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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회 구미시장로총연합회 정기총회 개최신임회장에 정규진 장로 취임 ▲신임회장 정규진 장로(좌)와 명예회장 이준욱 장로(우)로부터 의사봉을 받고 있다. 구미시장로총연합회는 지난 10월 24일 오후 7시 한빛교회(신주철 목사 시무)당에서 제35회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신임회장에 정규진 장로(한빛교회), 수석부회장에 손원호 장로(구미동부교회)를 선출하는 등 신임 임원진을 조직하고 새로운 회기를 시작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를 주제로 열린 이번 총회에는 구미시 교계 지도자들과 장로회 회원, 축하객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1부예배에서는 한빛교회 신주철 목사가 “열매 맺는 삶”을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했으며, 이상영 장로(증경회장단 회장)가 격려사를, 안재호 목사(구미성시화운동본부대표본부장)가 축사를, 안정현 목사(구미시기독교총연합회 회장)가 축도를 했다. 임원개선을 통해 신임회장에 선출된 정규진 장로는 “제35회기는 해외 선교에도 더 관심을 두고 지원하며, 회원 간의 교제는 물론 타 장로연합회와도 폭넓은 교류를 펼쳐서 한층 아름답게 성장 발전하는 연합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취임 소감을 밝혔다. 한편, 구미시장로총연합회 제34회기는 지난 1년 동안 회장 이준욱 장로(구미새로남교회)를 중심으로 성탄트리점등식 주관, 인도 보듸파다교회 선교후원, 미자립교회 후원, 해외선교사 지원, 군부대선교 지원 등의 사역을 펼쳤다. ▲제35회기 구미시장로총연합회 정기총회를 마치고 신임 임원과 내빈들의 기념 촬영.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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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인 80%, “기독교 정당 창당 반대”기사연, ‘주요 사회현안에 대한 개신교인의 인식조사’ 발표 개신교인(기독교인) 5명 중 4명은 ‘목회자와 교인들이 기독교를 표방하는 정당을 창당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통계조사가 최근 발표됐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실시한 ‘2019 주요 사회현안에 대한 개신교인의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회 목회자와 교인들이 기독교를 표방하는 정당을 창당해 정치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개신교인 79.6%가 반대 입장을 보였다. 찬성은 5.3%, 보통이다 응답은 15.2%였다. 개신교인들은 한기총 전광훈 목사의 언행에 대해서도 64.4%가 ‘전광훈 목사는 한국교회를 대표하지도 않고 기독교의 위상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한국교회와 기독교가 폐쇄적이고 독단적으로 비칠 것 같아 우려된다’도 22.2%였다. ‘동성애는 죄’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개신교인 58.4%가 동의한다(매우 동의한다 36.4%, 동의하는 편 22.0%)로 응답했으며, 동성애자에 대한 인식 영향에 미친 것을 묻는 질문(중복응답)에는 사회보편적 인식(59.7%), 종교의 가르침(48.2%) 순이었다. ‘낙태는 생명권을 빼앗는 행위인가’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50.2%가 ‘동의한다’고 대답했으며 ‘낙태가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건강권을 보장한다’는 의견에도 44.8%가 ‘동의한다’고 응답했다. 이 밖에 ‘기독교/교회의 가르침이 경제관에 미치는 영향’을 묻는 질문에는 ‘그렇다’가 42.3%, ‘그렇지 않다’가 29.6%였으며 경제적 부가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가 40.6%, ‘그렇다’가 31.4%였다. 한편, 이번 조사는 개신교인 1,000명과 비개신교인 1,000명을 대상으로 정치, 경제, 통일, 젠더 등 6개 분야로 진행되었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이다. 이예진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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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입니까? 손님입니까?천석길 목사 구미남교회 사람과 사람이 친밀해지려면 서로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서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예를 들면 천 목사가 만나는 목사님 중에는 단순히 선배님과 후배로만 만나는 목사님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에게는 조심하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예의를 갖추어 상대합니다. 