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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를 재촉하시는 재앙들회개를 재촉하시는 재앙들(아모스 4장 1~13절) 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사마리아의 산에 있는 바산의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힘 없는 자를 학대하며 가난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하시되 때가 너희에게 이를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 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도 그리하리라(1~2절) 내가 너희 중의 성읍 무너뜨리기를 하나님인 내가 소돔과 고모라를 무너뜨림같이 하였으므로 너희가 불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 조각 같이 되었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1절) 본문 말씀이 기록될 당시의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가 왕으로 다스린 때였습니다. 이때가 가장 풍요롭고 번성해 가는 시기였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심으로 북이스라엘이 블레셋을 쳐부수고, 또 아람과 암몬이라고 하는 나라를 정복해서 그 나라들로부터 특산물 중에 좋은 것은 사마리아로 전부 조공 바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본문 내용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풍요로운 생활을 베풀어 주셨으나,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자기들 멋대로 잇속만 챙기며 잘못 살고 있는 그들을 심판하시겠다고 아모스 선지자를 통하여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를 소중히 생각하고, 혹 잘못한 일이 있다면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1. 사마리아에 내리신 징벌 본문 4:1절에 보면 “사마리아 산에 거하는 바산 암소들아”라고 부른 대상은 사마리아(북이스라엘의 수도)의 권력 잡은 사람들의 아내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들이 어떤 일을 하였다는 것입니까? “너희는 힘없는 자를 학대하며 가난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1절)고 한 것을 볼 때, 이는 이들이 권력을 빙자하여 어려운 사람들에게 횡포가 심했던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잘 살게 해주신 것은 그들을 기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육신의 조건이 풍요로워지자 더 많은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렸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사1:19~20)고 전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육신도 이 땅에 기름진 것으로 배불리 먹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면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본문의 이스라엘 나라에 대해 하나님은 더 이상 영적 소망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셨기에 그들에게 징벌을 내리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본문 2절에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하시되 때가 너희에게 이를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 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도 그리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일으켜서 그렇게 권력을 빙자해서 욕심을 채우고 사치하며 방탕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포로로 끌려가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너희가 성 무너진 데를 통하여 각기 앞으로 바로 나가서 하르몬에 던져지리라”(3절)고 말씀합니다. 여기 하르몬이라는 곳은 이스라엘 지도에는 없습니다. 아마 다른 나라인 것 같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벨론에 멸망을 당해 포로가 돼서 쇠사슬 혹은 밧줄에 묶여 여러 날 끌려갔는데, 가다가 필요 없는 사람들은 중도에 버려지기도 했습니다. 이곳을 하르몬이라 불렀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으면 그 인생의 가치는 죄악 세상에서도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포로로 끌려가다가 중간에 하르몬에 다 버려진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들은 하나님의 징벌을 피할 길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 회개를 재촉하시는 재앙들 본문 6~11절까지 하나님은 이들에게 회개를 재촉하시는 재앙들을 하나하나 행하십니다. 이는 그들에게 먹을 양식을 없게 하시며, 비를 내리지 않으심으로 물이 없게 하십니다.(6~8절) 그리고 온갖 벌레들로 과목들을 먹게 하시며, 전염병이 임하여 사람들이 죽고, 또한 전쟁이 일어나 청년들이 죽게 됩니다.(9~10절) 마지막으로 성읍까지 무너지게 하십니다.(11절)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죄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만 정성을 다해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양식을 끊으시어 회개하라고 말씀하시지만, 그들은 물이 있으니 안심이다 하며 하나님이 아닌 물을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비를 거두시어 물이 없게 하시자 백성들은 비가 오지 않아 농사는 망쳤지만 우리에게는 포도원과 무화과나무와 감람나무가 있으니 살 수 있다며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각종 벌레들로 과목들을 먹게 해서 그들의 소망을 끊고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바라셨지만, 백성들은 역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전염병을 주셔서 많은 사람이 쓰러져 죽게 하셨지만, 그 백성들은 아직 청년들이 있으니 나라의 미래는 소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전쟁을 일으켜서 청년들이 죽임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모든 소망이 끊어졌으니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 튼튼한 사마리아성이 있으니 우리는 안전하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원수들로 하여금 성읍을 무너뜨리고, 그들의 입장이 불붙은 나무 조각처럼 되게 하셨지만, 그들이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회개를 재촉하시는 재앙들을 내리심에도 이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한 것을 아모스 선지자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과정을 볼 때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철저히 심판하시지만,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은혜로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12절)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알리실 때 생각을 돌이켜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서두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왜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신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시어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게 해주시려는 사랑의 채찍이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시길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29:11절)고 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회개를 재촉하는 재앙들을 내리시며 돌아오기를 바랐음에도 그들은 하나님께 끝내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 하나님에 대해 아모스 선지자는 “보라 산들을 지으며 바람을 창조하며 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며 아침을 어둡게 하며 땅의 높은 데를 밟는 이는 그의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니라”(13절)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며 자신의 뜻을 선지자를 통해 사람에게 알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면 심판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려면 하나님으로부터 재앙을 내리시는 뜻을 깊이 깨달아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길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인생을 하나님의 은혜보장으로 살리실 것이고, 또 하나님 뜻대로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권면의 말씀) 본문 4~5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배 형식은 흉내 내어 지켜가고 있지만, 오히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각종 우상에게 정성을 다하며 스스로 만족해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요즘 교회마다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음에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넘치도록 채워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며 산다면 징벌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를 재촉하시는 재앙이 내리는데도 끝까지 고집을 부리며 회개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철저히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은 다시 기회를 주시고 회복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신앙인들로 거듭나시기를 바랍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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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와 아론의 속죄 역할로 염병이 그침모세와 아론의 속죄 역할로 염병이 그침(민수기 16장 41~50절) 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모세와 아론이 회막 앞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 하시매 그 두 사람이 엎드리니라(43~45절) 이에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향로를 가져다가 제단의 불을 그것에 담고 그 위에 향을 피워 가지고 급히 회중에게로 가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라 여호와께서 진노하셨으므로 염병이 시작되었음이니라(46절) 아론이 모세의 명령을 따라 향로를 가지고 회중에게로 달려간즉 백성 중에 염병이 시작되었느니라 이에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을 때에 염병이 그치니라 고라의 일로 죽은 자 외에 염병에 죽은 자가 만 사천칠백 명이었더라(47~49절)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치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그들을 멸하려 하신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백성들에게 주신 형벌은 염병을 내린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염병으로 죽어가는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아론에게 명하여 제단에 향을 피워 속죄하게 함으로 염병을 그치게 하였습니다. 