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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군, 벌목 후 천덕꾸러기 되는 아까시나무의 재발견벌목 이후에는 마땅한 사용처가 없어 천덕꾸러기로 전락하는 아까시나무가 고향 사랑을 일깨우는 ‘친환경 상패’로 거듭나며 주목받고 있다. 아까시나무는 벌꿀을 제공하고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상수리나무보다 두 배 높아 환경 보호를 위한 가치는 높지만 목재로는 활용도와 경제성이 떨어졌다. 칠곡군은 지난 2월부터 적당한 간격을 유지해 나무를 잘 자라게 하는 간벌 작업으로 베어진 아까시나무를 활용해 친환경 상패를 제작했다. 기존 금속과 아크릴 재질로 만들어진 상패는 재활용은 물론 소각이 어렵고 이름과 소속 등의 개인정보가 새겨있어 버리기도 쉽지 않았다. 또 패를 넣었던 겉면을 천으로 감싼 상자를 해체해서 버리는 일 또한 만만치 않았다. 김재욱 칠곡군수는 이러한 문제점을 발견하고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아까시나무로 눈길을 돌렸다. 칠곡군이 제작한 친환경 상패는 간벌 작업으로 기증받은 아까시나무를 3개월 이상 건조 과정을 거친 후 상패 크기에 맞게 절단한다. 또 레이저로 목재 표면을 태워 글자가 잘 지워지지 않고 음각으로 각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며 보관 상자 대신에 친환경 에코백을 사용했다. 이와 함께 지역 아까시나무를 활용하고 대통령의 연하장 글씨체로 유명한 칠곡할매글꼴을 사용해 칠곡군 홍보와 애향심 고취에도 한몫하고 있다. 칠곡군으로부터 아까시나무로 제작한 상패를 받은 주민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한광수 칠곡군테니스협회장은 “상패에 담겨 있는 특별한 의미와 처음 받았을 때 감촉이 매우 좋았다”며 “테니스협회에서도 아까시나무를 활용한 상패 제작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재욱 군수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고 환경에 대한 중요성을 알리는 것은 물론 지역에 대한 애착심을 높이기 위해 친환경 상패를 제작했다”며 “산불로 베어진 나무가 화력발전소 땔감으로 쓰여 탄소 배출이 가속화되는 문제가 있다. 친환경으로 재활용되는 방안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칠곡군은 아까시나무 상패 제작과 함께 출력물 대신에 TV 화면을 보고 매체로 이용하는‘종이-ZERO 스마트 보고’를 시행하는 등 친환경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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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친화도시 구미시, ‘찾아가는 꾸러기 놀이기획단’ 운영구미시(시장 김장호)는 3월 4일(토) 오후 2시 낙동강체육공원 등 관내 어린이놀이터 6개소에서 2023년 ‘찾아가는 꾸러기 놀이기획단’ 운영을 시작했다.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 구미시는 14명의 놀이기획단을 양성해 상반기(3월~5월)와 하반기(9월~11월) 동안 놀이터를 이용하는 모든 아동을 대상으로 사방치기, 굴렁쇠 굴리기, 제기차기 같은 전래놀이뿐 아니라 파라슈트, 원마크, 황새뱁새와 같은 응용 놀이프로그램 운영으로 아동의 놀 권리 증진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상반기 놀이기획단은 산동읍 골드클래스아파트, 임오동 오태중앙어린이공원, 광평동 화신놀이터, 지산동 낙동강체육공원, 진미동 동락공원, 인동동 별빛공원 등 6개소의 어린이놀이터에서 매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2시간 동안 운영된다. 박경하 사회복지국장은 “찾아가는 놀이기획단 운영으로 아동들이 신나게 뛰어놀고 사회성과 협동심을 기를 수 있기를 바라며, 지속적으로 놀 권리를 증진시킬 수 있는 다양한 놀이 프로그램을 개발해 아동이 행복한 아동친화도시 구미를 만드는데 더욱 힘쓰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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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 2022년 전문강사 초빙 아동권리교육아동권리강사 및 놀이활동가 역량강화를 위해 구미시(시장 장세용)는 2022. 2. 23.