그런가 하면 아주 소수의 목사님들은 존경하는 형님으로, 혹은 사랑하는 동생으로 대하는 목사님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에게는 만나자마자 커피 사주세요! 라고 스스럼없이 조르기도 하고, 밥 사줄게 가자! 라고 억지로 끌어당기기도 합니다. 오랜 시간을 우리는 그렇게 지내다 보니 이제는 만나는 순간부터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거침없이 토해내는 가족 이상의 좋은 관계가 되었습니다. 목장은 이래야 합니다. 목장에서 만나는 분들을 손님처럼 대하면 서로가 조심스럽거나 불편할 수 있습니다. 목원으로 한 식구가 되는 순간부터 우리는 영적인 한 가족이라는 마음을 서로가 주고받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 일을 위해서 목장을 할 때는 아예 문을 살짝 열어 놓음으로써 벨을 누르지 말고 편하게 들어오게 해야 합니다. 그렇잖아요? 가족은 벨을 누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 왔어! 라는 소리를 지르면서 집으로 들어옵니다. 우리 집에 들어올 때에 아직도 벨을 누르면서 들어오면 그 사람은 가족이 아닌 손님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식사를 할 때도 식사하기 전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라는 마음을 서로가 갖게 해야 합니다. 그 일을 위해서 목장을 여는 집에서 식탁에 음식을 다 차려 놓고 목원을 기다리는 것은 가족에 대한 배려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족은 먹기 전부터 편해야 합니다. 가족이 식사할 때는 모두가 함께 거들어서 식탁을 준비하도록 연습시켜야 합니다. 가족 중에 어린아이는 하다 못해서 수저를 챙기고, 어른들은 한 사람이 밥을 담으면 한 사람은 국을 푸고 또 한 사람은 과일을 준비한다든지 모두가 함께하면서 음식을 먹기 전부터 웃고 떠들 수 있는 한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밥만 먹겠다는 심보(?)는 가족이 아닌 손님으로 남아 있겠다는 아직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사람이겠지요?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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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친구이정우 목사 안동서부교회 네 종류의 친구가 있다고 합니다. 먼저 꽃과 같은 친구입니다. 꽃이 피어서 예쁠 때는 그 아름다움에 찬사를 아끼지 않지만 꽃이 지고 나면 돌아보는 이 하나 없듯 자기 좋을 때만 찾아오는 친구가 바로 꽃과 같은 친구입니다. 두 번째는 저울 같은 친구입니다. 저울은 무게에 따라 이쪽, 저쪽으로 기울듯이 자신에게 이익이 있는지, 없는지를 따져 이익이 큰 쪽으로만 움직이는 친구가 바로 저울과 같은 친구입니다. 다음은 산과 같은 친구입니다. 산이란 온갖 새와 짐승의 안식처이며, 멀리 보거나 가까이 가거나 늘 그 자리에서 반겨주듯이 생각만 해도 편안하고, 마음 든든한 친구가 바로 산과 같은 친구입니다. 마지막으로는 땅과 같은 친구입니다. 땅은 뭇 생명의 싹을 틔워주고, 곡식을 길러내며, 누구에게도 조건 없이 기쁜 마음으로 은혜를 베풀어 주듯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지해 주는 친구가 바로 땅과 같은 친구입니다. 그러므로 친구가 많음이 중요한 게 아니라 깊이가 중요합니다. 산과 같은 땅과 같은 친구가 있는 사람은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 주위에는 꽃과 같은 친구, 저울 같은 친구가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나는 산과 같이 땅과 같이 생각하고 믿어왔는데 정작 상대방은 저울추만 만지고 있었던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친구라 생각하고 제자들을 부르시고 하나님의 뜻을 말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요15:15)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 중 가룟 유다는 철저히 저울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신앙도 고백도 저울추 앞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에게 그의 대를 이어 왕이 될 아들 왕세자 요나단이 있습니다. 그때 블레셋의 침략으로부터의 위기에서 이스라엘을 구해낸 사람이 다윗입니다. 이 일로인해 이스라엘의 여인들이 다윗을 칭송합니다. “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삼상18:7) 사울은 다윗의 공로를 인정하면서도 다윗을 자신의 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자기보다 더 칭찬받는 다윗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 때문에 자신의 욕망과 악령에 이끌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왕위 계승자요 이스라엘의 영웅이지만 다윗에게 친구로 다가갑니다. 