모세가 행한 일은 아론으로 하여금 백성들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는 것이었고, 이로 말미암아 그들의 죗값으로 내리신 진노의 염병을 그치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하여 대신 벌 받아 죽으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대적하는 죄를 얼마나 많이 범하고 있습니까?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의 죄로 인해 형벌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회개한다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세상에서 환란이나 질병 등 어떤 고난 속에서도 지켜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눈동자같이 보호하시며, 그 뜻을 이루기까지 힘 있게 붙들어 써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반역 애굽을 떠나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세례를 받고 광야의 길을 가는데 그 목적지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광야의 길에서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인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 그리고 벨렛의 아들 온이 이스라엘 250명의 족장들과 함께 패당을 짓고 모세를 대적하게 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광야교회를 이끌어가는 것을 그들은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불평과 원망과 행패까지 일삼았습니다. 고라가 모든 회중을 성막 문 앞에 모아 놓고 모세와 아론에게 대적하려고 할 때, 모세는 그들의 잘못을 바로잡아 주기 위하여 “너희 레위 자손들아 들으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8~9절)라고 말하며 타이릅니다. 레위 지파는 하나님께서 구별되게 성막에서만 하나님 섬기는 일에 봉사하도록 특별히 세워 주신 지파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일을 작게 여기고 충성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고, 원망과 불평을 한 것입니다. 2.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멸망 하나님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광야교회를 정화시키기 위해서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21절)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모세와 아론이 엎드려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여 한 사람이 범죄 하였거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나이까”(22절)라며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회중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방에서 떠나라 하라”(24절)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지시대로 모세는 회중에게 “이 악인들의 장막에서 떠나고 그들의 물건은 아무것도 만지지 말라 그들의 모든 죄 중에서 너희도 멸망할까 두려워하노라”(26절)고 말합니다. 결국, 무리가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방을 떠납니다. 그러자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그 처자와 유아들이 함께 나와서 자기 장막 문에 섰을 때 그들이 섰던 땅바닥이 갈라졌습니다. 그들과 그들의 집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들의 재물을 삼키고 그들과 그의 모든 재물이 산 채로 스올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덮이니 그들이 회중 가운데서 멸망하였습니다. 3.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이 하나님의 사람 모세와 아론을 대적할 때에 땅바닥이 갈라져 멸망당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도다”(41절)라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합니다. 이 사람들은 광야교회에 함께 어울려 가나안 땅으로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따라 이끌려가고 있었지만 그들의 심령은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마귀의 앞잡이인 회중이 몰려와서 성령에 이끌리며 쓰임 받는 하나님의 사자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들을 다 죽였다’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은 모세와 아론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이 땅에 지진을 일으켜 그들을 전멸시킨 것인데 모세가 죽인 것처럼 자꾸만 괴롭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귀의 역사입니다. 회중들이 몰려와 모세와 아론을 칠 때에 구름이 회막을 덮었고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42절)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오른팔 같이 쓰시는 모세와 아론이 죽임당하지 못하도록 보호해 주시려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오늘 이것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성령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성령의 도구로 이끌리며 쓰임 받게 되면, 원수 마귀가 나를 해치려고 여러 모양으로 발악하더라도 하나님이 그 자리에 나타나셔서 우리를 막아 주십니다. 4. 모세와 아론의 속죄 역할로 염병이 그치다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치면서 죽이려 할 때 하나님은 크게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45절)고 말씀하시고 염병을 보냈으며, 백성들은 염병으로 쓰러져 죽어갔습니다. 이때 모세와 아론이 다시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그런 후에 모세가 아론에게 “너는 향로를 가져다가 제단의 불을 그것에 담고 그 위에 향을 피워 가지고 급히 회중에게로 가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라”(46절)고 명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평상시보다도 재앙이나 환란 풍파로 인해 두려움이 가득 차고 넘칠 때 양떼를 이끄는 목자에게 기지가 있어야 합니다. 모세가 바로 그 기지를 발휘한 것입니다. 모세는 제사장 아론을 통해 백성들의 죄가 용서받고 죗값으로 내리신 염병이 그치기를 바랐습니다. 아론이 모세의 명을 좇아 향로를 가지고 회중에게로 달려갔을 때 백성 중에 이미 염병이 시작되었지만, 아론은 백성들을 위해 속죄를 빌었고,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을 때에 염병이 그치게 됩니다. 고라의 일로 죽은 자 외에 염병에 죽은 자가 14,700명이나 되었습니다.(49절) 그러나 민26:11에 고라의 아들들이 죽지 아니한 것을 보면 아버지의 반란에 동참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에 시편이나 여러 글에 보면 그 자손들이 찬양대원이 되고, 찬송가를 만들고, 여러 악기를 연주하면서 하나님 성전에서 봉사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비록 아버지라 할지라도 잘못된 일에 좇아가서는 안 됩니다. 자기 믿음은 자기가 지킬 줄 아는 지혜를 고라의 아들들에게서 배워야 할 것입니다. (권면의 말씀)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28:13절)는 말씀이 있습니다. 자기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쳐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숨기지 말고 회개해야 합니다. 자기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면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해 주십니다. 그리하면 어떤 환란과 어려움 속에서도 보호해주시고 살려 주실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앞에 진짜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생명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 우리가 회개함으로 내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인류를 살리는 복음의 증인들이 됩시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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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요한복음 3장 14~18절) 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14~16절)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17~18절)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셨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랑은 어떻게 나타난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으로부터 파생된 것이기 때문에 지옥 가는 것을 너무나 마음 아파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희생양으로 내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 얻게 되기를 소원하시고 가장 귀한 아들을 죗값으로 대신 죽을 자리에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들은 깊이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이 진리입니다. 지금 코로나19로 정상적인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하루라도 빨리 하나님이 종식시키시고 우리가 다 모여서 마음껏 감사와 찬양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1.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사건 본문 14~15절에 보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이 구약 민수기 21장의 말씀을 예로 든 것입니다. 민수기 21장에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를 예수님이 앞으로 있을 자신의 일로 결부시켜 인용하신 것입니다. 민수기 21:4절 이하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라고 원망합니다. 이에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물게 하시므로 죽은 자가 심히 많았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실망하시고 진노가 극에 달하셨으면 그 불뱀을 통해 심판하셨겠습니까? 뱀은 사탄의 상징입니다. 그들을 심판하실 때 하나님을 대적했던 마귀를 시켜서 멸망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왜 불뱀을 불러들여서 불평과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물어 죽이게 하셨을까요? 이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불신하고 원망한 죄로 인해 징계하신 것이었지만, 또한 그들을 사랑하사 그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이키기를 바라신 까닭이었습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 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라고 애원합니다. 그러자 모세가 자신을 원망한 그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저는 모세가 기도하는 그 모습을 생각하면서 뜨거운 눈물이 고였습니다. 왜냐하면 모세를 통하여 ‘이것이 참 목자의 본심이로구나’ 하고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목자는 양 떼들의 원망과 불평이 있더라도 그리스도의 심정을 가지고 그 영혼을 살리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모세를 통해 알게 된 것입니다. 모세의 기도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그들에겐 복음이었습니다.