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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풍기인삼, ‘2021세계풍기인삼힐링엑스포’ 개최로 산업 경쟁력 높여인삼 생산기반확충 사업추진 등 농가 경쟁력 강화 주력 중국 우한 지역에서 시작된 폐렴의 원인 바이러스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긴장감을 높이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환자가 잇따라 발생함에 따라 건강관리를 위해 면역력 증강에 좋은 인삼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면역’이 건강의 핵심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서 면역력 강화, 피로해소, 혈액 흐름 개선, 기억력 증진에도 효능을 가지고 있다고 인증된 인삼과 홍삼의 효능이 재조명되고 있다. 국내 여러 인삼 가운데서도 영주 풍기인삼은 일조량이 많고 일교차가 큰 소백산 자락에서 자라 조직이 충실하고 향이 강하며 면역증진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이 특징으로 소비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풍기인삼은 면역증진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유효 사포닌 함량이 36종으로, 미국산 19종, 중국산 15종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은 물론 항암작용과 면역체계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Rg3(항암효과, 항암제)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으며,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최고의 인삼 제품으로 널리 알려졌다. 중국, 일본, 홍콩, 베트남, 미국 등 해외에서도 품질을 인정받아 해마다 수출이 증가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터키, 캄보디아, 아랍에미리트 등을 대상으로 수출 계약을 성사시키는 등 세계적으로 수출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 영주시의 인삼재배 면적은 1,844ha로 830여 농가에서 생산된 제품을 활용하여 백삼, 태극삼, 홍삼, 흑삼 등의 인삼 제품과 분말, 농축, 차, 음료 제품 등의 가공품을 직ㆍ간접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또한 영주 풍기인삼 가공식품은 산지에서 직접 가공해 신선도가 높고 인삼재배의 긴 역사를 바탕으로 노하우가 집약되어 가공기술이 뛰어난 것은 물론 농가가 직접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 신뢰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지만, 영주시는 풍기인삼을 세계 제일의 명품으로 만들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시는 풍기인삼의 우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매년 인삼재배농가 지원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오고 있으며 2020년도에는 인삼생산기반 확충 지원 사업, 인삼산업육성지원 사업과 특용작물(인삼)생산시설 현대화 지원 사업 등을 추진한다. 올해 추진하는 인삼생산기반 확충 사업의 총 사업비는 32억6천 8백만 원으로, 영주시에 주소를 두고 있는 인삼재배 농가를 대상으로 토양개량제, 제초용 매트, 지주목 등의 농자재와 이동식 저온저장고, 생산시설 현대화를 위한 무인방제와 점적관수시설 등을 지원해 꾸준한 품질 향상에 힘쓸 계획이다. 시는 이밖에도 소비자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도록 친환경 고품질 명품 인삼을 생산하기 위해 풍기인삼 시험장에서 무농약 재배기술 등 새 기술을 지속적으로 연구해 농가에 보급하고 있으며 홍삼 등 가공제품은 엄격한 품질관리기준을 적용하여 소비자들이 믿고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장욱현 영주시장은 “지속적인 생산기반 확충을 통한 품질 고급화로 풍기인삼의 높은 품질을 유지하는 등 시장개방에 따른 수입산 인삼의 시중 유통에 대비할 것”이라며 “내년에 개최되는 2021세계풍기인삼힐링엑스포를 성공적으로 개최해 인삼의 수출증대라는 경제적인 가치는 물론, 우리나라 인삼의 브랜드 가치를 세계적으로 드높이는 기회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예진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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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청송 전국 아이스클라이밍 선수권대회 개최청송군(군수 윤경희)은 오는 주말인 4일(토), 5일(일) 양일간 청송군 얼음골에서 「2020 청송 전국 아이스클라이밍 선수권대회」를 개최한다. (사)대한산악연맹이 주최하고 경상북도산악연맹이 주관하며, 청송군·대한체육회·국민체육진흥공단이 후원하는 이번 대회는 국내 최고 기량의 선수 100여 명이 참가해 청송 얼음골의 얼음벽에서 서로의 기량을 겨루며 우승 트로피를 놓고 각축을 벌일 예정이다. 