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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학 목사의 논문 원문(7)- 일평생 경안노회를 떠나지 않은 주의 종(從), 임학수목사일평생 경안노회를 떠나지 않은 주의 종(從), 임학수목사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 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임학수 목사(林鶴洙, 1884-1969) 임학수 목사는 안동 땅에서 출생하고 안동 땅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늘나라에 갔다. 그는 안동 땅에서 예수님을 만났고, 안동지역에 있는 교회를 섬겼다. 그는 하나님이 보내신 교회, 크고 작은 교회를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섬겼다. 그래서 그가 시무한 교회는 든든히 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가 교회를 섬긴 시대 상황은 결코 만만한 세월이 아니었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고 강압적으로 통치하던 시대였다. 보통 사람들인 백성의 삶도 고단했지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삶은 더 고난의 연속이었다. 황국신민화를 강요하는 일제의 정책 하에서 예수 믿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임학수 목사는 단순한 성도로서가 아니라 교회의 지도자인 목사로 살아야 했기 때문에 더 큰 믿음과 용기, 그리고 인내와 소망이 필요했다. 그러나 임 목사는 어려운 시기에 교회의 지도자와 경안노회의 중심인물로 그 사명을 잘 감당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황금만능주의와 세속화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위기를 맞고 있다. 거룩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교회, 영적 리더십을 가진 존경받는 주의 종,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성도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을 보며 낙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다가 교회가 영영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지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게 된다. 그러나 교회의 능력은 분명히 회복될 수 있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세워진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교회는 과거의 교회와 과거의 선배들이 남겨놓은 교훈을 배워야 한다. 교회역사를 올바로 이해해야 하며, 거룩한 영향력을 끼친 믿음의 선배의 삶을 본받아야 한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바로 임학수 목사다. 그는 분명한 소명의식을 갖고 헌신한 사명자였다. 그는 신실한 하나님의 일꾼인 동시에 도전하는 교회의 일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학수 목사의 신앙과 삶을 연구하고 정리한 글은 이교남 목사가 쓴 ‘한학자 임학수 목사’ 외에는 거의 없다. 그가 안동지역이라는 복음의 변방에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선교부가 위치해 있었지만 안동은 작은 도시였기 때문에 안동지역에서 활동한 교역자나 평신도들은 한국교회에 알려지기 보다는 묻혀 있을 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한계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임학수 목사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흔적을 남긴 주의 종이었다. 그래서 임학수 목사의 성품, 인격, 신앙을 포함한 삶은 오늘을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 도전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소논문은 이러한 목적을 위해 연구되었다. 연구 결과 필자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고 영원히 잊혀 질 수 있었던 임 목사의 신앙과 삶을 새롭게 발굴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 일평생 단 한 번도 경안노회를 떠나지 않고 충성을 다한 믿음의 대선배인 임학수 목사가 걸어간 거룩한 구원사역의 흔적을 찾아보도록 하자. 1. 임학수(林鶴洙), 믿음의 조상(祖上)이 되다 임학수는 1884년 6월 23일 부친 임보현과 모친 정덕희 사이에서 장남으로 안동군 녹전면 매정리(일명 갈골)에서 출생했다. 특히 1885년은 원두우(元杜尤, Horace Grant Underwood) 선교사와 아편설라(亞扁薛羅, Henry Gerhard Appenzeller) 선교사가 인천 제물포에 첫발을 밟은 해로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임학수의 본관은 부안으로 호는 영온(嶺穩) 혹은 영루(嶺樓)이다. 령(嶺)은 재, 산봉우리라는 의미를 갖는다. 온(穩)은 ‘평온하다’와 ‘곡식을 거두어 모으다’는 뜻을 갖는다. 따라서 영온(嶺穩)은 ‘평온한 산봉우리’라는 의미로 산봉우리가 조용하고 평안한 것처럼 하나님의 교회가 평온하기를 소망했던 것 같다. 또한 영온(嶺穩)은 ‘곡식을 거두어 모으는 산봉우리’라는 의미로 산봉우리 같은 하나님의 교회가 자신의 사역을 통해 구원받은 알곡과 같은 성도들이 넘쳐나기를 소원했던 것 같다. 또한 루(樓)는 다락의 뜻으로 영루(嶺樓)는 산봉우리에 있는 다락과 같은 망대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임학수 목사는 악한 세력이 성도들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조망하고 감시함으로써 교회와 성도들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임학수는 1894년 박계남과 결혼하여 임상경, 임상교 남매와 손자 1명과 손녀 4명을 두었다. 1911년 10월 23일, 임학수는 매정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의 모친인 정덕희는 1913년 6월 14일에, 처(妻)인 박계남은 1916년 2월 16일에, 장남 임상경은 1922년 매정교회에서 각각 세례를 받았다. 