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말씀을 믿고 쳐다보는 것이 사는 길임을 실제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어디서든지 불뱀에게 물린 사람들이 그 말씀을 믿고 쳐다보는 행동을 하게 될 때 그 사람의 몸속에 불뱀의 독이 싹 없어지고 다시 살게 되는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놋뱀이 장대 위에 매달린 것이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장대에 달린 놋뱀을 믿음으로 쳐다봤을 때 죽지 아니하고 살게 된 것처럼 누구든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쳐다보고 믿는 자마다 죽음을 맛보지 않고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사건은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의 복음이 실현될 것을 예표 해 주셨음을 깨닫게 해줍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바로 구약의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한 것임을 우리에게 알려 주신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심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16절)는 말속에 ‘이처럼’이라고 하신 뜻이 무엇일까요? 이는 하나님께서 가장 귀한 독생자 아들 예수님을 지옥 가고 있는 죄인들을 살리시기 위하여 대신 죽을 자리에 내어 주시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 사랑은 가장 귀한 사랑이고 하나님만이 베푸실 수 있는 무한하신 사랑, 아가페라고밖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우리가 그를 믿음으로 영원토록 꺼지지 않는 유황불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었음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대신 죽게 하신 것은 우리를 아들보다 더 귀히 여기시고 소중하게 생각하신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런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우리를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게 하신 일은 역사 이래로 만고불변의 구원의 복음이고 진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생각하며 예수님을 믿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그 죄를 용서하시고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어서 하늘나라까지 물려주시기 위한 후계자로, 상속자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3.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17절)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우리를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한 일이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심판을 받지 않는 방법에 대해서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18절)고 말합니다. 이는 예수님을 믿으면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하신 구속의 은혜를 깨닫고 믿는 사람은 죄를 용서받게 되기 때문에 어떤 심판도 받을 필요가 없게 된다는 뜻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요5:24절에도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심판도 받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죄를 예수님이 대신 미리 심판을 받아 주셨기 때문에 죄를 용서받아 예수님 안에 들어가서 성령에 이끌리며 생명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알게 하십니다. 불가항력적 은혜를 하나님이 집중적으로 쏟아 부어 주시게 될 때 성령님이 그에게 깨닫게 하시고 믿어지도록 역사하시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허세와 교만을 회개하면서 하나님 앞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으로 살아 천국을 소망하는 그 사람은 하나님이 구원 얻은 표시로 성령을 그에게 파송시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말씀에 순종하고 거룩하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한 지체로서 하나님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권면의 말씀) 고후6:1~2절에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시키기 위하여 준비하시고 허락하신 그 기회가 바로 지금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예수님을 믿고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오늘 주신 말씀처럼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꽃 같은 눈으로 여러분들이 스쳐 가는 생각과 말과 행동까지 모두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헛되이 받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 안에 들어가면 이 땅에서 새 생명을 얻고 살게 됩니다. 또한 성령의 인치시고 인도하심에 따라 하나님 자녀의 자격으로 영생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즉 성령이 그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보증 세워주시면서 영원히 그 사람과 함께 하시며 천국 길로 이끌어가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어야 할 오늘의 복음인 것입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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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 때의 내 신앙환난 때의 내 신앙(다니엘 12장 1~13절) 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자가 자기의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원히 살아 계시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7절)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천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기다려서 천삼백삼십오 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10~12절) 이 시대를 살면서 지금 코로나 유행병으로 인해 국민들이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경제가 바닥에 허물어지면서 인간관계도 단절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가 하나님 앞에 대면예배마저 제지당하는 입장이 되어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신앙인으로서의 말이나 행동이 하나님을 실망시키고 여러 가지로 기대를 어긋나게 해드렸기 때문에 당하는 시련으로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모든 교회가 각성분발하며 회개운동을 일으킬 때입니다. 민족이 회개함으로 하나님께 용서받으면 하나님께서 이 모든 오늘의 불행을 회복의 역사를 통하여 영적인 기쁨이 넘치게 하시고 경제도 다시 활성화되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에게 원인을 돌리고 원망이나 불평을 할 것이 아니라 나부터 먼저 하나님 앞에 솔직히 자신의 신앙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애통하며 철저히 회개해서 모두가 각자의 죄를 온전히 용서받을 때 회복의 날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앞당겨지게 될 줄 믿습니다. 이 시간 바벨론 포로 시절에 많은 환난 속에서도 순교적 신앙의 정절을 지켰던 다니엘과 그 친구들의 믿음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1) 다니엘의 신앙의 정절 오늘 본문에 다니엘이라고 하는 사람은 그 이름 자체가 ‘하나님은 나의 재판장이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그 이름의 뜻대로 하나님이 자기의 재판장이신 줄로 생각하며 아무리 어려운 환난과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육신의 생명까지 하나님의 뜻에 의탁하고 믿음의 정절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당시 유대나라가 신앙이 변질되고 하나님께 불순종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을 일으켜 유대나라를 B.C 605년에 1차 침공하게 하셨습니다. 그 때에 많은 포로를 잡아갔는데 소년이었던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과 아벳느고도 함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과 친구들은 느부갓네살 왕의 수종드는 소년들로 선발되었습니다. 그래서 왕이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고 또한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넉넉히 먹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벨론제국 세력 확장을 위하여 여러 나라를 정복하고 강탈해서 빼앗아 온 불의한 것들임을 알았기에 그들은 신앙 정절을 지키기 위해 왕이 제공한 음식과 포도주를 거절합니다. 오히려 채식만 먹어도 왕의 음식을 먹은 다른 소년들과 비교해서 전혀 손색이 없도록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을 믿으며 환관장에게 열흘 동안 시험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결국 다니엘이 말한 대로 왕의 음식을 먹은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게 나타나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주셨습니다. 이것은 이들이 온전히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2) 다니엘을 높이신 하나님 5장에서 보면 벨사살 왕이 그의 귀족 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 술을 마시며 신들을 찬양하고 있을 때에 연회장 벽에 손가락이 나타나서 글자를 쓰는 것을 보고 박사들을 불러서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글자를 읽지 못하며 해석도 하지 못하자 벨사살 왕이 크게 번민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다니엘이 부름을 받아 왕 앞에 나와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영감적 계시로 그 글자가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글자를 보여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하나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곧 죽게 될 것이라고 하는 뜻이었습니다. 결국은 그 꿈을 해몽함으로 해서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이 셋째 치리자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다리오 왕이 즉위했을 때 다니엘은 용모가 준수하고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다니엘을 시기하여 죽일 계획으로 한 금령을 세우고 다니엘을 모함하게 됩니다. 결국 다니엘은 규례를 어긴 죄로 사자 굴에 들어가 사자 밥이 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사자 굴에 던져진 다니엘을 사자들의 입을 봉해 머리카락 하나 상하지 않도록 안전하게 지켜주셨습니다. 