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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우 도지사, 첫 해외 세일즈 시동… 중국 시장 공략민선 7기 경상북도의 글로벌 행보가 주목된다. 이달 초 제1차 한-러 지방협력포럼을 성공적으로 개최 해 러시아 극동지역에 교두보를 확보한데 이어 이번에는 중국 시장 공략에 나선다. 이철우 경상북도지사를 단장으로 한 경상북도 대표단은 26일(월)부터 12월 1일(토)까지 중국 베이징(北京)과 후난성(湖南省)을 방문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한편 경북도 세일즈에 가속도를 낸다. 경상북도 대표단은 먼저 26일(월) 베이징을 찾아 세계한인무역협회(OKTA) 중국지회 대표들을 만난다. 이 자리에서 이 지사는 지역 상품의 중국 진출 확대를 위한 업무 제휴협약을 체결하고 중국 시장 진출확대 방안에 대해 논의한다. 세계한인무역협회(OKTA)는 한국의 경제발전과 수출촉진을 위해 활동하는 재외동포 최대 경제인 단체로 세계 72개국 141개 지회에 7천여 명의 재외동포 CEO들과 차세대 경제인 2만여 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국 내에는 25개 지회, 2천여 명의 정회원, 7천여 명의 차세대 회원이 활동 중이다. 이어 대표단은 베이징에서 개최되는 경북 수출상담회를 방문해 지역 기업 관계자를 격려하고 중국 바이어들에게 도내 상품의 우수성을 홍보 하는 등 경북 세일즈 활동을 펼친다. 이번 수출 상담회에는 도내 중소기업 15개사가 참가한다. 아울러, 현지 투자가를 상대로 중국 투자자본 유치를 위한 투자유치설명회도 개최한다. 이 자리에서 경북도는 도내 우수한 관광산업 인프라와 관광․레저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중국 기업의 도내 투자에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임을 밝힌다. 다음날인 27일(화)에는 한국 7개, 중국 12개 광역지자체 단체장이 참석하는 ‘제2회 한중지사성장회의’에 참석한다. 이 자리에서 이철우 도지사는 경북도의 우수한 문화 및 관광자원을 설명하고 양국 지방정부 간 교류 활성화와 문화․관광교류 확대를 위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할 계획이다. 한중지사성장회의는 한국과 중국 지방정부 간 교류 활성화를 위해 한국 시도지사협의회와 중국 인민대외우호협회에서 공동 주최하는 회의로 지난 2016년부터 양국에서 격년으로 열리는 한중 지방외교의 대표적인 행사다. 이날 지사성장회의에 참석하는 양국 대표단은 리커창 총리 등 중국 고위급 간부와 면담하고 양 지방정부 간 협력 활성화 방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이어 29일(목)에는 후난성(湖南省)으로 이동해 이철우 도지사와 쉬다저(许达哲) 성장이 참석한 가운데 자매결연을 체결한다. 후난성은 1994년 후난성 왕우린 당서기가 경북도를 방문 한 이후 활발한 교류를 이어오는 지역으로 중국 남동부 내륙 지역의 물류․비즈니스 허브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번 자매결연 체결로 경북도는 중국 남동부 진출 거점을 확보하는 한편, 특히 한류 메카로 알려진 후난성에 화장품 등 한류 관련 상품의 진출 확대가 기대된다. 이후 자리를 옮겨 후난성 창사시 윈다 쉐라톤 호텔에서 경북도 대표단, 후난성 정부 공무원, 주우한총영사, 현지 여행사 대표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상북도 테마 관광을 주제로 한 ‘경북관광 홍보 설명회’도 갖는다. 이철우 경상북도지사는 “이번 중국 방문은 최근 2~3년간 사드 등 대․내외 여건으로 다소 주춤했던 중국과의 교류협력을 다시 본궤도로 올려놓는 계기가 될 것”이라 강조하며 “앞으로 지역 기업의 해외 진출을 확대하고 지방외교 역량 강화를 통해 경북도의 국제위상을 높여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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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척곡교회(한기총 문화재 등록 제1호)척곡교회 창립 110주년 기념예배 및 임직식이 지난 14일 오후 3시 봉화군 법전면 건문곤길에 위치한 척곡교회에서 안동과 영주, 봉화 등 인근 지역에서 참석한 100여 명의 내빈과 성도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1부 예배는 척곡교회 박영순 전도사의 인도로 박종근 목사(춘양시찰장)의 기도 후, 풍기 성내교회 최갑도 목사가 '선한 청지기'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어 전 총회 역사위원장 정재훈 원로목사와 전 총회 헌법위원장 임만조 장로(안동), 봉화교육지원청 교육장 김종길 장로(풍기성내)의 축사 후, 김재홍 사무총장의 기념사, 이유영 장로(영주시민)의 격려사가 있었다. 축가순서에서는 척곡교회 김영성 장로(92)의 피아노 반주로 다함께 ‘선구자’를 제창했다. 2부 순서에서는 당회장 류재록 목사의 집례로 홍성진 집사 및 김재식 집사의 안수집사 임직식이 있었다. 이어 류재록 목사가 서약, 안수기도 후 안수집사가 된 것을 선포했다. 박영섭 목사(서벽)와 영주노회장 김성하 장로(봉화제일)의 권면, 천정명 목사(전 노회장, 옥방교회)의 축사, 임직패 증정이 이어졌다. 특송 시간, 면부(面部)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척곡교회 어린이 찬양대의 아름다운 찬양이 있었다. 