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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단체, “3·1절 광화문집회 열겠다”··· “금지하면 행정소송 간다” ▲국민특검조사단이 지난 22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광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전광훈 목사가 고문으로 있는 국민특검조사단이 지난해 광복절 집회에 참여한 보수단체들과 함께 오는 3월 1일 광화문 광장에서 집회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국민특검조사단은 지난 2월 22일 오전 11시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 국민의 의사를 모아 전 세계에 ‘문재인은 안 된다’는 것을 알리려고 한다”며 “3·1절에 광화문 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고 했다. 김경재 전 한국자유총연맹 총재는 “3·1절에 새로운 역사를 쓰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지난해 광복절 광화문 광장을 채웠던 의지가 다시 발현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 전 총재는 지난 광복절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됐다가 12월에 보석 석방됐다. 전광훈 목사의 변호인인 강연재 변호사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국민특검조사단 변호인들이 법원에 3·1절 집회 신청을 할 것”이라며 “집회금지 통고가 오면 행정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전광훈 목사는 이날 개인적 사정을 이유로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찰이 방역수칙을 위반한 집회는 원천적으로 모두 금지할 방침이라고 밝히면서 실제로 3·1절 광화문집회가 열리는 것은 어려울 전망이다. 서울시 등 지자체가 정한 기준에 따르면 광화문 등 금지구역 내에서 열리는 집회나 제한 기준 인원인 9명을 초과하는 집회는 모두 금지 대상이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 21일 기준 ‘3·1절 금지구역 내에서 10인 이상이 모여 집회를 열겠다’는 신고가 총 10개 단체의 95건”이라며 “방역 당국의 집회 제한조치에 따라 모두 금지통고 중”이라고 설명했다. 또 경찰은 “지자체에서 설정한 금지구역 외 지역에서 열리는 집회나 9인 이하 집회라 하더라도 코로나19 확산 가능성을 자세히 검토해 필요 시 금지 또는 제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을 주최한 국민특검단은 김경재 전 총재와 박찬종 변호사, 이인제 전 의원이 공동대표이다. 이예진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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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 원룸 밀집지역 취약계층 발굴·보호 대책 간담회 개최원룸 밀집지역 위기아동 및 취약계층 발굴에 모든 역량 집중 주민중심 지역 특성화 사업 및 맞춤형 서비스 자원 적극 개발 ▲원룸 밀집지역 취약계층 발굴·보호 대책 간담회를 하고 있다.(사진=구미시 제공) 구미시(시장 장세용)는 2021. 2. 23.(화) 최근 관내에서 발생한 아동사망 사건을 계기로 관내 원룸 밀집지역 6개 동장, 복지관련 부서장, 구미경찰서, 경북서부아동보호전문기관 등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위기아동 및 복지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원룸 밀집지역 취약계층 발굴 보호 대책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번 간담회는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과 원룸 특성상 잦은 전출입, 이웃관계 단절 등으로 위기아동, 위기가정 발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원룸 밀집지역 6개 행정복지센터의 복지사각지대 발굴 추진상황과 복지관련 부서의 지원 방안을 점검하는 자리였다. 행정복지센터에서는 기존 복지통장, 지역사회보장협의체를 통한 위기가구 발굴을 넘어 원룸, 빌라 등 다세대주택 전수조사,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과 원룸지역 복지대상자 1:1 매칭, 원룸 협의체 구성, 관내 편의점 위기 아동·가구 신고 협조 등 지역사회안전망을 더욱 강화하고 대상자 발견 시 지역사회 서비스 자원을 활용해 적극적이고 신속하게 지원키로 했다. 또한, 복지 관련부서는 복지위기가구 발굴을 위한 일제조사, 노인맞춤형 돌봄서비스 강화, 독거노인·장애인 응급안전암심서비스 시스템 구축, 취약지역 기초생활보장사업 강화, 의료취약계층 보건의료서비스 제공 등 원룸 밀집지역 맞춤형 복지서비스를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구미경찰서 등 유관기관은 아동학대, 원룸지역 범죄 발생 시 적극적인 현장대응과 사례관리를 강화키로 했다. 