다니엘이 사자굴 안에서도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믿음의 정절이 육신이나 주변상황이나 어떤 권력 앞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하나님 절대주의 신앙으로 믿음의 정절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절대 신앙으로 사는 사람은 아무리 세상 시대와 형편이 바뀌어 간다 할지라도 그런 것에 굴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영적인 믿음을 알차게 가꾸어서 하나님께 인정받고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3) 다니엘이 본 환상 다니엘은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에 대해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4절)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이것은 이 시대처럼 인류역사 이래로 사람들의 이동이 가장 짧은 기간에 먼 곳을 왕래하고, 또 TV나 인터넷 그 외에 여러 가지 전자기기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지식이 넘쳐나게 전달되고 있는 때일 것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이 환상을 봅니다. “나 다니엘이 본즉 다른 두 사람이 있어 하나는 강 이쪽 언덕에 섰고 하나는 강 저쪽 언덕에 섰더니 그중에 하나가 세마포 옷을 입은 자 곧 강물 위쪽에 있는 자에게 이르되 이 놀라운 일의 끝이 어느 때까지냐 하더라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자가 자기의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원히 살아계시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5~7절). 이것은 바벨론에게 망한 유대나라가 포로 신세의 불행이 언제쯤 끝날 것이냐 하는 것에 대한 예언으로 일차적으로는 안디오쿠스 에피파네스의 박해의 때를 가리키나 종말론적으로는 말세에 있을 대 환난의 때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3년 반을 말합니다. 42달이고 1260일 이것은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교회를 허물어뜨리기 위하여 핍박과 온갖 악랄한 박해를 가하는 기간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교회가 완전히 깨어지기까지 박살난다는 것입니다. 안디오쿠스 에피파네스는 유대인들을 악랄하게 박해를 하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도록 예루살렘을 쳐들어가 성전과 성벽도 불태웠습니다. 그리고 그 성전 안에 하나님을 경배할 때 쓰인 모든 기물들을 바벨론으로 다 빼앗아 간 적그리스도의 모형을 한 자였습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세상 권력을 가진 정치인들과 또 그 권력의 시녀가 되어서 상대국 신앙과 종교를 말살시키려고 하는 사탄의 세력들이 동시에 역사했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니엘이 듣고도 깨닫지 못하여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나이까?(8절) 하고 질문을 했을 때 예수님이 ”다니엘아 갈지어다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라“(9절)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그 당시도 일차 실행되겠지만 이중적 예언이고 또 종말론이기 때문에 이 세상 역사가 끝날 때도 똑같이 되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한다는 것입니다(10절). 악한 자는 자기 죄악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심판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멸망을 재촉하며 하나님 앞에 무서운 형벌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회개하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하늘나라 갈수 있는 믿음을 가꾸기 위하여 자신을 더 정결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권면의 말씀) 본문에서 다니엘이 본 환상 가운데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이 권력을 잡고 세상을 지배하여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게 한다’(11절)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도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환난과 핍박의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신앙이 환난 때에 어떤 믿음을 보여주겠는가를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는 믿음들이 되시고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아무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믿음의 정절을 지켜 나갑시다. 이 모든 환난의 때를 타개하고 극복하면서 끝내 승리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이 실현될 때에 영생의 상급을 보장받게 될 것입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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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양은 내 음성을 듣고 따른다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25~26절)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27~29절) 본문 말씀에서 이스라엘 절기인 수전절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향해 그동안의 행적에 대한 여러 의혹을 품고 당신이 그리스도인지 분명히 밝히라고 질문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수많은 기적을 보여준 증거들과 가르침을 믿지 아니한 것을 책망하십니다. 이는 그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더 이상 백성들을 미혹하지 말라는 도전적인 질문이었음을 미리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을 향하여 “너희는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않는다”고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우리와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 설명합니다. 즉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양이 아니며 예수님을 믿어야 양이라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겪어보니까, 성령을 받지 못한 상태인데도 잘 믿는 척했던 사람이 마귀에게 속아서 지옥으로 끌려가고 있는데 그걸 알지 못하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어떤 성도는 예수님을 똑바로 알아보고 예수님께 완전히 맡기며 사는 것을 봅니다. 누가 예수님의 양일까요? 본문 말씀을 오늘 여러분들에게 왜 하나님이 일러주며 선포하게 하시는지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유대인들의 도발적 질문과 예수님의 답변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진짜 그리스도로 오신 분이면 우리에게 밝히 말씀해 달라. 언제까지 우리를 의혹 가운데 혼란에 빠져 있게 하겠느냐”고 도발적인 질문을 했습니다(24절).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단호하고 간단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25~26절)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셨습니다. 한 사례로 예수님은 맹인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요한복음 9장). 예수님은 나면서부터 맹인인 한 사람을 보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눈을 씻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 맹인은 일어나서 온 마음을 다하여 실로암 못을 찾아가 눈을 씻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가서 물로 눈을 씻고 밝은 눈으로 처음 세상을 보았을 때 이 맹인은 얼마나 황홀했겠습니까? 그는 눈을 뜬 것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통하여 자기 영혼이 천국 갈 소망의 믿음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맹인에게 행하신 것과 같은 기적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셨기에 자신이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데도 질문하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그 많은 기적을 보고도 믿지를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향해 더 이상 미혹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병 고침을 많이 받고 귀신이 쫓겨나가는 등 많은 기적을 보면서도 유대인들처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못한다면 구원 얻은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2. “내 양이 아닌 자는 믿지 않는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26절). 이 말씀은 참 무서운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가룟 유다가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 대해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요6:70~71)고 설명하십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를 제자로 택하시고 회계 업무를 맡기시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호칭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기껏 선생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돈을 예수님보다 훨씬 더 좋아했고 급기야 예수님을 은화 30개 받고 팔아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에 대해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세상에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마26:24)고 한탄하셨습니다.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 영혼이 지옥에 갈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양이 아니었음을 성경은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척해도 예수님의 양이 아닌 자는 영생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내 양은 내 음성을 듣고 따른다” 예수님께서는 목자와 양의 비유로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27절)고 설명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되며 예수님은 그들을 다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 예수님과 제자들의 만남의 장면이 나옵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에 대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고 고백하자 세례요한의 제자 두 사람이 그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와서 보라” 말씀하시니 그날 하룻밤을 예수님과 같이 지나면서 이 분이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제자 중 하나였던 안드레는 형제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오고, 예수님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며 그를 제자로 부르십니다. 또 예수님은 빌립을 만나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고 빌립은 예수님을 따릅니다. 빌립은 자기 친구 나다나엘을 찾아가 예수님을 소개하고 예수님께 데려갔습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보시고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고 칭찬하십니다. 나다나엘이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하고 묻자 예수님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고 대답하십니다. 그 말씀 앞에 나다나엘은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굴복합니다. 이 사람이 바돌로매로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그의 양을 알아보시며 그 양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믿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 ··· ‘영생’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믿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실까요?