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최선을 다하는 삶이 정 우 목사 안동서부교회 어느 96세 된 할아버지와 92세 된 할머니가 결혼 7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결혼 70주년 기념’이란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인터뷰에서 아나운서가 할아버지에게 짓궂은 질문을 했습니다. “할아버지, 만일에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도 할머니와 결혼하겠습니까?”라고 물었더니, 할아버지는 가만히 있다가 “좀 생각해 봐야겠는데요.”라며 대답이 시원치 않았습니다. 다음은 할머니에게 아나운서가 물었습니다. “할머니,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길이 있다면 다시 할아버지와 결혼하겠습니까?” 했더니 대답이 전혀 달랐습니다. 할머니의 대답은 “내가 돌보아 주어야죠.”였습니다. 할머니는 내가 사랑한다 안 한다, 다시 결혼한다 안 한다가 아니라 저 사람에겐 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할머니의 대답, “내가 돌보아 주어야죠” 바로 이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이라는 말처럼 어려운 말이 없습니다. 사랑이 에로스냐 아가페냐 이건굉장히 중요한 철학적 이론입니다. 그러나 또한 쉽게 분류하자면, 에로스라는 사랑은 항상 나를 중심으로 합니다. 나를 위해서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고, 나에게 당신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너를 돕고 있으며, 사랑의 이름으로 상대방을 괴롭히기도 합니다. 사랑의 이름으로 남편을 못살게 하기도 하고, 사랑의 이름으로 아내를 힘들게 하기도 합니다. 모든 사랑이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가페란 사랑은 내가 사랑하는 그 상대방에게로 중심이 옮겨가고, 그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그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1장을 보면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에게 주님이 동일하게 세 번 질문하는 광경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 앞에 베드로는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십니다”라고 답을 합니다. 사랑하는 그것마저도 당신이 아신다는 것입니다. 욥기 23장 10절에 보면“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란 욥의 고백이 나옵니다. 욥의 고백은 “나의 운명, 나의 현실,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이 아신다”는 겸손한 고백입니다. 이와 같이 베드로도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고백은 이젠 주님께서 나의 충성을 아시고 나의 최선의 사랑을 아신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제부터 생명 바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란 고백입니다. 최선이란 집중하는 것입니다. 딴생각 없이 자신이 하는 일에 온 마음과 정성을 쏟는 것입니다. 혹이라도 불평, 원망, 불만스럽게 생각하면 그것은 최선이 아닙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얼마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즐겁게 생각하고 했느냐, 또 주어지는 기회마다 감사한 마음으로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시간에 대하여, 건강에 대하여, 지식에 대하여, 기회에 대하여, 주어진 능력에 대하여 얼마나 최선을 다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인생을 다 살고 나서 주님 앞에서는 그날, “너는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라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그 두려운 질문을 가슴 깊이 담아야 합니다. 여러분! 업적이나 실적, 성적이 좋으냐 나쁘냐, 몇 등이냐 하는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문제는 얼마나 최선을 다했느냐 하는 이것이 인생을 질적으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양적인 것을 묻는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묻고 있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했느냐?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느냐?” 여러분! 주님 앞에 갔을 때 우리가 내놓을 수 있는 대답이 무엇이겠습니까? 주님 앞에는 실적이나 업적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어진 현실 여건 속에서 얼마나 최선을, 충성을, 사랑을 다했느냐 그것을 물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함으로 하루하루 승리의 삶을 살아내시기를 축원하며 권면드립니다.