장세용 구미시장은 이번 사건을 안타까워하면서 읍면동 일선 현장에서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위기 아동·위기가정 조기발견, 지원을 위한 직접적이고 치밀한 특단의 대책 마련을 강조했다.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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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화랑마을, 생생한 화랑 체험 위해 3월부터 ‘국궁체험’ 운영3월~11월 매주 토요일 4회 ‘국궁체험’ 운영, 7세 이상부터 체험 가능 ▲화랑마을에서 이용객들이 국궁체험을 하는 모습.(사진=경주시 제공) 경주시 청소년 수련시설인 화랑마을(촌장 최영미)에서 다음 달부터 오는 11월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신라 화랑들의 호연지기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국궁체험’을 운영한다고 17일 밝혔다. 체험은 매주 토요일마다 하루 4회에 걸쳐 실시(1회 10:30~11:20, 2회 11:30~12:20, 3회 14:30~15:20, 4회 15:30~16:20)하며 각 회당 정원은 20명이다. 체험 가능 나이는 7세 이상으로 7~11세까지는 안전체험부로 보호자와 동행해야만 체험이 가능하며, 12세 이상은 일반체험부로 국궁예법과 국궁의 유래, 장비의 이해, 활쏘기 체험 등을 내용으로 하는 교육과 체험활동이 진행된다. 체험신청은 회차별 교육이 진행되기 1시간 전부터 화랑마을 내 육부촌 관리동에서 현장 접수하면 되며, 체험 비용은 청소년 5,000원, 성인 10,000원으로 카드결제만 가능하다. 체험과 관련한 문의사항은 화랑마을 활동운영팀(☎054-760-2412~8)으로 문의하면 된다. 화랑마을 최영미 촌장은 “옛 화랑의 기상을 체험할 수 있는 국궁체험을 통해, 힘든 시기를 겪는 있는 모두가 새로운 도전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가꿀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화랑마을은 지난해 10월 23일부터 11월 15일까지 국궁체험을 시범 운영한 바 있다. 당시 참가자 16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프로그램 전체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9.9점 △타 시설 프로그램과의 차별성 부문은 9.3점 △활동시설의 기자재 부문은 9.8점 △체험시간의 적절성 부문은 9.4점 △재방문의사 부문은 10점으로 집계돼 높은 호응도를 나타냈다. 경주 김치현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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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시, ‘경제 성장 동력’ 상주일반산업단지 조성 착공2022년 완공 예정 1,800명 고용 효과 기대 ▲상주일반산업단지 조감도.(사진=상주시) 상주시가 신성장 동력사업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상주일반산업단지 조성공사가 17일 시작됐다. 상주시는 헌신동 일원 39만㎡에 사업비 634억 원을 들여 산업시설용지 230,764㎡와 지원시설 12,319㎡를 조성한다. 완공 예정은 2022년 12월 말이다. 상주일반산업단지에는 기계금속, 전기, 식료품 업종 30여 업체가 입주할 예정이다. 산업단지 조성 과정에 200여 명의 일자리가 생기고, 업체 입주가 완료되면 1,800여 명의 고용 창출 효과가 예상된다. 시는 지역 여건에 맞는 제조업체를 유치할 수 있도록 상주일반산업단지의 유치 업종을 고도화하고 문화 복지·편의시설을 확충하는 등 경쟁력 있는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이를 통해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앞서 시는 지역경제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산업단지를 조성키로 하고 개발계획 수립, 문화재 조사와 환경영향평가, 사전재해영향성 검토 등 행정절차를 거쳐 지난해 11월 상주일반산업단지 승인 및 지형도면 고시를 완료하는 등 부족한 산업 용지 확보에 발 빠르게 대처해왔다. 강영석 상주시장은 “상주일반산업단지 조성으로 지역 발전을 앞당기고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 침체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예진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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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보문카라반파크 캠핑장 3월 정식 개장꽃피는 봄, 물놀이장 겸비한 명품 카라반 캠핑장으로 놀러 오세요 ▲보문카라반파크 사이트 전경.(사진=경주시) 경주시는 천군동 종합자원화단지 일대에 조성된 경주 보문카라반파크가 오는 3월 8일 정식 개장한다고 18일 밝혔다. 