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28~29절)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자기 죄를 회개함으로써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힌 죄악의 담을 허물고 예수님과 하나가 됐을 때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얻은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영생(eternal life)’을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또한, 진리를 깨닫고 회개해서 성령을 모시고 생명책에 이름이 등록된 사람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고, 아무도 하나님 아버지 손에서 그를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권면의 말씀) 누가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고, 베드로는 밤이 새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했으나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해 한 번 더 그물을 내렸고, 결국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많이 잡게 됩니다. 베드로는 자기 생각, 자기 경험을 버리고 말씀에 순종한 결과 기적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하여 안드레, 야고보, 요한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보고 그분에게 자신의 생애를 온전히 의탁하며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충성스런 양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충성스런 양으로 쓰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가룟 유다처럼 믿는 척해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결국 지옥을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오직 주님만 따라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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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를 위한 사랑의 채찍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사마리아의 산에 있는 바산의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힘없는 자를 학대하며 가난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1절) 내가 너희 모든 성읍에서 너희 이를 깨끗하게 하며 너희의 각 처소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6절) 내가 너희 중에 전염병 보내기를 애굽에서 한 것처럼 하였으며 칼로 너희 청년들을 죽였으며 너희 말들을 노략하게 하며 너희 진영의 악취로 코를 찌르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0절) 아모스 선지자는 원래 양을 수천 마리 목축하는 생업을 가진 사람이었고 땅이 많아서 뽕나무 재배를 하는 농부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택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로 세우셨습니다. 본문 말씀은 이 아모스라는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완악한 죄에 대해 지적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신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재앙의 징조가 나타날 때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 말씀을 통해 살펴봅시다. 1.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압제한 자들에 대한 심판 예언 먼저 아모스 선지자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강력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의 산에 있는 바산의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힘없는 자를 학대하며 가난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하시되 때가 너희에게 이를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도 그리하리라. 너희가 성 무너진 데를 통하여 각기 앞으로 바로 나가서 하르몬에 던져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3절)고 심판을 예언했습니다. 여기서 ‘사마리아에 있는 바산 암소’라고 비유적인 표현을 하는 자는 누구를 말하고 있을까요? 이는 비옥한 바산 들의 암소처럼 힘없는 백성들을 착취한 사람들을 일컫습니다. 그 당시 권력을 잡은 사람들, 부유한 사람들은 너무 사치하고 호화롭게 살면서도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학대하고 압제한 죄를 범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진노하시고 아모스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도록 예언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심판의 예언은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북쪽에 위치한 앗수르라는 나라가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는데 이때 죄악을 즐기던 그들에게 갈고리로 귀를 뚫어서 거기에 귀고리처럼 만들어서 밧줄로 쭉 꿰어 끌고 갔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B.C.720년경에 역사 속에서 영원히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2. 이스라엘의 거짓된 예배와 그에 대한 심판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어떠했을까요?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며 낙헌제를 소리내어 선포하려무나.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것이 너희가 기뻐하는 바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4~5절) 아모스 선지자는 종교지도자들의 그릇된 예배 의식에 대해 조롱하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앞에 관행을 따라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고, 백성들도 하나님 아닌 다른 나라가 섬기는 다양한 여러 형태의 우상을 들여와 집에 신당을 만들고 복을 빌곤 했습니다. 살리시는 이는 하나님이셨는데 이렇게 나쁜 짓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도구로 주변 나라들을 사용하셨습니다. 주변에 있는 나라들을 강국으로 만들어서 이스라엘이 범죄하면 그들을 몽둥이 삼아 쓰신 것입니다. “앗수르 사람은 화 있을진저 그는 내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노라 내가 그를 보내어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를 치게 하며 내가 그에게 명령하여 나를 노하게 한 백성을 쳐서 탈취하며 노략하게 하며 또 그들을 길거리의 진흙 같이 짓밟게 하려 하거니와.”(사10:5~6) 이 말씀처럼 앗수르는 하나님의 도구로 이스라엘의 몽둥이가 되었습니다. 3. 재앙을 보고도 돌아오지 않는 백성들 아모스 선지자는 각종 자연 현상을 통한 재앙 7가지를 들어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태에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재앙은 기근으로 인해 양식이 떨어지게 하신 일이었습니다. “또 내가 너희 모든 성읍에서 너희 이를 깨끗하게 하며 너희 각처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6절) 그러나 이들은 양식이 떨어져 기근으로 굶어 죽어 가면서도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셨지만 이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재앙은 비를 멈추게 하신 일이었습니다. “또 추수하기 석 달 전에 내가 너희에게 비를 멈추게 하여….”(7절) 추수하기 석 달 전에 내리는 비는 이른 비에 해당합니다. 이 비는 추수를 앞두고 내리지 않으면 농작물에 큰 지장을 초래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목마른 사슴처럼 비가 내린 성읍을 찾아 물을 얻어먹으러 헤매고 다니면서도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지도, 하나님께 돌아오지도 않았습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재앙은 사막의 뜨거운 열풍이 불어와서 자라는 곡식을 선 채로 말라서 죽게 만든 재앙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삭이 새까맣게 재처럼 되고, 그 나머지를 메뚜기 떼가 다 먹어치운 재앙이 임했습니다. “내가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 재앙으로 너희를 쳤으며 팥중이로 너희의 많은 동산과 포도원과 무화과나무와 감람나무를 다 먹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9절) 그러나 이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져 죽을 지경인데도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재앙은 전염병과 전쟁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너희 중에 전염병 보내기를 애굽에서 한 것처럼 하였으며 칼로 너희 청년들을 죽였으며 너희 말들을 노략하게 하며 너희 진영의 악취로 코를 찌르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10절) 전염병이 돌아 사람들이 죽고, 전쟁이 일어나 젊은 군인들과 말들이 다 죽임을 당해 시체가 사방에 널브러져 있는데도 백성들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일곱 번째 재앙은 “내가 너희 중의 성읍 무너뜨리기를 하나님인 내가 소돔과 고모라를 무너뜨림 같이 하였으므로 너희가 불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 조각같이 되었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11절) 이는 이미 이스라엘에게 심판의 형벌이 시작되었지만, 그 심판으로 멸망하기 전에 끄집어내서 불을 끄고 다시 살려서 회복시켜 주려고 역사하셨는데도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4. 회개와 회복을 원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처럼 많은 재앙(7가지)을 당하고도 회개하지 않고 목이 곧은 사람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면 종국에는 망하게 될 뿐입니다. 잠언서에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잠29:1)는 내용이 나옵니다. 결국, 이 말씀처럼 이스라엘 나라는 망했습니다. 재앙은 이스라엘에게 회개를 위한 사랑의 채찍이었지만 이들이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셨는데도 전혀 살필 생각을 하지 못한다면 참 불행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나를 오늘까지 살리심으로 내가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12절) (권면의 말씀) 이스라엘에 임했던 재앙처럼 우리에게도 동일한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가 풍전등화처럼 바람 앞에 촛불 같은 상황에 처해 있음을 볼 때 큰 위기를 느낍니다. 전쟁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재앙의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면 아모스 선지자의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예언을 깊이 새기고 하나님께로 회개하고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시기 때문에 회개하고 돌이킨다면 건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재앙이 임했는데도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간절한 바람을 무시하게 되면 결국 심판을 받게 됩니다. 