임학수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난 후에 모든 식구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임학수는 한 가문에 있어서 믿음의 조상(祖上)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1909년 9월, 임학수에 의해 설립된 매정교회를 섬기던 임학수 가정은 1923년 5월 10일 안동의 어머니(母) 교회인 안동교회로 이명(移名)했으며, 이명한 후에는 온 가족이 줄곧 안동교회를 위해 헌신했다. 임학수 목사의 장남(長男)인 임상경은 안동교회에서 장립집사와 장로의 직분을 받았으며, 오랫동안 제직회 서기, 당회서기로 봉사했다. 임학수 목사의 자부(子婦)인 강신덕은 교회학교 교사, 청년회, 성가대에서 헌신했다. 특히 강신덕은 당시 내매교회를 섬기고 있던 백부(伯父) 강병주 목사의 조카로 대구 신명여학교를 졸업한 신식 여성으로 학창시절에는 육상, 테니스 등 운동도 잘 했다고 한다. 당시 임학수 목사와 강병주 목사가 친밀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임상경과 강신덕은 결혼하게 되었다. 임학수 목사의 손녀인 임화자 권사는 어머니 강신덕를 이렇게 기억한다: 어머니 강신덕은 신앙이 두터운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 신학문을 배운 여성으로 깊은 신앙과 지혜로 슬기롭게 어려운 목사 가정의 살림을 잘 꾸렸다. 대가족 집안일도 많았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고 주일학교 반사, 여전도회 임원, 구역권찰로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열정적으로 헌신했다. 사경회나 교회행사 때마다(크리스마스 새벽송 찬양대 식사) 식사 준비로 봉사를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목사관 뜰에서 몇 백 명의 밥을 큰 가마솥 3개에 불을 지펴서 하는 일은 늘 어머니의 몫이었다. 강신덕의 가정은 초기 한국교회부터 오늘날 까지 믿음의 큰 산맥을 이룬 가정이다. 큰 아버지인 강병주 목사는 평양신학교 14회 졸업생으로 내매교회, 영주교회, 그리고 풍기교회를 담임하면서 6차례 경안노회장을 역임했으며, 1933년 총회의 부름을 받고 서울로 임지를 옮겨 총회 산하교회의 신앙교육과 교사양성과정을 책임지며 교사양성에 주력한 분이다. 또한 서울의 새문안교회를 담임한 강신명 목사는 강병주 목사의 장남이기도 하다. 이처럼 임학수 목사의 후손은 뿌리 깊은 믿음의 가정으로 어디서나 주님의 교회에 헌신하는 일꾼들이 되었다. 노후에 장남을 따라 부산으로 이사한 강신덕은 거성교회에서 권사로 임직을 받았다. 임상경 부부는 거성교회를 섬기다가 별세하였다. 임학수 목사의 장녀인 임상교는 권사로 대구 신암교회에서 시무하였으며, 손자 임재오는 부산 거성교회에서 장로로 시무하였다. 친손녀인 임순오는 부산 수영로 교회에서 권사로, 임양자는 안동교회에서 집사로, 임화자는 서울 밀알교회에서 집사로 헌신하고 있다. 부모세대의 믿음과 헌신을 계승하여 후손들이 계속해서 아름다운 믿음의 가문을 이어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임학수 목사의 평소의 삶은 비단 신앙 뿐 아니라 인격, 품성 등에 있어서 자녀손들에게 선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적어도 임학수 목사로 인해 교회를 이탈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만큼 임학수 목사는 목사로서의 삶도, 부모로서의 삶도, 또한 인간으로서의 삶도 모자람이 없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임학수가 한 가정의 믿음의 조상이 됨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하 내용은 논문원문 첨부파일 참조)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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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목사는 어느 편일까요?천석길 목사 구미남교회 신학생 시절에 같이 자취했던 절친 목사와 통화를 했습니다. 개척 이후 아름답게 성장하고 있는 교회인데 요즘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지를 물었습니다. 자기들은 정부에서 방역지침을 내리기 전에 자발적으로 온라인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뉴스에서 말하기 전에 교인들에게 교회에 오지 말고 집에서 예배를 드리라 했고 수요일, 새벽기도회까지 그렇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웃하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서 신뢰를 보낼 것이고, 또 교인들을 보호할 수 있답니다.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건물 안에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합니다.(맞는 말입니다) 요즘 9시 뉴스에 몇 번 나온 핫한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와 통화를 했습니다. 신학교에서 7년 동안 같이 공부한 동기입니다. 그 친구의 기질과 열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교회는 주일은 물론이거니와 새벽기도회, 수요예배 실황을 동영상 촬영해서 자발적으로 공무원에게 보낸답니다. 오천 명이 앉을 수 있는 좌석에 우리는 거리 두기를 철저히 해서 20명이 아닌 천 명이 예배하고 있으니 교회를 폐쇄시켜 달라고 했답니다. 다른 교회도 그렇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교회가 폐쇄당하면 헌법소원을 해서 대한민국 헌법이 말하는 종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에 대해서 재판을 받겠다는 겁니다. 그는 말하기를 교회만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편파적이기 때문에 헌법의 기준으로 판단을 받아서 다른 교회에 희망을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용기가 부러웠습니다) 두 명의 친구는 모두 옳습니다. 그런데 천 목사는 이도 저도 아니었습니다. 교회에 오지 말라는 매몰찬 말을 못하니까 교회를 폐쇄시킨다는 경고장도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폐쇄시켜 달라고 할 만큼의 용기는 더더욱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소리 지르고 싶지만, 담임목사의 입장에서는 투쟁이 전부는 아닌 듯합니다. 코로나 팬데믹을 영적전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피할 수 없는 새로운 시대 전환으로 준비해야 하는지? 묻고 물으면서 주일이면 텅 빈 예배당에서 4부 예배까지 목이 쉬도록 설교하는 천 목사는 어느 편일까요? 