요나단은 다윗이 골리앗을 어떻게 이겼는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한낱 양치기에 불과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요나단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고 그러하기에 서로를 생명처럼 사랑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요나단은 왕권을 물려받지 못했지만, 그의 일생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은 다윗의 둘도 없는 친구로서 우정을 간직한 것입니다.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 왕으로부터 다윗의 생명을 지켜내었습니다. 다윗도 요나단이 죽은 후 요나단에게 받았던 사랑과 배려를 절름발이 장애를 가진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자신의 왕자들과 같이 왕의 상에서 함께 먹고 마시게 합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산 같은 우정을 간직한 관계입니다. 가을이 깊어갑니다. 친구가 더욱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사랑을 받아서 행복한 사람이기보다는 사랑을 줌으로 행복한 사람이고 싶습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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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 임기 현행대로 4년 유지제33회 총회 입법의회 … 감독회장 임기 2년 축소, 제비뽑기 등 모두 부결 ▲감리회 제33회 총회 입법의회에서 감독회장 2년 임기 개정안이 부결됐다.(인터넷 캡처) 임기 4년 전임 감독회장제를 임기 2년으로 축소하고 교회 담임을 겸하도록 한 기독교대한감리회(이하 감리회)의 입법 개정안이 부결됐다. 감리회는 지난 10월 29일 경기 안산 꿈의교회(김학중 목사 시무)에서 열린 제33회 입법의회에서 이같이 결정했다고 감리회 교단 언론은 밝혔다. 감독회장과 관련한 소송이 끊이지 않고 금권 선거의 문제점 등이 지적되는 가운데 이날 입법의회에서는 감독회장의 임기를 ‘4년 전임제’에서 ‘2년 겸임제’로 개정하는 안과, 감독회장 선거를 3명을 선출한 뒤 추첨으로 결정하는 이른바 ‘제비뽑기’ 안이 상정됐지만 모두 부결됐다. 입법의회는 장개위가 상정한 ‘감독회장 임기는 2년으로 하고, 개체교회를 담임할 수 있으며 중임할 수 없다’는 개정안을 놓고 약 2시간 논의한 끝에, 재적 455명 중 찬성 277표, 반대 181표로 3분의 2를 넘지 못해 윤보환 의장은 부결을 선언했다. 따라서 감리회는 임기 4년간 전임 감독회장 직무를 수행하는 현행안을 유지하게 됐다. 감독회장 선거를 ‘추천-투표-추첨’ 방식으로 변경하는 안도 부결됐다. 최다 득표자가 당선되는 현행 안에서, 다득점자 3명을 선출한 뒤 추첨으로 결정하자는 개정안은 금권 부정 타락 선거운동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상정됐다. 그러나 제비뽑기 전 3명의 후보선출을 위해 금권을 살포할 위험, 선거권자 3명 모두에게 금권을 받아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 있고, 지지를 적게 받은 이가 선택받는다면 지도력에 문제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으며, 찬성 178, 반대 242로 부결됐다. 윤형구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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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과 저주의 기준장 재 효 목사 서울성은장로교회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1절)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2절)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3절)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불러내시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살펴보고 우리도 믿음으로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떠나라고 말씀하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1절)고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명의 무대, 생활 무대였던 정든 고향을 떠나고 가까운 친족조차 등진 채 하나님이 지시할 땅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떠나라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아브라함은 듣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손재주가 있어 고향인 갈대아 우르 땅에서 우상을 만들어 파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우상을 섬기는 문화로 가득 찼던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떠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시기 전에 먼저 세 가지를 버리게 하셨습니다. 