철저히 회개하고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방패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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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한다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1~2절)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6~7절) 요즘 코로나19 전염병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사람의 방법으로 치료해보기 위해서 백신을 만들고 치료약을 시도해 보지만 의술의 첨단을 자랑하는 이 시대에도 아직 확실한 대책을 내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전염병이 이 땅에 창궐하게 된 이유를 깊이 생각하고, 만일 우리의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의 형벌이라면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회개할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1. 외적 번영을 누리게 된 이스라엘 호세아가 활동했던 시기는 앗수르가 사마리아를 함락시키기 직전 여로보암2세가 통치하던 시기였습니다. BC 793년부터 753년까지 41년간 북쪽에 이스라엘 왕이 된 여로보암2세 때 호세아는 멸망을 재촉해가고 있는 북쪽 이스라엘(수도 사마리아)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당시 앗수르 왕은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다마스쿠스(다메섹)’를 수도로 하는 아람 나라를 쳐들어가서 아람 나라를 정복했습니다. 그런데 앗수르가 아람 나라를 쳐서 정복한 그다음에 자국 내에서 반란이 생겨 정치가 대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여로보암2세가 이 기회를 틈타 솔로몬 시대의 모든 영토를 되찾아 확보했습니다. 여로보암2세는 이스라엘 왕으로 오랜 기간 통치했으며, 북쪽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번영하게 했던 왕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 모든 나라, 지역에서 특산물들을 조공해 오도록 만들어서 북쪽 이스라엘은 짧은 기간에 엄청나게 부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앗수르도 주저앉히고 이스라엘이 부강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심으로 물질적으로는 풍요롭고 번영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외적으로 번영을 누렸지만, 영적으로는 대단히 타락하고 하나님 은혜를 알지 못하며 육적인 오늘을 즐기며 죄악을 일삼았습니다. 2. 죄에 빠진 이스라엘의 실상 영적으로 타락하고 죄악에 빠진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호4:1)라며 하나님은 탄식하고 계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사랑과 인자하신 은혜로 베풀어주신 그 모든 것을 전혀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 모르는 이스라엘 백성의 안타까운 실상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부강하게 된 것을 잊어버리고 자신들의 죄악의 본성을 따라 온갖 죄에 빠져 살고 있었습니다.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2절)고 그 죄를 지적하십니다. 하나님은 불꽃 같은 눈으로 한눈에 다 보시기 때문에 그 죄를 결코 숨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부강하게, 또 주변 나라가 쳐들어오지 못하게 막아 주셨는데도 하나님으로 더불어 살기를 소원하거나 힘쓰는 일이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조건 가지고 육신의 본능적 욕구를 따라 혈기와 정욕으로 방탕하며, 자신의 집에 우상을 세워놓고 그것에게 감사하다고 복을 빌기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더 이상 참으실 수가 없었습니다. 3. 하나님의 형벌 은혜를 잊어버리고 죄악을 일삼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님은 형벌을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거기 사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3절), “너는 낮에 넘어지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넘어지리라 내가 네 어미를 멸하리라”(5절)고 하나님의 형벌을 호세아를 통해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의 생명을 위해 먹을 수 있는 공중의 새, 들에 있는 짐승들, 바다에 있는 물고기까지 그들이 먹을 수 없도록 없애 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자연적인 재앙과 재난으로 인하여 땅이 황무해지면 자연히 초목이 시들고 메말라 땅에 사는 것들이 소멸되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전면적인 심판을 내리실 것을 예고하고 있음을 알려 줍니다. 이로 말미암아 육체의 생명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죄를 짓는 그들에게는 크나큰 고통이 될 것입니다. 4. 이스라엘이 망하게 된 큰 이유 이스라엘 자손이 형벌을 받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6절). 또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율법은 제사장들이 백성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사장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버린 것과 같은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죄를 지은 제사장들에게 형벌을 내리십니다. 그것은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도 잊어버리겠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제사장도, 그 자녀들도 하나님이 버리겠다는 선언이십니다. 오늘날 목사님들이 하나님 앞에 형벌의 대상이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이 양떼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가르쳐야 하는데 이를 소홀히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시키며 순종하도록 책임목회를 다 했어야 하는데 그와 반대로 성도들에게 회개하라는 말씀을 전하지 않은 겁니다. 그 결과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죄 가운데 살게 되는 것입니다. 5. 형벌 속에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이 내리신 형벌을 통해 육신의 모든 기대와 소망이 다 끝장이 나고 “이제 나는 죽음뿐이구나”라는 위기에 직면했을 때에 어떻게 하는 것이 사는 길일까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고,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회개하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모두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은 무자비하시고 파멸시키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리시는 모든 형벌은 그 형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깔려있습니다.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그에게서 떠났음이니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 그들은 곡식 같이 풍성할 것이며 포도나무 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이 되리라.”(호14:4~7절) 하나님은 회개함으로 돌아서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를 기대하시는 목적 때문에 그들을 형벌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벌만 내리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의 근본이시며 본체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권면의 말씀) 이스라엘 자손들은 부강해지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죄악을 일삼는 우를 범했습니다. 또한, 제사장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버리고 백성들을 바로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만약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죄악을 일삼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어쩔 수 없이 형벌을 내리실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호세아를 통해 그들에게 하나님의 형벌을 내리시겠다는 하나님의 준엄한 경고를 깊이 새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시대에도 죄악을 일삼아 회개하지 않으면 동일한 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 이것이 인재가 아니고 천재(하나님의 형벌)이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철저히 회개한다면 하나님은 그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은 인생들이 미워서 죽이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을 회개시켜 구원할 수 있도록 만드시기 위한 사랑의 채찍임을 명심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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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길을 열어 주시는 주님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1절)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5절)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8절)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하였느니라(10~11절) 오늘 우리의 일상이 너무나 불안하고 또 코로나 전염병으로 인해서 여러 가지로 위축된 심령들에게 때를 따라 주시는 말씀을 통해 이를 능히 극복하고 승리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는 내용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한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우리에게 이를 본보기로 삼고 동일한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시험을 당할 때는 피할 길을 주신다는 사실도 함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일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이 말씀을 선포하게 하셨는데, 1절부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일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홍해를 건너게 하셨는데 이를 세례받은 것이라고 바울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반석에서 구멍이 나게 하시고 물이 솟아 모두가 갈증을 면하는 흡족한 물을 마시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바울은 신령한 반석이라고 표현하였는데 그 반석을 예수님이시라고 말합니다. 요즘처럼 코로나 전염병이 많은 사람을 위협하고 있지만,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은 목이 마르고 힘들 때가 있어도 반석이신 예수님이 동행하시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으며 새 힘을 얻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반석에서 물이 나와 먹고 살게 된 사건을 통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반석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말씀을 통해서 살아야 함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광야교회의 모습을 고린도교회의 현재 모습과 동일시하여 광야교회가 어려움을 당한 일과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신 이유를 깨닫고 그 사건을 거울삼아 우리도 천국 백성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이스라엘 백성 다수를 멸망하심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5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끌어 가시는 과정인데, 왜 그들을 원치 않으셨을까? 