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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부르심(7)브라더 앤드류 오픈도어 설립자 내가 탄 비행기는 암스테르담까지 얌전히 날아가지 못했다. 경유지인 마드리드에서 이륙이 지연되는 바람에 우리는 항공사가 제공하는 멋진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양말만 신은 채 호텔 로비에 서 있는 내 모습이 흥미로웠는지 모두들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할 겨를이 없었다. 쿠바를 떠날 때 목사님이 마지막으로 해준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선교사님, 이렇게 사랑으로 모든 걸 다 주시니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선교사님은 목숨만 빼고 다 주셨습니다.” 내가 더는 쿠바에 갈 수 없게 되자, 나는 유럽에 있는 성도들에게 쿠바로 갈 것을 도전했다. 쿠바 교회에는 중보 기도와 재정과 기독교 출판물이 너무나 필요했다. 내 도전에 응한 사람들 가운데 앙스와 리네라는 네덜란드인 두 명이 있었다. 모두 50대 후반의 여성으로 프랑스 산간 지방에서 함께 사는 친구 사이였고, 이미 유럽에서 오픈도어선교회 사역에 여러 차례 참여한 경험이 있었다. 두 멋진 여성은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현신을 보여주었고, 그것은 내가 본받고 싶을 정도였다. 내가 쿠바에 대해 강하게 도전했을 때 두 여성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나는 그들에게 쿠바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할 겨를이 없었다. 단지 쿠바의 실정과 스페인어 성경과 기독교 서적 몇 권, 그리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두세 사람의 이름과 연락처만 일러주었다. 나는 그들을 적재적소로 이끄실 하나님만 신뢰했다. 아무튼, 내가 그들에게 준 연락처는 하바나에 있는 오픈도어 교회로 알려져 있는 큰 교회였다. 두 여성은 하나바에 도착하자마자 호텔방으로 직행, 합심하여 기도하면서 주님의 뜻을 구했다. 두 사람은 기도하다가 성령 하나님이 그들을 레닌 공원으로 이끄신다는 느낌을 받았다. 두 사람은 바로 지도를 들고 레닌 공원을 찾아 나섰다. 한편, 도시 한쪽에서는 유세비오 페레즈라는 목사님 한 분이 역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감옥에서 풀려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목사님은 매우 의기소침해져서 목회 사역을 그만두고 싶은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목회자는 사회적으로 멸시받고 공권력의 탄압에 시달리고 있었다. 기독교 신앙인이기 때문만은 아니고 목회자를 사회의 기생충으로 여기기 때문이었다. 유세비오 목사님은 소외감과 무력감을 느끼면서 신앙의 가치에 회의를 품고 있었다. 바로 그날, 유세비오 목사님은 기도 중에 성령 하나님이 자신을 레닌 공원으로 이끄시는 느낌을 받았다. 그곳에 가면 누군가가 자신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줄 것 같았다. 그래서 목사님은 자신이 나사로라고 부르는 차를 타고 레닌 공원으로 향했다. 나사로라는 이름은 1950년형 시보레 자동차가 여러 차례 폐차의 위기를 넘겼기 때문에 붙인 것이었다. (한국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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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출애굽기(18)나의 출애굽기(18) 드보라 47. 동생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다 집결소에서 만난 할머니의 이야기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중국에 웬 멋진 집에 공주가 되었다는 등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았다. 그래도 그 사람에게서 풍기는 신비로움이 있었던 탓일까? 나는 할머니가 가르쳐준 ‘주문’을 열심히 외우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을 중얼거렸다. 나중에 하나님을 믿게 되고 보니 할머니와 손자가 간 멋진 집은 교회였다. 그 교회에서 훈련받으며 10년 동안 하나님을 뜨겁게 만나고 하나님의 딸로서 바로 ‘공주’의 신분으로 살게 되었다는 것을 나에게 설명해주었다. 어떻게 이런 분을 그 감옥에서 만났을까?