-
구미여성연합회, ‘2024 세계기도일예배’“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엡4:1-7)는 주제로 열린 ‘2024 세계기도일예배’가 구미지역에서는 지난 3월 8일 선산제일교회당에서 구미시기독교여성연합회 주관으로 열렸다. 세계기도일예배는 세계 180여 개국 기독 여성들이 세계 평화와 화해를 위해 매년 3월 첫째 금요일에 동시에 같은 기도 제목으로 진행하는 예배이다. 올해는 팔레스타인이 주최국이 되어 예배문을 작성했으며, 팔레스타인교회 여성들의 문제와 사회문제 등을 위한 기도제목들이 공유되었다. 구미지역에서도 교단과 교파를 초월한 여성 기독인들이 정해진 시간에 모여 한마음으로 뜨겁게 기도했다. 예배는 구미시기독교여성연합회장 강수경 권사의 인도로 드렸으며, 세계기도일 소개 영상, 팔레스타인 소개 영상, 기도문 낭독과 침묵기도, 응답송, 설교, 중보기도, 함께 드리는 기도, 결단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설교에서 박태경 목사(선산제일교회)는 “팔레스타인은 현재 전쟁으로 인해 고통 속에 있다. 우리가 그 땅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품고 기도하면 주의 은혜가 임할 줄 믿는다”라고 전했다. 중보기도 시간에는 전쟁, 불평등, 폭력, 억압으로 고통당하는 전세계 여성들을 위해, 팔레스타인 지역에 전쟁이 종식되기를 위해, 우리나라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기도했다.
-
왜 이단에 빠질까?천 석 길 목사 구미남교회 빠진다는 말은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덫이나 함정에 떨어져 인생을 망친다’라는 뜻입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던 멀쩡한 사람이 어느 날 이단에 빠져서 자신과 가정을 망치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교회에 오래 다녔고, 사회적으로도 똑똑하고, 심지어 교회에서 중직까지 받은 분이 이단에 들락거리다가 망신을 당하는 꼴불견을 볼 때가 있습니다. 왜 이단에 빠질까요? 이단에 빠지거나 신앙에서 멀어지는 사람들은 첫째로, 불평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필요 이상의 높은 기준으로 지도자나 교회에 대해서 끝없이 불평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마귀의 밥이 되거나, 이단들이 노리고 접근할 때 너무 쉽게 넘어집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전혀 모범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만 모를 뿐입니다. 둘째로, 정서적으로 불안한 사람들입니다. 이단에 잘 넘어지는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 사랑에 목말라 있습니다. 평소에 다른 사람들과 폭넓게 잘 어울리지 못해서 소수의 몇 사람과만 친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누군가가 자신에게 접근하면서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거나 필요 이상의 칭찬을 해줄 때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쉽게 넘어갑니다.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라면 이단이 전하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들으려고 안 할 터인데 논리에 관계없이 감성에 흔들려서 이단으로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성경의 지식이 없기 때문에 이단에 빠진다는 사실입니다.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치고 성경을 진지하게 읽었거나 묵상이 생활화되어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교회만 다녔을 뿐 말씀을 진지하게 내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여 무늬만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무아지경으로 몰아넣는 어떤 종교적인 행위를 신앙으로 착각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단에 빠지게 됩니다. 건강한 신앙은 말씀을 올바르게 해석합니다. 말씀으로 나 자신을 발견할때 함부로 다른 사람을 폄하하지 않게되고, 말씀이 나를 이끌어 가기에 허탄한 생각에 빠지거나 엇길로 갈 이유가 없습니다. 믿음은 말씀의 터 위에 우리 인생의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그러하기에 교우들에게 ‘삶공부’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
【이현세 목사】 - 오직 예수님이 현 세 목사 예장통합 경서노회 직전노회장 황금동교회 담임 초대교회는 은과 금은 없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대교회는 은과 금은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없어졌습니다. 교회는 예수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에는 예수님만 보여야 하고, 예수님의 이름만 있어야 됩니다. 마태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셔서 변모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나고 옷이 빛처럼 희어졌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말씀을 나누셨습니다. 너무나 황홀한 광경을 본 베드로는 “주여 여기가 좋사오니 주님을 위해, 모세를 위해, 엘리야를 위해 초막 셋을 짓겠나이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자 홀연히 빛난 구름이 덮이며,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두려워 엎드렸고, 예수님이 일어나라고 해서 눈을 들어보니 모든 것이 사라지고 예수님만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유일한 구세주이십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분입니다. 우리를 푸른 초장과 맑은 시냇가로 인도해줄 수 있는 유일한 목자이시고, 우리의 영육의 질병들을 깨끗이 치유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의원이십니다. 