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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노회장 취임사 - 김영수 목사김영수 목사 영주노회 회장 예천교회 주님 안에서 문안드립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상이 급격히 변화하며, 모든 질서가 재편되고 있습니다. 교회도 예외가 아니어 지난 1년 6개월 정도 혼란스러운 터널을 지나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의학적으로도 어느 정도 대비가 되어 가는 것 같고, 교회도 조금씩 대처할 길을 찾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106회기 우리 총회는 ‘복음으로, 교회를 새롭게 세상을 이롭게’(신16:11, 막1:15, 행2:47)라는 주제를 내세우고, 이 위기를 극복함은 물론, 새로운 동력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다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영주노회도 총회의 방침에 보조를 함께 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역, 우리 삶의 터전인 이 지역에 계속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하기 짝이 없는데도 76-77회기 영주노회를 섬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새기며 임원 여러분들과 함께, 또 우리 영주노회 167개 교회 모든 가족들과 함께 마음과 힘을 합쳐 이 위기를 잘 이겨낼 뿐 아니라 오히려 더 좋은 계기로 삼을 수 있게 되기를 다짐하며 기대합니다. 주님 은혜가 노회 산하 모든 지 교회 위에, 섬기시는 분들, 그리고 그 가정과 범사 위에 풍성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2021. 10. 13 영주노회 노회장 김영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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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 다시 시작하는 힘, 은혜(저자 최병락 목사)이 책을 읽고 나면 당신이 13번째 은혜의 주인공이 된다! 저자 : 최병락 목사 ◎ 저자 소개 사역은 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 시작된다고 고백하며, 날마다 은혜를 사모하는 강남 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이다. 삶에서 건져 올린 풍성한 이야기로 풀어낸 깊은 묵상과 적용 중심의 설교자로 알려져 있다. 저서로는 <다시, 일어남>, <부족함>, <쏟아지는 은혜>, <자라가라>, <모든 것을 살리는 예배를 회복하라> 등이 있다. ◎ 책 소개 코로나 시대를 사는 성도에게 가장 필요한 메시지는 어떤 것일까? 무엇보다 위로와 격려를 담은 은혜의 메시지가 가장 필요할 것이다. 최병락 목사는 다양한 고난을 겪었던 성경 속 인물 중에서 노아, 아브라함, 야곱, 요셉, 모세, 한나, 다윗, 야베스, 룻 등 12명의 인물이 하나님의 은혜로 어떻게 다시 고난 속에서 일어섰는지를 전한다. ◎ 본문 중에서 “오늘 자신을 돌아볼 때 자신이 80이 된 모세의 모습을 닮아있다면, 좌절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인생을 찾고 있습니다. 나이가 80이 아니라 환경이 80이 된 모세와 같은 사람들을. 병이 들어 기력이 없고, 재력이 없고, 능력이 없고,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때가 오히려 하나님이 그 사람을 통해 일하실 최고의 좋은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p.119) <요단출판사 제공 : Tel (02) 2643-7290>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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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신앙을 위해 교회를 옮기는 것, 옳은가요?자신의 신앙을 위해 교회를 옮기는 것, 옳은가요? Q 질문 : 자신의 신앙관에 맞는, 혹은 자신의 신앙을 위해서 교회를 옮기는 것은 부정적인가요, 허용 가능한가요? 대부분 교회에서는 타지로의 이사 등,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한 교회를 일평생 섬기며 헌신하는 것을 가르치고 권유하는데, 이것의 성경적 근거가 있나요? 항간에서는 고정적인 신도를 두기 위해 이런 문화를 만들어 냈다고도 하는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아요. A 답변 : 지금의 교회가 자신의 필요를 채우지 못할 때, 자기 신앙을 위해 교회를 옮기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 같군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결코 쉽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교회가 무엇인지, 구원받은 신자가 누구인지 교회관과 신자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 문제가 개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하나님이 임하시는 특별한 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너와 나’,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라는 특별한 관계성을 통해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여 주는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내가’ ‘내 뜻’으로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의해 내가 그 교회에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 