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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1~2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6절)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우리 죄를 위하여 육신을 입고 사람으로 오셔서 그 몸으로 우리 죗값을 대신 담당해 죽임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운명하신 그 일을 생각해 보며 예수님의 말할 수 없는 고난의 결실로 우리가 구원받았음을 감사함이 마땅합니다. 본문 이사야 53장은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기 약 700년 전에 예언된 말씀입니다. 구약의 예언대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그 뜻을 성취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미리 선포하고 기록하게 하신 그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당하셨다는 이 복음을 믿고 십자가를 바라보는 신앙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가리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천국 가는 길이 되시며 진리가 되시고 영원한 생명이 되어 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진리의 말씀을 애타게 전하시고 이적과 기사를 보여주셨음에도 믿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본문에 예언되었기를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1절)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반어법적인 표현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이스라엘에 선포되었음에도 그들이 믿지 않았고, 하나님의 크신 권능이 그들의 역사 가운데 체험되었음에도 믿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고 반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팔은 구원하시는 만능의 팔로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팔, 그 팔이 누구에게 나타납니까? 바로 세상 학문이 부족할지라도 성령으로 지혜를 얻은 사람입니다. 즉, 그 사람에게 성령의 지혜를 주셔서 성령의 계시와 조명으로 하나님을 알아보게 하시고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희생양으로 내 죄를 십자가에서 대신 당해 주신 사실을 알게 하고 믿어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성경에서는 복 받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2. 예수님의 볼품없는 모습 예수님의 모습이 본문 2~4절까지는 이제 부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타락한 인간들의 잘못된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에 대해 그릇되게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는, 즉 앞으로 700년 후에 세상에 태어나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자라날 때의 모습이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 볼품이 없다고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타락한 인간의 눈으로 볼 때 고운 모양도 풍채도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다고 말합니다(2절). 그것 때문에 “그는 멸시를 받고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3절)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한 것과 너무나도 다른 볼품없는 모습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무시와 외면당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다”(3절)고 안타까운 심정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옥 문턱으로 끌려 빠져들고 있는 타락한 인간들에게 있어 예수님의 볼품없는 모습은 귀하게 여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가 전한 이 복음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라며 그렇게 반어법으로 말씀을 미리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고통에 대해서는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4절)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우리가 질병으로 당하는 고통을 예수님이 대신 담당하셨다는 것을 말하며, 지은 죄로 인한 우리의 슬픔을 예수님이 대신 담당하셨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4절)고 잘못된 판단을 내려 버립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그러니 예수님을 볼품없는 모습으로 여기고 잘못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과연 구원 얻을 자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신 것은 나를 위해 대신 담당하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참으로 복 있는 자입니다. 3. 예수님이 고난 당하신 목적 예수님이 왜 고난을 당하셨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이 다음 구절에 이어집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5절)고 전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머리에 수십 개의 가시가 찔려서 피가 한없이 흘러내린 것이 바로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라고 말합니다. 또 예수님의 온몸이 상하신 것이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죗값으로 받을 벌을 예수님이 대신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신이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화목을 위한 희생양이 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를 온갖 질병에서 나음을 얻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몸의 모든 병을 고침 받게 해 주신 것입니다. 전에 말씀드렸듯이 그동안 여러 집회 현장에서 실제로 많은 병자가 나음을 얻었습니다. 암으로 의사가 죽는다고 하였지만 하나님이 고쳐주심으로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또 미국에서도 소경이 눈을 뜨고, 대구에서는 나병환자가 깨끗이 낫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은 증거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였나요? 6절에 보면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이라고 한탄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심으로 평화를 주시고 나음을 주셨건만 우리는 여전히 잘못된 길로 걸어가는 양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양처럼 잘못 행하여 자기 멋대로 죄만 짓는데도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고 말씀하신 것을 볼 때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사61:1)라고 이사야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대속의 희생양으로 세상에 오셔서 하실 일을 미리 예언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선포되고 700년 후에 예수님께서 그 일을 성취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권면의 말씀)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코로나19에 전염될까 봐 전전긍긍하며 신앙생활은 다 포기하고 엎드려 있지는 않으십니까? 예수님을 진짜 믿는 사람이라면 자기 형편과 처지가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죽음 직전에 있다 할지라도 주님께 나아가 엎드려 고백할 수 있는 용기와 또 확신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라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질문한 것처럼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묻고 계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죗값으로 시달려 왔던 모든 절망과 실패, 또 고통스러운 만 가지 질병, 여러 환란 등 어떤 문제든지 간에 예수님께서 해결 못 하실 일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느니라”(막9:23)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내 구원을 위해 죽임당하신 예수님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아니했다는 것이 오늘 여러분들의 신앙생활로 믿음의 결실을 꼭 이루어가시기를 바랍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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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가 지켜야 할 경계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6~7절)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13절) 세상이 여러 가지로 힘든 일들이 많고 또 코로나로 인해서 생명을 잃게 되는 사람이 날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도하심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눈동자 같이 보살피시고 영원한 하늘나라 후사로 삼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무한하신 사랑을 충만하게 받아서 신령한 소망 가운데 기뻐 뛰며 할렐루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쓴 편지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이 저지른 지난 과오들을 몇 가지 실례를 들어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이 본보기가 되고 말세를 사는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한 내용입니다. 그런즉 우리는 본문 12절 말씀처럼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경고를 깊이 새겨들어야 할 것입니다. 1.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 본문 1~2절은 출14:21절 이하 기록된 말씀을 인용한 내용입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 하며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모세와 아론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애굽 땅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시니 결국 바로가 항복하게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이 비로소 애굽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고 있을 즈음 저 뒤에서 바로 왕의 군대가 쫓아오고 앞에는 홍해 바다가 가로막고 있는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바다가 갈라지게 하여 무사히 건너게 하신 반면, 애굽 군대는 모두 몰살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은 눈동자같이 보호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유린했던 애굽 사람들에게는 무서운 징벌을 내리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편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바다 가운데로 안전하게 지나게 하신 것이며 애굽 군대가 무장하고 달려와도 지켜 주신 것이었습니다. 