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신기하고 감사하기만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그냥 가르쳐준 기도문을 따라 열심히 소원을 빌었다. “이 지긋지긋한 감옥에서 나오게 해주세요. 아무래도 이 집결소 인근에 사는 내 동생을 찾아야 나갈 수 있을 것 같으니 동생을 만나게 해주세요….” 내 바로 아래 남동생이 그 집결소가 있는 도시 인근에 살았다. 동생이 돈을 좀 쓰면 나도 빠져나올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문제는 가족을 찾는 것도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뇌물로 돈이나 담배를 찔러줘야 한번 찾아볼 수 있겠는데 내 주머니는 텅텅 비어있었다. 이래저래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막연하게 ‘기도’인지도 모르고 뭐 되겠나 싶으면서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간 될 때마다 중얼거렸다. 48. 외화벌이 작업장에 노동을 나가다 집결소의 죄수들은 이런 저런 곳으로 노동을 가는데 개중에는 외화벌이 회사들로 가는 사람도 있었다. 외화벌이 회사는 죄수들에게 가장 인기 좋은 일터였다. 돈은 당연히 못 받지만 그래도 옥수수떡하고 국수하고 잘 챙겨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기가 좋은 만큼 빠릿빠릿하게 일 잘하는 사람만 갈 수 있었다. 나는 못 갔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외화벌이 작업장에 내 이름이 있었다. 이게 웬일인가 싶은 마음으로 작업장에 갔더니 건설현장이었다. 큰 벽돌을 등에 메고 올라가는데 안전장치도 전혀 없이 작업했다. 나는 처음으로 건설현장 일을 하려니 너무 힘이 없고 맥이 빠졌다. 일하는 도중에 잠깐 쉬고 있는데 악질 감독이 나를 째려보았다. 나이도 어린 것이 죄수들을 들들 볶고 막말을 내뱉으며 일을 시키는 놈이다. 불똥이 나에게 튀었는가 싶어 움츠려 있는데 그놈 입에서 대뜸 “야 너는 여기 친척 없어?” 하는 질문이 나왔다. 다행히 그놈 눈에도 내가 불쌍해 보였는가 보다. “있습니다.” “친척이 있으면서 이 주제냐, 뭐하는 짓이냐 어휴…. 어디 있니?” “○○ 도시입니다.” “그래? 어느 사업장 누구인데?” “○○○ 입니다.” 이렇게 나는 무심결에 내 동생 이름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작업은 계속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밥으로 옥수수떡이 나왔다. 듣던 대로 역시 이 외화벌이 사업장이 밥은 잘 줬다. 그간 먹던 것에 비하면 너무 진수성찬이라 정신없이 먹고 오후 작업을 하려는데 그 악질 간부가 나를 찾았다. (한국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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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크리스천 간호사 피살, 목회자와 가족 공격 증가인도 펀잡 지방, 구르다스푸르에 있는 한 사립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크리스천 간호사 조티 마시(Jyoti Masih)가 지난 8월 16일 병원 구내에서 살해된 것으로 보이는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현지 교회 리더들에 의하면, 그녀는 다리에 여러 자상을 입고 오른팔에 독극물 주사기가 꽂혀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경찰은 사건 조사를 하지 않고 자살로 처리하려고 했습니다. 같은 펀잡 지방에서 7월 말에는 한 목사(Balwinder Bagicha)가 머리를 흉기로 찔린 채로 도로에 쓰러져 이튿날 숨졌습니다. 8월 11일에는 하리야나 주의 파리디바드 시에서 힌두과격파들이 오순절 교회 라제쉬 굽타(Rajesh Gupta) 목사 가족을 잔인하게 공격했습니다. 인도에서 크리스천 여성과 목회자들에 대한 살해 시도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기도해주세요. <한국오픈도어 제공> 편지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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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북서부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MBB(크리스천) 형제 납치터키 국경과 가까운 시리아 북서부의 라조(Rajo) 지역 자크마크 카비르(Jaqmaq Kabir) 마을에서, MBB(무슬림에서 개종한 크리스천) 라드완(Radwan, 50세) 형제가 터키군의 동맹 단체로 알려진 한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Sham Legion)에 의해 납치되었습니다. 