교회 속에서 다른 지체들과의 깊은 관계성을 통해 내가 영적으로 성장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나님이 나를 그 교회로 불러 주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단지 교회의 예배나 설교를 통해서만 내가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로서 주님이 부르신 자리에서 내가 스스로 의무와 역할을 감당함으로써 다른 성도와 함께 내 믿음이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지 내 필요에만 초점을 맞추어 교회를 옮기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만약 그런 이유로 교회를 옮긴다면 아마도 계속해서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녀야 할지도 모릅니다. 지상에 나의 모든 만족을 채워 주는 완전한 교회는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교회에 어떤 면이 부족하다면 하나님은 다른 것을 통해 자기 백성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렇다고 교회를 절대로 옮겨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부득이하게 교회를 옮겨야 할 경우가 있을 수 있지요. 문제는 그런 경우에도 반드시 주위의 다른 성도들과 그 문제를 신중하게 의논한 뒤, 기도로 진지하게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자기 필요와 자기 뜻대로 사는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답변자 : 김순성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실천신학) -'크리스천 큐앤에이'(도서출판 등과 빛) 中 요약 발췌-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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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나라를 대적하기 쉬운 3대 세력주님의 나라를 대적하기 쉬운 3대 세력 조병우 목사 김천제일교회 주님이 부활하신 이후에 부활에 대한 두 가지 방향성이 나타난 사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하나는 예수님의 부활이 실제 사실이라는 교회의 주장과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부활은 거짓이고 제자들이 밤에 훔쳐 갔다고 주장하는 세력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을 거짓으로 만든 데는 세 가지 요소가 있었다. 하나는 돈이요, 둘째는 교권 즉 대제사장이요, 셋째는 권력이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군병들이 대제사장에게 가서 사실을 말하니, 대제사장은 군인들에게 돈을 주면서 총독에게 이야기해서 너희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하겠으니 너희는 나가서 제자들이 와서 밤에 훔쳐 갔다고 하라고 시켰고 군인들은 나가서 그대로 말했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해졌고, 그것이 진실을 몰아내고 사람들에게 기정사실처럼 되고 만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진리를 대적하는 모임의 역할을 보게 되는데 먼저는 대제사장의 역할이다. 이들은 가장 정직해야 하고,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하는 사람임에도 세상과 짝하면서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일에 가장 앞장섰다. 그리고 권력과 결탁하고, 성전을 장사꾼의 이익을 취하는 장터로 만들고, 그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여 거짓을 퍼트리는 일을 한 것이다. 종말에 주의 교회를 위협하는 세력 가운데 가장 중심에는 교회 지도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다. 배도라는 말은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이 하나님을 배신하는 일을 말한다. 세상과 결탁한 교회의 모습이고 타락한 지도자 모습이다. 그리고 권력의 역할이다. 빌라도는 스스로의 입으로 ‘나는 이 사람에게 죄를 발견하지 못하겠다’라고 반복하면서도 결국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사람들의 소리를 이기지 못하고 예수님께 사형을 언도했다. 권력이란 사람들의 여론에 너무도 취약하고 사람들의 여론이 법 위에 존재한다. 권력자는 여론에 움직이는 갈대와 같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권력은 사람들에게 만족을 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교회를 핍박할 수 있는 구조이다. 마지막으로 돈의 힘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군인들이 어떠했는가. 대제사장에게 돈을 많이 받은 군인들은 거짓말을 하겠다고 약속했으며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의 부활을 거짓 사건으로 만드는 일에 앞장서게 된 것을 볼 수 있다. 돈은 진실까지도 거짓으로 만들고 하나님의 일도 거짓말로 만들게 된다. 그래서 돈은 일만 악의 뿌리이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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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어도 충분합니다.한 사람이어도 충분합니다. 천석길 목사 구미남교회 오래전 신학대학원을 졸업할 즈음의 이야기입니다. 