어리버리해 보이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편에 서서 교인을 지키고 싶어하는 마음은 이전보다 더 간절하답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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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회 예배처소의 변화와 안동지역의 복음화(4)안동교회 예배처소의 변화와 안동지역의 복음화(4)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목차 서론 1. 첫 번째: 기독서원(基督書院) 2. 두 번째: 선교사 임시주택 3. 세 번째: 선교사 주택 4. 비공식 예배처소: 텐트 교회 5. 네 번째: 16칸 ‘ㄱ’자 예배당 6. 다섯 번째: 목조 2층 예배당 7. 여섯 번째: 2층 돌집예배당 결론 5. 네 번째 예배처소 : 16칸 ‘ㄱ’자 예배당 당시 인구 15,000명의 안동은 불교, 유교, 무교의 대표적 도시였다. 하지만 척박한 안동 땅에도 복음의 씨가 뿌려졌고, 결국 안동교회는 8명이 모여 1909년 8월 둘째 주일에 첫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새디(Sadie) 선교사가 ‘Korea Mission Field’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약 1년 전에 리더들과 7명(5명의 남성과 2명의 여성)의 성도로 시작한 안동교회는 첫 예배 당시 어느 누구도 세례를 받은 사람은 없었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무려 75명의 성도로 성장했다”고 기록한다. 그 결과 비좁은 기독서원과 선교사 사택 등에서 예배를 드리던 안동교회는 예배당 신축이 현안으로 대두되었을 것이다. 안동교회 80년사는 네 번째 예배장소가 1911년에 건축된 안동시 광석동 214번지에 소재한 ‘ㄱ’ 자형의 16칸 크기 건물이었다고 기록한다. 정확한 위치는 100여 년 전 구한말 진영(陣營)이 있던 터로 현재 안동여고 올라가는 사거리의 농협 뒤편에 있는 건영화물 자리이다. 당시 안동교회 성도들은 자신의 첫 예배당을 건축하기 위해 정성껏 헌금했다. 그 결과 첫 삽을 뜬지 1개월 후에 감격의 준공을 맛볼 수 있었다. 16칸 예배당은 약 30평 정도로 결코 작지 않은 규모였다. 공사비에 관한 기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건축비를 알 수는 없지만, 선교사들이나 교인들의 헌신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안동교회 초대 담임인 김영옥 목사는 자신의 노새를 팔아 건축헌금을 한 것으로 손자 김형태 목사는 밝히고 있다. 드디어 준공된 첫 예배당에서 안동교회 교인들은 1910년 10월 30일 주일, 역사적인 입당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1910년 11월 1일 권찬영 선교사가 미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쓴 편지에 따르면 그동안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은 ‘ㄱ’자 예배당의 형태와 규모를 밝히고 있다: “교회는 “L”자 모양이고, 각 부문은 16x24 피트 면적이다. 각 부문 맨 끝에는 8x16피트 면적의 방들이 있는데, 한국식 화로(아궁이, 역자주)가 설치되어 있어서 저희가 여러 날에 걸친 성경공부반을 열 때면 사람들이 그곳에서 잠을 잘 수 있게 되어 있다.” ▲권찬영 선교사의 편지를 기초로 16칸 ‘ㄱ'자 예배당의 구조를 다시 설계한 것. 양쪽으로 남·여가 따로 출입했을 것으로 추측되며, 양 끝에 방 하나씩을 둠으로써 특별한 집회가 있을 경우 숙박할 수 있도록 했다.(그림 1) 당시 선교사들은 8x8 피트를 한 칸으로 생각했으며, 이 도안을 따르면 정확히 16칸 건물이 된다. <그림 1>은 16칸 ‘ㄱ’자 예배당을 재구성한 도안이다. 새디 선교사가 1910년 10월 25일 쓴 편지에 따르면 신축한 ‘ㄱ’자 예배당에는 무려 450명 정도가 앉을 수 있었고, 아직 바닥이 깔리지 않은 상태에서 흙바닥에 자리를 깔고 예배를 드렸지만, 곧 다가올 겨울을 위해 난로를 준비함으로써 성도들을 위해 배려하는 모습도 보였다는 것이다. ‘ㄱ’자 예배당이 준공된 후 곧이어 특별집회가 열렸다. 신축된 ‘ㄱ’자 예배당에서 1910년 11월 13일부터 20일까지 평양 장대현교회의 길선주 목사의 특별부흥집회가 있었다. 길선주 목사는 1907년 평양대부흥 운동의 기수로 이미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강사였다. 안동교회는 이 집회를 위해 체계적인 준비를 했다. 이 집회에서 98명이 결신을 했는데, 이 수는 이미 안동읍에 존재하는 것으로 언급된 그리스도인의 수보다 많았다. 매 집회 시간마다 예배당에는 많은 사람이 모였다. 길선주 목사는 예수를 믿어야만 하는 이유를 공개적으로 선포했다. 집회 마지막 날 오전 10시 30분에 시작된 집회는 만원을 이루었다. 예배당은 꽉 찼다. 길선주 목사의 설교 후 한 남성이 죄 때문에 비명을 지르며 깨지는 일이 발생했다. 다음날 새벽기도회 후 집회는 마무리되었는데, 시내에서 유력한 두 명의 남성을 포함한 98명의 새 신자가 얻어졌다. 길선주 목사의 특별부흥집회는 안동지역 선교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새디 선교사는 1911년 6월 8일 여성성경공부반 모임을 마친 후 일기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여신자들과 교회에 갔다. 아서(오월번 선교사)가 그들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여성들과 어린이들 뒤의 초가집이 안동교회가 처음으로 건축한 16칸 ‘ㄱ'자 예배당으로 추정된다.(사진 7) 신축된 예배당은 이런 형태의 집회를 위해 계속 사용되었다. 특히 ‘ㄱ’자 예배당의 신축은 여성과 소녀를 위한 성경공부반의 활성화를 가져왔다. <사진 7>의 ‘ㄱ’자 예배당 앞에서 찍은 사진에는 여성성경공부반을 마친 후 많은 여성을 볼 수 있으며, 이전 예배처소인 기독서원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에는 많은 남성을 볼 수 있다. 더욱이 1910년 11월 26일 의료선교사인 장인차가 쓴 편지에 따르면 안동교회의 첫 번째 예배당의 준공 이후 안동복음화는 보다 활성화되었다: “안동장은 아주 큰 장으로, 항상 수천 명의 상인과 손님들로 북적북적합니다. 장날에 150명이 넘는 열성적인 한국인 신자들이 성경책, 찬송가, 소책자 뭉치들을 들고 군중들 속으로 들어가 복음을 전하는 모습은 목도합니다. 그들의 열심과 불과 같은 열정, 반대에 직면하게 될 때 보여지는 천성적인 선한 인내심은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말씀을 전하면서 그들은 사람들에게 이날이 바로 안동에 구원이 임한 날이므로 즉시 믿을 것을 강권합니다. 그들의 전도를 받은 많은 사람이 비가 온 하루를 제외하고 매일 저녁 예배에 왔습니다. 