대회장에서는 4D아이스클라이밍 체험행사를 비롯해 청송 농·특산물 홍보, 청송관광홍보 등 다양한 전시 행사도 마련되어 있어 관람객들에게 다양한 체험행사와 볼거리도 제공되며, 특히 올해는 귀여운 공룡 이미지인 청송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 캐릭터 ‘알피’ 조형물을 대회장에 설치하여 방문객들이 어린 자녀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포토존 공간도 마련됐다. 또한 청송군의 새로운 도시 브랜드인 ‘산소카페 청송군’의 사인물을 대회장에 설치하여 맑은 공기 가득한 청정자연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다음 주말에 연이어 열리는 “2020 청송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 대회의 준비 점검도 겸할 예정이다. 윤경희 청송군수는 “전국 아이스클라이밍 선수권대회를 시작으로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 101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산악부문 아이스클라이밍 경기 등 3주간 이어지는 아이스클라이밍 대회를 통해 ‘아이스클라이밍의 성지’, ‘산악스포츠 메카’, ‘산소카페 청송군’의 브랜드 가치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혜경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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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 논 콩 기계화를 위한 파종·수확 시연회 개최이젠 농사도 기계로 수월하게!! 경주시 농업기술센터에서는 지난 11일 천북면 성지리(논 콩 재배 실증시험 포장)에서 콩 재배농가 및 유관기관 직원 등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2019 논 콩 수확 기계화기술 시연회’를 개최했다. 논에 밭작물을 재배해 판매하는 것이 벼를 재배하는 것보다 소득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벼 재배보다 기계화율이 미미해 과다한 노동력이 소요되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하여 국립식량과학원 생산기술개발과와 경주시농업기술센터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이번 시연회는 콩 기계파종과 콩 콤바인 기계수확기를 이용한 콩 재배의 전 과정이 생력기계화 되는 기술을 선보여 시연회에 참석한 농가들에 큰 호응을 얻었으며, 국립식량과학원에서 논 콩 재배 및 기계화, 논밭 범용화 무굴착 암거배수 기술, 논 콩 병해충 방제기술 및 효과에 대한 설명을 더 해 많은 정보를 공유했다. 최정화 경주시농업기술센터소장은 “논 콩 재배의 노력을 절감하고 다수확을 위해 노력할 뿐만 아니라, 논 이용 밭작물에 접목, 적용해 농업인의 소득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예진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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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학 목사의 논문원문(5) - 90년 동안 한 교회를 섬긴 여성지도자 김점향 권사90년 동안 한 교회를 섬긴 여성지도자 김점향 권사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 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김점향 권사 (1907~1998) 안동교회 첫 예배는 4명씩 동수(同數)의 남·여가 함께 예배를 드 렸다. 외할머니 등에 업혀 예배를 드린 아기를 포함하면 4명의 남성, 5명의 여성이 된다. 안동교회는 시작부터 균형 잡힌 성(性) 비율로 하나님을 예배했던 것이다. 당시 상당한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이 지배하고 있던 안동 땅에서 동수의 남녀가 함께 예배를 드림으로 교회가 출범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당시 시대적 상황은 남성중심의 교회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래도 교회 안에서 여성의 발언권도 무시할 수 없었다. 초기부터 뛰어난 여성 일꾼들이 안동교회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선교사와 남성 교인들을 도와 새롭게 출범한 안동교회를 든든히 세워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본 글은 3살 때 외할머니 등에 업혀 안동교회 첫 예배에 참석한 이래 무려 90년 동안 안동교회를 섬긴 김점향 권사님에 관한 것이다. 