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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함을 받은 자 택함을 받은 자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마 22:8~9) 이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해 세 번째로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1.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임금 예수님께서는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아들의 혼인 잔치를 위하여 애쓰시는 임금은 하나님 아버지이시고, 아들은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임금은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구약시대에는 많은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실 메시야(그리스도)를 확실히 믿고 짐승의 피로 속죄제를 드리면 그 짐승의 피가 그들의 죄에 대한 심판을 보류한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피 흘리신 이후에는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사도들이 선포했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2. 잔치는 구원의 계획이다. 구약시대에는 오실 메시야를 증거하는 선지자들의 예언을 듣고 믿음으로 회개해서 짐승의 피를 재단에 뿌리면 자기의 죄의 심판이 보류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죽어서 영혼이 낙원이라는 곳에 갔습니다. 그것이 잔치를 베푼 목적입니다. 구원해주시기 위함입니다. 살아 있을 때 부자의 문간에서 구걸하며 살았던 거지 나사로는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낙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집의 부자는 죽어서 음부에 갔습니다. 구원의 복음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음부는 불꽃이 꺼지지 않는 곳입니다. 고통 중에서 벗어날 길도 없습니다. 3. 청하러 보낸 종들을 잡아 죽이다. 그런데 잔치에 청함을 받은 사람들은 오기를 싫어할 뿐 아니라(3절), 청하러 온 종들을 잡아서 모욕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6절). 구약 시대에 오실 메시야를 애타게 전했던 많은 선지자들은 잡혀서 옥에 갇히기도 하고, 발길로 차이고, 구덩이에 던져져 굶어 죽기도 하고, 산채로 몸이 잘리기도 했습니다(이사야 선지자). 또한, 신약 시대에 성령이 충만하여 “회개하라”고 전한 스데반 집사를 사람들은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그리고 스데반은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면서 예수님의 품으로 바로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에 오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죽으면 바로 하늘나라로 갑니다. 4.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모두 잔치에 데려오라” 본문에서 1~7절의 내용은 혈통적 아브라함의 후손(이스라엘)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메시야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고 배척하자, 하나님은 만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데려오라고 종들을 다시 보냅니다(9절). 이제는 아브라함의 핏줄과 상관없는 세계 모든 인류가 구원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종들이 길에 나가서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혼인 잔치에 데려오니 손님이 가득하게 됩니다(10절). 여기서 ‘악한 자’라는 것은 원래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 아니었기 때문에 마귀에 지배하에 지옥으로 끌려가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혼인 잔치는 엄밀히 얘기해서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공중에서 생명부활에 참여한 사람들과 어린양 예수님과의 ‘영적 혼인잔치’를 의미합니다. 또한, 혼인 잔치는 작은 의미로 ‘교회’를 뜻하기도 합니다. 교회는 누구든지 초청받는 곳이고 회개와 구원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5. 잔치에 들르신 임금 드디어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하자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옵니다(11절). (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세운 몸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런데 잔칫집에 예복을 입지 않고 들어와 있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잔칫집에는 거기에 합당한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예수님과의 영적인 혼인 잔치에는 ‘의로워졌다’는 예복을 입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철저한 회개를 통해 죄사함을 받은 사람을 비로소 의롭다고 인정해 주십니다. 6.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있다. 교회를 다니는 성도들 가운데에도 아직 예복을 입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아직 회개를 통한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교회를 형식적으로 다닙니다. 교회의 마당만 밟고 지나갑니다. 복음의 메시지를 선포해도 귀를 닫고 들으려 하지 않고, 믿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히 3:17~19)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들은 회개치 않은 고집으로 영원한 형벌에 들어갈 것입니다. 7. 겸손은 구원의 길로 인도한다. 