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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3)김정숙, 안동지역 여성사역의 개척자(3)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김정숙 전도사 (金貞淑, 1880~1969) 목차 서론 1. 출생과 결혼 2. 최초의 순교를 목도한 시댁(媤宅) 3. 여성 복음전도의 선구자 4. 평양여자성경학원의 유학생 5. 담임목사의 부재(不在)를 메꾼 여성교역자 ................................................... 10. 평신도 사역자 결론 4. 김정숙, 평양여자성경학원의 유학생(2) 참고로 내한(來韓)한 선교사들은 1900년대부터 여성 교역자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남녀 구별과 차별이 심했기 때문에 선교사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순회 전도하는 일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다. 처음에 여교역자는 전도부인(傳道婦人, Bible Woman)으로 불렸다. 전도부인들은 선교사들과 함께 지방을 순회하면서 복음을 전했을 뿐 아니라 사경회 시 보조역할을 했다. 1907년 평양여자성경학원은 본격적으로 여교역자를 양성하는 훈련원으로, 1910년에는 정식으로 평양여자성경학원이 되어 보다 체계적인 교육을 시킬 수 있었다. 1923년에는 미국북장로회 선교부의 설립 허가를 받아 여교역자 양성을 위해 평양여자고등성경학교로 개교하였다. 1938년에는 평양여자신학원으로 개명되었다가 1943년 일제에 의해 폐교되었다. 당시 미국장로교에서 세운 여자성경학원의 수업기간은 3년이었고, 교과과정도 성경뿐 아니라 일반 고등학교와 같이 교양과목도 가르쳐 교역자와 평신도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을 갖추게 하였다. 김정숙의 입학 당시 평양여자성경학원은 3년 과정으로 1년에 봄, 가을, 겨울 3학기로 이루어졌으며, 교과과정은 성경 외에 교회사, 설교학, 윤리, 심리학, 영어, 음악 등 성경교사로서의 자질을 갖추기 위한 것들로 꾸며졌다. 위에 언급된 과목들은 오늘날 4년제 신학대학교에서도 개설하고 있는 과목들이며 평양여자성경학원은 당시 우수한 신학교육을 받은 여성 교역자를 배출하는 기관이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김정숙은 입학한 지 5년 만인 1920년, 당시 여성 신학교 중에서는 가장 공신력 있는 여자성경학원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사역의 현장인 교회에서 섬길 수 있게 충분한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 5. 김정숙, 담임목사의 부재(不在)를 메꾼 여성교역자(1) 1920년 평양여자성경학원을 졸업한 김정숙은 안동으로 내려와 교회와 노회를 위해 헌신적인 복음 사역을 시작하였다. 1922년부터 김정숙은 안동의 공식적인 첫 여성 교역자로 안동교회를 섬기면서 교회의 여러 사역에 참여하였다. 초대 김영옥 목사가 사임한 후 안동교회 2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이대영 목사는 1921년 1월 부임해서 헌신하던 중 1921년 9월 10일부터 15일까지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열린 제10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전도국의 부름을 받았다. 이대영 목사가 중국선교사로 파송 받은 후 정재순 목사가 안동교회 3대 담임목사로 부임하게 됐다. 1922년 7월 20일에 개회된 제83회 당회록은 정재순 목사가 당회에 참석한 것으로 기록한다. 따라서 짧게는 5월과 6월, 2개월을, 길게는 3~4개월 안동교회는 담임목사가 공석으로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때 전도사로 교회를 섬기고 있던 김정숙은 비록 2개월에서 4개월 정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제한된 범위 내에서 담임목사의 공백을 잘 메웠을 것이다. 또한, 새로운 담임목사가 교회에 부임해서는 그와 의견을 맞추어가며 사역에 충성을 다했을 것이다. 아마 교회의 분위기와 성도들을 소개하고 교회가 진행하고 있던 이전 사역을 소개함으로써 새로운 담임목사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을 것이다. 안동교회 3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정재순 목사의 최우선 목회방침은 지역전도였다. 그는 안동교회를 전도중심의 교회로 만들어 나갔다. 그가 추진한 강력한 전도사역을 통해 안동 땅은 영적으로 기경되기 시작되었다. 전도의 결과로 호암교회(현 송현교회)와 수하리교회(현 수상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또한, 그의 주도로 뿌려진 복음의 씨앗은 훗날 안동 땅에서 수확할 풍성한 구원의 열매를 기대할 수 있게 만들었다. 정재순 목사가 시무하던 시기는 처음으로 현지 교회인 안동교회를 중심으로 복음이 널리 전파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김정숙 전도사는 누구보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뜨거운 구령의 열정을 갖고 있던 김정숙 전도사는 정재순 목사와 뜻을 같이하여 지역을 복음화하는 일에 앞장섰을 것이다. 정재순 목사 역시 복음의 열정을 갖고 있는 김정숙 전도사와 동역하면서 고을마다 전도인을 파송하여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통해 안동 땅은 예수 마을로 바뀌고 있었다. 정재순 목사가 사임한 후 의성 출신으로 1925년 일본 고베신학교를 졸업한 후 귀국한 박상동이 안동교회 강도사로 부임했다. 박상동 목사는 1926년 9월 제11회 경안노회 임시노회에서 안수 후 안동교회 제4대 담임목사가 되었다. 박상동 목사는 전임 정재순 목사처럼 교회의 부흥뿐 아니라 안동읍의 성시화를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추진하였다. 