실 때 생명의 부활로 예수님과 영원히 함께할 것입니다. (권면의 말씀) 우리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죽임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 예수님만이 인류를 죄악에서 구원하실 분이심을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망을 영생으로 바꾸어 주신 유일한 분으로 부활의 소망을 품게 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4:25절)고 말씀하신 부활의 소망을 만천하에 선포하고, 예수님이 가라 하면 가고, 예수님이 하라 하시면 하고, 예수님 뜻대로 쓰임 받기를 힘써 보시기 바랍니다. 생명의 주권자이신 예수님만 믿고 의지하며 순종함으로 쓰임 받아서 생명의 부활에 성도 여러분도 빠짐없이 다 참여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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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성들이 겪는 박해“세계통계의 가장 큰 갭” 박해받는 크리스천 여성 ‘세계여성의 날(3월 8일)’을 맞아 9일부터 20일까지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행사들이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하루 행사로 축소된 가운데, 유엔사무총장은, 여성이 ‘세계통계의 가장 큰 갭’이라는 언급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통계에서 여성이 고려되지 못하고 빠지는 현상은 세계에서 가장 ‘숨겨진’ 학대를 당하고 있는 크리스천 여성들에게 더더욱 해당된다. 이들은 신앙과 가난과 여성이라는 사실 때문에 이중삼중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국제오픈도어의 보고서 ‘Genderspecific Religious Persecution Report 2020’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크리스천 여성과 소녀들이 겪는 가장 큰 두 가지 박해 형태는 ‘성폭력’과 ‘강제결혼’이다. 이것은 일종의 ‘산 죽음’이다. 특히 이슬람이나 불교에서 개종했을 경우 가장 심하다. 이러한 젊은 여성들은 숨겨지고 고립된다. 따라서 그들의 고난은 보고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고, 크리스천공동체와 교회에서조차 잊혀진다. 기독교를 억압하기 위한 “여성 성적박해” ‘성폭력’과 ‘강제결혼’ 광범위하게 이뤄져 특히, 아시아, 중동, 북아프리카 등 기독교에 적대적인 국가에서 성적폭력은 범죄로 이어진다. 크리스천 소녀인 ‘니마’는 폭력사태로 가족들이 마을을 떠날 때 노예로 팔렸다. 박해자들은 그 틈을 타서 니마와 다른 60명의 소녀들을 타깃으로 삼았다. 약한 여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니마는 매를 맞고, 끌려가서 여러 차례 강간을 당했다. 2019년 보고들은 기독교공동체를 억압하기 위해서 ‘여성’에 대한 박해가 광범위하게 이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여성박해는 묻히기 쉽고 박해자들에게 보복의 위험이 낮고 매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아라비아반도에서는 크리스천 여성 가사도우미들이 조용히 성적 착취를 당하고, 사하라이남 아프리카에서는 민간 무장대들이 크리스천 마을의 여성들을 주기적으로 공격하거나 납치해서 성적노예로 삼는다. 기독교박해의 이러한 성적박해, 교회를 잠식하기 위한 이러한 방법들은 간과되기 쉽다. 여성을 집밖에 나가지 못하게 가두거나 성적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크리스천 여성들을 타깃으로 하는 흔한 박해 방법이다. 국제오픈도어 관계자는 “이 보고서의 사실들은 전 세계 교회들에게 분명한 사명을 일깨운다”고 언급하며, “우리는 남자와 여자, 어린이들을 포함한 모든 인간의 천부적인 존엄성을 성경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이로써 박해자들이 연약한 여성들을 타깃으로 공격하여 교회를 약화시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라고 호소하고 있다. (오픈도어 2020. 04. VoL. 216에 실린 글 발췌)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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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부르심(1)브라더 앤드류 오픈도어 설립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예언적 말씀을 듣자” 하나님을 위해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우리는 반드시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성경에 등장하는 선지자들은 대부분 특별한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고, 높은 학식이 있었던 것도, 신학교 마지막 학기에 소명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선지자들은 일상에서 하나님을 섬겼던,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때면 의연히 일어나 여러 왕국의 흥망성쇠를 좌우했다. 그들의 사역에는 엄청난 영향력이 있었다. 오늘날 선지자의 일은 단순히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마28:19)라는 예수님의 마지막 지상 명령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일은 성경을 통해 움직이시는 성령 하나님께 순종할 때 가능하다. 다른 말로 우리는 세 가지 조건을 갖추면 선지자가 될 수 있다. 첫째,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과 그분의 성품을 안다. 둘째, 사람의 삶을 바꿀 메시지가 있다. 