이는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하신 것인데, 한마디로 그것들을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 인연을 끊으며 옛사람을 벗어 버려야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거듭남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의 옛사람은 아버지 데라였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나안으로 가려고 할 때, 아버지 데라는 중간 지점인 하란에 머물며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을 따라 아버지를 떠나 지시할 땅으로 떠났습니다. 2.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의 약속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2절) 이 말씀은 “네가 내 말을 듣고 나를 믿어서 내가 네게 허락한 땅인 가나안에 오기만 하면 내가 너에게 세 가지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첫째는 큰 민족을 이루게 하는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겠고, 둘째는 아브라함의 이름을 창대하게, 아주 위대한 사람이 되는 이름으로 만들어 주겠고, 셋째는 영적인 소망을 위하여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서 메시야라고 하는 그리스도를 나게 해서 유대 민족은 물론 온 이방인들까지도, 전 세계 만민이 천국 가기 위한 길이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3. 축복과 저주의 약속 그리고 그다음에 하시는 말씀이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3절)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 중에 아브라함을 본받는 사람은 아브라함이 얻는 복을 얻고, 아브라함을 미워하고 대적하고 훼방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저주를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어떤 사람이든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성도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그와 반대로 여러 모양으로 훼방하거나 대적하는 자는 하나님이 저주를 내리실 것입니다. 4. 축복과 저주의 기준 신명기 11장 26-32절에,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과 저주에 대해 말씀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거기에는 두 개의 산을 명기하고 있는데 하나는 세겜 땅 서쪽에 있는 그리심 산이고, 또 하나는 동쪽에 있는 에발 산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너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땅으로 부르신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복과 저주를 동시에 선포하셨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 가지 길이 있고 그 선택에 따라 복과 저주가 임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기준이 무엇일까요? 27절에 보면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믿음을 가지고 순종했던 것처럼, 우리도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영혼 구원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뜻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 28절에 보면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도 않고 행하지도 않았다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버리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만 한 다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완성하셨을 것입니다. 32절에서 보듯 “너희는 지켜 행할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씀을 아멘으로 듣고 믿음으로 실천하기 원하십니다. 5. 축복과 저주의 예화 서울에서 목회하시는 어떤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상가를 얻어 개척하고 2년쯤 지난 어느 날 열심히 교회를 다니던 김 집사님이 목사님께 찾아와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저 산꼭대기에 사는데 교회 가까이 이사 와서 교회를 마음껏 섬기고 싶은데 가진 것이 별로 없습니다. 저렴한 곳에 장사라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그 마음이 기특하여 가게를 알아봐 주고 축복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는 입소문이 나면서 전국에까지 판로가 확장됐습니다. 가게도 더 늘리고 아들까지 가세하여 돈 버는 데 집중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일이 너무 바쁜 관계로 예배도 빠지고 교회도 멀어지게 된 것입니다. 