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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변하지 않는 것의 가치변하지 않는 것의 가치 김 원 식 목사 숭실대 및 총신신대원 졸업(MDiv) 전 달제교회 시무/경중노회장 역임 우리 시대,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의미와 가치는 무엇일까? 그 대답은 변화무쌍한 삶을 살았던 요셉의 인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총리 9년차인 요셉에게 일생에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왔다. 애굽 왕에게 자신의 가족을 소개해야만 하는 시점이 온 것이다. 총리 권력이 5년밖에 남지 않은 요셉에게 가족들의 애굽 이주는 애굽 왕족과의 혼맥(婚脈)을 통하여 50년 이상 자신의 권력 유지를 가능하게 하는 절호의 기회였다. 권력과 재물을 탐하는 사람한테는 절대 놓치지 않았을 기회다. 그런 상황에서 요셉은 자신의 가족은 조상 대대로 목축업에 종사했으며, 앞으로도 그 일에 종사하겠다는 견해를 왕에게 밝힌다. 왕은 요셉한테 그러면 어디서 살고 싶으냐, 네 가족이 살고 싶은 곳은 어디고 줄테니 원하는 곳을 요구하라고 한다. 그때 요셉은 왕한테 고센땅에 살고 싶다며 그들의 거주지로 고센땅을 달라고 한다. 바로는 이를 허락한다. 고센땅은 애굽의 국경지역으로 가나안과는 가까운 거리이다. 이로써 요셉 가족들은 애굽에서 겪는 변화에 동요되지 않고 혈통을 지키며 그들 삶의 방식을 고수할 수 있게 되었다. 요셉은 ‘우리는 조상 대대로 목축업자였다. 고센땅에 살겠다’는 그 말 한마디로 애굽 왕족으로부터의 결혼 제안 가능성을 차단해버렸다. 요셉의 이 선택은 정말 400년 후를 내다 본 신의 한수였다! 요셉이 고센지역 외에 다른 지역을 선택하였다면 츨애굽이 가능했을까? 그의 이러한 선택은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을 가능케 하는 발판이 됐다. 그러면 요셉의 이러한 시류(時流)에 역행하는 선택,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한 이 선택에 담긴 진실은 무엇인가? 그것은 요셉이 권력과 재물을 소유한 자들과의 관계보다 가나안 땅에 민족을 형성하고 제사장 나라를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뜻, 그 꿈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요셉의 삶의 목적은 아브라함 때부터 4대째 이어져오고 있는 ‘가나안 땅’과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약속을 붙드는 것이었다. 요셉의 이 선택은 애굽 왕의 눈에 요셉이 남들과 다른 삶의 목적이 있는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그렇기에 바로 왕은 요셉을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다는 권력’을 오래 나눌 수 있는 정치 파트너로 삼았다. 이후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장례를 70일 동안 왕이 죽었을 때나 치루는 국장급(國葬級)으로 치른다. 이 시기는 요셉이 총리 권력을 내놓은 지 12년이 지난 후라는 사실을 고려해볼 때, 그때까지도 요셉에게는 권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요셉은 30세 이후 80년 동안 권력자였다. 하지만 요셉에게 권력은 그의 삶의 도구였을 뿐이다. 그는 풍년과 흉년기간 동안 권력이란 도구를 사용해 자신의 가족은 물론 애굽 사람들까지 보호했다. 나라를 융성하게 했다. 이는 요셉이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듦으로 얻게 된 단기효과(短期效果)였다. 변하지 않는 약속을 붙든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이 적힌 창세기에서부터 요셉을 알지 못함을 기준으로 시대의 특징을 나누는 출애굽기를 지나(출 1:8), 자신의 유골을 가나안 땅에 묻어 달라는 요셉의 유언을 실현함으로 끝맺음되는 여호수아 시대까지(수 24:32) 그의 명성이 이어지도록 허락하신다. 이는 변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 요셉이 얻은 장기효과(長期效果)였다. 요셉은 위대한 정치가였다. 우리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이 변화무쌍한 시대에 요셉처럼 ‘변하지 않는 가치(價値)’를 붙들고 흔들림 없이 우리나라 국정을 이끌어 나갈 대통령은 누구인가?