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3 (목)

  • 맑음속초32.9℃
  • 맑음28.4℃
  • 맑음철원24.9℃
  • 맑음동두천25.5℃
  • 맑음파주23.2℃
  • 맑음대관령26.0℃
  • 맑음춘천27.8℃
  • 구름많음백령도16.9℃
  • 맑음북강릉30.6℃
  • 맑음강릉31.6℃
  • 맑음동해27.3℃
  • 맑음서울25.8℃
  • 맑음인천20.9℃
  • 맑음원주27.1℃
  • 맑음울릉도22.2℃
  • 맑음수원24.9℃
  • 맑음영월28.2℃
  • 맑음충주28.8℃
  • 맑음서산24.9℃
  • 맑음울진21.0℃
  • 맑음청주28.5℃
  • 맑음대전29.1℃
  • 맑음추풍령28.2℃
  • 맑음안동30.2℃
  • 맑음상주29.6℃
  • 구름조금포항31.7℃
  • 맑음군산19.6℃
  • 맑음대구31.1℃
  • 맑음전주27.3℃
  • 구름조금울산25.4℃
  • 구름조금창원29.0℃
  • 맑음광주29.1℃
  • 구름많음부산25.1℃
  • 구름많음통영24.3℃
  • 맑음목포23.8℃
  • 구름많음여수25.9℃
  • 맑음흑산도18.6℃
  • 구름조금완도28.7℃
  • 맑음고창
  • 맑음순천28.2℃
  • 맑음홍성(예)26.6℃
  • 맑음27.3℃
  • 구름많음제주23.6℃
  • 구름많음고산20.1℃
  • 구름많음성산23.5℃
  • 구름많음서귀포24.5℃
  • 맑음진주29.9℃
  • 맑음강화20.5℃
  • 맑음양평27.8℃
  • 맑음이천28.1℃
  • 맑음인제27.8℃
  • 맑음홍천28.4℃
  • 맑음태백27.9℃
  • 맑음정선군30.9℃
  • 맑음제천27.3℃
  • 맑음보은27.8℃
  • 맑음천안27.4℃
  • 맑음보령20.0℃
  • 맑음부여28.7℃
  • 맑음금산28.5℃
  • 맑음28.7℃
  • 맑음부안22.6℃
  • 맑음임실27.9℃
  • 맑음정읍27.4℃
  • 맑음남원29.9℃
  • 맑음장수28.1℃
  • 맑음고창군28.2℃
  • 맑음영광군23.2℃
  • 구름조금김해시27.0℃
  • 맑음순창군29.3℃
  • 맑음북창원31.7℃
  • 구름조금양산시28.7℃
  • 구름조금보성군30.9℃
  • 맑음강진군29.9℃
  • 맑음장흥29.7℃
  • 맑음해남27.6℃
  • 구름많음고흥29.9℃
  • 구름조금의령군32.3℃
  • 맑음함양군30.8℃
  • 구름조금광양시31.2℃
  • 맑음진도군24.5℃
  • 맑음봉화28.7℃
  • 맑음영주28.1℃
  • 맑음문경29.3℃
  • 맑음청송군30.1℃
  • 맑음영덕30.7℃
  • 맑음의성30.5℃
  • 맑음구미30.3℃
  • 구름조금영천30.9℃
  • 맑음경주시32.3℃
  • 맑음거창31.0℃
  • 구름조금합천32.3℃
  • 맑음밀양32.3℃
  • 구름조금산청32.0℃
  • 구름많음거제26.3℃
  • 구름조금남해28.3℃
  • 구름조금27.4℃
기상청 제공
‘최면’에 관한 기독교적 견해는?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주시

‘최면’에 관한 기독교적 견해는?

크리스천 큐앤에이

Q 질문 : 기독교에서 보는 최면에 대한 관점과 그 관점에 대한 이유(근거)를 알고 싶습니다.


A 답변 : 최면이란 원래 ‘잠(hypnosis)’이라는 말에서 비롯된 헬라어로, 자신에게 최면을 건 사람의 지시를 따라 일정한 행동 혹은 말을하게 되는 상태입니다. 100년 전, 심리 분석학이 시작될 당시 프로이트와 융은 인간의 심리분석을 위해 최면을 사용하였습니다. 일반적인 상담보다 최면을 통해 이야기할 때 훨씬 저항이 없이 자신의 기억이나 삶을 진술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프로이트나 융은 최면의 한계가 분명하였기 때문에 그 방법을 버리게 됩니다.


인간의 뇌가 전능한 잠재력이 아닌 것처럼, 그것이 보여주는 최면의 잠재력 역시 제한되고 조작됩니다. 최면에서 드러나는 구체적인 내용 역시 그 개인의 환상이나 소망이나 불안의 감정들에 의해 조작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최면에서 나온 진술들을 문자적으로 믿는 것은 근거가 없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이나 신학에서 최면에 대해 말하는 것을 쉽게 찾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선명한 의식의 상태에서, 책임 있는 개인 인격의 각성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교제를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관점에서 볼 때 최면은 건전한 기독교적 신앙 실천의 중심에 들어오기 힘듭니다.


하지만 실제 최면의 양상들을 보면 다분히 종교 체험적입니다. 최면에는 영적 개방성이 있어서, 자칫 최면이 영적으로 불건전한 또 다른 영적인 존재들을 끌어들이거나 만나는 통로가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면은 결코 성령의 통로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오직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가는 현실과 의지의 원리가 전제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에 의해 특별하게 감독받아 허용된 제한된 목적의 상황 외에, 최면에 접하는 것은 스스로 영적인 위험에빠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답변자 : 하재성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실천신학)

<‘크리스천 큐앤에이’(도서출판 등과 빛) 中 요약 발췌>

관련기사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