교회는 사람들로 가득 찼고, 밖에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처럼 안동교회는 창립된 지 불과 1~2년 만에 놀라운 부흥을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오월번 목사의 조사였던 김영옥은 1911년 6월 평양신학교 4회로 졸업하고 동년 11월 대구제일교회에서 안수를 받은 후 안동교회에 부임했는데 그는 안동교회의 초대목사인 동시에 경북 북부지방 최초의 한인 목사였다. 안동교회는 경북에서는 대구제일교회 다음으로 한인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가 되었고, 김영옥 목사의 뛰어난 영적 지도력은 안동 지역의 복음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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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덕분에?천석길 목사 구미남교회 영화에나 나올법한 코로나로 인해서 모든 게 뒤죽박죽이 되었습니다. 잠시만 참으면 회복될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위협적이며 이제는 자연스러웠던 모임과 교회생활이 아득한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정치와 언론이 교회를 희생양으로 삼아서 신앙생활 자체를 위협하는 듯한 최근의 현실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현장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횟수가 줄어들면서 신앙적으로 연약한 성도들은 자연스럽게 말씀과 기도와 교제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전화도 하고 심방도 하지만 자주 만나지 못하므로 인한 거리감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시기를 지나면서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환경이 주는 어려움 때문에 어쩔 수 없으니까 ‘이건 내 탓이 아니라 환경 때문이다’라는 핑계로 기본적으로 감당해야 할 자신의 몫까지 손을 놓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코로나 때문”에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꺼림칙하다는 이유만으로 주일은 물론이거니와 새벽기도회와 수요예배에도 나오지를 않습니다. 물론 목장에도 참석하지 않고, 믿음의 식구들과 교제하는 시간도 아예 끊어버립니다. 그나마 있던 신앙의 온기가 사그라드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데 똑같은 코로나로 인해서 생각의 차원이 다른 분들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신앙에 약한 남편이 코로나로 인해서 교회에 출석하는 것을 반대할 때에 아주 단호하게 답을 받아 내기를 ‘대신에 나와 함께 온라인 예배는 반드시 참여해 달라’는 약속을 받아낸 후에 함께 예배하면서 남편의 생각이 확실하게 달라졌다는 “코로나 덕분”이라는 분이 있었으며, 코로나로 인해서 힘겨운 누군가를 알뜰하게 챙기기도 하고, 이전에는 여럿이 모이던 목장에서 이제는 작은 숫자가 모일 수밖에 없는 “코로나 덕분”에 나눔의 깊이가 훨씬 달라졌다는 분도 있습니다.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에 임하는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지 싶습니다. 같은 돌멩이에 걸려 넘어지면서 불평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을 옮겨 징검다리를 놓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때문에”라고 말할 때에 우리는 “덕분에”라고 말할 수 있는 은혜로운 성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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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70주년 기념, ‘한국교회 구국기도대성회’“한국교회여 깨어나라!” … “제2의 6.25를 막아주시고 복음통일을 주옵소서!” 6월 25일~27일 영락교회에서 ▲‘한국교회 구국기도대성회’가 서울 영락교회에서 6월 25일부터 3일간 개최된다.(홍보영상 캡처) 6‧25 전쟁 7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 구국기도대성회’가 서울 영락교회(김운성 목사 시무) 본당과 50주년기념관(베다니홀)에서 6월 25일 오후 1시부터 27일 오후 1시까지 3일간 진행된다. 주제는 ‘제2의 6‧25를 막아주시고 복음통일을 주옵소서!’이며, 주제 성구는 ‘칠십년만에 그치리라...(단9:2)’이다. 성회는 3일간 ‘회개와 하나님 나라, 교회연합과 복음통일, 영적부흥과 세계선교’ 등의 주제로 예배, 특강, 간증, 기도회를 진행한다. 이번 성회는 글로벌연합선교훈련원, 세계협력선교회, ANI선교회, 에스더기도운동본부, 마가의다락방기도원, 영락교회, 오륜교회, 삼일교회, 온누리교회, 지구촌교회, 선한목자교회 등 16개 단체와 교회가 공동 주최한다. 주최 측은 “6‧25 전쟁 7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가 함께 금식하고 중심으로 통회 자복하여, 우리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하며 하나님의 보좌 앞 금향로에 기도의 향(계8:3)을 올림으로, 제2의 6‧25 전쟁을 막고 복음통일의 문을 여는 원년이 되기 위함”이라고 성회 목적을 밝혔다. 3일간 집회에서 개회예배는 김운성 목사(영락교회), 폐회예배는 박보영 목사(마가의다락방기도원), 새벽기도회는 이재훈 목사(온누리교회)와 안희환 목사(예수비전교회), 저녁집회는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 원로)와 임현수 목사(토론토 큰빛교회 원로)가 각각 강사로 나선다. 이 외에 간증에는 흥남철수 산증인인 김수웅 목사(대전홀리클럽 고문), 최복이 이사장(본월드미션), 탈북민 지현아 작가 등이, 특강에는 김재동 목사(하늘교회), 이용희 대표(에스더기도운동), 김용의 선교사(로그미션) 등이, 찬양에 최미 선교사, 김석균 목사, 장욱조 목사, 손영진 사모 등이 각각 참여한다. 기도 메시지는 김양재 목사(우리들교회), 김은호 목사(오륜교회), 유기성 목사(선한목자교회), 조정민 목사(베이직교회), 최요한 목사(남서울비전교회), 한 홍 목사(새로운교회), 이예경 선교사(ANI선교회) 등이 전한다. 