위탁 운영자로 선정된 ㈜유니레저는 정식 개장 전인 이달 20일부터 시설점검과 홍보를 위해 카라반을 시범 운영할 계획이다. 경주 보문카라반파크에는 4·6·8인용으로 다양하게 구성된 풀옵션 카라반 16대와 개별 바비큐장, 오토캠핑 사이트 3면, 겨울을 제외한 모든 계절에 즐길 수 있는 온수 물놀이장, 샤워시설, 매점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또 이용객의 편의를 위해 주차장에서 카라반 객실까지 짐 등을 싣고 이동할 수 있는 전기차도 운영한다. 캠핑장 아래에는 장미동산, 핑크뮬리, 수변 등을 즐길 수 있는 산책길이 조성된 생태공원이 조성돼 있다. 밤에는 LED 갈대등과 감성 로고라이트를 겸한 옥가락지 포토존, 데크교량 등 야경을 즐길 수 있으며, 인근에 목욕과 찜질이 가능한 웰빙센터가 있어 힐링명소로 손색이 없다. 경주시 관계자는 “캠핑장 개장을 위해 시설을 점검하고 물품을 구비하는 등 개장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진입로 안내간판 정비와 안전·편의시설 등 확충으로 안전하고 편리한 캠핑장 조성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전했다. 경주 보문카라반파크를 이용하려면 곧 오픈할 캠핑장 홈페이지 또는 인터넷 포털사이트(보문카라반파크 검색)를 통해 3월 8일부터 예약할 수 있다. 자세한 사항은 ㈜유니레저(☎054-610-8254)로 문의하면 된다. 경주 김치현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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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학 목사의 논문 원문(3)- 심장에 전도의 불을 지핀 사람, 정재순 목사심장에 전도의 불을 지핀 사람, 정재순 목사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 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정재순 목사(鄭在淳, 1878~1948) 1900년 초 어느 날 정재순 목사는 부해리(傳海利, Henry M. Bruen) 선교사와 만났다. 어디에서, 언제, 어떻게 만났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정재순이 20을 갓 넘은 나이에, 경산 어느 마을에서 부해리 선교사를 만났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훗날 정재순의 행보를 보았을 때 이 만남은 우연적인 만남이 결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묘하신 섭리 가운데서 정재순이 부해리 선교사를 만나게 하셨다. 만남 후 정재순의 삶은 하나님께로 향한 삶이 되었다. 정재순은 이후 단 한 번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다. 따라서 언제 누구를 어디에서 만나느냐는 정말 중요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삶의 방향과 내용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기로 결심한 이후 정재순은 단 한 번도 교회를 떠난 적이 없이 초창기 한국교회를 위해 헌신했다. 그는 교회 안에 세워진 기독교학교의 교사생활을 시작으로 교회에 관계를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교사의 조사가 되어 함께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돌보는 일을 시작함으로써 하나님께서는 그를 전문적인 사역자로서 훈련시키셨다. 조사로 여러 교회를 섬기던 정재순은 1912년 평양신학교에 입하여 본격적인 신학수업을 쌓게 된다. 그러던 1914년, 그가 섬기고 있던 대구 신정교회(현 대구 서문교회)에서 장로로 임직하는데, 신정교회 초대 장로의 영예를 안게 된다. 1915년 평양신학교 제8회로 졸업한 후 목사임직을 받고 신정교회 첫 한국인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초임지인 대구 신정교회에서 정재순 목사의 사역은 국가와 민족을 위한 사역이었다. 여자 청소년을 위한 야간 학교를 개설했고, 대구 3·1만세운동에 깊이 관여했다. 1922년 6월 안동으로 사역지를 옮긴 이후, 그는 전도중심의 사역을 통해 안동 땅을 기경하기 시작했다. 계속적인 그의 관심사인 학원선교를 위해 청소년을 위한 기독교학교를 설립했다. 또한 교회분립을 통해 안동 땅의 부흥을 위한 새로운 도전을 감행하기도 했다. 안동을 떠난 이후 대구를 근거지로 둔 정재순 목사는 본격적인 복음전파자의 길을 걸었다. 청도, 영천, 경산, 달성, 고령, 월성, 경주, 영일, 칠곡, 상주, 군위, 선산, 의성군 등에 28개 예배처소를 개척했다. 이 때 그의 부인인 손주안 사모는 함께 교회를 개척하고, 함께 성도를 섬기고 돌봄으로써 정재순 목사의 소중한 동역자가 되었다. 연어가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서 산란하고 죽듯이 정재순 목사는 60세에 그의 첫 담임 목회지인 대구 신정교회로 돌아가 사역을 마무리했다. 그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정재순은 목회 전반전과 후반전을 똑같은 열정과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불꽃을 불사르며 살았을 뿐 아니라 성도들의 심장에 전도의 불을 지핀 믿음의 사람이었다. 