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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샘터’ 마련, 절망 속에 교회가 기억나도록정부의 보조도 받을 수 없는 복지 사각지대 독거노인과 장애인 가정, 형편이 어려운 이들을 돕고자 지역의 한 교회가 나섰다. 지금은 작은 나비의 몸짓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후일 많은 교회들의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목회자와 온 성도들은 기도하며 합심으로 섬기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지극히 가난하지만 여러 가지 제약으로 복지해택을 받을 수 없는 이들을 안타까이 여기던 구미성은장로교회 곽재억 목사와 성도들은 금년 초, 3~4년 전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선한 사업을 실행하기로 결단했다. 곽 목사에 의해 제안된 안건은 제직회를 통과,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찾아들어갔다. 함을 비치해 가난한 이는 누구나 가져 갈 수 있도록 준비했다. 처음에는 밥을 할 수 있는 쌀을 1되씩 비닐에 담아 준비했고, 라면도 1봉지씩(5개) 가져가기 쉽게 마련해 넣어 뒀다. 혹, 한꺼번에 많이 가져가는 이가 생길까봐 걱정했었는데, 예상외로 1~2개씩 없어지고 그것도 어느새 새롭게 채워지고 있었다. 교인들에게 공모를 받아 지어진 함의 이름은 ‘사랑의 샘터’이다. 사랑의 샘터에는 “마음대로 갖고 가실 수 있고 채워 놓을 수도 있습니다.”란 글귀가 붙어 있다. 그래서인지 없어진 분량만큼 이나 또 채워져 한결 같은 양을 유지하고 있어 관리하는 교인들도 신기롭기만 하다. 나누고 섬기려다보니 성도들 사이에는 다양한 방법과 무수히 많은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다. 라면과 쌀에서 품목도 다양해지고 있다. 샴푸와 린스, 비누, 치약 등의 생필품은 물론 김 등 반찬류가 추가되었다. 교회에 출석하시는 독거노인들과 이들이 아는 주변 독거노인들에게 매주 수요일 반찬나누기도 시작했다. 사역의 기쁨을 누린 성도들에 의해 새로운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 의식주의 의(衣)의 해결이다. 성도들은 의류함을 새롭게 준비하기로 하고 함에 넣을 옷을 마련하기로 했다. 먼저 성도들이 선별하고 세탁해 주일날 가져온 옷을 정성껏 포장해 의류함에 넣어 두기로 한 것이다. 교인들이 좋아하고 동참해 신선한 바람이 불고 있다는 성은장로교회 곽 목사는 “‘교회만을 위한 교회’가 아닌 ‘사회에 꼭 필요한 교회’가 되도록 노력하는 우리교회는 양식이 떨어져 고통 받는 이들과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교회가 생각나도록 섬기는 일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도 생각과 달리 힘들고 어려운 분들이 많은 우리 사회의 어려운 이들이 아무부담 없이 또 눈치 볼 것 없이 ‘사랑의 샘터’ 함에서 의식주 문제를 해결 받고 영생의 문제까지 상담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편, 구미성은장로교회는 한국농어촌선교회를 통해 농어촌교회에 전달할 쌀을 마련, 지역의 어려운 교회 돕기에도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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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경북청소년지도자대회 및 사랑의 쌀, 장학금 전달식’ 열려의료법인 이레의료재단(이사장 윤봉호) 주최로 열린 ‘제2회 경북청소년지도자대회 및 사랑의 쌀, 장학금 전달식’이 지난 6일(토) 경산시 재향군인회관 4층에서 수상자와 축하객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이번 대회에서는 장애인종합복지관, 노인복지시설 등에 사랑의 쌀을 전달하고 경북 도내 초·중학생 6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함으로써 지역사회 어르신들의 삶의 질 향상과 청소년 인재 교육함양에 이바지하고자 했다. 또한, 각 지역에서 봉사와 헌신에 앞장서는 목회자,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예술인, 사업가, 주부, 학생 등을 발굴해 김석기·김광림·박명재·이완영·송언석 국회의원 표창, 경북도의회 의장 표창 등으로 치하하고 격려했다. 장학생으로는 김태완(사동중 2년) 외 5명이 선정됐으며, 김석기 국회의원 표창에는 박숙자(참좋은 노인복지센터 센터장) 외 3명, 김광림국회의원 표창에는 박정웅(사월교회 장로) 외 3명이 선정됐다. 