셋째, 메시지를 전할 곳이 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하나님을 알게 되고 우리를 향한 그분의 뜻을 읽을 수 있다. 말씀과 기도가 우리 몸에 배일수록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는 돈독해진다. 그리고 성경을 통해서 주님은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나누기 원하시는지 감동을 주신다. 우리의 선지자적 사명은 성령 하나님께 순종할 때 가능하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분의 뜻을 읽을 수 있다 “하나님의 훈련은 ‘지금’에 해당하는 것이지 ‘곧’이 아니다” 우리가 자주 하는 생각이 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 삶에 대해 특별한 부르심을 갖고 계시고, 우리가 성취해야 할 특별한 목적을 갖고 계시며, 우리는 반드시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만약 이러한 부르심이 없다면 우리는 특별히 섬기도록 선택받지 못한 사람으로, 무료하고 의미 없는 나날을 보내는 하나님 왕국의 백수로 여긴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이런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이라는 점이다.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목적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분의 뜻은 정반대일 수 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푯대와 목적은 과정이다. 우리가 초점을 맞추기를 바라시는 부분은 바로 오늘이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다음과 같이 잘 말해주었다. “하나님의 훈련은 지금(now)에 해당하는 것이지 곧(presently)이 아닙니다. 그분의 목적은 바로 지금에 있지 미래 어떤 때가 아닙니다. 순종은 나중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을 미룬다면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이 훈련이니 준비니 하며 시간을 끄는 것을 주님은 끝이라고 하십니다. 순종이 전부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매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됩니다.” (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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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부활절 축하 메시지 - 설정수 목사설 정 수 목사 경북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경산옥산교회 부활의 주님을 바라봅시다! 할렐루야!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이 부활의 감격과 기쁨이 경북의 모든 교회와 성도님께 충만히 임하시길 기원합니다. 2020년 부활절은 우리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전 세계적 유행으로 우리 사회는 전염병의 공포, 경제 위기, 일상생활의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도 전염병 확산을 막고자 그동안 현장 예배를 중단하고 온라인예배를 드려야했으며, 올해는 부활절 연합예배마저 취소‧연기하거나 축소해서 드림으로 마음껏 축하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고통의 현장에, 상처받은 모든 이들에게 소망이 되고 능력이 되십니다. 비록 코로나19 전염병이 우리 사회를 뿌리째 흔들고 있지만, 그럴수록 우리 성도들은 상심에 빠져있는 이웃에게 부활의 복음을 힘 있게 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삶이 예배가 되고, 예배가 능력으로 나타나는 부활의 산 증인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우리의 소망이고 능력이 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을 이기신 영광스러운 부활입니다. 그렇기에 고통과 어려움을 당할수록 우리의 소망은 더욱 커지고 빛을 발하게 됩니다. 2020년에 맞이하는 이 부활의 기쁨이 성도님들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희망의 메시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오늘날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너무도 잘 아시는 주님께서 이 땅의 모든 고통을 속히 치유하시고 회복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11:25-26)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의 소망은 오직 주님께만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만을 바라보며, 끝까지 인내와 기도로 승리하시는 경북의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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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부활절 축하 메시지 - 박진석 목사박 진 석 목사 포항시기독교교회연합회 회장 포항 기쁨의교회 부활하신 예수님은 ‘희망의 빛’입니다! 할렐루야!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님께 모든 찬양과 영광과 존귀를 올려드립니다. 