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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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합동 총회 농어촌부, 경중노회에 3,000만원 후원오정호 목사, “농어촌교회는 한국교회 부흥의 모판” 격려 ▲(사진1) 오정호 목사(왼쪽)가 경중노회장 추성환 목사에게 후원금을 전달하고 있다.(사진=경중노회 제공) 예장합동(총회장 소강석 목사) 총회 농어촌부가 지난 명절 설을 앞두고 농촌교회를 방문해 격려하는 시간을 가졌다. 농어촌부(부장 오정호 목사) 임원 일행은 1월 29일 경북 의성 철파교회(경중노회장 추성환 목사 시무) 예배당에서 농촌교회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마음을 담아 경중노회에 3,000만원의 후원금을 전달했다. 이날 오정호 목사(대전 새로남교회 담임, 미래목회포럼 대표)를 비롯한 농어촌부 임원들의 의성지역 방문은 도시교회와 도시에서 생활하는 성도들이 고향 교회를 생각하고,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진행됐다. 오정호 목사는 “농어촌교회가 한국교회 부흥과 도시교회 발전의 모판이 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초고령화로 갈수록 피폐해지는 농촌교회를 살리기 위해 도시교회가 공동체 의식을 높이고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밑거름이 되고자 방문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이번 후원금 3,000만원은 오정호 목사가 시무하는 대전 새로남교회에서 기금을 지원, 농촌교회를 섬긴 것으로 알려졌다. 후원금을 받은 경중노회장 추성환 목사는 “농어촌부의 방문과 격려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이 가중된 농촌교회에 큰 힘이 된다”며 “후원금 일부는 지역 복음화를 위해 함께 힘쓰는 경신노회에도 마음을 전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경북 의성은 오정호 목사의 고향으로 알려졌다. 오정호 목사는 주기철목사수난기념관 부지를 둘러보고 함께 기도한 후, 유아세례를 받고 어린 시절 신앙생활을 했던 삼분교회, 모친의 고향 교회인 달제교회를 개인적으로 방문해 추억을 되새기며 교회 관계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오정호 목사 일행이 한국기독교 역사사적지 제4호인 주기철목사수난기념관 터를 방문 한 후 함께 기도하고 있다.(사진=경중노회 제공) ▲이날 방문에는 최동식 목사(농어촌부 서기), 전인식 목사(농어촌부 총무) 등이 함께 했다.(왼쪽부터 이정화 목사, 김상원 목사, 최동식 목사, 오정호 목사, 추성환 목사, 서보율 목사, 이순우 장로, 전인식 목사) (사진=경중노회 제공)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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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일제 36년을 보는 2분법적 시각김원식 목사 의성 달제교회 제국주의가 최고조에 달한 20세기 초, 일본을 비롯 서양의 몇몇 강대국들은 지구 표면적의 80%를 식민지 혹은 보호령의 이름으로 지배하고 있었다. 대영제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영국은 혼자만도 전 세계 인구와 지표의 4분의 1을 포괄하였다. 이는 현재 지구 상에 거주하는 인구 대다수가 식민주의를 경험한 사회에 살았으며 그들의 삶의 많은 부분이 아직 식민 지배가 남겨놓은 족적(足跡)에 의해 영향받고 있다는 말이 된다. 식민 지배는 본질상 협력자를 필요로 한다. 이방인 지배자들은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소수이기 때문에 식민지 통치를 위해서는 반드시 현지인들의 협력이 필요로 했다. 그럼 현지인들 가운데 누가 협력자가 되었을까? 그 가운데는 일신상의 영달을 위해 협조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일부는 외세의 힘을 빌려서라도 자기 사회를 근대의 단계로 끌어올리는 것이 시급하다고 믿었던 근대론 자들도 있었다. 식민주의가 ‘문명과 야만’이라는 구도를 가지고 주변 국가에 침투해왔을 때 조국의 근대화를 갈망하는 지식인들은 식민주의가 수반한 근대의 이상에 현혹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무작정 식민주의에 협력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주저하는 협력자’들이었다. 이들 지식인은 식민주의자들의 근대성을 일정 부분 받아들이면서 그들을 적절히 이용하고 통제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길이 조국을 위한 길이라고 확신했다. 