결혼 후 수년 동안 안동을 떠나 영주로 외도(外道)하기는 했지만 거의 100년 가까이 동안 한 평생 안동교회를 섬겼으며, 장성한 이후에는 안동교회 여전도회와 경안노회 여전도회의 중심인물로 여전도회를 든든히 세운 여성 지도자였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무려 20년이 지난 지만 그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그가 안동교회 뿐 아니라 경안노회를 대표하는 여성 지도자였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신앙과 인격, 그리고 품성은 그를 여성 지도자가 아니라 성(性)에 관계없이 교회와 노회의 지도자 반열(班列)에 올려놓았다고 생각한다. 이제 신앙과 관련된 김점향의 생애(生涯)를 살펴보자. 1. 할머니 등에 업혀 안동교회 첫 예배에 참석한 아기 1909년 8월 둘째 주일인 8일, 안동교회는 감격스러운 첫 예배를 드렸다. 안동 읍(邑) 최초의 교회가 설립된 것이다. 당시 안동 최초의 근대서점인 기독서원(基督書院)에서 8명이 모여 첫 예배를 드렸고, 안동 땅에 복음이 전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기독서원은 5칸의 초가가옥으로 현재 안동교회 앞 도로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었다. 첫 예배를 드린 초대교인의 이름은 김병우, 강복영, 원화순, 원홍이, 권중락, 박끝인, 정선희, 김남홍 제씨였다. 첫 예배가 드려졌던 1909년 8월 8일 주일 아침의 상황을 외손녀 김점향은 기억하고 있었다. 다음은 생전(生前)에 김점향이 기억하고 있는 내용이다. 김남홍의 집은 현재 100주년 기념관 바로 뒤편 화성동 언덕에 위치해 있었는데, 그날 아침 평소에 들을 수 없는 북소리가 들려왔다는 것이다. 주일 아침 누군가 북을 치면서 마을을 돌며 동네 사람들을 모았던 것이다. 김남홍이 무슨 생각으로 동내 아래에 있던 기독서원에 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발걸음은 그를 예수 믿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기독서원에 간 김남홍은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 “여기 오면 아들을 낳을 수 있느냐”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그때 거기에 있던 사람들로부터 아들을 낳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큰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후부터 빠지지 않고 예배에 참석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김남홍은 안동교회의 첫 예배에 참석한 초대교인(初代敎人)이 되었다. 생전에 김점향은 매우 중요한 증언(證言)을 남긴 바 있다. 그것은 외할머니 김남홍의 등에 업혀 자신이 안동교회의 첫 예배에 참석했다는 것이다. 음력으로 1907년 6월 25일 출생한 김점향은 세 살밖에 되지 않았다. 따라서 그때 직접 본 상황을 그가 기억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 아마 훗날 할머니 김남홍으로 부터 들은 것을 기억했을 것이다. 이 증언이 사실이라면 당시 안동교회의 첫 예배자는 8명이 아니라 9명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첫 예배 참석자의 수가 단순히 한 명 증가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첫 예배 참석자가 어른만이 아니라 아기도 포함되는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안동교회가 다음세대와 장년세대, 즉 전세대가 포함되어 출발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비록 한명의 어린 아기라도 이것은 안동교회의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거룩한 비전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첫 예배자의 성별과 연령은 다음과 같다. 3세 김점향(女), 27세 강복영(男), 21세 권중락(男), 31세 김병우(男), 38세 박끝인(男), 45세 김남홍(女), 53세 원홍이(女), 55세 원화순(女), 56세 정선희(女). 하나님께서는 안동교회가 어린이, 청년, 장년, 그리고 노년이 적절히 균형을 이룬 건강한 교회로 시작하게 하셨고, 그 이후 지난 100여 년 동안 어린이, 청년, 노인, 남성과 여성 등 전(全) 세대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게 하셨던 것이다. 외할머니 김남홍은 1910년 8월 18일에 학습(學習)을 받고, 1911년 8월 17일에 세례(洗禮)를 받음으로 안동교회의 세례교인이 되었다. 이것은 안동교회에서 베푼 두 번째 세례였다. 