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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성들이 겪는 박해“세계통계의 가장 큰 갭” 박해받는 크리스천 여성 ‘세계여성의 날(3월 8일)’을 맞아 9일부터 20일까지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행사들이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하루 행사로 축소된 가운데, 유엔사무총장은, 여성이 ‘세계통계의 가장 큰 갭’이라는 언급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통계에서 여성이 고려되지 못하고 빠지는 현상은 세계에서 가장 ‘숨겨진’ 학대를 당하고 있는 크리스천 여성들에게 더더욱 해당된다. 이들은 신앙과 가난과 여성이라는 사실 때문에 이중삼중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국제오픈도어의 보고서 ‘Genderspecific Religious Persecution Report 2020’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크리스천 여성과 소녀들이 겪는 가장 큰 두 가지 박해 형태는 ‘성폭력’과 ‘강제결혼’이다. 이것은 일종의 ‘산 죽음’이다. 특히 이슬람이나 불교에서 개종했을 경우 가장 심하다. 이러한 젊은 여성들은 숨겨지고 고립된다. 따라서 그들의 고난은 보고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고, 크리스천공동체와 교회에서조차 잊혀진다. 기독교를 억압하기 위한 “여성 성적박해” ‘성폭력’과 ‘강제결혼’ 광범위하게 이뤄져 특히, 아시아, 중동, 북아프리카 등 기독교에 적대적인 국가에서 성적폭력은 범죄로 이어진다. 크리스천 소녀인 ‘니마’는 폭력사태로 가족들이 마을을 떠날 때 노예로 팔렸다. 박해자들은 그 틈을 타서 니마와 다른 60명의 소녀들을 타깃으로 삼았다. 약한 여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니마는 매를 맞고, 끌려가서 여러 차례 강간을 당했다. 2019년 보고들은 기독교공동체를 억압하기 위해서 ‘여성’에 대한 박해가 광범위하게 이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여성박해는 묻히기 쉽고 박해자들에게 보복의 위험이 낮고 매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아라비아반도에서는 크리스천 여성 가사도우미들이 조용히 성적 착취를 당하고, 사하라이남 아프리카에서는 민간 무장대들이 크리스천 마을의 여성들을 주기적으로 공격하거나 납치해서 성적노예로 삼는다. 기독교박해의 이러한 성적박해, 교회를 잠식하기 위한 이러한 방법들은 간과되기 쉽다. 여성을 집밖에 나가지 못하게 가두거나 성적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크리스천 여성들을 타깃으로 하는 흔한 박해 방법이다. 국제오픈도어 관계자는 “이 보고서의 사실들은 전 세계 교회들에게 분명한 사명을 일깨운다”고 언급하며, “우리는 남자와 여자, 어린이들을 포함한 모든 인간의 천부적인 존엄성을 성경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이로써 박해자들이 연약한 여성들을 타깃으로 공격하여 교회를 약화시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라고 호소하고 있다. (오픈도어 2020. 04. VoL. 216에 실린 글 발췌)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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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 농산물 수출 날개를 달다!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 속 적극행정으로 성과 이뤄 예천군은 24일 오전 10시 30분 제2농공단지 소재 해트리푸드(대표 은상진)에서 김학동 군수를 비롯한 신동은 군의장, 송문흠 농협지부장, 우일음료 강평모 사장 등 관계자 1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쌀과 단무지 수출 선적식을 가졌다. 이날 선적되는 예천 농산물은 쌀 36톤과 단무지 76.8톤으로 출향인이 운영하는 부산의 희창물산(대표 권중천)을 통해 미국 뉴욕 시애틀 등 H-마트(회장 권일연)에서 판매될 계획이다. 이번 수출은 코로나19로 세계 경기가 둔화된 가운데 이뤄낸 성과로 그동안 예천군이 민선 7기를 맞아 군정 추진 방향으로 유통활성화를 통한 농가 소득증대를 위해 적극 행정으로 접근해 노력한 결과다. 해외수출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희창물산 권중천 회장과 그의 두 동생인 권중갑 미국 뉴욕 호텔스탠포드 회장, 권일연 미국 H마트 회장의 고향에 대한 각별한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학동 군수는 “코로나19로 농산물 판매가 어려운 가운데도 고향 농산물 수출에 힘써주신 희창물산 권중천 회장님께 감사드리고 쌀과 단무지 수출로 농산물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가에 판로 안정은 물론 농가 소득에 도움이 될 수 있어 그 의미가 매우 크다”며 관계자들에게 예천농산물의 수출을 대폭 확대해 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예천군은 희창물산 및 경북통상 등과 긴밀한 협조로 수출 품목과 물량을 늘려 나아가는 한편 수출업체에 포장재, 수출물류비 등을 지원해 수출 확대를 지원할 계획이다. 이예진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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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지역 최초의 순교자, 소텔 선교사(2)김승학 목사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안동교회 담임목사 소텔 선교사 (Chase C. Sawtell, 1881-1909) 목차 1. 