교회를 탐방하는 중에 시골의 작은 교회에 설교할 교역자가 없어서 교인들끼리 예배를 드리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이어서 일 년 가까이 비어 있다는 말을 듣고서 내가 그 교회를 부흥시켜 보리라는 마음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얼떨결에 담임 교역자가 되었습니다. 이사해 보니 열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는 작은 교회였기에 당연히 재정은 절대적인 미자립이었으며, 교회로서 해야 할 최소한의 어떤 일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새벽기도회에는 유일한 남자 집사님만 나홀로 나오는 그런 기도회를 이른 새벽마다 인도해야 했습니다. 그 집사님도 농번기에는 몸이 너무 피곤해서 때로는 새벽에 결석할 때가 있었으며, 그날은 설교할 일이 없었고, 그런 날이면 새벽기도회는 적당히 일찍 끝내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 날이 몇 번 반복되면서 묘한 욕심(?)이 생겨나기를 ‘차라리 집사님도 새벽기도회에 안 나왔으면 좋겠다. 그러면 밤이 늦도록 읽고 싶은 책이라도 읽을 텐데…’라는 천박한 욕심이 생겼습니다. (젊은 사역자였으니까 그럴 수 있겠지요···? ㅎㅎ) 그러던 어느 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 한 사람 때문에 새벽기도회를 준비했고, 그 한 사람이 교회에 나오기 전에 먼저 나가서 불을 켜서 기다리고 있었으며, 그 한 사람이 돌아간 자리를 생각하면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한 사람 때문에 억지로 하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어서 그 한 사람을 보내 주셨다는 생각이 마치 번개에 맞은 것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랬었구나. 그를 위한 사역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그 한 사람을 보내어 주셨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새벽이 진지해졌습니다. 오지 말았으면 차라리 좋겠다는 한 사람이 아니라, 그 한 사람이 나를 다듬으시고, 그 한 사람으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연결고리가 이어진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한 사람을 통하여서 일하십니다. 많이 모이지 못하여도 매 주일 마다 빠지지 않고 한 사람, 한 가정을 만나서 나눔을 하고 계시는 살아 움직이는 목장이 있습니다. 세상 모두를 사랑할 순 없어도 한 사람은 사랑할 수 있겠지요? 마음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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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학 목사의 논문 원문(9)- 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 김승학(안동교회) 신학과 교수/기독교 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김정숙 전도사(金貞淑, 1880~1969) 한국에 도착한 선교사들은 성경 말씀 그대로 남녀노소, 빈부, 계층에 관계없이 복음을 전했다. 그런데 귀족보다는 평민,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더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조선시대 말기의 여성은 유교적 전통으로 인해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한국 전통사회 안에 뿌리 깊은 성차별의 문화와 여필종부, 삼종지도, 칠거지악, 남녀칠세부동석, 부부유별 등의 가부장적 가치관은 여성의 인권을 철저히 억압했다. 무지와 가난, 고된 노동과 억압된 삶을 살던 여성은 한(恨)을 품은 존재였다. 조선시대 말기에 입국한 선교사들의 눈에는 누구보다 한국 여성들이 복음의 대상이요 구원받아야 할 존재로 보였다. 릴리아스 호튼 언더우드(Lillias Horton Underwood) 릴리아스 호튼 선교사는 최초의 장로교 선교사인 언더우드 선교사의 부인이다. 의료선교사인 그는 언더우드보다 8년 연상이었다. 호튼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여의사였다. 여사는 당시 한국 여성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조선여자들은 대체로 아름답지 않다. 나는 그들을 누구 못지않게 사랑하고 내 형제처럼 여기지만 그 생각은 털어놓아야겠다. 슬픔과 절망, 힘든 노동, 질병, 애정의 결핍, 무지 그리고 흔히 수줍음 때문에 그들의 눈빛은 흐릿해졌고 얼굴은 까칠까칠해졌고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그래서 스물다섯이 넘은 여자에게서 아름다움 비슷한 걸 찾는 건 헛일이다. 다만 아직 무거운 걱정거리나 힘든 노동에 시달리지 않은 나이어린 소녀들과 젊은 색시 중에는 종종 예쁘고 깜찍한 그리고 가끔 드물기는 하나 아름답기도 한, 활짝 핀 우아한 모습을 한 이를 볼 수가 있다. 이런 환경에 있던 여성들은 한국 땅에 도착한 선교사들에게 누구보다 우선적으로 중요한 선교대상이 되었다. 특히 1885년 4월 5일 인천항에 함께 도착한 미국 장로교와 미국 감리교선교사는 선교대상으로서 여성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1893년 장로교와 감리교의 양 교파 연합모임에서 선언한 10가지 한국선교정책 중에서 두 번째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였다. 하지만 여성선교정책에 관한 장로교와 감리교의 강조점은 차이가 있었다. 사회적인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던 감리교의 경우, 처음부터 의료사업, 교육사업, 자선사업, 여성의 인권회복 등에 치중하셨다. 따라서 감리교는 여성의 계몽과 교육에 있어서 장로교에 비해 앞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직접적인 복음전파를 강조한 장로교는 우선적으로 가난한 자와 낮은 계층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였다. 