보다 못한 목사님이 그 집사님을 찾아가서 말하기를 “가게를 얻어 장사하도록 도와주면 열심히 교회를 섬기겠다고 하고서는 통 교회에서 볼 수 없으니 어찌 된 것입니까?”하고 물었더니 그 아들이 대답했습니다. “세상 속담에 한평생 돈 벌 기회가 세 번 온다고 했는데, 우리는 그 첫 번째 기회가 와서 지금은 돈 벌어야 할 때인데 교회가 대수입니까?” 그 김 집사님도 같은 마음인 것을 알고 목사님은 “오늘 이 시간부터 사업이 잘 안 되더라도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돌아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집사님은 큰 부자가 되려는 욕심으로 교회를 떠났고, 1년 반이 지난 어느 날 목사님께 찾아와 지금 사업이 매우 어려우니 자신에게 축복 기도해 달라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여전히 세상 조건인 물질의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하나님을 통해서 다시 채워지기만을 기대하는 욕심뿐임을 보고 목사님은 안타까웠습니다. 그 후 김 집사님이 운영하는 사업체는 부도가 났고, 집사님은 감옥에 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끝까지 순종하였다면 축복을 받았을 것인데 세상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바람에 저주받은 인생이 된 것입니다. (권면의 말씀) 우리는 성령을 받게 되면 그 성령께서 친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보증해 주십니다.(롬8:16)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는 그다음부터 성령의 인도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게 되어 축복의 사람으로 쓰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 유혹에 속아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죄를 지을 때는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고 세상 욕심에 빠져 산다면 저주가 임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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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역사사적지를 찾아서(2) - 김제 금산교회예장합동 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 제2호‘ㄱ’자형 한옥 예배당 ▲김제 금산교회 ‘ㄱ’자형 한옥예배당 전경. ▷아름다운 섬김, 124년의 역사를 지닌 금산교회 전북 김제시에 위치한 금산교회는 1905년 미국인 선교사 테이트(L.B. Tate)의 전도를 받은 금산리 지주 조덕삼이 자신의 사랑방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교회의 역사가 시작됐다. 교회가 부흥하자 1908년 조덕삼은 모악산 중턱에 있는 자신의 과수원에 지금의 ‘ㄱ’자형 예배당을 건축하게 된다. 특히 금산교회의 첫 장로를 선출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집 머슴(마부)이었던 이자익이 당선되었을 때도, 이를 존중하고 이자익을 장로로 잘 섬긴 조덕삼의 모습은 오늘날까지도 겸손과 순종의 상징으로 회자된다. ‘ㄱ’자형 예배당은 남자와 여자들의 예배당 출입문을 따로 두고 남녀 신도의 자리를 분리한 것이 특징으로, 당시의 전통문화와 풍습을 해치지 않으면서 복음을 전하려는 교회지도자들의 신중한 해결책이었다. 이후 이자익은 조덕삼의 후원 속에서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고, 금산교회로 돌아와 제2대 담임목사로 사역했으며, 나중에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세 차례(제13회, 33회, 34회)나 총회장으로 교단을 섬기게 된다. 한편, 금산교회는 유광학교를 설립해 인재양성에 힘썼으며, 삼일만세운동에 동참하고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교회폐쇄의 수모를 견디는 등 민족과 함께하는 교회로서의 면모를 이어왔다. ▷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 제2호 지정 금산교회 ‘ㄱ’자형 예배당은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136호로 지정되었으며, 대한예수교장로회 예장합동 교단은 지난 제101회 총회에서 교회 역사적으로 의미가 큰 금산교회를 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 제2호로 지정했다. ▲금산교회 예배당의 내부 모습.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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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지역 최초의 순교자, 소텔 선교사(4‧끝)안동지역 최초의 순교자, 소텔 선교사(4‧끝) 김승학 목사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안동교회 담임목사 소텔 선교사(Chase C. Sawtell, 1881-1909) 목차 1. 서론 2. 소텔 선교사의 가정(家庭) 3. 소텔 가정의 신앙(信仰) 4. 소텔 선교사의 소명(召命) 5. 소텔 선교사의 성품(性品) 6. 소텔 선교사의 파송(派送) 7. 