(수) 14:00 구미시청 3층 상황실에서 아동권리강사 및 놀이활동가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역량강화를 위한 『2022년 전문강사 초빙 아동권리교육』을 가졌다. 이날 교육은 세이브더칠드런 동부지부 소속 김근희 강사를 초빙하여 아동학대예방 및 아동권리 보호에 대한 이해를 주제로 진행했고, 새롭게 활동하는 아동권리강사 6명에게 위촉장을 수여했다. 구미시는 아동 인권에 대한 공감대 형성과 아동권리 옹호 분위기 확산을 위해 아동권리강사를 양성, 관내 52개교 초등학생과 시민에게 『찾아가는 아동권리교육』을 실시해 오고 있으며, 올해에는 마을돌봄터에도 확대 운영할 계획이다. 아울러, 전래놀이 등 건전한 놀이문화 확산을 위해 전래놀이지도사 자격증을 소지한 놀이활동가를 양성, 어린이놀이터를 찾아가서 아동과 함께 하는 『구미시 꾸러기 놀이마당』을 운영해 100여 종의 전통놀이를 전파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게 된다. 장세용 구미시장은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춘 구미시 아동권리강사와 놀이활동가로서 아동 인권보장과 옹호 분위기 확산에 적극적인 활동을 바라며, 아동권리 증진을 위한 정책 발굴에 더욱 힘써 아동이 행복한 유니세프 인증 아동 친화도시 정착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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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 꾸러기 놀자학교」 활성화 방안을 위한놀이활동가 하반기 평가 간담회 개최 하반기 활동보고, 노하우 공유 및 한 해 활동 성과 격려 놀 권리 증진을 위한 놀이활동가 운영 활성화 방안 논의 구미시(시장 장세용)는 12월 1일(수) 3층 상황실에서 놀이활동가 20명이 참석한 가운데「구미시 꾸러기 놀자학교」 활성화 방안 논의 및 하반기 성과보고를 위한 간담회를 개최하였다. 올해 구미시의 주력사업인 「구미시 꾸러기 놀자학교」는 읍면동에서 추천받아 선정된 어린이놀이터 6개소(고아읍 초롱공원, 남통공원, 사곡동 물꽃공원, 오태중앙어린이공원, 구평동 별빛공원, 옥계 도담공원)를 대상으로 매주 토·일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운영되었다. 시는 안정적인 놀자학교 운영을 위해 「놀이활동가 신규 양성과정」을 개설하여 14명이 전래놀이지도사 전문자격증을 소지하게 되었으며, 기존 활동가를 포함한 20명이 올 한 해 동안 2,000여 명의 아동을 대상으로 100여 종의 우리 놀이를 전파하는 등 활발히 활동하였다. 지난 4월에는 아동의 놀 권리 증진과 놀이문화 정립을 위해 구미시장이 구평동 별빛공원을 직접 찾아 [1일 놀이활동가, 장쌤을 이겨라] 프로그램에 “놀이활동가”로 활약하며 아동들에게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제기차기, 굴렁쇠 굴리기, 팽이치기 등 요즘 접하기 힘든 전래놀이를 전수하여 현장에 참여한 아동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구미시는 8월 상반기 간담회를 통해 팀별 성과 보고, 팀별 자랑대회, 노하우를 공유하는 시간을 통해 애초에는 아동을 대상으로 시작된 놀이가 횟수를 거듭할수록 호응이 좋아 하반기에는 아동과 부모가 함께 참여하여 즐기는 가족 단위의 놀이로 자리 잡았다. 이번 하반기 간담회는 활동에 대한 평가보고 및 내년도 활동 방안에 대한 허심탄회한 개인의견 발표 등 한 해 동안 안전하고 신나는 놀자학교 운영을 이끈 놀이활동가 상호 간 격려의 시간이 되었다. ‘구미시 꾸러기 놀자학교’는 각 놀이터에 배치된 놀이활동가와 함께 팽이치기, 고무줄놀이, 비석치기, 사방놀이, 줄넘기, 실뜨기, 제기차기, 고무신 맞추기, 달팽이 놀이와 같은 우리 놀이를 즐기며 신나게 놀 수 있는 프로그램 놀이로 아동의 두뇌발달, 상상력, 성취감, 창의력, 표현력, 집중력 등을 키우고 협동심, 배려심은 물론 예술적 감성과 미래 역량을 향상할 수 있다. 장세용 구미시장은 “코로나 19로 인해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사용하며 집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아동들이 『구미시 꾸러기 놀자학교』를 통해 잠시라도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를 바란다. 지역 내 놀이문화 확산으로 아동들이 바른 인성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놀이 환경을 조성하고 관련 정책을 발굴·추진하도록 하겠다”라며 당부사항을 전했다.