사회 계층 중에서도 가장 소외된 여성들을 선교의 타깃으로 삼았다. 장로교 선교사들은 여성들이 다른 계층에 비해 더 쉽게, 더 빨리 복음에 반응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여성에게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하지만 여성들에게 복음이 전해진 첫 10년 동안 여성 복음화의 속도는 매우 느렸다. 여성들이 소극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여성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복음을 수용하고 복음에 응답함으로써 복음전파가 급속히 이루어졌다. 그 결과 사회적 활동에 수동적인 여성들이 전도사역과 계몽사업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뿐 아니라 일제의 압제 가운데서 애국 여성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1. 김정숙, 출생과 결혼 “임진(臨津) 이북의 땅은 다시 오랑캐의 땅이 될 터이니 몸을 보전하는 것을 논할 수 없다”는 예언으로 불안해하던 이북(以北) 사람들 중에는 이남(以南)으로 이주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이들이 가장 선호한 지역은 정감록(鄭鑑錄)에서 언급하고 있는 ‘십승지’의 첫 번째 승지(勝地)인 경상북도 풍기(豊基)였다. 당시 난리 중에에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불안해하던 평안북도의 박천, 영변 지역에는 “풍기로 가야 산다”는 말이 떠돌았다고 한다. 정감록의 예언을 믿고 있던 북한 사람들이 실제로 이남으로의 이주가 시작된 것은 1890년대 후반부터였고, 이어서 1920년대에는 개성·평양에서 약 100여 가구가 풍기로 집단 이주를 했다. 이어 1945~50년 사이에 이북 전역에서 약 600가구가 이주를 했는데, 1가구에 5명만 따져도 600가구이면 3000명에 해당한다. 결국 약 4000~5000명의 사람들이 논과 밭, 가옥을 처분하여 풍기에 정착했는데, 현재 이들 후손들이 1000가구 정도 남아 있다고 한다. 특히 풍기로 이주해 온 사람들 가운데서 다수가 서도지역인 평안도와 황해도 출신이었다. 1907년 창립된 풍기성내교회는 지역 토착 주민들과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온 이주민들이 함께 신앙공동체를 이룬 것으로 성내교회 100년사는 기록한다. 정감록을 믿고 이북에서 피난 온 사람들도 성내교회에 출석하였다. 황해도 중에서 특히 해주와 개성출신의 이주자들은 풍기지역에서 인삼재배를 주도하였고, 평안도 출신 이주자들은 1920년에 시작된 과수재배와 직조업을 주도하였다. 이들이 풍기지역의 경제를 일으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6·25전쟁 전후로 다시 북한에서 많은 이들이 이곳으로 이주해왔는데, 이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전쟁으로 파괴된 직조공장이 빠른 속도로 회복되었다. (이하 논문 내용은 첨부파일 참조)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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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 크리스천들은 왜 박해를 받는가?아프가니스탄에서 크리스천들은 왜 박해를 받는가? 아프가니스탄은 이슬람 공화국으로 아프간 국민이 크리스천이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공식적으로 아프가니스탄에는 국제군, 외교관, NGO 사역자들과 같은 외국인들 외에는 기독교인이 없다. 모든 현지인 아프간 크리스천들은 이슬람에서 개종한 비밀신자들로 공개적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 아프간에서 이슬람을 떠나는 것은 이슬람법에 의해 죽음으로 처벌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가족과 친족, 부족은 자기들 중 개종한 크리스천을 제거함으로써 ‘명예’를 지켜야 한다. 개종한 자는 죽이거나 또는 정신이상자로 분류하여 정신병원에 보낼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크리스천들의 삶은 어떤가? 사회가 조밀하게 친족 중심이기 때문에 사회적 통제가 높고 사적 생활이 드러나지 않기 어렵다. 외국인조차 기독교 자료나 상징물을 소지하기 어렵다. 아프간 교회는 없고 유일하게 교회로 기능하는 하나의 외국인 교회도 그 활동을 감시받는다. 모든 형태의 모임은 탈레반 또는 감시기관의 높은 주목을 받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게 작은 소그룹으로 나누어 모인다. 지하교회 비밀신자들 역시 극도로 조심하여 만남을 가진다. 오픈도어는 아프가니스탄의 크리스천 수를 ‘수천 명’으로 추산한다. 아프간 여성인권과 크리스천 여성 아프간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신체적 학대를 받기 쉬우며 경제적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자율권은 거의 없다. 집에 감금상태가 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노예나 창녀로 팔릴 수 있고, 심한 매질을 당하거나 성적 학대를 당할 수 있다. 강제결혼과 강간은 크리스천이 된 여성을 이슬람으로 재개종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UN보고(2018년 5월)에 의하면, 아프간 여성 51%가 평생 신체적 성적 폭력을 경험한다. ▲아프가니스탄의 얼굴들.(사진=한국오프도어) <한국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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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출애굽기(27)나의 출애굽기(27) 드보라 65. 북송 당했던 집사님의 소식을 듣게 됨 다시 그 집사님에 대해서 듣게 된 것은 남한에 와서였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그날은 특별히 탈북자 강연이 있었다. 