홍성진 집사는 “신앙 선배들이 일구어 놓은 자랑스러운 교회를 낮은 자세로 받들어 섬기겠다”고 소감을 밝혔다.김재식 집사는 “역사는 깊으나 일꾼이 없는 교회의 임직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알고 최선을 다해 섬기겠다”고 말했다. 김영성 은퇴장로는 “생애 마지막 기념예배가 하나님께 영광, 지극히 작은 교회 교우들에게 희망과 보람을 준 것 같으며, 여러분의 지원 또한 고맙다”고 감사를 표했다. 한편, 척곡교회는 총회사적 제3호, 영주노회 사적 제1호, 한기총 문화재 등록 제1호,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제257호, 경상북도 지방문화재 자료 590호로 매우 귀한 사적지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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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영주 발전에 매진하겠습니다”장욱현 영주시장은 22일 영주시의회 ‘제 230회 제2차 정례회’에서 가진 시정연설을 통해 내년도 시정운영 방향을 제시했다. 장시장은 “영주시는 올해 첨단베어링국가산업단지 후보지 선정 등 지역 경제의 획기적인 전환점 마련한 데 이어 첨단베어링클러스터 국가 산업단지가 최종 지정될 수 있도록 전 행정력을 집중하고, 동서횡단철도 조기 착공, 중앙선 복선전철 사업 조기 완공에도 온 힘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 분야를 비롯해 영주시 농업도 달라진다. 인천문학경기장 내에 영주한우식당을 개소한 데 이어 연말에 소비지 유통센터를 열어 수도권 직거래 시장 확보에 나서고, 일손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외국인 계절근로자, 농기계 임대사업소를 확대 도입․운영한다. 또 2022 풍기세계인삼 EXPO를 유치, 녹색농업치유단지, 6차 산업 관광지구 조성에도 나선다. 부석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고, 웰니스 관광 25선에 국립산림치유원이, 국립공원 힐링로드 10선에 죽계구곡이 선정되는 등 문화관광 인프라로 주목받은 데 이어 내년도에는 선비문화․힐링관광 도시 조성에 힘쓴다. 소백산 산악레포츠단지, 삼판서 고택~문화예술회관 무지개 다리, 한국문화테마파크(선비세상), 영주댐 어드벤처 공간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경북 최초 아동친화도시로 인증받은 영주시는 아동친화정책과 복지을 한층 강화한다. 유아숲 체험원 조성, 영주치매안심 센터 운영, 독거노인 공동거주의 집 운영 등 세대별 맞춤형 정책에 이어 건강가정지원센터 설립, 독거노인 공동거주의 집 확대 운영, 도시재생사업의 내실 있는 추진 등 고령화, 저출산, 도심공동화 문제에 적극 대응한다. 이밖에도 국립인성교육 진흥원 설립, 세계인성포럼 유치, 대한민국 선비대상 시상을 추진하고, 시민 정주환경 개선을 위해 스마트안전거리 확대, ICT기반 방범용 CCTV 설치, 미세먼지 예·경보제를 운영하고, 공용․민영 주차장 확대를 통해 주차난 해소에도 나선다. 또한 행정구역 개편, 시민과 소통․만남의 날 확대 운영 등 시민 맞춤형 정책도 꾸준히 추진한다. 영주시는 이 같은 시정구상과 함께 2019년도 본예산을 금년 대비 9.08% 증가한 7,090억 원으로 편성해 의회에 제출했다. 이번 예산은 시민들의 일자리 창출과 복지 강화, 산업기반 구축 및 중소기업지원, 농업분야 지원 확대 등 시민의 실질적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부분에 중점을 두고 편성했다. 장욱현 영주시장은 "2019년은 영주의 백년먹거리 마련을 위한 중요한 해“라고 전하고, “영주시민 여러분 모두가 ‘더 큰 영주’ 건설을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함께 응원 해주시길 바란다.“고 협조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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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월드휴먼브리지, ‘사랑의 김장나눔’으로 이웃사랑 실천▲왼쪽부터 차례대로 백성옥 영남대학교 부총장, 최영조 경산시장, 김영윤 경산교육장, 경산월드휴먼브리지 김종원 대표 김종원 목사(경산중앙교회 담임)가 대표로 있는 국제구호개발 NGO 경산월드휴먼브리지는 21일 영남대학교 천마광장에서 100여 명의 자원봉사자와 함께 ‘사랑의 김장나눔’ 행사를 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진행된 ‘사랑의 김장나눔’ 행사는 지역의 저소득 가정을 비롯해 복지시설, 단체에 김치를 전달하는 사업으로, 이 행사를 통해 총 2,500포기의 김장김치가 전달되었다. 또한, 이 행사에서는 ‘사랑의 겨울나기’ 난방비 지원금 600만 원이 전달되었다. 이 지원금은 지역의 에너지 취약계층으로 난방비 지원이 꼭 필요한 25가구에 지원될 예정이다. 이번 행사에는 최영조 경산시장과 김영윤 경산교육장, 백성옥 영남대학교 부총장이 참석해 축사 및 김장시연을 했다. 최영조 경산시장은 “매년 이러한 뜻깊은 나눔 행사를 마련해 동절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에 도움이 되어주셔서 감사하다. 