이번 성회는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참석 인원을 1,200명으로 제한했으며, 영락교회에서는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가운데 충분한 거리를 두면서 집회를 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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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이 더 필요할 때천석길 목사 구미남교회 우리 모두는 언제 끝이 날지 모를 막막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더 답답한 것은 이 소용돌이가 끝이 나면 그다음에 일어날 후폭풍에 대해서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더 두렵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 갑갑한 시간을 어떻게 지혜롭게 보낼 것인가에 대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많아집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처음 들어 보는 말을 매일처럼 뉴스를 통해서 접하면서 모든 모임의 자리에서 2미터 간격을 두고 앉으라는 말을 듣습니다만, 말이 그렇지 현실적으로 2미터씩 떨어져 앉아서 식사할 수 없고, 2미터씩 떨어져서 사무를 볼 순 없습니다. 지킬 수 없는 말이지만 그 말을 자꾸 듣다 보면 괜히 ‘가까이 지내야 할 인간관계만 점점 멀어지는 것은 아닌가?’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캠페인으로 인해서 정작 우리가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일에서 점점 멀어지지 않도록 물리적으로는 잠시 떨어져 앉을지라도 마음으로는 더 가까이, 더 헌신해야 할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할 때입니다. 실제로 사회적인 활동을 줄이다 보니 집안에서 온 가족이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사회적으로 거리두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회와 거리가 멀어지는 성도들이 생겨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많습니다. 어쩔 수 없이 잠시 멀어지지만 이런 때일수록 서로를 향한 헌신이 필요한 때입니다. 시대가 평화롭고 은혜로울 때는 각자가 기쁜 마음으로 맡은 일을 감당해 왔으니까 웬만한 일은 어려움 없이 잘 처리되어 왔습니다만, 요즘 같은 시대에는 의외의 어려움을 당하는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들을 향한 우리의 자세는 헌신이어야 합니다. 헌신이란 말을 어떻게 정의할까를 생각해 보니 헌신은 귀찮은 일을 오히려 기쁨으로 감당하는 마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족을 위해서 음식하고 빨래하는 일, 분명 귀찮은 일이지만 너무나 당연하게 기쁨으로 감당할 때에 가족이 힘을 얻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새벽기도회에 나오는 일은 분명히 귀찮은 일 중의 하나입니다만, 헌신하는 성도님들이 있어서 힘을 얻습니다. 선교지에서 고군분투하는 선교사님을 위해서 기꺼이 선교헌금으로 함께하는 마음이 헌신입니다. 오늘 하루를 지나면서 귀찮지만 해야 할 일, 그것이 헌신입니다. 헌신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이 따르는 수고가 있을 때입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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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통합 교단, 30일부터 예배당서 ‘코로나19 퇴치’ 릴레이 기도총회, 코로나19 제6차 교회대응지침 발표 … 2020 종려주일과 부활주일 맞이 지침도 내놔 (사진=인터넷 캡처)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총회장 김태영 목사)가 3월 30일부터 예배당에서 ‘코로나19 퇴치와 치유를 위한 릴레이기도’를 실시해 줄 것을 전국교회에 요청했다. 이는 종려주일과 부활주일을 앞두고 온 교회가 전심을 다 해 현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고자 함이다. 총회는 지난 26일 ‘코로나19 감염증 제6차 교회대응지침’을 발표하고, “3월 29일을 금식기도주일로 지킬 것”과 함께 “코로나19 퇴치와 치유를 위한 릴레이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기를 요청하는 내용을 지침에 담았다. 이번 6차 지침이 지난 지침들과 다른 점은, 방역 당국의 집회 안전수칙을 준수한다는 전제하에 교회 형편에 따라 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제한을 풀었다는 것이다. 지침은 3월 30일(월)부터 4월 4일(토)까지 이어지는 릴레이기도는 예배당 내의 기도처소를 지정해 성도들이 각각 개별적으로 기도를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 이때 기도 장소와 참가자는 수시 소독, 손소독제 비치, 명부 작성, 마스크 착용 등 기존의 사회적거리두기 지침을 엄격하게 이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종려주일(4월 5일)과 수난주간(4월 6일~11일), 부활주일(4월 12일) 맞이도 방역에 적극 협조하면서 준비하도록 했다. 특히, 4월 12일 부활주일에 대해서는 “부활주일예배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찬양하며 코로나19의 퇴치를 위해 온 교우가 기도하는 예배가 되도록 하나님 은총을 구하기”를 요청했다. 다만, 한국교회 70여 교단이 부활절연합예배의 날짜 변경을 협의하고 있음을 고려하여, 스승의주일 겸 청년주일인 5월 17일을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로 특별히 정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해도 좋다고 안내했다. 또한,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예배로 인해 이웃에게 걱정을 끼치는 일이 없도록 코로나19 방역과 예방에 각별히 주의할 것도 당부했다. 예방차원에서 ▲예배당 밖의 공간이 여유가 있을 경우 성도가 차량에 탑승한 채 예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일시적인 FM송출장비 사용 ▲노령층이나 건강약자들을 위해 일시적으로 별도의 시간을 정해 예배 등 상세한 추가지침도 내놨다. 총회는 공무원이나 방역담당자나 교회를 방문했을 경우 정중하게 맞이하되 지침 요령에 따라 안내하라며 한국교회법학회의 자문을 받은 4가지의 별도지침도 제시했다. 