임금은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에게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고 묻고, 그가 대답을 못 하자 “그를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고 하십니다. 그 사람은 회개의 기회들이 찾아왔을 때 그것을 외면했을 것입니다. 교만하고 잘난 척하고 세상 명분이나 지위를 가지고 기득권을 누리는 것에 만족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드로와 시돈 지방으로 전도하러 가시다가 한 이방 여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여인은 귀신에 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고 말씀하자, “옳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얻어먹을 수 있습니다”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예수님은 “가라. 네 믿음대로 될지니라” 하셨고, 그 즉시 딸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8.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받은 자는 적다. 마태복음 3장 7~10절에 보면, 세례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 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오는 것을 보고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서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있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속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기득권을 버려야 합니다. 모양만 그리스도인이어서는 천국에 갈 수가 없습니다. 철저한 회개를 통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천국 잔치를 열고 누구든지 오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씻음을 받지 못하면 초청을 받아 잔치에 참여했다고 하나, 결국은 택함을 입지 못할 것입니다. <권면의 말씀> 저는 여러분에 대해서 항상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구원에 이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저는 요즈음 천국에 대한 소망이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천국을 빨리 보고 싶고 하나님을 빨리 뵙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다면 여러분 모두를 천국에서 다 만나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천국 복음이 믿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 은혜입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시지 않으면 믿어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확실한 회개를 이루지 못하여서 죄 씻음을 받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오늘 당장에라도 죄를 고백하고 천국에 들어갈 예복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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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경북하나신문 신년기획 - 장재효 목사 대담서울성은장로교회 장재효 목사 “지금은 성령시대!”‘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 “하나님의 말씀만을 대언하는 목회자 되어야!”한국교회뿐 아니라 전 세계를 살리는 “영적 운동(Spirit Movement)” 필요 최근 한국 교회는 교회 안팎으로 큰 위기를 겪고 있으며 그에 따라 개혁(改革)과 자성(自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교회의 본질(本質) 회복’과 ‘목회자의 사명’에 대한 해답은 오직 ‘성령 충만’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목회자가 있다. ‘팔순이 넘어서도 쉼없는 열정 목회’, ‘아버지 목사님’의 대명사로 불리는 서울 송파동 성은교회 장재효 목사이다. 본지에서는 신년을 맞아 장재효 목사님과의 대담을 통해 ‘성령 사역’과 ‘목회자의 사명’을 키워드로 한국 교회 회복의 방향을 제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Q: 예수님의 구속 사역과 성령의 역사하심에 대하여 말씀해 주신다면. A: 신‧구약 성경을 통하여 구약시대에는 성부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으로 창조하신 인간 세계를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주관하셨고, 아브라함을 택하심으로 그 계보 가운데서 인류를 죄에서 구속하실 메시아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기로 약속하신 바, 예수님을 아담의 원죄를 피하여 동정 탄생하게 하셨다. 죄없이 사시던 예수님은 택하신 자기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한 희생양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언약의 피를 흘리시고 <이사야 53:1~6>처럼 희생양으로 죽임당하셔서 인류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 그러나 이 사실을 타락한 인간의 이성(理性)으로는 알아볼 수 없기에, 예수님은 아버지께 기도하여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도록 하셨다(요 14:16). 그리하여 인간은 하나님을 알아보고 그 즉시 자신이 죄인임을 직시(直視)하게 되었다. 죄책감으로 심판·형벌의 불안과 두려움에 어찌할꼬 하는 죄인들에게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 조명, 체험, 감동, 감화’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믿어지게 하심으로 택하신 백성들의 구원 사역을 감당하고 계신다. 이처럼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성부시대, 성자시대, 성령시대로 인류 구원을 위한 역할 분담을 하셨고, 지금은 오순절 이후 성령님께서 천국 들어갈 알곡들이 믿어지는 믿음으로 결실하게 역사하시는 성령시대, 즉 성령사역시대이다. Q: 성령의 역사하심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신다면. A: 이 시대에 구원의 주(主) 되신 예수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한 사역자로 세워 쓰시기 위해서는 성령에 의해서 회개하고 죄 사함 받아 지옥길에서 천국길로 돌아서게 하시는데, 이것을 ‘리펜트 무브먼트(repent movement)’(회개 운동)라 한다. 