이번 대회에 표창을 받은 대상자는 총 51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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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에 전도의 불을 지핀 사람, 정재순 목사(2)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 교육학 안동교회 담임 정재순 목사 (鄭在淳, 1878~1948) 4. 선교사의 동역자인 조사(助事), 정재순 부해리 선교사의 전도로 회심하고 예수를 믿게 된 정재순은 기독교 학교의 교사로 활동하다가 교회를 돌보는 조사로 사역하게 된다. 1908년에는 방혜법 선교사의 조사가 되어 상주 속산교회, 사산교회, 금혼교회, 등 상주지역에서 시무했다. 1909년에는 안의와 선교사의 조사가 되어 경산 삼복교회(현 경산교회), 사월교회, 전지교회(현 남산교회), 금곡교회, 복사교회(현 자인교회)를 섬겼으며, 1912년 경산 사월교회, 전지교회, 복사교회, 대구신정교회(현 서문교회)에서 조사로 활동했다. 그 당시 조사(助事, Helper)는 초기 한국교회가 든든히 세워지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그들은 선교사의 가옥, 선교사들이 설립한 학교나 병원에서 일했으며 선교사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이들 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선교사들의 따뜻한 사랑과 헌신을 발견하고 최초의 교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적으로 복음전파에 핵심적인 역할을 감당했다. 선교사들의 통역자 역할을 했고, 선교사 대신 일정 지역을 순회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훗날 많은 조사들이 교회를 전적으로 섬기는 주의 종으로 부름을 받고 목회자가 되었다. 장로교 선교사의 조사요 지역 교회의 장로로 수년 동안 이미 교회사역에 충성을 다하고 있던 정재순도 이 공식에 예외 없이 평양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5. 평양신학교에 입학한 노(老)학생, 정재순 정재순은 1912년 봄, 35세 나이로 평양신학교에 입학했다. 평양신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정재순은 1912년 3월 6일 대구남문교회당에서 모인 제1회 경상노회에 입학을 청원하였고, 허락을 받았다. 이때 경상노회에 신학입학을 청원하여 허락을 받은 사람은 정덕생, 김기원, 서성오, 김공명, 박영조, 정재순, 김상삼, 박성애, 박덕일, 김응진 제씨였다. 평양신학교에 입학한 정재순은 3년간의 신학 교육을 받았으며, 1915년 6월 15일 평양신학교 제8회로 졸업하였다. 평양신학교는 ‘신령(神靈)한 목사’라는 교육목표처럼 교역자 양성을 위하여 1901년 평양 대동문 옆 마포삼열 자택에서 개교되었다. 1938년 1학기를 끝으로 폐교되기까지 34회 졸업식이 거행되었는데, 37년 동안 총 798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제8회 평양신학교 졸업생은 28명이다. 이때 뛰어난 인물들이 배출됐는데, 이자익, 방효원, 정재순 제씨가 바로 그들이다. 1915년 제8회 평양신학교 졸업 앨범으로 사진 중앙에 교사로 수고한 선교사들이 있고, 그 주위로 졸업생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정재순 목사는 맨 아래 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이다. 6. 대구·경북지역의 복음 전도자(前導者), 정재순 정재순 목사는 조사로 사역할 때도 복음 전파에 최선을 다했다. 1901년부터 1906년까지 칠곡 지역에 설립된 16곳 교회 중 2곳이 정재순 목사가 개척한 교회이다.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정재순 목사는 1915년부터 1922년까지 대구 신정교회 위임목사로 시무하면서 대구 침산교회, 남산교회, 대구 범어교회에서도 사역을 감당했다. 1919년 대구 3·1만세운동으로 체포되어 투옥되어 있다가 출옥한 후에는 신정교회를 사임하고 1922년 안동교회 제3대 담임목사로 부임하였다. 1925년 5월 안동교회를 사임하고 다시 대구로 돌아온 정재순은 1925년부터 1938년까지 대구 동산병원(현 대구 동산의료원) 직원 전도회 담당 목사로 시무했다. 