이제부터 정재순에 관해 살려보자. 1. 목사 임직 이전의 인간(人間), 정재순 정재순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으며 극히 단편적인 것만 알려져 있다. 그의 집안이나 근무한 기관, 그리고 섬긴 교회도 그에 관한 것과 사역한 내용 등에 관해 남겨진 기록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지금까지 그의 성장배경이나 가족 관계 등 역시 제한적인 정보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 결과 정재순 목사의 가정에 관한 연구는 전무하다 시피 했다. 그러나 한국기독교 교회역사 주영연구소장 이교남 목사에 의해 정재순의 가족 관계가 새롭게 밝혀졌다. 이교남 목사는 정재순 목사의 후손을 만나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정 목사에 관한 이야기나 그들이 보관하고 있던 귀한 자료들을 볼 수 있었다. 이교남 목사는 2013년 7월 제2회 안동지역 기독교 역사포럼에서 발표한 ‘정재순 목사의 목회사역과 독립운동에 대한 연구’라는 소논문에서 정재순 목사의 후손을 만나 확인한 새로운 사실을 공개한 적이 있다. 새롭게 밝혀진 정재순의 가족 관계는 다음과 같다. 정재순(鄭在淳)은 1878년 5월 24일, 경상북도 경산(慶山)군 남천면 신기동에서 출생(出生)했다. 부친은 정진호(金鎭鎬), 모친은 김소사(金召史)의 2남 4녀 중 장남이며, 부인은 손주안(孫主安)이다. 훗날 부인 손주안은 남편 정재순 목사의 동역자로 전도와 교회개척에 큰 공헌을 하게 된다. 정재순은 외동아들을 두었는데 아들은 정원조(鄭元祚), 자부는 손기순(孫琪順)이며, 그의 후손은 현재 대구에서 교회를 잘 섬기고 있다. 정재순 가문은 당시 여느 가문처럼 유학의 집안이었다. 따라서 그는 어릴 때부터 한문을 배우고 한학을 수학하며 유학을 따르는 집 안에서 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재순 목사의 묘는 칠곡에 있었는데, 1982년에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정재순 목사가 안동교회에 시무할 때 교인으로 생존한 성도들이 기억하고 있는 정재순 목사는 천성이 어질고 중후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성도들로부터 호감을 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아 있는 정재순 목사의 사진에서 보여 지는 그의 인상(印象)은 성도들의 증언을 뒷받침한다. 사진으로 보여 지는 그의 인상은 후덕하고 인정이 많은 교육자요 목회자, 바로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가 안동교회를 섬기는 3년 동안 성도들은 그의 신앙과 인격을 존경하며 영적 리더십에 순종했을 것이다. 또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을 역임하고 대구제일교회 원로목사인 이상근 목사는 정재순 목사의 훈훈함을 이렇게 기억한다: “우리들이 약혼한 때는 1942년 여름, 음력으로 7월 7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견우직녀라면서 축하해 주었습니다. 약혼식은 정재순 목사님의 주례로 처가 대청에서 올렸습니다.” 정재순 목사는 교인들을 포함한 주변의 여러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주는 주의 종이었다. 2. 선교사를 만나 회심(回心)한 사람, 정재순 유교가 뿌리 깊은 가정에서 출생하고 성장한 정재순은 처음에 기독교에 심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재순 목사의 증손자에 따르면 정재순이 선교사를 구타하고 쫒아내려고 선교사를 찾아갔다가 부해리 선교사를 만나 전도 받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한다. 대구 경북 조사인물편람에 따르면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하루는 부해리 선교사가 ‘나의 설교 중 어느 말씀에 감동을 받아 예수를 믿게 되었는가? 라고 정재순 조사에게 물었더니 정재순 조사는 ’내가 예수를 믿게 된 것은 부해리의 설교가 아니고 당신이 키우고 있는 사냥개 마이크가 식사 기도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정재순 조사는 사냥개가 빵을 다리 위에 놓고 주인이 먹으라는 명령을 기다리는 순간을 식사 기도하는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미천한 개도 음식을 놓고 기도하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어찌 기도하지 않겠는가? 하고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개도 기도하고 난 후에 밥을 먹는데, 사람인 나는 당연히 하나님께 기도해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이 들어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정재순의 고백은 복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질 때만이 아니라 선교사의 행동 등을 통해서도 전해질 수 있음을 알게 한다. 