이 일에 대해 사도 바울은 그 바다 가운데로 지나는 것을 ‘세례 받은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2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와 합하여 애굽에서 나와 바다를 건넘으로 세례를 받게 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받은 자녀로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신 것처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바로 그 하나님이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2. 신령한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 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다 같이 신령한 음식을 먹었습니다. 이것은 자기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까지 광야 40년 동안 안식일을 제외하고 매일 아침 하나님이 내려주신 음식이 바로 ‘만나’였습니다. 그리고 신 광야를 거쳐서 르비딤이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그들이 마실 물이 없어 백성이 원망하자 모세가 하나님께 엎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출17:6)고 명령하십니다. 그 말씀을 듣고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 물이 쏟아져 넘쳤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그들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이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말합니다(4절).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자신에 대해 친히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7:37~3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반석에서 나온 물을 마신 것처럼 오늘 우리 믿는 사람들도 예수님께 나아와 생명수를 마셔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성령이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을 천국으로 이끌어 가 주실 것입니다. 3.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저지른 지난 과오들을 몇 가지 실례를 들어 말세를 사는 우리에게 본보기로 삼자고 말하면서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기를 권면하였습니다. 첫 번째로(7절), 출32:1~6절 말씀을 인용하여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 간 지 40일이 되었으나 기별이 없자 애굽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인도할 우상 신을 만들어 달라고 아론에게 요구합니다. 아론은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백성들과 먹고 마시며 우상을 숭배하는 과오를 저질렀습니다. 이 일에 대해 하나님은 크게 진노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과오를 본보기 삼아 우상 숭배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유 명절이 되면 조상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예수님 보좌 앞에서 심판받게 됩니다. 따라서 제사 드리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어리석은 일로 우상 숭배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8절), 민25:1~9절 말씀을 인용하여 음행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땅에 머물러 있을 때의 일입니다. 그 모압에 남자들이 숨어들어 가서 우상에게 절하고 모압 창녀들과 음행하는 간음죄를 지었습니다. 이 일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염병으로 이만삼천 명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우리도 그들과 같이 음행해서는 안 되며 자신을 살펴 거룩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세 번째로(9절), 민21:4~89절 말씀을 인용하여 시험하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불편한 광야로 들어가려 하자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였습니다. 원망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불뱀을 보내 물게 하여 죽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죄를 회개하자 놋뱀을 만들어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보면 살게 해 주셨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4~15)고 설명하십니다. 이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모두 살아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로(10절), 민14:26~38절 말씀을 인용하여 원망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12명의 정탐꾼을 보냈는데 40일 동안 정탐을 마치고 돌아온 10명의 정탐꾼들이 말하길 “우리가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고 보고하였습니다. 이에 백성이 이 말을 듣고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다며 원망하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오늘 우리도 절대로 주변에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어리석고 잘못했기 때문임을 깨닫고 회개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권면의 말씀) 오늘 본문 말씀에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한 것이라”(11절)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실패한 사람이 저지른 과오를 교훈으로 삼아서 동일한 실패를 하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특별히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원망과 불평을 하기 쉽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13절)고 격려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그러므로 어떤 시험이 와도 여러분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죄를 저지른 일을 거울삼아, 우리는 시험에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시길 축원합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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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번성하게 하는 계명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1~2절)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11절)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18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처럼 네 자손이 많아질 것이다”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의 믿음을 하나님이 의롭게 여기셔서 100살에 기적적으로 이삭이라는 아들을 낳게 하셔서 약속을 성취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모세를 지도자로 세워 애굽왕 바로에게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내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앞에 불신앙으로 인해 광야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다 죽게 되고 맙니다. 사십 년의 광야 생활이 끝나고 2세대들이 이제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이때 모세가 이들에게 마지막 고별 설교를 하게 되는데 이것이 신명기서입니다. 본문 말씀은 모세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지내고 새로운 곳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당부하는 내용입니다.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당부의 말씀이 내게 생명의 양식임을 깊이 깨닫게 되기를 원합니다. 1. 광야 길을 걷게 하신 특별한 목적을 알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면 살고, 번성하여 가나안 땅을 차지할 것(1절)을 약속하면서 사십 년 동안에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2절)고 당부합니다. 광야 사십 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마실 물과 먹을 양식이 없어 불평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필요를 항상 채워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광야 생활을 왜 그들에게 허락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을 낮추시고 시험하사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고 광야 생활을 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하시려는 목적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궁핍한 백성들에게 만나를 공급하셨는데 이것도 특별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의 양식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3절)고 분명하게 그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육의 양식만이 아니라 영의 양식도 있어야 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즉 영의 양식인 말씀이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요6:63)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영을 영원히 살게 하는 생명의 보장이라는 뜻입니다. 순종함으로 그 말씀이 그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의 본체이신 예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경외하고 찬송하라 하나님은 광야 사십 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시고 입히셨습니다. 모세는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4절)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그동안의 생활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요즘 아무리 물질문명이 첨단을 자랑하듯 발전했다지만, 가죽으로 만든 옷도 사십 년 동안 입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가지고 나온 옷이 사십 년을 입어도 해어지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지켜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또 발이 부르트지 않았다는 기록은 육신의 몸이 병나지 않도록 지켜 주셨다는 뜻입니다. 