오순절 이후 마가 다락방에서 120명이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와 함께 불의 혀 같은 것이 각 사람 머리 위에 임하여 성령이 충만하게 되었을 때,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4)의 역사가 일어났다. 그 14절부터 베드로가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갈릴리 사투리로 설교했는데, 칠칠절(오순절)을 지키러 세계 16개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각각 자기 나라말로 들려서, 설교 한 번에 3천 명이 회개하고 그들이 성령의 임재와 인도하심을 따라 예루살렘 교회의 초석이 된 것도 성령님의 불같은 역사로 이루어지는 섭리였다. Q: 목회자의 자세와 사명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A: 목회자는 베드로처럼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해야 한다. 성령이 말하게 하신 대로 대언하는 것이 100%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말씀은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이 수반해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아무리 무디고 완악한 심령도 깨어지고 부서지고 녹아져서 회개할 수밖에 없다. 요즘 일부 목사님들이 기도도 않고 성령의 충만한 임재가 없는 상태에서 자기가 만든 설교문을 마치 하나님의 말씀인 양 포장해서 양떼들에게 선포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가 없다. 건축 계획을 세우고 헌금 설교를 계속하거나, 교세를 늘리기 위해 전도에 관한 여러 이론들을 하나님의 것으로 포장해서 양떼를 속이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설교를 계속 들으면 성도들은 예수님을 만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성령 받은 사람에 의해서 또 다른 사람이 회개하고 성령 받고…’ 하나님은 그렇게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Q: ‘성령 충만’은 강단에서부터 먼저 흘러나와야 한다는 말씀이시네요. A: 그렇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롬 8:16) 했고,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고 성경에 말씀하셨다. 그래서 내가 운다. 하나님 앞에서 통곡할 때도 있다. 나도 이 시대에 58년이나 목회했는데, 한국 교회 원로로서 한국 교회가 성령을 배척하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신비주의라고 하면서. 그래서 나는 한국교회뿐 아니라 전 세계를 살리는 ‘영적 운동(Spirit Movement)’을 일으키고 싶다. 방송이든 신문이든 기회 되는대로 여러 언론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것도 다 이러한 마음이 있어서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고후 13:5)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또한, 유다는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유 1:19)고 했다. 교회 지도자들 중에서 성령을 못 받고 육에 속한 사람들을 가리켜 한 말씀이다. 그들은 패당을 짓고 자기 명분과 잇속을 챙긴다. 현대 목사 중에도 목사가 되기까지 철저한 회개가 없어 죄인 그대로이고 심령에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모시지 못한 경우를 보게 된다. 그들에게는 영혼 구원에 대한 목사 본래의 고유 사명인 ‘구령 성과’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 없다. 그러면 교인들의 눈치를 살피고 비위를 맞추는 직업인이 될 것이며 그 목적의 수단이 다양해지면 삯꾼 내지 사기꾼으로 멸망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Q: 목사님 말씀 경종으로 잘 듣겠습니다. 그런데 바른 목회 현장에도 종종 교회 내에 분열과 대립이 나타남을 보게 됩니다. A: 교회를 다니긴 하지만 회개도 중생도 신앙고백도 없는 교인들이 많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 23:15)고 하셨다. 이 말씀을 잘 분석해보면, 교회 신도들의 문제점은 원칙적으로 교회 지도자에게 찾을 수 있다. 교회 지도자가 외식하고 성령 충만하지 못하면 그들에게는 구원의 길로 이끌어 줄 가능성이 없기에 양떼들은 교회 다니면서도 불신자와 똑같은 죄악 생활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만, 바른 목회를 하는데도 목회자들에게 대적하고 훼방하며 모함하는 마귀의 앞잡이 같은 양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럴 때 목사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몇 번 권면해보다가 듣지 않으면 원수 시하고 교회 밖으로 내쫓기도 한다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주님께서 택해서 내 목장에 들여보내시고 내 양떼로 맡기셨다면 속썩이는 그 사람은 본심이 아니고 사탄이 그를 사로잡고 회개도 못 하게 하며 말씀을 무시하고 거역하게 하는 것이다. 참 목자라면 그 인생 영혼을 구원시키기 위하여 갑절의 깊이 있는 기도로 성령을 더욱 충만히 받아야 한다. 목사가 애타는 심정으로 그 영혼을 사랑으로 감싸 안고 눈물로 기도하면 목사와 함께하시는 성령께서 강권적으로 역사하시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완악하고 강퍅했던 그 사람에게서 사탄을 몰아내시고 마침내 그도 인간 본심으로 회개하며 목사에게 용서를 빌고 목회에 적극 협력 봉사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Q: 마지막으로 성은교회 양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A: 부족한 종을 목자로 신뢰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며 힘에 겹도록 분에 넘치는 봉사와 중심어린 협조에 뜨거운 눈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모두가 회개하고 성령 충만하여 그리스도의 심성으로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는 건강한 영적 공동체인 성은교회가 될 수 있게 애쓰신 여러분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인터뷰 후기> 한 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장재효 목사님의 음성은 힘이 있었고 메시지는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정확했다. 