그렇다면 정재순은 언제 회심했을까? 정재순의 회심은 경산에서 복음이 전해진 선교사와 기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부해리 선교사는 1896년 프린스턴 신학교(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를 졸업하고, 1899년에는 뉴욕 유니언 신학교(Union Th eological Seminary)를 졸업한 후 그해 봄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어 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부에서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어, 그해 10월 26 일 대구에 도착하였다. 결혼을 위해 대구를 떠났던 그는 1902년 5월 다시 대구 선교부에 귀환하여 경북 서부지방, 즉 김천, 선산, 군위, 고 령, 성주, 상주, 칠곡 등지에서 복음을 전해 수많은 교회를 설립하였다. 1903년 부해리 목사는 안의와(安義窩, James E. Adams)의 후임으로 대구제일교회를 담임하였고, 1904년에는 대구 성경학원의 남자 조사반을 맡았다. 또한 1916년까지 나환자 선교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12년 1월 경상노회의 조직에도 크게 기여하여 1913~14년에는 경상노회 7, 8회 노회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또한 1915년에 대구 남산교회를 세워 1920년까지 당회장으로 시무하였다. (이하 내용은 논문원문 첨부파일 참조)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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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학 목사의 논문 원문(2)- 안동이 배출한 첫 해외선교사, 이대영 목사안동이 배출한 첫 해외선교사, 이대영 목사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 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이 대 영 목사 (李大榮, 1887~1968) 1887년 경상북도 예천군에서 출생한 이대영 목사는 시대를 앞서간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는 예수 믿기 힘든 유학이 강한 마을과 가정에서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너무도 혹독했다. 그는 더 이상 고향 땅에서 살지 못하고 객지로 떠나야만 했다. 하지만 일정한 훈련을 거친 후 하나님께서는 그를 고향으로 보내셨고, 뛰어난 복음전파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그 후 전도인, 조사로 활동하면서 평양신학교의 신학교육을 마치고 안동교회 제2대 담임목사로 시무하며 기독청년면려회와 주일학교를 통해 교회를 든든히 세워나갈 뿐 아니라 지역복음화와 교회 부흥을 선도했다. 그가 시무할 때 시작된 기독청년면려회 운동은 3·1운동의 실패로 실의에 빠져있던 이 땅의 청년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갖고 미래를 준비하게 만들었다. 총회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안동을 떠나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파송 선교사로 1922년 6월 13일 중국 래양에 도착한 이대영은 그 땅에 머무는 동안 중국인들과 함께 중국인처럼 살았다. 1949년 중국의 공산화로 인해 선교를 포기하고 1955년에 완전히 철수할 때 까지 이대영 목사는 33년 동안 중국인을 동족으로 생각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함으로서 산동반도에 하나님 나라가 확장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산동반도에 거주하고 있는 재중동포들을 잘 돌보았던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1954년 4월 산동성에서의 완전 출수 후 오직 하나님 나라, 교회와 총회를 위해 헌신하다가 1968년 하나님이 부르심을 받은 믿음의 선배이다. 1. 이대영, 금당실 마을에서 출생하다 백사(白沙) 이항복의 후손인 이대영(李大榮)은 1887년 4월 23일,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에서 이유성(李裕成)과 김도혜(金道徯)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이대영이 출생한 마을은 금당실로 불러졌는데 선교사가 동네에 와서 복음을 전하기 전에 이미 그리스도인들이 존재했다. 예천 땅을 처음 밟은 선교사는 부해리(傅海利, Henry Munro Bruen, 1874~1959)로 조사 이희봉과 함께 1907년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07년은 평양에서 시작한 대부흥으로 전국에 뜨겁게 부흥의 열기가 확산되고 있던 때이다. 