1925년 7월 6일 제직 회의록에 따르면 오늘의 안동서부교회인 안기기도실을 세웠을 뿐 아니라 안동 읍을 4개 권역으로 나누어 복음전파의 책임을 가진 권찰을 두었다. 1926년 접어들면서 전도대를 조직하고 안동읍 동·서 양편에 파견하여 안동복음화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특히 1928년 9월 18일부터 26일까지 제1회 경안주일학교대회가 안동교회에서 개최되어 유년부, 소년소녀부, 청년부, 남·여장년부, 여전도회 교사 및 교역자 등 정회원 1,300여 명과 방청객 1,000여 명 등이 참석했다. 안동지역에서 개최된 최초의 대중 집회였는데, 참석한 인원은 당시 교회가 신앙교육에 얼마나 큰 관심을 갖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이때 안동교회 소년소녀부의 고문이며, 다음세대를 지도했던 김정숙 전도사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을 것이다 김정숙은 정재순 목사가 사임한 후 박상동 강도사가 부임하기 전까지의 공백 기간에 교회의 안정을 위해 힘썼을 뿐 아니라 그 후 박상동 목사를 도와 안동지역 복음화에 최선을 다했다. 또한, 박상동 목사가 사임한 이후 1929년 1월 안동교회 5대 담임목사로 임학수 목사가 부임하기까지 김정숙은 다시 전도사로 자리를 지키며 교회와 교인의 안정을 도모했다. ▲1928년 9월 18일부터 26일까지 제1회 경안주일학교대회에 참석한 교사들과 교역자들이 함께 촬영한 사진으로, 사진 왼쪽 위에 있는 기와집은 안동 최초의 여성전문초등학교인 계명학원으로 안동 3‧1만세운동 당시 태극기와 독립선언문을 등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사진4)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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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안동시 부활절 연합예배 드려박석진 목사 강사로 ··· 안동서부교회에서 현장예배와 영상예배 병행 안동시 부활절 연합예배가 4일 안동시기독교총연합회(회장 김철한 목사) 주최로 안동서부교회에서 현장예배와 유튜브 온라인 영상예배를 병행해 드려졌다. 예배는 김철한 회장 인도로 드렸으며, 박석진 목사(포항장성교회)가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안동시장로총연합회장 최태권 장로 기도, 서기 홍현희 목사 성경봉독, 김준남 권사 몸찬양, 성악가 이현진 특송, 직전회장 박춘식 목사 축도 등의 순서가 있었다. 특별기도 시간에는 참석한 성도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안동시 복음화를 위해 △안동시 지역발전을 위해 뜨겁게 기도했다. ▲안동시 부활절 연합예배가 4일 안동서부교회에서 온‧오프라인으로 드려졌다. 안동 한상덕 기자 ‧ 사진 임만조 장로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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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교회 대면예배 ‘제한’ 허용 ··· 수도권 10%, 비수도권 20%18일부터 31일까지 ··· 소모임, 식사 제공은 금지 ··· 거리두기 단계는 현행 유지 ▲안동서부교회에서 지난해 연말 송구영신예배를 온라인으로 드리는 모습.(사진=안동서부교회 홈페이지 캡처) 방역 당국이 18일부터 교회에 대해 정규예배에 한해서 수도권의 경우 좌석 수의 10%, 비수도권 지역은 20% 내 대면예배를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16일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브리핑을 통해 18일 0시부터 정규예배, 법회, 미사 등 종교활동에 대해 인원수를 제한하면서 대면으로 시행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정규예배 외의 부흥회, 성경공부 모임, 구역 예배, 심방 등 모든 소모임과 식사는 계속 금지되며, 기도원과 수련원 등에서의 숙식과 통성기도 등도 여전히 금지했다. 이번 조치는 18일부터 오는 31일까지 적용된다. 앞서 정세균 국무총리는 16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거리두기 조정 방침을 발표했다. 정 총리는 “오는 31일까지 거리두기 단계는 그대로 2주 더 연장하고,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와 21시 이후 영업제한 조치도 계속 시행한다”고 밝혔다. 다음 달 설 연휴에 대해서는 “가족·친지와 마음으로 함께해 달라”며 “이동과 여행을 자제하고 접촉을 줄여 고향 부모님의 건강과 안전을 지켜달라”고 말했다. 또 정 총리는 다음 달부터 도입되는 치료제와 백신을 언급하며 “앞으로 한 달간 조금 더 힘을 모아주면 머지않아 희망의 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 밖에 결혼식, 장례식, 기념식 등도 지금처럼 수도권 50명 미만, 비수도권 100명 미만으로 인원이 제한된다.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은 시설에 대해서는 1차 위반 적발 시 경고, 2차 적발 시 최대 10일간 운영중단 조치를 내린다. 한편, 이번 방역 당국의 종교활동 내 사회적 거리두기 조정안에 대해 “작은 교회들을 고려하지 않은 비합리적인 조치”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국교회 중 대다수가 성도 수 100명 미만이거나 예배당 규모가 크지 않은 ‘작은 교회’들인데, 10% 미만이면 오히려 이전의 ‘방송 송출 인원 등 20명 미만 비대면 예배’ 때보다 참석자 수가 줄어 100석 규모 교회는 10명만 참석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탁상행정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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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은 축복의 통로이정우 목사 안동서부교회 왜 아브라함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복의 근원으로 삼으시겠다고 부르셨을 때 그 부르심에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를 