사십 년 동안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육신의 질병이 생기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지켜주셨기에 가능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끌어가시는 교회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에 순종하고 경외하라고 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6절) 또한, 앞으로 들어갈 가나안 땅에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넘칠 것을 모세는 말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 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7~10절) 이것은 가나안 땅의 풍요로움을 일러 주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이 이들에게 배불리 먹이시고 옥토를 주셨음으로 인하여 그를 찬송하라고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을 잊지 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시지만, 이들이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릴 것을 모세는 염려하였습니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12~14절)며 주의할 것을 당부합니다. 계속해서 모세는 백성에게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하심이었느니라”(14~16절)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위험한 광야에서도 은혜를 베푸신 것이 그들을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시려고 하신 까닭이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시험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의 신앙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육신이 원하는 세상에 마음을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순종한 자에게 선한 청지기로서 더 많은 것을 맡기실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복을 자기의 능력으로 얻은 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모세는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17절)고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재물 얻을 능력을 누가 주십니까?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18절)고 모세는 말하면서, 하나님이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으니 오직 하나님만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지만, 그것을 내 것으로 착각하고 욕심으로 채우면 사울 왕처럼 하나님께 버림당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권면의 말씀) 우리는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무엇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집중하며 살았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만일 그리스도 밖에 있으면서 육신이 원하는 세상 물질에 욕심을 부리고, 열심히 노력하여 부를 모았다면 그것은 헛되이 바람을 잡는 것과 같습니다. 그 사람에게 그것은 아무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 영혼구원 하는 일에 전심을 다 했다면 하나님께서 보상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필요한 모든 것, 은혜도 주시고, 건강도 주시고, 명분도 주시고, 기회도 주시고, 물질도 아낌없이 주십니다. 단지 그것을 선한 목적으로만 사용하기를 힘쓰면 됩니다. 지금까지 교회 다니면서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고 사는 목적은 물질에 대한 기대, 돈에 대한 욕심, 하나님을 믿는 것보다 솔직히 거기에 더 비중을 두었던 사람은 오늘 이 말씀을 듣고 깨우치길 바랍니다. 아무리 육신이 힘들고 어려움이 닥쳐도 남은 생애의 목적을 하나님 제일주의로 삼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런 믿음을 갖게 되면 주 안에서 모든 것이 형통하고 주님의 모든 것이 여러분들의 모든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런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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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의 평화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8~11절)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13~14절) 지금 세상 사람들은 참 불행하게도 성탄절 시즌이 다가오면, 여러 가지 추리(나무)를 장식하고 흥겹게 즐기는데 더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Christ-mas)는 예수님 탄생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이 왜곡되지 않게 만방에 알려야 합니다. 그리고 성탄을 기념하여 온 성도가 아기 예수님을 자기의 영원한 주님으로, 예수님만이 내 생명의 주권자이시고 왕이심을 고백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주의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나타나 구주 나심에 대한 기쁜 소식을 전한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번 성탄절을 맞아 예수님이 오신 것을 우리 모두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사람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예수님 탄생의 시대 배경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들의 구원을 얻게 해 주시기 위하여 미리 계획을 세우시고 준비해 가십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 단계 단계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일들을 실현시켜 나가십니다. 본문 첫머리인 ‘그 때에’(1절)는 역사적으로 로마의 대황제인 가이사 아구스도가 제국주의 세력을 확장해 가던 때요, 로마의 제국이 계속해서 중동과 유럽, 전 세계를 석권하고 점령해 가던 때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자기들이 추구하는 제국주의 시대가 계속되리라는 기대가 한껏 부풀었기에 더 많은 군인을 소집할 목적으로 그들(식민지 백성)에게 본적지에 가서 호적을 하라 하였던 것입니다. 바로 그때 마리아가 잉태하여 산기가 다가오고 그와 약혼한 목수 요셉이 마리아를 나귀에다 태우고 본적지 다윗 성으로 갔습니다.(4절) 유다 지파가 베들레헴으로부터 시작해서 번성하고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 살았는데 그 자손이 굉장히 번성했기 때문에 많은 유다 지파 사람들이 본적지인 베들레헴으로 한꺼번에 모여들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이 아무리 찾아봐도 빈방이 없었습니다. 방을 얻지 못하고 할 수 없이 짐승들(소나 말)이 쉬는 마구간에서 예수님을 출산하게 되고 강보에 싸서 말죽통인 구유에다가 뉘었습니다.(7절) 이처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에는 가장 낮은 곳에 볼품없는 모습으로 오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온 백성에게 미칠 기쁜 소식 마리아가 마구간에서 해산하게 됐던 바로 그때, 목자들이 광야 들판에서 자기 양 떼들의 풀을 찾아 이동하는데 갑자기 주의 영광이 두루 비치며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자 크게 무서워했습니다.(8~9절) 주의 영광이 해도 달도 별도 아닌 그 밤중에 별빛이나 달빛보다 훨씬 밝은 영광의 빛이 목자들에게 두루 비추자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했던 것입니다. 이때 천사가 목자들에게 말하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베들레헴)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10~11절)고 전해 주었습니다. 온 백성에게 미칠 기쁜 소식이란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육신의 몸으로 오신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라는 말은 ‘성령 충만하다’는 뜻이고, ‘주’라는 말은 ‘아도나이’(히브리어)로 내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예수님이 내 생명의 주관자이시고 또한 나의 왕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 주’가 되신 분이셨습니다. 천사가 다시 그들에게 말합니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12절)고 알려 주었습니다. 이에 주의 천사가 전하는 기쁜 소식을 들었던 목자들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 예수님을 보는 것이 표적이 된다는 소식에 큰 기쁨이 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합니다.(13절) 천사들이 어떻게 찬양하고 있습니까?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14절)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오늘의 주제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은 천국이며, 땅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이 세상을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통하여 자기가 죄인인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이 그 인생을 보실 때에 기쁨을 이기지 못하실 것입니다. 즉, 땅에 사는 사람 중에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구원을 얻게 될 때 그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처럼 구원 얻은 성도들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에 대해 구약 스바냐서에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스바냐 선지자가 말하기를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습3:14)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시온의 딸, 예루살렘 딸은 같은 것입니다. 요즘 말로 ‘교회’를 말합니다. 이들이 바로 교회이며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왜 이들에게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하라고 하였을까요?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15절)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임마누엘로 그 교회와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원수 마귀를 쫓아내 버렸고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시니 너희는 이제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았으므로 형벌 받을 두려움이나 불안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바냐 선지자는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16~17절)며 소망의 말씀을 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전에 불신앙으로 잘못 살았던 내가 죄인인 것을 깨닫고 예수님을 믿어 진정한 회개에 이르는 모습, 성령 받은 다음에는 죄를 되풀이하지 않는 회개의 열매를 맺는 모습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보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무너무 기뻐하신다는 것을 꼭 아시기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이 기쁨을 이기지 못하실 정도로 하나님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윗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에 든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행13:22)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가 됩시다. (권면의 말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의 말씀을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월은 참으로 빠르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은 구원의 계획을 가지시고 오늘 우리에게 지금이 은혜받을 때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실제적으로 실현하고 계십니다. 