그리고 성령께서 충만히 주의 종에게 임하게 될 때 그것이 얼마나 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인지를 보고 느꼈다. “성령 받은 사람들이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자”는 장 목사님의 메시지가 한국 교회는 물론 전 세계 선교 현장에 깊은 울림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담·정리=박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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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통합) 영주노회 여전도회 제32회 임원단 세미나 개최영주노회 여전도연합회(회장 김혜옥 장로, 103지회 605명)는 지난달 29일 오전 10시 영주 신광교회(담임목사 김동락)당에서 회원 235명이 모인 가운데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19:2)’라는 주제로 제32회 임원단 세미나를 개최했다. 개회예배는 김혜옥 회장의 인도로 드려졌으며, 기도 이설희 부회장, 특송 임원 일동, 김동락 목사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나?”(마16:13~20)라는 제목의 말씀 선포, 서순자 총무 광고 후 화지교회 이향계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이어 찬양의 시간으로 박진숙 음악부장의 인도로 찬양의 시간을 가졌으며, 오후에는 이해원 목사(말씀선교교회)의 특강(1부 ‘믿음의사람 아브라함’, 2부 ‘내려놓음의 사람 야곱’), 합심 기도, 애국가 제창, 여전도회가 제창 등의 순서 후 주기도문으로 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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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애국자·인간 박상동 목사(1)김승학 목사신학과 교수/기독교 교육학안동교회 담임목사 박상동 목사 (朴尙東, 1894~1949) 들어가면서 안동교회 제4대 담임목사(1925~1928)로 시무한 박상동(朴尙東, 1894~1949) 목사는 아버지가 목사였고, 목사의 아들을 두었으며, 한국교회에서는 단 한 자릿수에 불과한 직계목사 손자를 둔 4대 목사 가문(家門)의 중심이었다. 그의 조부(祖父)·부친(父親)뿐 아니라 그 역시 민족을 사랑한 애국자였다. 그래서 고등학생 신분으로 6개월의 옥고(獄苦)를 치르기도 했다. 극일(克日)하기 위해 박상동 목사는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일본유학을 떠났다. 일본에서 4년 동안 신학을 공부하며 오사카와 고베에 거주하고 있던 재일교포를 위해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했다. 귀국한 후 안동교회를 섬기면서 전도, 사회봉사, 교회조직의 변화, 다음 세대의 신앙교육 등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의 헌신을 통해 안동교회는 새롭게 리모델링(Remodeling)되어 시대에 맞는 교회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박상동 목사는 이민자의 삶의 고단함과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고 안동교회 사역을 중단한 채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와 나고야, 그리고 인근 지방의 복음화와 교회개척에 거룩한 발자취를 남겼다. 그는 당시 한국과 재일교회를 위한 사도바울과 같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일제 말엽 그는 교포들의 인권개선노력과 민족독립운동의 죄목으로 또다시 옥고를 치렀다. 생사(生死)의 고비에서 해방과 함께 석방되어 귀국한 박상동 목사는 끝없는 복음의 열정으로 교회를 섬기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박상동 목사는 복음을 위해서라면 어떤 고초도 마다하지 않고 자신의 등에 십자가를 지는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성도와 자녀에게는 인자하고 겸손한 목사요 아버지였다. 그는 음악을 좋아했으며 자식들에게 사랑의 아버지로 기억되고 있다. 이 글은 박상동 목사의 일생을 기록한 소고(小考)이다. 하지만 이 글에는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믿음의 가문, 믿음의 사람의 거룩한 흔적을 포함하고 있다. 이제 독립운동가요, 복음전도자요, 교육자요, 아버지요, 음악을 좋아한 사람이요, 목사요, 인격자인 인간 박상동을 감사한 마음, 기대하는 마음으로 만나보자. 1. 마태복음 1장의 ‘낳고, 낳고, 낳고’를 재현(再現)한 가정 마태복음 1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다. 그 족보는 아담에서 시작하지 않고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한다. 박상동 목사 집안도 초창기 한국교회 믿음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는 명문가문이다. 1) 1대 박영화 목사박상동은 1894년 경북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에서 박영화(朴永和, 1859~1923)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박영화는 1902년경에 김인옥, 이성준의 전도를 받고 전 가족(부친인 박용한과 3남 8녀) 모두가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군위군 호암교회에 출석하다가 다음 해인 1903년 쌍계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그는 특별히 교육에 관심을 갖고 1910년 농촌지역 복음화와 인재양성을 위해 쌍계교회에 정림학교(1920년 폐교)를 설립하여 운영한 명망 있는 지역의 지도자였다. 이런 박영화는 1914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1918년 제11회로 졸업하고 동년 6월 경북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쌍계교회 초대 담임목사로 시무했다. 