따라서 인근지역인 안동, 영주, 문경, 상주, 의성에 선교사들과 조사들의 활동으로 이미 많은 교회가 세워지고 있었다. 이러한 영적 분위기에 따라 예천 최초의 신자인 나만기(羅萬基)에 의해 당교회가 시작되었다. 특히 금곡(금당실)교회의 시작은 이러하다. 1893년 낙향해 금당실에 머물 던 이유직(李裕稙)은 양주 목사를 한 형 이유인(李裕寅)을 추모하며 99칸의 한옥 저택을 지어 생활했다. 하지만 동학혁명에 가담해 도망하던 이유직은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었고, 그 때 복음을 전해 들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유교전통이 유독 강하고 불교 중심의 마을이었던 금당실은 복음이 전파되기 대단히 어려웠다. 따라서 이유직은 때를 기다리며 1899년 전후, 자신의 집에서 은밀하게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것이 금곡교회의 첫 출발로 알려져 있다. 금곡교회는 선교사의 지도를 받으며 상곡교회라는 공식 교회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금곡교회는 선교사에 의해 세워진 교회가 아니라 선교사가 직접 복음을 전하기 전에 쪽 복음과 전도지를 읽고 복음을 접한 평신도에 의해 세워진 자생적 교회인 것이다. 그 후 점차 예배드리는 수가 늘어가 교회는 계속 부흥하게 되었다. 예천지역 초기 3대 교회는 상곡교회, 괴당교회, 그리고 상락교회라고 할 수 있다. 이대영은 괴당교회가 설립될 당시인 1907년 경, 복음을 소개받고 믿음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부모의 반대와 금당실의 영적 분위기에 의해 자신이 예수 믿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낼 수 없었다. 이대영 목사는 예수를 믿게 된 것이 자신의 고집 때문임을 배태준 장로에게 고백한 적이 있다. “내가 처음 예수 믿을 때에 우리 집안에서 ‘양반 가정에서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하고 못 믿게 하는 것을 참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기고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이심을 믿고 죽기로 하고 고집을 피워서 된 것이고, 일제 말엽 신사참배 문제로 그렇고 극성을 피울 때에도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신앙의 정절을 지킨 것도 내 고집 때문이었고.” 한번은 아버지가 이대영에게 소의 여물인 짚을 자르는 작두에 목을 대라고 해서 그대로 대었더니 아버지는 결국 자식을 포기하는 길을 선택했다고도 한다. 이대영은 부모의 반대로 고향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없게 되자 가족과 함께 1910년 연일군 흥해면으로 이사하였다. 흥해에 도착한 이대영은 가족과 함께 흥해교회에 출석하면서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특히 이곳에서 선교사로부터 신앙훈련과 지도를 받을 수 있었다. 전통적인 양반가문의 후예인 이대영은 비록 가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복음사역을 위해 철저히 준비시키셨던 것이다. 비록 예수 믿는다고 집에서 버림을 받아 객지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품으셨고, 훗날 당신의 필요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 가셨고, 결국 하나님의 때에 한국 땅에서 중국 땅에서 복음전파의 귀한 도구로 사용하셨던 것이다. 2. 이대영, 부해리 선교사를 만나다 안동을 포한한 경북북부지역에 복음이 처음으로 전해진 것은 1893년으로 당시 부산선교부에 있던 배위량(William M. Baird) 선교사가 부산을 출발하여 밀양, 청도, 대구, 상주, 안동, 영천, 울산을 순회하며 전도하고 부산으로 귀환한 것이다. 이후 1902년 3월에 대구선교부에 있던 안의와(James E. Adams) 선교사가 안동지역을 방문하여 복음을 열심히 전했다. “두 차례의 봄철 선교여행을 다녀온 후 곧 3차 여행을 시작했다. 1차는 3월과 4월에 경상도 북부지방을 다녔다. 이들 지방은 선교사들이 전혀 방문한 적이 없는 곳이었다. 이들 9명의 관리들을 만나고 많은 전도 서적을 팔았으며 장터에서 전도를 했다. 1개월 이상 장터를 돌며 전도하고, 약 1천 권 이상의 책을 팔았다.” 안의와 선교사의 안동 방문의 결과 안동지역을 포함한 경북북부 지방은 선교사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다. 안의와 선교사 안동 방문 후 1903년 봄 대구선교부의 방위렴(William M. Barrett) 선교사와 부해리 선교사가 안동을 직접 방문하여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부해리 선교사는 1892년 미국 장로교 기숙학교인 블레어 홀 아카데미(Blair Hall Academy)에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22세 때인 1896년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했다. 