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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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시 숲꾸러기, 올바른 쓰레기 배출문화 조기교육숲꾸러기 학생, 학부모 30여 명 자원순환시설 현장견학 김천시(시장 김충섭)에서는 김천시 숲꾸러기 단체 30여 명을 대상으로 올바른 쓰레기 배출문화의 조기교육을 위한 재활용선별장, 소각장 등 자원순환시설을 현장견학을 시행했다. “숲꾸러기”는 학생들과 학부모로 구성된 환경보전과 생태보호 봉사단체로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해 자가문진, 열체크를 마친 후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한 상태에서 견학이 진행됐다. 먼저 재활용선별장을 찾아 각 가정에서 배출한 재활용품이 어떻게 선별되어 자원으로 활용되는지 확인하고, 환경사업소 내 소각장으로 이동하여 우리가 버린 종량제봉투에도 자원으로 재활용이 가능한 품목이 분리되지 않고 마구 버려져 소각되는 현장을 눈으로 확인했다. 견학에 참여한 학생들은 재활용 선별과정과 생활쓰레기 소각과정, 분리배출요령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질문하는 등 열띤 참여를 보였고, 김선주 회장을 포함한 학부모들은 견학에 만족하며 견학 확대를 기대했다. 김동진 자원순환과장은 “견학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이 올바른 쓰레기 배출문화를 주도하고, 나아가 품격 있는 김천을 만들 미래세대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예진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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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도 별이 됩니다.이정우 목사 안동서부교회 인생에 있어 만남은 축복이며 행복입니다. 진흙도 하나님을 만나 사람의 모양으로 빚어져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니 생령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때 복과 영생을 얻게 됩니다. 그곳에서 행복은 자라나게 됩니다. 지음 받은 우리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바뀝니다. 좋은 만남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병이 물을 만나면 ‘물병’이 됩니다. 물병이 꽃을 만나면 ‘꽃병’이 됩니다. 비어 있는 병이 꿀을 만나면 ‘꿀병’이 됩니다. 통에 물을 담으면 ‘물통’이고, 쓰레기를 담으면 ‘쓰레기통’이 됩니다. 우리 사람의 마음도 똑같아서 그 안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불만, 시기, 불평 등 좋지 않은 것들을 가득 담아두면 욕심쟁이, 심술꾸러기가 되고, 감사, 사랑, 겸손 등 좋은 것을 담아두면 멋진 사람이 되어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 됩니다. 사람이 가장 만나기 쉽고 채우기 쉬운 것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배우기 쉬운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불평입니다. 불평을 배우는 데는 소질이 전혀 없어도 가능합니다. 불평을 배우는 데는 지식도 필요 없고 인격, 기질, 재능, 지식, 나이, 환경 등이 다 필요 없습니다. 불평은 하면 할수록 더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마력이 있습니다. 불평은 ‘마귀학교’의 가장 중요한 필수 전공과목입니다. 불평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불평한다고 마음이 행복해지지도 않습니다. 불평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나아지지도 않습니다. 불평은 자신에게 상처를 남기고, 다른 사람에게도 상처를 줄 뿐입니다. 그래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유일한 길은 만남을 통해 가능합니다. 상처가 축복이 되고 어두움을 밝히는 별이 된 사람이 있습니다. 영화 ‘로마의 휴일’로 수려한 외모와 매너로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오드리 헵번입니다. 그녀에게는 깊은 상처가 있었습니다. 