그는 1919년 3·1 의성 만세운동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른 후 경남 거제시 사능교회 초대담임 목사로 부임하였다. 이후 박영화 목사는 거제도와 통영 등 경남지역 초기 교회의 존경받는 목회자로 자리매김하였다. 2) 2대 박상동 목사이러한 신앙적 분위기에서 출생하고 성장한 박상동은 아버지와 기독교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는 대구 계성학교 출신으로, 부친과 함께 3·1 만세운동의 옥고를 치른 후 일본 고베에 있는 칼빈계 고베중앙신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1925년 귀국하여 안동교회 강도사로 부임하였다. 박상동은 안동교회 강도사로 시무하면서 평양신학교에서 별신학(別神學) 과정 1년간을 수학하였다. 박상동 목사는 1926년 9월 경안노회(제11회)에서 목사안수 후 안동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였다. 1885년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온 지 41년 만에 직계(直系)로 부자(父子)가 목사 임직자가 됨으로써 아버지, 아들 목사가 탄생하게 되었다. 3) 3대 박대선 목사경북 의성군 비안면에서 박상동 목사의 장남으로 출생한 박대선 목사(1916~2010)는 1940년 일본관서학원대학교 영문과와 1942년 동 대학 신학과를 졸업하고 1955년 미국 보스톤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구약신학전공으로는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40년부터 1942년까지 니시노미야시 한인교회의 담임전도사로 사역했으며, 귀국하여 1942년부터 1950년까지 평양 창광산교회, 박구리교회, 중앙교회, 서평양교회 등을 섬겼다. 박대선 목사는 1945년부터 1950년까지 평양성화신학교 교장대리 역임, 1955년부터 1964년까지 서울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 역임, 1959년부터 1962년까지는 서울 광화문감리교회에서 담임목회를 했다. 특히 1964년부터 1975년까지 연세대학교 총장을 역임하다가 3선 임기 중 저항 운동에 나선 교수의 복직을 반대하던 당시 정부와 심한 불화를 겪다가 사임하였다. 4) 4대 박태기 목사박대선 목사의 차남인 박태기 목사는 공학박사로서 KIST의 책임연구원으로 있다가 소명을 받고 감신대를 졸업한 후 목사가 되었다. 중진 과학자로서 인정받고 안정된 생활을 하다가, 일생의 여름과 같은 때에 성직의 길에 들어섬으로써 대(代)를 이어 직계 4대 목사 가문(家門)을 이어가고 있다. 2. 애국자 박상동 의성에서 3·1 독립만세가 크게 울려 퍼진 날은 1919년 3월 12일이다. 11일에 의성군 비안공립보통학교 학생 150여 명이 학교 뒷산에 올라가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친 것이 시발점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쌍계리에서 쌍계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만세운동의 중심인물은 김원휘 조사, 김충한, 쌍계교회 박영달 장로, 박영화 목사, 그리고 대구 독립만세 시위운동(3월 8일)에 참여한 후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귀향한 박상동(당시 대구 계성학교 2학년생) 등이다. 이들은 3월 12일 정오, 박영신의 집 앞에 모인 2백여 명의 시위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주고,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하였다. 이렇게 촉발된 의성지역의 만세시위는 4월 3일 가음면 구천시장의 ‘1인 만세시위’까지 23일간 계속되었다. 이후 박상동은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부친과 그의 형제들, 그리고 박상동은 함께 의성 독립만세 시위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독립운동가정이었다. 6개월의 옥고를 치른 박상동은 일본을 올바로 알아야 일본을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일본 고배중앙신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생활은 고베, 오사카, 교토 등에 거주하고 있던 재일동포를 위해 교회를 개척하고 섬기는 기간이었다. 졸업 후 1925년 귀국하여 3년여 동안에는 안동교회를 섬겼다. 특히 이 기간에 박상동 목사의 민족의식이 나타난 것은 1928년 3월 경안노회 여전도회 도사경회와 5월 23일부터 1주일 동안 계속된 성경사경회였다. 당시 일본 경찰의 요시찰 인물이었던 길선주 목사가 안동을 방문했다. 약 200명이 참석한 성경사경회의 주제는 ‘애굽의 금자탑’으로 자유와 해방을 갈망하는 많은 백성에게 희망을 주었다. 한편, 사경회 기간 중 길선주 목사는 일경에 체포되었으며. 구류 20일 후 출소한 길선주 목사는 예정대로 사경회를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갔는데 이 사건은 사경회에 참석한 교인에게뿐 아니라 주위 교회 성도들에게도 깊은 도전을 주었다. 이후 박상동 목사는 1928년 파송 받아 다시 오사카로 돌아가 순회목사로 교회를 섬기는 일을 계속하였다. 하지만 일제 말엽 박상동 목사는 또다시 투옥되었다. 박상동 목사는 1941년부터 1943년까지 일본 각지를 순회하며 민족의식의 고취, 일제의 조선에 대한 식민지통치 비판, 기독교도의 동방요배와 신사참배 반대 등의 운동을 하기도 하였다. 1941년 나고야 동부교회를 담임하고 있을 때 박상동 목사는 당시 지역 교회지도자들 10명과 함께 예비 검속되어 체포되었다. 이때 박상동, 추인봉, 김은석 목사도 포함되었다. 투옥된 박상동 목사는 밤마다 구타 등 고문을 당하는 고초를 당했다. 석방과 투옥을 반복하다가 그는 옥중에서 해방을 맞이했다. 정부에서는 박상동 목사의 공훈을 인정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의성군 비안면 ‘3.1운동 경상북도시발지 기념공원’에 세위진 기념탑 /논문 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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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학 목사의 논문 원문(4)- 목사 · 애국자 · 인간 박상동 목사목사·애국자·인간 박상동 목사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 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박상동 목사 (朴尙東, 1894~1949) 들어가면서 안동교회 제4대 담임목사(1925~1927)로 시무한 박상동(朴尙東, 1894~1949) 목사는 아버지가 목사였고, 목사의 아들을 두었으며, 한국교회에서는 단 한자리 수에 불과한 직계목사 손자를 둔 4대 목사가문(家門)의 중심이었다. 