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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의 휘장이 찢어져 둘이 됐다는 의미는 무엇인가요?Q 질문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그 영혼이 떠나갈 때 성소 휘장이 찢어졌다는 의미와 휘장이 둘이 됐다(마27:51)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A 답변 : 예수님이 돌아가셨을 때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은 이제 예수님의 육체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새롭고 산 길이 열렸다는 의미입니다(히10:20). 곧 전에는 오직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 차례 그것도 수송아지와 숫염소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누구든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신부나 목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직접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을 만인제사장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우리는 약하고 도무지 하나님께 나아갈 자격이 없지만, 예수님을 힘입어 담대히 은혜의 보좌앞에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히4:16). 그리고 예수님이 죽으셨을 때 찢어진 성소의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가로막는 커튼인데, 이를 둘째 휘장이라고도 합니다(히9:3). 왜냐하면 성소에 들어갈 때에도 휘장이 있는데, 그것을 첫째 휘장이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이 둘째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고 하는데(마27:51), 이것은 사람의 손으로 찢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찢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위에서부터 찢어졌다는 것은 곧 하나님이 친히 찢으셨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이로써 대제사장의 역할과 구약의 제사제도는 끝나고 이제부터는 예수님을 통해 ‘산 제사’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교회당을 성전이라 부르는 것은 잘못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답변자 : 변종길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 <‘크리스천 큐앤에이’(도서출판 등과 빛) 中 요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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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인성이 죄(원죄)가 없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Q 질문 : 예수님은 인성과 신성을 함께 가지고 계시는 것으로 압니다. 신성에 대해서는 하나님이시므로 자범죄가 없는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렇다면 인성에서 예수님의 죄(원죄) 없으심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또한, 창3:15절에서 ‘여자의 후손’이라는 말을 일반적인 방법의 출생을 말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A 답변 : 예수님의 인성이 죄가 없으신 것은 그가 실제로 죄를 짓지 않았음을 말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원죄없이 태어나셨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하여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동정녀 탄생이라는 놀라운 방법으로 성자께서 인성을 취하시도록 하신 것이라고 결과론적으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 창3:15절이 궁극적으로 이런 방식으로 태어나신 성자의 출생을 말하는 것이나, 이것은 이미 그렇게 성취된 후에야 우리가 알고 말하는 것이지, 그 이전에 그런 의미를 사람들이 다 알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알고 계신 것이고, 그런 함의를 이미 넣어 두신 것이지만, 창3:15절의 계시 내에 그 모든 것이 다 있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출생을 통하여 더 밝은 빛을 비침 받고 더 많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마리아의 난자까지도 사용하신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방식으로 수태케 하여 난자를 전혀 사용하지 않으신 것인지를 단정하여 말하는 것은 좋지않습니다. 그러나 여자의 모든 것을 사용하시되 원죄의 부패성이 전가되지 않도록 하셨다는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명확히 말하는 것을 분명히 말하는 것과 그로부터 우리가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것을 구별하여 성경의 계시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것이 매우 필수적입니다. 답변자: 이승구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조직신학) <‘크리스천 큐앤에이’(도서출판 등과 빛) 中 요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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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 노래 선택의 분별 기준은?Q 질문 : 일반적으로 세상 노래란 교회 밖의 사람들이 주로 부르는 것으로 성경과 성령님께 뿌리를 두지 않는 노래라고 저는 정의합니다. 세상 노래를 부르거나 듣는 것에 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에 대해 노래의 가사를 기준으로 많이 궁금합니다. A 답변 : 문화적으로 너무나 혼탁해진 시대를 살면서 성도들이 어떤 노래를 부르고 들으며 살아야 할지 고민되는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 노래 중에서 우리가 함께 할 수 없는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며, 반기독교적인 내용들을 잘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을 바라보며 비록 신앙적 표현이 들어 있지 않아도 감동적으로 그려낸 멋진 시나 노래가 있다면 충분히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위대함을 성경을 근거로 노래한다면 더 멋진 것이겠지만, 자연의 신비를 근사한 시어와 선율로 노래를 표현한다면 누구나 함께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따라서 세상 노래라 할지라도 건강하고 따뜻한 노래들까지 배격할 필요는 없겠지요. 