오늘 이때를 정하여 복음을 듣게 하시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으로 쓰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참 불행한 일입니다. 이런 자들은 교만하여 쉽게 넘어지게 됩니다.(잠16:18)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주의 천사를 통해 들었던 목자들은 참으로 복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주가 되신 예수님을 직접 볼 수 있는 은혜를 누리는 것은 큰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것이 표적이 되었던 것처럼 오늘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누리게 하셨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따라서 주의 천사가 전해 주었던 기쁜 소식을 우리도 널리 전하는 증거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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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순종의 일치성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12~14절)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18~19절) 사람들은 육신의 병으로 죽을까 봐 불안과 두려움에 떠는 상황이 발생하면 누구나 다 생명에 대한 애착심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더욱이 최근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시작하여 동남아는 물론 유럽과 미주까지 엄청난 속도로 확산하여가고 있는 이럴 때일수록 사람들은 육신의 생명에 더욱 매달리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주시는 말씀을 귀담아듣는 여러분들은 생명의 주권이 내게 있는 것이 아니고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말씀에 순종함이 더욱 필요한 때임을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히브리서 저자가 시편의 말씀을 인용,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간 생활하면서 하나님을 시험하고 순종하지 못한 까닭에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들의 실패를 교훈 삼아 죄의 유혹으로부터 완고하게 되지 않아야 할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1.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교회 모습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비참하게 종살이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기억하시고 모세를 준비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끌어 가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목적 있는 섭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10가지 재앙을 애굽에 내리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강권적으로 출애굽 시키셨고, 그들 앞에 막혀 있던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게 하신 반면 애굽 군대는 물속에 전부 죽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몸소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광야 길을 가던 이스라엘 백성이 물이 써서 마실 수 없는 곳에 이르렀을 때 발생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이들은 지긋지긋했던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마실 물이 없어 죽게 되었다고 한탄하며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모세를 원망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체험했으면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알만한데도 그들은 마음이 강퍅하여 원망부터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온전한 순종의 모습을 기대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교회에서의 모습은 불순종의 연속이었습니다. 2.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그래서 본문 7~8절에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고 시편 95편 7절의 말씀을 인용했던 것입니다.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을 시험하고 증험한 일을 다 보고 계셨습니다.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시지만 마음이 강퍅한 자에게는 진노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또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10~11절)고 반복해서 말씀하신 이유는 불순종의 결과로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복을 받지 못하게 되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결국, 말씀을 듣지도 않고 순종하지도 않았던 그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다 광야에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똑같은 말씀을 하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3. 우리에게 주시는 경고의 말씀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이 강퍅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한 결과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12~13절)는 말씀입니다. 더 나아가 히브리서 저자는 구약 성경(시95:7)의 말씀을 인용,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15절)고 다시 한 번 경고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반복해서 경고하시는 것일까요?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마음이 강퍅하여 하나님을 불신하고 배척하게 되면 하나님이 격노하셔서 심판하시니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잠29:1)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는 “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또 하나님이 광야 40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16~19절)고 분명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4. 죄의 유혹으로부터 이기는 길 말씀에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반면 순종한 사람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말씀에 순종해야 죄의 유혹으로부터 이기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2:2)고 말씀하고 있는바, 여기서 신령한 젖은 말씀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영이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2)고 말씀하셨듯이 예수님이 전하는 말씀을 생명으로 여기고 순종해야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우리를 위해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천국 갈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린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14:6)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천국을 가려면 예수님을 통해서만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순종할 때 천국의 백성이 되는 것이며, 또한 천국 백성이 된 자들은 완고한 마음을 버리고 죄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권면의 말씀)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아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지만,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마땅히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고 말씀하신 것처럼, 믿노라 하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믿음과 순종이 일치되어야 산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에 이끌리며 하나님 자녀답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자기에게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불순종한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아가페 하나님, 무한한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어떤 죄를 지었든지 간에 회개하는 모든 죄를 예수님의 피로 다 덮어서 용서하시고 그 사람을 받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을 끝까지 믿고 말씀에 순종하여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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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우치고 말씀에 순종할 때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28~30절)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31~32절)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하신 비유의 말씀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불복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는 악한 자들이었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경고로, 순종하려 하지 않는 자는 그 교만 때문에 패망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잠16:18) 그러나 그 잘못을 회개하고 순종한다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1. 예수님에 대해 종교지도자들의 도발 오늘 본문 앞서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 때,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하고 따져 물었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많은 무리가 모여들어서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셨습니다. 