아래는 ‘(6차)코로나19 감염증 제6차 교회대응지침’ 전문. (6차)코로나19 감염증 제6차 교회대응지침 코로나19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하여 온 국민이 함께 노력하고 있습니다. 본 교단의 각 교회는 총회가 코로나19의 확산 방지를 위해서 다섯 차례에 걸쳐 발표한 교회대응지침(2020.1.30., 2020.2.21., 2020.2.26., 2020.3.13., 2020.3.20.)을 준수하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4월 5일(주일)은 종려주일에 이어서 4월 6일(월)부터 11일(토)까지 수난주간을 거쳐 4월 12일(주일)에 부활주일을 맞이하게 되니, 각 교회는 5차 교회대응지침의 “코로나19 퇴치와 치유를 위한 금식기도주일”과 “코로나19 퇴치와 치유를 위한 릴레이기도”를 통하여 열심을 다해서 하나님께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예배당에서 기도할 때에는 코로나19의 방역과 예방을 위한 방역당국의 요청을 엄격하게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 코로나19 퇴치와 치유를 위한 금식기도주일 본 교단의 각 교회는 총회가 선포한 2020년 3월 29일(주일)을 “코로나19 퇴치와 치유를 위한 금식기도주일”을 지켜 주시고 모든 목회자와 성도들이 한 끼 이상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제5차 교회대응지침에서 발표한 내용을 별지에 수록하였으니 이를 참고하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코로나19 퇴치와 치유를 위한 릴레이기도 본 교단의 각 교회는 예배당에서 3월 30일(월)부터 4월 4일(토)까지 “코로나19 퇴치와 치유를 위한 릴레이기도”를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가. 교회 형편에 맞게 순서를 정하여 성도들이 차례대로 릴레이기도에 참여하여 기도하도록 안내하시기를 바랍니다. (예, 교구별, 구역별, 남녀선교단체별, 직분별 등) 나. 릴레이기도를 위해서 기도시간과 예배당 내의 기도처소를 지정하시되, 개별적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사회적 거리를 충분히 유지하시기를 바랍니다. 다. 릴레이기도 장소는 반드시 수시로 소독하고, 입구에 손소독제를 비치하시기를 바랍니다. 라. 릴레이기도 참가자 명부를 작성하고 사전에 체온을 측정하며 참가자는 마스크를 착용하시기를 바랍니다. 마. 주기도문, “코로나19 퇴치와 치유를 위한 금식기도주일” 기도문과 기도제목을 사용하시되 교회에서 기도문이나 기도제목을 추가하셔도 좋습니다. 바. 발열이나 기침, 인후통 등의 증상이 있거나 예배당에서 기도하지 못할 형편의 성도는 각 가정이나 처소에서 기도할 수 있도록 도우시기를 바랍니다. ■ 2020 종려주일과 부활주일 맞이 정부의 방역당국은 4월 6일(월)에 초중등학교 2020년도 1학기 개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본 교단의 각 교회는 안전하게 초‧중‧고등학교가 개학하도록 그 기간까지 방역에 적극 협력하시면서 종려주일과 수난주간, 부활주일 맞이를 준비하시기를 바랍니다. 가. 3월 29일(주일)에 “코로나19 퇴치와 치유를 위한 금식기도주일”을 지키실 때 예배당에서 목회자와 당회원이나 항존직, 혹은 제직 등의 소수의 예배자가 함께 예배드리시기 바라며, 그 외의 성도들은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나. 4월 5일(주일) 종려주일예배를 교회 형편에 따라서 3월 29일 주일과 같이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다른 성도들은 온라인으로 참여하여도 좋으며, 종려주일예배를 성도들도 예배당에서 드릴 때에는 예배 횟수를 늘려서 간격을 조절하여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시고, 아래 추가지침의 방역당국이 제시하는 집회 안전수칙을 준수하시기를 바랍니다. 다. 4월 6일(월)부터 11일(토)까지 수난주간의 특별새벽기도회나 성금요일 기도회도 교회 형편에 따라서 예배당에서 드리는 기도회와 온라인 기도회를 겸하여 가지셔도 좋으며, 예배당에서 기도회를 가질 때에는 사회적 거리 유지를 비롯한 집회 안전수칙을 준수하시기를 바랍니다. 라. 4월 12일(주일)의 부활주일예배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찬양하며 코로나19의 퇴치를 위하여 온 교우가 기도하는 예배가 되도록 정성껏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다만 한국교회 70여 교단이 부활절연합예배의 날짜 변경을 협의하고 있음을 감안하여, 본 교단이 정한 스승의주일 겸 청년주일인 5월 17일을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로 특별히 정하여 교우와 함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셔도 좋습니다. 2020 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 날짜는 확정되는 대로 한국기독공보를 통하여 알려 드리겠습니다. 마. 본 교단의 각 교회는 예배당에서 드리는 각종 예배와 기도회에서 코로나19의 퇴치와 피해자 치유, 의료진 등의 관계자를 위해서 기도하며, 교회 주변의 취약계층을 보살피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 코로나19 방역과 예방을 위한 추가지침 본 교단의 각 교회는 금식기도, 릴레이기도, 종려주일예배, 부활주일 등의 종교행사를 가질 때 방역당국에서 제시하는 집회 안전수칙을 준수하여 안전한 예배를 드리도록 각별하게 유의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조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나,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예배로 인해서 이웃에게 걱정을 끼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는 것임을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가. 안전수칙은 ① 발열, 기침, 인후통 등 증상 확인하기, ② 입장 및 퇴장 시 손 소독하기, ③ 마스크 착용하기, ④ 간격 유지하기, ⑤ 집회 전후 시설 소독하기, ⑥ 교회 내 단체 식사 금지하기, ⑦ 시간대별 집회 참여자 인적 사항 확보하기 등입니다. 나.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될 때까지 가급적 예배시간이 길어지지 않도록 주의하시고, 성만찬예전을 생략하거나 예배 예전에 있어서 안전한 예배에 도움이 되는 조치를 하셔도 좋습니다. 다. 예배당 밖의 공간이 여유가 있는 교회는 차량에 탑승한 채 예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일시적인 FM 송출장비를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라. 