그들의 낙관적 이상은 결국 허상임이 판명되었지만, 당시 상황에서 그들은 그 길이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그 길을 갔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친일파 문제는 자주 정치적 맥락(脈絡)에서 제기되고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친일파라고 일괄적으로 매도당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분명 ‘주저하는 협력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일제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인들 가운데 자신과 가족을 희생하고 독립 투쟁에 헌신하는 영웅적 삶을 살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식민주의가 가져다주는 근대적·물질주의적 혜택에 매료되어 일제의 지배를 찬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 양극단(兩極端) 사이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식민시기 일상사(植民時期 日常史)’가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식민 지배에 대해 다양한 대응과 입장이 있었음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이것 아니면 저것 식의 이분법적 인식에 길들어져 있어 일제시대를 바라볼 때도 이런 흑백론 시각이 압도적이다. 그러나 식민시기에 있었던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을 외면하고, 이분법적 시각으로만 일제 36년을 바라보면 우리의 사고는 경직(硬直)하게 된다. 경직된 사고는 사물의 중층적면(中層的面)을 보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에 국론 분열은 여전(如前)하게 된다. 매사에는 시(是)가 있으면 비(非)가 있는 법이다. 그렇기에 시와 비를 함께 보고 사안을 파악하는 안목이 절대 필요하다. 인간 사회는 복잡성(複雜性)과 복합성(複合性)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삶을 복잡다단(複雜多端)한 과정에서 때로는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인간의 삶을 이분법으로 두부 자르듯이 잘라 이거 아니면 저거라고 단순화시킬 수 없다. 일제 36년을 살은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다원적 시각에서 한 인물의 생애 전체를 조망하지 않고 일정 단계의 행위만을 문제시하는 것이나, 공(功)은 인정하지 않고 과(過)만 강조하는 것은 올바른 접근법이 될 수 없다. 그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난 후에 일제시대에 대해 포괄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이를테면 윤치호(尹致昊)의 경우, 그는 조국의 독립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교육과 계몽이 급선무하고 확신했다. 그 일에 일제가 제공할 수 있는 이기(利器)를 이용하려 했다. 그것은 간과한 채 친일 행위만 부각시키는 것은 그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이 아니다. 민족주의자였던 그가 그것으로 옥고까지 치른 사람이 어떠한 사상적 궤적(軌跡)을 통해 민족주의로부터 친일에 이르렀는지 제대로 알려 하지도 않고 아주 간단히 그를 친일파로 치부해버린다. 우리는 일제 36년을 이분법적 단순 선(線)에서 벗어나야 한다. 역사는 단선적(單線的) 하나의 역사가 아니라 서로 상충하고 모순되기도 하는 복수의 역사로 이루어진다. 단순함으로는 인간 사회도 인간 역사도 바로 이해할 수 없다. 색깔은 검은색과 흰색만 있는 것이 아니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 여러 색이 있다. 이분법적(二分法的) 해석이 명쾌해 보이고, 올곧은 사람으로 보인다는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이분법에서 벗어날수록 이제껏 보지 못한 측면이 드러나게 되고 타인에 대한 이해와 관용도 깊어진다. 그때 우리 사회 증오와 갈등은 해소되고 화합의 길로 가게 될 것이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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