보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11:8)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창세기 12장 1절부터 본격적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그가 어떻게 살았으며 무엇을 행하였는지에 대해 성경은 거의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순종이 없는 삶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관계성이 없는 일에 대해선 제로로 보십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에게 있는 공통점은 하나님과 부르심 앞에 순종이었습니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라고 기록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장이라 말합니다. 거기에는 믿음의 선진들의 삶과 신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두가 믿음에 대한 순종이 그들의 삶을 가장 아름다운 하나님과의 동행자로 만들었습니다. 옛날 유대의 다윗 왕이 반지를 만드는 한 세공장을 불렀습니다. “내가 승리의 기쁨을 억제하지 못할 때 자제할 수 있고 절망에 빠졌을 때 좌절하지 않고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글귀를 새긴 반지를 만들어오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며칠을 고민하던 그는 지혜로운 왕자 솔로몬을 찾아갔습니다. 그 때 솔로몬은 이런 글을 써주었습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이 글귀가 새겨진 그 반지를 본 다윗 왕이 탄복했다고 합니다. 이생의 성공의 기쁨도, 실패의 절망도 뒤돌아보면 한 순간 지나가는 찰나에 불과합니다. 지금 성공의 기쁨 속에 있다고 너무 자만하지 말고 지금 절망 속에 빠져있다고 해서 용기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삶이 주어지든지 하나님이 베푸신 환경이라 믿고 순종할 때 지혜와 이길 수 있는 용기를 그 분이 부어 주십니다. 이것이 성령을 따라 사는 신앙의 삶입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에게는 순종이 있습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뜻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순종은 성령의 열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열매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성령의 열매를 열리게 하는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뿌리가 없으면 마치 꽃병에 꽂힌 꽃 같아서 처음에는 화려하고 싱싱하나 시간이 지날수록 시들어 버려서 결국에는 쓰레기통에 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만 성령을 주십니다. 베드로 사도는 사도행전 5장 32절에서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이라고 공회원들 앞에서 증거했습니다. 그러므로 순종과 성령은 따로 따로 존재할 수 없는 한 몸 같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지에 대해 몸소 실천해 보여 주셨습니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5:8~9)라고 기록된 것처럼, 예수님도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우리도 말씀 앞에, 하나님 앞에 순종함으로 구원을 얻게 됩니다. 만약 이런 순종이 없다면 구원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순종은 하늘의 복을 이 땅으로 불러오는 축복의 통로 구원의 통로입니다. ‘순종’으로 번역한 헬라어 ‘휘파쿠오’는 ‘~의 아래에서 주의 깊게 듣고 따르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해서 신중하게 듣고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종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음성 앞에 행하는 것은 복입니다. 순종은 축복의 통로입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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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이정우 목사 안동서부교회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는 ‘진정한 참된 나’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또한 ‘나’를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진정한 나의 참모습이 아닌 거짓된 ‘나’, 왜곡된 ‘나’, 굴절된 ‘나’, 잘못 파악한 ‘나’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또, 내가 판단하는 ‘나’와 다른 사람들이 평가하고 있는 ‘나’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행복한 ‘나’와 불행한 ‘나’, 풍요로운 ‘나’와 빈곤한 ‘나’, 치유된 ‘나’와 상처 입은 ‘나’, 안식과 쉼이 있는 ‘나’와 피곤에 지쳐있는 쫓기는 ‘나’가 같으면서도 다릅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확신이 넘치는 희망적인 내가 있는 반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좌절감과 패배감에 젖어있는 나도 있습니다. 