납치는 라드완이 아내의 장례를 준비하는 중에 일어났습니다. 라드완의 아내도 이슬람에서 개종했고 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이들은 장례를 방해하고 라드완을 납치하여 구금하고 배교로 고발했습니다. 이슬람 민병대는 배교를 이유로 처형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라드완 형제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한국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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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부르심(6)브라더 앤드류 오픈도어 설립자 우리는 쿠바 교회에 대량의 성경을 전달하는 일 외에 쿠바의 열악한 경제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목회자 가족을 어떻게 도울까 고민했다. 나는 이미 앞에서 쿠바 목회자는 나라에서 나눠주는 식량과 의복을 지급 받지 못한다는 말을 했다. 당시 많은 목회자가 감옥에 갇혔는데 가장이 옥살이를 하기 때문에 뒤에 남아 있는 가족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쿠바 화폐는 무용지물이었기 때문에 돈은 아무런 도움이 못 되었다. 우리는 네덜란드 대사의 도움으로 시내에 있는 외교관 면세점에서 달러를 지불하고 침대 덮개, 옷, 휘발유, 음식 등을 구입했다. 그러나 모든 가족에게 나눠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자 목사님들이 좋은 아이디어를 내었다. 돈보다 금이 훨씬 가치 있는 통화 수단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만약 패물이나 금 장신구를 가져올 수만 있다면 높은 가격에 팔아 상당한 기간 동안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300달러에 구입한 금시계 하나가 쿠바에서는 반년 치 월급과 맞먹었다. 그래서 한번은 우리 팀원들이 모두 바람둥이 계모임 회원처럼 온몸에 주렁주렁 금시계, 금반지, 금목걸이, 금팔찌 등으로 치장한 적도 있었다. 나는 묵고 있던 호텔로 여러 목사님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했다. 목사님들은 모두 고맙게 식사를 했지만, 집에 있는 가족에게 가져다주고 싶다면서 비닐봉지를 찾았다. 식사하는 도중에 그들은 닭고기며 밥이며 빵 같은 것을 조용히 봉지에 담았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어느 목사님 집에 가게 되었는데, 아이들이 목사님이 가져간 음식을 허겁지겁 집어삼키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나는 동행했던 동료와 함께 패물을 꺼내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목사님, 이것은 네덜란드 성도들의 선물입니다. 친구가 선물한다고 생각하시고 받아주십시오. 이것을 가족을 부양하는 데 쓰시고 다른 가족을 위해서도 사용해주십시오. 우리의 사랑과 기도를 늘 잊지 마시고 용기를 내십시오.” 그들은 고마운 마음으로 선물을 받아 각자 필요에 따라 나누어 가졌다. 선교 여행 마지막 날 한 목사님이 우리를 배웅하러 호세마티 국제공항으로 나왔다. 목사님은 따라올 수 있는 곳까지 나를 배웅해주었다. 나는 들어가면서 혹시나 하고 목사님에게 물었다. “목사님, 더 필요하신 건 없습니까?” “저기, 사실 신발이 필요합니다.” 목사님이 빨리 대답했다. 나는 시선을 아래로 향하고 목사님의 발과 내 발을 번갈아 가늠해보았다. 발 크기가 거의 같아 보였다. 나는 일단 비행기에 오르면 암스테르담에 도착할 때까지 그저 앉아만 있을 것이고, 집에 돌아가면 신발 하나 정도는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나는 신발을 벗어 목사님 손에 쥐여주었다. “목사님, 가지세요. 목사님 겁니다.” 목사님이 신발을 받아 쥐고 고마워하던 얼굴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간단히 작별 인사를 하고 양말만 신은 채 천천히 세관을 지나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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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출애굽기(17)나의 출애굽기(17) 드보라 45. 할머니의 탈북 이야기를 듣다 친해지니 자연스럽게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할매는 중국에서 10년 만에 북송당했다고 한다. 