비교적 주일에 자유로웠던 정재순 목사는 한 교회에 매여 있지 않고 약한 교회들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가 섬긴 교회는 경산 고모교회(폐지), 영천 사창교회(폐지), 영일 기계교회, 달성 덕지교회, 금릉 봉곡교회, 성주 구릉교회, 영천 삼귀교회(폐지), 청도 예리교회, 칠곡 금암교회(현 동명교회), 달성 조암교회(폐지), 달성 방촌교회, 청도 구촌교회(폐지), 청도 대천교회, 영천 대제교회(폐지), 칠곡 기성교회, 월성 입실교회, 상주 양촌교회, 경주 유담교회, 경산 경동교회, 고령 유동교회(현 운수제일교회), 외동교회(폐지), 군위 삼산교회(폐지), 고령 평지교회(폐지), 선산 석우교회, 청도 음지교회(폐지), 상주 화령교회, 의성서제교회, 오로교회 등이다. 이후 정재순 목사는 1938년부터 1946년까지 신정교회에서 두 번째 위임목사로 시무하였다. 한편 정재순 목사는 기존의 경상노회에서 분리된 경북노회에서 1919년, 1939년, 1945년 세 번에 걸쳐 노회장을 역임하며 대구지역의 기독교 지도자로 영적 리더십을 발휘했다. 7. 대구 3·8만세운동의 주역(主役), 정재순 대구지역의 3·1만세운동은 1919년 3월 8일, 3월 10일, 3월 30일에 걸쳐 총 세 차례 있었다. 당시 기독교 지도자인 남성정교회의 이만집 목사와 신정교회의 담임목사이며 당시 경북노회장인 정재순 목사, 남산교회의 김태련 조사, 백남채 장로, 계성학교 교감선생인 김영서 등이 시위를 주도했다. 이 만세운동으로 많은 사람이 체포되었는데, 당시 동원 담당이었던 정재순 목사도 체포되어 2년형을 선고받았다. 또한 정재순의 아들인 정원조도 6개월의 형을 받았다. 정원조는 당시 계성학교 학생이었는데, 일제에 의해 심한 고문과 구타를 당하고 6개월 동안의 징역으로 오래 살지 못하였다. 부자가 함께 3·1만세운동에 참여했고, 체포되어 징역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는 것은 한국 기독교 역사에 남을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정재순 목사는 일제 말엽, 친일(親日)에 가담하게 된다. 1938년 6월 중순경, 총독부의 종용에 따라 자발적인 총후봉사활동을 내세우며 조직한 친일단체인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예수교장로회 연맹’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 그는 기독교에 대한 일제의 간섭과 탄압이 절정에 이르렀던 1939년을 지나면서 노회장이란 직함으로 인해 이 단체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활동은 정재순 목사의 분명한 과오이지만 그는 회심한 이후 40여 년 동안 신앙, 사역과 헌신을 통해 교회와 민족과 역사에 긍정적인 기여도 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초창기 대구에 소재한 교회의 지도들로 좌측으로부터 박영조, 이만집, 김기원, 정재순 목사이다.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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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지역아동센터 정정숙 생활복지사 구미시장 표창장 받다!▲구미시장상을 수상한 정정숙 생활복지사.(나눔지역아동센터)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봉사와 섬김으로 이웃을 돌보는 삶을 실천해온 정정숙 생활복지사의 헌신이 화제다. 정정숙 생활복지사(구미남부교회 권사)는 지난 2003년부터 구미남부교회에서 운영한 ‘나눔공동체사회복지협회’ 사무국장을 맡아 맞벌이 가정 영유아 돌봄, 미용봉사, 목욕봉사, 의료봉사 활동 등을 통해 이웃을 돌보는 일을 시작했다. 이후 2006년부터 현재까지는 나눔지역아동센터(구미남부교회 부설) 생활복지사로 재직하면서 지역의 소외계층아동돌봄서비스를 통해 아동들을 교회로 인도하는 데 힘쓰고 있다. 정정숙 생활복지사는 구체적으로 매년 아동농촌체험 프로그램, 민속놀이 프로그램, 하계캠프 프로그램, 아동 학습지도 및 예절 교육, 학부모 및 연고자 교육 등을 진행하며 아동들이 정서적·문화적으로 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성장하도록 지원해왔다. 구미시에서는 지난달 19일 ‘제19회 사회복지의 날 기념식’에서 정정숙 생활복지사와 같은 사회복지 증진 유공자 20명을 발굴·선정해 시장상, 국회의원상, 시의장상 등을 표창함으로 그 공적을 치하하고 격려했다. 구미남부교회 최성수 목사는 “교회 설립 초기부터 지역사회 돌봄 사역을 시작했는데, 그동안 묵묵히 봉사와 헌신을 다 한 정정숙 권사와 같은 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마치 내 일인 양 기쁘고 자랑스럽다”고 축하의 마음을 전했다. ▲장세용 구미시장과 수상자들.