앞으로도 경산시민 모두가 희망이 되고 행복이 되는 나눔에 동참할 수 있는 분위기가 널리 퍼져 나가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활동을 부탁드린다” 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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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기업경영 세미나” 개최한국기독실업인회(CBMC) 구미지회(회장 김신기 집사)는 지난 10일(토) 오후 4시 경북교육문화개발원에서 한국CBMC 이승률 중앙회장((사)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 이사장)을 강사로 크리스천 기업경영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는 ‘성경적 경영 원리’를 주제로 기업인·전문인·자영업자·예비창업자들을 초청해 진행됐으며, 대구연합회 이민영 회장을 비롯한 내빈들과 회원이 다수 참석해 ‘킹덤 컴퍼니’의 비전을 재확립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승률 중앙회장은 기독실업인의 지속가능한 발전원리로 ‘BTS(Big-Team Spirit)’를 제시했으며, 이는 “내적 역량 강화, 문샷싱킹, 린치핀(핵심축), 꼭지점 구도를 잘 형성함으로 뒷받침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구체적으로 ‘구제를 통한 복음 전도’,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역’, ‘창조적·긍정적 경영’, ‘인재 경영’ 등을 강조했다. 이 회장은 “기독실업인은 기업을 통해 5,000명분을 벌어서 나 혼자 먹는 것이 아니라 5,000명을 먹이려는 마음을 가져야 물이 포도주가 되는 역사가 우리 일터에서 일어난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편, 한국기독실업인회(CBMC)는 비즈니스 세계가 하나님의 뜻으로 회복되고 변화되기를 추구하는 기독실업인과 전문인들로 구성된 국제적 기독교 단체로, 대구·경북지역에는 구미지회를 비롯해 14개 지회가 조직돼 활동하고 있다. CBMC 구미지회는 2006년 창립되어 ‘킹덤 컴퍼니’를 꿈꾸며 일터 사역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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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보건소, 선산노인대학(선산읍교회 부속)에서 지역주민 심뇌혈관질환예방교육 실시구미시 선산보건소(소장 소지형)은 11월 14일(수) 구미 선산읍교회 부속 선산노인대학에서 심뇌혈관질환예방교육 및 ‘레드서클 자기혈관숫자알기’ 합동 캠페인을 실시했다. 이번 교육은 지역주민에게 심뇌혈관질환예방교육을 실시함으로써 뇌졸중, 심근경색증으로 인한 합병증을 줄이고 질병 부담을 완화시키고자 시행했으며, 동시에 혈압․혈당 측정, 금연 상담, 건강생활실천사업 및 영양교육(싱겁게 먹기 등)을 실시함으로써 선산노인대학 학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선산보건소 오동원 공중보건의사는 뇌졸중과 심근경색증의 증상 및 치료에 대해 쉬운 용어로 설명하고, 강의 후에는 질의응답을 통해 평소 지역주민이 가졌던 의문을 해소하는 시간을 가졌다. 선산보건소 소지형 소장은 “지역주민 심뇌혈관질환예방교육을 통해 지역주민들이 건강관리에 관심을 가지고, 뇌졸중․심근경색증을 사전에 예방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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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노회 제62회기 성경암송쓰기대회 열려예장(합동) 경북노회주일학교연합회가 주최하는 ‘제62회기 후반기 성경암송쓰기대회’가 지난 23일 약목교회(담임목사 강경운) 예배당에서 7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정우혁 집사(회장)의 인도로 드려진 1부 예배는 장철 장로(증경회장)의 대표기도, 윤춘해 목사(교육부, 둔덕)의 ‘복 있는 사람’(시1편)이란 제목의 말씀 선포, 이경용 집사(총무)의 광고, 강경운 목사(약목)의 축도로 마쳤다. 윤춘해 목사는 말씀 선포에서, “참된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다. 악인의 의도대로 따라가지 않고, 죄는 생각지도 않으며, 항상 말씀을 묵상하면서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면 이미 하나님의 복이 임한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진행된 성경암송쓰기대회는 약목교회 본당과 각 교육관에서 진행위원들의 인도에 따라 질서 있게 치러졌으며, 약목교회에서는 700여 명 참석자 전원에게 간식으로 빵과 우유를 대접했다. 이번 대회 참가자들의 성적을 합산한 결과 종합우승은 구미옥계교회, 종합2등은 약목교회, 종합3등은 구미강동교회 순이었다. 