같은 탈북자로서 이야기가 쏙쏙 귀에 들어와 집중해서 듣고 있는데 그 탈북자가 감옥에서 만난 어떤 집사님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감옥에서 집사님을 만났는데 원래 어디 살던 사람이고 중국의 어느 동네에 있었다가 북송 당해서 자기와 같은 감옥에 갇혔다고 한참 이야기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아는 바로 그 집사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강연이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그 강연하신 탈북자를 만나서 인사를 하고 혹시 그 집사님 성함이 ○○○ 아니냐고 물었다. 그분은 그 이름을 듣더니 눈이 똥그래져서 나를 보며 어떻게 그분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분께 집사님이 어떻게 되셨는지 계속 여쭈었더니 자초지종을 들려주었다. 그 집사님은 감옥 안에서도 복음을 열심히 전하다가 기독교 간첩으로 소문이 나서 결국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셨다고 했다. 너무나 안타까운 소식에 나는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강연하신 분과 나는 한동안 눈물지으며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며 집사님을 함께 추억했다. 비록 이 글에서도 공개적으로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봉사와 수고를 베푼 집사님이시지만 주님께서는 기억하시고 큰 상급으로 보답하시리라···. 지금도 그분의 사랑을 생각하며 혹시나 살아계실지 모르는 집사님의 안위를 위해 기도한다. 66. 중국 땅에서 백인 선교사님을 만나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나를 영적으로 인도해주셨던 집사님의 북송 소식을 듣고서 나의 마음은 크게 낙심되었다. 그렇게 별 기력 없이 해야 할 일만 하면서 지내고 있는데, 같이 성경공부 하던 한 탈북자 동생이 나에게 북한 출신 엄마를 잃어버린 고아들과 아이들을 돕는 좋은 분이 계신다면서 만나보면 격려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초청을 했는데 오시기로 했던 조선족 선생님뿐 아니라 또 다른 사람이 함께 오셨다. 머리가 노랗고 피부는 하얀데 털이 복슬복슬하고 콧대가 높은 서양 사람이었다. 전에 이런 외국인을 본 일이 없었을 뿐 아니라 북에서부터 서양 사람, 특히 미국 사람은 악한 사람, 승냥이로 배웠던 것이 생각이 나서 너무 무서웠다. 그런데 그 무서운 사람이 나를 보고는 “안녕하십니까?”라고 했다. ‘조선말을 할 줄 알다니···’ 너무 깜짝 놀란 나에게 그분은 “저 나쁜 사람 아닙니다”라고 하며 웃었다. 당황스러웠지만 조선말을 잘하는 것을 보고 나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분들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내 깜짝 놀란 모습이 아니라 식탁 위에 놓여 있었던 성경책이었다고 한다. 그분들은 그 책을 보고 내가 신앙 안에서 더 성장하도록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그분들과 교제하게 되면서 나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분들은 나에게 신앙 교육도 해 주셨을 뿐 아니라 어려운 우리 살림에 보태라고 딸 아이 생활비도 지원해주시고 쌀도 가져다주셨다. (한국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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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 때의 내 신앙환난 때의 내 신앙(다니엘 12장 1~13절) 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자가 자기의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원히 살아 계시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7절)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천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기다려서 천삼백삼십오 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10~12절) 이 시대를 살면서 지금 코로나 유행병으로 인해 국민들이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경제가 바닥에 허물어지면서 인간관계도 단절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가 하나님 앞에 대면예배마저 제지당하는 입장이 되어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신앙인으로서의 말이나 행동이 하나님을 실망시키고 여러 가지로 기대를 어긋나게 해드렸기 때문에 당하는 시련으로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모든 교회가 각성분발하며 회개운동을 일으킬 때입니다. 민족이 회개함으로 하나님께 용서받으면 하나님께서 이 모든 오늘의 불행을 회복의 역사를 통하여 영적인 기쁨이 넘치게 하시고 경제도 다시 활성화되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에게 원인을 돌리고 원망이나 불평을 할 것이 아니라 나부터 먼저 하나님 앞에 솔직히 자신의 신앙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애통하며 철저히 회개해서 모두가 각자의 죄를 온전히 용서받을 때 회복의 날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앞당겨지게 될 줄 믿습니다. 