한없이 누군가로부터 위로와 사랑과 인정과 존경을 받고 싶은 내가 있는가 하면 누군가를 위로해 주고 싶고 사랑해 주고 싶고 인정과 존경을 주고 싶은 나의 모습도 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잃어버린 나의 얼굴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얼굴을 찾아 일생을 바치기도 합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아직 만나지 못한 ‘나’를 찾아 헤매기도 합니다. 베스트 셀러였던 잭 캔필드의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라는 책에 소개된 일화입니다. 미국의 한 사회학과 교수가 학생들에게 과제를 냈습니다. 볼티모어의 유명한 빈민가에 사는 청소년 200명의 생활환경을 조사한 뒤 그들의 미래에 대한 평가서를 내는 일이었습니다. 학생들의 평가는 동일했습니다. “이들에게는 절대로 미래가 없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25년이 지났습니다. 다른 교수가 이 연구 결과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다시 과제를 냈습니다. “25년 전의 청소년들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조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사망하거나 이사를 한 20명을 뺀 180명 중 176명이 대단히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었고, 변호사, 의사, 사업가 등 상류층 인사들도 많았던 것이었습니다. 교수는 추가로 “이유를 알아보라”고 학생들에게 지시했습니다. 학생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한 여(女) 선생님 덕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수소문 끝에 그 여교사를 찾아낸 교수가 “도대체 어떤 교육 방법을 썼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이미 늙어버린 여교사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정말 간단한 일이었다. 나는 그 아이들을 사랑했다”라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녀는 자기의 진심 어린 사랑을 통해 잃어버렸던 그들의 존재감을 찾아 준 것입니다. 부정적인 ‘나’가 아닌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나’를 찾아 그들 모두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사랑한다!”라고 자주 말해야겠습니다. 먼저 나 자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하나님의 사랑은 이유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그런 까닭에, 그런 이유 때문에(Because)” 이루어지는 ‘Because’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의 이유나 까닭이 흔들리면 우리 마음에 비극만 남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Because’의 사랑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 주어지는 사랑입니다. 그렇기에 이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그분은 나 하나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셨고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으며, 나의 소망을 위해 부활하신 분입니다. 무르익어 가는 이 가을이 나의 위대함을 예수님 안에서 찾으며 기도하는 가을이 되길 소망합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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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통합 경안노회 제188회 정기노회 개최신임 노회장 권헌서 장로 취임 ▲신임 노회장 권헌서 장로.(사진 제공=임만조 장로) 예장통합 경안노회 제188회 정기노회가 지난 10월 13일(화) 오후 1시 안동서부교회(이정우 목사 시무)당에서 개최됐다. 총 400명의 노회 총대 중 346명(목사 208명, 장로 138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이날 노회에서는 신임 노회장에 권헌서 장로(안동교회), 부노회장에 이재식 목사(송천교회), 조창래 장로(도원교회)가 당선돼 새로운 회기를 이끌게 됐다. 개회예배는 부노회장 이재식 목사의 인도로 드려졌으며, 부노회장 김대현 장로의 기도, 노회장 김영윤 목사의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말씀 선포, 노회장의 축도 순서가 있었다. 이어 회순에 따라 회원 점명, 개회 선언, 회순채택, 임원선거, 각 부와 위원회 보고, 청원건 가결, 규칙 개정 등의 사무를 처리했다. 이번 노회의 중요 결의사항으로는 경안노회 사회봉사부장 김호원 목사의 사랑의 쌀 나누기를 위한 한주일 헌금 청원건 가결, 안남시찰장 배요한 목사의 원호평강교회 교회수리를 위한 한주일 헌금 청원건 가결, 안북시찰장 김종배 목사의 인계교회 교육관 신축 및 성전‧사택 보수 공사를 위한 한주일 헌금 청원건 가결, 경안학원발전위원회 해체 후 7인 재조직하기로 가결 등이 있다. ▲목사 안수를 받은 권보석 목사.(사진 제공=임만조 장로) 한편, 이번 노회에서는 권보석 목사(문암교회)가 목사 임직을 받았으며, 전노회장 정복수 장로에게 공로패가 전달됐다. ▲경안노회 제188회기 신임 임원진.(사진 제공=임만조 장로) 안동 한상덕 장로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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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정우 목사 안동서부교회 가을입니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입니다. 인생에도 가을이 있습니다. 청춘을 봄이라고 한다면, 중년은 가을입니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있듯이 인생의 주기도 유·소년기, 청년기, 중·장년기, 그리고 노년기가 있습니다. 