또한,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에게 저주하자 그렇게 생기발랄했던 우거진 나무가 하룻밤 사이에 뿌리부터 말라 죽어버렸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이러한 일들을 보고 두려우면서도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볼 생각은 하지않고 여러 모양으로 흠집을 찾아보자고 안달을 했던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인기가 높아 갈수록 자기네들의 입지가 급속도로 허물어지는 것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에 대해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누가 너에게 그런 권세를 줬느냐고 예수님께 따지고 물었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너희가 답변하면 나도 너희에게 답변하겠다고 하고,(24절)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아니면 사람으로부터냐?”라고 물었습니다.(25절) 그러자 종교지도자들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온 것이라 대답한다면 왜 그를 믿지 않았느냐고 할 것이고,(25절)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라 대답하면 모든 사람이 세례 요한을 선지자로 아는 고로 백성들을 무서워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26절) 그래서 그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할 난처한 상황이 되자 “우리가 알지 못한다”고 답변을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무슨 권세로 성전에서 백성들에게 말씀을 선포하시는지 밝히 알려주지 않으셨습니다.(27절)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선포했던 선지자였습니다.(요1:29)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 애타게 회개하라고 외쳤지만, 종교지도자들은 세례 요한을 미치광이로 무시해버리고 불신하며 배척했습니다. 또 이들은 세례 요한뿐만 아니라 예수님까지도 비난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저들의 비난에 대해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고, 인자가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마11:18~19)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때, 그들이 예수님에게 얼마나 큰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비하하고 예수님을 깎아내리면서 비방했던 자들이 또다시 예수님께 ‘권위’를 따지며 도발해 온 것입니다. 2.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심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 도발하는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예수님이 그들의 완악하고 강퍅한 마음을 지적하고 깨우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저들에게 비유를 들어, “한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맏아들이 ‘가겠나이다’하고 대답은 했으나 가서 일하지 않았고,(29절) 둘째 아들에게도 똑같이 말하니 둘째 아들은 ‘싫소이다’하고 대답했지만 뉘우치고 가서 열심히 일했다(30절)고 한다면, 두 아들 중에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고 그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그러자 종교지도자들의 대답은 둘째 아들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31절) 이 비유를 하신 것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믿으려 하지 않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타락한 종교지도자들을 불순종한 맏아들이라고 표현한 것이었고, 저들이 천대했던 죄인들을 순종한 둘째 아들로 표현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세례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와서 복음을 전했거늘 너희는 끝까지 그를 믿지 않았지만, 너희가 손가락질하며 욕하던 세리와 창기는 믿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32절) 죄인들은 둘째 아들처럼 뉘우치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을 따라 말씀 듣고 회개하여 구원의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은 잘 믿는 척하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세리와 창기 같은 부류로 취급하며 죄인이라고 한 것을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지적하신 것입니다. 이들은 말씀을 듣지도 아니하고, 성령의 임재도 없으며, 구원에 이르지도 못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자들을 바라보시며 예수님은 한탄하시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 사1:19~20절에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즐겨 순종하면 이 땅의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해주겠지만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 말씀을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질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 칼은 어떤 칼입니까? 말씀의 칼입니다. 히4: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칼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주신 생명의 말씀, 구원의 말씀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면, 그 말씀이 심판의 칼날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신28장에 보면,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라”(2절)고 말씀하십니다. 순종하는 자의 복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순종하면 복이 임할 것을 약속하고 있는 내용입니다.(3~14절) 반대로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15절) 불순종하는 자의 저주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16~44절) 이를 가벼이 여겨서는 결코 안 됩니다.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복이요,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메시지를 마음에 깊이 새길 때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엄청난 유익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권면의 말씀) 오늘 본문의 비유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타락한 종교지도자들의 교만한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에 자기 생명을 다 바친 세례 요한을 미치광이 취급해버렸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을 비난하면서 그 권위에 도발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암4:10절에 보면, “내가 너희 중에 염병이, 전염병이 임하게 하기를 애굽에서 한 것처럼 하였으며 칼로 너희 청년들을 죽였으며 너희 말들을 노략하게 하며 너희 진영의 악취로 코를 찌르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라는 말씀처럼, 불순종한 자들의 결과는 참담한 끝을 가져옵니다. 종교지도자들의 악한 생각은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저들은 스스로 의로운 자로 여겼지만, 실제는 악한 영에게 속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일이 무엇일까요? 영적으로 충만해서 악령과 싸워 이기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순종함으로 악령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모습을 보실 때, 예수님은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진짜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방법이라면 그 일을 왜 못하겠습니까? 예수님이 그런 여러분들을 보시고 기뻐하실 수 있도록 오늘부터 여러분들이 영적으로 거듭나서 성령 충만함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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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랑하라 하신 이유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7~8절)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10~11절) 본문 내용은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도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를 살리려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같이 하셨으니 당연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일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깊이 깨닫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1.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씀이 8절과 16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자체가 사랑이신 것이 어떻게 입증되어 졌습니까? 이에 대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9절)고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신 것은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어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시는 방법으로 그 사랑을 입증하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그 아들을 통해 무엇을 보여 주셨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10절)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과 함께 영생하도록 구원을 얻게 해주시기 위한 목적으로 아들의 희생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입체적으로 증거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어 주심으로 구원받은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아들을 희생시키신 그 엄청난 사랑에 대한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 그 목숨을 버리기까지의 사랑, 이런 것을 우리가 체험하고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우리도 주변의 가족과 이웃, 그리고 동료들을 구원시키기 위해서 사랑으로 행하는 데 힘써야 할 것입니다. 2. 서로 사랑하라 하신 이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7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면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합니다.(요1:12)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받은 것임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자녀는 아버지의 모든 것을 상속받아 후사로 물려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늘나라를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 못 받은 사람은 천국 갈 수 없습니다. 