저의 오랜 친구이기도 한 ‘시인과 촌장’의 가수 하덕규 씨는 자신이 직접 쓴 노랫말에 기독교적인 어휘들을 사용하지 않고도 건강하고 아름다우며 감동적인 노래들을 만들어 내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 제게는 다 영적인 메시지로 들려 올 때가 많습니다. 또한, 가수 인순이가 부른 ‘거위의 꿈’도 누구에게나 충분히 감동적입니다. 극단적인 문화의 타락 시대를 살아가면서 영적 분별력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누구나 어느 세대나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건강한 음악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나누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답변자 : 안 민 교수 (고신대학교 교회음악대학원장) - ‘크리스천 큐앤에이’(도서출판 등과 빛) 中 요약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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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Q 질문 : 크리스천으로서 술은 먹으면 안 되는 것인지, 만약 먹더라도 절제하면 되는지요? 아니면 먹으면 안 되지만 경우에 따라서 허용되는 걸까요? 신약에서는 무엇이든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믿음에 따라 선하다고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술 마시는 것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무엇인가요? A 답변 :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했습니다.(딤전5:23) 집에서 약으로 포도주를 조금 마시는 것은 죄악 시 할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포도주를 음료로 마셨습니다. 우리가 물을 마시듯이 생활필수품이었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러나 많이 마셔서 술 취하게 되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절제력을 잃게 되어 실수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술 취하지 말라”고 말씀하는 것이지요. 또한, 절제가 어려울 것 같으면 아예 “술을 마시지도 말고 쳐다보지도 말라”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문제는 술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술에 취하여서 실수하고 죄를 짓게 되는 것에 있습니다. 한국교회에서는 옛날부터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는 술 마시는 것이 곧 죄짓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에 금지하게 한 것입니다. 술을 마시게 되면 사람들이 자제력을 잃고 온갖속된 말과 추악한 행동들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술을 하지 않는 것을 기독교 신앙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먹고 마시는 문제는 우리를 하나님 앞에 의롭게 하지 못하며, 신앙의 제일 중요한 요소도 아닙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짓지 않는 것, 곧 성결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런 중요한 것을 내던져 버리고 율법적으로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을 좋은 신앙인으로 여긴다면 크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마음속에 형제를 미워하며 정죄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면 그것은 술을 마시는 불신자들보다 더 악한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며, 지엽적인 것을 중심에 두는 잘못을 범치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답변자 : 변종길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 <‘크리스천 큐앤에이’(도서출판 등과 빛) 中 요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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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사함 받았는데 왜 죄를 짓나요?Q 질문 :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았다고 고백하는데, 만약 동일한 죄의 모습이 있다면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궁금합니다. 특별히 천국에서는 왜 아무도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A 답변 : 사람들이 죄짓는 것으로부터 우리는 죄의 형성과 그 범위와 그 보편성이 큼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통해서 이렇게 모든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은 그렇게 창조 받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를 인간이 고의로 뒤집은 타락에 기인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타락한 사람은 인류의 첫째 범죄에 대한 죄책과 오염을 가지게 되는데, 이 첫째 죄에 대한 죄책()과 첫째 죄로 말미암은 오염() 두 가지를 합하여 원죄()라고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들이 잘못했으므로 원죄를 가지게 되었고, 그렇게 오염되었으므로 둘째 죄를 비롯한 계속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후예로 태어난 사람들은 모두 다 이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는데, 그것은 아담이 우리의 언약적 머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담만 죽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죽는 것이고 그 형벌을 같이 받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 같은 부패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속죄는 우리의 원죄와 자범죄에 대한 형벌을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부패성도 성화의 과정을 통해서 극복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성화가 점진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은 그 부패성과 싸우는 일이 필요함을 말해 주는 것이지요. 