(뒷줄 오른쪽 세번째가 정정숙 생활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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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지를 찾아서(3)-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제암리 순국 23인을 상징하는 조형물 ▷제암리·고주리 학살 사건 1919년 3월 31일 경기도 화성시(당시 수원군) 제암리 발안 지역에서도 주민 천여 명이 참여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무력 진압에도 제암교회를 중심으로 연일 만세운동과 항일시위가 끊이지 않자 일제는 결국 제암리 학살 사건을 자행한다. 4월 15일, 일본군 아리타 중위는 ‘만세운동의 심한 진압을 사과하려고 왔다’고 말하며 제암리 주민들 중 15세 이상 남자를 제암교회에 모이게 했다. 그리고는 출입문과 창문을 모두 잠그고 교회당을 포위한 뒤 사격했으며, 증거인멸을 위해 교회당에 불을 질렀다. 이날 교회당 안에서 23명, 뜰에서 6명이 모두 불에 타 죽었다. 이어 일본 경찰은 제암리의 가옥 30여 채를 불태우고 5백m 떨어진 고주리에서 김흥렬 등 천도교 신자 6명을 총칼로 살해하고 시체를 불태워버렸다. 이 사건은 참상은 캐나다 의료선교사 스코필드박사에 의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제암리의 참살 박 목 월 (朴 木 月) 무슨 소리를 해 보았자 그들이 지른 제암리의 불은 이제 와서 끌 수 없고 교회 안에 모였던 스물여덟 명의 형제를 살려낼 수 없다. 왜병 중위가 이끄는 악마의 한 떼거리가 어진 백성을 교회당 안에 몰아넣고 난사했다. 살해했다. 이유도 간단했다. 우리나라를 우리가 사랑하기 때문에 제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에 죽음을 당한 형제가 제암리의 그분들 뿐이랴마는 나는 죽지만 이 어린 것만은 살려달라고 죽음의 창틈으로 내미는 천진한 어린 아기의 무심한 눈을 겨냥하며 방아쇠를 당기는 놈들의 손 모성애의 마지막 애원조차 귀에 들리지 않는 귀머거리의 미친 악마 귀머거리의 악마 (중략) 무슨 소리를 해보았자 그들이 지른 제암리에 불은 이제 와서 그들이 끌 수 없으며 죽음 당한 우리의 형제가 살아날 수 없다. (뉘우치는 것은 그들의 덕, 우리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자주국의 백성으로서 환하게 웃는 얼굴로 그들을 대할 수 있음은 지난날보다 오는 날이 소중하고 어제보다 내일이 귀하고 과거를 되새기기보다 내일의 꿈에 부풀고 조국의 산하에 철철 넘쳐 흐르는 오늘의 햇빛이 밝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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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존애원 의료시술재현 행사 개최상주시(시장 황천모)에서는 9월 29일(토)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 의료국인 존애원(存愛院)에서 민간구휼과 의료시술을 재현하고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제10회 존애원 의료시술 재현 행사”를 개최했다. 존애원(원장 손석락)에서 주관하는 이번 행사는 오전 10시 고유제를 시작으로 개막식을 열고 11시 30분 ‘존애원 학술발표’와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남을 돕게 된다’는 존심애물(存心愛物)’의 존애원 설립취지를 살려 의료시술 및 민간구휼의 재현과, 80세 이상 어르신들을 초청해 백수회를 가졌다. 부대 행사로 한방 무료 진료와 한약재 전시, 상주 역사이야기관 운영, 가훈쓰기, 추억사진 만들기, 평양통일예술단 공연과 각종 축하공연이 다채롭게 펼쳐졌다. 존애원은 현존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 의료기관이다. 임진왜란 이후 자체적으로 질병을 퇴치하려는 데 뜻을 같이하는 상주 지역 13개 문중 선비들에 의해 1599년에 설립되었다. 황천모 상주시장은 “존애원처럼 자랑스러운 지역의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재조명해 나가는데 더욱 노력 할 것이며, 설립 이념인 존심애물의 정신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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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기업체 탐방 인터뷰 - 삼우연합정형외과의원 김 식 원장<화제의 인물 : 단독 인터뷰> 만나고 싶었습니다! 구미 삼우연합정형외과 김 식 원장 “소통”과 “공감”의 의술 펼치다! 