그의 조부(祖父)·부친(父親) 뿐 아니라 그 역시 민족을 사랑한 애국자였다. 그래서 고등학생 신분으로 6개월의 옥고(獄苦)를 치르기도 했다. 극일(克日)하기 위해 박상동 목사는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일본유학을 떠났다. 일본에서 4년 동안 신학을 공부하며 오사카(大版)와 고베(神戶)에 거주하고 있던 재일교포를 위해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했다. 귀국한 후 안동교회를 섬기면서 전도, 사회봉사, 교회조직의 변화, 다음세대의 신앙교육 등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의 헌신을 통해 안동교회는 새롭게 리모델링(Remodeling)되어 시대에 맞는 교회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다. 박상동 목사는 누구보다 재일교포를 사랑했기 때문에 이민자의 삶의 고단함과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고 안동교회 사역을 중단한 채 일본으로 건너간 예민한 영성의 사람이었다. 그는 오사카와 나고야, 그리고 인근 지방의 복음화와 교회개척에 거룩한 발자취를 남겼다. 박상동 목사는 현해탄을 넘나들며 한국과 일본에 복음을 전한 위대한 전도자였던 것이다. 그는 당시 한국과 재일교회를 위한 사도바울과 같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일제 말엽 그는 교포들의 인권개선노력과 민족독립운동의 죄목으로 또 다시 옥고를 치렀다. 생사(生死)의 고비에서 해방과 함께 석방되어 귀국한 박상동 목사는 끝없는 복음의 열정으로 교회를 섬기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박상동 목사는 복음을 위해서라면 어떤 고초도 마다하지 않고 자신의 등에 십자가를 지는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성도와 자녀에게는 인자하고 겸손한 목사요 아버지였다. 그는 음악을 좋아했으며 자식들에게 사랑의 아버지로 기억되고 있다. 이 글은 박상동 목사의 일생을 기록한 소고(小考)이다. 하지만 이 글에는 잊지 않고 기억해야할 믿음의 가문, 믿음의 사람의 거룩한 흔적을 포함하고 있다. 이제 독립운동가요, 복음전도자요, 교육자요, 아버지요, 음악을 좋아한 사람이요, 목사요, 인격자인 인간 박상동을 감사한 마음, 기대하는 마음으로 만나보자. 1. 마태복음 1장의 ‘낳고, 낳고, 낳고’를 재현(再現)한 가정 마태복음 1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다. 그 족보는 아담에서 시작하지 않고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한다. 비록 아담이 인류 최초의 사람이긴 하지만 범죄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고,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신 믿음의 역사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마태복음 1장의 족보는 육신의 족보라기보다는 믿음의 족보요 하늘나라 백성의 계보라고 할 수 있다. 안동교회 4대 담임목사로 사역한 박상동(朴尙東, 1894~1948) 목사 집안도 초창기 한국교회 믿음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는 명문가문이다. 오늘도 박상동 목사의 가문은 한국교회의 살아있는 믿음의 역사를 중단 없이 써가고 있다. 130년의 한국기독교 역사에서 현재까지 4대 직계목사 가문을 이어가고 있고, 곧 5대 목사가 배출될 예정이라고 한다. 사실 목사의 아들이 목사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목사 아버지는 자신이 겪은 험난한 목회의 길을 자녀들이 겪기를 원치 않을 뿐 아니라 목사 자녀들도 목사 아버지의 좁은 목회의 길을 보며 쉽게 그 길을 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상동 목사는 아버지가 걸어간 목회의 길을 걸었을 뿐 아니라 그의 아들과 손자까지 목사가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수 있다. 1) 1대 박영화 목사 박상동은 1894년 경북 의성군 비안면(比安面) 쌍계리(雙溪洞)에서 박영화(朴永和, 1859~1923)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박영화는 1902년경에 김인옥, 이성준의 전도를 받고 전 가족(부친인 박용한과 3남 8녀) 모두가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군위군 호암교회에 출석하다가 그 다음 해인 1903년, 많은 핍박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쌍계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하지만 박영화는 1908년 세례를 받았다. 그는 특별히 교육에 관심을 갖고 1910년 농촌지역 복음화와 인재양성을 위해 쌍계교회에 정림학교(1920년 폐교)를 설립하여 운영한 명망 있는 지역의 지도자였다. 더욱이 박영화는 당시 선교사의 조사(助事, Helper)로 활발히 사역한 인물이었다. 경안노회 70년사는 그가 의성 지역의 유력한 조사였음을 밝히고 있다. 더욱이 경상노회록에 의하면 박영화는 쌍계교회 장로로 임직 받고 노회 총대로 참석할 정도로 당시 의성 지역의 교회지도자였다. 1914년 12월 30일 부산진 여학교에서 회집된 제9회 경상노회 회의록에는 그의 이름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서기가 회원을 조명하니 참석원은 목사의 방혜법, 권임함, 김기원, 홍승한, 심취명, 김영옥, 왕대선, 매견시, 맹호은, 예알배, 라대벽, 권일두, 권찬영, 인로절, 제씨요. 장로의 허 일, 황재은, 정재순, 박영화, 박상순, 최경호, 리준섭, 권덕생, 김덕경, 김응진, 김복명 제씨라. 이런 박영화는 1914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1918년 제 11회로 졸업하고 동년 6월 19일 경북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쌍계교회 초대 담임목사로 시무했다. 그는 1919년 3·1 의성만세운동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룬 후 경남 거제시 사능면에 위치한 사능교회 초대담임 목사로 부임하였다. 이후 박영화 목사는 거제도와 통영 등 경남지역 초기 교회의 존경받는 목회자로 자리매김하였다. 2) 2대 박상동 목사 이러한 신앙적 분위기에서 출생하고 성장한 박상동은 아버지와 기독교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는 기독교학교인 대구의 계성학교 출신으로, 부친과 함께 3·1 만세운동의 옥고를 치룬 후 일본 고베에 있는 칼빈계 고베중앙신학교(神戶中央神學校)를 졸업하였다. 졸업한 박상동은 1925년 귀국하여 안동교회 강도사로 부임하였다. 