이 시간 바벨론 포로 시절에 많은 환난 속에서도 순교적 신앙의 정절을 지켰던 다니엘과 그 친구들의 믿음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1) 다니엘의 신앙의 정절 오늘 본문에 다니엘이라고 하는 사람은 그 이름 자체가 ‘하나님은 나의 재판장이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그 이름의 뜻대로 하나님이 자기의 재판장이신 줄로 생각하며 아무리 어려운 환난과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육신의 생명까지 하나님의 뜻에 의탁하고 믿음의 정절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당시 유대나라가 신앙이 변질되고 하나님께 불순종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을 일으켜 유대나라를 B.C 605년에 1차 침공하게 하셨습니다. 그 때에 많은 포로를 잡아갔는데 소년이었던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과 아벳느고도 함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과 친구들은 느부갓네살 왕의 수종드는 소년들로 선발되었습니다. 그래서 왕이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고 또한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넉넉히 먹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벨론제국 세력 확장을 위하여 여러 나라를 정복하고 강탈해서 빼앗아 온 불의한 것들임을 알았기에 그들은 신앙 정절을 지키기 위해 왕이 제공한 음식과 포도주를 거절합니다. 오히려 채식만 먹어도 왕의 음식을 먹은 다른 소년들과 비교해서 전혀 손색이 없도록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을 믿으며 환관장에게 열흘 동안 시험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결국 다니엘이 말한 대로 왕의 음식을 먹은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게 나타나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주셨습니다. 이것은 이들이 온전히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2) 다니엘을 높이신 하나님 5장에서 보면 벨사살 왕이 그의 귀족 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 술을 마시며 신들을 찬양하고 있을 때에 연회장 벽에 손가락이 나타나서 글자를 쓰는 것을 보고 박사들을 불러서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글자를 읽지 못하며 해석도 하지 못하자 벨사살 왕이 크게 번민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다니엘이 부름을 받아 왕 앞에 나와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영감적 계시로 그 글자가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글자를 보여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하나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곧 죽게 될 것이라고 하는 뜻이었습니다. 결국은 그 꿈을 해몽함으로 해서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이 셋째 치리자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다리오 왕이 즉위했을 때 다니엘은 용모가 준수하고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다니엘을 시기하여 죽일 계획으로 한 금령을 세우고 다니엘을 모함하게 됩니다. 결국 다니엘은 규례를 어긴 죄로 사자 굴에 들어가 사자 밥이 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사자 굴에 던져진 다니엘을 사자들의 입을 봉해 머리카락 하나 상하지 않도록 안전하게 지켜주셨습니다. 다니엘이 사자굴 안에서도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믿음의 정절이 육신이나 주변상황이나 어떤 권력 앞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하나님 절대주의 신앙으로 믿음의 정절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절대 신앙으로 사는 사람은 아무리 세상 시대와 형편이 바뀌어 간다 할지라도 그런 것에 굴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영적인 믿음을 알차게 가꾸어서 하나님께 인정받고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3) 다니엘이 본 환상 다니엘은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에 대해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4절)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이것은 이 시대처럼 인류역사 이래로 사람들의 이동이 가장 짧은 기간에 먼 곳을 왕래하고, 또 TV나 인터넷 그 외에 여러 가지 전자기기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지식이 넘쳐나게 전달되고 있는 때일 것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이 환상을 봅니다. “나 다니엘이 본즉 다른 두 사람이 있어 하나는 강 이쪽 언덕에 섰고 하나는 강 저쪽 언덕에 섰더니 그중에 하나가 세마포 옷을 입은 자 곧 강물 위쪽에 있는 자에게 이르되 이 놀라운 일의 끝이 어느 때까지냐 하더라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자가 자기의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원히 살아계시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5~7절). 