각 부문별 1등 수상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초등1부 쓰기: 최지인(구미옥계) ▲초등2부 쓰기: 방은혜(구미옥계) ▲초등3부 쓰기: 강서빈(왜관) ▲초등4부 쓰기: 최예빈(구미옥계) ▲초등5부 쓰기: 강서원(왜관) ▲초등6부 쓰기: 이형준(구미옥계) ▲중등1부 쓰기: 정승환(구미옥계) ▲중등2부 쓰기: 강서정(왜관) ▲중등3부 쓰기: 김빛나(구미옥계) ▲고등1부 쓰기: 박이레(구미옥계) ▲고등2부 쓰기: 이영민(구미옥계) ▲고등3부 쓰기: 심재훈(성주중앙) ▲청년1부 쓰기: 조주은(약목) ▲청년2부 쓰기: 김윤채(약목), 장지언(동명) ▲장년1부 쓰기: 최순천(성주중앙) ▲장년2부 쓰기: 한봉애(일선) ▲장년3부 암송: 김영자(포남) ▲영어암송 초등1,2,3: 홍승현(구미옥계) ▲영어암송 초등4,5,6: 정리온(구미강동) ▲영어암송 중등: 김민아(북삼) ▲영어암송 고등: 장예은(동명) ▲유치1부 암송: 김서은(북삼제일) ▲유치2부B 암송: 문은송(구미강동) ▲유치2부A 암송: 최도현(약목) ▲유치3부B 암송: 모동수(성주중앙) ▲유치3부A 암송: 김하연(구미옥계) ▲초등1A 암송: 정찬율(약목) ▲초등1부B 암송: 권순주(구미동부) ▲초등2부B 암송: 이가영(왜관) ▲◐초등2부B 암송: 라예승(신월) ▲초등3부B 암송: 구자인(구미옥계) ▲초등3부A 암송: 전지윤(약목) ▲초등4부 암송: 성성현(구미옥계) ▲초등5부 암송: 우예진(구미옥계) ▲초등6부 암송: 박다은(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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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기쁨의교회서 “팡팡 초막절 페스티벌” 열려포항 기쁨의교회(담임목사 박진석)는 지난 10월 22일부터 27일까지 ‘팡팡 초막절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초막에서 지내며 과거의 역사와 전통을 되새기며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이스라엘 유대민족의 전통에서 착안한 행사이다. 이번 페스티벌은 성막 모형을 재현하고 방문객들을 위한 해설 활동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행사들이 진행됐다. 기쁨의교회 특별새벽예배 기간에 더하여 각자의 영역에서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는 강사들을 초청하여 저녁 특강을 진행했으며 무교병 만들기, 이스라엘 전통놀이와 의상 체험 등 이스라엘 문화체험 시간도 마련했다. 대구, 울산, 구미, 영덕, 경산, 인천, 미국 등 원근 각지에서 400팀 이상이 성막을 방문했으며 매일 방문한 사람이 있을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기쁨의교회 야외광장에 실제 크기로 재현된 성막 ▲방문한 지역민들에게 성막에 대해 해설하고 있다. ▲재현된 성막의 내부 모습 특히, 초막절 넷째 날과 다섯째 날은 여성들과 포항 주민들을 위한 힐링 마켓으로 ‘시월애 러브스토리 프리마켓’이 열렸다. 다양한 의류, 소품, 먹거리, 유기농 제품, 푸드 트럭 등 30여 팀이 셀러로 참여했다. 거제도에서 이동해 온 푸드트럭도 있었으며 기계면 봉계 지역의 감을 팔던 셀러는 “동네의 감이 다 동이나 감 구하기 어려운 지경”이라며 구매자들과 교회측에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김밥 셀러로 참여한 팀도 교회에 후원금을 전달하며 감동을 나눴다. 특히 금요일 저녁은 야시장으로 운영됐다. 청소년들도 버스킹 공연이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기쁨의교회 야외광장에서 지역민을 대상으로 프리마켓이 열리고 있다. 각종 특강 프로그램도 진행됐다. 시골전시회 및 목각 체험(24일~27일), 부모와 함께 하는 유대인 가족식탁(26일), 하브루타 학부모 초청 강좌(26일) 등 강좌를 통해 전통과 이스라엘 문화에 대해 배우고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참석한 사람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중시하는 가정의 가치에 대해 배우는 유익한 시간이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27일에는 유대인의 경제교육과 기부 교육을 경험하는 어린이 경제캠프가 개최됐다. 부모, 어린이, 고학년 분반으로 나눠 오전 경제특강을 진행했으며 오후에는 각자 집에서 정성껏 준비한 물품을 판매하는 플리마켓이 펼쳐졌다. 어린이들의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도록 식음료 및 예술 체험 부스도 설치했다. 경제캠프의 목적이 기부교육에 있는 만큼 여성소망센터, 창포지역아동센터를 기부처로 지정하여 기부 활동을 독려했다. 행사 후에는 수익금 및 기부금을 전달하는 수료식 행사를 가졌다. 여성소망센터 대표로 참석한 먼디(미국) 센터장은 “초청해 주셔서 감사하고 지역주민들과 함께한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팡팡 초막절 페스티벌 기간동안 약 4천여 명의 주민들이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페스티벌에 참여한 주민은 “교회에서 이런 행사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지역주민들과 함께 한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박진석 목사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성막 체험을 하시면서 감사인사를 전해 주셨다. 