그러므로 2024년 새해에는 오직 예수님으로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으로 살아가려면 첫째는, 사람을 보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와 엘리야는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나라를 세우게 한 건국자이고, 율법의 전수자입니다. 엘리야는 선지자 중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렇게 존경하는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같이 있는 것을 본 제자들은 감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만 남고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존재라도 결국은 사라지지만, 예수님은 영존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 올 때 사람을 보지 말고 오직 예수님만 보아야 합니다. 사람을 보게 될 때, 교회가 왜 이래? 저게 목사야? 저게 장로야? 그렇게 비난하고 정죄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앙에도 회의감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 때문에 교회를 떠나가게 됩니다. 목사도, 장로도 그럴 수 있고, 우리 모두도 그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와서는 완전한 사람을 찾지 말고 완전하신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둘째는, 환경을 보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변화산 위에 초막 셋을 짓고 예수님과 엘리야와 모세와 함께 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일어나 보니 그 좋은 환경이 보이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 보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환경이 좋으면 교만해지고, 환경이 좋지 못하면 불평하고 원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면 환경이 좋으면 좋아서 감사, 좋지 못하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을 믿기에 감사를 합니다. 예수님만 바라보고 참고 견디면 하나님은 반드시 좋은 환경을 주십니다. 셋째는, 신비한 것을 보지 말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신비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신비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신비주의에 빠지면 안 됩니다. 내가 신비를 체험한 장소나 내게 신비를 체험케 한 그 사람에게 집착하면 안 됩니다. 그 사람이 내게 은혜를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사람을 통해 내게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비를 쫓으며 신앙생활 하지말고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는 신앙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율법의 모세, 예언의 엘리야, 복음의 예수님이 모두 계시는 오늘의 변화산이 어디일까요? 그곳은 바로 교회입니다. 여러분은 교회 와서 예배드릴 때마다 모세도 만나고, 엘리야도 만나고, 예수님도 꼭 만나시길 축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 보지 말고, 환경 보지말고, 신비도 찾지 마세요.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만 찾으세요. 그래서 새해에도 더욱 성숙한 신자, 훈련된 제자, 선교의 정예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경북 이웃돕기 사랑의 온도탑 ‘100도 돌파’경북도민들의 이웃사랑 정신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경북 이웃돕기 사랑의 온도탑 온도가 1월 15일 기준 100도를 돌파했다. 이는 지난 12월 1일 경북도청 앞마당에서 「경북 희망 2024 나눔캠페인」 출범식과 사랑의 온도탑 제막식을 시작으로 한 달 반 만에 이룬 성과다. 국내외 경기 악화가 지속되어 경북도 목표인 164억 6천만원을 조기에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어려울수록 더 힘을 모으는 경북도민의 정신이 빛을 발하여 1월 15일 기준 100.1도인 164억 7천만원을 모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이번 경북 성금은 기업 기부자 48%, 개인 기부자 52%로 개인이 모금에 많이 동참하였으며 개인 기부의 경우에도 몇 명이 주도하는 고액 기부보다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십시일반의 성금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미담 사례로 안동시 이00(85세) 어르신은 1년간 빈 병을 모아 판 돈 15만원과 자녀들 용돈 30만원을 보태어 총 45만원을 기부하였고, 상주시 김00(80대) 어르신은 5년간 모은 동전 5,864개, 70만 780원을 기부한 사례 등 주위를 훈훈하게 하는 미담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전우헌 경북공동모금회장은 “이번 캠페인의 슬로건인 ‘기부로 나를 가치 있게, 기부로 경북을 가치있게’ 처럼 도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 있는 손길이 경북 사랑의 온도를 뜨겁게 달구어 목표를 초과 달성할 수 있었으며, 캠페인 기간 동안 보여주신 경북도민들의 관심과 사랑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2024년에도 이루어진 이웃사랑의 기적처럼 사회 곳곳에 희망의 불씨가 일어나길 바라며, 어려운 여건에서도 뜨거운 온정을 전해주신 기업·단체 관계자와 도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한편, 모여진 성금은 경북 도내 사회적 불평등 완화, 지역사회 복지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다양한 복지사업을 추진하여 소외 이웃과 복지시설 등을 위해 전액 지원될 예정이다. 경북은 서울, 경기, 충남에 이어 전국 4번째로 모금액이 높은 지역으로, 매년 연말 나눔캠페인 모금액이 목표액 대비 100% 이상을 달성하는 등 전국 최고의 나눔 지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도내 유일···‘구미형 신생아 집중치료센터’ 생긴다구미시는 경북 지역 고위험 신생아들이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구미형 신생아 집중치료센터(NICU)’개소를 추진 중이다. 