그리스도인 안에는 이제 성령을 따라가려는 마음과 그에 따라가지 않고 부패한 인간성(성경에서는 이것을 ‘육체’라고 표현)을 따라가려는 성향이 같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생 육체(몸이 아닌 부패한 인간성)와 싸우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죽어서 ‘하늘’에 있는 온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은 전혀 죄를 범하지 않습니다. 영혼에 관한 한 그들은 성화가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몸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속 역사가 극치에 이르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모든 성도의 몸과 영혼이 다 온전하게 되어 전혀 죄를 범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승리가 공적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답변자 : 이승구 교수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 ‘크리스천 큐앤에이’(도서출판 등과 빛) 中 요약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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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와 불신자의 부활체의 공통점과 차이점은?Q 질문 : 신자의 부활체와 불신자의 부활체는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나요? 신자의 부활체는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이해하면 되는 것 같은데, 불신자의 부활체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나요? A 답변 : 성경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의 부활에 대해서 언급한 구절은 두 군데 있습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9절)와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행24:15절)입니다. 이런 구절들이 지지하는 것은 불신자들도 부활 후에 신자들처럼 변화된 육체를 경험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심판대에 서게 될 것이고, 대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고 나서 불신자들은 영원한 형벌에 처해 지게 될 것이라는 종말론적 관점이 배면에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사후멸절설(annihilationism)을 주장하는 자들은 불신자들은 죽은 후에나, 혹은 어떤 이들은 대심판 이후에는 아예 존재 자체가 소멸해서 없어질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심판론을 견고하게 지지하는 성경 구절이 많기 때문에, 불신자들도 부활에 참여했다가 다시 영원한 멸망(perdition)에 떨어질 것이라는 견해가 보편적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감옥이나 형벌로 묘사되는 곳에 변화된 육체성을 가진 자들이 들어가야만 하는데,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에 담긴 내용을 적용해 보면, 부자도 죽은 후에 현세에서의 모습과 연계된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물론, 불신자들의 부활체는 믿는 자들이 장차 가지게 될 영광스럽고 완벽한 부활체는 아닙니다. 고전15장에서 제시하고 있는 부활체는 믿는 자들에게 주신 것이기 떄문입니다. 답변자 : 김재성 교수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 ‘크리스천 큐앤에이’(도서출판 등과 빛) 中 요약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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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주의 전천년설’이 무엇인가요?Q 질문 : 종말에 관하여 다양한 주장들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 등 일반 성도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 용어들이 각각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세대주의 전천년설’이란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그리고 정통 교회에서 이 ‘세대주의 전천년설’을 주장하는 것도 옳은 것인지 질문 드립니다. A 답변 : 천년기설은 요한계시록 20장에 나타나는 ‘천년’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고 ‘천년 왕국’이 온다는 설(전천년설), 예수님의 재림 전에 ‘천년 왕국’이 온다는 설(후천년설),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천년은 문자적 천년이 아니고 ‘교회 시대’가 ‘천년 기간’이라고 보는 설(무천년설)이 있는데, 이 셋은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견해입니다. 어떤 것이 더 옳은가는 성경 전체의 구조와 어떤 생각이 더 잘 조화되는가를 생각해야 하지만 셋 다 좋은 견해이고 어떤 견해를 취해도 됩니다. 어느 하나의 입장만을 택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위험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다 허용하면서 “그래도 나는 이 견해가 더 옳다고 본다”는 정도의 말은 할 수 있습니다. 단지 ‘세대주의 전천년설’은 1. 재림 전에 참 신자들의 휴거와 이 땅에서 진행되는 큰 환란을 말하여 참 신자는 큰 환란을 받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점, 2. 천년 기간 동안에 예루살렘 중심으로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을 주장하는 점, 3. 천년 동안 예루살렘에 성전이 세워지고, 십자가 구속을 기념하는 제사가 다시 시행된다고 주장하는 점, 4. 그리고 유대인과 교회를 두 가지 다른 구원의 프로그램으로 주장하는 점에서 바른 성경 해석으로 여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대주의자들이 이단은 아니고, 단지 성경 해석이 잘못된 것이지요. 죠지 래드가 그랬던 것처럼, 또 피터 릴백 교수가 그랬던 것처럼, 이전에 세대주의였던 분들이 바른 성경 해석으로 돌아오기를 위해 늘 기도하고 애써야 합니다. 답변자 : 이승구 교수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 ‘크리스천 큐앤에이’(도서출판 등과 빛) 中 요약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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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과 교파 분열은 무엇 때문인가요?Q 질문 : 교단, 교파 분열은 무엇 때문인가요? 