축제를 통해 지역 주민들과 함께 이스라엘 및 타 문화를 체험하고 배우는 것들이 우리의 가정과 지역에 큰 유익을 준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는 행사를 지속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은숙 기자/ /자료제공=포항 기쁨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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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애국자·인간 박상동 목사(1)김승학 목사신학과 교수/기독교 교육학안동교회 담임목사 박상동 목사 (朴尙東, 1894~1949) 들어가면서 안동교회 제4대 담임목사(1925~1928)로 시무한 박상동(朴尙東, 1894~1949) 목사는 아버지가 목사였고, 목사의 아들을 두었으며, 한국교회에서는 단 한 자릿수에 불과한 직계목사 손자를 둔 4대 목사 가문(家門)의 중심이었다. 그의 조부(祖父)·부친(父親)뿐 아니라 그 역시 민족을 사랑한 애국자였다. 그래서 고등학생 신분으로 6개월의 옥고(獄苦)를 치르기도 했다. 극일(克日)하기 위해 박상동 목사는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일본유학을 떠났다. 일본에서 4년 동안 신학을 공부하며 오사카와 고베에 거주하고 있던 재일교포를 위해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했다. 귀국한 후 안동교회를 섬기면서 전도, 사회봉사, 교회조직의 변화, 다음 세대의 신앙교육 등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의 헌신을 통해 안동교회는 새롭게 리모델링(Remodeling)되어 시대에 맞는 교회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박상동 목사는 이민자의 삶의 고단함과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고 안동교회 사역을 중단한 채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와 나고야, 그리고 인근 지방의 복음화와 교회개척에 거룩한 발자취를 남겼다. 그는 당시 한국과 재일교회를 위한 사도바울과 같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일제 말엽 그는 교포들의 인권개선노력과 민족독립운동의 죄목으로 또다시 옥고를 치렀다. 생사(生死)의 고비에서 해방과 함께 석방되어 귀국한 박상동 목사는 끝없는 복음의 열정으로 교회를 섬기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박상동 목사는 복음을 위해서라면 어떤 고초도 마다하지 않고 자신의 등에 십자가를 지는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성도와 자녀에게는 인자하고 겸손한 목사요 아버지였다. 그는 음악을 좋아했으며 자식들에게 사랑의 아버지로 기억되고 있다. 이 글은 박상동 목사의 일생을 기록한 소고(小考)이다. 하지만 이 글에는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믿음의 가문, 믿음의 사람의 거룩한 흔적을 포함하고 있다. 이제 독립운동가요, 복음전도자요, 교육자요, 아버지요, 음악을 좋아한 사람이요, 목사요, 인격자인 인간 박상동을 감사한 마음, 기대하는 마음으로 만나보자. 1. 마태복음 1장의 ‘낳고, 낳고, 낳고’를 재현(再現)한 가정 마태복음 1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다. 그 족보는 아담에서 시작하지 않고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한다. 박상동 목사 집안도 초창기 한국교회 믿음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는 명문가문이다. 1) 1대 박영화 목사박상동은 1894년 경북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에서 박영화(朴永和, 1859~1923)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박영화는 1902년경에 김인옥, 이성준의 전도를 받고 전 가족(부친인 박용한과 3남 8녀) 모두가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군위군 호암교회에 출석하다가 다음 해인 1903년 쌍계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그는 특별히 교육에 관심을 갖고 1910년 농촌지역 복음화와 인재양성을 위해 쌍계교회에 정림학교(1920년 폐교)를 설립하여 운영한 명망 있는 지역의 지도자였다. 이런 박영화는 1914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1918년 제11회로 졸업하고 동년 6월 경북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쌍계교회 초대 담임목사로 시무했다. 그는 1919년 3·1 의성 만세운동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른 후 경남 거제시 사능교회 초대담임 목사로 부임하였다. 이후 박영화 목사는 거제도와 통영 등 경남지역 초기 교회의 존경받는 목회자로 자리매김하였다. 2) 2대 박상동 목사이러한 신앙적 분위기에서 출생하고 성장한 박상동은 아버지와 기독교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는 대구 계성학교 출신으로, 부친과 함께 3·1 만세운동의 옥고를 치른 후 일본 고베에 있는 칼빈계 고베중앙신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1925년 귀국하여 안동교회 강도사로 부임하였다. 