신생아 집중치료센터는 고위험 신생아 치료를 담당하는 의료시설로 사망률이 높은 모든 신생아, 즉 고위험 신생아에게 안정적·계속적 진료를 제공해 치료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다. 시는 신생아 집중치료센터 운영을 통해 전국적으로 전문의가 부족해 심각한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고위험 산모와 신생아에게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만혼으로 산모의 나이가 많아지고, 조산 산모의 증가, 인공 임신 시술에 따른 다태아 증가 등으로 고위험 신생아의 출생이 매년 증가하고 있으나, 민간 의료기관에서는 첨단장비와 전문인력이 요구되는 신생아 집중치료센터 설치가 필요함에도 경영적자를 이유로 설치‧운영을 기피하고 있으며, 경북에는 전무한 실정이다. 구미시는 출생아 수를 증가하는 정책과 함께 신생아의 생존율을 높이는 의료시설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고위험 신생아 진료를 위한 의료체계 구축으로 신생아 집중치료센터 개소를 발빠르게 준비하고 있다. 시는 센터 운영에 소요되는 인건비(의사, 간호사) 70%를 지원하며, 의료기관은 전문인력‧시설‧장비 등을 투입해 신생아 집중치료 기능과 역할을 수행한다. 이달 중으로 신생아 집중치료실(NICU)을 5병상 이상 운영할 수 있고, 365일 응급분만 가능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보조 사업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2022년 합계출산율이 0.82명을 기록하며 매년 감소하고 있는 저출산 위기 상황에 구미시는 365 소아청소년 진료센터를 개소해 시민의 삶의 질 향상에 힘쓰고 있으며, 특히 수도권 쏠림의 의료 인프라 불균형 상황에서 지역 격차 감소를 통해 경북도민의 건강 불평등 해소에 앞장서고 있다. 앞으로 시는 민간 의료기관과 연계‧협력해 지속적으로 의료 인프라를 확충하고, 진료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소아 필수 의료체계 구축을 위한 구미시의 역할을 끊임없이 찾고 있으며, 365 소아청소년 진료센터에 이어 신생아 집중치료센터까지 더 촘촘한 의료안전망을 강화해 진정한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 안전한 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의료기관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했다.
-
【이현세 목사】 - 범사에 감사하라이 현 세 목사 예장통합 경서노회 직전노회장 황금동교회 행복지수와 국민소득을 보면, 행복지수가 경제지수에 달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경제 선진국에 들어섰지만,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 1위이고, 이혼율은 아시아에서 1위입니다. 자살과 이혼은 불행한 삶에서 나타나는 가장 뚜렷한 현상들입니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행복지수가 낮아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감사지수가 낮기 때문입니다. 행복지수와 감사지수는 비례합니다. 따라서 행복하려면 감사지수를 높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 20절에는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감사함에 있어 두 가지 수식어가 앞에 붙어 있는데 ‘범사’와 ‘항상’이라는 단어입니다. 범사는 ‘어떤 형편에 있든지, 어떤 일을 당하든지’라는 뜻이고, 항상은 ‘시종일관, 변함없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범사에 항상 감사하는 것은 남에게 권면은 쉽지만, 막상 내 문제가 되면 어렵습니다. 아니, 불가능하게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가능한 것을 말씀하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순종할 수 있는 것만 명령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범사에 항상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엇이든 보면 됩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긍정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정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긍정적인 사람은 무슨 일을 만나도 감사합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사람은 무슨 일을 만나면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그러면 누가 긍정적으로 보고 감사할 수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우리 주 예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가능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푸른 초장과 맑은 시내가 보입니다. 캄캄한 절망 속에서도 태양처럼 솟아오르는 희망이 보이고, 가난 속에서도 부요가 보이고, 실패 속에서도 성공이 보입니다. 슬픔 속에서도 기쁨이, 불행 속에서도 행복이 보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는 사람은 어떤 상황이든 시종일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범사에 항상 감사하려면 견고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불행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이 항상 나를 안고 계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좌절하고 근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감사할 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감사할 대상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사랑은 세상 어떤 것도 끊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랑이 나를 붙들고 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내게 선을 이루어주시는 분’(롬 8:28)이십니다. 