서론 2. 소텔 선교사의 가정(家庭) 3. 소텔 가정의 신앙(信仰) 4. 소텔 선교사의 소명(召命) 5. 소텔 선교사의 성품(性品) 6. 소텔 선교사의 파송(派送) 7. 소텔 선교사의 사역(使役) 8. 소텔 선교사의 순교(殉敎) 9. 소텔 선교사의 부인, 캐더린 10. 캐더린 선교사의 특별한 공헌(貢獻) 11. 결론 4. 소텔 선교사의 소명(召命) 1880년대 말에 한국에 온 초기 선교사들의 대부분은 구(舊)학파의 신학 경향을 그대로 가지고 있던 프린스턴 신학교와 시카고 맥코믹 신학교 출신들이었다. 구학파는 원죄를 인정하고 회심이나 중생이 하나님의 전적인 사역이라고 하는 은혜의 교리를 견고히 지키려 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칭의 교리를 굳게 붙잡고 있었다. 당시 뜨거운 전도 열정을 갖고 미국과 영국을 누비면서 사역하던 복음전도자 무디(D.L. Moody)는 칼빈주의 개혁신앙을 고수하던 미국 장로교회 구학파의 신앙유산을 공유하고 있었고, 당시 미국 청년들에게 선교사의 소명을 불어넣은 주의 종이었다. 따라서 선교 초기 한국에 입국한 선교사들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 파송된 선교사들, 선교를 위해 동역한 많은 사람들은 무디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99년 9월, 소텔은 네브라스카 주 소재 밸리뷰 대학에 입학했다. 그가 입학한 기독교 대학인 밸리뷰 대학교도 많은 선교사를 파송한 대학이었다. 밸리뷰 대학에서 소텔은 자치활동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로티-퍼스에 가입하여 활동했고, 대학 토론 클럽에서도 활동했다. 또한 1902년에는 운동에 관심을 갖고 미식 축구부에서 활동했다. 이처럼 소텔은 대학 시절 활발하게 친구들을 사귀며 리더십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소텔의 대학 시절 중 가장 중요한 활동은 YMCA에서였다. YMCA는 소텔에게 선교사적 소명과 비전을 심어준 공간이었다. 1890년대 말 미국 YMCA는 해외선교에 큰 관심을 갖고 깊이 동참하고 있었다. 소텔이 직접 작성한 선교사 지원서에 따르면 19세인 1900년부터 선교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기록됐다. 여러 문헌을 검토한 결과 소텔은 두 가지 이유로 해외 선교사로 지원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밸리뷰 YMCA에서 받은 소명이다. 또한, 1904년 모친인 제시(Jessi)의 죽음도 소텔에게 선교를 결심하게 한 큰 요인이었음이 지원서에 기록되어 있다. ▲1902년 당시 밸리뷰 대학의 풋볼 팀 사진. 1898년부터 1916년까지 7번이나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강팀이었다. 5. 소텔 선교사의 성품(性品) 소텔은 매사에 즐거운 마음으로 일했던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는 기쁜 마음으로 선교사역을 준비했을 것이며, 선교사로 파송 받은 한국에서도 열악한 환경을 인내하면서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사역을 잘 감당했을 것이다. 특히 소텔은 온화하고 친절한 성품을 갖고 있었다. 신학교를 다닐 때 학비를 벌기 위해 양로원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그는 노인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무엇이든지 도와드려서 칭찬을 들었다. 이와 같은 그의 따뜻한 성품은 선교지에서 동료 선교사들을 대할 때도 잘 드러났다. 그는 대구선교부에 있던 선배 선교사들에게 호감을 주었으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소텔의 대학생활 모토는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 없다”는 것으로 이 생각은 선교사로 내한할 때도 동일했다. 그는 이 모토를 정할 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사도 바울의 고백을 기억했을 것이다. 소텔은 이 모토를 늘 기억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비전을 품고, 믿음으로 준비하고, 믿음으로 행동했을 것이다. 또한, 신장이 6피트(약 183cm)이며 갈색 눈에 코가 곧게 솟았고, 중간 크기의 입에 턱이 뾰족했던 그는 돋보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내적인 품성과 외적인 모습을 가진 소텔 선교사는 늘 기쁘고 즐거운 성격을 가진 매력적인 청년이었다. 특히 1908년 안동선교부의 신설이 결정되었을 때 안의와 선교사는 자원하여 사역할 선교사를 찾았다. 이때 소텔 선교사는 스스로 안동선교부로 갈 것을 결심했다. 소텔 선교사는 대구선교부에 도착하여 어느 정도 환경에 익숙해질 즈음인 1년 후, 정말 떠나기 힘든 시간에 스스로 안동으로 떠날 것을 결심했던 것이다. 당시 대구 선교부에는 여러 명의 선교사가 사역하고 있었지만, 대구보다 열악하고 불확실한 땅인 안동에서 사역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단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소텔 선교사는 하나님의 일이라면 환경과 조건의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 편에 서는 결단의 사람이었다. 6. 소텔 선교사의 파송(派送) 1904년 5월, 밸리뷰 대학을 졸업한 소텔은 동년 9월 오마하 장로교 신학교에 입학하여 1907년에 졸업하였다. 