박상동은 안동교회 강도사로 시무하면서 평양신학교에서 별신학(別神學) 과정 1년간을 수학하였다. 박상동 목사는 1926년 9월 경안노회(제11회)에서 목사안수 후 안동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였다. 1885년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온 지 41년 만에 직계(直系)로 부자(父子)가 목사 임직자가 됨으로써 아버지, 아들 목사가 탄생하게 되었다. 3) 3대 박대선 목사경북 의성군 비안면에서 박상동 목사의 장남으로 출생한 박대선 목사(1916~2010)는 1940년 일본관서학원대학교 영문과와 1942년 동 대학 신학과를 졸업하고 1955년 미국 보스톤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구약신학전공으로는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40년부터 1942년까지 니시노미야시 한인교회의 담임전도사로 사역했으며, 귀국하여 1942년부터 1950년까지 평양 창광산교회, 박구리교회, 중앙교회, 서평양교회 등을 섬겼다. 박대선 목사는 1945년부터 1950년까지 평양성화신학교 교장대리 역임, 1955년부터 1964년까지 서울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 역임, 1959년부터 1962년까지는 서울 광화문감리교회에서 담임목회를 했다. 특히 1964년부터 1975년까지 연세대학교 총장을 역임하다가 3선 임기 중 저항 운동에 나선 교수의 복직을 반대하던 당시 정부와 심한 불화를 겪다가 사임하였다. 4) 4대 박태기 목사박대선 목사의 차남인 박태기 목사는 공학박사로서 KIST의 책임연구원으로 있다가 소명을 받고 감신대를 졸업한 후 목사가 되었다. 중진 과학자로서 인정받고 안정된 생활을 하다가, 일생의 여름과 같은 때에 성직의 길에 들어섬으로써 대(代)를 이어 직계 4대 목사 가문(家門)을 이어가고 있다. 2. 애국자 박상동 의성에서 3·1 독립만세가 크게 울려 퍼진 날은 1919년 3월 12일이다. 11일에 의성군 비안공립보통학교 학생 150여 명이 학교 뒷산에 올라가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친 것이 시발점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쌍계리에서 쌍계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만세운동의 중심인물은 김원휘 조사, 김충한, 쌍계교회 박영달 장로, 박영화 목사, 그리고 대구 독립만세 시위운동(3월 8일)에 참여한 후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귀향한 박상동(당시 대구 계성학교 2학년생) 등이다. 이들은 3월 12일 정오, 박영신의 집 앞에 모인 2백여 명의 시위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주고,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하였다. 이렇게 촉발된 의성지역의 만세시위는 4월 3일 가음면 구천시장의 ‘1인 만세시위’까지 23일간 계속되었다. 이후 박상동은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부친과 그의 형제들, 그리고 박상동은 함께 의성 독립만세 시위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독립운동가정이었다. 6개월의 옥고를 치른 박상동은 일본을 올바로 알아야 일본을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일본 고배중앙신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생활은 고베, 오사카, 교토 등에 거주하고 있던 재일동포를 위해 교회를 개척하고 섬기는 기간이었다. 졸업 후 1925년 귀국하여 3년여 동안에는 안동교회를 섬겼다. 특히 이 기간에 박상동 목사의 민족의식이 나타난 것은 1928년 3월 경안노회 여전도회 도사경회와 5월 23일부터 1주일 동안 계속된 성경사경회였다. 당시 일본 경찰의 요시찰 인물이었던 길선주 목사가 안동을 방문했다. 약 200명이 참석한 성경사경회의 주제는 ‘애굽의 금자탑’으로 자유와 해방을 갈망하는 많은 백성에게 희망을 주었다. 한편, 사경회 기간 중 길선주 목사는 일경에 체포되었으며. 구류 20일 후 출소한 길선주 목사는 예정대로 사경회를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갔는데 이 사건은 사경회에 참석한 교인에게뿐 아니라 주위 교회 성도들에게도 깊은 도전을 주었다. 이후 박상동 목사는 1928년 파송 받아 다시 오사카로 돌아가 순회목사로 교회를 섬기는 일을 계속하였다. 하지만 일제 말엽 박상동 목사는 또다시 투옥되었다. 박상동 목사는 1941년부터 1943년까지 일본 각지를 순회하며 민족의식의 고취, 일제의 조선에 대한 식민지통치 비판, 기독교도의 동방요배와 신사참배 반대 등의 운동을 하기도 하였다. 1941년 나고야 동부교회를 담임하고 있을 때 박상동 목사는 당시 지역 교회지도자들 10명과 함께 예비 검속되어 체포되었다. 이때 박상동, 추인봉, 김은석 목사도 포함되었다. 투옥된 박상동 목사는 밤마다 구타 등 고문을 당하는 고초를 당했다. 석방과 투옥을 반복하다가 그는 옥중에서 해방을 맞이했다. 