연세가 많은 어르신이나 건강에 염려가 있는 약자들을 위하여 일시적으로 별도의 시간을 정하여 예배를 드리도록 조치하셔도 좋습니다. 마. 지방자치단체나 방역당국에서 예배당을 방문하는 경우에는 이를 정중하게 맞이하시되 별지의 요령에 따라서 안내하시기 바랍니다.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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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평생 경안노회를 떠나지 않은 주의 종(從), 임학수 목사(4)일평생 경안노회를 떠나지 않은 주의 종(從), 임학수 목사(4) 김승학 목사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안동교회 담임목사 임학수 목사(林鶴洙, 1884-1969) 목차 서론 1. 임학수, 믿음의 조상이 되다 …………………………… 10. 사경회에 온 힘을 쏟다 11. 전교인 기도회에 힘쓰다 12. 교회의 분립을 결의하다 13. 구제 사역을 시작하다 14. 안동교회 돌집 예배당을 건축하다 15. 사경회 강사로 활동하다 …………………………… 20. 후학을 위해 매진하다 결론 10. 사경회에 온 힘을 쏟다 교회는 집중적으로 교인들에게 성경 교육을 하기 위해 매년 사경회를 개최했다. 개최되는 사경회에 많은 성도가 참여했으며, 참석한 성도들은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안동교회의 최초 사경회는 1917년 1월 초에 열렸으며(강사는 이희봉 목사와 맹의와 선교사), 성경을 올바로 알고 배우기 위해 시작한 사경회는 해를 거듭할수록 열기가 더해 갔다. 많은 성도는 사경회를 통해 일제 강점기에서도 소망의 하나님을 새롭게 만날 수 있었다. 임학수 목사는 부임한 해인 1929년, 9월 18일부터 저녁부터 8일 동안 남자 성도를 위한 사경회를 열었다. 또한, 1930년 4월 14일 저녁부터 14일 동안 교회 진흥 전도회를 갖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1930년대 초 있었던 사경회는 1년에 상·하반기 두 차례 열렸으며, 기간은 6일~8일로 요즘과 비교할 때 긴 시간이었다. 특히 한 명의 강사가 초빙된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의 강사가 사경회를 인도했다. 또한, 참석자의 수도 당시 교인의 숫자와 비교할 때 높은 비율의 성도들이 참석했음을 알 수 있다. 때로는 달(月) 사경회라 해서 한 달간 혹은 2~3개월 장기간에 걸쳐 성경 전체나 혹은 몇 권씩 집중적으로 공부하기도 했다. 임학수 목사는 시무 기간 동안 사경회를 중심으로 성도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는 사역에 집중함으로써 안동교회와 지역의 교회를 말씀에 기초한 든든한 교회를 이루어 나가는 기초를 마련했다. 11. 전교인 기도회에 힘쓰다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새벽기도회는 1906년 가을, 평양 장대현 교회의 길선주 장로에 의해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전부터 새벽기도를 드리는 교인들이 많이 있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예배당에서 혹은 산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새벽을 깨우며 또는 밤을 새워가며 기도했다. 이후 새벽마다 울려 퍼지는 교회당 종소리는 새벽 기도시간을 알렸으며, 밤마다 부르짖는 철야기도는 한국 교회의 부흥을 이룬 아름다운 전통이 되었다. 이와 같은 기도의 열정은 안동교회에서도 동일했을 것이다. 1910년 11월에 안동교회에서 있었던 길선주 목사가 인도한 특별부흥집회에도 새벽기도회 순서가 있었다. 임학수 목사는 열심히 기도하는 주의 종이었다. 때때로 그는 특별한 기도제목을 가지고 온 교회가 함께 기도의 시간을 가졌음을 안동교회 제직회의록은 기록한다. 1929년 1월 안동교회는 새해를 맞이하면서 1주일 동안 신년기도회를 했다: “만국 연합신년기도회 매일 저녁 1주간 회집하기로 하였으며.” 만국 연합신년기도회는 세계 열방을 위해 중보(仲保) 하는 것을 뜻한다. 또한, 1935년 추수감사절에 1주일 동안 특별기도회 시간을 가졌다. 이것은 장로교 공의회의 결정 사항이기도 했으며, 임학수 목사는 이 결의를 잊지 않고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면서 한 해 동안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특별기도회를 했던 것이다. 임학수 목사는 기도하는 일에 게으르지 않은 종이었다. 그래서 교회를 기도하는 교회로, 성도들을 기도하는 성도들로 훈련했고, 그 결과 안동교회는 기도하는 교회가 될 수 있었다. 12. 교회의 분립을 결의하다 1909년 8월 8일 세워진 안동교회는 지속적으로 부흥하고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1913년 66명에서 1932년에는 장로 4명, 세례교인 198명, 유아세례인 73명, 교인 총 수 549명으로 교회가 크게 부흥했다. 이때 안동교회는 발상의 전환을 했다. 안동 읍내에 안동교회 하나의 교회만으로는 안동을 복음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결과 안동 읍을 세 개 지역으로 나누고 분가식(分家式)으로 교회를 분립하기로 결정했다. 안동교회의 첫 분립시도는 교회가 설립된 지 10여 년이 지난 후 시작되었다. 안동교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안기동 지역에 전도인을 파송하여 집중적으로 전도를 했고, 그 결과 1924년 1월 초가 6칸을 포함한 160평 대지를 매입할 수 있었다. 이 가옥을 안동교회 안기기도실로 명명했으며, 안동교회에서 이명하여 간 성도들을 중심으로 예배를 드렸다. 이후 안기교회가 안동교회로부터 공식적으로 분립하여 독립적 교회가 된 것은 임학수 목사가 시무하던 1932년 8월이었다. 이때 안기동 130번지 100평 대지 위에 30평 규모의 예배당을 새롭게 건축하고 안기교회(현 안동서부교회)라 칭하게 되었다. 신세교회(현 안동동부교회)의 분립도 안기교회 분립과 같은 맥락으로 이루어졌다. 안동교회는 1932년 2월, 안동교회 교인 중 경계 동편에 거주하고 있던 남성 20명, 여성 40명, 어린이 50명, 총 110명을 이명함으로써 신세교회가 분립되었다. 이후, 신세동 99번지에 대지 100평을 구입하여 건평 40평의 함석지붕의 목조 예배당을 신축하고 교회 이름을 신세교회라고 명명했다. 이처럼 안동 땅의 복음화는 분쟁에 의한 분열이 아닌 창조적인 분리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그 중심에 안동교회가 있었다. 