부모의 이혼과 전쟁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히틀러가 고향 마을을 점령했을 때 우울증과 영양실조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인생에 반전이 찾아온 건 1950년입니다. 그녀는 마리오 덴비 감독의 눈에 띄어 단역으로 데뷔한 뒤 최정상 배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기 절정기에 그녀는 세상 명예와 쾌락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을 만나 어린이 구호에 앞장섰습니다. 1987년 헵번은 유니세프의 특별대사로 지명되자 영화배우보다 구호 활동이 더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전쟁터의 아이들을 돌보았으며,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아들에게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매혹적인 입술을 갖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러운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의 좋은 점을 보아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네 음식을 배고픈 사람들과 나눠라. 아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으면 네가 결코 혼자 걷지 않음을 명심하며 걸으라. 사람들은 상처로부터 회복돼야 하며, 고통으로부터 구원받아야 한다. 결코 누구도 버려져서는 안 된다.” 햅번은 성경적인 자세로 삶을 살아냈습니다. 헵번에게 부모의 이혼과 전쟁은 상처였지만 하나님을 만남으로 다른 사람의 어둠을 밝히는 스타가 됐습니다. 우리의 상처(scar)도 별(star)이 되는 길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상처도 별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다면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길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단12:3)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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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출애굽기(5)나의 출애굽기(5) 드보라 14. 남편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다. 지난날을 생각해보면 고난이 유익이라는 고백이 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흘러나온다.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북한에서의 일들도 그 당시에는 괴롭고 끔찍한 일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픔 속에 절망한 나를 구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다. 지난 이야기에서 나누었던 것 같이 친부모와 가족들에게는 천덕꾸러기였던 나지만 남편과는 사이가 좋았고 큰 사랑을 받았다. 남편을 통해 채움 받으려고 했다. 아마 남편이 계속 함께 있었다면 나는 절대 탈북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은 성품도 보통의 북한 사람처럼 우락부락하지 않고 속 깊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절대적으로 먹을 것이 부족했던 그 어려운 상황을 이겨냈다. 15. 시댁에 불어닥친 줄초상 그러던 어느 단옷날이었다. 명절이라고 친척들이 셋째 시형네 모였다. 우리 집은 막내였다. 사실 고난 행군의 기근이 시작된 이후 우리 시댁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첫째 시형네는 아이가 무엇을 잘못 먹었는지 정신이 이상해져서 고생하다가 죽었다. 슬퍼할 새 없이 시형도 배고픔에 풀을 뜯어 죽을 쑤어먹다가 배앓이를 해서 일주일 만에 못 일어나고 돌아가셨다. 가정이 풍비박산 났다. 가정의 비극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첫째 시형께서 돌아가시고 2개월 후에 둘째 시형이 돌아가셨다. 농장에서 감자농사를 했었는데 너무 먹을 것이 없어서 감자 껍질 발라먹다가 결국 영양실조로 사망했다. 집안에 줄초상이 났다. 