회개하고 성령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으로 구원을 얻었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11절)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고 자녀가 되었으니 하나님과 같은 사랑의 체질로 바뀌어야 합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눈으로 본 사람이 없지만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되면 사람들로부터 “아 저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인정받게 됩니다.(12절) 그러나 희생 없는 사랑은 거짓말 사랑, 가짜 사랑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8절)는 말씀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한 자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구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지 못한 자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절대 불가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채 마귀와 함께 지옥 길을 계속 가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 사랑은 실천해야 한다 서로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입으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형제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말로만 하고 그 사람에게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약2:15~17) 믿음이 있다고 하나 사랑하지 않는다면 바로 행함이 없는 믿음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필요한 곳에 성령이 감동하시고 지시하시면 그냥 주는 것이 사랑이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자기에게 있는 것을 사랑으로 주는 자들의 선행을 갚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잠19:17) 우리 교회에 한 자매가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도 없는 상태로 병원에 입원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교통사고는 언니 차를 타고 가다가 당한 사고였는데 전적으로 이 차의 책임인 까닭에 전혀 보상받을 길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득이 서울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서 치료를 받아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자 가난한 형편에 어쩔 수 없이 급히 빌려서 치료비를 처리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마음이 아파 그 자매를 찾아가 기도해 주고, 하나님이 주신 사랑하는 마음으로 치료비를 전부 부담해 주었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보상금을 받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왔을 때는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저는 그 자매에게 “이것은 100%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너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렇게 보상을 받게 하신 것이다”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는 해외 많은 곳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곳에 교역자를 세우고 선교 사명을 가지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필요할 때에 누구를 통해서든지 재정을 지원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는 말씀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지시에 따라서 그분의 것을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전달하고 베풀고 나누어 준 것뿐이었는데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실에 대한 보상을 반드시 갚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기를 소원하고 사랑하는 일에 힘쓴다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방법과 은혜로 그 인생을 살리실 것입니다. (권면의 말씀)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 인도하시고 쓰시기를 원하신다면 그런 것은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고 하나님이 보호해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코로나 시대에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대신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구원받은 성도라면 성령의 지시와 감동을 따라 이웃에게 나누고 베풀면서 영혼 구원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아들을 희생시키신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대속하신 은혜로 나를 통하여 복음의 증거자로 쓰신다면 무엇이 아까운 게 있을까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8:32)고 하신 약속의 말씀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뜻대로 쓰임 받기를 원하며 사랑에 힘쓰는 자에게 하나님은 넘치도록 은혜를 부어 주실 것입니다. 본문 21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는 것은 형제를 사랑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선한 행실에 대한 보상을 반드시 갚아 주실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믿음으로 순종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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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 아니하고는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3절)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4~7절) 사도 바울 당시 고린도 교회에 은사로 인하여 말할 수 없는 대혼란이 일어났습니다. 바울이 그 사실을 보고받고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낸 내용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다양한 은사를 받았지만 많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편지를 통해 은사는 한 성령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오직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이며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나타나지 않는 것임을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여러분도 깊이 깨닫는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1. 성령으로 예수를 ‘주’라 고백한다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성령)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3절)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성령과 악령을 구별하지 못하고 우상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령이 함께하지 않는 자는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할 수 없으며 오히려 예수님을 저주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고백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즉 성령으로만 ‘예수는 주’라고 고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에 가보면 은혜와 사랑으로 서로 교제하고 음식을 나누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소망을 나누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성령으로 예수님을 주시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하지만 영적인 소망을 가꾸는 곳에 드나들면서도 천국 갈 믿음이 없다면 불행하게도 하나님이 버리신 가룟 유다처럼 버림받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속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2. 성령으로 여러 은사들이 나타난다 또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4절)라는 말씀처럼,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은사들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각 개인에게 나타나는 은사는 여러 가지라도 한 성령으로 은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은사(恩賜)’는 ‘값없이 은혜로 주어진 선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영어로는 gift라고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은사들을 값없이 주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7절)고 사도 바울이 설명하고 있음을 볼 때, 교회의 유익을 위해 성령으로 다양한 은사들을 선물로 주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에게도 성령으로 다양한 은사들이 나타나서 여러 가지 이적 기사가 나타나곤 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응답이 즉석에서 나타나고 성령의 역사로 귀신이 쫓겨나갑니다. 항상 성령이 충만해 있으면 귀신이 역사하지 못합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권능을 행합니다. 이는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눅9:1)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받아 그 능력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 성령의 다양한 은사들 여기 보면 은사라고 하는 것을 9가지로 쭉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은사란 각 사람에게 성령으로 행사하게 하시는 기술과 능력이 있는 은사인 것입니다. 기술만 아니라 능력까지 주시는 것입니다. 기술이 있고 능력이 있어야 그 기술이 제대로 그 능력을 힘입어 성과를 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은사 9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지혜의 말씀’(8절上) 은사입니다. 지혜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시는 것은 성령이신데 그 성령을 따라 말씀을 선포할 때 듣는 사람이 그 말씀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이것을 지혜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목자를 통하여 성도들에게 주시는 모든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내포되어 있는데 성령 받은 사람이 즉각 깨달아질 때 지혜의 말씀이 나타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지식의 말씀’(8절下) 은사입니다. 지식의 말씀은 지혜를 실생활에 적용하고 가르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지혜의 말씀은 목자를 통해서 선포되지만, 지식의 말씀은 성도들이 듣고 깨달아진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깨우쳐줄 수 있는 은사를 말합니다. 세 번째로, ‘믿음’(9절上) 은사입니다. 