그 결과 안동·안동서부·안동동부 이 세 교회가 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협력해 훗날 목격할 안동지역의 복음화를 위한 기초를 다질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 교회분립에는 임학수 목사의 역할이 매우 컸으며, 그 결과 척박한 땅인 안동지역의 복음화를 앞당길 수 있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정확한 연도를 알 수 없는 경안노회 여전도회 도사경회로 많은 여전도회 회원들이 사경회를 마치고 안동교회 본당 앞에서 모여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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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을 한 권 읽으십시다.천석길 목사 구미남교회 참 괜찮은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 너무 강해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자기 일에는 열심도 있고, 실제로 어떤 일을 처리하는 능력도 있지만, 전체를 보는 관점이 부족하거나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분별력을 갖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당연히 기도하고 성경읽기라고 대답할 수 있겠지만, 기도와 성경읽기에만 빠져 있으면 오히려 자신을 가두는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기도하는 나, 성경 읽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를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의 교제가 필요합니다. 교제를 통하여서 나보다 더 배운 사람, 나보다 더 많은 것을 경험한 사람을 통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가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는 낯선 곳으로 여행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여행은 우리를 객관화시키는 일에 굉장히 중요합니다. 내가 사는 삶의 울타리를 넘어서서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보면서 나를 알아가는 중요한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모르는 사람과 무조건 교제하는 것은 어색하고, 낯선 세계를 향하여 여행을 떠나는 것도 용기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아우를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것은 그 분야에 탁월한 책을 읽음으로써 사람도 만나고 다른 세계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책 읽기를 해야 하고 그 책을 내 것으로 소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더 좋은 것은 같은 책을 읽고 서로의 지식과 감정을 공유하는 것은 최고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특별새벽기도회 시간에 한 권의 책을 정해서 같이 읽으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읽어 오시면 제가 정리해서 짧게 설교할 것이고 그 내용으로 나눔을 하고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이번에 김남준 목사님의 <게으름>이라는 책을 같이 읽으려고 합니다. 두껍지 않고 비싸지도 않은 책이어서 게으르지 않으면 누구든지 읽을 수 있습니다. 한번 도전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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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흔들흔들?천석길 목사 구미남교회 최근에 있었던 일입니다. 여느 날처럼 새벽기도회에 나가기 위해서 분주하게 서둘렀습니다. 새벽 4시,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 간단하게 머리를 감고 머리카락이 날리지 않도록 기름도 발랐습니다. 그리고 양복을 갖춰 입고 그 위에 외투까지 걸쳐 입고 안경을 끼고 성경책이 든 가방을 들고 서둘러 집을 나왔습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섰는데 갑자기 휘청 거리면서 어지럼증이 살짝 왔습니다. ‘어, 왜 이러지?’ 그러면서 내려 왔습니다. 주차장으로 가는 몇 계단을 내려서는데 조금 더 흔들리는듯한 느낌이 왔습니다. 어제 저녁 늦게까지 책을 읽은 탓이겠거니 생각하면서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했습니다. 잠시 후 신호를 받고 차가 멈추어 섰는데 앞에 있는 신호등이 흔들흔들거립니다. ‘이상하네... 오늘 낮에 병원에 가 봐야겠네. 아마도 달팽이관에 이상이 생겼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달팽이관 운운하는 것은 섣부른 의학지식이지만 60세 전후에 가끔씩 겪는 증상입니다. 귀 안쪽에 달팽이 모양의 균형추가 있어서 일어서고 앉고 할 때 바로 바로 중심을 잡아 주는 그 기능에 이상이 오면 많이 어지럽거나 구토가 나고 심하면 병원에 입원을 하는 질병입니다. 교회로 오는 짧은 시간이지만 입원까지 하는 상상을 했습니다. 자리에 앉아서 설교할 성경본문을 찬찬히 읽기 시작하는데 이상 현상이 또 생겼습니다. 평소와는 다르게 성경의 글씨체가 너무 또렷하고 크게 보였습니다. 아․뿔․싸! 새벽에 서둘러 오느라고 책을 읽을 때에 쓰던 돋보기안경을 끼고 나온 것이엇습니다. 돋보기는 가까운 거리의 책을 읽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먼 거리는 오히려 사물이 흔들려 보이기에 길을 걸을 때는 돋보기를 끼면 안되거든요. 잠시 후 강단에 올라섰는데 성도들이 온통 희뿌옇게 보이거나 흔들리고 있어서 앞을 보면서 설교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자신만이 아는 이런 일이 우리에게는 종종 있지 싶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많은 경우 ‘내 생각’이라는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면 내 욕심으로 인해서 세상이 온통 불평으로 흔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이라는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면 온 세상이 아름답고 안정적으로 보일 것입니다. 내 이웃과 내가 하는 일까지 모두 감사로 넘쳐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안경을 쓰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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