1925년 6월 17일 안동교회에서 소집된 제8회 경안노회록은 “신학졸업생 박상동씨를 노회장이 임시노회를 소집하는 대로 강도사로 세워주기로 가결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박상동은 안동교회 강도사로 시무하면서 평양신학교에서 별신학(別神學) 과정 1년간을 수학하였다. 그 당시 외국에서 공부한 사람이 장로교 목사가 되려면 평양신학교에 가서 1년 동안 공부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1926년 6월 16일 안동교회에서 회집된 제10회 경안노회에서 안동교회는 박상동 강도사를 동사목사로 청원하였고, 노회는 임사부에 맡겨 처리하도록 결의하였다. “안동교회에서 박상동 강도사를 동사목사로 청원하노니 허락 주시되 헌법대로 오는 9월에 장립허락까지 달라는 청원은 임사부로, 박상동에 목사장립을 위하여 별노회 소집은 회장에게 위임하기로 가결하다.” 결국 1926년 9월 1일 영주읍 교회에서 개회된 경안노회(제11회) 임시노회에서 안수 후 안동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였다. 1885년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온 지 41년 만에 직계(直系)로 부자(父子)가 목사 임직자가 됨으로써 아버지, 아들 목사가 탄생하게 되었다. 3) 3대 박대선 목사 박영화 목사 가문의 직계 3대 목사인 박대선 목사는 1916년 경북 의성군 비안면에서 박상동 목사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그는 1928년 파송 받아 오사카에서 순회목사로 일본에 파송된 부친 박상동 목사와 함께 일본에 체류하면서 1940년 일본관서학원대학교 영문과와 1942년 동대학 신학과를 졸업하고 1955년 미국 보스톤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구약신학전공으로는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에 체류할 당시인 1940년부터 1942년까지 니시노미야시 한인교회의 담임전도사로 사역했으며, 귀국하여 1942년부터 1950년까지 평양 창광산교회, 박구리교회, 중앙교회, 서평양교회 등을 섬겼다. 박대선이 어렸을 때 사람들이 “넌 이담에 커서 무엇이 될래?”라고 물으면 서슴없이 “난 목사가 될 겁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 한 이 대답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을 정도로 박대선은 소명의식이 투철했다. 특히 1945년부터 1950년 까지 평양성화신학교 교장대리로 학교를 책임지고 경영하였다. 박대선 목사는 1955년부터 1964년까지 서울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를 역임했고, 1959년부터 1962년까지는 서울 광화문감리교회 담임으로 목회를 이어갔다. (이하 내용은 논문원문 첨부파일 참조)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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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내 4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통일광장기도회“아버지여! 저 북한 땅을 구원해 주시옵소서” 에스더기도운동 대표 이용희 교수 집회 인도 제210회차 구미역광장기도회, 4주년 기념 예배 ‘통일선교사’·‘통일5분대기조’ 되어 복음통일 이뤄내자 지난 2일 저녁 8시 구미역 광장에는 “나가세 나가세 주 예수만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바치고 싸움터로 나가세”라는 씩씩한 찬송 소리가 온 거리에 메아리쳤다. 전국통일광장기도연합 소속 구미통일광장기도회가 4주년(제210회차)을 맞은 날 기도회 현장의 광경이다. 이날 구미와 인근 지역에서 모인 목회자와 성도 40여명은 “아버지여! 저 북한 땅을 구원해 주시옵소서”라며 한 목소리로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했다. 특히, 이날은 4주년을 기념해 에스더기도운동 대표 이용희 교수가 직접 구미를 찾아 말씀을 증거하기로 되어있어 기도회의 의미가 여느 때보다 한층 더 뜻 깊은 날이었다. 이날 이용희 교수는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딛전5:8)를 살펴볼 때 그리스도인은 가족과 친척, 민족, 열방에 대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다”고 말했다. 특히, “하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심(보내신 지역)과 이 시대를 살게 하신 것(보내신 시대)을 볼 때, 조국(祖國) 대한민국에 통일(統一)을 숙제로 주셨고, 이 일을 잘 섬기라고 우리를 보내셨다”고 강조했다. 또, 북한 주민의 생존권 확보와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하고 개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법인 북한인권법이 미국에서는 2004년, 일본에서는 2006년 통과되어 북한 주민들을 보호해 왔건만, 부끄럽게도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금년 3월3일 우여곡절 끝에 통과된 점. 게다가 통일 당사국으로 통일을 준비해야 할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통일에 대해 무관심하고, 전혀 지식이 없는 것에 안타까워하며 독일처럼 통일광장기도회를 통해 더욱 많은 이들이 기도의 자리로 나와 ‘복음통일’을 앞당기자고 당부했다. 이 교수는 “기도가 식어가고 기도하지 않는 시대라지만, 놀랍게도 통일광장기도회만은 지역마다 새롭게 일어나고, 갈수록 늘어나 전국 40여곳으로 확대되었다”고 말하며, “이는 통일이 임박함을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징조이기에 도둑같이 다가올 통일 시대, 각자 감당해야 할 사명을 기도함으로 받고, 미리 잘 준비해 실제 통일이 이뤄졌을 때 사기꾼들과 이단들 보다 먼저 그들을 찾아 예수님의 사랑을 전해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성애에 대해서도 큰 우려를 표했다.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은 교회를 파괴하는 법’으로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소리를 높였다. 성경을 거스르면 모두가 죄이지만 동성애는 이와는 수준이 다르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된 후, ‘동성애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이다’라고 설교하거나 말만해도 ‘2년 이하의 징역’에까지 처해지는 중죄가 된다는 것이다. 