신록의 봄은 인생의 유·소년기라고 할 때, 녹음의 여름은 청년기, 수확의 계절 가을은 중·장년기, 그리고 찬바람이 이는 겨울은 인생의 노년기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중에 열매를 맺어야 할 시기는 가을입니다. 가을을 앞두고 있는 사람, 이미 가을을 맞아 열매를 거두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열매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누가복음 13장 6절~9절 말씀을 보면, 무화과나무에 대한 비유가 나옵니다. 마태복음 21장, 마가복음 11장에서는 무화과나무가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음을 보시고 저주하심으로 나무가 말라 죽었습니다. 누가복음의 말씀은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맺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교훈의 말씀입니다. 먼저, 무화과나무의 존재 목적은 열매입니다. 무화과나무는 관상용 나무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볼품이 없기 때문입니다. 키 작은(3~4m) 갈잎나무로 잎은 크나 가지가 이리저리 틀어지며 제멋대로 자랍니다. 옆으로 퍼져 자라기 때문에 재목으로도 쓸 수 없습니다. 즉, 무화과나무는 볼품도 없고 아름다운 꽃도 없고, 향기도 없습니다. 단지 존재할 목적이 있다면 열매입니다. 그러나 6절 말씀에 보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3년 동안 열매가 없다고 합니다. 3년 동안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가꾸면서 노력했는데 열매가 없습니다. 그때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듯 주인의 호령이 들립니다.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라는 말입니다. 무화과나무의 신세는 종말을 고해야 할 시간이 가까이 온 것입니다. 이때, 과원지기가 주인에게 중재안을 제시했습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눅13:8)”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무화과나무를 말씀하실 때 비유라고 하셨습니다. 이 비유에서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입니다.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과원지기는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중재 역할로 나타납니다. 주인은 찍어 버리겠다고 할 때, 과원지기 되시는 예수님은 아직 소망이 있고, 희망이 있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 예수님의 중보적 역할이시며 우리의 영원한 중보자 되시는 분입니다. 과원지기는 “내가 1년 더 수고하겠습니다.”라고 하며 1년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1년은 나무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과원지기에게 1년 수고할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과원지기의 애정과 사랑 때문에 나무는 1년 더 살게 되었습니다. 1년 수고한다는 그 자체가 참사랑입니다. 그 사랑 때문에 변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초인적인 힘이 있습니다. 이 힘은 뜨거운 사랑을 느낄 때, 혹은 감격과 감동을 받을 때 나타납니다. 오늘의 말씀은 비유했습니다. 나무는 이스라엘 즉, 우리 성도들을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느낄 때(나를 위해 이 땅에 오셨고,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우리의 영원한 소망과 존귀의 관을 주시기 위해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새로운 기적이 나타나 아름다운 신앙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나무에게 과원지기가 있었듯이 우리에게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중보하며 사랑하고 있다는 뜨거운 주님의 사랑이 내 마음을 감동케 해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성령의 열매와 전도의 열매를 많이 맺는 사랑받는 성도들과 독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가을은 열매의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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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건 같은 만남이정우 목사 안동서부교회 사람이 한평생을 살면서 끊임없이 수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행복은 만남입니다. 불행도 만남 때문입니다. 만남이 복이 되기도 하지만 만남 때문에 힘들고 어렵고 괴롭기도 합니다. 사람의 만남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생선 같은 만남, 꽃과 같은 만남, 손수건 같은 만남입니다. 첫째, 생선 같은 만남입니다. 서로 만나면 비린내가 나는 만남을 말합니다. 만나기만 하면 서로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시기하고 질투하고 싸우고 원한을 남기게 되는 만남입니다. 이런 만남은 오래갈수록 더욱 부패한 냄새를 풍깁니다. 가장 불행한 만남입니다. 둘째, 꽃과 같은 만남입니다. 서로 만나면 향기가 나고 좋아 어쩔 줄 모르지만 금세 시드는 만남을 말합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습니다. 풀은 쉬 마르고 꽃은 떨어집니다. 꽃과 같은 만남은 후회와 아픔을 남기게 됩니다. 꽃과 같은 사랑은 풋사랑입니다. 셋째, 손수건 같은 만남입니다. 