그 후 부친과 조부가 졸업한 뉴욕의 유니언 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공부를 마친 후 1899년 졸업하고 그해 봄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어 미국 북장로교로 부터 한국 선교사로 파송 받아 1899년 10월 26일 대구에 도착하여 초창기 대구·경북 지역선교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41년 일제의 탄압으로 추방되기 까지 40여 년 한국선교에 평생을 바친 부해리 선교사는 경북 북부지역에 복음을 전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부해리 선교사를 포함한 여러 선교사들의 헌신의 결과, 1903년 미국 북장로교 연회보고에 의하면 경북·대구 지역 7개 고을에서 12명의 교인이 생겨났고, 1904년 보고에는 12개 고을에서 6개 교회에 7명의 학습교인, 33명의 원입교인이 생겨났으며, 1905년 보고에는 20개 고을에 8개 교회에 2명의 세례교인, 19명의 학습교인, 79명의 원입교인이 생겨났다. 복음의 불모지와 다름없던 경북북부 지방에 선교사들의 헌신으로 복음의 씨앗이 뿌려짐으로써 복음화의 불씨가 발아(發芽)할 날을 기다릴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영적 분위기 가운데서 이대영의 회심에 관한 이야기는 두 가지 설로 나뉘어진다. 우선 박용규는 1907년 경, 이대영은 나만기에 의해 복음을 소개받고 예수를 믿게 된 것으로 추측한다. 이미 예천에 존재했던 그리스도인으로부터 예수님을 소개받고, 그가 복음을 전달받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박용규의 추측처럼 1900년대 초 예천의 3대 교회 중의 하나인 괴당교회(槐堂敎會)를 설립한 나만기에 의해 복음을 전해 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여러 자료들은 이대영이 부해리 선교사에 의해 예수를 믿게 되었음을 증거한다. 이대영은 한국교회의 최초의 대부흥이 일어난 1907년 당시 대구선교부 소속 선교사로 있던 부해리 선교사에 의해 복음을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대영 목사가 1956년 9월 41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을 역임할 당시 회계로 수고한 배태준 장로도 이대영이 20세 때 부해리 선교사를 만나 예수를 믿게 되었음을 밝힌 적이 있다고 그의 자서전에서 기록한다. “이대영 목사는 부해리 선교사에게서 복음을 들었으며 신앙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고집을 가지고 추진하였기에 중국 산동성에서도 중국인 목사나 외국인 선교사들에 비해 큰 부흥을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여러 자료들은 이대영이 부해리 선교사를 통해 전도를 받았음을 증거하고 있다. 대구·경북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부해리 선교사와의 역사적 만남으로 이대영은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게 했으며, 이후 전도인, 조사를 거쳐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로 임직한 이후 한국교회와 중국선교의 거룩하고 위대한 한 도구가 되었던 것이었다. (이하 내용은 논문원문 첨부파일 참조) 편집부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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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지역 아파트 거래량 지난 1년 새 2배 증가거래량 증가하면서 아파트 미분양 해소로 이어져 올해 1월 기점 지역 주요 아파트 분양률 100% ▲경주지역 아파트 거래량이 지난해부터 2배 가까이 늘면서 지역 경기가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는 가운데, 경주시 현곡면에서 바라본 황성동 아파트 단지 모습.(사진=경주시) 장기간 불경기였던 경주지역 아파트 거래량이 지난해부터 2배 가까이 늘면서 지역 경기가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경주지역 아파트 매매 건수는 3657건으로 집계됐다. 2019년 1873건과 비교하면 불과 1년 새 아파트 거래량이 무려 2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이 같은 거래량은 2016년 1575건, 2017년 1408건, 2018년 1420건, 등 지난해를 제외하고 연간 거래량이 2000건을 넘은 적이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무엇보다 아파트 거래량 증가세는 미분양 해소로 이어지고 있다. 경주시가 올해 1월 공개한 공동주택 분양 미현황 자료를 살펴봤더니 △444세대 규모 ‘황성 휴포레’가 미분양 가구 0개로 분양률 100% △1671세대 규모 ‘현곡 센트럴 푸르지오’가 미분양 가구 15개로 분양률 99% △1204세대 규모 ‘두산위브 트레지움’이 미분양 가구 0개로 분양률 100%로 나타났다. 또 지난해 11월 분양을 시작한 △795세대 규모 ‘용강동 뉴센트로 에일린의뜰’이 올해 1월 기준 분양률 100%를 기록했다. 