그 이유에 대해 히브리서 3장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또 하나님이 40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17~19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조금만 어려우면 애굽이 좋았다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외치며 원망하고 불평하기만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지 않은 불신앙의 행동을 한 것이었지요. 그들의 불신앙이 결국은 그들로 하여금 약속받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갈 자격을 얻지 못해서 광야에서 다 엎어져 죽게 한 것입니다. 불신앙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3. 이스라엘 백성들이 멸망당하게 된 4가지 사건 사도 바울은 구약시대 광야교회에서 있었던 불행한 일들, 4가지 사건을 열거하면서 그들이 왜 멸망당하게 되었는지 그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사건(7절)은 출애굽기 32장에 기록된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호렙 산에 올라간 모세를 기다리다가 지쳐 아론을 통해 금송아지로 우상을 만들고 숭배한 사건입니다. 두 번째 사건(8절)은 민수기 25장에 기록된 것으로 광야교회가 싯딤에 이르렀을 때 모압 여인들의 꼬임에 빠져 간음하고 우상숭배에 이르게 되므로 하루에 2만 3천 명이 죽게 된 사건을 말합니다. 세 번째 사건(9절)은 민수기 21장에 기록된 것으로 광야교회가 가나안땅으로 진행할 때 에돔 땅을 지나가는 것이 쉬운 길이였으나 에돔이 거절하여 사해 오른쪽으로 돌아 산과 계곡을 지날 수밖에 없음에 백성들이 길이 험하여 불평함으로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사 그들을 심판하신 사건입니다. 네 번째 사건(10절)은 민수기 13장에 기록된 것으로 광야교회가 가데스바네아에 이르러 가나안땅에 12명의 정탐꾼을 보내어 40일을 탐지하였는데, 백성들이 희망과 승리를 말한 2명의 보고를 듣지 않고 절망과 불평을 보고한 10명의 말에 마음을 빼앗겨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한 사건입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광야교회는 40년간 광야를 헤매다가 출애굽 할 때의 1세대는 승리의 보고를 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다 광야에서 죽고 20세 미만의 2세대만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4.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주신 본보기 광야교회의 이러한 행적들이 오늘 코로나 전염병으로 어려움을 겪는 우리에게 경계의 말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6절),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11절).” 이런 일들은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경계의 교훈거리로 성경에 기록하게 하셨다고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기록하게 하신 말씀을 소홀히 여기지 말고 “나도 그러면 안 되겠구나” 하는 경계거리로 삼아 분발하도록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광야교회가 불행한 사건들로 멸망당한 일은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귀한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악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가면 살 길이 열릴 것입니다. 5. 피할 길을 주시는 하나님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피할 길을 내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13절) 하나님은 믿음직스러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시험당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실 뿐만 아니라 시험당할 때 피할 길을 열어 주셔서 그 죽을 지경에서 벗어나 살아날 수 있게 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여기 전염병이 돈다 할지라도 그 죄를 철저히 회개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어지면 그 사람은 그 죽음의 환란에서 피할 길을 열어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것을 성령으로 깨닫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회개할 때, 성령이 알게 해 주시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피할 길이 무엇일까요?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약5:13)라는 말씀처럼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철저히 회개하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회복되고 모든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권면의 말씀) 코로나 전염병으로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환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벌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광야교회의 불행한 사건을 교훈으로 삼고 악에서 돌이키는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살 길을 주시고, 피할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전염병의 두려움으로 불안해할 것이 아니라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시50:15)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피할 길임을 믿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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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볼로의 중생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24~25절)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26절)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27~28절) 본문의 말씀은 성경에 대해 지식으로는 능통하였으나 성령을 받지 못한 아볼로라는 사람이 바울의 동역자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 의해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 성령을 받아 중생하여 하나님의 복음을 담대히 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 성경에 능통한 아볼로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나서 성장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그 시대에 120만 명 이상이 모여 사는 세계에서 최고로 큰 도시로 동양과 유럽과 아프리카 3개 주가 연결되어 있고, 전 세계의 많은 학자가 모여 자신의 학설과 이론을 강론했던 학문이 세계에서 가장 특출난 곳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세계적인 대학자로 알려진 사람이 아볼로입니다. 그는 유명강사로 많은 사람 앞에서 초청받아 강의했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으로서 구약성경에도 능통했습니다. 또한, 그는 세례요한의 제자들로부터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에 대해서도 강론을 했습니다. 그러나 25절에 보면 “아볼로는 예수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쳤지만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볼로는 그때까지 예수님이 성경에서 예언된 그리스도로 믿어지지도 않았고, 진정한 회개도 못 한 한마디로 성령을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고전1: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이 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아볼 수 없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에게는 성령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아보게 하시고, 죄를 깨달아 믿어지게 하는 능력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볼로는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하고, 자신도 믿지 못하는 예수님을 전하는 어리석은 짓을 행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아볼로를 통하여 무엇인가를 기대했기 때문에 그를 초청해 말씀을 들었지만, 구원 얻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늘날 아볼로와 똑같이 성령 받지 못한 상태에서 예수님을 지식으로 전하고 대접받으려는 목회자들이 많이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아볼로처럼 지식만 가지고는 아무런 열매가 없습니다. 오직 성령을 받고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2. 복음을 듣게 된 아볼로 마침 바울의 동역자였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아볼로의 집회에 우연히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성령 받지도 못하고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아볼로가 예수님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성령 충만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성령을 받지 못한 채 자신도 모르게 지옥으로 가고 있는 아볼로를 보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볼로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는 것을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 즉 예수님에 대해 더 정확하게 풀어 가르쳤습니다.(26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전하는 말씀이 성령으로 전했기 때문에 아볼로는 대학자임에도 불구하고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주십니다. 그날 밤 대학자 아볼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깨달아 성령을 받았습니다. 3. 성령을 받고 중생한 아볼로 아볼로는 성령을 받고 비로소 중생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아볼로에게 있어 터닝포인트가 된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성령이 충만해지니까 아볼로의 인생관이 완전히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생애에서도 꼭 한번은 있어야 할 사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옥으로 가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구원 얻게 하려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처럼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만나게 하십니다. 그리고 전도자를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때 성령 받음으로 중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령의 역사에 굴복하여 깨지고, 지옥 갈 인생이 천국을 향하여 방향이 바꾸어지게 됩니다. 그 사람에게 성령의 임재가 시작되면서 삶의 방향이 정반대로 바뀌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에게 꼭 있어야 할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이것 없이 교회 다니는 사람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나기 이전의 아볼로의 상태와 같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 아볼로는 예수님에 대해 사람으로부터 배웠기 때문에 성령의 계시와 조명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생각대로 믿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 생각대로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예수님은 이런 분이실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입니다. 