북소리에 이끌려 어떨 결에(?) 예배에 참석했지만 그 후 김남홍은 세례까지 받고 본격적으로 예수를 믿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그는 1913년에 조직된 안동교회 여전도회의 중심회원으로 열심히 참여하였다. 당시 여전도회 회원들은 주로 개인적으로 전도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여전도회는 매월 첫 번째 주일 화요일 저녁에 월례회(月例會)가 있었고, 보통 약 30명 정도가 모였다고 전해진다. 월례회 순서에는 예배와 헌금 순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김남홍의 남편인 권정택은 안동교회 첫 세례자 9인 중의 한 사람이었다. 당시 안동 읍에는 그리스도인이 거의 없는 상태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모두 그리스도인의 가정 분위기에서 외손녀인 김점향은 성장할 수 있게 하였다. 이것은 김점향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속에서 자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을 것이고, 그는 자연스럽게 믿음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 결과 김점향은 안동교회와 경안노회의 여성 사역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하 내용은 논문원문 첨부파일 참조)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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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의 성지 경북도,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식 가져▲경상북도는 15일 오전 10시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에서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식을 열어 광복의 의미를 되새겼다.(사진=경상북도 제공) 애국지사, 독립유공자 유가족 등 1,000여 명 모여 광복의 의미 되새겨 경상북도는 15일 오전 10시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에서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식을 열어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고 순국선열들의 거룩한 뜻을 기렸다고 밝혔다. 경축식은 도지사를 비롯해 도의회 의장, 도교육감, 육군제50보병사단장 등 도내 기관‧단체장과 배선두 애국지사(96세, 의성군, 애족장), 독립유공자 유가족, 보훈단체, 지역주민 등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경축식은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 동영상 상영, ▲이동일 광복회 도지부장의 기념사 대독, ▲독립유공자 정부포상 전수, ▲국가상징 선양 유공자 표창 친수, ▲이철우 도지사의 경축사, ▲광복절 노래 제창, ▲장경식 도의회 의장의 만세삼창, ▲한 예술단의 경축공연 순으로 진행됐다. 이철우 도지사는 “최근 일본이 우리나라를 수출 절차 간소화 대상국에서 제외함에 따라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서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위기의 대한민국이 더 큰 도약을 할 수 있도록 경상북도가 앞장서서 주저하지 않고 소신껏 박차고 나가겠다”고 밝혔다. 경축식 행사에 앞서 이 도지사는 행사 참석을 위해 자리한 독립유공자 유가족들과 기관·단체장들과 함께 ‘경상북도 독립운동가 추모비’에 헌화‧묵념한 뒤, 자리를 옮겨 ‘염원의 발자취’ 조형물에 대한 제막식에도 참석했다. 한편,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전국 15,511명 중에서 14.4%에 해당하는 2,232명이 경북지역 출신인데, 17개 시도 중에서 가장 많아 경상북도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성지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경상북도 내에서는 안동지역 출신이 16.1%에 해당하는 359명으로 제일 많고, 그다음이 영덕(219명), 의성(172명), 청송(114명) 순으로 독립유공자가 많다. 이혜경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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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박물관 ‘상주읍성지’ 학술발굴조사 착수상주읍성 기초 자료 확보를 위한 학술발굴조사 시작 상주박물관(관장 윤호필)은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상주읍성지’에 대한 정밀학술 발굴조사에 착수했다. 