멀리 있던 우리를 포함한 다른 형제들은 깊은 촌에 살아서 제때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장례에 가보지도 못했다. 알았다면 없는 살림이지만 조금이라도 도왔을 텐데… 비통하고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집안에 어려운 일이 있다 보니 일단 남은 형제들이 단옷날을 맞아서 모이긴 했지만, 흥이 날 리가 없었다. 그렇게 우울한 분위기 속에 원체 술을 좋아하는 집안이라 그래도 없는 살림에 명절이라고 어디서 술을 구해왔다. 남은 세 형제가 술을 마셨는데 남편을 제외한 나머지 두 분 시형은 술버릇이 고약했다. 넷째 시형은 술만 먹으면 동네 사람을 패고 다니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고 다섯째 시형은 밖으로 돌아다니지는 않았지만 대신 아내를 팼다. 고약한 술버릇 때문에 문제가 많았다. 이번에도 오랜만에 가족끼리 술자리가 만들어진 데다 집안에 안 좋은 일이 많았던지라 금세 술잔이 비워지고 다들 얼큰하게 취하셨다. 그런데 그때 고약한 버릇대로 넷째 시형이 또 동네 거리로 박차고 나갔다. 우리 남편은 형님이 또 누구와 싸우는 건 아닌가 싶어서 급하게 따라나섰다. 그러고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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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출애굽기(2)나의 출애굽기(2) 드보라 5. 외할아버지에 대한 회개 기도 나는 한국에 왔을 때 ‘가족 중에서 내가 처음으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남한에 와서 사는구나, 집에서 따돌림 왕따 차별받았는데 내가 드리어 쓰임 받는구나!’라고 생각했었다. 성경을 읽으면서 나는 특히 요셉 이야기에 감정이입을 많이 했다. 그리고 형제들에게 버림받았지만 결국에는 크게 되고 쓰임 받았던 요셉과 같이 하나님께서 가족들에게 사랑받지 못했던 나를 요셉과 같이 이끄신다고 믿었다. 그렇지만 모임에서 목사님이 보여주신 책 사진을 볼 때 하나님은 나를 깨우쳐 주셨다. 바로 외할아버지의 기도와 헌신이 나를 하나님께로 인도했고, 이 땅에 오게 했고, 통일의 비전을 꿈꾸게 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자는 중에 꿈인지 환상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중에 생생한 장면 하나를 보았다. 김일성 초상화를 바닥에 엎어놓고 무릎 꿇고 엎드려 예배하는 외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생생하여 나는 벌떡 잠에서 깨었다. 내 눈에서는 눈물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나는 내가 사랑받지 못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형제들에게 버림받았던 요셉인 줄 알았는데, 그리고 나중에 가족을 구원할 믿음의 첫 사람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 핍박 속에서도 기도하셨던 할아버지의 기도가 나를 살게 했다. 나야말로 외할아버지의 눈물의 기도 열매였고, 정말 큰 사랑을 받은 사람이었다. 사실 전혀 사랑받을 자격 없었던 내가, 어릴 적부터 질투와 욕심, 짜증만 부리던 자였던 내가 그 사랑을 받았다는 감동에 나는 회개와 감사의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고난 중에 가족에게도 나누지 못한 채로 그렇지만 믿음을 지키신 외할아버지를 생각하며 눈물로 고향을 위해 기도했다. 내 안에 남아있던 쓴 뿌리들이 그 눈물 속에 씻겨져 나갔다. 안타깝게도 그 당시에는 그러한 사실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6. 북한에서의 학창시절 그 당시 북한은 그래도 경제 사정이 괜찮았다. 어릴 적만 해도 먹고 사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김일성 수령을 신으로 받드는 북한의 교육과 사상통제 안에서 하나님을 모르고, 아니 하나님을 모욕하며 살았다. 나도 역시 김일성 수령을 민족의 어버이요 신과 같은 존재로 믿고 그렇게 살아왔다. 외할아버지의 눈물 어린 기도가 있었는지 전혀 모른 채, 사람이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임은 꿈에도 알지 못한 채 살았다. 나는 여전히 가족들은 날 미워한다 생각하며 심술을 부리면서 그렇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갔다. 