믿음도 성령의 은사로 주어집니다. 한 예로 들면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하나님께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믿음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믿음의 은사는 문제에 시달리던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믿음의 성과로 나타나게 하는 은사로 볼 수 있습니다. 네 번째로, ‘병 고침’(9절下) 은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실 때 병 고치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병을 고치는 일은 복음의 증거로 나타나게 합니다. 다섯 번째로, ‘능력 행함’(10절上) 은사입니다. 이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능력으로 이적 기사를 나타냅니다. 그 능력을 보고 예수님을 믿고 회개해서 구원 얻게 하도록 그렇게 능력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사도 바울도 죽었던 사람을 살린 능력으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그것이 능력 행하는 은사인 것입니다. 여섯 번째로, ‘예언’(10절中) 은사입니다. 장래의 일을 하나님이 미리 말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구원 얻는 일에 성령께서 미리 알려 주시는 것을 전하는 일이 예언의 은사입니다. 일곱 번째로, ‘영들 분별’(10절中) 은사입니다. 그 사람이 성령에 이끌리는 크리스천인지 아니면 악령의 앞잡이로 지옥에 끌려가고 있는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적으로 분별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 앞에 우둔하지 않고 영적으로 분별하여 책망하는 일에 쓰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영 분별의 유익입니다. 여덟 번째로, ‘방언’(10절下) 은사입니다. 이 방언의 은사는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으로,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오순절 날 성령이 충만하여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자 그곳에 모였던 경건한 유대인들이 각기 자기 나라말로 들리는 방언’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방언의 좋은 점은 방언으로 기도하면 귀신이 도망을 갑니다. 그 방언에 무슨 능력이나 효과가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 방언을 하게 하는 이가 성령이시기 때문에 그래서 성령에 쫓겨서 귀신이 도망을 간다는 것입니다. 아홉 번째로, ‘방언 통역’(10절下) 은사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방언은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어서 방언을 통역해 주는 은사가 필요했습니다. (권면의 말씀) 하나님께서 고린도 교회에 성령의 역사가 불같이 일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성령을 통하여 다양한 은사들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은사 받은 사람들이 자기의 은사가 우월하다는 착각에 빠져 무분별하게 행동을 했습니다. 이 일로 교회가 그 은사로 말미암아 큰 혼란에 빠지게 되어 버렸습니다. 특히 방언의 은사는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혼자 떠들어대는 관계로 은사의 부작용을 초래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사도 바울이 은사에 대해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11절)라고 말한 것을 귀담아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각별히 주의해야 할 것은 고린도 교회처럼 은사를 무분별하게 사용하거나 자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한 성령 안에서 교회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각 개인에게 주시는 은사는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임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은사는 교회의 덕을 끼치는 일이 되어야 함을 깊이 새기시길 바랍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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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를 위한 사랑의 채찍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사마리아의 산에 있는 바산의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힘없는 자를 학대하며 가난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1절) 내가 너희 모든 성읍에서 너희 이를 깨끗하게 하며 너희의 각 처소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6절) 내가 너희 중에 전염병 보내기를 애굽에서 한 것처럼 하였으며 칼로 너희 청년들을 죽였으며 너희 말들을 노략하게 하며 너희 진영의 악취로 코를 찌르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0절) 아모스 선지자는 원래 양을 수천 마리 목축하는 생업을 가진 사람이었고 땅이 많아서 뽕나무 재배를 하는 농부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택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로 세우셨습니다. 본문 말씀은 이 아모스라는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완악한 죄에 대해 지적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신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재앙의 징조가 나타날 때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 말씀을 통해 살펴봅시다. 1.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압제한 자들에 대한 심판 예언 먼저 아모스 선지자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강력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의 산에 있는 바산의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힘없는 자를 학대하며 가난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하시되 때가 너희에게 이를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도 그리하리라. 너희가 성 무너진 데를 통하여 각기 앞으로 바로 나가서 하르몬에 던져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3절)고 심판을 예언했습니다. 여기서 ‘사마리아에 있는 바산 암소’라고 비유적인 표현을 하는 자는 누구를 말하고 있을까요? 이는 비옥한 바산 들의 암소처럼 힘없는 백성들을 착취한 사람들을 일컫습니다. 그 당시 권력을 잡은 사람들, 부유한 사람들은 너무 사치하고 호화롭게 살면서도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학대하고 압제한 죄를 범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진노하시고 아모스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도록 예언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심판의 예언은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북쪽에 위치한 앗수르라는 나라가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는데 이때 죄악을 즐기던 그들에게 갈고리로 귀를 뚫어서 거기에 귀고리처럼 만들어서 밧줄로 쭉 꿰어 끌고 갔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B.C.720년경에 역사 속에서 영원히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2. 이스라엘의 거짓된 예배와 그에 대한 심판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어떠했을까요?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며 낙헌제를 소리내어 선포하려무나.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것이 너희가 기뻐하는 바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4~5절) 아모스 선지자는 종교지도자들의 그릇된 예배 의식에 대해 조롱하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앞에 관행을 따라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고, 백성들도 하나님 아닌 다른 나라가 섬기는 다양한 여러 형태의 우상을 들여와 집에 신당을 만들고 복을 빌곤 했습니다. 살리시는 이는 하나님이셨는데 이렇게 나쁜 짓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도구로 주변 나라들을 사용하셨습니다. 주변에 있는 나라들을 강국으로 만들어서 이스라엘이 범죄하면 그들을 몽둥이 삼아 쓰신 것입니다. “앗수르 사람은 화 있을진저 그는 내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노라 내가 그를 보내어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를 치게 하며 내가 그에게 명령하여 나를 노하게 한 백성을 쳐서 탈취하며 노략하게 하며 또 그들을 길거리의 진흙 같이 짓밟게 하려 하거니와.”(사10:5~6) 이 말씀처럼 앗수르는 하나님의 도구로 이스라엘의 몽둥이가 되었습니다. 3. 재앙을 보고도 돌아오지 않는 백성들 아모스 선지자는 각종 자연 현상을 통한 재앙 7가지를 들어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태에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재앙은 기근으로 인해 양식이 떨어지게 하신 일이었습니다. “또 내가 너희 모든 성읍에서 너희 이를 깨끗하게 하며 너희 각처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6절) 그러나 이들은 양식이 떨어져 기근으로 굶어 죽어 가면서도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셨지만 이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재앙은 비를 멈추게 하신 일이었습니다. “또 추수하기 석 달 전에 내가 너희에게 비를 멈추게 하여….”(7절) 추수하기 석 달 전에 내리는 비는 이른 비에 해당합니다. 이 비는 추수를 앞두고 내리지 않으면 농작물에 큰 지장을 초래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목마른 사슴처럼 비가 내린 성읍을 찾아 물을 얻어먹으러 헤매고 다니면서도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지도, 하나님께 돌아오지도 않았습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재앙은 사막의 뜨거운 열풍이 불어와서 자라는 곡식을 선 채로 말라서 죽게 만든 재앙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삭이 새까맣게 재처럼 되고, 그 나머지를 메뚜기 떼가 다 먹어치운 재앙이 임했습니다. “내가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 재앙으로 너희를 쳤으며 팥중이로 너희의 많은 동산과 포도원과 무화과나무와 감람나무를 다 먹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9절) 그러나 이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져 죽을 지경인데도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재앙은 전염병과 전쟁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너희 중에 전염병 보내기를 애굽에서 한 것처럼 하였으며 칼로 너희 청년들을 죽였으며 너희 말들을 노략하게 하며 너희 진영의 악취로 코를 찌르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10절) 전염병이 돌아 사람들이 죽고, 전쟁이 일어나 젊은 군인들과 말들이 다 죽임을 당해 시체가 사방에 널브러져 있는데도 백성들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일곱 번째 재앙은 “내가 너희 중의 성읍 무너뜨리기를 하나님인 내가 소돔과 고모라를 무너뜨림 같이 하였으므로 너희가 불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 조각같이 되었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11절) 이는 이미 이스라엘에게 심판의 형벌이 시작되었지만, 그 심판으로 멸망하기 전에 끄집어내서 불을 끄고 다시 살려서 회복시켜 주려고 역사하셨는데도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4. 