따라서 감사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최악의 환경에 놓여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를 최선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임을 믿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려면 내가 겪은 고난을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청교도들이 신대륙에 와서 그해에 추수감사절을 지켰을 때, 그들은 평안했기 때문에 감사했던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와서 성공했기 때문도 아니고, 풍요롭게 추수해서도 아닙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난을 겪었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진정한 감사는 번영과 자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성공과 형통, 승리와 영광에서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난, 절박한 상황에서 진정한 감사가 나옵니다. 불행의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서 작은 행복 때문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당했던 고난을 잊어버리지 말고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를 회복하시는 성도 여러분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
감사가 축복입니다.이 정 우 목사 안동서부교회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에게 한 가지를 요구하셨습니다.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동산의 모든 실과는 먹되 그 중 선악과를 먹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결코 어려운 요구가 아니었음에도 그들은 거역하였고 그 결과 인류에게 죽음이 왔습니다. 그 후에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요구하신 명령과 규례가 있습니다. 이 규례의 핵심은 3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라. 둘째, 하나님을 섬기라. 셋째, 하나님을 사랑하라.”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요구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해답은 성경에 있습니다.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신 10:13).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명령과 규례를 주신 것입니다. 그 명령과 규례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사도 바울 또한 성도의 행복을 위해서 3가지를 권면했습니다. “첫째, 항상 기뻐하라. 둘째, 쉬지 말고 기도하라. 셋째,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이 권면은 기뻐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감사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신앙의 시금석입니다. 감사는 축복의 씨앗이며, 행복의 열매입니다. 감사 또한 성도의 행복을 위한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의 차이는 신앙의 핵심인 감사에 달려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행복은 성공보다 더욱 가치가 있습니다. 이 세상의 돈, 명예, 권력을 가진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감사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요, 성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딤전 4:4) 이 말씀은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아픔, 고통, 상처, 배신까지도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상황을 감사함으로 받을 수 있는 열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관점과 해석입니다.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긍정의 결과물인 감사가 되기도 하고, 부정적 결과물인 불평이 되기도 합니다. 요셉은 자기를 판 형들 때문에 13년의 시간을 애굽에서 아픔과 고통 가운데 보낸 후 바로의 꿈을 해석하게 됨으로 애굽에서 총리가 됩니다. 그러던 중 흉년과 기근으로 요셉의 형들이 곡식을 구하러 애굽에 왔습니다. 이 때 형들은 총리가 된 동생으로 말미암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요셉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형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요셉은 “형님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형님들보다 먼저 보내신 것입니다.”(창 45:5)라고 고백합니다. 요셉은 과거의 아픈 사건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새롭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의 비유가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 둘째 아들을 대하는 아버지의 태도와 첫째 아들의 태도는 정반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똑같은 상황인데 보는 관점과 해석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이 차이가 감사와 불평을 가져옵니다. 그러니까 감사를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럴수록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까지 감사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 사는 인생입니다. 이 사실이 믿어진다면,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이미 축복을 누리고 사는 사람입니다.