결국, 교회는 설교도 제대로 할 수 없어 교회로서의 사명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크리스천은 비(非) 성경적인 법이 만들어지지 말고, 성경적인 법이 세워지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기도회는 양무리교회(담임목사 진상권) 찬양팀의 찬양 인도 후 송정교회 최문선 목사의 기도회 인도, 이용희 교수의 말씀 증거, 김아브라함 목사의 기도회 인도, 진상권 목사(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의 축도로 진행됐다. 구미통일광장기도회에서는 4주년 기념으로 떡을 준비, 함께 나누며 이날을 축하했다. 연락처(010-3519-8967) 한편, 안동통일광장기도회는 2014년 9월 벧엘내과의원 손수인 원장(승리하는교회 담임목사)을 중심으로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안동역 광장에서 10여명의 안동 지역 목회자와 성도 등 40여명이 모여 북한 복음화와 평화통일, 동성애와 이슬람 반대를 위한 기도회를 계속하고 있다. 연락처(010-4061-9176) 울진통일광장기도회는 2014년 2월25일 2교회로 시작, 매주 화요일 저녁 8시 연호정공원에서 지역의 13개 교회를 중심으로 20여명이 복음통일을 위해 부르짖어 기도하고 있다. 기도회가 시작된 지, 만 2년2개월이 된 울진통일광장기도회는 1주년과 100회차를 기념, 강사초청 집회를 통해 울진 지역 교회와 성도들에게 통일 대비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연락처(010-7763-2134) 포항통일광장기도회는 한동대생을 중심으로 2014년 가을부터 2015년 겨울까지 이어지다 현재는 중단된 상태이다. 지역 교계 주도로 포항지역에 다시금 복음통일을 향한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되길 염원해 본다.(JESUS ARMY 학생대표 010-6318-3280) ‘눈물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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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신앙이정우 목사 안동서부교회 한 시대를 평가하고 진단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의 사람들의 행동양식과 집단 행태를 알아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행동양식과 삶의 방향성이 그 시대의 거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사기는 BC.1390년~BC.1055년까지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시대적 상황과 신앙적 행태를 알 수 있는 주요한 단서가 되는 성경입니다. 당시는 여호수아가 죽고 난 후, 아브라함부터 모세를 거쳐 여호수아까지 단일 지도자를 중심으로 신정 체제를 유지했던 이스라엘에 신앙의 혼란이 불어 닥친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나안 정복전쟁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몰아내라고 하신 가나안 족속들을 다 몰아내지 못하고 그들의 사상과 신앙과 삶의 패턴에 젖어 살거나 오히려 가나안 문화에 압도되어 점점 신앙의 가치를 상실해 갔습니다. 그래서 사사기의 악순환이라는 불리는 범죄-징계-회개-구원-재타락 이라는 악순환의 구조에 빠지게 됩니다. 사사시대의 잘못된 신앙을 한 마디로 진단한다면,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신앙’이었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라고 사사기 마지막 구절은 기록합니다. 그 특징적인 삶을 사사기 17장에서 ‘미가’ 라는 사람의 가정을 통해 고발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아들이 물질을 범함으로 신앙적인 행위에서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책망보다 오히려 복을 선포합니다. 심지어 그의 어머니는 미가를 위하여 에봇과 드라빔과 같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물을 서슴없이 만들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돈으로 매수해 레위인을 자신의 집에 고용하여 제사장으로 삼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완벽한 절도요, 사기행각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미가가 자칭 제사장을 세우고 한다는 말이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라고 스스로 안위했습니다. 이는 사사시대의 잘못된 신앙의 한 일면입니다. 신앙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방식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기독교 용어 가운데 ‘실천적 무신론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무신론자들은 교회도 나오고 하나님이 계심도 믿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삶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사는 사람들입니다. 결국 신앙을 가졌지만, 내가 믿는 방식이 정답인 줄 알고 사는 삶입니다. 이론적 무신론자들보다 더 해악을 끼치는 자들이 바로 실천적 무신론자들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힘 있는 교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기 때문입니다. 힘센 사람의 말이 정도(正道)가 되고, 사람들의 생각이 진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신앙 모습은 세상과 친숙해 지고 세상과 가까워진 편리주의 신앙으로 흘러 기복주의 신앙이 되었습니다. 내 교회에 유익이 되는 것이 곧 법이 되어 편법과 반칙이 난무함으로 하나님을 잃어버린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없고, 십자가 없는 신앙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오늘날 미가의 신앙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 유일신 신앙이 아닌 짬뽕신앙입니다. 신앙의 가치를 잃어버린 편리주의 신앙입니다. 의를 위한 고난의 신앙이 아닌 기복주의 신앙입니다. 잘못된 신앙에서 바른 신앙으로 말씀의 원칙과 신앙의 절대가치를 지킴으로 세상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하나님의 종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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