상대가 슬플 때 눈물을 닦아주고 그의 기쁨이 내 기쁨인 양 축하하고 힘들 때는 땀도 닦아주며 언제나 함께하는 만남을 말합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어떠한 형편과 처지에서도 힘이 되어주는 만남입니다. 부부의 만남, 목자와 성도의 만남은 손수건 같은 만남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는 날 주님께서는 손수건으로 우리 눈물을 닦아주신다 하셨습니다.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계7:17) 주님은 언제나 손수건 같은 만남으로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슬픈 자의 눈물을 닦아 주셨으며, 병든 자의 아픔을 닦아 주셨으며, 죄지은 자의 고통까지 닦아 주셨습니다. 주님의 손수건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닦아 주시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떠한 만남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까? 비린내 나는 만남입니까, 꽃과 같은 만남입니까, 아니면 손수건 같은 만남입니까? 진정 우리의 만남은 서로에게 손수건 같은 만남이 되어야 합니다. 맹인 거지와 앉은뱅이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가난한 마을에 아무도 돌봐 줄 사람이 없는 맹인 거지가 있었습니다. 이를 딱하게 여긴 동네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그 사람에게 식사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농번기가 되어 들에서 일 할 때도 이 맹인 거지의 식사를 차려주었습니다. 이 맹인 거지가 차례대로 집을 찾아가면 언제든지 식사가 준비되어 있어서 잘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차례가 된 집을 찾아가서 아무리 더듬어도 빈 그릇뿐이었습니다. 다음에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어서 이번에는 차례가 된 그 집으로 일찍 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자기가 먹어야 할 밥을 누군가가 맛있게 먹고 있었습니다. 거지의 생계를 위협하는 새로운 침입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앉은뱅이였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같은 처지라서 함께 나누어 먹으며 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맹인 거지는 때가 되면 앉은뱅이를 업고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끼니를 채웠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이 앉은뱅이는 욕심이 생겨, 볼 수 있는 장점을 이용해 자기 밥은 많이 담고 맹인 거지의 밥은 적게 담았습니다. 맹인 거지는 점점 말라갔습니다. 어느 해 그 마을에 기근이 심해 동네 사람들은 자기들의 먹을 양식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맹인과 앉은뱅이를 위해 음식을 제대로 차려주지 못했습니다. 하는 수 없어서 맹인 거지와 앉은뱅이는 이웃 마을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앉은뱅이는 걸을 수 없으니 맹인 거지가 업고 산등선을 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잘 먹지 못한 거지는 반도 못 가서 쓰러졌습니다. 앉은뱅이도 길가에 팽개쳐졌습니다. 앉은뱅이는 그때 자신의 욕심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후회했지만 늦었습니다. 그 후 동네 사람들이 그 산등선에서 두 불구자의 얼어 죽은 시체를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마다 가진 장점과 단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장, 단점을 갖고 서로 만납니다. 나의 장점이 손수건이 되어 상대방의 단점을 닦아주고 싸매어주고 도와준다면 얼마나 행복한 만남이 될까요? “아~ 행복합니다. 손수건 같은 만남입니다!” 라고 함께 고백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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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평생 경안노회를 떠나지 않은 주의 종(從), 임학수 목사(9·끝)일평생 경안노회를 떠나지 않은 주의 종(從), 임학수 목사(9·끝) 김승학 목사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안동교회 담임목사 임학수 목사(林鶴洙, 1884-1969) 목차 서론 1. 임학수, 믿음의 조상이 되다 …………………………… 16. 지역의 중심(中心) 교회를 섬기다 17. 창씨개명(創氏改名)을 하지 않다 18. 최고의 한학자(漢學者)가 되다 19. 은퇴 후에도 목회를 계속하다 20. 후학을 위해 매진하다 결론 결론 임학수 목사는 1884년 안동 녹전면 매정리에서 출생했다. 한학에 능했던 임학수는 20세에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관리로 등용되었지만, 관직을 포기하고 후학을 기르기 위해 낙향하여 있다가 1909년 장터에서 노방 전도하는 선교사의 복음을 듣고 회심하였다. 그 결과 그는 한 가정, 심지어 매정이라는 한 마을의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임학수는 그 자리에서 상투를 자르고 예수님을 영접한 결단력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기독교에 입문한 임학수는 녹전에서 20리 떨어진 영주 내매교회에 다니다가 고향인 매정교회를 개척했다. 그 후 권찬영 선교사의 서기가 되었고, 권 선교사의 조사(助事)로 아곡교회, 원림교회, 예천군 섭밧교회, 장사리, 국곡, 덕봉, 아탑실, 수동, 하화교회 등에서 충성스럽게 하나님의 집을 섬겼다. 38세인 1921년 평양신학교 입학하여 1925년 제18회로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안동교회를 시무할 때 임학수 목사는 주일학교에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소년·소녀부를 공식적으로 출범시켰다. 