네 곳 모두 착공 일자를 기준으로 최소 3년에서 5년 넘게 미분양 세대 수가 남아 있던 아파트들로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미분양에서 벗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사정이 이런 탓에 주택보증공사는 지난해 10월을 기점으로 경주시를 미분양관리지역에서도 제외했다. 지난 2016년 11월부터 경주시가 미분양지역으로 지정되어 관리를 받아왔던 점을 감안하면 만 4년 만에 이를 벗어난 셈이다. 한상식 경주시 주택과장은 “공동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그동안 아파트 공급 물량을 적극 조절해온 결과가 나타나는 것 같다”면서 “꾸준한 주택시장 모니터링을 통해 공동주택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경주 김치현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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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 전국 최초 수층별 실시간 수온 관측 시스템 구축경북 동해안 수층별 수온 정보 24시간 제공, 스마트 어업 기반 마련 ▲실시간 수온측정 장비.(사진=경상북도) 경상북도 환동해지역본부 어업기술센터(소장 권기수)는 전국 최초로 수층별 수온을 앱(APP)을 통해 24시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수온측정 장비 및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밝혔다. 어업기술센터는 표층 수온만 제공하는 현재 기존 수온 정보시스템으로는 어업인의 어업활동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수층별 정보를 제공하는데 한계가 있는 것을 인지하고 이것을 해결하고자 2019년부터 수층별 수온 관측 시스템 개발을 착수, 2020년 8개소의 연안 지점에 대해실시간 수층별 수온관측 시범사업을 최초로 추진했다. 개발된 실시간 수온 관측망 시스템은 크게 송신부·수심별 수온센서·케이블·데이터 수신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물인터넷(IOT) 기반 무선 통신 기술을 이용하여 최대 수심 50M 수온정보를 해양에서 육지까지 장거리 전송이 가능하게 하였으며 장기간 사용이 가능하도록 내구성도 향상시켜 안정적으로 해양수온 정보를 제공할 수 있게 했다. 또한, 기존 수온 관측장비의 문제점(고가 및 대형화)을 저가 및 소형화로 개발하여 비용을 크게 절감시켜 시스템의 확산 및 보급화에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내다보고 2021년에는 관측지점을 3개소 증설하여 11개 연안 지점에 관측 시스템을 구축하여 시범 운영할 예정이다. 이영석 경북도 해양수산국장은 “실시간 수층별 수온 관측 자료를 활용하여 해양환경 변화 연구, 냉수대, 고수온 등 이상 수온으로 인한 수산재해 선제적 대응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 시킬 수 있게 됐다며, 앞으로 어업인이 요구하는 해양수산기술을 개발·보급하여 어업인들의 스마트 어업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수층별 실시간 수온 측정 시스템 모식도 박은숙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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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시 「소규모사업장 방지시설」 설치 지원 나서미세먼지 저감 목적 총 7.2억 원 규모, 내달 26일까지 신청 접수 ▲안동시 소규모사업장 방지시설 설치사업 지원.(사진=안동시) 안동시(시장 권영세)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관내 미세먼지 저감 등 대기질 개선을 위해 국도비를 지원받아 총 7억2천만 원 예산으로 「소규모 사업장 방지시설 설치 지원사업」을 실시한다. 이 사업은 환경오염물질을 다량으로 배출하여 비효율적으로 가동되는 소규모 대기배출시설 사업장에 노후 대기방지시설 개선과 교체비용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세부사항은 다음과 같다. ▶ 지원대상 : 관내 대기배출시설 1~5종 사업장 중 중소기업 ▶ 지원내용 : 대기방지시설 개선 및 설치비용의 90% 지원(자부담 10%) ▶ 지원조건 : 해당 방지시설에 사물인터넷(IoT)을 설치하고 3년 이상 운영 안동시 관계자는 “영세사업장의 재정적 부담을 완화하고 조속한 시설 개선을 통한 쾌적한 대기환경 조성, 환경과 기업경제가 상생하는 환경행정을 지속해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지원사업은 2월 26일까지 신청을 받으며 공고와 관련된 자세한 사항은 안동시 홈페이지(http://www.andong.go.kr/) 고시공고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안동 한상덕 기자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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