이것은 바벨론에게 망한 유대나라가 포로 신세의 불행이 언제쯤 끝날 것이냐 하는 것에 대한 예언으로 일차적으로는 안디오쿠스 에피파네스의 박해의 때를 가리키나 종말론적으로는 말세에 있을 대 환난의 때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3년 반을 말합니다. 42달이고 1260일 이것은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교회를 허물어뜨리기 위하여 핍박과 온갖 악랄한 박해를 가하는 기간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교회가 완전히 깨어지기까지 박살난다는 것입니다. 안디오쿠스 에피파네스는 유대인들을 악랄하게 박해를 하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도록 예루살렘을 쳐들어가 성전과 성벽도 불태웠습니다. 그리고 그 성전 안에 하나님을 경배할 때 쓰인 모든 기물들을 바벨론으로 다 빼앗아 간 적그리스도의 모형을 한 자였습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세상 권력을 가진 정치인들과 또 그 권력의 시녀가 되어서 상대국 신앙과 종교를 말살시키려고 하는 사탄의 세력들이 동시에 역사했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니엘이 듣고도 깨닫지 못하여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나이까?(8절) 하고 질문을 했을 때 예수님이 ”다니엘아 갈지어다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라“(9절)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그 당시도 일차 실행되겠지만 이중적 예언이고 또 종말론이기 때문에 이 세상 역사가 끝날 때도 똑같이 되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한다는 것입니다(10절). 악한 자는 자기 죄악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심판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멸망을 재촉하며 하나님 앞에 무서운 형벌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회개하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하늘나라 갈수 있는 믿음을 가꾸기 위하여 자신을 더 정결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권면의 말씀) 본문에서 다니엘이 본 환상 가운데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이 권력을 잡고 세상을 지배하여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게 한다’(11절)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도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환난과 핍박의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신앙이 환난 때에 어떤 믿음을 보여주겠는가를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는 믿음들이 되시고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아무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믿음의 정절을 지켜 나갑시다. 이 모든 환난의 때를 타개하고 극복하면서 끝내 승리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이 실현될 때에 영생의 상급을 보장받게 될 것입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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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나의 어머니, 김해선 권사님!나의 어머니, 김해선 권사님! 최 점 식 목사 길부교회 나의 어머니의 일생(1933년 9월 9일~) 어머니는 경북 군위군 의흥면에서 무남독녀로 어렵게 살아온 전형적인 가난한 농민의 딸이었다. 어머니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고 홀로 계시는 아버지 밑에서 살아오셨다. 그러면서도 바느질을 배워, 동네 어르신들의 옷과 버선도 만들어 드리며 살아오셨다. 손재주가 남달라 동네 어른들로부터 사랑과 칭찬을 많이 받으셨고, 아버지를 정성으로 섬기며 집안일도 어머니를 대신하여 잘 해내셨다. 그러던 어느 날 군위 우보 5일장에 다녀오신 외할아버지께서 당시 15세인 어머니에게 시집이라도 가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그렇게 자신보다 아홉 살이 많은 내 아버지를 만나 16세의 어린 나이에 5남매 중 장남과 결혼하여 시부모님과 함께 경북 군위군 우보면 이화동 1189번지에 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행복한 신혼의 꿈을 뒤로한 채 아버지는 군 입대를 하셨다. 남편도 없는 시집살이는 쉽지 않았고, 가정 형편 또한 넉넉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조금의 불평도 하지 않으셨고, 부모님께는 효도하고 형제들과는 우애를 다지며 힘든 환경 속에서 살아오셨다. 그러던 중에 농촌에서의 삶이 어려워지자 대구 산격동으로 이사를 하셨다. 생각해보니, 도시로 이사를 나온 것은 어머니의 커다란 용기였다. 지금도 종종 이러한 결단이 없었다면 내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도시의 생활이 시작됐으나, 별 직업이 없었던 아버지께서는 시장에서 리어카로 채소장사를 하면서 가정의 생계를 꾸려나가셨다. 동시에 어머니께서는 우리 4형제를 공부시키시기 위해 40대 초반의 나이에 식당에서 일을 하셨다. 그리고 어릴 때 배워둔 삯바느질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셨다. 