자녀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15년 전 즈음에 북에서 차 사고로 며느리와 함께 죽었고 5살배기 손자만 남겨졌다고 했다. 할머니는 그때 혼자서 도저히 5살배기 손자의 생계까지 책임지며 살 수 없어서 꽃제비 짓을 하며 겨우 먹고살면서 먹을 것을 찾아 떠돌다 보니 강변까지 흘러 흘러 오게 되었단다. 그리고 밤에 불빛이 켜져 있는 곳을 보고 거기 가면 밥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을까 싶어서 손자와 함께 가서 문을 두드리니 집주인이 웬일로 반갑게 맞아주었단다. 그 사람들이 가만히 보더니 “물 건너오셨지요? 잠깐만 기다리소.” 하고는 곧이어 밥을 주는데 너무 굶주린 터라 정신없이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밥을 한참 먹고는 정신을 차리고 방을 둘러보니 북한에는 어느 집에나 있는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가 안 보였단다. ‘아, 이 동네 이상하다…’하는 생각에 그 집주인에게 “이 마을 이름 뭐에요?”하고 물었더니 아뿔싸, 중국이었다. 할머니는 자기도 모르게 강을 건너고 말았던 것이다. 할머니는 큰일이 났다는 생각에 손자를 데리고 바로 집을 빠져나왔단다. 그렇지만 컴컴한 밤중에 어디가 강인지 어디가 길인지도 잘 모르겠고 일단 숨어야겠다는 생각에 언덕에 올라 숲에 몸을 숨겼다. 기온이 떨어지고 날씨가 추워지니 손자가 부들부들 떠는데 할머니 마음에 밥 얻어먹은 집에 하룻밤만 신세를 질 것을 그랬는가 하며 후회가 되었단다. 그러다가 옷이라도 빌려야겠다고 용기를 내어 언덕을 내려왔는데, 어떤 차가 지나가다가 할머니를 보고 창문을 내리고 한국말로 어디서 오셨냐고 물었다. 너무 놀란 할머니는 대답도 못 하고 있는데 그 차에 있던 사람이 마을 가지 말고 숨어서 5분만 기다리면 다시 데리러 오겠다고 했단다. 그 말대로 숨어 있었더니 과연 차가 다시 와서 할머니와 손자를 태워갔다. 그 차는 두 사람을 멋있는 집에 데리고 갔고 자기는 ‘공주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46. 할머니에게 ‘기도’를 배우다 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니 너무 부러웠다. 이 할머니는 탈북해서 중국에서 공주로 살았다는데 나는 왜 재수 없이 팔려 다니고 시골 촌 동네로만 떠돌았는가? 화가 나고 부럽기도 했다. 할머니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면 자기가 시킨 대로 하면 나도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거라고 했다. 할머니와 내 모습을 비교하며 재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라 어떤 비법이 있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비법이 뭔가? 할머니가 가르쳐준 방법은 매우 간단했다. 짧은 문구를 외우는 것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지켜주세요.” 그리고 이어서 마음에 소원을 다 말하고 “예수님 이름을 기도합니다. 아멘.” 하면 된다고 했다. 눈을 감고 해도 되고 눈 뜨고 해도 괜찮다고 했다. 나는 하나님의 “하” 자도 들어본 적이 없었고 중국에서도 워낙 촌 동네 살다 보니 교회도 없었던지라,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기도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그냥 따라서 했다. (한국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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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힌두교 과격파들 라제쉬 목사 가족 잔인하게 공격8월 11일 인도 하리야나 주의 파리다바드(Fafidabad) 시에서 15~20명 되는 힌두교 과격파들이 오순절 교회 라제쉬 굽타(Rajesh Gupta) 목사 가족을 잔인하게 공격했습니다. 그들은 라제쉬 목사가 아내와 딸과 함께 한 성도의 집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동안에 날카로운 흉기들을 가지고 공격했습니다. 