정부에서는 박상동 목사의 공훈을 인정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의성군 비안면 ‘3.1운동 경상북도시발지 기념공원’에 세위진 기념탑 /논문 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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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학 목사의 논문 원문(4)- 목사 · 애국자 · 인간 박상동 목사목사·애국자·인간 박상동 목사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 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박상동 목사 (朴尙東, 1894~1949) 들어가면서 안동교회 제4대 담임목사(1925~1927)로 시무한 박상동(朴尙東, 1894~1949) 목사는 아버지가 목사였고, 목사의 아들을 두었으며, 한국교회에서는 단 한자리 수에 불과한 직계목사 손자를 둔 4대 목사가문(家門)의 중심이었다. 그의 조부(祖父)·부친(父親) 뿐 아니라 그 역시 민족을 사랑한 애국자였다. 그래서 고등학생 신분으로 6개월의 옥고(獄苦)를 치르기도 했다. 극일(克日)하기 위해 박상동 목사는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일본유학을 떠났다. 일본에서 4년 동안 신학을 공부하며 오사카(大版)와 고베(神戶)에 거주하고 있던 재일교포를 위해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했다. 귀국한 후 안동교회를 섬기면서 전도, 사회봉사, 교회조직의 변화, 다음세대의 신앙교육 등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의 헌신을 통해 안동교회는 새롭게 리모델링(Remodeling)되어 시대에 맞는 교회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다. 박상동 목사는 누구보다 재일교포를 사랑했기 때문에 이민자의 삶의 고단함과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고 안동교회 사역을 중단한 채 일본으로 건너간 예민한 영성의 사람이었다. 그는 오사카와 나고야, 그리고 인근 지방의 복음화와 교회개척에 거룩한 발자취를 남겼다. 박상동 목사는 현해탄을 넘나들며 한국과 일본에 복음을 전한 위대한 전도자였던 것이다. 그는 당시 한국과 재일교회를 위한 사도바울과 같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일제 말엽 그는 교포들의 인권개선노력과 민족독립운동의 죄목으로 또 다시 옥고를 치렀다. 생사(生死)의 고비에서 해방과 함께 석방되어 귀국한 박상동 목사는 끝없는 복음의 열정으로 교회를 섬기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박상동 목사는 복음을 위해서라면 어떤 고초도 마다하지 않고 자신의 등에 십자가를 지는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성도와 자녀에게는 인자하고 겸손한 목사요 아버지였다. 그는 음악을 좋아했으며 자식들에게 사랑의 아버지로 기억되고 있다. 이 글은 박상동 목사의 일생을 기록한 소고(小考)이다. 하지만 이 글에는 잊지 않고 기억해야할 믿음의 가문, 믿음의 사람의 거룩한 흔적을 포함하고 있다. 이제 독립운동가요, 복음전도자요, 교육자요, 아버지요, 음악을 좋아한 사람이요, 목사요, 인격자인 인간 박상동을 감사한 마음, 기대하는 마음으로 만나보자. 1. 마태복음 1장의 ‘낳고, 낳고, 낳고’를 재현(再現)한 가정 마태복음 1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다. 그 족보는 아담에서 시작하지 않고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한다. 비록 아담이 인류 최초의 사람이긴 하지만 범죄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고,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신 믿음의 역사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마태복음 1장의 족보는 육신의 족보라기보다는 믿음의 족보요 하늘나라 백성의 계보라고 할 수 있다. 안동교회 4대 담임목사로 사역한 박상동(朴尙東, 1894~1948) 목사 집안도 초창기 한국교회 믿음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는 명문가문이다. 오늘도 박상동 목사의 가문은 한국교회의 살아있는 믿음의 역사를 중단 없이 써가고 있다. 130년의 한국기독교 역사에서 현재까지 4대 직계목사 가문을 이어가고 있고, 곧 5대 목사가 배출될 예정이라고 한다. 사실 목사의 아들이 목사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목사 아버지는 자신이 겪은 험난한 목회의 길을 자녀들이 겪기를 원치 않을 뿐 아니라 목사 자녀들도 목사 아버지의 좁은 목회의 길을 보며 쉽게 그 길을 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상동 목사는 아버지가 걸어간 목회의 길을 걸었을 뿐 아니라 그의 아들과 손자까지 목사가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수 있다. 1) 1대 박영화 목사 박상동은 1894년 경북 의성군 비안면(比安面) 쌍계리(雙溪洞)에서 박영화(朴永和, 1859~1923)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박영화는 1902년경에 김인옥, 이성준의 전도를 받고 전 가족(부친인 박용한과 3남 8녀) 모두가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군위군 호암교회에 출석하다가 그 다음 해인 1903년, 많은 핍박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쌍계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하지만 박영화는 1908년 세례를 받았다. 