집과 학교의 이중생활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항상 집에서는 말썽꾸러기, 천덕꾸러기였지만 학교에서는 공부 잘하는 상당히 성실한 학생이었다. 그 당시 학교에서는 외국어로 2개 반을 운영했다. 러시아어 반과 영어 반이었는데 나는 영어 반을 선택했었다. 그 당시에는 영어가 우리가 그토록 증오하는 미제가 사용하는 언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고 그저 영국에서 쓰는 언어라고만 알고 있었다. 배웠던 영어 발음도 영국식이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6학년 졸업이 2년 남은 4학년 때부터 시험을 보고 경연을 해서 뛰어난 학생들을 추렸다. 그리고는 그 학생들을 따로 모아서 공부를 시켰다. 북한의 학교가 여기서 말하는 비평준화 같은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학교 체면이 중요하다 보니 좋은 대학을 많이 보내려고 했다. 내가 있던 학교는 한 학년에 약 200~300명 정도 됐는데 그중에 1반 정도를 수재반으로 따로 구분을 시켰다. 7. 딸의 교육을 반대하신 아버지 나는 평소 좋은 학업 성적 덕분에 그 반에 들어가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집에서는 내가 공부하고 또 대학 가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아버지의 머릿속에 여자 대학생들은 ‘집안 살림은 안 하고 입만 여물어서 남자를 깔보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러시아에서 돌아오신 뒤에 배치받은 직장은 외부 출장이 잦았는데, 출장 다니시면서 여자 대학생들을 이리저리 지나칠 기회들이 많으셨다고 한다. 그렇게 요즘도 그렇지만 그 당시 아버지 세대에는 남존여비사상이 심했다. 아버지는 그래서 공부에 대해 부정적이셨고 집에서 생활 살림이나 잘하라고 하셨다. 집에서 공부를 못하게 해서 나는 숙제도 학교에서 다 해서야 귀가할 수 있었다. (오픈도어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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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출애굽기(1)나의 출애굽기(1) 드보라 1. 어린시절 우리집 나의 아버지는 동네 유명한 깡패였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를 보더니 홀딱 반해서 따라다니다가 나중에는 억지로 결혼하자고 했다고 한다. 단순한 억지 수준이 아니라 결혼 안 해주면 집에 해코지 하겠다고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우리 어머니는 반면에 그 당시 여자들이 가기 힘든 대학도 나오신 분이었고 외할아버지도 해외에 유학을 다녀온 학식 있는 집안이었기에 길길이 뛰면서 반대를 하셨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너무 무섭고 겁이 나서 할 수 없이 아버지와 결혼을 하셨다. 이렇게만 이야기가 이어졌다면 매우 안타까운 일일 뿐이지만 다행히 아버지는 결혼 후에 마음을 고쳐먹으셨다. 결혼한 순간부터 싸움을 그만두고 깡패 친구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항상 잘해주셨다. 아버지는 직장으로 한 화학 공장에 다니셨다. 그 공장은 살인무기를 만들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공장이었다고 기억한다. 인체에 나쁜 매연과 환경 때문에 건강이 계속 나빠지셨다. 그렇지만 마음대로 직장을 옮길 수 없는 군수품 공장이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으셨다. 그러다가 선택한 방법이 바로 벌목공으로 해외 노동을 하러 가는 것이었다. 비록 몸은 고되다하지만 3년 정도만 일하고 오면 다른 곳으로 배치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위험을 무릅쓰고 벌목공으로 지원해서 가셨다. 낯설은 타향의 추운 지방에서 콧구멍에서 얼음을 뜯어내면서 당과 수령을 위해 온몸 바쳐 충성했다. 2. 노동력을 착취당한 아버지 아버지가 해외로 간 후 우리 가족은 시골 외갓집으로 이사를 갔고 그 후로 계속 거기서 살았다. 언니와 동생들은 해외의 추운 곳에서 고생하는 아버지에게 위로와 격려의 편지를 써서 한 달에 한 번씩 아버지에게 보냈다. 그렇지만 나는 무슨 심술이었는지 한 번도 편지를 안 썼다. 돌이켜보면 예쁜 짓 사랑스러운 짓을 한 번도 안 했다. 벌목공으로 가셨던 아버지는 3년 만에 돌아오셨다.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우리 가족은 충격에 빠졌다. 