심한 부상을 당한 목사님 가족은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아야 했고, 상기타 사모는 손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라제쉬 목사님 가족의 회복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인도의 다른 지역들에서도 힌두교 과격파들에 의한 크리스천 공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7월 27일에는 펀잡 지방의 한 도로에서 개신교 목사가 폭행을 당하고 머리 뒤에 날카로운 흉기에 의한 상처를 입고 죽은 채로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한국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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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룬, 이슬람 보코하람에 의한 교회 내 자살폭탄 테러로 28명 사망8월 1일 아프리카 카메룬의 북쪽 끝에 위치한 응게체웨(Nguetchewe) 마을에서 한밤중에 보코하람(Boko Haram)의 공격이 시작되어 주일까지 계속되었고, 특히 그중 두 번의 자살폭탄 공격으로 인해 28명 정도가 사망했습니다. 현지 목회자에 의하면, 한 어린 여자아이가 배가 아픈 척하면서 교회로 들어와 자폭을 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5명의 크리스천 희생자만 확인되었으나 후에 더 많은 크리스천 희생자가 나왔고, 공격의 주요 표적이 전통 교회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한편, 미국단체 ACLED(Armed Conflict Location and Event Data)에 의하면, 보코하람이 2009년 나이지리아 북동부 마이두구리에서 시작해서 현재까지 살해한 사망자 수는 IS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살해한 사망자 수를 합친 것보다도 많다고 합니다. 피해자들을 위한 기도와 함께 보코하람의 저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한국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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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혁명수비대에 의해 최소 12명의 가정교회 성도들 체포6월 30일, 테헤란에서 혁명수비대 보안요원들이 한 MBB(무슬림에서 개종한 크리스천) 성도의 가정을 급습해서 모여 있던 약 30명의 크리스천들 중 6명을 체포해갔다. 이들은 크리스천 네트워크에 침투해서 확보한 것으로 보이는 명단을 가지고 그 명단에 이름이 있는 이들을 체포했다. 체포된 이들은 아르메니아-이란인 크리스천과 MBB 성도들이다. 또한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의 휴대폰을 압수하고 연락처 상세내역 제출을 요구했으며, 이어서 현장에는 없으나 명단에 있는 다른 MBB 성도들의 가정집을 찾아가 수색을 벌였고, 결국 3명이 자택에서 체포됐다. 같은 날, 관련 조치로 하메단 지방 말라예르에 사는 3명의 MBB 성도들이 다음날 혁명수비대 정보국에서 심문을 받도록 소환됐다. 이들 3명은 심문을 받기도 전에 구금되었다가, 3천만 토만(약 1,500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7월 2일에 풀려났다. (한국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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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한 젊은 목회자, 공산반군 낙살라이트에 살해 당해인도 중부 ‘마하라슈트라’ 주의 한 지역(Bhamragad)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목회자, 문슈 타도(Munshu Tado)가 7월 11일에 낙살라이트(Naxalite:모택동주의 공산반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한때 낙살라이트 대원이었다가 크리스천이 된 문슈는 다른 세 가정과 함께 기독교신앙 때문에 마을에서 추방당했고, 몇 개월 전부터는 낙살라이트들을 피해다녔었다. 크리스천 활동을 중지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위협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낙살라이트들은 문슈가 경찰에 자기들의 행방을 밀고해왔다는 거짓 주장을 살해의 이유로 들었으나, 낙살라이트의 크리스천 살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그동안도 계속되어 왔다. 더 많은 희생이 나오지 않도록 기도가 필요하다. (한국오픈도어 제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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