소텔 선교사의 사역(使役) 8. 소텔 선교사의 순교(殉敎) 9. 소텔 선교사의 부인, 캐더린 10. 캐더린 선교사의 특별한 공헌(貢獻) 11. 결론 9. 소텔 선교사의 부인, 캐더린 소텔 선교사는 1907년 8월 27일 캐더린 맥크롱과 결혼했다. 1884년 8월 2일 네브라스카 주 크레트에서 출생한 캐더린은 그곳에서 1년 동안 살다가 1885년 실버 크릭으로 이사하여 10년 동안 거주했다. 따라서 어린 시절 소텔과 캐더린은 한 교회를 다녔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두 사람의 나이 차이가 3년이고, 실버 크릭 교회가 시골의 작은 교회였기 때문에 매 주일마다 주일학교에서 서로 만났을 가능성이 크다. 캐더린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1905년 네브라스카 주 크리트에 소재한 돈(Donne)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기독교 병원인 오마하 제너럴 병원 간호학교에서 간호사 교육을 받았다. 소텔과 결혼한 후 한국으로 파송 받던 해인 1907년, 23세의 꽃다운 나이인 캐더린은 5피트 10인치(약 178cm)로 당시에도 여성으로는 꽤 큰 키였다. 소텔 선교사 부부는 내한한 지 약 10개월 만에 딸을 출산하였는데, 이름은 메리이다. 선교지인 한국에서 딸을 얻은 기쁨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1909년 남편 소텔 선교사가 별세했으며, 이후 캐더린은 선교 사역을 계속하다가 1910년 딸 메리와 함께 미국으로 귀국했다. 캐더린은 1918년 경 밴더립 목사와 재혼했고, 1930년 전후하여 오마하 소재 크리프톤 힐 장로교회를 섬기면서 사회복지와 관련된 학교에서 교사로 봉사한 기록이 남아있다. 10. 캐더린 선교사의 특별한 공헌(貢獻) 안동의 교회음악에 처음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준 사람은 권애라 선교사다. 권애라 선교사는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피아니스트였다. 그는 1909년 11월 소텔 선교사가 장티푸스로 순교한 후 그 후임으로 1910년 1월 안동에 파송된 권찬영 선교사의 부인인 동시에 소텔 선교사 부인 캐더린의 동생이다. 권애라 선교사는 초창기 안동에서 교회음악 외에 여러 선교사역의 중심역할을 감당했다. 남편 소텔 선교사가 순교한 후 부인인 캐더린 선교사는 대구에서 계속 사역을 감당했다. 이때 캐더린 선교사는 미국에서 만든 풍금을 안동교회에 기증했는데, 이 풍금으로 안동 땅에 교회음악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캐더린이 안동교회에 기증한 풍금은 안동지역 최초의 풍금이었으며, 훗날 이 풍금은 안동교회의 교회음악과 영남지역의 음악역사에 큰 공헌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봄나들이’ ‘꽃 피는 삼천리’ ‘무찌르자 오랑캐 몇 백만이냐’ 등 주옥같은 작품을 남긴 음악가 권태호 선생이 어렸을 때부터 안동교회에 출석했고, 안동교회에서 권애라 선교사로부터 풍금을 배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동의 초기 기독교 음악은 캐더린 선교사가 기증한 풍금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이 풍금이 훗날 안동교회 찬양대의 탄생을 도왔으며, 더 나아가 한국 근대음악의 선구자 중의 한 명인 권태호 선생을 낳게 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은 풍금 기증자인 캐더린 선교사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을 것이다. 11. 결론 1907년 9월 24일, 샌프란시스코 항에서 젊은 부부가 한국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남편의 이름은 소텔(C.C. Sawtell)로 나이는 만으로 26세였다. 아내의 이름은 캐더린으로 만 23세의 꽃다운 나이였다. 그들은 샌프란시스코 항을 출발한 지 22일 만인 1907년 10월 16일 마침내 한국에 도착했다. 소텔 선교사는 배속된 대구선교부에서 1년여 동안 맡겨진 사역에 최선을 다한 신실한 주의 종이었다. 그러나 1년 뒤인 1908년 안동선교부의 신설이 결정되자 자원하여 미지의 땅인 안동으로 왔다. 그는 안동선교부의 첫 번째 주재선교사였던 것이다. 안동선교부를 위해 그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임무는 선교사들이 머물 수 있는 임시사택을 구입하는 일이었다. 그는 현재 안동교회 부지 안에 있는 한 채의 사택을 구입함으로써 선교사들이 안동에 머물면서 사역할 수 있는 기반시설 조성을 완료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열심을 다했다. 소텔 선교사는 이후 복음이 활발하게 전파되고, 자생적인 교회들이 세워질 토양을 만드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안동에서 사역한 기간이 1년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가 남겨놓은 거룩한 흔적은 크고 무겁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소텔 선교사는 1909년 11월 16일, 28세라는 젊은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다음은 그의 묘비에 새겨진 글이다. “나는 그들을 사랑하겠노라(I am going to love them).” 그는 조선을 사랑했기 때문에 내한했고, 조선과 조선 사람들을 사랑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늘나라로 갔다. 