대상지는 인봉동 73-7번지이며, 면적은 1,210㎡다. 조사 기간은 7월 30일부터 9월 30일까지다. 조선시대의 상주는 경상감영이 위치했던 곳으로, 당시 경상도의 정치·군사·행정·문화를 대표하던 중심지였다. 상주박물관은 상주읍성이 당시 상주 지역의 위상을 증명할 중요한 유적인 만큼 문헌기록 연구, 훼철되기 이전 4대문·시가지의 모습이 담긴 사진엽서 입수, 기획전시 및 학술대회 등 이를 확인할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학술 발굴조사 대상지에는 산업유산으로 지정된 ‘상주주조주식회사’ 건물 일부와 공장 굴뚝이 남아있다. 사전조사에서 상주읍성의 성벽 및 해자 일부가 존재할 것으로 파악된 곳이다. 이번 정밀학술 발굴조사를 통해 흔적이 남아있지 않은 상주읍성의 축조방법 및 공간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고, 상주읍성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기초 자료를 축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예진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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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낙영 경주시장, 청년농부와 소통청년농부 등 30여 명과 애로사항 청취 등 소통의 장 마련 주낙영 경주시장은 6월 25일 동천동 소재 식당에서 청년농부 등 30여 명과 함께 소통의 장을 마련해 '진솔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이날 소통의 장에서 주 시장은 경주시의 주요 청년농업 정책에 관해 설명하고 청년농부의 다양한 생각과 영농 초기 고충사항을 듣고 농촌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들을 격려했다. 한편 시가 추진하는 청년창업농 영농정착지원 사업은, 영농 초기 소득이 불안정한 청년 창업농에게 독립경영 영농경력에 따라 영농정착지원금 차등지급(1년 차 월 100만 원, 2년 차 월 90만 원, 3년 차 월 80만 원)하고, 창업 자금, 기술·경영 교육과 컨설팅, 농지은행 매입비축 농지 임대와 농지 매매를 연계 지원하는 사업으로 2018년 12명, 2019년 15명 총 27명을 선발해 지원하고 있다. 시는 또 청년농부 육성지원, 청년농부 창농기반구축사업, 지역농업 CEO 발전기반 구축사업 등에 청년농업인을 선발해 제조·가공, 체험 전시에 필요한 시설구축 및 장비구입 등을 지원하고 있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앞으로 경주시 농업을 이끌어갈 주역인 청년농부들과 함께 소통의 자리를 갖게 되어 기쁘다”며, “경주시 농촌의 미래가 밝으며, 우수한 청년들이 농업분야의 진출을 유도하고 선도농업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예진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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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이희호 여사 향년 97세로 별세“사랑과 화합”, “평화통일” 유언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창천감리교회 장로,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가 지난 6월 10일 향년 97세로 별세했다. 이희호 여사는 “우리 국민들이 서로 사랑하고 화합해서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바란다.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 국민을 위해,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유언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이희호 여사는 이화여고, 이화여전,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한 후, 귀국해서는 YWCA 초대 총무를 맡는 등 여성인권 향상에 앞장선 인물이다.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결혼하면서 야당 정치가의 아내로, 정치적 동지로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해왔다. 지난 14일 치러진 창천감리교회 장례예배에서 이낙연 국무총리는 “우리는 한 시대와 이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례는 ‘여성지도자 영부인 이희호 여사 사회장(社會葬)’으로 엄숙히 치러졌고,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 곁에 안장됐다. 