분명 저는 목사님한테 하나님은 한 분, 성경도 하나라고 배웠는데 자꾸 나뉘는 것이 궁금합니다. A 답변 :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교단을 이루고 있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도 바울도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4:1~6절)라고 하셨지요.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질문하신 분이 그렇게 고민하시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진리의 문제가 아닌 사람들 간의 이해 문제로 인하여 (어느 집단을 만들어 주도권을 장악하려고) 교파나 교단을 분열하는 것은 결코 옳지 못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들이 일치를 이루고 복음의 기초 위에서 진정한 연합 운동을 해 갈 수 있도록 기도드리는 것이 지혜로운 것 같습니다. 당분간은 교파나 교단으로 분열되어 있지만, 연합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형제애를 나누며 교제하고, 복음 전파와 기독교적인 가치를 지키기 위하여(예, 동성애 및 진화론 반대 운동) 함께 노력하고 애써야 할 것입니다. 교회들이 지니고 있는 외적인 모습들을 바라볼 때 때로는 상심하게 되지만, 그러한 문제를 직시하고 계시는 분들부터 더욱 기도하시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잘 감당해 나간다면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답변자 : 최병규 박사 (기독교미래연구원 대표, 신학박사) - ‘크리스천 큐앤에이’(도서출판 등과 빛) 中 요약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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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토요일), 주일(일요일)에 관해Q 질문 :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지으시고 일곱째 날에 쉬신 그 안식일이 Saturday, 토요일이 맞나요? 그럼 하나님께서는 토요일에 안식을 취하셨으며, 예수님께서 다시 사신 안식 후 첫날, 곧 일요일을 우리가 주일로 기념하여 현재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른가요? A 답변 : ‘토요일에서 주일(일요일)로 변경된 사유’에 대해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1장 7절은 다음과 같이 가르쳐 줍니다: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로는 주의 첫째 날로 바뀌어(창2:2~3, 고전16:2, 행20:7) 성경에서 주의 날로 불리고 있다(계1:10)” 필립 샤프도 그의 『교회사』에서 “우리는 그 이유를 ‘사도적인 선례’에서 찾을 수 있다”고 했는데, 다음의 성경 구절을 보아도 사도 시대부터 점차 주일을 지켜왔던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일의 첫째 날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요20:1), ‘드로아에서 주의 첫날에 예배드리기 위해 모이고, 바울이 설교함’(행20:6~7). 그리고 사도 시대 직후에도 교회는 주일을 지켜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일 구습을 따르던 사람들이 더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의 날’을 지키는 새로운 소망에 이르게 되었다면, 우리의 삶도 주님을 통하여 새로워진 것이다.”(107년경, 교회의 지도자 익나티우스가 쓴 문서에서) 또, 155년경 저스틴 마터가 쓴 『첫 번째 변증서』에는 일요일마다 사람들이 예배드렸다는 사실이 기록돼 있습니다: “일요일이라고 부르는 날마다 도시에 사는 사람이나 시골에 사는 사람이나 한곳에 모입니다. 사도들의 글이나 선지자들의 글을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오래 읽습니다. 독경자가 읽기를 마칠 때에 사회자는 강론을 통하여 그 고상한 교훈들을 모방하도록 권면합니다.” 필립 샤프는 저스틴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저스틴은, 주간의 첫날을 기독교 예배일로 정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그날에 하나님께서 흑암과 혼돈을 몰아내셨기 때문이며,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시고 모인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답변자 : 최병규 박사 (기독교미래연구원 대표, 신학박사) - ‘크리스천 큐앤에이’(도서출판 등과 빛) 中 요약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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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하나님의 뜻대로 될 것인데 기도해야 하나요?Q 질문 : 모든 게 하나님의 뜻대로 될 것이라면 우리가 무언가를 간구하는 기도를 꼭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 간구의 방향이 어떻든 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인데 내가 간구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A 답변 : 고전적인 질문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 둘 다 드러나는 쪽으로 생각하는 것이 성경적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다 정하셨으니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만 강조하고 인간의 책임을 생각하지 않는 잘못을 범하는 생각입니다. 또한, 우리가 기도하면 되므로 하나님의 뜻이 미리 정해진 것이 없다는 것은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한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은 분명하고, 우리도 주님의 백성으로 주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해야 바른 생각입니다. 그런 입장에서는 결과적으로 볼 때 우리의 성경적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주님의 뜻대로 간구하기 위해 주님의 뜻을 부지런히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히 인정해야 합니다. 참된 기도자는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히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온전한 기도를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답변자 : 이승구 교수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 ‘크리스천 큐앤에이’(도서출판 등과 빛) 中 요약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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