그는 특별히 교육에 관심을 갖고 1910년 농촌지역 복음화와 인재양성을 위해 쌍계교회에 정림학교(1920년 폐교)를 설립하여 운영한 명망 있는 지역의 지도자였다. 더욱이 박영화는 당시 선교사의 조사(助事, Helper)로 활발히 사역한 인물이었다. 경안노회 70년사는 그가 의성 지역의 유력한 조사였음을 밝히고 있다. 더욱이 경상노회록에 의하면 박영화는 쌍계교회 장로로 임직 받고 노회 총대로 참석할 정도로 당시 의성 지역의 교회지도자였다. 1914년 12월 30일 부산진 여학교에서 회집된 제9회 경상노회 회의록에는 그의 이름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서기가 회원을 조명하니 참석원은 목사의 방혜법, 권임함, 김기원, 홍승한, 심취명, 김영옥, 왕대선, 매견시, 맹호은, 예알배, 라대벽, 권일두, 권찬영, 인로절, 제씨요. 장로의 허 일, 황재은, 정재순, 박영화, 박상순, 최경호, 리준섭, 권덕생, 김덕경, 김응진, 김복명 제씨라. 이런 박영화는 1914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1918년 제 11회로 졸업하고 동년 6월 19일 경북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쌍계교회 초대 담임목사로 시무했다. 그는 1919년 3·1 의성만세운동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룬 후 경남 거제시 사능면에 위치한 사능교회 초대담임 목사로 부임하였다. 이후 박영화 목사는 거제도와 통영 등 경남지역 초기 교회의 존경받는 목회자로 자리매김하였다. 2) 2대 박상동 목사 이러한 신앙적 분위기에서 출생하고 성장한 박상동은 아버지와 기독교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는 기독교학교인 대구의 계성학교 출신으로, 부친과 함께 3·1 만세운동의 옥고를 치룬 후 일본 고베에 있는 칼빈계 고베중앙신학교(神戶中央神學校)를 졸업하였다. 졸업한 박상동은 1925년 귀국하여 안동교회 강도사로 부임하였다. 1925년 6월 17일 안동교회에서 소집된 제8회 경안노회록은 “신학졸업생 박상동씨를 노회장이 임시노회를 소집하는 대로 강도사로 세워주기로 가결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박상동은 안동교회 강도사로 시무하면서 평양신학교에서 별신학(別神學) 과정 1년간을 수학하였다. 그 당시 외국에서 공부한 사람이 장로교 목사가 되려면 평양신학교에 가서 1년 동안 공부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1926년 6월 16일 안동교회에서 회집된 제10회 경안노회에서 안동교회는 박상동 강도사를 동사목사로 청원하였고, 노회는 임사부에 맡겨 처리하도록 결의하였다. “안동교회에서 박상동 강도사를 동사목사로 청원하노니 허락 주시되 헌법대로 오는 9월에 장립허락까지 달라는 청원은 임사부로, 박상동에 목사장립을 위하여 별노회 소집은 회장에게 위임하기로 가결하다.” 결국 1926년 9월 1일 영주읍 교회에서 개회된 경안노회(제11회) 임시노회에서 안수 후 안동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였다. 1885년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온 지 41년 만에 직계(直系)로 부자(父子)가 목사 임직자가 됨으로써 아버지, 아들 목사가 탄생하게 되었다. 3) 3대 박대선 목사 박영화 목사 가문의 직계 3대 목사인 박대선 목사는 1916년 경북 의성군 비안면에서 박상동 목사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그는 1928년 파송 받아 오사카에서 순회목사로 일본에 파송된 부친 박상동 목사와 함께 일본에 체류하면서 1940년 일본관서학원대학교 영문과와 1942년 동대학 신학과를 졸업하고 1955년 미국 보스톤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구약신학전공으로는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에 체류할 당시인 1940년부터 1942년까지 니시노미야시 한인교회의 담임전도사로 사역했으며, 귀국하여 1942년부터 1950년까지 평양 창광산교회, 박구리교회, 중앙교회, 서평양교회 등을 섬겼다. 박대선이 어렸을 때 사람들이 “넌 이담에 커서 무엇이 될래?”라고 물으면 서슴없이 “난 목사가 될 겁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 한 이 대답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을 정도로 박대선은 소명의식이 투철했다. 특히 1945년부터 1950년 까지 평양성화신학교 교장대리로 학교를 책임지고 경영하였다. 박대선 목사는 1955년부터 1964년까지 서울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를 역임했고, 1959년부터 1962년까지는 서울 광화문감리교회 담임으로 목회를 이어갔다. (이하 내용은 논문원문 첨부파일 참조)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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