신학교 재학 시절 소텔은 3개 교회를 섬김으로써 목회자로서 필요한 자격을 갖추는 데 열심을 다했다. 목회 현장인 지역교회에서 목사로 임직을 받기 위한 과정을 잘 소화하고 훈련받은 소텔은 오마하 신학교를 졸업한 1907년, 네브라스카 대회 소속 베네치아 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대학교 1학년 때인 1900년 이미 선교사 소명을 받은 소텔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있던 수많은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이 유일한 그리스도가 되심을 전하고 싶어 했다. 처음에 소텔은 남아메리카의 푸에르토리코에서 사역할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부는 자신의 뜻과는 전혀 다른 한국으로 파송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텔은 기쁜 마음으로 한국으로의 파송을 받아들였다. 오마하 신학교 친구인 레이놀즈에 따르면 1907년 6월 어느 날 오후, 레이놀즈가 소텔을 만났을 때 “어떻게 조선인을 전도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소텔은 주저하지 않고 웃으면서 “나는 조선인을 사랑하겠노라(I am going to love them)”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1907년 5월 29일 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부 뉴욕 본부 사무실에서 열린 제10차 연례 신임 선교사 대회에서 소텔은 한국으로 파송 받은 신임 선교사 6가정(8명) 중의 한 선교사였다. 이후 소텔 선교사 부부는 내한하기 위해 오마하를 떠나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여권을 발급받은 지 일주일이 지난 9월 24일, 소텔 선교사 부부는 다른 세 선교사와 함께 샌프란시스코 항구에서 출발하여 임지인 한국을 향했다. 약 22일간의 항해 끝에 10월 16일 마침내 한국에 도착했다. 소텔 선교사는 한국에 도착 이후 얼마 동안은 임지를 배정받지 못하고 있다가 미국 북장로교 대구선교부에 배속되어 사역을 시작할 수 있었다. ▲1907년 9월 소텔이 한국에 오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서 작성한 여권신청서.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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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 예천청결고춧가루 뉴욕 H-마트 첫 수출농업회사법인 주식회사 예천청결고추(대표 박군상)는 지난달 23일과 6월 26일 출향인이 운영하는 '뉴욕 H-마트'에 900kg, 1,400만 원 상당의 고춧가루를 첫 수출 했다. 이번 농산물 수출은 까다로운 미국 FDA(미국 식품 등록)를 완료하고 우리나라 농산물 수출을 주도하고 있는 부산 소재 「희창물산」을 통해 수출하게 되었으며, 이번 2번의 시제품 수출에 이어 향후 본격적인 수출을 하게 되면 수출 물량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예천청결고추는 붉은 홍고추를 원료로 하여 세척, 절단, 저온열풍으로 건조하고 불순물을 완전 제거하는 현대식 시설에서 위생적으로 생산되어 대도시 소비자들에게 매우 인기가 좋다. 예천군은 금년도 고춧가루 수출확대와 대형유통점인 이랜드리테일 납품을 위해 포장재 지원은 물론 농가로부터 홍고추 수매 홍보를 적극 지원해 나갈 방침이다. 이예진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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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찬양단 창단 30년 만에 첫 한국 방문초교파 기독교 순수 찬양선교단체인 월드밀알선교합창단이 창단 30주년을 맞아 한국을 방문, 안동과 청송을 비롯한 전국의 주요 도시들을 순회하며 7월 4일~15일까지 한국찬양대행진을 펼치게 된다. 전국의 주요 도시와 그 지역 중심교회에서 펼치게 될 이번 한국찬양대행진의 경북지역으로는 안동의 안동교회(담임목사 김승학)와 청송의 청송교회(담임목사 윤희도)가 선정됐다. 이에 따라 안동교회에서는 10일 저녁 7시 30분, 청송교회에서는 11일 저녁 7시 30분에 월드밀알선교합창단의 공연이 열리게 된다. 월드밀알선교합창단은 지금부터 30년 전 1987년 뉴욕에서 두 명의 음악 전공자로부터 시작 됐다. 뉴욕에 있는 음악학교에서 성악이나 기악을 공부한 학생들과 주님을 사랑하고 찬양으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기 원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이기 시작했었던 것이 계기가 됐다. 지금은 그 모임이 뉴욕을 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가 각 국에 수많은 지회가 조직되었으며, 수 백 명의 단원들이 기쁨으로 참여하고 있다. 요한복음 12장 24절의 말씀처럼 한 알의 썩어지는 밀알이 되려는 희생과, ‘최고의 하나님께 최고의 찬양을’ 드리려는 헌신 위에 세워진 선교단체이다. 이번 한국찬양대행진에는 세계 150여 개국의 단원들 약 250여 명(합창+오케스트라)이 참여하며, 지구촌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 주안장로교회, 영락교회, 사랑의교회 등 많은 교회를 비롯하여 요양병원, 노인병원, 교도소 등을 방문한다. 경북말알선교합창단(단장 김명섭)은 2012년 창단 예배를 드렸고,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찬양을 통한 밀알선교합창단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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