윤형구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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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월교회 “러브 의성” … 의성 지역 7개 교회에서 실시▲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펼쳐지고 있는 이‧미용 봉사. 지난 6월 6일 의성지역에는 매년 대구 반야월교회(담임목사 이승희)에서 후원하는 ‘러브 의성’ 사역이 실시됐다. 올해에도 1,000여 명이 의성지역 7개 교회(사미, 작성, 오로, 좋은, 후평, 성조, 광전교회)로 나누어 봉사활동을 펼쳤다. 의성지역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사역이 진행됐다. 사역 내용은 농촌 일손 돕기, 이‧미용, 한방의료, 방충망 교체, 교회 외벽 페인트칠, 마을잔치 등 교회별로 다양했다. 또한, 이들 교회를 대상으로 위로금도 전달됐다. 이승희 목사는 “도시교회가 농촌교회를 섬겨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에 저희 교회 교인들이 헌신하고 있다”며 “도시교회가 농촌교회를 품을 때 하나님께서 민족 복음화를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귀한 은혜를 베푸시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직접 붓을 들고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이승희 목사.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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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동안 한 교회를 섬긴 여성지도자 김점향 권사(4‧끝)한국기독역사의 발자취(5) 김승학 목사 논문 연재(5)-김점향 권사(4‧끝)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김점향 권사 (1907~1998) 목차 1. 할머니 등에 업혀 안동교회 첫 예배에 참석한 아기 2. 믿음의 분위기에서 성장하고 결혼한 여성 3. 안동 3·1 만세운동 당시 태극기를 흔든 어린이 4. 여자성경학교에서 공부한 교회의 재원(才媛) 5. 성전건축을 위해 쌀 한가마를 헌금한 가정 6. 안동교회 첫 권사 3인 중 한 명 7. 경안노회 여전도회연합회의 산 증인(證人) 8. 개척교회를 적극적으로 도운 여성 9. 여교역자 복지의 효시인 경안성로원 첫 원장 10. 90년 동안 안동교회의 뛰어난 지도자 9. 여교역자 복지의 효시인 경안성로원(慶安聖老院) 첫 원장 경안노회는 복지에 관한 한 국가나 다른 노회보다 앞서간 노회다. 복지에 관한 지대한 관심은 은퇴 여성교역자를 위해 1953년 경안성로원을 설립하게 했다. 경안성로원은 은퇴 여교역자의 생계와 여생을 돌보아줌을 목적으로 세워졌다. 성로원에 들어올 수 있는 자격으로는 경안노회와 영주노회에 소속된 은퇴 여교역자로서 경안노회 또는 경안노회 여전도회연합회에서 추천을 받아 성로원 이사회의 입원 승낙을 받아야 했다. 현재 운영은 경안노회 보조, 이사의 후원회비, 여교역자회의 후원, 여전도회 연합회와 지 교회에서 보내온 성탄헌금으로 운영하고 있다. 현재 경안성로원에는 5명의 은퇴한 여교역자가 생활하고 있다. ▲경안성로원은 반피득 선교사가 기증한 금곡동 183-1번지 소재 52평의 한옥에서 시작되었다. 이 가옥에는 처음으로 여교역자 4명이 거주했으며, 현재 안동성소병원 신관 입구에 위치하고 있었다. 사진의 우측 초가집이 경안성로원 첫 가옥으로 알려져 있다. 6·25 전쟁이 끝난 후 경안노회에서는 노쇠하고 병약하며 무의무탁한 은퇴 여교역자들의 노후를 배려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다. 당시 은퇴한 김순애 전도사가 당장 거처할 처소가 없게 되자 경안노회 여전도회연합회는 경안성로원 설립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1953년 제24회 경안노회 여전도회연합회 총회는 은퇴 여교역자를 위한 생활관을 건립하기로 결의했다. 그 결과 1953년 8월 금곡동 183-1번지 가옥에서 경안성로원이 문을 열게 되었다. 당시 반피득 선교사가 기증한 52평의 한옥에는 처음으로 여교역자 4명이 거주했으며, 현재 안동성소병원 신관 입구에 위치했다. 1954년에는 2명이 거주했고, 이후 입주자는 김순애, 김정숙, 양정애, 안주봉 등이 있었다. 후에 김구암, 권성찬, 김병규, 윤손흥, 권귀출, 김순교, 문초야 등도 입주했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의 기존 가옥으로 인해 성로원 신축건물의 요청은 계속되었고, 1956년 금곡동 138번지에 경안성로원이 준공될 수 있었다. 당시 조운선·설의돈 선교사가 건축비와 운영비를 담당하였고, 안동 선교부, 미국 인디아나교회, 경안노회 여전도회연합회, 안동교회, 안동동부교회 등이 건축을 위해 후원했다. 1956년 제27회 경안노회 여전도회연합회는 조운선 선교사를 경안성로원 원장으로 선출했다. 그 후 1978년, 금곡동 180-3번지에 소재한 경안신학원 여기숙사를 매입하여 이전하였다. ▲경안성로원은 성소병원 옆 금곡동 2차선 도로 건너편 주차장인 금곡동 180-3번지에 소재한 경안신학원 여기숙사를 매입하여 이전하였다. 현재 서후면 저전리에 위치한 경안성로원을 신축하여 이전하기 전까지 22년 동안 사용하였다. 