그러했던 아볼로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내외를 통해 복음을 들어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아볼로는 그때까지 예수님을 잘 아는 척하고 남들에게 가르치기도 했지만, “나는 그동안 지옥 가고 있었구나”를 깊이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볼로의 가치관이 완전히 달라진 것처럼 우리도 이제는 온전히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을 받고 중생의 경험이 꼭 있어야 할 것입니다. 4. 복음 증거자가 된 아볼로 아볼로는 성령 받기 전에는 세상의 조건을 가지고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고 대접을 받으며 살았지만, 이제 예수님 앞에 회개하며 성령 받고 난 이후에는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가 너무너무 감사해서 “내가 어떻게 그 은혜를 보답할까?”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영적인 소망인 영광스러운 천국과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이후 아볼로는 자신을 아가야 지방에 선교사로 파송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었다”(27절)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세상 지식으로 전했는데 이제는 성령의 도우시는 역사로 믿는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는 사람이 아볼로였습니다. 또한, 그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이다”라고 증언하며 많은 사람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기었습니다.(28절) 즉, 예수님을 부인하는 유대인의 주장을 꼼짝 못 하게 만든 것입니다. 아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여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기 위한 헌신의 마음이 불일 듯 했습니다. 그는 성령이 주신 지혜를 가지고, “구약성경이 예언한 대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고, 또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예수님이시니 그분을 믿고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신 증거로 성령을 주신다”는 사실을 증거하였습니다. 이렇듯 아볼로가 구약성경을 예수님과 딱 맞추어 증거하자 예수님을 이단 취급하던 유대인들도 감히 대항하지 못하고 말씀 앞에 굴복하더니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권면의 말씀) 오늘날 교회에도 성령 받기 전 아볼로와 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목자를 애타게 합니다. 목자의 사명은 맡겨 주신 양 떼들이 지옥 가지 않고 천국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애타게 성령께 간구합니다. ‘그들이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같이 흐른다(시119:136)’고 시편 기자가 고백한 것처럼, 양 떼가 주의 법을 지키지 않으면 목자의 눈에는 시냇물처럼 눈물이 흐릅니다. 우리 중에 예수님을 지식으로 아는 데 머물러 있다면 진정으로 회개하여 성령 받고 중생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또한, 성령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는데 더욱 힘쓰기를 축원합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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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부활로 영생 복락을!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19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24절)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28~29절) 본문 내용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에 대해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자 예수님이 그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1. 아버지(하나님)와 아들(예수님)은 하나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19절)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버지가 세우신 계획과 진행하시는 일들을 아들도 똑같이 진행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즉, 이것은 아버지께서 하시던 일을 그 아들이 계승자로 사역을 감당하러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다음 20절에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 말씀은 예수님이 생명의 주관자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10:28~30)고 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에 대해 신성 모독으로 여겼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이심을 거듭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특권을 얻은 성도는 예수님으로 인해 만물보다 크신 아버지 손에 붙들려서 천국 길로 이끌리며 쓰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는 누구도 만물보다 크신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 2.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러 오셨습니다. 21절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구약시대에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죽은 사람을 살리신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와 같이 이제부터 아들이신 예수님도 자기가 원하는 자를 살리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증거로 공생애 3년 동안에 예수님은 세 사람을 살리셨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고, 또 나인성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슬퍼하는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고 하셨을 때, 마르다가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라고 대답했지만, 실상은 마지막 날 부활할 때에 자신의 오라버니가 다시 살아날 줄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하시며 큰 소리로 나사로의 이름을 부르자 그 즉시 살아났습니다. 예수님도 아버지처럼 이 땅에서 죽은 자들을 살리시는 일을 실제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심판을 예수님께 맡기셨습니다. 22절에 보면,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심판을 예수님에게 맡기신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요 죄 없으신 예수님만이 모든 인류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신 분으로, 바로 그 예수님이 아버지로부터 심판하는 권세를 부여받은 것이지요. 예수님은 이어 23절에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아들이신 예수님 자신도 아버지와 같이 공경을 받으셔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공경은 헬라어로 “티마오”라고 하는데 이는 “영광을 돌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같이 그 아들이신 예수님을 공경하고 영광을 돌리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아버지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고 마지막 때 심판주로 오실 것입니다. 4.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습니다.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라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얻었다는 것은 이미 영생에 들어갔다는 완료형입니다. 영생에 들어갔다는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합니까? 이는 성령 받은 그 순간 그 사람의 이름이 하나님의 생명책에 등록되는데 이것을 영생에 들어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영생은 아버지가 보내신 아들 예수님을 믿을 때 얻습니다. 영생을 얻은 성도는 하나님이 영원히 사시는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삽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14:16) 이 말씀처럼 영생을 얻은 성도는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5.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자는 살아납니다. 25절에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죽은 자들을 누가 살리신 것입니까?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2:1)고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바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신 분이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열쇠가 되는데 우리는 이미 죄악 가운데 마귀와 더불어 지옥 길을 가고 있었을 때 그것을 영적으로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신바 그 부활의 복음을 듣고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게 되고 다시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6.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나올 것입니다. 예수님은 28~29절에,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에 이끌리며 쓰임 받는 성도입니다. 성령에 이끌리면 죄짓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선한 일을 한 성도는 생명의 부활로 일으켜질 것입니다. 반대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누구입니까? 이 사람은 마귀에게 사로잡혀서 마귀가 시키는 대로 악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악한 일을 한 사람은 심판을 받아 지옥 가기 위하여 심판의 부활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이 기다리는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행24:15)고 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의인의 부활은 선한 일을 행한 성도에게 해당하는 말하며, 악인의 부활은 악한 일을 행한 자에게 해당합니다. 사도 바울도 의인의 부활, 악인의 부활을 거론하며 예수님의 말씀과 동일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권면의 말씀)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행하십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습니다. 영생을 얻은 성도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복을 누리고 선한 일을 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생명의 부활로 일으켜질 것입니다. 생명 부활로 영생 복락을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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