어린 내가 봐도 두 분은 참으로 열심히 사셨고,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두 분의 모습이 지금 우리 형제들의 성실과 부지런함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믿음의 가문을 일구어내신 어머니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세 들어 살던 곳의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전도를 받아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교회를 다니면서 나 혼자만 예수님 믿지 말고 어머니도 함께 믿게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어머니를 설득했고 하나님의 은혜로 어머니도 40대에 처음 교회에 나가시게 되었다. 어머니는 평소 몸이 좋지 않으셨는데, 교회를 다니신 후로 건강을 회복하며 하나님의 큰 은혜를 체험하셨다. 하지만 제사 문제 등을 이유로 주위 친척들의 심한 반대가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믿음이 성장하면서 제사를 없애고 추도 예배를 드릴 것을 제안하셨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들이 예수를 믿게 해야 했다. 어머니는 기도하면서 최선을 다해 가족들을 전도하셨고,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우리 4형제도 교회에 출석하게 됐다. 그 후 우리는 형편이 나아지면서 새로운 집으로 이사도 하게 되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우리 형제들은 모두 중·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었으나, 시장에서 채소를 운반하시던 아버지께서 갑자기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셨다. 하루아침에 우리 집은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나 아파 목이 메어 온다. 아버지 없이 우리끼리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하는 생각에 불안한 마음이 점점 더 커졌다. 어머니는 그때부터 식당 일 등 돈이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고 밤낮으로 일하셨다. 어머니의 희생으로 우리 형제들은 굶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었다. 온 가족이 힘든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았으니,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장남인 나는 집안을 위해 사업을 시작했고 사업체를 운영하게 됐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업의 길이 아닌 목회자의 길로 인도하셨고, 신학의 길을 걸어가고자 마음먹었을 때도 어머니는 반대하지 않으셨다. 지금은 우리 4형제 중 2명이 목사로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 지난날 불신자의 가정에서 목회자가 배출되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비록 농촌목회와 자비량 선교사의 길을 걷고 있으나 최선을 다해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어머니의 희생으로 무사히 고등학교를 입학하게 된 것이다. 입학 당시, 입학등록금이 없어 어머니는 끼고 계시던 금반지 세 돈을 팔아 입학등록금을 마련해주셨다. 또 2012년 어머니의 팔순 때, 어머니께서는 동생들은 모두 좋은 차가 있는데 장남인 내가 목사이면서도 소형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며, 그랜저 3.0을 구입해 주셨다. 섬유공장에 다니시면서 모아두신 돈으로 새 차를 사주신 것이다. 나의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는 사실을 70대를 바라보며 다시금 느끼고 있다. 현재 어머니는 경산에 거주하시는데 지금도 아들이 오면 커피를 손수 끓여주시며, “부모는 한 번 죽으면 다시 볼 수 없는데, 내가 살아있으니 커피라도 끓여준다”라고 말씀하신다. 아들로서 어머니에게 해드린 것이 한 가지 있다면 6년 전에 아내와 함께 의논해서 지금의 아파트로 모신 것이다. 다만, 더 해드리지 못해 항상 죄송한 마음이다. 부모 없는 자식이 어디 있겠는가? 자녀들에게 모범이 되신 어머니 어머니는 지난 1988년 88세로 세상을 떠나신 할머니를 수십 년간 모신 결과로, 1997년 5월 8일 어버이날에 대구광역시장으로부터 ‘장한 어버이상’을 수상하셨다. 이는 우리 가문의 영광이었다. 또 2020년 9월에는 아버님이 6·25 참전 국가유공자란 사실을 인정받게 되어 너무나 감격해하시기도 하셨다. 어머니는 지금은 89세로 연로하시지만, 40여 년간 출석하신 교회의 권사로서 주일예배, 삼일기도회, 금요구역예배 등 경산에서 대구까지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다니시는 모습에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언젠가 교회 화장실을 청소하시다가 락스가 눈에 들어가서 고생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교회 관리집사님도 있었지만 더러운 화장실을 그냥 볼 수 없어서 청소하셨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그런 분이시다. 어머니는 지금도 교회 어르신들에게 옷을 만들어 드리고, 봉사하시며, 길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신다. 국가에서 받는 노령연금과 자녀가 드리는 용돈으로 십일조, 감사헌금, 선교헌금을 내시며 교회 권사로 그 의무를 다하시니 아들로서 부끄러운 것밖에 없다. 아무쪼록 남은 삶 건강한 몸으로 계시다가 언젠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조용히 천국 가실 수 있도록 기도한다. 60대 중반에 있는 큰아들을 마치 어린아이로 생각하시는 것을 보면 부모의 마음이 어떠한지 가히 짐작해 본다. 나의 어머니 살아계실 동안에 건강하세요. 존경합니다. ▲2021년 2월 설날에 어머니(뒷줄 왼쪽 세 번째)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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