소통이 없어진 시대, 지식과 정보는 넘쳐나는데 막상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면 마음 놓고 찾아가 대화를 나눌 곳이 점점 없어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구미시 형곡동에 위치한 삼우연합정형외과에 가면 마음씨 따뜻한 의사 선생님이 한 분 계신다. 병원을 방문한 환우들은 진료뿐 아니라 인생 문제 상담까지 오랫동안 의사 선생님과 대화를 나눈다. 김 식 원장의 “공감” 의술이 빛나는 의료 현장이다. 본지에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일터 사역을 펼치고 있는 김 원장을 만나 그의 생각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진솔한 대화들을 정리한 것이다. Q. 환자들과 특별히 많은 얘기를 나눈다고 알고 있습니다. 원장님의 의술 철학이 있다면요? 현대는 의료 분야에서도 지식과 학문이 놀랍게 발전했습니다. 의료 장비도 최첨단으로 발달하고 진료 과목은 더 전문적으로 세분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가진 문제, 즉 몸이 아플 때 그것을 치료하는 패턴은 아직도 그에 못 미치고 있습니다. 어디가 아픈지 묻고, 엑스레이 찍고, 주사, 약, 물리치료… 저는 그런 획일적인 치료에서 벗어나 환자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자 진정성 있는 대화를 많이 합니다. “소통”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Q. 매일 아침 진료를 시작하기 전, 직원들과 15분씩 스트레칭과 운동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운동을 안 하면서 환자들에게만 하라고 하는 것은 진실성이 없으니까요. 저는 치료하면서도 환자가 꼭 해야 하는 운동은 저도 같이 따라 합니다. 의사의 권위는 강요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신뢰를 얻을 때 저절로 형성되는 것입니다. 병원 경영에서도 저는 직원들의 의견을 최대한 들어주고 인정해줍니다. 지난 6월 18일부터 저희 병원은 주 5일 진료로 바뀌었습니다. 직원들의 근무 여건을 존중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끊임없이 서로를 신뢰해주는 것, “공감”의 형성은 기독교인들의 일터 현장에서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Q. 영적인 원리가 의료 현장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남기시고 싶은 말씀은요? 모든 병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입니다. 정형외과적인 질병은 잘못된 생활 습관과 자세에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그 근본 원인을 고치지 않으면 재발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의사는 병 고치는 능력을 100%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효율적인 해결 방법을 알고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일 뿐입니다. 환자와 의사는 서로 존중해야 하고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그것은 약간의 시간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상처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저를 의사의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환자들을 그분의 마음으로 대하고자 항상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인터뷰 후기> 삼우연합정형외과 병원에는 아늑한 분위기의 병실과 물리치료실, 비수술 로봇형 척추 디스크 치료기 등 최첨단 장비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시스템보다도 더 병원에 신뢰가 가는 것은 바로 환우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의사 선생님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 놓고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병원, 궁금한 것은 무엇이든 대답해주는 의사 선생님, 김 식 원장의 하얀 가운은 우리에게 그렇게 기억되길 바래본다. /대담·정리=박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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