창궐하는 전염병의 여파로 온 열방이 진동하고 있는 시기에 부활의 의미는 더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모욕하고 조롱하고 비하하기 위해 십자가형을 선택했지만, 예수님은 치욕의 십자가를 묵묵히 감당하셔서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치욕의 십자가를 구원의 십자가, 승리의 십자가, 영광의 십자가로 전화위복시키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교회는 전 세계적 재앙이 하나님의 진노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에 엄중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스스로 회개하며 무릎을 꿇어야 할 것입니다. 또 한편으론 사망 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에 힘입어 이 모든 상황을 극복하고 이겨내야 할 것입니다. 코로나19와 더불어 경제적 어려움, 급변하는 남북정세의 상황 변화들로 인하여 생긴 두려움과 불안감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이 땅에 희망의 빛을 비춰주신 주님의 위로와 능력이 교회와 성도뿐만 아니라 포항과 경북지역 모든 시민들에게 임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이 땅에 희망의 빛을 비춰주신 주님의 위로와 능력이 포항과 경북지역 모든 시민들에게 임하길” 올해는 6.25 7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그 치열한 전투에서 포항 경북지역은 낙동강 최후 방어선이었습니다. 용감한 군사들이 끝까지 싸워 그 방어선을 지켰습니다. 영적인 전투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사탄은 총력을 기울여 세상을 공격하지만, 그리스도의 군사들은 말씀과 기도로 무장해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성경 역대하 7장 14절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찾으면 하나님께서 이 땅을 고치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힘을 합쳐 이 시기를 이겨낸다면 하나님은 분명 이 땅을 고치실 것입니다. 이 나라 가운데 새로운 축복과 번영을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승리와 영광이 포항과 경북지역 시민들과 코로나로 고통받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임하길 기도드리며, 전화위복의 은혜가 함께하길 소원합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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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부활절 축하 메시지 - 한상일 목사한 상 일 목사 구미시기독교총연합회 회장 선산중앙교회 부활의 주님은 참 소망입니다! 20세기 신학계의 거장 칼바르트는 “부활의 메시지는 짧을수록 좋다. 왜냐하면 부활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사실을 성경은 구차하게 증명하려고 하거나 변증하려하지 않았다. 단순하게 선포했고, 믿고 살라고 선언했을 뿐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곧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복음이 복음이 되고,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이 분명한 사실 만큼 중요한 또 하나의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뿐 아니라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참 소망이 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소망을 가르쳐 주기 원하셨습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셨고, 죄와 사망과 싸워 승리하심으로 참된 소망을 향해 걸어가는 삶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소망을 가진 사람은 삶의 뿌리부터 흔들어 놓는 일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오히려 극복하며 이겨나가 하나님의 역사를 창조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에 어두운 금요일 밤과 같은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일이 오고 있음을 믿고 이겨냅시다” 꽃을 파는 할머니가 한 분이 계셨는데 사람들은 이 할머니를 ‘웃음 할머니, 기쁨 할머니’로 불렀습니다. 입고 있는 옷은 남루하기 그지없고, 생활은 참 고달픈 듯 보이는데 늘 기쁨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어떤 분이 “할머니! 할머니는 뭐가 그렇게 기쁘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닙니다. 저에게도 어려운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생각하면 힘이 난답니다. 예수님은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만 삼 일만에 부활하셨듯이, 내 인생에 금요일은 지나가고 부활의 주일이 오고 있음을 믿기에 항상 기쁘게 살아간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에 어두운 금요일 밤과 같은 시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더 좋은 날이 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인생의 금요일 같을 지라도, 부활의 주일이 오고 있습니다. 이 할머니처럼 기다려 보십시오. 여러분의 가정, 기업, 건강에 부활의 아침이 올 줄로 믿습니다. 아무리 추운 겨울도 우리는 봄이 올 것을 알듯이, 우리의 삶 속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우리는 봄이 올 것을 확실히 믿는 것입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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