-
책 소개: 질그릇 속에 담긴 은혜(저자-이희준)다섯 번 죽음의 고비를 넘긴 이희준 목사, 그 믿음의 간증록 책소개 ❙ 사도 바울에게는 자신을 괴롭히는 질병이 있었다. 그는 그것을 육체의 가시라고 표현했다. 이희준 목사에게도 가시가 있었다. 간경화, 그는 살면서 다섯 번 피를 토했다. 그는 이런 시련을 주신 하나님을 원망했었다. 하지만 다섯번 죽음의 고비 끝에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다. 그의 가시는 고난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되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4:7) - 도서출판 닻별 -
-
신앙의 틀을 바꾸라이 정 우 목사 안동서부교회 심리학은 우리 마음이 얼마나 많은 착각과 오류, 오만과 편견, 실수와 오해로 가득차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이런 허점들이 ‘프레임’이라는 마음의 창에 의해 생겨남을 증명해 줍니다.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는 “건물 어느 곳에 창을 내도 그 창만큼의 세상을 보게 되듯이, 우리도 프레임이라는 마음의 창을 통해서 보게 되는 세상만을 볼 뿐이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프레임을 통해서 채색되고 왜곡된 세상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의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본다는 뜻입니다. 프레임은 하나의 틀로서, 한마디로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 세상의 모든 사건들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 나의 생각인 것입니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고정관념, 가치관, 인생관, 신앙관 등 모두가 나의 프레임 속에서 나온 것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행동과 말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프레임을 통해 그 사람의 내면의 정보들을 드러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신앙의 색깔을 갖고 있는가는 믿음에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신앙의 틀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보는 관점도, 선택되는 단어도, 접근하는 방법도 다릅니다. 인간의 프레임은 그 동기와 목적이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자기중심의 편견과 야욕에서 비롯된 이기주의적 발상이며, 현실 도피적이며, 심지어 샤머니즘의 색채를 띠고 있습니다. 이렇듯 자기중심의 프레임이 깨어져야 더 크고 더 넓은 믿음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출애굽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프레임을 갖고 당당하게 가나안 땅으로 전진했어야만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육지처럼 건너간 백성들입니다. 이런 크고 놀라운 능력의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프레임을 갖도록 전무후무한 기적을 체험케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프레임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눈을 가져야 할 때, 세상의 눈으로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과거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했던 종의 프레임을 갖고 미래의 축복의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의 언어는 항상 부정적이었으며, 희망과 미래를 잊고 원망과 불평으로 일관했습니다. 잘못되고 왜곡된 프레임을 갖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프레임을 바꾸면 인생이 바뀌어집니다. 신앙의 프레임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꾸면 모든 것이 감사요,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에서 전도하다가 붙잡혀 관리들에게 끌려가 성을 요란케 하며 로마인이 받지도 않고, 행하지도 않은 풍속을 전한다고 고발되어 옷이 벗겨지고 매를 맞고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어두운 감옥에서 아픔 가운데 찬송하며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바울의 신앙의 프레임이 우리의 틀과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아마 우리였다면 “하나님, 전도했는데 이게 무슨 대접입니까?”라고 원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생각과 언어와 행동이 달랐습니다. 이처럼 성경의 많은 인물들은 우리가 닮을 수 없는 프레임을 갖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요셉, 모세, 다윗, 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엘리야, 엘리사, 예레미야 등이 그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끝으로, 최 박사가 상위개념의 프레임을 갖기 위해 제안한 것 중에 5가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①의미중심의 프레임을 가져라. ②비교 프레임을 버려라. ③긍정의 언어를 사용하라. ④닮고 싶은 사람을 찾아라. ⑤장소가 아닌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중요한가를 알라. 우리는 어떠한 상황과 처지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건강한 신앙의 프레임을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Warning: Illegal string offset 'use' in /home/jane82850/public_html/theme/wide01/mobile/skin/search/basic/search.skin.php on line 138
Warning: Illegal string offset 'skin' in /home/jane82850/public_html/theme/wide01/mobile/skin/search/basic/search.skin.php on line 139
Warning: Illegal string offset 'use' in /home/jane82850/public_html/theme/wide01/mobile/skin/search/basic/search.skin.php on line 138
Warning: Illegal string offset 'skin' in /home/jane82850/public_html/theme/wide01/mobile/skin/search/basic/search.skin.php on line 139
Warning: Illegal string offset 'use' in /home/jane82850/public_html/theme/wide01/mobile/skin/search/basic/search.skin.php on line 138
Warning: Illegal string offset 'skin' in /home/jane82850/public_html/theme/wide01/mobile/skin/search/basic/search.skin.php on line 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