임학수 목사는 모든 일을 성경과 교회 규칙에서 어긋나지 않도록 합당하게 적용하여 처리했으며,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유연하게 사역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목회자였다. 그가 시무할 때 안동교회는 공식적으로 신학교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게 된다. 이 장학금은 안동교회가 지출한 최초의 장학금이다. 더욱이 임 목사는 환등사진을 통한 혁신적인 전도와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노방전도를 통해 지역을 복음화하는 일에 앞장섰다. 또 사경회를 중심으로 성도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는 일에 집중함으로써 안동교회와 지역 교회를 말씀에 기초한 든든한 교회를 이루어 나갈 수 있었다. 임 목사는 열심히 기도하는 주의 종이었다. 특별한 기도제목을 가지고 온 교회가 함께 기도시간을 가질 정도로 기도사역에 집중했다. 임학수 목사는 교인들이 안동 읍내 전역에 퍼져 있음을 감안하여 교인들의 편의와 지역 전도를 생각하며 안동교회를 중심으로 동·서편에 새로운 교회를 설립할 의지를 갖고 안기교회(현 안동서부교회)와 신세교회(현 안동동부교회)를 분립함으로써 안동의 복음화를 앞당겼다. 또한, 임 목사는 성탄헌금의 1/2은 노회로 보내 노회 경내의 가난한 교회를 위해 사용하고, 나머지 1/2은 교회 내의 가난한 성도들을 구제하는 일에 사용하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1934년 7월 안동이 대수해로 큰 피해를 당했을 때 신속하게 수해연보를 하고, 그것을 노회로 보내 수해를 당한 교회를 도왔다. 임 목사는 전형적인 부흥강사는 아니었지만 인기 있는 성경사경회 강사였다. 그의 설교는 성령 충만했다. 언변도 뛰어났지만 그의 설교에 인품이 묻어났기 때문에 회중들은 그의 설교를 들으면서 웃고, 눈물을 흘렸다. 또한, 임 목사는 자신의 장점인 한학을 목회 현장에 도입하여 성도들을 위로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든든히 세우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목회의 도구로 사용하였다. 현재 안동교회의 돌집예배당은 임학수 목사가 안동교회에 시무하실 때인 1936년 초여름에 착공하여 이듬해인 1937년 4월에 준공되었다. 건축을 위해 임 목사는 사재(私財)를 하나님께 드리는 솔선수범을 보였다. 성도들도 어려운 살림살이 속에서 정성스럽게 건축헌금을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다른 교회들과 선교사, 선교부도 건축에 협력했다. 교회를 건축하는데 무려 8,000여 개의 화강암이 사용되었다. 착공한 지 330여 일이 지나, 웅장하고 신비스러운 돌집예배당이 마침내 준공되었다. 임 목사는 경북 북부지역에서 풍요로운 영적 자산을 간직하게 될 안동교회 석조 예배당 건축을 시작하고 완성한 리더였다. 임학수 목사는 경안노회 경내의 중심교회를 섬기며, 교회들이 본연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교회들을 든든히 세웠다. 안동의 안동교회, 영양의 영양읍교회, 풍기의 풍기교회, 예천의 예천교회와 상락교회 등이다. 임 목사는 작은 교회도 최선을 다해 섬겨 사명을 감당했다. 목사 임직 후 하화·옹천·지곡·연당·매정·안흥·녹내·방하교회 등을 섬겼다. 은퇴 후에도 당시 목회자가 없는 교회인 용상교회, 문수교회, 태화교회, 예천교회 등을 돌보았다. 일제 말엽 경안노회장이었던 임 목사가 일제의 정책에 협력한 것은 분명한 오점이지만, 당시 노회장으로서 교회를 지키고 보호하려 했던 노력은 뒤늦게라도 올바른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이 마땅하다. 한학자인 임 목사가 남긴 흔적은 오늘까지도 강하게 남아있다. 경안성서학원, 경안학원, 도원교회, 영광학원 등의 이름이 바로 임 목사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또한, 임 목사의 신앙은 무척 포용적이었다. 6·25 전쟁으로 먹을 것이 없던 1950년대, 열린 집 대문으로 탁발 승려가 들어와 시주하라는 말에 승려를 보지 않고 굶주리고 있는 한 사람을 먼저 보고 그에게 시주할 정도로 폭넓고 열린 신학을 갖고 있었다. 또 임 목사는 가정에서도 믿음의 삶을 살았다. 그는 날마다 새벽에 가정예배를 드림으로써 후손들에게 믿음을 유산으로 남기는 데 최선을 다했다. 특히, 임학수 목사는 은퇴한 후 쉬지 않고 후학을 위해 경안고등성경학교(현 경안신학원)에서 성경과 한문을 가르친 교육자였다. 안동에서 출생한 임학수 목사는 안동에서 예수를 영접하고, 경안노회 경내의 교회를 섬기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안동 땅을 사랑했고, 안동에 살고 있는 영혼을 사랑했으며, 안동의 교회들을 사랑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무엇보다 귀하게 생각하였기 때문에 한눈팔지 않고 십자가의 길을 걸었다. 임학수 목사의 올곧은 신앙과 신실한 삶은 오늘의 교역자들과 성도들에게 거룩한 떨림과 울림을 동시에 준다. 오늘의 교회는 임학수 목사가 남긴 거룩한 흔적을 기억하며 새로운 비전과 도전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이 시대가 요구하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거룩한 사역을 용기 있게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안동교회 100주년기념예배에 참석한 故 임학수 목사의 가족과 금승학 목사(뒷줄 왼쪽 세번째).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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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가 주는 또 다른 은혜이정우 목사 안동서부교회 2019년 12월 중국 우한 시에서 발생한 바이러스성 호흡기 질환인 ‘우한 폐렴’ 이른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공식명칭으로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는 신종 바이러스에 의한 유행성 질환으로 호흡기를 통해 감염되어 인후통, 고열, 기침, 호흡곤란 등의 증상을 거쳐 폐렴으로 발전합니다. 