김점향은 여기숙사를 구입하기 위해 예전의 성로원과 성로원 소유의 밭을 팔기 위해 많은 애를 썼다. 현재 임만조 장로가 사는 주택은 예전에 성로원 소유의 밭이었는데 임 장로가 구입하게 되었다. 결국 처음의 성로원 가옥과 성로원 소유의 밭을 판 것으로 여기숙사를 살 수 있었다. 이곳은 20여 년 동안 은퇴한 여교역자의 휴식처로 사용되었다. 그 후 2000년 2월 서후면 저전리 292-1번지에 건평 148평 규모의 경안성로원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로원의 원장은 누리는 높은 자리가 아니다. 인내하며 겸손히 섬겨야 하는 가장 낮은 자리이다. 노쇠하고 병에 걸린 여성 교역자들을 돌보고 섬기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김점향의 자부인 박춘희 권사(안동교회)의 증언에 따르면 초기 성로원의 재정이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 기관 등을 방문하여 후원을 받아 성로원을 어렵게 운영하다가 시(市)에서 배급하는 식량을 받게 되어 어느 정도 재정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성로원이 설립된 1953년부터 1978년까지는 조운선 선교사가 원장으로 근무했지만 김점향은 실질적인 원장의 자리에 있었다. 김점향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참고 인내하면서 무려 25년 동안 원장으로 은퇴 여교역자들을 위해 헌신했다. 김점향과 가까이 살고 있던 임만조 장로는 김점향이 성로원에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헌신했음을 기억하고 있다. 임 장로가 1972년 경안여자중학교의 교감이 되었을 때, 성로원 일로 김점향에게 밤낮없이 전화가 왔고 그때마다 옆에 사는 김점향에게 연결해주었다고 한다. 숨기지 않는 성격을 갖고 있던 김점향의 통화를 듣게 된 임 장로는 자연스럽게 성로원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 1970년대 중‧후반 임 장로는 성로원의 이사로, 또한 이사장으로 봉사하게 되었다. 힘이 남아있을 때까지 김점향이 붙들고 헌신한 것은 성로원에서 은퇴한 여교역자를 돌보는 일이었다고 임 장로는 기억하고 있다. 하나님께 은혜를 값없이 받았기 때문에 그 은혜를 이웃에게 갚는 것이 바로 섬김이라는 사실은, 김점향으로 하여금 무려 4반세기 동안 경안성로원장 자리를 지킬 수 있게 했다. 10. 90년 동안 안동교회의 뛰어난 지도자 김점향은 교회의 모든 일에 앞장서서 헌신한 분이었다. 그는 맡겨진 일에 적극적으로 임한 인물이다. 일평생 안동교회 여전도회의 중심인물이었을 뿐 아니라 주일학교 교사, 부장으로 수고했다. 그는 안동교회의 여러 분야에서 여성 평신도의 리더였다. 또한 그는 경안노회 여전도회연합회의 존경받는 여성지도자였다. “비록 나보다 연배가 20세 정도는 어렸지만 김 권사님을 존경할 만한, 본 받아야 할 만한 영적 어른으로 삼았다.” 한 집사님의 이와 같은 증언은 김점향의 영적 권위와 위상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처럼 김점향은 여전도회 회원들에게 있어서 선배나 후배들의 롤 모델이었다. 김점향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그를 여걸로 기억하고 있다.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기골이 장대했으며, 음성도 우렁차 여장부로서 손색이 없었다는 것이다. 전경상 장로는 김점향을 처음으로 만났을 때 탁월한 여성지도자라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청년연합회 활동으로 당시 경안신학원 원장이었던 김기수 목사님께 인사하기 위해 사택에 갔을 때 김점향이 있었다고 기억한다. 인사했을 때 김점향은 “잘하라”라고 격려했는데, 그 말이 어떤 사람의 말보다 존경할 만한 권위와 강한 힘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이유는 김점향에게 지도자로서의 덕망이 묻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점향은 교회 안과 밖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남성과 여성에 관계없이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그는 잊을 수 없는 여성지도자였다. 아니 그를 굳이 여성지도자라고 국한할 필요가 없다. 그는 안동교회가 낳은 지도자였다. 외할머니 등에 업혀 안동교회에 처음으로 출석한 1909년 8월 8일부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1998년 10월 19일까지 90년 동안 안동교회를 떠나지 않은 믿음의 사람이었다. 김점향은 교회에 출석한 이후 90년 중 오랜 세월 동안 안동교회와 경안노회를 위해 헌신한 믿음의 사람으로 남녀 성도 모두가 결코 잊을 수 없는 교회의 지도자였다. 그래서 이런 지도자를 안동교회에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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