회개와 회복을 원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처럼 많은 재앙(7가지)을 당하고도 회개하지 않고 목이 곧은 사람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면 종국에는 망하게 될 뿐입니다. 잠언서에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잠29:1)는 내용이 나옵니다. 결국, 이 말씀처럼 이스라엘 나라는 망했습니다. 재앙은 이스라엘에게 회개를 위한 사랑의 채찍이었지만 이들이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셨는데도 전혀 살필 생각을 하지 못한다면 참 불행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나를 오늘까지 살리심으로 내가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12절) (권면의 말씀) 이스라엘에 임했던 재앙처럼 우리에게도 동일한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가 풍전등화처럼 바람 앞에 촛불 같은 상황에 처해 있음을 볼 때 큰 위기를 느낍니다. 전쟁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재앙의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면 아모스 선지자의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예언을 깊이 새기고 하나님께로 회개하고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시기 때문에 회개하고 돌이킨다면 건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재앙이 임했는데도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간절한 바람을 무시하게 되면 결국 심판을 받게 됩니다. 철저히 회개하고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방패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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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한다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1~2절)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6~7절) 요즘 코로나19 전염병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사람의 방법으로 치료해보기 위해서 백신을 만들고 치료약을 시도해 보지만 의술의 첨단을 자랑하는 이 시대에도 아직 확실한 대책을 내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전염병이 이 땅에 창궐하게 된 이유를 깊이 생각하고, 만일 우리의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의 형벌이라면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회개할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1. 외적 번영을 누리게 된 이스라엘 호세아가 활동했던 시기는 앗수르가 사마리아를 함락시키기 직전 여로보암2세가 통치하던 시기였습니다. BC 793년부터 753년까지 41년간 북쪽에 이스라엘 왕이 된 여로보암2세 때 호세아는 멸망을 재촉해가고 있는 북쪽 이스라엘(수도 사마리아)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당시 앗수르 왕은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다마스쿠스(다메섹)’를 수도로 하는 아람 나라를 쳐들어가서 아람 나라를 정복했습니다. 그런데 앗수르가 아람 나라를 쳐서 정복한 그다음에 자국 내에서 반란이 생겨 정치가 대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여로보암2세가 이 기회를 틈타 솔로몬 시대의 모든 영토를 되찾아 확보했습니다. 여로보암2세는 이스라엘 왕으로 오랜 기간 통치했으며, 북쪽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번영하게 했던 왕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 모든 나라, 지역에서 특산물들을 조공해 오도록 만들어서 북쪽 이스라엘은 짧은 기간에 엄청나게 부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앗수르도 주저앉히고 이스라엘이 부강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심으로 물질적으로는 풍요롭고 번영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외적으로 번영을 누렸지만, 영적으로는 대단히 타락하고 하나님 은혜를 알지 못하며 육적인 오늘을 즐기며 죄악을 일삼았습니다. 2. 죄에 빠진 이스라엘의 실상 영적으로 타락하고 죄악에 빠진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호4:1)라며 하나님은 탄식하고 계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사랑과 인자하신 은혜로 베풀어주신 그 모든 것을 전혀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 모르는 이스라엘 백성의 안타까운 실상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부강하게 된 것을 잊어버리고 자신들의 죄악의 본성을 따라 온갖 죄에 빠져 살고 있었습니다.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2절)고 그 죄를 지적하십니다. 하나님은 불꽃 같은 눈으로 한눈에 다 보시기 때문에 그 죄를 결코 숨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부강하게, 또 주변 나라가 쳐들어오지 못하게 막아 주셨는데도 하나님으로 더불어 살기를 소원하거나 힘쓰는 일이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조건 가지고 육신의 본능적 욕구를 따라 혈기와 정욕으로 방탕하며, 자신의 집에 우상을 세워놓고 그것에게 감사하다고 복을 빌기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더 이상 참으실 수가 없었습니다. 3. 하나님의 형벌 은혜를 잊어버리고 죄악을 일삼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님은 형벌을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거기 사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3절), “너는 낮에 넘어지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넘어지리라 내가 네 어미를 멸하리라”(5절)고 하나님의 형벌을 호세아를 통해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의 생명을 위해 먹을 수 있는 공중의 새, 들에 있는 짐승들, 바다에 있는 물고기까지 그들이 먹을 수 없도록 없애 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자연적인 재앙과 재난으로 인하여 땅이 황무해지면 자연히 초목이 시들고 메말라 땅에 사는 것들이 소멸되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전면적인 심판을 내리실 것을 예고하고 있음을 알려 줍니다. 이로 말미암아 육체의 생명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죄를 짓는 그들에게는 크나큰 고통이 될 것입니다. 4. 이스라엘이 망하게 된 큰 이유 이스라엘 자손이 형벌을 받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6절). 또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율법은 제사장들이 백성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사장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버린 것과 같은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죄를 지은 제사장들에게 형벌을 내리십니다. 그것은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도 잊어버리겠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제사장도, 그 자녀들도 하나님이 버리겠다는 선언이십니다. 오늘날 목사님들이 하나님 앞에 형벌의 대상이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이 양떼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가르쳐야 하는데 이를 소홀히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시키며 순종하도록 책임목회를 다 했어야 하는데 그와 반대로 성도들에게 회개하라는 말씀을 전하지 않은 겁니다. 그 결과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죄 가운데 살게 되는 것입니다. 5. 형벌 속에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이 내리신 형벌을 통해 육신의 모든 기대와 소망이 다 끝장이 나고 “이제 나는 죽음뿐이구나”라는 위기에 직면했을 때에 어떻게 하는 것이 사는 길일까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고,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회개하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모두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은 무자비하시고 파멸시키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리시는 모든 형벌은 그 형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깔려있습니다.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그에게서 떠났음이니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 그들은 곡식 같이 풍성할 것이며 포도나무 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이 되리라.”(호14:4~7절) 하나님은 회개함으로 돌아서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를 기대하시는 목적 때문에 그들을 형벌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벌만 내리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의 근본이시며 본체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권면의 말씀) 이스라엘 자손들은 부강해지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죄악을 일삼는 우를 범했습니다. 또한, 제사장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버리고 백성들을 바로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만약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죄악을 일삼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어쩔 수 없이 형벌을 내리실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호세아를 통해 그들에게 하나님의 형벌을 내리시겠다는 하나님의 준엄한 경고를 깊이 새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시대에도 죄악을 일삼아 회개하지 않으면 동일한 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 이것이 인재가 아니고 천재(하나님의 형벌)이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철저히 회개한다면 하나님은 그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은 인생들이 미워서 죽이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을 회개시켜 구원할 수 있도록 만드시기 위한 사랑의 채찍임을 명심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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