2020년 3월 세계보건기구가 코로나19를 팬데믹으로 선언했습니다. 이젠 전 세계 누적 확진자 1,600만 명을 넘어섰으며, 누적 사망자도 64만 명을 넘어섰습니다.(7월 26일 기준) 우리나라는 2020년 1월 20일이 코로나19 확진자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생한 날입니다. 첫 번째 확진자는 중국 우한에서 온 한 여성입니다. 그로부터 6개월 지난 지금 국내 누적 확진자는 7월 20일 0시 기준으로 13,771명, 사망자는 296명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장기화되는 악성 감염병 사태는 14세기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과 제1차 세계대전 말미에 발생한 이른바 ‘스페인 독감’ 이후 처음입니다. 경제 용어에서 ‘불황’과 ‘공포’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불황’은 예상했지만 저조하다는 의미이고, ‘공포’라는 것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을 말합니다. 코로나19를 겪는 전 세계는 공포의 시기를 직면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상의 삶의 형태를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으로 바꾸었으면서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역사를 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공포의 상황들을 이겨낸 신앙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성경은 증언하기를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단지 그것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처럼 살면서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며 이 땅에 있지만 천국을 사모하며 살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사람들의 공통된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하나님 없이도 영원한 천국을 살 것처럼 교만하게 살아왔습니다. 최첨단 과학기술과 나노기술 및 인공지능(AI)은 인간의 사고 영역을 전 우주 및 신의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여기에 교회까지도 하나님의 뜻을 잃고 세속주의에 물들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잃어가고 있는 실정에 놓였습니다. 고 옥한흠 목사는 “지금은 교회 침체가 문제가 아니라, 교회 본질이 파괴되는 것이 문제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계속 다양한 방법으로 속삭였지만 사람들이 듣지 않았습니다. 자연을 통해 말씀하셨지만 사람들은 관심두지 않았고, 지구가 계속 비명을 질렀지만 인간은 계속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괴물 코로나19가 발생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래서 어쩌면 코로나19가 인간들을 처벌하기 위함이 아니라 깨우치고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일각의 뉴스에서는 코로나19가 지구의 오염들을 멈추게 만들었다고 보도합니다. 중국의 대기의 질이 좋아져 맑고 푸른 하늘을 보게 됐고, 이탈리아 베니스에서는 곤돌라 보트가 멈춰서니 돌고래가 보이기 시작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정화작용도 순간이었습니다. 언택트(Untact) 소비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배달소비가 급증한 요즘 일회용품이 산더미처럼 쌓이며 지구는 다시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인간은 완악하여 자연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곧잘 듣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 영혼의 소리를 들어야합니다. 채우고 편하게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간의 욕구를 멈추어야 합니다. 정치 분쟁과 물질의 집착과 인간적 욕심을 멈추어야 합니다. 코로나19를 보는 성도들의 관점은 영적 경고로 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경고는 또 다른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29장 11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경고의 시대를 은혜로 받아들이면, 마치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10명의 비 신앙적인 정탐꾼의 부정적 보고가 아니라,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하나님의 관점에서 희망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저들은 우리의 밥이다”라고 외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힘이요 신앙의 힘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코로나19가 주는 경고를 또 다른 은혜로 여기며 이제 우리는 더 뜨거운 예배를 사모합시다. 영적 근육을 키워 불안의 코로나19를 기도와 찬양과 예배로 승리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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