소텔 선교사는 안동 땅에 순교의 피를 뿌린 최초의 순교자였다. 안동 선교는 이처럼 거룩한 피를 흘림으로써 시작되어 안동 땅 곳곳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송하는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던 것이다. 무려 109년 동안 한국교회가 잃어버린 선교사였던 소텔 선교사의 거룩한 삶은 교회가 침체되고 선교의 열정이 식어가는 오늘, 우리 모두에게 복음의 능력과 전도의 열정을 새롭게 한다. 소텔 선교사의 심장을 날마다 뜨겁게 했던 이 말이 식어 차게 변해버린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의 심장을 다시 뜨겁게 만들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나는 그들을 사랑하겠노라(I am going to love them). ▲ 좌측 사진은 소텔 선교사가 별세한 후 부인인 캐더린 선교사가 안동교회에 기증한 바로 그 풍금 앞에 양복을 입고 연주하고 있는 권태호의 모습이다. 우측 사진은 연로한 음악가 권태호가 연주하고 있는 모습이다.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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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무 목사의 시 - 부끄럽다부끄럽다 하 승 무 목사 한국장로회신학교 역사신학 교수 기독시인 날마다 부끄럽다 인간이라서 부끄럽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있는 한 인간이라서 부끄럽다 하늘을 찌를 듯한 이상론자들의 인류라서 부끄럽고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착취당하는 생명들에게 부끄럽다 신국(神國)을 파는 거룩한 위선자들의 동류라서 부끄럽고 날마다 머리를 감싸는 하늘 위, 저 저 하늘에게 너무너무 부끄럽고 언제나 두발을 받쳐주는 땅들에게도 미안하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가는 길이 이다지도 부끄러운 것은 진리의 샛별이 내 가슴에 사랑으로 물결치며 영원히 빛나는 것일 게다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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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을 찾는 사람들천석길 목사 구미남교회 산티아고의 순례길을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잘 다녀왔습니다. 이 길은 800여 킬로가 되는 거리를 40일 계획으로 많이 걷습니다. 나는 휴가를 대신해서 다녀오는 여행이어서 보름 일정이지만 실제로 걷는 날짜는 11일이 됩니다. 그래서 더 많이 걷기 위해서 매일 30여 킬로를 걸었습니다. 때로는 체력의 한계를 느끼곤 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고 놀라운 것은 사람의 몸이 극에 달할 정도로 힘이 들면 정신세계는 순수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철학자들과 설교가들이 많이 걸었던 것 같습니다. 산티아고를 걸으면서 느낀 가장 인상적인 그림이 무엇이더냐고 물으신다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먼 거리로 이어지는 밀밭도 아니고, 마치 그림에나 나올 법한 평온한 언덕에 소들이 풀을 뜯는 풍경도 아니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산티아고를 향해서 걷는 길에 노란색 가리비 모양의 조개와 방향을 가리키는 노란색 화살표였습니다. 그 화살표가 지시하는 방향으로 앞으로 걷기만 하거나 때로는 오른쪽으로 꺾거나, 때로는 왼쪽으로 내려가는 노란색의 화살표를 따라서 걸었습니다. 그 노란색은 깊은 숲 속을 통과할 때나 소를 키우는 목장을 가로질러 갈 때도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 주었습니다. 그 노란색의 화살표는 사람들이 북적대는 도심을 통과할 때도 곳곳에 작지만 앙증맞은 노란색으로 화살표 표시가 있었고 그것을 따라서 걸으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가끔씩은 그 노란색의 방향 표시가 애매하거나 아예 보이지 않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이 2킬로, 3킬로씩 엉뚱한 방향으로 잘 못 가기도 했었습니다. 목적지가 있었지만 표시가 희미한 것 때문에 주저주저하거나 힘들어 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네 인생 이야기와 같지 싶습니다. ‘부모인 나를 바라보는 자녀들이 신앙의 방향을 분명하게 설정하고 있는지?’, ‘나는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이쪽입니다’라는 믿음의 방향표시가 잘 되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누군가가 내 앞에 와서 방향 표시의 빛이 바래어졌거나 화살표가 부러진 나로 인해서 엉뚱한 쪽으로 가고 있지는 않은지요? 꿈에도 나올 것 같은 그 노란색 화살표처럼 누군가에게 길을 보여주는 우리 모두였으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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