가기 전에는 건장하고 듬직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몰라보게 핼쑥해졌기 때문이다. 진하게 검었던 아버지의 머리카락은 물이 맞지 않고, 1년 내내 여름 한번 없는 북극의 추운 지방에서 너무 고생하여서 머리카락이 다 빠져 대머리가 되어 버리셨고 두툼했던 얼굴 살은 다 어디 갔는지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고생해서 일을 했지만 북한 당국의 당자금으로 몽땅 착취당했고, 단 1원 한 푼도 못 받고 러시아 빵 3박스만 가지고 집에 돌아왔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그래도 아버지가 살아서 돌아오신 것을 위안 삼아야 했다. 나는 아버지가 그렇게 고생하고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학교에서 집에만 오면 언니와 동생들과 맨날 싸움박질을 해댔다. 이렇게 나는 학교에서는 공부도 잘하고 칭찬을 잘 받는 모범학생이지만 집에만 오면 천덕꾸러기가 되는 생활을 하며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갔다. 3. 일요일에 수상한 외할아버지 그 당시 우리가 살았던 외할아버지 댁은 함경도 산 속 시골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산에 감자나 밀, 보리 등을 심어서 생계를 유지하며 사셨다. 듣기로는 유학도 다녀오시고 원래는 평양에 계셨다고 한다. 그런데 왜 지금은 이 시골에 계시는지 어린 나로서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상하게 외할아버지는 일요일만 되면 텔레비전을 보고 싶어 놀러 오는 나와 외할머니에게 오전에는 옆집에 가서 놀다가 오라고 보내셨다. 그 날은 꼭 인근에 몇 십리 떨어진 산골짜기의 다른 집에 어른들 몇 분이 와서 회의를 한다고 하면서 오전에는 다른 집에 가서 놀다가 오후에 오라고 하곤 하였다. 우리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가 전처와 사별하고 이후에 재혼하셨다고 했는데 평소에도 순종적인 분이라 외할아버지 말씀에 묻지도 않고 하라는 대로 옆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오셨지만 나는 괜히 불만이었다. 그 당시에는 일요일만 텔레비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봐야 되는데 왜 자꾸 딴 데 가라 하시는지, 빨간 날은 휴식하는 날인데 왜 집에서 무슨 회의를 하는 건지… 궁금은 했지만 워낙 어릴 때라 짜증만 내고 말았다. 4. 크리스천이었던 외할아버지 나중에 탈북을 해서 남한에까지 온 다음에야 나는 왜 외할아버지께서 그러셨는지 알 수 있었다. 하루는 탈북 성도들 모임이 있어서 갔는데 그 모임을 인도하시던 목사님께서 자신이 선교 사역 중에 입수한 북한에서 나온 중국어 성경책을 사진으로 보여주셨다. 한글성경이 아니라 한문으로 기록된 옛날 성경이다. 그런데 그 책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전에 어디서도 그 책을 본 적이 없어야 할 터인데 분명 내가 확실히 본 적이 있는 책이었다. ‘왜일까? 왜 내가 저 책이 낯설지 않을까’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야 나는 그 책이 외할아버지 댁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전에 북에 있을 때 골동품을 밀수해서 팔면 돈을 벌 수 있다고 해서 집에 팔만한 것들을 찾다가 한자가 잔뜩 적힌 책 한 권을 보고 팔려고 했다가 못 팔았었는데, 그 책이 바로 그 사진 속의 책이었기 때문에 확실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확인하자 외할아버지가 일요일마다 나와 할머니를 다른 곳으로 보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 외할아버지도 남모르게 믿음을 지킨 크리스천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외할아버지가 평양에서 함경도 산골짜기로 오게 된 것도 종교적인 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 같다. 다행히 교회 내 주요 인사가 아니셨는지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서 고통을 당하지 않고 생명은 부지하셨지만 추방을 당해 이 산골짜기까지 오셨던 것이다. (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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